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이 유사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감독에 대한 내용은 후지모토 히로시 문서 참고하십시오.
후지코 F. 후지오 | 후지코 후지오 A |
<colbgcolor=#fff,#1c1d1f> 일본의 1억부 클럽 만화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6px); word-break:norma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4px -1px -11px" | <rowcolor=#000,#e5e5e5> 순위 | 만화 | 작가 | 연재 기간 | 권수 | 수치 |
1위 | 원피스 | 오다 에이치로 | 1997년 ~ 연재 중 | 110권 | 5억 2000만부 | |
2위 | 고르고13 | 사이토 타카오 | 1968년 ~ 연재 중 | 206권 | 3억 100만부 | |
3위 | 명탐정 코난 | 아오야마 고쇼 | 1994년 ~ 연재 중 | 105권 | 2억 7,000만부 | |
4위 | 드래곤볼 | 토리야마 아키라 | 1984년 ~ 1995년 | 42권 | 2억 6,000만부 | |
5위 | 나루토 | 키시모토 마사시 | 1999년 ~ 2014년 | 72권 | 2억 5,000만부 | |
6위 | 슬램덩크 | 이노우에 다케히코 | 1990년 ~ 1996년 | 31권 | 1억 8,500만부 | |
7위 | 여기는 잘나가는 파출소 | 아키모토 오사무 | 1976년 ~ 2016년 | 201권 | 1억 5,650만부 | |
8위 | 귀멸의 칼날 | 고토게 코요하루 | 2016년 ~ 2020년 | 23권 | 1억 5,000만부 | |
9위 | 진격의 거인 | 이사야마 하지메 | 2009년 ~ 2021년 | 34권 | 1억 4,000만부 | |
10위 | 맛의 달인 | 카리야 테츠(원작) 하나사키 아키라(그림) | 1983년 ~ 2014년(휴재) | 111권 | 1억 3,500만부 | |
11위 | 블리치 | 쿠보 타이토 | 2001년 ~ 2016년 | 74권 | 1억 3,000만부 | |
12위 | 죠죠의 기묘한 모험 | 아라키 히로히코 | 1987년 ~ 연재 중 | 131권 | 1억 2,000만부 | |
13위 | 철완 아톰 | 데즈카 오사무 | 1952년 ~ 1968년 | 23권 | 1억부 | |
도라에몽 | 후지코 F. 후지오 | 1969년 ~ 1996년 | 45권 | 1억부 | ||
터치 | 아다치 미츠루 | 1981년 ~ 1986년 | 26권 | 1억부 | ||
북두의 권 | 부론손(스토리) 하라 테츠오(작화) | 1983년 ~ 1988년 | 27권 | 1억부 | ||
더 화이팅 | 모리카와 죠지 | 1989년 ~ 연재 중 | 136권 | 1억부 | ||
바키 시리즈 | 이타가키 케이스케 | 1991년 ~ 연재 중 | 150권 | 1억부 | ||
소년탐정 김전일 | 아마기 세이마루 (원작) 카나리 요자부로 (원작) 사토 후미야 (작화) | 1992년 ~ 연재 중 | 83권 | 1억부 | ||
킹덤 | 하라 야스히사 | 2006년 ~ 연재 중 | 70권 | 1억부 |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호리코시 코헤이 | 2014년 ~ 2024년 | 40권 | 1억부 | ||
주술회전 | 아쿠타미 게게 | 2018년 ~ 2024년 | 28권 | 1억부 | ||
출처 | }}}}}}}}} |
<colbgcolor=#fff,#1f2023> 전 세계의 만화 판매 순위 100 | ||||||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 <rowcolor=#000,#e5e5e5> 순위 | 만화 | 국가 | 연재 기간 | 권수 | 수치 |
1위 | 슈퍼맨 | 미국 | 1938년 ~ 연재 중 | 15000화 | 6억부 | |
2위 | 원피스 | 일본 | 1997년 ~ 연재 중 | 110권 | 5억 2,000만부 | |
3위 | 배트맨 | 미국 | 1939년 ~ 연재 중 | 17000화 | 4억 8,400만 부 | |
4위 | 스파이더맨 | 미국 | 1963년 ~ 연재 중 | 13500화 | 3억 8700만부 | |
5위 | 아스테릭스 | 프랑스 | 1959년 ~ 연재 중 | 39권 | 3억 8500만부 | |
6위 | 드래곤볼 | 일본 | 1984년 ~ 1995년 | 42권 | 3억 5000만부 | |
7위 | 고르고13 | 1968년 ~ 연재 중 | 206권 | 3억 900만부 | ||
8위 | 도라에몽 | 1969년 ~ 1996년 | 45권 | 3억부 | ||
9위 | 럭키 루크 | 벨기에 | 1946년 ~ 연재 중 | 82권 | 3억부 | |
10위 | 용호문 | 홍콩 | 1969년 ~ 연재 중 | 2,427권 | 2억 8000만부 | |
11위 | 명탐정 코난 | 일본 | 1994년 ~ 연재 중 | 106권 | 2억 7000만부 | |
12위 | 피너츠 | 미국 | 1950년 ~ 2000년 | 26권 | 2억 7000만부 | |
13위 | 땡땡의 모험 | 벨기에 | 1926년 ~ 1976년 | 24권 | 2억 7000만부 | |
14위 | 엑스맨 | 미국 | 1963년 ~ 연재 중 | 12000화 | 2억 6000만부 | |
15위 | 나루토 | 일본 | 1999년 ~ 2014년 | 72권 | 2억 5,000만부 | |
16위 | 스파이크와 수지 | 벨기에 | 1945년 ~ 연재 중 | 365권 | 2억 3000만부 | |
17위 | 캡틴 아메리카 | 미국 | 1941년 ~ 연재 중 | 9000화 | 2억 1000만부 | |
18위 | 철완 아톰 | 일본 | 1952년 ~ 1968년 | 23권 | 2억부 | |
19위 | 블랙 잭 | 1973년 ~ 1983년 | 25권 | 1억 7,600만부 | ||
