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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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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ODEL P-MODEL 음반 목록 旬
<colcolor=#000> 히라사와 스스무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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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사와 스스무 [ruby(平沢 進, ruby=ひらさわ すすむ)] | |
<colbgcolor=#A9A9A9><colcolor=#000> 이름 | 히라사와 스스무 (平沢 進) |
출생 | 1954년 4월 2일[1] ([age(1954-04-02)]세) |
도쿄도 아다치구 | |
거주 | 이바라키현 츠쿠바시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가족관계 | 아버지 히라사와 키요시 형 히라사와 유이치 |
학력 | 도쿄디자이너학원 (졸업) |
직업 | 음악가, 프로듀서. CG 아티스트 |
소속 | MANDRAKE (1973~1978) P-MODEL (1979~2000) 旬 (1984~1996?) 核P-MODEL (2004~) 히라사와 스스무+에진 (平沢進+会人) (2017~) |
데뷔 | P-MODEL 1979년 7월 25일 데뷔일로부터 [dday(1979-07-25)]일 | [age(1979-08-25)]주년 |
솔로 1989년 9월 1일 데뷔일로부터 [dday(1989-09-01)]일 | [age(1989-09-01)]주년 | |
레이블 | POLYDOR (현 유니버설 뮤직 재팬) (1989~1995) 일본 컬럼비아/TESLAKITE (1995~1998) CHAOS UNION/TESLAKITE (2000~) |
소속사 | MODEL HOUSE→オクターブ (1979~1989) I3 PROMOTION (1989~1997) CHAOS UNION[2] (1997~) |
링크 | | | [개인] [공식]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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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뮤지션.
P-MODEL의 프론트맨으로 활동했으며, P-MODEL 활동 중단 이후로는 솔로 활동과 함께 P-MODEL을 계승한 프로젝트 핵(核)P-MODEL로서의 활동을 현재까지 병행 중이다.
2. 연혁
1979년부터 2014년까지의 모습. |
2015년 | 2018년 |
2021년 | 2023년 |
2.1. P-MODEL 결성 이전 (~1978)
맨드레이크 활동 당시 장발의 히라사와 (1973) |
-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일렉트릭 기타를 치고 레코드를 빌려오는 것이 취미였다고 한다. 학창시절부터 특이한 컨셉의 밴드를 좋아했다고.
- 1978년경부터 히라사와는 여러 사람과 인연을 쌓았는데, 신디사이저 세션 알바에 응모한 날에 '카미오 아키로(神尾明朗)'를 알게 되었고, 그의 권유로 주간 플레이보이의 신디사이저 다중녹음 콘테스트에 『필요한 벌의 유혹(いりよう蜂の誘惑)』을 출품하여 심사위원 토미타 이사오의 호평을 받아 입상하게 되었다. 이 대회의 수상작들은 앨범 「SYNTHETIC SPACE 무서운 두뇌집단」에 수록되었다. #
- 같은 시기 야마하 신디사이저 교실에서 강사를 하면서 나중에 P-MODEL의 베이시스트가 되는 키쿠치 타츠야, 나중에 히라사와가 처음으로 프로듀서를 맡게 되는 밴드 'Shampoo'의 멤버인 '오리모 마사미(折茂昌美)'와 만나게 되고 옆 피아노 학원에 다니던 미우라 슌이치와도 아는 사이가 된다.
- 한편, 맨드레이크는 레코드 회사가 앨범 발매를 권유하는 수준까지 성장했으나 히라사와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전망을 부정적으로 봤고, 밴드의 음악 스타일을 포스트 펑크에 가깝게 변경해나가다 1978년 12월을 끝으로 해체한다.
2.2. P-MODEL 결성 (1979~1988)
P-MODEL 데뷔 이후 (1980) |
자세한 내용은 P-MODEL 문서 참고하십시오.
- P-MODEL의 리더로 메이저 데뷔한 이후에는 밴드 활동 외에 각종 필명으로 여러 장르의 곡을 주문받아 작곡하였다.[5] 이는 이후 솔로 활동의 기반이 되기도.
2.3. 솔로 데뷔 (1989~2000)
'에러' 인트로 + 할딘 호텔 |
- 1990년 5월, 2번째 앨범 '사이언스의 유령 (サイエンスの幽霊)'과 싱글 '세계 터빈 (世界タービン)'을 발매하고, 이어서 7월에는 '세계 터빈 투어'를 개최했으며, 9월에는 그 실황을 담은 비디오 '에러'를, 이어서 10월에는 솔로 첫 라이브 앨범 'error CD'를 발매했다.
- 1991년에는 3번째 앨범 'Virtual Rabbit'을 발매했으며, 애니메이션 데토네이터 오건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하며 활동 반경을 넓히기도 하였다. 잠시 중단했던 P-MODEL 또한 해동 라이브를 개최하며 활동을 재개. 이후 솔로 활동과 밴드 활동을 병행하게 된다.
- 1992년, 첫 베스트 앨범 '영혼의 고향 ESSENCE OF HIRASAWA SOLO WORKS'가 발매되었다.
- 1994년에는 4번째 앨범 'AURORA'를 발매했으며, 이후 개최된 '오로라 투어'에서 독학으로 키운 CG기술과 프로그래밍 실력을 활용해 마치 RPG 게임을 하듯 선택지, 세트리스트, 빌런과 전투 방법, 엔딩 등을 관객의 호응이나 행동으로 정해 그날 공연의 향방을 바꾸어나가는 '인터랙티브 라이브(IINTERACTIVE LIVE)'를 선보였다. 이는 이후 솔로 앨범 발매 때마다 열리는 히라사와만의 공연 형태로 자리 잡게 된다.
- 후술하겠지만 90년대 초반 우연히 방문한 태국 방문을 통해 동남아시아, 특히 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태국 문화를 접하면서 작품 세계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1995년, 바로 그러한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5번째 앨범 'SIM CITY'를 발매했으며, 이 시기에 사설 홈페이지 'Ghost Web'과 공식 사이트를 개설하기도 하였다.
- 1996년에는 독자 레이블 'TESLAKITE'를 설립하고 앨범 'SIREN セイレーン'을 발매한다.
- 1997년, 맨드레이크의 스튜디오 및 라이브 음원을 리마스터링해 수록한 'Unreleased Material-1'이 발매되었다. 또한 TV 애니메이션 '검풍전기 베르세르크'의 삽입곡 'BERSERK~Forces'와 사운드트랙 앨범 '검풍전기 베르세르크'가 발매되었다.
P-MODEL로서의 마지막 라이브 (1999) |
- 1999년엔 P-MODEL 데뷔 20주년 기념 프로젝트 '음악산업폐기물 ~ P-MODEL OR DIE(音楽産業廃棄物 ~ P-MODEL OR DIE)'를 통해 일본 내 프로 뮤지션으로선 최초로 MP3 음원 판매를 시작하며 시대의 흐름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2000년, 8번째 앨범 '현자의 프로펠러(賢者のプロペラ)'를 개인 소속사 '케이오스 유니온'에서 발매하며 음반 회사로부터 완전히 독립해 냈다. 그러한 와중 P-MODEL은 같은 해 12월 배양(培養) 선언을 하며 다시 활동을 중지. 사실상 해체하게 된다.
2.4. P-MODEL 배양 이후 (2001~2011)
Solar Ray 2 |
- Hirasawa Energy Works
2001년 7월, 프로젝트 'Hirasawa Energy Works'를 발표했다.
프로젝트의 콘셉트는 이 프로젝트에 필요한 모든 전력을 사냥한다는 것. 음악 활동에 필요한 모든 전력을 태양광 발전 등으로 생산한다는 프로젝트였다. 이에 따라 자택 스튜디오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고, 같은 해 10월 그 에너지만으로 제작된 음반 SOLAR RAY를 발매했다.
