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언론 논설, 취임사, 연설 등 이승만의 주요 어록을 정리한 문서. 출처로 제시된 논저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이승만/관련 자료 문서 참조.2. 대통령 재임 이전
선원들이 술에 취해있거나, 잠들어 있거나, 눈이 멀고 팔이 부러져서 배를 움직일수록 위태롭게 만들어 물이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데 이 배의 선객들은 구조하는 일을 남에게 미뤄두고 무심히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라고 하겠는가. 선객들은 남이 건져주기를 바라지 말고 선원들에게 버려두지도 말고 각자 자기 일로 생각하고 자기 힘을 다해야 한다. 우리 대한 삼천리 강산은 곧 2천만 생명을 싣고 세찬 바람과 험한 물결이 몰아치는 큰 바다를 외로이 나가는 배와 같다. 우리는 지금 당장 물에 빠져가는 배 안에 앉아있으니 정신을 차리고 보아야 한다.
저서 <독립정신> 中[1]
저서 <독립정신> 中[1]
대한 인민의 마음속에 독립이란 두 글자가 없기 때문이다. 인민들의 마음속에 독립하려는 마음을 넣어주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제일가는 일이다.
저서 <독립정신> 中
저서 <독립정신> 中
사람을 두 가지 부류로 구별할 수 있으니 하나는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다.
저서 <독립정신> 中
저서 <독립정신> 中
전국을 통틀어 양반은 1000분의 1도 못된다. 나머지 999는 모두 그 양반들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실로 나라에서는 1000분의 999는 다 잃어버리고 앉아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저서 <독립정신> 中[2]
저서 <독립정신> 中[2]
지금 이 시대에 노예의 풍속을 가진 나라는 대한과 청국밖에 없다. 슬프다, 대한의 형제들이여. 어찌하여 옛 법에 익숙하여 내 나라 내 동포를 소나 말 같이 대접하며 짐승처럼 사고파는가. 미국 사람들은 저들과 생김새가 다른 흑인 노예를 해방하기 위해 동포끼리 전쟁까지 벌이지 않았던가. 어찌하여 이 나라는 동포를 노예로 부림을 당연하게 여겨 노예법을 여태껏 폐지하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저서 <독립정신> 中
저서 <독립정신> 中
우리는 우리 집 종들이나 남의 집 하인배들, 낮고 천하게 여기는 부인과 여자들, 내 자식이나 남의 자식이나 어린아이들을 다 한층 올려 생각해야 한다. 그들을 사람의 숫자에 포함시키지 않고 사람에게 속한 물건으로만 알던 모든 악습을 버리고, 국법과 올바른 도리 앞에서 그들을 모두 동등한 사람으로 대접하여 따로 서서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 국민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
저서 <독립정신> 中[3]
저서 <독립정신> 中[3]
모든 정치제도의 성패는 항상 그 나라 백성들의 수준에 달려있다. 굽어 자란 나뭇가지는 갑자기 펴지 못하고, 앉아서만 자란 아이는 하루에 멀리 가지 못한다.
저서 <독립정신> 中
저서 <독립정신> 中
나라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권리만 주장하고 공공의 이익을 등한시한다면,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것이 오히려 권리를 훼손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저서 <독립정신> 中
저서 <독립정신> 中
교육을 하는 근본 목적은 사람이 가진 지혜와 본성을 거울처럼 맑게 닭아 세상만사를 있는 그대로 거울처럼 비추게 하여 잘잘못과 우열을 가리게 하려는 것이다.
저서 <독립정신> 中[4]
저서 <독립정신> 中[4]
우리는 선진국 사람들이 알고 있는 여러 가지를 모두 배우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배우는 데 그치지 말고 실행하고 옮겨야 한다. 남들이 흉보고 욕하는 것을 상관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모범을 보여야 한다. 형식적으로 하는 체해서는 소용이 없다. 모범을 보이는 사람은 진심으로 부러워하고 헌신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저서 <독립정신> 中
저서 <독립정신> 中
진실로 만국이 서로 통하여 한 집 같이 섞여 살며 형제같이 사랑하여 정의가 친밀하면 풍속이 스스로 같아지고 인물, 언어, 문자까지도 다 한결같이 될 것이다. 그렇게 지난 100년 동안에 세상이 변해 온 것을 보면 오는 100년에도 또 어떻게 변할지 짐작할 수 있다.
저서 <독립정신> 中
저서 <독립정신> 中
구구절절이 더없이 적실하여 장부의 혈기를 격동시키는 중에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모든 사람은 다 동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이니, 이 한 구절로 말미암아 모든 조목의 근본이 생겼다. 사람마다 나도 남과 같은 권리가 있음을 깨닫고, 그 권리를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긴 결과 이렇듯이 보배로운 기초를 세우게 된 것이다.
저서 <독립정신> 中
저서 <독립정신> 中
조물주는 모든 사람에게 다 같이 권리를 주셨으므로 생명과 자유의 안락한 복을 추구하는 것은 다 남이 빼앗을 수 없는 권리이다. 한 사람이나 한 나라가 자기가 제 일을 하는 것을 자주라 이르며, 따로 서서 남에게 의지하지 않은 것을 독립이라 이르는데, 이는 인류로 태어난 자에게 부여된 천품으로서 인간이라면 모두 다 같이 타고난 것이다.
저서 <독립정신> 中
저서 <독립정신> 中
공산주의는 실패한다.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이유 때문이다.
1. 재산을 나누면 근로의욕이 꺾인다.
2. 기업가를 없애면 혁신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3. 지식인을 없애면 모든 사람이 우매해진다.
4. 종교를 없애면 도덕이 타락한다.
5. 소련을 조국으로 믿으면 배반당한다.
1923년 태평양잡지 '공산당의 당부당' 中
1. 재산을 나누면 근로의욕이 꺾인다.
2. 기업가를 없애면 혁신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3. 지식인을 없애면 모든 사람이 우매해진다.
4. 종교를 없애면 도덕이 타락한다.
5. 소련을 조국으로 믿으면 배반당한다.
1923년 태평양잡지 '공산당의 당부당' 中
One who believes in the democratic principles of government is essentially an individualist. The power of the government is derived from his citizenship. Therefore, his personal rights and personal freedom are the fundamental basis upon which the structure of the nation is built. Different from totalitarian ideology, which holds that the people should obey the government, a democracy, on the other hand, insists that the people's rights should be protected against any possibility of the government's usurpation.
민주주의적 정부 원리를 신봉하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개인주의자다. 정부의 권력은 시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개인의 권리와 자유는 그 위에 한 국가의 구조가 세워지는 기반이 된다. 국민은 정부에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체주의 이념과 달리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권리가 정부에 의한 그 어떤 침해의 가능성으로부터도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서 <Japan Inside Out> 中
민주주의적 정부 원리를 신봉하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개인주의자다. 정부의 권력은 시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개인의 권리와 자유는 그 위에 한 국가의 구조가 세워지는 기반이 된다. 국민은 정부에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체주의 이념과 달리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권리가 정부에 의한 그 어떤 침해의 가능성으로부터도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서 <Japan Inside Out> 中
It has been my task to present the case of Korea as an example to show that she is a victim—the first—of Japan's lust for power. Her destiny cannot be separated from that of the free peoples of the world, nor from the lot of those peoples who once knew freedom and have lost it for a while. At long last—perhaps sooner than we dare to hope—the democratic forces of the world will thrust the Japanese back on their islands, and peace will reign again in the Pacific. In that day Korea will rejoin the ranks of the free and again become known as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한국이야말로 일본의 야욕에 바쳐진 첫 희생양이었다는 사실을 조명하는 것은 나의 오래된 숙업이었다. 한국의 운명은 세계의 자유인들의 운명과 분리될 수 없고, 한 때 자유를 누렸지만 지금 자유를 상실한 자들의 운명과도 분리될 수 없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어쩌면 우리의 바램보다 일찍, 전 세계의 민주주의 진영이 일본을 패망시켜 섬 안으로 밀어넣을 것이고, 태평양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그 날이 오면 한국은 자유 국가들의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고, 다시금 고요한 아침의 땅으로 알려지게 되리라.
저서 <Japan Inside Out> 中
한국이야말로 일본의 야욕에 바쳐진 첫 희생양이었다는 사실을 조명하는 것은 나의 오래된 숙업이었다. 한국의 운명은 세계의 자유인들의 운명과 분리될 수 없고, 한 때 자유를 누렸지만 지금 자유를 상실한 자들의 운명과도 분리될 수 없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어쩌면 우리의 바램보다 일찍, 전 세계의 민주주의 진영이 일본을 패망시켜 섬 안으로 밀어넣을 것이고, 태평양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그 날이 오면 한국은 자유 국가들의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고, 다시금 고요한 아침의 땅으로 알려지게 되리라.
저서 <Japan Inside Out> 中
우리 독립의 서광이 비치나니 일심합력으로 왜적을 파하고 우리 자유를 우리 손으로 회복합시다. 나의 사랑하는 동포여, 이 말을 잊지 말고 전파하며 준행하시오. 일후에 또 다시 말할 기회가 있으려니와 우리의 자유를 회복할 것이 이때의 우리의 손에 달렸으니 분투하라! 싸워라! 우리가 피를 흘려야 자손 만대의 자유 기초를 회복할 것이다. 싸워라! 나의 사랑하는 2천 3백만 동포여!