20위 | 슬램덩크 | 1990년 ~ 1996년 | 31권 | 1억 7,000만부 | ||
21위 | 여기는 잘나가는 파출소 | 1976년 ~ 2016년 | 201권 | 1억 5,650만부 | ||
22위 | 디아볼릭 | 이탈리아 | 1962년 ~ 연재 중 | 862화 | 1억 5000만부 | |
23위 | 스폰 | 미국 | 1992년 ~ 연재 중 | 600화 | 1억 5000만부 | |
24위 | 더 팬텀 | 1936년 ~ 연재 중 | 3500화 | 1억 5000만부 | ||
25위 | 귀멸의 칼날 | 일본 | 2016년 ~ 2020년 | 23권 | 1억 5000만부 | |
26위 | 진격의 거인 | 일본 | 2009년 ~ 2021년 | 34권 | 1억 4,000만부 | |
27위 | 가필드 | 미국 | 1978년 ~ 연재 중 | - | 1억 3500만부 | |
28위 | 맛의 달인 | 일본 | 1983년 ~ 2014년(휴재) | 111권 | 1억 3,500만부 | |
29위 | 블리치 | 2001년 ~ 2016년 | 74권 | 1억 3,000만부 | ||
30위 | 죠죠의 기묘한 모험 | 1987년 ~ 연재 중 | 131권 | 1억 2,180만부 | ||
31위 | 터치 | 1981년 ~ 1986년 | 26권 | 1억 2000만부 | ||
32위 | 소년탐정 김전일 김전일 37세의 사건부 포함 | 1992년 ~ 연재 중 | 83권 | 1억 1500만부 | ||
33위 | 북두의 권 | 1983년 ~ 1988년 | 27권 | 1억 500만부 | ||
34위 | 더 화이팅 | 1989년 ~ 연재 중 | 136권 | 1억부 | ||
35위 | Amar Chitra Katha | 인도 | 1967년 ~ 연재 중 | 449권 | 1억부 | |
36위 | 꼬마 유령 캐스퍼 | 미국 | 1949년 ~ 연재 중 | - | 1억부 | |
37위 | 킹덤 | 일본 | 2006년 ~ 연재 중 | 70권 | 1억부 | |
바키 시리즈 | 1991년 ~ 연재 중 | 150권 | 1억부 |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2015년 ~ 2024년 | 40권 | 1억부 | |||
주술회전 | 2018년 ~ 2024년 | 28권 | 1억부 | |||
출처 1 / 출처 2 |
후지코 F. 후지오 藤子・F・不二雄 |Fujiko F. Fujio | |||
필명 | <colbgcolor=#fff,#1f2023>후지코 F. 후지오([ruby(藤, ruby=ふじ)][ruby(子, ruby=こ)]・[ruby(F, ruby=エフ)]・[ruby(不, ruby=ふ)][ruby(二, ruby=じ)][ruby(雄, ruby=お)])[1] | ||
본명 | 후지모토 히로시 ([ruby(藤, ruby=ふじ)][ruby(本, ruby=もと)] [ruby(弘, ruby=ひろし)])[2]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
출생 | 1933년 12월 1일 | ||
도야마현 타카오카시 | |||
사망 | 1996년 9월 23일 (향년 62세) | ||
도쿄도 신주쿠구 게이오기주쿠대학 부속병원 | |||
직업 | 만화가 | ||
서명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학력 | <colbgcolor=#fff,#1f2023>도야마 현립 다카오카 공예 고등학교 (전기과 / 졸업) | |
배우자 | 후지모토 마사코 | ||
자녀 | 슬하 3녀 | ||
데뷔 | 천사의 타마짱 (1951년) | ||
주요 장르 | SF, 소년만화, 아동, 개그, 일상물, 블랙 코미디 | ||
활동 기간 | 1951년 – 1996년 | ||
링크 | 후지코 F. 후지오 뮤지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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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nopad> |
그가 만든 캐릭터들 |
2. 생애
생애 다큐멘터리 |
1933년 12월 1일 출생으로, 어린 시절 병치레를 자주했다는 이유로 따돌림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3] 초등학교에 다닐 때 평생의 절친 후지코 후지오 A를 만났으며, A와 매일같이 서점을 찾아 출간된 지 얼마 안 됐던 데즈카 오사무 만화들의 초판을 모두 사서 모으기도 했다.[4] 극초기 그림체는 데즈카 오사무의 판박이었으며, 데뷔 초기 필명도 데즈카 오사무에서 따온 "아시즈카 후지오"라는 필명을 사용했었을 정도. 데즈카의 작품에 특별한 생각을 가지며 언젠가 그와 같은 멋진 작풍도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데즈카를 무척 신봉했던 나머지, 월간 코로코로 코믹의 초대 편집장이 데즈카에 대해 비판을 토로하자 무척 분노하여 1주일 가까이 사무소에 출입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곤 우선 취직하기로 마음먹어 제과 회사에 취직하기도 했으나, 혹시 모를 불의의 사고로 만화를 그릴 수 없을 것을 두려워해 며칠 뒤 그곳을 나왔다. 하지만 만화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봄 방학 시기에 A와 같이 데즈카 오사무를 만난 적도 있었다. 이 무렵 자신이 과연 만화가로서 잘해 나갈 수 있을지 불안했었는데, 데즈카한테 너희라면 해나갈 것이란 말을 듣고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 후론 집에서 만화를 집필하는 데 전념하며 휴일엔 신문사에서 일하던 A와 함께 만화를 그렸고, A를 꾸준히 권유한 끝에 1954년 도쿄로 도착해 후지코 후지오로 필명을 바꾸고 토키와 장에 입주해 다른 동료 만화가들의 작업을 보조하기 시작했다.