프로젝트의 피날레라 할 수 있는 LIVE SOLAR RAY에선 새로운 악기가 등장했는데, 원판을 돌리며 버튼을 누르면 소리가 나는 악기인 그래비톤이다. 자전거를 개조하여 자체제작하였으며 원형 판넬을 돌려 전력을 생산, MIDI 트리거 스위치를 누르면 소리가 나는 방식이다. 한 마디로 친환경 런치패드인 셈.
이 라이브는 아무래도 태양광 발전만으론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팬들 중에서 에너지 헌터를 선정하여 그들에게 발전 장비와 2차 전지를 나눠주고 전지에 전력을 사냥해오는 임무를 맡겼다.
레벨 1. 기타 솔로
레벨 2. 기타가 무선이 되어 스테이지 아래에서도 기타 솔로 가능
레벨 3. Miburi[6]를 쓸 수 있게 된다.
특별 레벨. 신디사이저(Roland JD-800)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할 수 있게 된다.
레벨 2. 기타가 무선이 되어 스테이지 아래에서도 기타 솔로 가능
레벨 3. Miburi[6]를 쓸 수 있게 된다.
특별 레벨. 신디사이저(Roland JD-800)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할 수 있게 된다.
Sim City 2 |
Miburi가 연주되거나 신디사이저가 사용된 것을 보면 전력이 많이 모인 모양이지만 공연 당일에 비가 내려 라이브에 큰 차질이 생겨버렸다.
그러나 히라사와와 스탭들은 이 상황을 예상하였는지 전기를 많이 잡아먹는 스피커를 포기하고 그 대신 FM 신호를 보내 관객들에게 지급해준 헤드폰으로 소리를 전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라이브를 강행하였다. 일반적인 라이브와 음향이 이질적인 것이 이 때문.
이 라이브는 NHK BS2와 TBS에서 특집으로 다루기도 하였다.
디지털 콘텐츠 그랑프리 수상 당시 (2002) |
- 2002년에는 '인터랙티브 라이브 쇼 2000 현자의 프로펠러' 활동으로 디지털 콘텐츠 협회 주최 '디지털 콘텐츠 그랑프리'에서 최고상인 '경제 산업 대신상'과 '엔터테인먼트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곤 사토시의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천년여우의 사운드트랙을 담당. 곤 사토시 감독과는 이후에도 협업을 이어나가며 그의 음악적 페르소나로 자리잡게된다.
- 2003년에는 9번째 앨범 'BLUE LIMBO'를 발매했으며, 살육에의 항의 전달이라는 이름의 반전주의 메세지를 전달했다.
LIVE VISTORON DVD 다이제스트 |
자세한 내용은 P-MODEL 문서 참고하십시오.
- 2004년에는 곤 사토시의 TV 애니메이션 망상대리인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했다. 또한 P-MODEL의 핵으로서 P-MODLE을 새롭게 재구축하는 솔로 프로젝트 '핵(核)P-MODEL'을 개시하고 앨범 'VISTORON'을 발매. 이후 기존 솔로 활동과 핵P-MODEL을 병행하고 있다.
- 2005년에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타 앨범 'ICE-9'을 발매했으며, 팬클럽 'GREEN NURVE' 한정 이벤트 '반사의 모임은 얼음의 9'를 개최했다.
- 2007년에는 라이브 'PHONON 2550'을 개최했으며, 컴필레이션 앨범 '영상을 위한 음악~히라사와 스스무 사운드트랙의 세계'를 발매했다. 또한 파프리카의 주제가 '백호야의 처녀(白虎野の娘)'로 제79회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 부문에서 비영어권으로는 유일하게 노미네이트 후보로 오르기도 하였다.
- 2009년 2월, 11번째 앨범 '점호하는 혹성(点呼する惑星)'을 발매했다. 같은 해 4월에는 인터랙티브 라이브 'INTERACTIVE LIVE SHOW 2009 「점호하는 혹성」'을 개최.
환현주의 프로젝트 (2010) |
- 응집하는 과거환현주의 8760시간
2009년 9월, P-MODEL 데뷔 30주년/히라사와 스스무 솔로 데뷔 20주년을 맞아 프로젝트 '응집하는 과거환현주의 8760시간(凝集する過去 還弦主義8760時間)'을 개시했다.
8760시간, 즉 1년간 P-MODEL과 솔로 음악 중에서 앨범마다 1곡씩 선정하여 히라사와 스스무의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인 「전자음과 리얼한 현 섹션의 융합」을 극대화, 현악 풍으로 리메이크하여 히라사와의 음악 세계를 더 넓혀보는 프로젝트.
그동안 발매된 각 앨범에서 팬들의 투표를 통해 리메이크할 곡을 선정해,[8] 선정된 곡은 리메이크 작업을 하면서 샘플을 트위터를 통해 공개해 진행상황을 지켜볼 수 있게 하였다. 또한, 그동안 쌓인 P-MODEL 및 솔로 관련 자료들도 공개하는 등 다양한 기획이 진행되었다.
도쿄이차현공동 (東京異次弦空洞) DVD 다이제스트 |
그 결과 2010년, 환현주의 앨범 '돌현변이(突弦変異)'와 '변현자재(変弦自在)'가 발매되었고, 2011년에는 프로젝트를 위해 시작한 트위터의 팔로워 수가 3만 명을 돌파한 기념으로 라이브 '도쿄이차현공동(東京異次弦空洞)'을 개최. 3개월의 연장을 거쳐 프로젝트는 종료되었다. 트위터는 프로젝트가 끝나고 중단할 예정이었지만 계속하기로 결정. 팬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든 듯.
2.5. 현재 (2012~)
- 2012년 2월, 히라사와의 20세기 활동을 망라한 박스 세트 HALDYN DOME이 발매되었다. 같은해 6월에는 라이브 'PHONON 2555'를 개최했으며, 이어서 11월에는 12번째 앨범 '현상의 꽃의 비밀(現象の花の秘密)'을 발매.
노모노스와 이뮴(ノモノスとイミューム) DVD 다이제스트 |
HYBRID PHONON (2014) |
- 어느덧 나이는 60대를 넘기게 되었지만, 2014년 솔로+핵P-MODEL 합동 라이브 'HYBRID PHONON'를 통해 여전한 그의 음악적 재능을 과시하였다. 이 시기부터 머리카락도 하얀색으로 염색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WORLD CELL 2015 DVD 다이제스트 |
- 2015년, 13번째 앨범 '홀로그램을 오르는 남자(ホログラムを登る男)'를 발매. 이와 함께 1998년 'WORLD CELL'의 후속 인터랙티브 라이브 'WORLD CELL 2015'를 개최했다.
- 2016년 9월에는 히라사와 스스무 베르세르크 사운드트랙집 'Ash Crow'를 발매했으며, 10월~11월 팬클럽 'GREEN NURVE' 한정 이벤트 '경관하는 순환 카페'를 개최했다.
제9만다라(第9曼荼羅) DVD 다이제스트 |
- 2017년, 트위터 팔로우 수 9만 명 돌파 기념 라이브 '제9만다라(第9曼荼羅)'를 개최했다. 이 라이브에서 최근 히라사와의 공연에 빠지지 않는 듀오인 에진(会人)이 처음 등장했으며, 현재까지도 '히라사와 스스무+에진'의 유닛 형태로 활동 중이다. 같은 해 12월에는 다운로드 작품 '제6포르만트'를 발매.
에진(会人)과의 협연 (2020) |
- 2010년대 말, 70대를 바라보는 나이에 접어들며 팬들은 기량 저하나 은퇴를 걱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2019년과 2021년 2번의 후지 록 페스티벌 참가로 일본 내에서 다시금 주목받았고, 14번째 솔로 앨범 'BEACON'이 호평받으며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 2020년에는 히라사와 스스무+에진 단독 라이브 '회연TREK 2K20'을 개최했다.
