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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던 이승만이 1942년 1월 16일에 미국에서 설립한 친한 단체. 주로 미국인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미국정부 로비와 선전활동을 담당했다.한미협회의 회원들은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던 정치인, 교수, 목사, 작가 등이었다. 이들은 이승만 개인에 대한 친분, 한반도에 머무른 경험이 있거나 선교를 한 경험이 있어 친한파의 속성을 가졌다. 이승만 뿐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지하며 지원하는 입장을 보였다.
1954년 8월 2일, 뉴욕의 한미협회 재단(American Korean Foundation)에서 이승만이 연설하는 모습과 실제 육성이 담긴 영상.[1][2] |
이승만은 지속적으로 미국 정부를 대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공식 인정을 요구하고 한국 독립문제를 제기해왔으나 한계를 느끼고,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뒤 미국내 로비 활동과 홍보 활동을 위해 미국 지식인들로 구성된 한미협회를 발족시켰다. 한미협회의 목적은 "한국의 독립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승인을 얻기 위해 미국인들의 여론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2. 주요 명단
1943년 1월, 한미협회의 이사회 및 전국위원회 명단.이사회(Board of Trustees) | ||
프레드릭 해리스 (Frederick B. Harris) | 이사장 (chairman) | 미국 연방상원 원목 (chaplain) |
제임스 헨리 로버츠 크롬웰 (James H. R. Cromwell) | 회장 (president) | 프랭클린 루즈벨트 시절 캐나다 특명전권공사 |
제임스 파머 (James W. Farmer) | 서기 | |
제이 제롬 윌리엄스 (Jay Jerome Williams) | 홍보, 선전 | 언론인, INC 통신사 운영 |
존 W. 스태거즈 (John W. Staggers) | 법률자문 | 변호사 |
어니스트 매클린 (Ernest F. Mechlin) | 법률고문 | 변호사 |
이승만 (Syngman Rhee) | 외교관 |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 |
프란체스카 (Francesca Rhee) | 비서, 타이피스트 | 이승만의 배우자 |
전국위원회(National Committee) | ||
클라우드 페퍼 (Claude Peffer) | 플로리다 주 상원의원 | |
존 커피 (John M. Coffee) | 워싱턴 주 하원의원 | |
새뮤얼 킹 (Samuel W. King) | 하와이 파견 하원대표(Delegate to Congress) | |
윌리엄 스위트 (William E. Sweet) | 전 콜로라도 주지사 | |
찰스 하트 (Charles C. Hart) | 전 알바니아, 페르시아 대사 | |
폴 더글라스 (Paul F. Douglass) | 아메리칸 대학교 총장 | |
램슨 버드 (Remsen DuBois Bird) | 옥시덴탈 칼리지 학장 | |
윌리엄 윌버 (Willaim A. Wilbur) | 조지 워싱턴 대학교 명예교수 | |
허버트 밀러 (Herbert A. Miller) | 전 브린 모어(Bryn Mawr) 대학 교수 | |
윌리엄 바버 (William R. Barbour) | 플레밍 레이벨 출판사 (Fleming H. Revell Co.)[3] 회장 | |
필립 자페(Philip J. Jaffe) | 아메라시아 (Amerasia) 편집인 | |
윌리엄 리치 (William H. Leach) | Church Management Magazine 편집인 | |
오스왈드 빌라드 (Oswald G. Villard) | 뉴욕 언론인 | |
A.G. 킴버랜드 (A.G. Kimberland) 부인 | 작가 | |
존 프록터 (John C. Proctor) | 작가 | |
버지니아 맥네어 (Virginia McNair) | 강사, 작가 | |
프레드릭 탈코트 (J. Frederick Talcott) | 전국미술클럽 (National Art Club) 회장 | |
루퍼스 위버 (Rufus W. Weaver) | 전국종교자유협의회 (National Conference Religious Liberty) 사무국장 | |
알프레드 라이트 (Alfred J. Wright) | 클리블랜드 교회공동체 (Cleveland Community Religious Hour) 감독 | |
조지 애쉬모어 피치 (George Ashmore Fitch) 부인 | 전 상하이 A.A.U.W. 회장 | |
호머 헐버트 (Homer B. Hulbert) | 전 대한제국 황제사절 | |
서재필 (Philip Jaisohn) | 전 대한제국 황제고문 | |
모리스 윌리엄 (Maurice William) | 중국의료원조 미국 사무국 부회장 | |
차이첸 (Yee-chen Zia) | 중국군 대령 | |
린위탕 (林語堂, Lin Yutang)[4] | 중국 사상가, 작가 | |
프랭크 본 (Frank Bohn) | ||
브라이언트 쿠퍼 (Bryant S. Cooper) | ||
플로렌스 깁슨 (Florence W. Gibson) |
3. 기타
- 현대에도 동명의 단체가 있으며 역할도 한국과 미국의 우호 증진으로 유사하나 본 문서의 한미협회와는 무관하다. 현대의 한미협회는 1963년에 설립한 별도의 단체이며 활동도 한국 내에서 하고 있다.
[1] 이날 열린 한미협회 행사 영상은 방송사를 통해 전미 지역으로 송출되었는데,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이승만은 자신의 속마음을 미국 시민들에게 모두 털어 놓았다.[2] Original Script : Climaxing his New York visit, South Korean President Syngman Rhee is honored at a dinner by the American Korean Foundation. It is an occasion charged with emotion. Dr. Rhee, his voice choked, tears in his eyes, thanks America for its help, but says he did not come to ask for more aid. He restates his plea for cooperation toward stopping the communists and adds,
'My greatest hope is that the American people are ready to organize a nationwide movement, a mighty crusade, to get rid of the many sub-communists, totalitarianism. It is true that we are in a different situation, but our people are not crying for help. They fight back their tears, and with quiet determination and brave smiles, they set about the difficult task of combating poverty and destruction. We do not beg, and never shall. We have gratitude for whatever our friends are able to give us, and we shall remain grateful.'[3] 미국 3차 대각성 운동을 일으킨 드와이트 무디의 인척이 설립한 기독교 계열 출판사이다. 이승만의 일본 내막기도 여기서 출간되었다.[4] 한미협회의 중국인 2명 중 한 명이며, "생활의 발견"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한국에선 '임어당'으로 알려져 있다.
'My greatest hope is that the American people are ready to organize a nationwide movement, a mighty crusade, to get rid of the many sub-communists, totalitarianism. It is true that we are in a different situation, but our people are not crying for help. They fight back their tears, and with quiet determination and brave smiles, they set about the difficult task of combating poverty and destruction. We do not beg, and never shall. We have gratitude for whatever our friends are able to give us, and we shall remain grateful.'[3] 미국 3차 대각성 운동을 일으킨 드와이트 무디의 인척이 설립한 기독교 계열 출판사이다. 이승만의 일본 내막기도 여기서 출간되었다.[4] 한미협회의 중국인 2명 중 한 명이며, "생활의 발견"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한국에선 '임어당'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