스튜디오 제로를 설립한 후론 잡지 연재도 시작하였으며, A와 공동으로 그린 오바케의 Q타로, 자신의 단독 만화인 퍼맨은 상당한 히트를 쳤으나 21에몽, 우메보시 덴카, 우주에서 온 모자코는 오래가지 않아 연재가 종료되는 데 그치면서 몇 년간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었다. 당시 후지코 스튜디오에선 에비하라 타케시 등의 일부 지원들을 제외하곤 괴물군, 웃는 세일즈맨, 마타로가 온다! 등을 연재하던 A를 중심적으로 지원했었으며, 후지코 F. 후지오는 주간 소년 선데이의 편집장에게 자신을 선데이 작가진에서 분리해 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기도 했다.[5][6]
그러던 중 빅 코믹에서 집필 요청 의뢰를 받았고, 후지코 F. 후지오는 자신의 만화가 청년 만화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여 처음엔 이를 거절했으나 편집장의 열렬한 요청에 따라 마지못해 승낙했다. 이때 그린 단편은 '미노타우르스의 접시'로, 빅 코믹 편집부에서 호평을 얻었으며 자신도 이런 것이냐라는 새로운 장난감을 손에 넣은 듯한 기쁨이 있었다고 후에 밝혔다.
1969년 쇼가쿠칸 유아 잡지 <요이코>에 대표작이자 국민 만화 도라에몽을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4년 뒤인 1973년에 애니메이션이 종영하면서 편집부에서도 연재를 종료시키려 했다. 후지코 F. 후지오는 이에 반발하며 도라에몽의 연재를 속행했고 그 결과 도라에몽은 6년이 지난 1979년 TV 아사히에서 다시 애니메이션화되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으며 이후 후지코 후지오 A의 작품들 또한 애니메이션화되어 보다 많은 인지도를 쌓는 계기가 되었다.[7]
1987년 콤비를 해체한 뒤 후지코 후지오 Ⓕ로 필명을 변경해 활동했지만 1년 뒤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권유로 F를 이름 가운데에 넣는 지금의 필명으로 바꾸었다. 콤비가 해체되었음에도, 서로 평화롭게 해체하면서 친구인 A와는 서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사망 당시 뉴스 |
이후 성치 않은 몸으로 한창 활동을 지속하던 1996년 9월 20일, 가족이 저녁 준비를 이야기하면 평소 작업실에서 대답했던 것과 달리 시간이 지나도록 식탁에 오지 않아 딸이 이상하게 생각해 부르러 갔다가 책상에 앉아 의식을 잃은 상태인 부친을 발견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도라에몽 노비타의 태엽도시 모험기 만화책 62페이지를 그리다가 연필을 잡은 채로 쓰러졌으며,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해 3일 후인 9월 23일 새벽 2시 10분에 도쿄도 신주쿠구 게이오기주쿠대학 병원에서 간 부전으로 향년 62세에 세상을 떠났다.
본인도 이전부터 운명을 예감했는지, 도라에몽 노비타의 태엽도시 모험기의 줄거리를 쓰기 전 시바야마 츠토무한테 미리 알려주거나 사후 자기 작품들의 행방과 후지코 프로덕션의 활동 등에 대해 걱정을 보인 내용을 쓴 편지를 남기기도 했다.[8] 또한 1992년 간암으로 투병할 당시 코로코로 코믹에서의 대장편 도라에몽 작품 노비타와 구름의 왕국 연재를 일시적으로 중단해 후지코 프로덕션에서 비주얼 스토리를 게재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하였다.
그가 사망한 후 평생의 동료였던 후지코 후지오 A는 당시 인터뷰에서 "마음은 혼란스럽고, 솔직히 오늘 아침부터 계속 다리가 덜덜 떨리고 있어요. 몹시 유감이며 어쩔 수 없는 것이죠. 그는 대단한 천재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가 있었기 때문에 만화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순수한 마음의 남자였어요."라고 말했다.[9]
9월 29일 장례식이 진행됐을 때에는 많은 조문객들이 참석하였고, 현장에서 당시 도라에몽의 성우 오오야마 노부요는 눈물을 쏟기도 했다.[10]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애도가 이어졌다. [11]
이후 2000년에 소학관은 한정판 후지코 F. 후지오 복제 원화집을 발매하였으며, 2006년엔 후지코 F. 후지오 뮤지엄의 설립이 공식 발표되었고, 2008년 12월 건설 예정지가 확정 지어져 2011년 9월 3일 개관하였다. 소학관은 2009년에 후지코 F. 후지오 대전집의 발매를 발표하였고, 2014년까지 총 115권으로 출간하였다.
그의 사망 후 약 26년이 지난 2022년 4월 7일, 평생의 친구이자 파트너였던 후지코 후지오 A도 향년 88세의 나이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 친구의 곁으로 떠나면서, 일본 만화계의 전설적 듀오였던 후지코 후지오는 만화 역사의 찬란한 한 페이지가 되었다.