'BEACON' MV | 'TIMELINE의 끝(TIMELINEの終わり)' MV |
- 2021년 4월에는 트위터 팔로우 수 24만 명 돌파 기념 라이브 '24만다라(24曼荼羅)'를 개최. 이어서 7월에는 상술한 14번째 앨범 'BEACON'을 발매했다.
- 2023년 9월에는 약 9년 만의 히라사와 스스무/핵P-MODEL 합동 라이브 'HYBRID PHONON 2566' 개최.
'기억초의 만상력 (記憶草の万象歴)' MV |
- 해를 넘겨 70세를 맞이한 2024년 4월 30일~5월 1일, 'HYBRID PHONON 2566'의 추가 공연 'HYBRID PHONON 2566+'를 개최했으며, 같은 해 9월 17일에는 19년 만의 두 번째 기타 앨범 '식물전자의 책'을 발매했다.
- 최근의 활동 추세를 요약하자면,
- 히라사와 스스무 솔로 명의의 앨범과 핵P-MODEL 명의의 앨범을 약 3년 간격으로 번갈아 발매 중.
- 전국적으로 라이브 투어를 해오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는 1년에 1~2번 라이브 이벤트를 개최하고 있다.
- 그 외에는 이따금씩 잡지사와 인터뷰하거나 라디오, 인터넷 방송 등에 출연하기도 한다.
3. 음악성
- 솔로 앨범 대부분이 각자의 스토리를 갖고 있는 콘셉트 앨범이다. 특히 1994년 인터랙티브 라이브를 시작한 이후 그 경향이 강해져 1998년 앨범 구제의 기법(救済の技法)은 인터랙티브 라이브 「WORLD CELL」의 스토리에 따라 앨범이 제작되었으며, 2009년 앨범 '점호하는 혹성(点呼する惑星)'에서는 처음부터 앨범 내에서 완성된 스토리를 바탕으로 재해석한 스토리로 인터랙티브 라이브를 진행하기도.
- 곡을 먼저 만들고 나서 작사한다는 과정을 고수하고 있다. 히라사와 스스무 본인의 용어로는 '전절후사(前節後詞)'라고. 가사에는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들과 80년대 히라사와가 정신적 불안을 겪던 시기 접한 융 심리학의 영향이 드러난다.
- P-MODEL과 차별화되는 사운드는 스트링스 섹션의 적극적인 도입과 어쿠스틱 기타의 사용. '초기 3부작'으로 묶이는 '시공의 물(時空の水)', '사이언스의 유령(サイエンスの幽霊)', 'Virtual Rabbit' 앨범에서 이러한 요소가 두드러진다.
- 5집 앨범인 Sim City는 당초 90년대 버전의 The Dark Side of the Moon을 목표로 한 컨셉 앨범으로 제작될 예정이었지만, 그 중간에 태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 작풍이 크게 변화했다. 이러한 동아시아적 색채를 보여주는 앨범 'Sim City', 'SIREN セイレーン', '구제의 기법'이 '방콕 녹음 3부작'으로 묶이며, 히라사와의 앨범 중에서도 가장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 2000년대 초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등 국제사회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을 즈음부터는 초기 P-MODEL 이후 거리를 두고 있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전면에 돌출되고 메시지성이 강한 음반이 연속해서 나온다. '디스토피아 3부작'으로 묶이는 'BLUE RIMBO', '백호야(白虎野)', '점호하는 혹성'의 세 앨범과 핵P-MODEL로서 발표한 'VISTORON'이 대표적.
- '응집하는 과거환현주의 8760시간'에서 기존 곡들을 Hollywood Strings을 이용해 현악풍으로 편곡했으며, 이후 새로운 솔로 앨범들에도 현악적 접근을 시도. '현상의 꽃의 비밀(現象の花の秘密)', '홀로그램을 오르는 남자(ホログラムを登る男)'에 이어 현재의 'BEACON'에 이른다.
4. 사용하는 장비
4.1. 일렉트릭 기타
'3분으로 알아보는 안티 등장하는 기타는 순서대로 'ICE-9', 'PHOTON', 'EVO'. |
2008년 인터뷰 (번역)[9][10]
그의 상징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기타는 토카이의 'TALBO'라는 모델[11]인데, 바디가 알루미늄으로 되어 있는 게 특징이다. 1983년 초기 금색 메이플&은회색 로즈우드 모델부터, 1994년 Fernandes에 주문제작한[12] 목제 바디 TALBO 카피 기타 'PHOTON(개조 전)(개조 후)', 주로 받침대에 고정해놓고 사용하는 크롬 도금 버전인 'ICE-9'[13] 등 여러 모델을 갖고 있다.
솔로 9집 앨범 '구제의 기법'에 수록된 곡 'TOWN-0 PHASE-5'의 기타 솔로는 Stratocaster로 녹음했다고 한다. [14] 최근에도 TALBO 특유의 얇은 소리를 대체하기 위해 음원 녹음용으로 레스폴을 종종 쓴다.
2012년경, PHONON 2555 라이브 이후부터는 이케베 악기에서 제작한 알루미늄 기타인 'EVO'라는 기타를 TALBO와 함께 쓰고 있다. 한편 일전에 쓰던 1세대 TALBO는 수리를 받아 TALBO-ASTRO로 다시 태어나기도.
2024년 라이브 'HYBRID PHONON 2566+'에서는 새로운 기타 'PLANT-EVO'를 사용했다. #
이렇게 오랫동안, 그리고 많은 기타를 써왔건만 정작 본인은 계속 기타를 싫어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유를 물어보면 그냥 손이 아파서 싫다는 이유부터 기타는 자신이 처음 일렉기타를 배웠던 시절과 달리 너무 흔해지고 막 쓰여서 진부하고 싫증난다는 이유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라이브 때마다 기타를 빼먹지 않고 기타로 현란한 연주와 묘기를 보여주고 개조까지 하는 걸 보면 진짜 싫어하는 건지는 의문.
4.2. 신디사이저
신디사이저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일본에서 신디사이저가 발전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던 70년대에 신디사이저 강사까지 했던 사람이 이 사람이다. 비록 P-MODEL 시기에는 키보디스트 멤버들에게 신디사이저를 양보하긴 했지만, 곡 작업을 할 때에는 직접 신디사이저로 작업했던 듯 하다.ONE PATTERN 앨범 시기의 작업실. 히라사와의 앞에 있는 신디사이저는 KORG Polysix.[15] 이 Polysix는 1981년 출시되었을 때 '일본산 프로펫'이라는 평을 들으며 세계적으로 대 히트를 쳤던 모델이다.(2년 뒤 야마하에서 DX7을 출시해서 좀 빛이 바랬지만) 그리고 히라사와의 오른쪽(사진에선 왼쪽)의 아이보리색(원래는 검은색) 컴퓨터는 야마하 CX5라는 MSX 플랫폼의 뮤직 컴퓨터로, 아미가 이전에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라이브에서는 하드웨어 신디사이저보다는 노트북에 소프트웨어 신디사이저를 설치하고 마스터 키보드를 연결하여 사용하는 듯 하다.
4.3. 그 외 악기
테슬라 코일[16] | 레이저 하프[17] |
독특하게도 공연에서 '테슬라 코일'과 '레이저 하프'를 연주하는데, 200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라이브에 활용하며 현재의 히라사와를 대표하는 악기가 되었다.
레이저 하프는 2012년, 2021년, 2023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업그레이드해오고 있다.
튜뷸러 헤르츠[18] | Miburi[19] |
사실 테슬라 코일과 레이저 하프 외에도 히라사와는 이전부터 독특한 악기들을 라이브에 활용해온 바 있는데, 초기 P-MODEL 시절 자체개발한 악기 '헤브나이저 (ヘヴナイザー)'나, 역시 90년대 자체개발한 '튜뷸러 헤르츠 (チューブラヘルツ)', 상술한 그래비톤과 Miburi 등 많은 악기들을 실험적으로 도입했다.