1942년 6월 13일, VOA 단파방송연설 中
1942년 6월 13일, VOA 단파방송연설 中
오늘은 공산당에 대한 나의 감상을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나는 공산당에 대하여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 주의에 대하여도 찬성함으로 우리나라의 경제대책을 세울 때 공산주의를 채용할 점이 많이 있다.
매일신보 1945년 10월 26일
매일신보 1945년 10월 26일
이론상으로 공산주의는 그럴듯하다. 만일 이 주의를 전달하려는 사람들이 단순히 이 주의를 주의대로 전하면 나도 그들을 존경할 것이다. 만일 이 주의가 민주주의와 같이 세계 대중에 복리를 줄 만한 주의가 된다면 아무도 막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공산주의를 선전하는 자들이 아름다운 이상으로서 양의 가죽을 만들어 세계 정복을 꿈꾸는 야심자를 덮어 씌워 공산주의를 소련의 앞잡이로 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세계 사람들에게 각각 정부를 파괴시키고 나라를 크레믈린의 독재하에 넣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당신의 동생일지라도 공산주의의 훈련을 과학적으로 받은 뒤에는 당신의 동생이 아니다. 그 동생은 따라서 소련을 자기의 조국이라고 부르고 국가 공업을 파괴하며, 당신의 정부를 뒤엎고 당신의 동포를 넘겨 준다. 그러면 드디어는 당신의 나라가 소련의 위성국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엔 당신의 동생은 집없는 거지가 되고, 가족은 노예가 되며, 그 뒤에는 이것을 깨달아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1946년 2월, 6주간의 민정 시찰을 위해 지방을 순회하며 돌면서[8]
1946년 2월, 6주간의 민정 시찰을 위해 지방을 순회하며 돌면서[8]
3. 대통령 재임기
민주정체의 요소는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국민이나 정부는 항상 주의해서 개인의 언론과 집회와 종교와 사상 등 자유를 극력 보호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인민의 자유권리와 참정권을 다 허락하되 불량분자들이 민권자유라는 구실을 이용하여 정부를 전복하려는 것을 허락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기념 연설 中
민주주의가 인민의 자유권리와 참정권을 다 허락하되 불량분자들이 민권자유라는 구실을 이용하여 정부를 전복하려는 것을 허락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기념 연설 中
조금만 더 견디면 전쟁이 끝난다. 전쟁이 끝나면 우리는 나라를 새로 건설해야 한다. 전후 복구와 나라를 발전시키려면 고급 교육을 받은 인재가 필요하다. 그 때를 위해 대학 재학생들을 보존시켜야 한다. 아무리 욕을 먹더라도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
1951년 2월 18일 대학생 징집연기조치 시행
1951년 2월 18일 대학생 징집연기조치 시행
배신을 일삼는 일인들은 진주만을 공격함으로써 미국을 정복하고자 하였소. 그러나 미국은 일본의 경제 구조를 엄청난 규모로 구축해 주었고, 그래서 일부 아시아 국가의 국민들 중에는 일본만큼 대단한 지원을 받으려면 미국에 선전포고를 할 수밖에 없다고 농담을 할 정도라오.
대일 미국 원조와 일본경제의 급속한 부흥에 대해 분개하며 남긴 1951년 4월 25일자 메모
대일 미국 원조와 일본경제의 급속한 부흥에 대해 분개하며 남긴 1951년 4월 25일자 메모
전쟁이 끝나면 하루빨리 부흥 사업을 펼쳐야 할 것이니 그 기초가 되는 철강 산업 진흥책을 마련하라. 특히 주택 건설 사업을 위한 함석, 철판 등의 공급을 담당할 제강 사업 건설 계획을 우선적으로 강력히 추진하라. 미국이 돈을 못 내겠다면 정부가 보유한 자체 보유 달러로 공장을 지으라.
1953년 4월 4일 내각에 특별 지시[11]
1953년 4월 4일 내각에 특별 지시[11]
내가 당 덕종이야?[12]
전쟁 발발 직후인 6월 27일, 대전으로 피란을 온 국회의원들이 대국민 사과문 발표를 결의하고, 이를 장택상과 신익희, 조봉암 등 의원들이 전달하자 이승만이 한 대답.
전쟁 발발 직후인 6월 27일, 대전으로 피란을 온 국회의원들이 대국민 사과문 발표를 결의하고, 이를 장택상과 신익희, 조봉암 등 의원들이 전달하자 이승만이 한 대답.
내가 당나라 덕종마냥 덕이 없어서 이런 고초를 겪게 했다고 말하란 말이냐? 나는 사과 못한다. 사과하고 싶으면 당신들이나 해라.[13]"서울 시민 여러분들께 죄송합니다" 라고 공개 사과문을 발표해야만 했다.]
내무부치안국, "한국경찰사", 1973, 제2권 제2편 제7장, 547쪽
내무부치안국, "한국경찰사", 1973, 제2권 제2편 제7장, 547쪽
제너럴 원, 자네는 지금 공산 북한으로의 귀환을 반대하는 애국 청년들을 포로라고 생각하나? 그들은 모두 우리의 동포요, 애국하는 청년들이야, 그들을 구해야 해.
반공포로를 석방하기 직전, 원용덕 헌병 사령관을 불러 자신의 의도를 내비치면서[a]
반공포로를 석방하기 직전, 원용덕 헌병 사령관을 불러 자신의 의도를 내비치면서[a]
나는 내 신분의 권한으로서 전 반공포로를 석방하도록 명령하였다. 나는 이 조치를 단행함에 있어서 유엔군 당국 및 관계 당국과 전연 협의 없이 진행한 것이다. 나는 벌써부터 제네바 협정 및 인권 옹호의 제원칙하에 반공 포로들은 석방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포로 석방 직후 자기 심정을 토로하면서[a]
포로 석방 직후 자기 심정을 토로하면서[a]
저 모습이 얼마나 자유스럽고 평화스럽습니까? 나는 반공 포로를 공산 지옥으로 보내느냐, 광명의 이땅에 머무르게 하느냐는 문제를 가지고 근 일주일 동안 기도한 끝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이번 조처를 감행한 것입니다.
아이젠하워 특사로 파견된 로버트슨 미 국무성 차관보가 휴전을 설득하러 이승만을 찾아갔을 때, 창 밖의 경무대 숲을 날고 있는 까치 한 쌍을 가리키며[a]
아이젠하워 특사로 파견된 로버트슨 미 국무성 차관보가 휴전을 설득하러 이승만을 찾아갔을 때, 창 밖의 경무대 숲을 날고 있는 까치 한 쌍을 가리키며[a]
나는 정전이라는 것이 결코 싸움을 적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게 하며 고난과 파괴를 더하고 전쟁과 파괴적 행동으로 공산 측이 더욱 전진하여 오게 되는 서곡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에 정전의 조인을 반대하여 왔던 것이다.
당분간 공산압제 하에서 계속 고생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우리들의 동포들에게 우리는 다음과 같이 외친다. 동포여 희망을 버리지 마시요, 우리는 여러분을 잊지 않을 것이며, 모른 체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한국 민족의 기본 목표는 계속 남아있으며 결국 성수되고야 말 것입니다.
1953년 7월 6.25 전쟁 정전협정 직후의 성명[17]
당분간 공산압제 하에서 계속 고생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우리들의 동포들에게 우리는 다음과 같이 외친다. 동포여 희망을 버리지 마시요, 우리는 여러분을 잊지 않을 것이며, 모른 체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한국 민족의 기본 목표는 계속 남아있으며 결국 성수되고야 말 것입니다.
1953년 7월 6.25 전쟁 정전협정 직후의 성명[17]
언제까지 미국이 사다주는 비료에 의존하고 살아야 하는가. 당장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미국이 제공하는 원조자금으로 공장을 건설하고 기술자를 양성해서 필요한 물자를 국내에서 생산해야 우리 민족이 살아날 수 있다. 내각은 무슨 일이 있어도 미국 측과 상의하여 반드시 비료 공장을 지어라.
비료 공장 건설안을 거부한 미국에 대해
비료 공장 건설안을 거부한 미국에 대해
내가 산에 올라가 나무 한 토막이라도 베는 사람은 엄벌에 처한다고 공포했지만 소용이 없어요. 당장 땔감 없어 밥도 못 지어먹을 형편인 국민들에게 나무를 베지 말라고 해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말이오. 다른 땔감을 만들어주고 산에 올라가지 말라고 해야 국가의 영이 제대로 서는 것이지, 지금 우리가 석탄 열심히 캐서 연료를 공급해야 사람들이 나무를 베지 않을 것이오. 내가 어떻게 하든 식량은 미국에서 끌어다 댈 테니 당신은 땔감 문제를 책임지시오. 우리 힘을 합쳐 나라를 살려봅시다. 내 눈에 서울시내에 장작 실은 마차가 다니는 모습이 안 보이게 해 주시오.
1957년경 정인욱 강원탄광 사장을 대한석탄공사 총재로 임명하며[19]
1957년경 정인욱 강원탄광 사장을 대한석탄공사 총재로 임명하며[19]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 ‘3.15 정부통령선거’에 많은 부정이 있다하니 선거를 다시 하도록 지시하였다.