3. 특징
3.1. 작화
내가 만화를 그리는 자세는 "양질의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고 싶다"는 것, 이것으로 끝난다. #
도라에몽 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그림체가 유명하다. 5에서 6등신의 신체 비율에 동글동글하게 데포르메된 표정과 자유로운 만화적 감정 표현 기법이 대표적인 특징이다. 여성 캐릭터의 경우 신이슬과 같은 사백안의 눈에 큰 비율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곡선이 매우 자연스럽고 관절 묘사에 공을 들인다. 관절을 실제 사람처럼 그려서 진짜 사람이 움직이는 듯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그래서 얼핏 따라 그리기 굉장히 쉬워 보이는데 직접 그려보면 쉽게 따라 그릴 수가 없다. 그림 좀 잘 그린다는 사람들이 그의 어시스턴트로 들어가고 나서 한동안 선 치는 것부터 다시 연습해야 했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천재인지 느낄 수 있다.
트레이드마크는 오너캐에 그려진 베레모와 파이프 담배. 하지만 빵모자를 쓰게 한 사람은 같은 모자가 트레이드마크인 데즈카 오사무가 아니라 친구인 A였다고 한다. 어느 날 A가 아는 사람으로부터 베레모를 받았지만 그다지 쓰려는 생각이 들지 않아 그대로 F에게 양보했고, 이것이 후지코 F. 후지오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고.
주로 소학관의 학습 잡지나 코로코로 코믹에서 아동 만화를 연재했으나, 빅 코믹 같은 청년 만화 잡지에서 성인향 단편 만화를 연재하기도 했다.
3.2. 스토리
어린 시절 접했던 무기, 군사, 쿠데타, 혁명 등등을 모티브로 하여 훗날 이와 관련되거나 묘사시킨 만화들을 다수 발표하였다.[12] 본인은 전쟁과 군국주의에 대해 어릴 때 제2차 세계 대전을 겪은 경험이 작용해 대체로 인간성을 파괴하고 국민들을 혹사시키는 행위로 묘사하며, 초창기의 도라에몽 연재분에는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몇 개 존재해 군국주의로 미쳐가던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의 상황을 표현해 낸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다. 태평양 전쟁 당시 혹사당하는 아동의 모습을 묘사한 흰 백합의 여자아이와 만나는 '아빠의 추억' 에피소드, 그리고 우에노동물원의 맹수 살처분을 주제로 한 '코끼리와 아저씨'에서는 등장인물이 직접 해맑게 (전쟁에서) 일본이 진다는 대사를 해 파장을 불러일으킨 적도 있다. 전쟁이 직접 나오는 에피소드는 아니지만, 프라모델 군함에 욱일기를 걸고 놀다가 그 전함이 파괴당하고, 전쟁은 돈만 들고, 허탈할 뿐이야.라는 왕비길의 대사로 마무리하는 풍자적인 에피소드도 있다. 환경에 대한 깊은 관심도 가져서 도라에몽 대장편에서는 환경 보호를 주창하는 작품들도 존재한다.생전 좋아하는 취미가 다양한 덕후 기질의 만화가이기도 했다. 야구,[13] 철도 모형은 생전에 즐기던 취미 중 하나였으며, SL 등을 소재로 한 작품도 다수 그려내기도 했다.[14] 스스로 직접 카메라를 촬영해 보거나 디오라마를 만들어보기도 했었다. 도라에몽의 비밀 도구 중에서는 수많은 카메라가 등장하는 것 외에 디오라마 제작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에피소드가 나오는 게 그 증거. 후지코 F. 후지오는 비밀 도구의 아이디어를 짜낸 팁 중 하나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모티브로 했다고 밝혔으며, 특수 촬영, 프라모델, 무선 조종 등에서도 많은 탐구를 했었다.
뿐만 아니라 공룡에 대한 관심도 깊어 책상에는 시조새의 복제 화석 및 티라노사우루스의 프라모델과 진짜 디플로도쿠스의 꼬리뼈까지 장식되었었다고 한다. 어시스턴트였던 무기와라 신타로가 그린 익룡 일러스트를 보고 팔 관절이 이상하다고 지적한 일도 있었다.[15] 서부극이나 카우보이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그와 관련한 에피소드도 많이 그려낸 것과[16] 더불어, 생전 A, 스즈키 신이치, 츠노다 지로랑 8mm 카메라로 서부극을 촬영한 경험도 있었다. 도라에몽에서도 공룡, 고생물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자주 등장하는 편이며, 무식함의 끝판왕 격인 노진구도 공룡에 대한 지식은 꽤 해박하다는 설정이 있다. 골프도 취미 중의 하나였지만, 자타가 공인한 상당히 서투르는 성격이었다고 한다.[17] 반면 친구 A는 상당히 사교적이고 골프도 정말 잘 쳤다고 전해진다.
후지코 F. 후지오는 대표작이 도라에몽인 것에서 볼 수 있듯이 SF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18] 그가 제창한 SF는 본래의 의미가 아닌 S - 스코시(少し, 약간), F - 후시기(不思議, 신기한)란 뜻으로 일상생활에서 비일상적으로 들어온 내용의 만화들이 많다. SF 단편집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들은 그런 공상 과학 소설의 흐름을 이어받은 작품들도 존재한다. 또한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횬효로 같은 코즈믹 호러에 가까운 단편집을 많이 만들었다.
자료와 고증에 철저히 공을 들인 작가로, 매번 신작을 낼 때마다 엄청난 양의 서적을 뒤지고 다니며 공부를 했다고 한다. 도라에몽에서 "우주에선 소리가 안 나"라고 하거나, 일본엔 공룡이 없다면서 장경룡을 공룡 대신 내보낸 것이 그 예. 물론 작가가 완전한 전문가가 아니니 틀리는 경우도 꽤 되지만 작품에 대한 자세가 남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직접 외국에 나가고 경험하지 않아도 공부와 취재를 통해 상상력을 보완하고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서 제자들에게도 이를 강조했다고 한다.