다만 2010년대 말부터는 테슬라 코일과 레이저 하프 외의 독특한 악기들을 활용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어졌다. 현재는 에진과 함께 무대에 오르며 Novation사의 Launchpad 등을 사용 중.
4.4. 컴퓨터
코모도어 사의 컴퓨터 아미가의 팬보이로, 세계적으로 사용자가 거의 없다시피했던 2000년대 초반까지도 사용했다. 처음엔 CG가 그냥 컴퓨터 한대 있으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아키하바라 전자상가를 돌아다녔으나 CG 환경을 갖추는 데에 돈이 엄청 깨진다는 걸 깨닫고 단념한 상태였으나 컴퓨터 관련 일을 하는 친구에게 아미가를 소개받고 지름신이 강림해 친구에게 소개받은 수상한 아파트에 있는 가게에 쌓여있는 걸 값싸게 구해왔다고 한다.[20] 1989년 CG연하장이후 독학으로 이것저것 만져보거나 아미가 유저들을 만나면서 음악 제작과 공연 퍼포먼스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인터랙티브 라이브에서 공연 기기의 문제로 라이브 진행이 정지되었을 때에도 "이번 사고는 절대 아미가가 원인이 아닐 것"이라고 장담하여 팬심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소프트웨어 부재, 기기 노후화 등의 문제로 2006년 백호야 때를 마지막으로 아미가 사용을 중단한 상태.
2019년 기준으로 맥북을 사용하는 중이다. 소프트웨어의 한계로 macOS에서 거의 모든 작업을 한다고 한다. 단, 라이브 때에는 윈도우 10이 탑재된 랩탑을 들고 나온다.
5. 디스코그래피
5.1. 솔로
5.2. P-MODEL
5.3. 핵(核)P-MODEL
5.4. 旬
자세한 내용은 旬(음악 그룹) 문서 참고하십시오.6. 주요 참여 작품
6.1. 극장 애니메이션
<rowcolor=#fff> 년도 | 제목 | 비고 |
2001 | 천년여우 千年女優 | [A] |
2006 | 파프리카 パプリカ | [A] |
2012 | 베르세르크: 황금시대 편 ベルセルク 黄金時代篇 | [24] |
6.2. OVA / TVA
<rowcolor=#fff> 년도 | 제목 | 비고 |
1991 | 데토네이터 오건 デトネイター・オーガン | [A] |
1997 | 검풍전기 베르세르크 剣風伝奇ベルセルク | [26] |
2004 | 망상대리인 妄想代理人 | [A] |
2016 | 베르세르크(2016) ベルセルク | [28] |
2022 | 베르세르크: 황금시대 편 Memorial Edition ベルセルク 黄金時代篇 Memorial Edition | [29] |
6.3. 비디오 게임
<rowcolor=#fff> 년도 | 제목 | 비고 |
1999 | 베르세르크 천년제국의 매 편 상실화의 장 ベルセルク [ruby(千年帝国の鷹, ruby=ミレニアム・ファルコン)]篇 [ruby(喪失花, ruby=わすればな)]の章 | [A] |
2000 | 라그나큘 레전드 ラグナキュールレジェンド | [31] |
2004 | 베르세르크 천년제국의 매 편 성마전기의 장 ベルセルク [ruby(千年帝国の鷹, ruby=ミレニアム・ファルコン)]篇 聖魔戦記の章 | [A] |
7. 미디어 활동
7.1. 진행 중
平沢進のBack Space Pass 히라사와 스스무의 Back Space Pass | ||||
회차 | 방송 일자 | 제목 | 링크 | 비고 |
01 | 2014. 05. 31 | 平沢進のBack Space Pass | ||
02 | 2016. 02. 12 | 平沢進のBack Space Pass 2016 | ||
03 | 2017. 05. 07 | 平沢進のBack Space Pass 2017景観する循環カフェ編 | [33] | |
04 | 2017. 11. 05 | 平沢進のBack Space Pass 第9曼荼羅編 | ||
05 | 2018. 12. 22 | BSPKai=Kai | | | |
06 | 2019. 04. 27 | BSP回=回追加公演編 | ||
07 | 2019. 11. 23 | BSP FUJI ROCK '19 + 戦法STS 編 | ||
08 | 2020. 07. 04 | 平沢進のBack Space Pass「 会然TREK 2K20編」 | ||
09 | 2021. 06. 20 | 平沢進のBack Space Pass「24曼荼羅編」 | ||
10 | 2021. 09. 26 | 平沢進のBack Space Pass 「脱出系亞種音編」 | ||
11 | 2022. 05. 29 | 平沢進のBack Space Pass 「ZCON編」 | ||
12 | 2024. 01. 13 | 平沢進のBack Space Pass 「HYBRID PHONON 2566編」 |
- 히라사와 스스무의 Back Space Pass |
라이브 공연의 후일담 등을 구 유스트림, 현 유튜브 방송을 통해 전달하는 이벤트. 1회는 라이브의 방법 2의 해설이 주제였으며 남은 시간엔 트위터 댓글을 통해 질문을 받는 이벤트도 있었다. 2회에서는 인터랙티브 라이브 쇼 WORLD CELL 2015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풀어냄과 함께 또다시 남은 시간엔 트위터를 통해 질문을 받았다. 라이브에서 사용한 PC가 뭐냐는 질문에 자리에 일어나 노트북을 가져오는 친절을 보여줬다. 또 방송 당시 중2병스런 무늬의 옷이 주목을 받았는데 히라사와 본인도 인터넷에서 봤을 땐 이렇게 튀는 옷인지 몰랐다고 한다. 마이클 잭슨 같아 부끄럽다고(…). 이후에도 라이브 공연이 있을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BSP 또한 방송해오고 있다.
- 아종음 TV | #
테슬라카이트 온라인 숍에서 판매 중인 영상 프로그램. 현재 3기 다이제스트를 무료 샘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조잡한 영상효과와 히라사와 특유의 정신나간 센스가 묘미. 1기에 5편 씩으로 나뉘며, 2016년 6월에 올라온 4기 4번째 작품까지 총 19편이 제작된 상태이다. 현재 후속 에피소드가 올라오지 않고 있는데, 2023년 5월 히라사와 스스무가 직접 트위터 Q&A를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가까운 장래 최종회 총집편을 낼 예정이니 기다려달라는 듯.
7.2. 종료
- 히라사와 스스무의 테크노 실험공방 | [34]
- HIRASAWA 감시 50000초 |
- HIRASAWA 추적 70000보 |
- 햐쿠타라즈 님이 행차하신다 |
1994년 FM군마에서 진행된 라디오 방송. 히라사와 스스무와 조수 우에다 요코가 일렉트로닉 음악 장비를 사용해보거나 근미래의 사용법을 연구하고 작곡에 대한 이야기 등이 진행된다. 개정 P-MODEL 멤버인 후쿠마 하지메, 코니시 켄지를 초빙하기도. 니코니코동화에 이 방송들이 남아있다.
트위터 팔로워 수 5만 명 돌파 기념 이벤트. 히라사와 스스무의 사생활을 통합 50000초 촬영해 송출하는 이벤트. 생방송이 아닌 녹화방송 형태로 유스트림에서 부정규 방송되었다.
트위터 팔로워 수 7만 명 돌파 기념 이벤트. 걸음수 70000보를 목표로 하는 히라사와 스스무의 외출을 유스트림을 통해 부정기 녹화방송한다. 태국여행, 타 뮤지션의 레코딩 참가, 산책 등 히라사와의 일상생활을 알 수 있다. 이 이벤트는 2013년 8월에서 시작해 2015년 1월, 1년 간의 공백기를 포함해 약 3년 만에 종료되었다.
트위터 팔로우 수 8만 명 돌파 기념 이벤트. 타라즈 강사 히라사와 스스무가 햐쿠타라즈 님의 흔적을 일반인도 알 수 있도록 해설하는 '타라즈 강석'이 이뤄졌다.