1960년 4월 26일 대통령 하야 성명에서
1960년 4월 26일 대통령 하야 성명에서
나는 위로받을 필요가 없다. 불의에 궐기한 백만 학도가 있고 정신이 살아있는 국민이 있으니, 나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나라의 미래는 밝다.
4.19로 하야 후, 망명 전 이화장에서 머무를 때 대만 장제스 총통이 보낸 위로편지에 대한 답장 中[22] [23]
4.19로 하야 후, 망명 전 이화장에서 머무를 때 대만 장제스 총통이 보낸 위로편지에 대한 답장 中[22] [23]
잃었던 나라의 독립을 다시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는지 우리 국민은 알아야 하며 불행했던 과거사를 거울삼아 다시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노예의 멍에를 메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우리 민족에게 주는 유언이다.
유언
유언
이제 저의 천명이 다하여 감에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셨던 사명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몸과 마음이 너무 늙어 버겁습니다. 바라옵건대 우리 민족의 앞날에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함께 하시옵소서. 우리 민족을 오직 주님께 맡기고 가겠습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망 직전 마지막 기도
사망 직전 마지막 기도
3.1. 초대 대통령 취임사
여러 번 죽었던 이 몸이 하나님의 은혜와 동포의 애호로 지금까지 살아오다가 오늘에 이와같이 영광스러운 추대를 받은 나로서는 일변 감격한 마음과 일변 심당(心當)키 어려운 책임을 지고 두려운 생각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기쁨이 극(極)하면 웃음으로 변하여 눈물이 된다는 것을 글에서 보고 말을 들었던 것입니다. 요사이 나의 치하(致賀)하는 남녀 동포가 모두 눈물을 씻으며 고개를 돌립니다.
각처에서 축전 오는 것을 보면 모두 눈물을 금하기 어렵다합니다. 나는 본래 나의 감상으로 남에게 촉감(觸感)될 말을 하지 않기로 매양 힘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목석간담(木石肝膽)이 아닌만치 뼈에 맺히는 눈물을 금하기 어려웁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40년 전에 잃었던 나라를 다시 찾는 것이요 죽었던 민족이 다시 사는 것이 오늘 이에서 표면(表面)되는 까닭입니다.
대통령 선서하는 이 자리에서 하나님과 동포 앞에서 나의 직무를 다하기로 일층(一層) 더 결심하며 맹세합니다. 따라서 여러 동포들도 오늘 한층 더 분발해서 각각 자기의 몸을 잊어버리고 민족 전체의 행복을 위하여 대한민국의 국민된 영광스럽고 신성한 직책을 다 하도록 마음으로 맹서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나에게 맡기는 직책은 누구나 한 사람의 힘으로 성공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중대한 책임을 내가 용감히 부담할 때에 내 기능이나 지혜를 믿고 나서는 것이 결코 아니며 전혀 애국 남녀의 합의 합력함으로만 진행할 수 있는 것을 믿는 바입니다. 이번 우리 총선거의 대성공을 모든 우방들이 칭찬하기에 이른 것은 우리 애국 남녀가 단순한 애국 정신으로 각각 직책을 다한 연고입니다. 그 결과로 국회 성립이 또한 완전무결한 민주주의제로 조직되어 2, 3 정당이 그 안에 대표가 되었고 무소속과 좌익색태(左翼色態)로 주목받은 대의원이 또한 여럿이 있게 된 것입니다.
기왕 경험으로 추측하면 이 많은 국회의원 중에서 사상 충돌로 분쟁 분열을 염려한 사람들이 없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중대 문제에 대하여 종종 극열한 쟁론이 있다가도 필경 표결될 때에는 다 공정한 자유 의견을 표시하여 순리적으로 진행하게 되므로 헌법 제정과 정부조직법을 다 민의대로 종다수 통과된 후에 아무 이의 없이 다 복종하게 되므로 이 중대한 일을 조속한 한도 내에 원만히 채결하여 오늘 이 자리에 이렇게 된 것이니 국회의원 일동과 전문위원 여러분의 애국 성심으로 우리가 다 감복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나는 국회의장의 책임을 사면하고 국회에서 다시 의장을 선거할 것인데 만일 국회의원 중에서 정부 처장으로 임명될 분이 있게 되면 그 후임자는 각기 소관투표구(所管投票區)에서 갱선(更選)하게 될 것이니 원만히 표결된 후에 의장은 선거할듯하며 그동안은 국회부의장|부의장 두 분이 업무를 대임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부의장 두 분이 그동안 의장을 보좌해서 각 방면으로 도와 협의 진행케 하신 것을 또한 감사히 생각하는 바입니다.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조직에 대해서 그간 여러 가지로 낭설이 유포되었으나 이는 다 추측적 언론에 불과하여 며칠 안으로 결정 공포될 때에는 여론상 추측과는 크게 같지 않을 것이니 부언낭설(浮言浪說)을 많이 주의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정부를 조직하는데 제일 중대히 주의할 바는 두 가지 입니다.
첫째는 일 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들 것입니다.
둘째로는 이 기관이 견고해져서 흔들리지 않게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회 명예나 정당 단체의 세력이나 또 개인 사정상 관계로 나를 다 초월하고 오직 기능있는 일꾼들과 함께 모여 앉아서 국회에서 정한 법률을 민의대로 진행해나갈 그 사람끼리 모여서 한 기관이 되어야 할 것이니 우리는 그 분들을 물색하는 중입니다. 여러분들은 인격이 너무 커서 적은 자리에 채울 수 없는 이도 있고 큰 자리를 채울 수 없는 이도 있으나 참으로 큰 사람은 능히 큰 자리에도 채울 수 있고 적은 자리에도 채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적은 자리 차지하기를 부끄러이 하지 않습니다.
기왕에도 누가 말한바와 같이 우리는 공산당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산당의 매국주의를 반대하는 것이므로 이북의 공산주의자들은 절실히 깨닫고 일제히 회심개과(悔心改過)해서 우리와 같은 보조를 취하여 하루바삐 평화적으로 남북을 통일해서 정치와 경제상 모든 복리를 다같이 누리게 하기를 바라며 부탁합니다. 만일 종시(終始) 깨닫지 못하고 분열을 주장해서 남의 괴뢰가 되기를 감심(甘心)할진대 인심이 결코 방임치 않을 것입니다.
대외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세계 모든 나라와 친선해서 평화를 증진하며 외교 통상에 균등한 이익을 같이 누리기를 절대 도모할 것입니다. 교제상 만일 친선에 구별이 있으면 이 구별은 우리가 시작하는 것이 아니요 타동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느 나라든지 우리에게 친선히 한 나라는 우리가 친선히 대우할 것이요 친선치 않게 우리를 대우하는 나라는 우리도 친선히 대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과거 40년간에 우리가 국제상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것은 세계 모든 나라가 우리와 접촉할 기회가 없었던 까닭입니다. 일인들의 선전만을 듣고 우리를 판단해 왔었지만 지금부터는 우리 우방들의 도움으로 우리가 우리나라를 찾게 되었은즉 우리가 우리 일도 할 수 있으니 세계 모든 나라들은 남의 말을 들어 우리를 판단하지 말고 우리 하는 일을 보아서 우리의 가치를 우리의 중량대로 판정해주는 것을 우리가 요청하는 바이니 우리 정부와 민중은 외국의 선전을 중요히 여기어서 평화와 자유를 사랑하는 각국 남녀로 하여금 우리의 실정을 알려주어서 피차에 양해를 얻어야 정의가 상통하여 교제가 친밀할 것이니 우리의 복리만 구함이 아니요 세계 평화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새 나라를 건설하는데 새로운 정부가 절대 필요하지만은 새 정신이 아니고는 결코 될 수 없는 일입니다. 부패한 정신으로 신성한 국가를 이룩하지 못하나니 이런 민족이 날로 새로운 정신과 새로운 행동으로 구습을 버리고 새 길을 찾아서 날로 분발 전진하여야 지나간 40년 동안 잃어버린 세월을 다시 회복해서 세계 문명국에 경쟁할 것이니 나의 사랑하는 삼천만 남녀는 이날부터 더욱 분투용진(奮鬪勇進)해서 날로 새로운 백성을 이룸으로서 새로운 국가를 만년반석(萬年盤石) 위에 세우기로 결심합니다.
1948년 7월 24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
각처에서 축전 오는 것을 보면 모두 눈물을 금하기 어렵다합니다. 나는 본래 나의 감상으로 남에게 촉감(觸感)될 말을 하지 않기로 매양 힘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목석간담(木石肝膽)이 아닌만치 뼈에 맺히는 눈물을 금하기 어려웁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40년 전에 잃었던 나라를 다시 찾는 것이요 죽었던 민족이 다시 사는 것이 오늘 이에서 표면(表面)되는 까닭입니다.