자신의 작품에서 설정된 세계관들이 연결되는 일도 많아서 한 작품의 캐릭터가 시공간을 넘어서 다른 작품에 등장하고, 심지어 후일담이나 전의 내용들이 거론되기도 한다. 콤비를 해체하기 전에는 자신의 작품 퍼맨과 A의 작품인 닌자 핫토리군의 크로스오버도 존재했었다. 그의 만화들에서는 신기한 능력을 가진 동물 캐릭터가 평범한 소년 주인공과 함께 살고, 여자아이 캐릭터 1명, 골목대장 1명, 앞잡이 1명의 구도 설정이 많다. (도라에몽식 구성 참조.)
그의 작품들에는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의 판치라, 목욕 신이 자주 등장한다. 대표작인 도라에몽만 하더라도 주인공인 신이슬(미나모토 시즈카)이라는 초등학생 여성 캐릭터의 치마가 뒤집히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옷이 다 날아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전라가 되는 경우도. 그가 왜 판치라를 자신의 작품에 자주 넣었는지 정확한 사유는 불명. 팬과의 좌담회에서 한 팬이 "왜 이슬이의 목욕 장면이 자주 나오나요? 선생님은 변태인가요?"라는
오줌싸개 속성을 가진 남자 캐릭터도 자주 활용한다. 도라에몽의 비실이는 잘 때 이불에 지도를 그린다는 설정이 있으며 주인공 노진구 역시 자주 바지에 오줌을 싼다.
작품의 단행본화에선 수정 작업을 거쳐 보다 완성도를 높여갔는데, 도라에몽 개정판에서 캐릭터의 대사나 장면이 변경된 사례가 있던 만큼 작품을 그리면서 열정적으로 임하며 애정을 아끼지 않았고 대표작인 도라에몽 극장판은 직접 단행본을 그리고 제작에 관여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그의 노력과 이미지를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사후 도라에몽의 결말을 다룬 동인지가 나와서 널리 퍼져가자 소학관이 회수 조치를 내리기도 했으며, 작품들에 대한 모에파치 얘기가 돌았을 때도 그의 유족들이 맹렬히 반대하는 입장을 보여 허락되지 않았다.
은근 아동 만화답지 않게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나 깡패도 잘 나타나는 편이다.
4. 작품 목록
- 도라에몽
그의 작품들 중에서 두말할 것도 없이 전 세계에서 최고의 인지도를 자랑하는 대표작. 작가 본인에게도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였으며 사망 직전 끝까지 붙들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TV 애니메이션과 극장판으로 매년 제작되고 있으며 많은 후배 만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 유혈귀: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를 후지코 F. 후지오식으로 바꾼 단편 만화. 잘 알려지지 않은 초기작이다.
- 천사의 타마짱
- 분기점
- 오바케의 Q타로: 후지코 후지오라는 필명으로 집필했던 작품으로, 도라에몽 연재 이전에 가장 유명했던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이다.
- 신 오바케의 Q타로
- 퍼맨: 작가 본인이 제일 아꼈던 작품이며, 역시 대표작들 중 하나이다.
- 21에몬
- 우메보시 덴카
- 울트라 슈퍼 디럭스맨
- 중년 슈퍼맨 사에나이씨
- 포코냥
- 정글 쿠로베
- 마음 편히 죽여요
- 마이 셸터
- 메피스토 잔혹사
- 키테레츠 대백과: 후지 테레비가 애니메이션으로 방영한 이래 인지도가 상승한 또 다른 대표작.
- 에스퍼 마미
- 친푸이: 도라에몽식 구성을 사용한, 작가의 또 다른 대표작.
- UTOPIA 최후의 세계대전
- 모자코(우주에서 온 모자코): 원작은 종종 그로테스크 신들이 나오고[19] 블랙 코미디한 스토리지만, 애니메이션화되면서 많이 삭제되었다.
- 희생양[20]
- 창세일기
- 여자에게는 팔 것이 있다[21]
- 정년퇴식
- 철인을 주웠어
- 야마데라 그래피티[22]
- 캄비세스의 제비[23]
- 우주선 제조법
- 자기회의
- 배속
- 돌아온 여행자
- T・P본(타임 패트롤 본) : 2024년 넷플릭스에서 리메이크 애니가 공개됨.#,#
- 대장편 도라에몽 시리즈 등 다수
- 그 녀석의 타임머신
- 미노타우로스의 접시
- 그루터기에 걸려 데구르르[24]
- 솎아내기
- 횬효로
- 미도리의 수호신
- 초병기 걸1호
- 내일이 보여
1968년부터 1995년까지 112개의 SF 단편들을 발표했다. 자세한 작품들은 일본 위키백과의 후지코 F. 후지오 작품 목록을 참고. #
5. 기념 박물관
자세한 내용은 후지코 F. 후지오 뮤지엄 문서 참고하십시오.6. 출연
6.1. 영화
- 공상과학임협전 극도닌자도스용 (1990년) - 나가이 고 1회 감독 작품
- 미래의 추억 Last Christmas (1992년) - 점쟁이 역
- 2112년 도라에몽 탄생 (1995년) - 나레이션[25]
6.2. 텔레비전
- 도라에몽 유럽 기차 여행(1983년 10월 18일)
- 도라에몽 방송 14주년 특집(1993년 9월 9일) - 후지코 F. 후지오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 F 선생의 다소 경직된 느낌의 국어책 읽기(…)를 들을 수 있다.
- 천재 테레비 군(1994년 11월 7일) - 후지코 F. 후지오에 대한 인터뷰.