8. 여담
- 팬들이 부르는 애칭은 '스승 (師匠)'.
- 팬 클럽이 있다. 클럽명은 'GREEN NERVE'. 테슬라카이트 온라인 숍에서 입회 신청을 할 수 있으며, 회원은 GREEN NERVE 팬클럽 회보, 특전 음원 등을 제공받을 수 있다.
- 이바라키현 츠쿠바시에 거주중. 자세한 주소는 공개하지 않고 츠쿠바산 정상(つくば山頂)이라고만 한다. 물론 실제로 믿으면 곤란하다.
- 어렸을 적엔 기계를 좋아했고 파일럿을 꿈꿨다고 한다. 하지만 선생님에게 "파일럿은 수학을 잘 해야 해"라는 말을 듣고 한번에 포기했다고. "학교는 나에게 여러가지를 싫어하게 한 곳"이란 말로 보아 학교에 좋은 추억은 별로 없는 듯. 후술할 우에사카 스미레의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을 때 밝히길 학창시절엔 머리를 기르거나 자전거를 이상하게 타는 등 날라리 코스프레를 했었지만 그렇다고 사고를 치는 것도 아니어서 선생님들이 다루기 어려워하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공업 고등학교 전자과를 졸업하였으며 졸업전시회에 남들보다 빨리 켜지는 TV를 출품했다고 한다. #
- 팬들에게 엄청 쌀쌀맞다. 팬들을 말뼈다귀(馬の骨)[35]라고 칭하거나 팬들이 소리치면 시끄럽다고 호통을 친다거나 등등.
츤데레이젠 이런 발언들이 없으면 관객들이 오히려 섭섭해할 지경.
- 트위터 팔로워 수도 본인은 탐탁지 않은 모양이지만 하루하루 꾸준히 증가해 2024년 9월 기준으로 32만 명을 돌파하였다. 현재는 거의 매일 오후 9시부터 10시까지 5분 간격으로 트윗이 올라오고 있으며. 대부분 그의 생각이나 하루 일과 정리, 팬들과의 소통이 주를 이룬다. 다만 스승의 생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알고보면 간단한 사실을 기술했음에도 내용이 어렵다.[36] 덕분에 일본어가 자신 있는 사람들도 그의 트위터를 보고 절망하곤 하는데, 일본인들도 이해 못하는 건 마찬가지니 그리 신경쓰진 말자.
답글도 이해한 척만 하는 컨셉 천지.
44,751명이나 팔로워가 있어 「마이너」표명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나는 「스텔스 메이저」를 표방한다.
2011.02.26 @hirasawa
2011.02.26 @hirasawa
(전략)
스텔스만을 초심자 프렌들리하게 설명하면 이렇게 된다.
자신을 마이너라고 해도 그 동원력이나 팔로우 수에 있어서 메이저라고 하는 여론에 대항하여,
백 보 양보해 「스텔스 메이저」로 정의해, 반(反) 메이저, 반(反) 업계라고 하는 자세를 그 호칭에 맡기고 있다.
2024.02.16 @hirasawa
스텔스만을 초심자 프렌들리하게 설명하면 이렇게 된다.
자신을 마이너라고 해도 그 동원력이나 팔로우 수에 있어서 메이저라고 하는 여론에 대항하여,
백 보 양보해 「스텔스 메이저」로 정의해, 반(反) 메이저, 반(反) 업계라고 하는 자세를 그 호칭에 맡기고 있다.
2024.02.16 @hirasawa
- 독특하게도 트위터에서 본인을 '스텔스 (ステルス)'라고 칭하곤 하는데, 본인은 마이너를 지향하나 막상 팬덤의 규모는 그러하지 못한 상황을
백 보씩이나 양보해표현하는 호칭이라는 듯. 2011년에는 이러한 호칭이 이용된 사건(?)이 벌어진 적이 있는데, 그에 대해선 히라사와 스스무/음반 목록 문서 '原子力' 문단 참고.
- 2014년 Back Space Pass에서 발언한 것에 의하면 과거부터 관객 엿먹이는 게 삶의 낙이었던 듯하다. 테크노가 뭔지 보여주겠다고 관객석에 새 모이를 뿌렸던 일화가 대표적으로 공연하기 싫었을 때 노래만 틀어놓고 무대에 안 나온 적도 있다고. P-MODEL에서 개발한 음성기기인 헤브나이저[37]를 이용해 관객 함성 중에서 유독 기묘한 관객의 소리를 찾아내 반복재생하며 놀려먹은 적까지 있었다.[38]
- 1995년에 처음으로 인터넷 웹사이트를 개설했고 당시 주소는 'hirasawa.be'였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도메인이 다름아닌 벨기에 도메인이였는데, 당시 벨기에에서 무료로 인터넷 호스팅을 서비스해주는 업체를 발견해 바로 덥썩 물었다고 한다. 때문에 도메인이 be로 끝났던 것. 하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호스팅 업체가 문을 닫자 일본 내 호스팅 업체 c2i를 통해 사이트를 다시 개설했으며 현재는 JPRS로 이전했다.
- 데뷔 이후 활동 기간 내내 JASRAC과 대형 레이블하고 큰 마찰을 일으켜왔다. 1999년에 이르러선 결국 둘 다 탈퇴. 본인이 이에 대해 인터뷰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저작권으로 통수맞은 적도 있고 20년을 활동하면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지만 원하는 음악을 하지 못하고 결국 음반사의 뜻에 따를수 밖에 없었다며 불평했다.원문
- 2000년대에 들어서며 독립 레이블로 활동중. 이 때문에 배급이 협소해져 일본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앨범 입수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본인의 사이트에서 통판도 하고 있으며, 앨범을 직접 살 수 있다. 해외배송도 가능한데, 가격에 일본소비세가 붙지 않기 때문에 배송비를 더해도 일본에서 사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최근엔 후지 록 참가 등으로 인지도가 반등하면서 일본 내 대형 음반 매장 곳곳에 앨범이 진열되는 추세.
- 음원 스트리밍의 경우엔 권리가 본인에게 없는 곡을 제외하면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에 배급하고 있지 않다.[39] 그 때문인지 멜론을 비롯한 국내 스트리밍 서비스에선 히라사와를 검색하면 이 사람은 안 뜨고 히라사와 유이와 히라사와 우이만 뜬다… YouTube Music, Spotify 등 해외 스트리밍 서비스에선 일부 앨범이 스트리밍되고 있지만, 이마저도 서비스 중지되거나 국가 제한이 걸려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 니코니코 동화나 유튜브 등지에 떠도는 음원이나 라이브 영상들에 매우 관대하다.[40] 본인이 직접 "자본주의와 상반되는 재밌는 현상"이라 발언하였고, 니코니코 생방송에 게스트로 나와 본인의 음악을 소재로 한 MAD를 감상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엄연한 저작권 침해이니 테슬라카이트 온라인 숍이나 밴드캠프에서 판매하는 디지털 음원이라도 구매해 정식으로 듣도록 하자.
- 애연가로, 밴드를 했을 적부터 담배를 피워온 듯 하며 담배를 집어드는 사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2000년대 이후엔 흡연을 하는 모습을 찾기 힘들어졌으나 트위터에 전자담배를 몇 번 인증하였다.
- 육식 성분 자체를 먹지 않는 비건이다. 트위터에서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어렸을 때부터 영양적인 이유로 채식을 했다고 하며, 사상에 의해 채식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건의 사상에는 동조한다고 덧붙였다.#
- 고양이를 키워왔으며 옛날엔 대형견도 키웠었다. 대문에 작은 애완동물용 문을 달아 키우고 있는 고양이들이 집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해놨다고 한다. 가끔씩 트위터에 고양이들의 일상을 올리기도 하였다.