대통령 선서하는 이 자리에서 하나님과 동포 앞에서 나의 직무를 다하기로 일층(一層) 더 결심하며 맹세합니다. 따라서 여러 동포들도 오늘 한층 더 분발해서 각각 자기의 몸을 잊어버리고 민족 전체의 행복을 위하여 대한민국의 국민된 영광스럽고 신성한 직책을 다 하도록 마음으로 맹서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나에게 맡기는 직책은 누구나 한 사람의 힘으로 성공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중대한 책임을 내가 용감히 부담할 때에 내 기능이나 지혜를 믿고 나서는 것이 결코 아니며 전혀 애국 남녀의 합의 합력함으로만 진행할 수 있는 것을 믿는 바입니다. 이번 우리 총선거의 대성공을 모든 우방들이 칭찬하기에 이른 것은 우리 애국 남녀가 단순한 애국 정신으로 각각 직책을 다한 연고입니다. 그 결과로 국회 성립이 또한 완전무결한 민주주의제로 조직되어 2, 3 정당이 그 안에 대표가 되었고 무소속과 좌익색태(左翼色態)로 주목받은 대의원이 또한 여럿이 있게 된 것입니다.
기왕 경험으로 추측하면 이 많은 국회의원 중에서 사상 충돌로 분쟁 분열을 염려한 사람들이 없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중대 문제에 대하여 종종 극열한 쟁론이 있다가도 필경 표결될 때에는 다 공정한 자유 의견을 표시하여 순리적으로 진행하게 되므로 헌법 제정과 정부조직법을 다 민의대로 종다수 통과된 후에 아무 이의 없이 다 복종하게 되므로 이 중대한 일을 조속한 한도 내에 원만히 채결하여 오늘 이 자리에 이렇게 된 것이니 국회의원 일동과 전문위원 여러분의 애국 성심으로 우리가 다 감복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나는 국회의장의 책임을 사면하고 국회에서 다시 의장을 선거할 것인데 만일 국회의원 중에서 정부 처장으로 임명될 분이 있게 되면 그 후임자는 각기 소관투표구(所管投票區)에서 갱선(更選)하게 될 것이니 원만히 표결된 후에 의장은 선거할듯하며 그동안은 국회부의장|부의장 두 분이 업무를 대임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부의장 두 분이 그동안 의장을 보좌해서 각 방면으로 도와 협의 진행케 하신 것을 또한 감사히 생각하는 바입니다.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조직에 대해서 그간 여러 가지로 낭설이 유포되었으나 이는 다 추측적 언론에 불과하여 며칠 안으로 결정 공포될 때에는 여론상 추측과는 크게 같지 않을 것이니 부언낭설(浮言浪說)을 많이 주의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정부를 조직하는데 제일 중대히 주의할 바는 두 가지 입니다.
첫째는 일 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들 것입니다.
둘째로는 이 기관이 견고해져서 흔들리지 않게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회 명예나 정당 단체의 세력이나 또 개인 사정상 관계로 나를 다 초월하고 오직 기능있는 일꾼들과 함께 모여 앉아서 국회에서 정한 법률을 민의대로 진행해나갈 그 사람끼리 모여서 한 기관이 되어야 할 것이니 우리는 그 분들을 물색하는 중입니다. 여러분들은 인격이 너무 커서 적은 자리에 채울 수 없는 이도 있고 큰 자리를 채울 수 없는 이도 있으나 참으로 큰 사람은 능히 큰 자리에도 채울 수 있고 적은 자리에도 채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적은 자리 차지하기를 부끄러이 하지 않습니다.
기왕에도 누가 말한바와 같이 우리는 공산당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산당의 매국주의를 반대하는 것이므로 이북의 공산주의자들은 절실히 깨닫고 일제히 회심개과(悔心改過)해서 우리와 같은 보조를 취하여 하루바삐 평화적으로 남북을 통일해서 정치와 경제상 모든 복리를 다같이 누리게 하기를 바라며 부탁합니다. 만일 종시(終始) 깨닫지 못하고 분열을 주장해서 남의 괴뢰가 되기를 감심(甘心)할진대 인심이 결코 방임치 않을 것입니다.
대외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세계 모든 나라와 친선해서 평화를 증진하며 외교 통상에 균등한 이익을 같이 누리기를 절대 도모할 것입니다. 교제상 만일 친선에 구별이 있으면 이 구별은 우리가 시작하는 것이 아니요 타동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느 나라든지 우리에게 친선히 한 나라는 우리가 친선히 대우할 것이요 친선치 않게 우리를 대우하는 나라는 우리도 친선히 대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과거 40년간에 우리가 국제상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것은 세계 모든 나라가 우리와 접촉할 기회가 없었던 까닭입니다. 일인들의 선전만을 듣고 우리를 판단해 왔었지만 지금부터는 우리 우방들의 도움으로 우리가 우리나라를 찾게 되었은즉 우리가 우리 일도 할 수 있으니 세계 모든 나라들은 남의 말을 들어 우리를 판단하지 말고 우리 하는 일을 보아서 우리의 가치를 우리의 중량대로 판정해주는 것을 우리가 요청하는 바이니 우리 정부와 민중은 외국의 선전을 중요히 여기어서 평화와 자유를 사랑하는 각국 남녀로 하여금 우리의 실정을 알려주어서 피차에 양해를 얻어야 정의가 상통하여 교제가 친밀할 것이니 우리의 복리만 구함이 아니요 세계 평화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새 나라를 건설하는데 새로운 정부가 절대 필요하지만은 새 정신이 아니고는 결코 될 수 없는 일입니다. 부패한 정신으로 신성한 국가를 이룩하지 못하나니 이런 민족이 날로 새로운 정신과 새로운 행동으로 구습을 버리고 새 길을 찾아서 날로 분발 전진하여야 지나간 40년 동안 잃어버린 세월을 다시 회복해서 세계 문명국에 경쟁할 것이니 나의 사랑하는 삼천만 남녀는 이날부터 더욱 분투용진(奮鬪勇進)해서 날로 새로운 백성을 이룸으로서 새로운 국가를 만년반석(萬年盤石) 위에 세우기로 결심합니다.
1948년 7월 24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
3.2. 제2대 대통령 취임사
제2대 대통령 취임식은 음성 전체가 모두 녹음되었다.[24] |
오늘 취임식에서 내가 다시 지게 되는 책임은 내가 할 수만 있었으면 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나간 4년 동안에 행한 정부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 앞으로 오는 일을 좀 쉽게 되리라고 바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민국이 이 위험한 때를 당해서 정부 관료나 일반 평민이나 너 나를 물론하고 누구나 각각 나라의 직책과 민족의 사명 외에는 다른 것을 감히 복종할 생각도 못할 것입니다.
우리 생명도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앞에 당한 노력과 고초를 다 피하고 우리 몸의 평안과 마음의 원하는 것은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노소를 막론하고 할 수 있는 대로는 우리의 최선을 다해서 할 것입니다. 밭에서는 노력해서 이남 이북의 우리 국민을 먹여 살릴 일을 하든지 전장에 나가서 악독한 원수를 쳐 물리치게 노력하든지 정부 안에서 무슨 직책을 맡아 진행하도록 하든지 각각 실수하거나 실패하고는 아니 될 것입니다.
이때는 우리가 다 희생적으로 공헌할 때입니다. 모든 한인남녀는 다같이 사명을 맡아서 고상하고 영웅스러운 공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백만명의 반 수 되는 우리 청년들이 희생적 제단에서 저희 목숨을 바쳐서 냉정한 담량과 백절불굴한 결심으로 무도한 공산당의 침략에서 우리를 구해내려고 해 싸우는 중입니다. 2천만 우리 동포는 가산을 잃어버리고 도로에 방황하니 무염지옥을 가진 적군들이 우리를 정복하자는 희망으로 파괴 소탕한 중에서 우리는 살 길을 구하는 중입니다.
이북의 칠백만 우리 형제자매들은 적색 학정 아래서 피를 흘리고 애통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다 구해내지 못하고는 잠시라도 편안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불의한 전쟁을 참혹한 전제로 우리나라는 거의 다 적색 적지가 되어있으며 이백만 우리 동포가 잔혹한 사상을 당하고 보게된 것입니다. 우리 반도에 한 가족도 비참한 지경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 것입니다.
각각 우리의 포악한 원수들의 죄를 징벌하고 우리 파괴된 나라에서 몰아내라는 요청을 하기에 정당한 이유를 아니 가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이 환란에 대해서 우리는 한 가지 경력을 배운게 있는 것이니 이것은 곧 동족상애와 호상원조의 뜻을 깊이 배운 것입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우리가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우리 몸을 둘째 생각하든지 아주 잊어버린 데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런 애국심과 통일 정신으로 우리나라는 오늘날에 이르러서 모든 파괴 중에서도 전보다 몇 갑절 강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충분히 훈련받은 무장한 국방군이 준비되어서 육지와 해면과 공중에서 모든 방면으로 전투력이 증가되며 무기 무장이 날로 구비해지는 것이니 이 용감한 군인들은 모든 연합군의 사랑과 칭찬을 받으며 우리 원수의 부요함과 두려움을 받고 우리 민중의 영원한 감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 국민의 방패가 된 것이지만치 우리는 어디까지든지 이 사람들의 뒤를 바치도록 맹세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앞으로 당하는 몇 해 동안은 우리의 해결할 문제가 중대하고 또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한 가지 위로되는 것은 이 문제를 우리가 혼자 당한 것이 아니고 세계 53개 자유국들이 우리 옆에 서서 나가기를 보증한 것입니다. 또 16개국의 군인들이 우리 땅에서 같이 서서 원수들을 쳐 물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반도에서 일어난 어려운 문제는 세계에서 공동의 투쟁과 충돌에서 자라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어려운 문제를 정복하기에는 우리의 도움과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쟁을 우리 도시와 우리 집에서 싸우느니만치 우리나라를 재건하기에도 또한 다수의 우리의 희생과 우리의 쉬지 않는 노력을 시작하셔야 성취할 것입니다. 우방들이 우리를 도와주는 중이나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직책을 더욱 행할수록 우리 친구들이 더욱 감격되어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들이 더 희생할 것입니다.