7. 수훈
- 1981년: 가와사키시 문화상
- 1982년: 제27회 쇼가쿠칸 만화상 아동 부문 수상 (도라에몽)[26]
- 1989년: 영화 공로상, 골든 글로스상 수상
- 1994년: 제23회 일본 만화가 협회상 문부대신상 수상[27]
- 1996년: 애니메이션 고베 '96 요미우리상 수상[28]
- 1997년: 제1회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만화 대상 수상 (도라에몽)
8. 여담
- 지금의 도라에몽이 크게 히트를 치고 장수 애니메이션으로 전 세계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처음부터 순탄하게 진행되었던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도라에몽 탄생 비화 단편 만화에 실린 내용을 본다면 처음에는 아이디어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그 와중에 어린 딸들이 잠들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하면서 크게 고민을 하고 본인이 우연히 꾸던 꿈에서 나온 내용들을 하나하나 치밀하게 짜맞추고 노력한 끝에 도라에몽의 연재가 시작되었고 그 결과 6권에서 끝내려고 하던 만화가 대장편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 태중이던 차녀의 순산을 생전에 못 볼 것을 직감했는지 아내 마사코 여사에게 금일봉을 맡겼다고 하며, 마사코 여사는 딸의 순산 후 금일봉을 건네주었다고 한다.
- 도라에몽의 도구 내용을 이것저것 뜯어본다면 작가의 노력과 재능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현대 기준으로도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의 미래 과학의 모든 것들을 이미 몇십 년 전부터 상상하면서 만화로 그려낸 셈이다.
- 좋아했던 여배우는 시라카와 유미. 토키와장에 머무르던 시절 A에게 담배 가게 앞에 시라카와 유미가 있어!라고 전해 듣고는 황급히 방을 뛰쳐나가 담배 가게까지 달려나갔지만 아무도 없었다. 이어서 가게의 할머니에게 시라카와 유미 씨가 여기에 없었습니까?라고 묻자 할머니는 창문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가리켰다. 그 포스터 안에 시라카와 유미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고.
- 초대 전속 비서는 '마잇칭구 마치코 선생님'을 그린 에비하라 타케시가 맡았으며, 무기와라 신타로(하기와라 신이치로)도 어시스턴트로 그를 지원해 주면서 함께 연극을 보거나 소바(메밀국수)를 같이 먹는 등 무척 친밀한 관계로 지냈다. 더욱이 후지코 F. 후지오는 무기와라가 그린 만화에 대해 세세한 부분까지 지도해 주면서 도라에몽 단행본의 표지를 맡기는 등 자신의 미래를 대비한 후진으로도 준비시키고 있었다.
- 도쿄로 올라왔을 당시에 사망률 1위를 기록했던 결핵에 걸린 적이 있었지만 얼마 안 가 기력을 회복한 사례가 있다.
- 첫번째 도라에몽 극장판인 노비타의 공룡이 개봉하기 전날에 관객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에 영화관 건너편에 있는 한 호텔로 숙소를 잡았으나 영화를 보러 많은 아이들이 달려와서 감상한 것을 보고 안심했다는 일화가 존재한다.
-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인스턴트 컵라멘[31]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코이케 씨의 모델이자 동료인 스즈키 신이치는 자신보다 매우 라멘을 좋아했다고 말했으며, 후지코 F. 후지오는 생전 컵라멘을 물을 뿌리는 것만으로 먹을 수 있다는 점이 마술이라고 말한 바 있었다. 본인의 여러 작품에서도 라멘을 종종 그려냈는데, 대개 나루토마키가 고명으로 그려진 모습으로 나왔었다. 스튜디오 제로의 사장을 지냈을 때는 당시 스튜디오의 전무가 혼자서 사장 전용 차량으로 중고 링컨 컨티넨탈을 구입했고 개인 운전사도 고용했었는데, 오다큐 선 열차를 타는 것에 익숙하던 그가 이를 꺼려 전용 차량은 일 년에 몇 번만 가동하는 데 그쳤다고 한다.
- 그의 작품 대부분이 한국에 방영이 되어서인지 국내에서도 익숙한 인물이자 유명하다. 그의 작품 중에서 첫 번째로 한국에 방영이 된 것이 도라에몽이며 그 후에도 여러 애니 채널에서 우주에서 온 모자코, 퍼맨, 키테레츠 대백과 등 여러 가지가 방영됐다. 만약 2010년대까지 살아있었다면 감사의 의미로 방한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매우 아쉽다.
- 타케다 테츠야의 노래를 좋아하여 극장판의 엔딩 테마를 계속 담당하던 그를 강판하자고 제의가 들어왔을 때 완강히 거부한 것이 도라에몽 대전집에서의 증언으로 기록되어 있다. 타케다 테츠야가 작사한 노래 가사를 자신의 만화에 연출로 삽입하기도 했다. 후지코 F. 후지오가 점찍어 오랜 기간 도라에몽 극장판의 주제가를 작곡했던 타케다 테츠야는 1996년 개봉한 노비타와 은하초특급을 마지막으로 물러났다. 후지코 F. 후지오가 이 작품을 끝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 생전에 데즈카 오사무라는 일본 만화계의 대선배이자 거장을 존경했었다. 데즈카 오사무는 후지코 F. 후지오의 만화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그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54년 데즈카 오사무가 입주한 이래로 여러 만화가들이 거주하며 많은 만화가들을 양성한 토키와 장에 후지코 후지오 A와 함께 입주한 이래로 데즈카 오사무와 안면을 트게 되었고, 제자 격의 관계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 롯데 조지훈 응원단장 10주년을 맞은 몰래카메라로 2016년 4월 23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KBO 리그 롯데와 KIA 경기에 시구자로 표시되었다. 영상 도라에몽 데이를 맞아 식전 행사 사회를 본 조지훈 단장이 시구자로 도라에몽의 원작자 후지코 F. 후지오를 소개했지만 전광판에 나온 시구자는 바로 자신이었다.