주인 닮아 눈빛이 날카롭다.안타깝게도 최근 한 마리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마지막으로 남은 고양이 테빈도 18년 1월 세상을 떠났다. 여전히 고양이를 좋아하는지, 최근에는 길고양이들을 챙겨주며 이름을 지어주곤 하는 듯. 2020년을 기준으로 '니시노메'라는 이름을 붙여 준 은회색 길고양이를 종종 만나 인사하는 사진을 트위터에 업로드했다.
- P-MODEL 데뷔 이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절엔 먹을 수 있는 풀을 소개하는 책을 사 야산에서 나물을 뜯어먹을 정도로 가난했다고 하나 현재는 모던한 인테리어의 집에 개인 녹음실을 만들어놓고 잘 지내고 있는 듯하다.
- 리볼텍화되었으면 하는 캐릭터 설문 조사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 미우라 켄타로, 곤 사토시, 아쿠타미 게게 등 유명 작가와 감독이 히라사와 스스무의 팬인 것으로 유명하다. 히라사와 스스무가 베르세르크, 곤 사토시 감독 작품의 OST를 담당한 것은 그러한 인연의 결과.
- 성우 우에사카 스미레 또한 히라사와 스스무의 팬인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우에사카 스미레가 진행하던 라디오의 1주년 기념으로 게스트 출연 요청을 받자 정말로 덜컥 출연해버린 적이 있다. #1 #2
- JR 동일본과의 협업으로 단편 PV를 만든 적도 있다. 미래적인 영상미가 돋보인다.
8.1. 한국 관련
히라사와 스스무의 일본 내 팬 중에는 의외로 극우 성향을 가진 사람이 꽤 되는 데다, 히라사와는 음악을 담당했을 뿐인 파프리카의 원작자 츠츠이 야스타카가 위안부 망언을[42]했다는 이유로 혐한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그러나 히라사와는 이전부터 작품 활동과 트위터를 통해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왔다.2015년 5월 15일에는 어떻게 안 것인지 한국의 스승의 날에 대해 트윗하기도 했다. #
세계 터빈 (世界タービン) | 현자의 프로펠러 (賢者のプロペラ) 번역 |
한국에 영향받은 듯한 모습도 보이는데, '세계 터빈'은 곡 내내 인상적으로 외치는 "명금일하 대취타!"가 돋보이며, '현자의 프로펠러'에서는 첫 소절에 '꽃이 불처럼 피어나는 나라'로 한국을 묘사하기도 했다.
2024년 7월, 개인 X에서 Q&A를 통해 해외 투어 가능성을 시사했고, 다음 날 X (번역)에서는 갈 수 있는 나라로 한국을 함께 언급했다. 어쩌면 머지않아 내한 공연 소식이 들려올지도 모를 일.
8.2. 태국 관련
히라사와 스스무와 태국인 친구들[43] |
히라사와 스스무의 세계관과 태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처음에는 1994년에 개인 사정으로 잠깐 방문하는 정도였지만 점차 태국의 문화와 역사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 어려운 태국어를 구사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태국어 이름(วิวัฒน์ ธารา สงบ)도 만들고 사인도 태국어로 썼을 정도였다.
이는 자연히 작품 활동에도 영향을 주어 '방콕 녹음 3부작'으로 묶이는 세 앨범 'Sim City', 'SIREN セイレーン', '구제의 기법 (救済の技法)'의 수록곡 일부는 태국에서 녹음되기도 했다.
또한 태국의 쉬메일, 히라사와 스스무 본인은 'SP-2'[44]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함께 여행이나 봉사활동을 하는 등 교류하면서 공연에 게스트로 출연시키곤 한다. 2008년엔 그들에 대해 다룬 서적 'SP-2'를 발매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진행해오고 있는 라이브 'PHONON'에 2550, 2555, 2566 등의 숫자가 붙는데 이는 태국에서 사용하는 불멸기원이다.[45] 예를 들어 'PHONON 2550'은 라이브가 개최된 해 2007년의 태국불기인 2550년을 붙여 사용한 것.
8.3. 서브컬쳐 관련
8.3.1. 히라사와 유이
분명, 팔로워가 2,000명일 때에 말했던 것 같은데, 너희들, 팔로워할 사람 착각한 거 아니야?
2017.01.09 @hirasawa
2017.01.09 @hirasawa
케이온!의 원작자인 카키후라이의 공식 입장은 없지만 히라사와 유이와 방과 후 티타임의 모티브가 히라사와 스스무와 P-MODEL이라는 설이 팬덤에서는 유력하다. 스스무(進)에서 책받침(辶)을 입 구(口)변으로 바꾸면 유이(唯)가 된다.
이러한 연관성 덕에 얻은 인지도 때문인지 히라사와 스스무가 트위터 계정을 등록할 때 닉네임을 그냥 'hirasawa'로 등록했다가 이를 히라사와 유이로 착각한(?) 많은 덕후에 의해 팔로워 수가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급히 'Hirasawa Susumu'로 정정했지만 팔로우가 멈추긴 커녕 계속 늘어났다. 이후로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계속 늘어나는 제군"과 같이 서두를 떼며 자학 개그를 하기도. 본인은 이런 사태의 원인이 된 히라사와 유이를 지긋지긋한 뮤턴트(忌々しいミュータント)라고 부르는 듯하다. 이 때 나는 히라사와 스스무라고. 히라사와 유이가 아니야.(私は平沢進だぞ。平沢唯じゃない。)라는 유명한 말도 남겼다(…). #
이후에도 니코니코 동화에선 히라사와 부녀 네타나 히라사와 스스무의 곡을 방과 후 티타임이 연주하는 MAD가 다량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심지어 2012년 니코니코 생방송에 나와서 본인이 직접 이런 MAD영상들을 감상하는 등, 케이온과 엮이고 있는 중. 트위터에서도 "케이온에 나오는 애들 중에서 누가 가장 좋으냐"는 등의 질문도 종종 받는다. 이런 질문엔 "케이온은 본 적 없습니다."등의 대답으로 일축.
아이러니하게도 이 경로로 히라사와와 P-MODEL를 알게 되고, 또 팬이 된 사람이 꽤 많다. 2011년 라이브 MC 도중 "생각치 못한 반응이 많았던 트위터 때문에 자신을 처음 본 사람들도 꽤 있을 것 같다"고 발언하기도 했고.
8.3.2. 기타 서브컬쳐 패러디
니코니코동화에서는 장르 불문하고 많은 패러디가 일어나는 추세인데, 케이온! 다음으로 가장 많이 엮이는 쪽은 바로 아이돌 마스터. SUSUMU HIRAS@WA라고 불리는 듯. 그 외에도 히라사와 스스무가 음악을 담당한 베르세르크의 작가 미우라 켄타로가 아이돌 마스터를 좋아하다보니 미우라 선생님 호이호이, 휴재의 기법[46] 등으로도 불리고 있다.이 외에도 '히라사와 유토'라는 조연 패러디 캐릭터가 등장하는 우타프리, 앙상블 스타즈!, 논리해군, 마골난무(馬骨乱舞), 주문은 버츄얼 래빗입니까? 등 별의별것과 다 엮인다.
2020년 이후로는 주술회전의 료멘스쿠나와 이타도리 유지와도 엮이는데 다름아닌 주술회전의 작가인 아쿠타미 게게 작가가 료멘스쿠나의 이미지 송으로 히라사와 스스무의 곡인 'Day Scanner'를 언급하였기 때문. 이후 팬들에 의해 고전 주술사 차림을 하고 있는 히라사와의 팬아트도 속속 등장하는 추세이며 팬들에 의하면 스승은 특급 주술사로 분류되는 모양이다(...). 나중에 아쿠타미 작가가 자신의 최애곡이 '세계 터빈(世界タービン)'임을 밝히자 히라사와가 영역을 전개하면 세계 터빈 PV의 정신나간 세계관이 열리는 것이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도는 중.