이 두 해 때 두 해까지 난리를 겪은 뒤에는 우리의 첫째 직책은 전쟁 전선에서 행할 일입니다. 우리가 승전해서 원수들을 다 항복 받을 때까지는 우리에게는 쉴 수도 없고 끝도 없는 것입니다. 마크 클라크 장군과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은 우리에게 선언하기를 우리 땅에서 토굴을 파고 있는 공산군이 어떠한 강력으로 우리를 쳐들어오던지 우리는 능히 정복시킬 결심과 능력이 상당하다는 것입니다.
이 전쟁 때와 그 후에도 우리의 행할 보편적 우리의 목적은 악독한 원수들이 우리에게 피를 흘리게 한 상처를 합창시키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국제연합 제국과 우리의 가장 친절한 우방인 북미합중국이 여러번 선언하기를 자기들의 목적은 우리와 같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거는 즉 대한이 통일 독립 민주국가로 완전히 회복할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 통일의 목적을 완수해야 되겠다는 구체적 방책은 우리가 확실히 말하기 어려우나 얼마쯤은 우리 원수들의 정략과 계획에 달린 것이요 또 얼마쯤은 우리의 마음 속에 맺힌 결심과 담양과 목적이 얼마나 공고한가에 달린 것입니다. 우리가 한가지 단언하는 것은 우리 한국은 분열되거나 얼마라도 남의 점령을 당하고는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유세계도 공산 제국주의를 허락해서 공산자들이 승리한 것을 길러주게 되고는 자유세계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겁니다. 공산 제국주의는 모든 연합국을 대립해서 전 세계의 민주주의를 타도시킬 목적으로 할 것임으로 기본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자유를 위해서 싸우는 것은 세계의 자유를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승전은 모든 나라들의 승전입니다. 만일 우리가 실패한다면 세계 모든 자유국민에게 비극적인 실패일 것입니다.
자유세계에 단결심은 누구나 깨뜨리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를 치는 힘을 힘이 클수록 모든 반공국들의 공동 안전을 위해서 단결심이 더 단단해질 것입니다. 이 과정은 크레믈린에 있는 모든 불의한 사람들이 먼저 배워야 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이 과정을 잘만 배우게 되면 집단 안전의 길이 우리 앞에 널리 열려서 모든 자유를 원하는 세계 민족들의 한량없는 물산과 번성이 평화의 새 시기를 인도할 것입니다.
우리 국내에서도 모든 내정과 지방의 관계되는 문제들은 앞으로 몇 해 동안에는 국제상의 영향이 없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살 수 없는 물가고등으로 민중의 혈맥을 모두 말려주는 이 문제도 전답에서와 공장과 광산에서 생산력이 충분히 회복되어야 이 문제가 충분히 해결될 것입니다. 우리 도시와 촌락과 우리 가정과 생산 근원을 우리를 도와주어서 집단 안전을 위하여 싸우는 모든 나라들이 각각 자기들의 부담으로 도와줄 수량을 충분히 내어주어야 해결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태평양 전체에 대한 문제와 전 세계에 대한 문제는 지금 한국 내에서의 되어가는 문제와 결연되고 있는 것이니 이는 처음으로 세계 모든 사람들이 담대히 일어나서 근대의 제일 악독한 전쟁을 싸워나가며 공산당 제국주의의 오래 내려오는 것을 끝 맺기로 결심한 까닭입니다. 이 끝은 대한민국에서 막기로 시작된 것입니다. 지금은 나의 개인의 메세지로 우리 국민과 또 친근한 우리 우방들에게 대해서 한마디 말을 드립니다.
내 평생은 우리나라 운명과 같아도 계속적 투쟁과 인내력으로 진행한 것입니다. 어떤 때는 앞에 장애가 어떻게 또 커서 크든지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도 여러번 있었으나 계속해 나온 것입니다. 1882년 한미조약 이후로 우리가 밖으로는 각국의 제국주의와 안으로는 타락하여 가는 군주 정부의 학정을 대항할 적에 희망도 보이지 않을 것을 싸워 온 것입니다.
지금와서는 이 싸움 시작하던 모든 선열들이 다 없어지기 전에 우리 민주정부를 세워서 민의의 굳건한 토대위에 세워놓고 세계 모든 결심한 친구들이 우리를 보호하고 있기에 이른 것입니다. 일본의 무력과 무력의 폭력과 궤휼로 우리의 독립문을 닫혀놓은 뒤에는 세계 모든 나라들이 우리를 포기하고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민중은 조금도 굴복치 않은 것입니다.
우리 국가의 자유를 1907년부터 1912년까지 우리 의병들이 싸우며 보호하려한 것입니다. 1919년에 만세 운동으로 우리가 우리 독립을 세계에 선언하였던 것입니다. 중국과 만주에서는 우리 국군의 잔병이 1945년까지 싸워오다가 마지막으로는 공화 민주국의 결실이 되어 지나간 4년 동안에 처음으로 민국 정부를 건설케 된 것입니다. 우리는 공산당에게 정치상 굴복을 거절해서 싸움하게 된 것입니다.
미국 군정시대 소련과 교섭해서 여러 어려운 문제를 평화적 담판으로 나라를 해결하고 우리나라를 통일시키자는 주의를 가졌던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모든 세계 자유 국가와 합해서 전쟁으로 결말내기로 시작되고 있은 것이니 이 전쟁도 우리 사람들이 이전에 싸워오던 것 같이 전쟁의 결국을 승전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 목적이 우리 이웃의 자유를 없이 하자는 것이 아니고 오직 우리의 자유를 회복하여 보유하자는 것이니만치 우리는 실패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내 간담에 깊이 갈망하며 원하는 바는 내가 60년 동안을 공헌해서 분투노력한 이 나라를 내 생명이 끊어지기 전에 굳건히 안전과 자유와 통일을 민주국가 안에서 성립되는 것을 눈으로 보자는 것입니다. 이번에 소위 정치상 파동이 일대 위기라고 세계에 전파된 것이 실상은 솥 안의 풍파였던 것입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몇몇 외국 친우들과 외국 신문 기자들이 나의 정치적 원수들의 말을 듣고 내가 병력을 이용해서 국회를 해산하고 민국 정체를 없이하련다는 쾌가 괴이한 언론을 곧이도록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평생 역사와 나의 주장하는 목적을 아는 친우들은 이런 낭설을 듣고 웃었으며 혹은 분개했던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 동포가 나를 전적으로 지지한 힘으로 우리가 반대자들과 대립해서 그 끝을 완전히 맺게 될 적에 오래 싸워오던 개헌안을 통과시켜서 대통령 선거권을 국회에 맡겨두지 않고 민중의 직접 투표로 행하기에 이른 것이므로 우리의 민주정체와 주의가 절대로 굳건해진 것입니다.
우리의 자유와 우리의 통일과 우리의 민주정체를 위해서 나는 앞으로도 나의 생명과 나의 공헌을 다 하기를 다시 선언하는 바입니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전 민족에게 대하야 각 개인에게 일일이 말하노니 이 공동 목적을 완전히 달성할 때까지 각인의 모든 생각이나 주장을 다 버리고 일심 협력하라는 것입니다.
4천년의 역사를 계속하여 우리의 신성한 조상들이 계계승승하여 내려오며 이 금수강산에서 살며 일하다가 필요할 때에는 다 일어나서 싸워서 우리의 거룩한 유업을 우리에게 물려주고 주었고 또 앞으로 이 신성한 유업을 보유할 직책을 우리의 손에 맡겨 준 것이니 우리의 오랜 역사상의 어떤 시대를 물론하고 오늘 우리가 당한 형편같이 어려운 적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이 난리를 대담하게 치러 갔고 직책을 다 힘껏 행한 것임을 우리가 다 감복하는 바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다 합해서 연속 진행할 것입니다. 우리가 같이 일하며 같이 희생하며 우리가 같이 싸워서 마침내 승전 할 것입니다. 승전이 우리 마음과 우리 간담에 있을 동안에는 우리가 실패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일 위험한 것은 다 지나갔으며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오직 승전과 성공일 것입니다.
이것으로 마칩니다.
1952년 8월 15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
우리 생명도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앞에 당한 노력과 고초를 다 피하고 우리 몸의 평안과 마음의 원하는 것은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노소를 막론하고 할 수 있는 대로는 우리의 최선을 다해서 할 것입니다. 밭에서는 노력해서 이남 이북의 우리 국민을 먹여 살릴 일을 하든지 전장에 나가서 악독한 원수를 쳐 물리치게 노력하든지 정부 안에서 무슨 직책을 맡아 진행하도록 하든지 각각 실수하거나 실패하고는 아니 될 것입니다.