-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에서 그의 숨겨진 명작인 UTOPIA 최후의 세계대전이 언급되었다. 국내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었기에 화제가 잠깐 되기도 했다.
- 베트남에서 도라에몽을 출판했을 때 베트남에서 출판되는 책의 인세 전액을 베트남 아이들을 위한 현지 장학금 제도를 만드는 데에 썼다.
- 2066년에 모든 작품의 저작권이 풀릴 예정이다. (하지만 저작권법은 로비 활동으로 인해 20년씩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 법이 개정될 가능성은 있다. 실제로 사후 30년 저작권 보호 기간이 1987년 50년으로 2013년 7월 이후부터 사후 70년으로 연장된 사례가 있다-> 1962년 전에 사망한 헤밍웨이, 헤르만 헤세 등은 저작권이 소멸되었으나 1963년 이후 사망한 C. S. 루이스(나니아 연대기 작가), 염상섭 등은 사후 저작권이 20년 더 늘어났다.)
- 2023년 12월 11일부터 2023년 12월 14일까지 그의 단편들을 원작으로 한 후지코 F. 후지오 SF 단편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9. 관련 인물
- (원작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에 참여한) 애니메이션업계인
10. 관련 문서
11. 둘러보기
후지코 후지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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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의 작품 | 퍼맨 (1966–1986) · 도라에몽 (1969–1996) · 우주에서 온 모자코 (1969–1970) · 포코냥 (1970–1978) · 키테레츠 대백과 (1974–1977) · 에스퍼 마미 (1977–1978) · 침푸이 (1985–1991) · 우메보시 덴카 · 21에몬 · T・P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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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 후지코 F. 후지오 뮤지엄 · 후지코 프로 |
[1] 본래는 '후지코 후지오 F'였으나 1988년 현재의 필명으로 고쳤다.[2] 한국식 한자 독음으로는 "등본홍"이다.[3] 이 어린 시절에서 착안해 만들어낸 캐릭터가 바로 대표작 도라에몽의 노진구다. 이러한 경험이 자라서 영향을 미쳤는지 데뷔 후에도 종종 TV 출연, 논술, 골프 등을 즐기던 후지코 후지오 A와는 다르게 대외 활동이 많지 않았고 만화들을 집필하는 데에 전념하였다. 또한 이 영향인지 88세까지 장수했던 후지코 후지오 A와 달리 평균 수명이 80세를 훨씬 웃도는 세계 최장수 국가 일본에서 62세라는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일본에서 62세에 죽는다는 것은 정말로 '요절'로 취급될 정도로 짧은 수명이다.[4] 후지코 F. 후지오의 인생에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데즈카 오사무로, 생전 데즈카를 스승처럼 존경했었으며 그의 작품들에 매우 감격한 나머지 아무한테나 그 만화들을 보여주면서 상대가 다 읽을 때까지 곁에 있었는데, 그다지 재미있어하지 않으면 바로 불만을 터뜨리곤 했다고 한다.[5] F가 그린 소년 만화들은 A에 비해서 대부분 소재 한계가 너무 명확했다. A는 닌자를 주인공으로 한 닌자 핫토리군이나 괴물들끼리 모여 온갖 소동벌이는 괴물군 등 다양한 소재로 장기간 연재한 작품들이 많았지만 F가 그린 아동 만화들은 주로 외계인 혹은 외계 생물들이 지구에 내려와 어느 소년을 만나고 여러 일들을 겪는 스토리 패턴이 비슷한 SF 일상물이라 이런 식상함 때문에 인기도 못 얻고 오래 가지 못해 연중되거나 급하게 완결된 작품들이 많았다. 그가 그렸던 단편작 도라에몽 탄생에서도 도라에몽 연재 하기전에 계속 되는 실패로 스트레스까지 받으면서 어떤 주제에 만화를 그려야 차기작이 성공할 수 있을지 크게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6] 사실 F작가 그림체나 스타일상 소녀만화 쪽에 더 적성이 맞았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신인 시절때는 단편이긴 했지만 주로 소녀만화를 많이 그렸었고 이후에 연재한 마법소녀물 에스퍼 마미는 주인공이 초능력을 가진 소녀이며 본인의 능력으로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 문제를 해결해 주는 드라마적 요소에 좋은 반응을 얻어 연재도 F작가가 그린 작품들 중 도라에몽 다음으로 오래 연재된 편이었고 1987년에 애니화 됐을때도 시청률까지 잘나왔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F작가가 정말로 소년만화에 자질이 없었다면 도라에몽도 지금 같이 성공하지 못했을거고 연재 당시에는 오래 가지 못했지만 키테레츠 대백과나 우주에서 온 모자코도 애니화 되면서 재평가 되기도 했었다. 특히 모자코 같은 경우엔 기본적으로 SF, 개그 장르로 하고 있지만 그로테스크한 연출이 제법 많은데다 코즈믹 호러 분위기도 있어 원작을 선호하는 팬들도 많이 있다. 