2010년대에는 케이온!으로 유명해졌다가 후반으로 갈 수록 점차 다시 인기가 식어가는 와중에 2020년대부터 주술회전을 통해 다시 인기를 되찾은 케이스이다. 케이온!과 달리 주술회전 작품 자체로는 히라사와와 작접적으로 관련되진 않았지만, 작품이 워낙 유명하고 아쿠타미 게게 작가가 작품 내에 히라사와의 곡을 인용하고 팬이라고 밝힌 순간부터 팬들이 호기심으로 히라사와의 곡을 찾아 듣고 거기서 입덕하게 된 케이스가 상당이 많아진 것. 과거 케이온 때와는 달리 이번 케이스는 여성 팬들의 입문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
개인의 취미 기호로 아니메와 합치는 것 좀 그만둬라.
나의 공적 이미지에 흠집이 난다.
나를 퍼트리려고 하는 것은 알지만, 이제 됐어. 부적절한 이미지가 부착된 채 퍼져봐야 의미 없다. 팬의 질이 떨어질 뿐이다.
2021.09.23 @hirasawa
나의 공적 이미지에 흠집이 난다.
나를 퍼트리려고 하는 것은 알지만, 이제 됐어. 부적절한 이미지가 부착된 채 퍼져봐야 의미 없다. 팬의 질이 떨어질 뿐이다.
2021.09.23 @hirasawa
그러던 와중 2021년 9월 23일. 위와 같은 트윗을 올리며 일련의 애니메이션과의 합성물 제작에 대한 불쾌감을 표현했다. 합성물을 제작하던 음MAD 제작자, 한여름 밤의 음몽 및 쿠키☆ 팬덤, 우마무스메 팬덤 등에서는 각자 조심하자는 이야기를 내면서도 각종 패러디와 MAD에 관용적이던 스스무가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태도가 변하게 되었는지 추측하고 있다. [48] 이는 한국에도 전해지면서 드럭스토어에서도 관련 게시물을 전부 내렸다.[49] 2022년 후반 이후부터는 히라사와 본인이 직접 클레임을 걸어 영상을 내리고 있는지 '주식회사 케이오스 유니온으로부터의 저작권 침해' 신고로 영상이 내려갔다는 사례가 속출 중이다.[50]
팬아트는 현재까지도 pixiv에서 활발하게 올라오는 중. 70대에 접어든 나이임에도 모에화를 당하고 있다. 초기 P-MODEL 시기의 모습은 알록달록하게 그려지고 최근의 모습으로 올 수록 어두운 톤으로 그려지는 편.
8.4. 주변 인물
- 히라사와 유이치 (平沢裕一)
그래픽 디자이너 및 P-MODEL의 서포터이자 히라사와 스스무의 친형. 맨드레이크 시절부터 스스무의 음악활동을 지원해온 존재이다.[51] IN A MODEL ROOM에 본인 작사의 곡들도 수록되어 있으며, '후루헥헥헥', '旬Ⅳ VISION' 등 P-MODEL의 PV[52] 및 'ANOTHER GAME'과 'KARKADOR'의 앨범 커버의 제작을 맡은 것 또한 히라사와 유이치. P-MODEL 동결 이후로 공개적인 행보는 없었으나 츠쿠바에 Gazio라는 카페를 개업, P-MODEL의 미공개 영상을 상영하거나 히라사와 스스무가 사용하던 장비를 전시해두었다. 현재는 운영하지 않으며 대신 같은 이름으로 인디 아티스트를 위한 스튜디오를 운영중이다. 스스무가 트위터에 남의 형(人の兄)이라는 단어를 남기면 100% 유이치를 뜻한다.
- 아키모토 키츠네 (秋元きつね) (1968.09.12~2014.10.20)
본명은 아키모토 카즈히데(秋元一秀). 히라사와의 CG제자.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까지 히라사와에게 아미가 컴퓨터를 배우면서 라이브나 작품 활동에 참가해왔으며 이후엔 각종 방송이나 어린이 프로그램 CG를 제작하는 프로 CG 아티스트로 성장. 세가레 이지리라는 게임의 제작자로 이름이 알려졌다. 14년 10월 당뇨병으로 사망.
- 토가와 준 (戸川純)
자세한 내력은 토가와 준 문서 참고. 히라사와가 솔로 활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서로의 음반 작업에 참여하기 시작하여 히라사와의 경우 기타 세션을, 토가와 쪽에선 코러스나 보컬을 담당하며 교류해왔다. 이 역할은 각 라이브에서도 이어졌으며 둘이 함께 출연한 방송자료도 쉽게 찾을 수 있다.
- PEVO
P-MODEL과 DEVO를 섞은 컨셉 밴드. 90년대에 P-MODEL 카피 연주 대회에서 우승해 아예 히라사와 프로듀스로 앨범까지 발매해 현재까지도 활동 중.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PEVO성에서 온 외계인들이라는 설정을 기반으로 독특한 세계관을 구성중이며, 이러한 설정에 히라사와가 직접 끼기도 한다. 이들의 레코딩에 히라사와 헝제가 참여하고 라이브에는 히라사와 스스무가 게스트로 나오고 있다. 역으로 PHONON 2555부터 계속 히라사와 솔로 라이브에 PEVO의 리더 PEVO 1호가 서포터로 협연하거나 히라사와 음악세계관과 PEVO의 세계관이 섞이는 등 현재로써는 가장 왕성한 교류를 하고 있는 중.
- 오와쿠 마사루 (大和久マサル)
CG 아티스트. TOWN-0 PHASE-5 이후로 히라사와 뮤직비디오나 인터랙티브 라이브 CG를 제작하고 있다. 3년에 한번씩 인터랙티브 라이브 CG를 만들면서 히라사와를 기반으로 한 여러 주옥같은 캐릭터들도 만들어왔다. 그가 가장 맘에 들어하는 캐릭터는 Σ-12라는 이족보행장치를 단 로봇이라고 한다.
- 요시카와 요이치로 (吉川洋一郎)
토가와 준과 같은 YAPOOS의 맴버로 종종 P-MODEL의 앨범과[53] 음악에 동참하기도 하였으며, 그 반대로 히라사와와 P-MODEL이 그의 곡에 참여한적도 있다. 국내에는 다큐멘터리 '지구대기행'의 음악 담당자로도 유명하다.
- 에진 (会人, EJIN)
2017년 라이브 '제9만다라 (第9曼荼羅)' 때부터 히라사와와 함께 협연해오고 있는 정체불명(?)의 듀오. 각각의 이름은 '쇼 (SSHO)'와 '타즈 (TAZZ)'.