이때는 우리가 다 희생적으로 공헌할 때입니다. 모든 한인남녀는 다같이 사명을 맡아서 고상하고 영웅스러운 공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백만명의 반 수 되는 우리 청년들이 희생적 제단에서 저희 목숨을 바쳐서 냉정한 담량과 백절불굴한 결심으로 무도한 공산당의 침략에서 우리를 구해내려고 해 싸우는 중입니다. 2천만 우리 동포는 가산을 잃어버리고 도로에 방황하니 무염지옥을 가진 적군들이 우리를 정복하자는 희망으로 파괴 소탕한 중에서 우리는 살 길을 구하는 중입니다.
이북의 칠백만 우리 형제자매들은 적색 학정 아래서 피를 흘리고 애통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다 구해내지 못하고는 잠시라도 편안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불의한 전쟁을 참혹한 전제로 우리나라는 거의 다 적색 적지가 되어있으며 이백만 우리 동포가 잔혹한 사상을 당하고 보게된 것입니다. 우리 반도에 한 가족도 비참한 지경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 것입니다.
각각 우리의 포악한 원수들의 죄를 징벌하고 우리 파괴된 나라에서 몰아내라는 요청을 하기에 정당한 이유를 아니 가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이 환란에 대해서 우리는 한 가지 경력을 배운게 있는 것이니 이것은 곧 동족상애와 호상원조의 뜻을 깊이 배운 것입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우리가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우리 몸을 둘째 생각하든지 아주 잊어버린 데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런 애국심과 통일 정신으로 우리나라는 오늘날에 이르러서 모든 파괴 중에서도 전보다 몇 갑절 강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충분히 훈련받은 무장한 국방군이 준비되어서 육지와 해면과 공중에서 모든 방면으로 전투력이 증가되며 무기 무장이 날로 구비해지는 것이니 이 용감한 군인들은 모든 연합군의 사랑과 칭찬을 받으며 우리 원수의 부요함과 두려움을 받고 우리 민중의 영원한 감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 국민의 방패가 된 것이지만치 우리는 어디까지든지 이 사람들의 뒤를 바치도록 맹세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앞으로 당하는 몇 해 동안은 우리의 해결할 문제가 중대하고 또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한 가지 위로되는 것은 이 문제를 우리가 혼자 당한 것이 아니고 세계 53개 자유국들이 우리 옆에 서서 나가기를 보증한 것입니다. 또 16개국의 군인들이 우리 땅에서 같이 서서 원수들을 쳐 물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반도에서 일어난 어려운 문제는 세계에서 공동의 투쟁과 충돌에서 자라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어려운 문제를 정복하기에는 우리의 도움과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쟁을 우리 도시와 우리 집에서 싸우느니만치 우리나라를 재건하기에도 또한 다수의 우리의 희생과 우리의 쉬지 않는 노력을 시작하셔야 성취할 것입니다. 우방들이 우리를 도와주는 중이나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직책을 더욱 행할수록 우리 친구들이 더욱 감격되어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들이 더 희생할 것입니다.
이 두 해 때 두 해까지 난리를 겪은 뒤에는 우리의 첫째 직책은 전쟁 전선에서 행할 일입니다. 우리가 승전해서 원수들을 다 항복 받을 때까지는 우리에게는 쉴 수도 없고 끝도 없는 것입니다. 마크 클라크 장군과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은 우리에게 선언하기를 우리 땅에서 토굴을 파고 있는 공산군이 어떠한 강력으로 우리를 쳐들어오던지 우리는 능히 정복시킬 결심과 능력이 상당하다는 것입니다.
이 전쟁 때와 그 후에도 우리의 행할 보편적 우리의 목적은 악독한 원수들이 우리에게 피를 흘리게 한 상처를 합창시키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국제연합 제국과 우리의 가장 친절한 우방인 북미합중국이 여러번 선언하기를 자기들의 목적은 우리와 같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거는 즉 대한이 통일 독립 민주국가로 완전히 회복할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 통일의 목적을 완수해야 되겠다는 구체적 방책은 우리가 확실히 말하기 어려우나 얼마쯤은 우리 원수들의 정략과 계획에 달린 것이요 또 얼마쯤은 우리의 마음 속에 맺힌 결심과 담양과 목적이 얼마나 공고한가에 달린 것입니다. 우리가 한가지 단언하는 것은 우리 한국은 분열되거나 얼마라도 남의 점령을 당하고는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유세계도 공산 제국주의를 허락해서 공산자들이 승리한 것을 길러주게 되고는 자유세계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겁니다. 공산 제국주의는 모든 연합국을 대립해서 전 세계의 민주주의를 타도시킬 목적으로 할 것임으로 기본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자유를 위해서 싸우는 것은 세계의 자유를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승전은 모든 나라들의 승전입니다. 만일 우리가 실패한다면 세계 모든 자유국민에게 비극적인 실패일 것입니다.
자유세계에 단결심은 누구나 깨뜨리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를 치는 힘을 힘이 클수록 모든 반공국들의 공동 안전을 위해서 단결심이 더 단단해질 것입니다. 이 과정은 크레믈린에 있는 모든 불의한 사람들이 먼저 배워야 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이 과정을 잘만 배우게 되면 집단 안전의 길이 우리 앞에 널리 열려서 모든 자유를 원하는 세계 민족들의 한량없는 물산과 번성이 평화의 새 시기를 인도할 것입니다.
우리 국내에서도 모든 내정과 지방의 관계되는 문제들은 앞으로 몇 해 동안에는 국제상의 영향이 없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살 수 없는 물가고등으로 민중의 혈맥을 모두 말려주는 이 문제도 전답에서와 공장과 광산에서 생산력이 충분히 회복되어야 이 문제가 충분히 해결될 것입니다. 우리 도시와 촌락과 우리 가정과 생산 근원을 우리를 도와주어서 집단 안전을 위하여 싸우는 모든 나라들이 각각 자기들의 부담으로 도와줄 수량을 충분히 내어주어야 해결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태평양 전체에 대한 문제와 전 세계에 대한 문제는 지금 한국 내에서의 되어가는 문제와 결연되고 있는 것이니 이는 처음으로 세계 모든 사람들이 담대히 일어나서 근대의 제일 악독한 전쟁을 싸워나가며 공산당 제국주의의 오래 내려오는 것을 끝 맺기로 결심한 까닭입니다. 이 끝은 대한민국에서 막기로 시작된 것입니다. 지금은 나의 개인의 메세지로 우리 국민과 또 친근한 우리 우방들에게 대해서 한마디 말을 드립니다.
내 평생은 우리나라 운명과 같아도 계속적 투쟁과 인내력으로 진행한 것입니다. 어떤 때는 앞에 장애가 어떻게 또 커서 크든지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도 여러번 있었으나 계속해 나온 것입니다. 1882년 한미조약 이후로 우리가 밖으로는 각국의 제국주의와 안으로는 타락하여 가는 군주 정부의 학정을 대항할 적에 희망도 보이지 않을 것을 싸워 온 것입니다.
지금와서는 이 싸움 시작하던 모든 선열들이 다 없어지기 전에 우리 민주정부를 세워서 민의의 굳건한 토대위에 세워놓고 세계 모든 결심한 친구들이 우리를 보호하고 있기에 이른 것입니다. 일본의 무력과 무력의 폭력과 궤휼로 우리의 독립문을 닫혀놓은 뒤에는 세계 모든 나라들이 우리를 포기하고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민중은 조금도 굴복치 않은 것입니다.
우리 국가의 자유를 1907년부터 1912년까지 우리 의병들이 싸우며 보호하려한 것입니다. 1919년에 만세 운동으로 우리가 우리 독립을 세계에 선언하였던 것입니다. 중국과 만주에서는 우리 국군의 잔병이 1945년까지 싸워오다가 마지막으로는 공화 민주국의 결실이 되어 지나간 4년 동안에 처음으로 민국 정부를 건설케 된 것입니다. 우리는 공산당에게 정치상 굴복을 거절해서 싸움하게 된 것입니다.
미국 군정시대 소련과 교섭해서 여러 어려운 문제를 평화적 담판으로 나라를 해결하고 우리나라를 통일시키자는 주의를 가졌던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모든 세계 자유 국가와 합해서 전쟁으로 결말내기로 시작되고 있은 것이니 이 전쟁도 우리 사람들이 이전에 싸워오던 것 같이 전쟁의 결국을 승전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 목적이 우리 이웃의 자유를 없이 하자는 것이 아니고 오직 우리의 자유를 회복하여 보유하자는 것이니만치 우리는 실패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내 간담에 깊이 갈망하며 원하는 바는 내가 60년 동안을 공헌해서 분투노력한 이 나라를 내 생명이 끊어지기 전에 굳건히 안전과 자유와 통일을 민주국가 안에서 성립되는 것을 눈으로 보자는 것입니다. 이번에 소위 정치상 파동이 일대 위기라고 세계에 전파된 것이 실상은 솥 안의 풍파였던 것입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몇몇 외국 친우들과 외국 신문 기자들이 나의 정치적 원수들의 말을 듣고 내가 병력을 이용해서 국회를 해산하고 민국 정체를 없이하련다는 쾌가 괴이한 언론을 곧이도록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평생 역사와 나의 주장하는 목적을 아는 친우들은 이런 낭설을 듣고 웃었으며 혹은 분개했던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 동포가 나를 전적으로 지지한 힘으로 우리가 반대자들과 대립해서 그 끝을 완전히 맺게 될 적에 오래 싸워오던 개헌안을 통과시켜서 대통령 선거권을 국회에 맡겨두지 않고 민중의 직접 투표로 행하기에 이른 것이므로 우리의 민주정체와 주의가 절대로 굳건해진 것입니다.