만약 F작가가 친구처럼 소재의 다양화를 가지고 연재했다면 도라에몽 외에도 장기작들이 많이 나올수 있는 역량이 있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7] 후일담에 따르면, F는 1979년 재애니화 당시 이미 1973년에 실패한 경험 때문에 TV 애니메이션화에 굉장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새로운 신에이 동화의 엄청난 어필과 요청에 애니화를 수락해 주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테레비 아사히판 도라에몽은 모두가 다 알 듯 44년째 방송되며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국민 애니메이션으로 부상했다.[8] 2006년 2월 19일 테레비 아사히에서 방송된 '도라에몽 탄생 이야기 ~ 후지코 F. 후지오의 편지 ~ '에 따르면, 1986년 위암이 발견되어 이후 컨디션을 무너뜨리는 현상을 가졌던 것이 밝혀졌다. 실제로 90년대에 도라에몽 14주년 영상 등 본인이 출연한 생전 영상만 봐도, 그리 건강해 보이는 모습은 아니었다.[9] 이후 A는 만화의 길의 속편 만화에서 F를 추모하는 작품인 '안녕 친구여'를 집필하며 친구를 기렸다.[10] 같은 날 그를 추모하는 특집 프로 노비타의 일본탄생이 TV 아사히에서 방송되었다.[11] 이 당시 F를 추모하는 물결이 더욱 컸던 것은 62세라는, 장수 국가 일본에서 상당히 젊은 나이에 타계한 점도 컸다. 평균 수명이 80을 넘기는 일본에서는 요절로 간주되는 나이이기 때문. 사실 만화가는 워낙 촉박한 일정과 빡센 생활 패턴으로 오래 살지 못하는 대표적인 직업으로 꼽힌다. 당장 만화의 신이라 불리는 데즈카 오사무도 60세까지 살았고, 토키와장에 함께 거주한 이시노모리 쇼타로도 60세가 되고 3일 후 사망했다. 오히려 전쟁 중에 팔 한쪽 잃고서도 건강한 생활을 하다 93세까지 장수한 미즈키 시게루나 골프 등을 즐기며 88세까지 여유로운 생활을 즐긴 후지코 후지오 A가 희귀 케이스에 가깝다.[12] 만화의 길에서는 전함의 삼면도와 비행기의 모형이 나오는 장면도 있다.[13] 소학 4학년 1971년 1월 호에서 독자의 질문에 자신이 긴테쓰 버팔로즈를 좋아했다고 답했다.[14] SF 단편 만화 다다미 4장 반 SL 여행, 도라에몽의 SL 굴뚝 편, 노비타의 모형철도 은하철도 승차권 편, 포코냥의 다이나믹도 경전철 편 등등.[15] 이런 흔적들은 노비타의 공룡, 노비타와 용의 기사나 T·P본 등에서 드러난다.[16] 특히 노비타에게 사격의 재능이 존재한단 설정의 에피소드를 많이 그려냈었고, T·P본과 SF 단편집 휴일의 총잡이 등에서 카우보이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작품도 있었다.[17] 말년에 그린 작품인 「미래의 추억」에서는 골프가 서투른 자신을 모델로 한 캐릭터가 "후지키 F. 후지오 쪽이 서툴잖아!"라고 이야기하는 자아비판적 장면이 있다.[18] 대표적으로 스타워즈가 일본에서 인기였을 때엔 도라에몽에 스타워즈에 관련된 패러디를 많이 등장시키기까지 했다. 이 외에도 예비 기계를 이용해 찍은 영화의 제목이 '스타 죠스'라는 것과, SF 단편인 "어느 날...", "뒷골목 뒷골목 명화관"에 패러디 극중극이 존재하며, 진구의 우주전쟁의 줄거리는 전체적으로 스타워즈에서 패러디했다.[19] 원작 만화책을 읽으면 "도라에몽을 그린 그 유명한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20] 후지코 후지오의 단편들 중 보기 힘든 해피 엔딩이다.[21] 1976년에 남자가 가부장적 권위를 얼마동안 여자에게 돈주고 사는 시대가 온다면 어떻게 될지 가정한 만화인데, 대한민국의 젠더 분쟁이 일어나자 한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재평가를 받고 있었다.[22] 해피 엔딩인 단편들 중 하나.[23] 캄비세스 2세와 관련된 일화를 모티브로 하는 단편이다.[24] 고사성어 수주대토의 유래를 바탕으로 한 노래 '待ちぼうけ'를 모티브로 하는 단편이다.[25] 극초반부와 끝에 만화 캐릭터 버전으로 나왔다.[26] 당시는 후지코 후지오 명의로 수상.[27] 친구 A도 2005년에 같은 상을 받았다. 다만 이때는 문부성과 과학기술청이 문부과학성으로 합병되어 문부과학대신 명의로 받았다.[28] 애니메이션의 문화와 산업 진흥에 기여함에 대해서.[29] 1위는 데즈카 오사무(10751표), 3위는 토리야마 아키라(3704표), 4위는 오다 에이이치로(2212표), 5위는 친구인 후지코 후지오 A.[30] 혐한 + 일본 내 지역 감정 조장 등으로 성격에 있어서 평판이 지독히 나쁜 사람이나 그런 타케다 테츠야가 후지코 F. 후지오를 평생 존경하기로 했다는 것은 작가가 정말 엄청난 인품을 가진 사람임을 알 수 있다.[31] 특히 치킨라멘을 가장 좋아했었다고 한다.[32] F의 작품이자 대표작인 도라에몽을 칭찬한 인터뷰가 있다.[33] 생전 F가 신뢰했던 애니메이션 감독.[34] 도라에몽(1979년판) TVA에서 각본가로 활동.[35] 업계 데뷔 초기에 도라에몽(1979년판) TVA 제작에 참여.[36] F와 A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들의 음악을 전담한 작곡가.[37] 정글 쿠로베의 기획 및 캐릭터 디자인으로 참여.[38] 도라에몽 애니메이션 1979년판 기획에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