9. 외부 링크
[1] 호적 상의 생일. 본인이 직접 트위터를 통해 실제 생일은 하루 전인 4월 1일이라고 밝혔다.[2] 히라사와 스스무 본인이 대표 이사로 있다.[개인] [공식] [5] 그렇게 외주로 만든 곡 중에 하나가 프로레슬러 쵸슈 리키의 등장곡 Power Hall이다. 어떤 의미로는 히라사와 스스무의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이기도 하나 이 시기 히라사와는 아직 계약관계를 잘 모르는 초짜 시절이었던지라 곡을 넘기면서 판권도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넘겨버리는 바람에 히라사와는 로열티나 판매수익 등을 전혀 받지 못한다고. 또다른 레슬러 슈퍼 스트롱 머신의 등장곡 Hurricane's Bam 또한 히라사와가 작곡했으며, 이쪽은 히라사와가 제대로 판권을 챙겼다고 한다.[6] 사람의 신체에 장착해 착용자의 동작에 따라 신디사이저 또는 MIDI가 연주되는 방식의 악기. 참고로 미부리는 일본어로 '몸짓'을 뜻한다. 낮은 인지도와 연주 방식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이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프로 뮤지션은 극소수.[7] 현재 사이트 운영은 중지된 상태이다.[8] 그러나 최종 결정권이 히라사와 스스무에게 있어서 투표로 선정되지 않은 곡이 리메이크되거나, 또는 그 앨범 자체가 취소되는 경우도 있었다.[9] 그가 기타를 처음 잡았던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인터뷰 당시인 2008년까지 그의 손을 거친 기타들에 대해서 이야기한 인터뷰.[10] 사실 저 인터뷰에는 누락된 기타가 있다. 3페이지 2번째 사진의 '랜덤스타'와 병행하며 사용했었던 검은색 Fender Mustang. 이 영상에서 그가 들고 있는 검은색 기타가 바로 머스탱이다. 그럼 아즈사가 아니라 유이가 머스탱 써야했던 거 아냐?[11] TALBO를 사용하는 유명 뮤지션은 히라사와 스스무와 GLAY의 HISASHI 정도이다.[12] 이 때 당시는 TALBO를 제작했던 토카이 악기 회사가 파산하고 사라진 뒤였기 때문이다. 히라사와 스스무가 TALBO에 대해 '미래적이라 대중화되기 힘들 것'이라 예상했다고 하는데, 그 예상이 딱 들어맞은 것. 1990년대 후반에 와서야 토카이 악기가 부활하여 지금까지 TALBO 신모델을 생산하고 있다.[13] 이름의 유래는 아이스 나인. 2020년 12월 이케베 악기에서 예약 한정 판매하기도 했다.[14] 기타 부분은 태국의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는데 스탭들 모두 히라사와가 들고 온 기타보다 스튜디오에 있는 스트라토캐스터의 사운드가 더 낫다고 밀어붙여서 어쩔 수 없이 사용했다.[15] 1981년 출시되었다. P-MODEL 스테이지에서는 키보디스트였던 타나카 야스미, 미우라 슌이치, 타카하시 요시카즈가 연주했었다.[16] FUJI ROCK FESTIVAL‘21에서의 '꿈꾸는 기계' 공연 영상.[17] 2010년 라이브 PHONON 2553에서의 'RIDE THE BLUE RIMBO' 공연 영상.[18] 1996년 라이브 '가상의 소프라노 INTERACTIVE LIVE SHOW SIREN'에서의 'Lotus' 공연 영상.[19] 2000년 라이브 '현자의 프로펠러 Version1.4'에서의 '니그레도 (흑화)' 공연 영상.[20] 그 제품들은 코모도어 재팬이 사업철수를 하면서 창고에 썩힐뻔한 제품들로 재고가 유출되어 아키하바라 등지에서 거래되었다고 한다.[21] 이 연하장을 받은 업계 관계자가 이걸 일반에 판매하고 차기작도 만들자는 연락을 했다고 한다.[A] 전편 음악 담당.[A] [24] OP 'Aria' 담당.[A] [26] 사운드트랙 담당.[A] [28] 극중 삽입곡 '재여(灰よ)', 'Ash Crow' 담당.[29] 극중 삽입곡 '원정(遠征)' 담당.[A] [31] OP '별을 아는 자(星を知る者)' 담당. OP 영상[A] [33] 당초 예정은 4월 23일이었으나, 히라사와 스스무가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4월 30일로 연기, 4월 30일에는 음성 트러블로 인해 방송이 중단되어 5월 7일로 재차 연기되었다.[34] 니코동 계정을 필요로 한다.[35] 일본에서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관용구. 참고로 히라사와는 1954년생 말띠다.자학드립?[36] 대강 이런 식이다. "한계 돌파 생강이 11월까지 출고되지 않는 문제를 어떻게 경혈(経穴)하여야 마땅할지를 자문하던 도중 띵동, 딸랑딸랑 하고 현관문이 열렸으니 문간에는 무농약의 새 생강이 서 있었다. '굉장하지? 그리하여 11월까지 (그것보다 오래) 생강이 내 몸의 재료로 공급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 20년 9월 24일 트윗에서 발췌.[37] 80년대 초 샘플러의 가격이 비싸서[56] 키보드와 테이프 에코(원시적 형태의 딜레이)를 이용해서 자작한 샘플러라고 한다. 일종의 멜로트론인 셈.[38] 2002년 발매된 박스 세트 '태양계아종음'에서는 그러한 음원들을 'Heavenizerのための例題(Heavenizer를 위한 예제)'라는 이름으로 수록하기도.[39] #. 2024년 3월 17일 트위터 Q&A로 원반권이 히라사와 쪽에 있는 곡의 스트리밍 서비스 공개 신청에 대해선 현재 허가를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으며, 그 이유는 소비자 여러분 자신이 생각해주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40] 비교적 최근에 개최된 라이브의 녹음까지도 세이프, 아예 영상 녹화까지 해서 업로드해야 영상이 내려가는 수준이다. 유튜브 등지에서 업로드한지 15년이 넘은 히라사와 스스무 관련 영상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 것 또한 이 때문.[41] 반대로 운이 좋았던 케이스는 '히라사와 3막 3시간'에 수록된 라이브를 했을 때의 일화. 라디오 방송에서 말하길 근처 노점에 채식주의자용 야키소바를 주문했더니 그걸 해주었다고.[42] 참고로 츠츠이 야스타카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츠츠이 야스타카도 혐한이 아니다. 생각이 많이 짧았을 뿐, 발언의 의도는 일본 우익을 낚기 위했던 것.[43] INTERACTIVE LIVE SHOW 2009 「점호하는 혹성」 당시 함께 공연한 서포트 멤버들과의 사진이다. 왼쪽부터 'Rang', 'A-sai', 히라사와 스스무, 'Fiat'.[44] '제2의 여성'을 의미하는 태국어 SaoPraphetson의 약어.[45] 참고로 태국의 불멸기원은 한국의 불멸기원보다 1년이 늦다.[46] 솔로 앨범 중 하나인 구제의 기법과 발음이 같다.[47] 이런 경우 보통 '우마무스메도 용서하지 않는 스스무 아저씨(ウマ娘にも容赦しないすすむおじさん)'라는 전용 태그가 붙는다.[48] 히라사와에 대한 리스펙트가 일체 없는 MAD가 양산된 것이 원인이라는 추측이 유력한 듯. #[49] 현재 Big Brother를 사용해 제작한 이 합작은 다시 공개가 되었다.[50] 다만, MAD계에서 실력있는 제작자들은 영상을 아예 무반주로 제작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원곡이 음원에 사용되지 않은 무반주 영상들은 웬만해선 저작권 침해 신고로 내려가지 않고 있기에 존속중인 영상 또한 여전히 많다.[51] 맨드레이크의 연출 팀 '디바이스・만드라고라'의 리더였고 비싼 연주장비를 싼 값에 구해오는 등 수완이 좋아 맨드레이크를 돈이 많은 밴드처럼 보이게 해줬다고 한다.[52] 이외 공개하지 않은 뮤직비디오도 여럿 있다.[53] 대표적으로 ONE PATTERN이 있다.[54] 과거 히라사와 스스무 관련 나무위키 문서들의 이미지 파일 출처는 대부분 이 사이트였다. 지금도 몇몇은 이곳의 자료를 사용 중. 다만 사이트 자체는 현재 2020년 8월 14일을 마지막으로 업데이트가 중단된 상태.[55] 히라사와 스스무 관련 자료들과 팬들의 고찰을 다양한 언어로 번역한 글들이 올라오던 Tumblr 블로그. 이곳 역시 현재는 업데이트가 중단된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56] 당시엔 아카이나 다른 회사에서 보편적인(이라고 해도 10만 엔이 넘는) 샘플러를 출시하기 전이었던 데다, 샘플러 기능이 들어간 워크스테이션 신디사이저였던 Fairlight CMI나 뉴 잉글랜드 디지털社의 싱클라비어(Synclavier)는 당시 가격으로도 1천만 엔이 넘었고, 앞의 두 기종에 비하면 저렴했던 샘플러 E-MU Emulator 역시 거의 300만 엔에 달하는 고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