우리의 자유와 우리의 통일과 우리의 민주정체를 위해서 나는 앞으로도 나의 생명과 나의 공헌을 다 하기를 다시 선언하는 바입니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전 민족에게 대하야 각 개인에게 일일이 말하노니 이 공동 목적을 완전히 달성할 때까지 각인의 모든 생각이나 주장을 다 버리고 일심 협력하라는 것입니다.
4천년의 역사를 계속하여 우리의 신성한 조상들이 계계승승하여 내려오며 이 금수강산에서 살며 일하다가 필요할 때에는 다 일어나서 싸워서 우리의 거룩한 유업을 우리에게 물려주고 주었고 또 앞으로 이 신성한 유업을 보유할 직책을 우리의 손에 맡겨 준 것이니 우리의 오랜 역사상의 어떤 시대를 물론하고 오늘 우리가 당한 형편같이 어려운 적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이 난리를 대담하게 치러 갔고 직책을 다 힘껏 행한 것임을 우리가 다 감복하는 바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다 합해서 연속 진행할 것입니다. 우리가 같이 일하며 같이 희생하며 우리가 같이 싸워서 마침내 승전 할 것입니다. 승전이 우리 마음과 우리 간담에 있을 동안에는 우리가 실패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일 위험한 것은 다 지나갔으며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오직 승전과 성공일 것입니다.
이것으로 마칩니다.
1952년 8월 15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
3.3. 제3대 대통령 취임사
나의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
내가 오늘 또 한번 우리 민중 앞에 서서 대통령 취임 선언식을 제3차로 행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동포들이 나의 지도에 신념을 표시한 것에 대해서 내가 겸손한 마음과 영광스러운 뜻으로 평화할 때에나 전쟁 중에서나 또 국내 국외의 관계를 막론하고 우리 민족의 복리를 위해서 내 성심과 능력을 다하기를 맹서하는 바입니다.
이 다음 4년은 우리 역사에 제일 긴절한 시대입니다. 우리가 앞에 당한 여러 가지 큰 문제를 위해서 많은 희생을 당하며 여기까지 나온 역사를 대강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제일 긴급하고 절박한 문제는 통일입니다. 한국이 분렬된 것을 잠시라도 그저 두는 것은 우리나라 국민에게 불공평한 것이며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것입니다. 그 반면으로 한국을 통일시키는 것은 유엔의 큰 영예가 될 것이며 또 국제상 관계에 이유와 공의를 믿는 모든 나라에 큰 성공일 것입니다.
우리 국제상의 둘째로 큰 문제는 일본이 공산당과 점점 친밀하여 가는 것입니다. 일본이 사절단을 중공과 한국 이북에 연속 보내서 공산당들과 결속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경찰이 날마다 우리나라에 잠입하여 들어오는 공산당들을 잡아드려서 저의들의 행동을 밝히 드려다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군기와 재정을 상당히 준비해 가지고 들어와서 우리나라에 난동과 혁명운동을 선동하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만일 일본이 북경과 모스코의 공산당들의 뒤를 계속 따라간다면 어떠한 결과가 생길 것입니까. 자유세계가 이 위태한 것을 제때에 각오하고 일어설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나라의 내정을 말하자면 내 생각에는 지나간 첫 8년 동안에 민주정체의 진보를 성취한 것은 실로 역사상 드문 성공입니다. 일본의 선전에 빠진 사람들은 한인들이 능히 자주 국가를 진행할 준비가 되었을가를 의심했던 것입니다.[25]
오늘 와서 보면 우리 정부는 삼권분립으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병행해서 발전되고 있는 것이며 우리가 전국적으로 또 지방적으로 여러 번 선거를 집행했었는데 매번에 각오가 깊이 박히는 것은 우리나라의 주권이 민중에게 있다는 것이며 또 우리 유권자들의 권리가 점점 늘어가서 굳건한 토대가 선 것입니다.
사회상이나 교육상의 발전은 막대한 성공입니다. 모든 어려운 문제가 많은 중에서도 우리나라는 벌서 교육의 나라가 되어서 우리 청년들이 전에 없던 기회를 가지고 무엇이든지 다 배울 수 있을 만치 교육제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기한과 질병을 다 이겨냈으며 우리의 농지들을 농민들에게 다 넘겨주어서 농민들이 농토의 주인이 되게 한 것입니다. 부녀들도 날마다 정치 사회 경제상으로 진전해 나가고 있으며 우리 청년들도 새 세계의 안광을 가지고 앞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제상 전도도 크게 진전되고 있는 것이니 1953년 하반기까지는 미국의 원조금액을 대부분 임시 구급책에 쓰고 우리나라의 생산력을 회복하는 데는 쓰지 못했던 것이나 우리가 감사하는 것은 그 정책이 고쳐저서 지금은 전쟁에 파괴된 경제를 다시 회복하는데 놀라운 진보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원주나 춘천같이 전쟁에 전수히 파괴되였던 도시들이 날로 재건축이 되어가는 중이며 지나간 수 년 동안에 새 공장들이 건축되어서 우리 민족이 여러 대를 내려가며 누릴 복리를 양출하고 있는 중입니다.
내가 간단하게 이 몇 마디로 그 동안에 성취한 것을 말하는 것은 우리가 더욱 낙관적으로 결심해서 이 앞에 모든 어려운 문제를 이겨나가자는 뜻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정부에서는 이 어려운 문제를 다 인정하며 또 우리 민중의 복리를 진전시키기 위해서 앞으로 장기계획이 필요한 것을 또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장기계획의 순서를 우리가 만들어서 진전시키는 계획은 대략 5개년을 앞두고 해나갈 것인데 그 동안에 우리가 노력해서 성공하려는 조건은 대강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첫째는 우리가 중소공업을 많이 발전시키는 것이니 이 공업들을 다 민간에서 자유로 해가도록 만들어서 전국적으로 생산력을 증가해 가지고 국내에서 쓸 것과 해외에 수출할 것을 만들며 동시에 직업을 마련해서 실업자가 없도록 만들자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발명하는 재능과 용진력이 충분함으로 지금 우리가 가장 필요한 것이 양편으로 있으니 이것은 우리가 은행의 필요를 알아서 그리로 달하여 모든 영업을 진전시킬 것이요 중소공업에 대해서는 융자를 해주는 제도를 펴놓게 하며 남은 귀속재산을 속히 다 팔아서 민간 사유물을 만들 것이니 나는 대통령의 책임으로 이 방면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힘을 쓸 것이고 또 국회에 요청해서 애국성심으로 협조하며 이 여러 가지 긴요한 사업을 속히 또 정밀하게 도달하여 나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쌀과 다른 곡식의 생산 수량이 늘도록 만들기를 힘쓸 것이니 이것은 수리사업과 개간사업을 개량해서 나가야 할 것이며 보통 물건값 수준에는 곡식 값이 표준이 되는 것이니 생산을 증가하는 것이 경제의 안전을 성취하고 또 유지하게 만드는 근본이 되는 것이며 이렇게 해서 정부의 공무원과 봉급 생활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버는 것을 가지고 자기와 자기 가족들이 살도록 해주어야 될 것이며 또 여기에 대해서 특히 내가 한 가지 말하려는 것은 우리 국군의 식량 부식물을 좀 더 늘여서 주리는 사람이 없도록 전력하려는 것입니다.
또 둘째로는 우리나라 농민들을 위해서 재정 순환하는 데와 물건 사고 파는데 새 제도와 개량된 방식을 실시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 농림부에서 전국농민회 조직을 완성하기에 힘쓰고 있는 중이니 이것이 성공되면 이전 농회에 속했던 재산을 다 그리로 넘겨줄 것입니다. 그전 농회는 전쟁 전에 해산을 시켜서 그 재산이 농림부에 보관되어 있는 것인데 새 농민화가 조직된 후에는 그 재산도 농민회에 넘길 것입니다. 이 새 농민회는 단순히 농업관계 뿐이고 정치상에는 아무 관계가 없게 만들 것이며 이 회의 권한은 농업은행을 주식회사로 차지하고 또 주장할 것이며 이 회에서 비료 발매권과 미곡 매매권리를 가지게 되며 또 농민에게 융자를 주어 농민들이 적은 변리로 돈을 얻어 쓰도록 만들어야 될 것입니다. 이 순서 하에서는 농민들이 고리대금을 쓸 필요가 없게 되며 또 우리가 해마다 봄과 여름을 당해서 쌀값이 올라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셋째는 경제안전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벌써 많이 교정된 것인데 작년에 미국과 협의해서 달라 환산률을 500 대 1로 정한 것이 큰 도움이 된 것입니다. 쌀과 다른 곡식의 생산을 늘이고 공장에서는 생산력을 증가시키며 또 농산물을 매매하는 제도와 물산수출을 전적으로 장려하자는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해외에서 곡식을 수입할 적에는 그 물건이 제때에 들어오게 만들어야 될 것이니 이것이 제때에 들어오지 못하면 쌀값이 졸지에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환산률을 절대로 지켜서 전국이 경제상으로 이익을 보게 되는 것을 국민들이 다 도와야 될 것이니 이것은 국민된 자의 직책이며 우리 국민이 다 지켜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해갈 정책이 광대한 것이나 성공할 능력이 자재한 것이며 미국이 우리의 재건축하는 계획을 양해하고 동정해서 도웁는 힘으로 우리의 목적을 도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민중의 복리를 위해서 성심으로 일을 하는 것이 우리의 정책인 것이니 우리는 희생적 정신으로 합동해서 전력을 다하여 진행할 것이며 우리의 모든 행동과 생각에는 나라를 제일 먼저 도와야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행정상의 정신이며 또 국회와 모든 국민에게 요청하는 것입니다.
결론으로 내가 우리 사랑하는 동포들에게 일르고저 하는 말은 지금 세계가 다 공존주의의 함정에 들어가는 것 같으나 이것은 오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한번 다시 새로 맹서하노니 우리들은 오직 독립으로 또 통일민주국으로 세운 한국을 위해서 우리들은 우리의 생명과 모든 것을 공헌하기에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나라의 독립이 없으면 우리 개인의 자유가 없는 것이며 우리들은 자유가 없는 생명보다 죽음을 택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선서 밑에서 다 합동으로 나아가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우리를 도와 주실 것을 나는 아는 바입니다.
1956년 8월 15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
내가 오늘 또 한번 우리 민중 앞에 서서 대통령 취임 선언식을 제3차로 행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동포들이 나의 지도에 신념을 표시한 것에 대해서 내가 겸손한 마음과 영광스러운 뜻으로 평화할 때에나 전쟁 중에서나 또 국내 국외의 관계를 막론하고 우리 민족의 복리를 위해서 내 성심과 능력을 다하기를 맹서하는 바입니다.
이 다음 4년은 우리 역사에 제일 긴절한 시대입니다. 우리가 앞에 당한 여러 가지 큰 문제를 위해서 많은 희생을 당하며 여기까지 나온 역사를 대강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제일 긴급하고 절박한 문제는 통일입니다. 한국이 분렬된 것을 잠시라도 그저 두는 것은 우리나라 국민에게 불공평한 것이며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것입니다. 그 반면으로 한국을 통일시키는 것은 유엔의 큰 영예가 될 것이며 또 국제상 관계에 이유와 공의를 믿는 모든 나라에 큰 성공일 것입니다.
우리 국제상의 둘째로 큰 문제는 일본이 공산당과 점점 친밀하여 가는 것입니다. 일본이 사절단을 중공과 한국 이북에 연속 보내서 공산당들과 결속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경찰이 날마다 우리나라에 잠입하여 들어오는 공산당들을 잡아드려서 저의들의 행동을 밝히 드려다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군기와 재정을 상당히 준비해 가지고 들어와서 우리나라에 난동과 혁명운동을 선동하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만일 일본이 북경과 모스코의 공산당들의 뒤를 계속 따라간다면 어떠한 결과가 생길 것입니까. 자유세계가 이 위태한 것을 제때에 각오하고 일어설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나라의 내정을 말하자면 내 생각에는 지나간 첫 8년 동안에 민주정체의 진보를 성취한 것은 실로 역사상 드문 성공입니다. 일본의 선전에 빠진 사람들은 한인들이 능히 자주 국가를 진행할 준비가 되었을가를 의심했던 것입니다.[25]
오늘 와서 보면 우리 정부는 삼권분립으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병행해서 발전되고 있는 것이며 우리가 전국적으로 또 지방적으로 여러 번 선거를 집행했었는데 매번에 각오가 깊이 박히는 것은 우리나라의 주권이 민중에게 있다는 것이며 또 우리 유권자들의 권리가 점점 늘어가서 굳건한 토대가 선 것입니다.
사회상이나 교육상의 발전은 막대한 성공입니다. 모든 어려운 문제가 많은 중에서도 우리나라는 벌서 교육의 나라가 되어서 우리 청년들이 전에 없던 기회를 가지고 무엇이든지 다 배울 수 있을 만치 교육제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기한과 질병을 다 이겨냈으며 우리의 농지들을 농민들에게 다 넘겨주어서 농민들이 농토의 주인이 되게 한 것입니다. 부녀들도 날마다 정치 사회 경제상으로 진전해 나가고 있으며 우리 청년들도 새 세계의 안광을 가지고 앞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제상 전도도 크게 진전되고 있는 것이니 1953년 하반기까지는 미국의 원조금액을 대부분 임시 구급책에 쓰고 우리나라의 생산력을 회복하는 데는 쓰지 못했던 것이나 우리가 감사하는 것은 그 정책이 고쳐저서 지금은 전쟁에 파괴된 경제를 다시 회복하는데 놀라운 진보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원주나 춘천같이 전쟁에 전수히 파괴되였던 도시들이 날로 재건축이 되어가는 중이며 지나간 수 년 동안에 새 공장들이 건축되어서 우리 민족이 여러 대를 내려가며 누릴 복리를 양출하고 있는 중입니다.
내가 간단하게 이 몇 마디로 그 동안에 성취한 것을 말하는 것은 우리가 더욱 낙관적으로 결심해서 이 앞에 모든 어려운 문제를 이겨나가자는 뜻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정부에서는 이 어려운 문제를 다 인정하며 또 우리 민중의 복리를 진전시키기 위해서 앞으로 장기계획이 필요한 것을 또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장기계획의 순서를 우리가 만들어서 진전시키는 계획은 대략 5개년을 앞두고 해나갈 것인데 그 동안에 우리가 노력해서 성공하려는 조건은 대강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첫째는 우리가 중소공업을 많이 발전시키는 것이니 이 공업들을 다 민간에서 자유로 해가도록 만들어서 전국적으로 생산력을 증가해 가지고 국내에서 쓸 것과 해외에 수출할 것을 만들며 동시에 직업을 마련해서 실업자가 없도록 만들자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발명하는 재능과 용진력이 충분함으로 지금 우리가 가장 필요한 것이 양편으로 있으니 이것은 우리가 은행의 필요를 알아서 그리로 달하여 모든 영업을 진전시킬 것이요 중소공업에 대해서는 융자를 해주는 제도를 펴놓게 하며 남은 귀속재산을 속히 다 팔아서 민간 사유물을 만들 것이니 나는 대통령의 책임으로 이 방면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힘을 쓸 것이고 또 국회에 요청해서 애국성심으로 협조하며 이 여러 가지 긴요한 사업을 속히 또 정밀하게 도달하여 나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쌀과 다른 곡식의 생산 수량이 늘도록 만들기를 힘쓸 것이니 이것은 수리사업과 개간사업을 개량해서 나가야 할 것이며 보통 물건값 수준에는 곡식 값이 표준이 되는 것이니 생산을 증가하는 것이 경제의 안전을 성취하고 또 유지하게 만드는 근본이 되는 것이며 이렇게 해서 정부의 공무원과 봉급 생활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버는 것을 가지고 자기와 자기 가족들이 살도록 해주어야 될 것이며 또 여기에 대해서 특히 내가 한 가지 말하려는 것은 우리 국군의 식량 부식물을 좀 더 늘여서 주리는 사람이 없도록 전력하려는 것입니다.
또 둘째로는 우리나라 농민들을 위해서 재정 순환하는 데와 물건 사고 파는데 새 제도와 개량된 방식을 실시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 농림부에서 전국농민회 조직을 완성하기에 힘쓰고 있는 중이니 이것이 성공되면 이전 농회에 속했던 재산을 다 그리로 넘겨줄 것입니다. 그전 농회는 전쟁 전에 해산을 시켜서 그 재산이 농림부에 보관되어 있는 것인데 새 농민화가 조직된 후에는 그 재산도 농민회에 넘길 것입니다. 이 새 농민회는 단순히 농업관계 뿐이고 정치상에는 아무 관계가 없게 만들 것이며 이 회의 권한은 농업은행을 주식회사로 차지하고 또 주장할 것이며 이 회에서 비료 발매권과 미곡 매매권리를 가지게 되며 또 농민에게 융자를 주어 농민들이 적은 변리로 돈을 얻어 쓰도록 만들어야 될 것입니다. 이 순서 하에서는 농민들이 고리대금을 쓸 필요가 없게 되며 또 우리가 해마다 봄과 여름을 당해서 쌀값이 올라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셋째는 경제안전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벌써 많이 교정된 것인데 작년에 미국과 협의해서 달라 환산률을 500 대 1로 정한 것이 큰 도움이 된 것입니다. 쌀과 다른 곡식의 생산을 늘이고 공장에서는 생산력을 증가시키며 또 농산물을 매매하는 제도와 물산수출을 전적으로 장려하자는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해외에서 곡식을 수입할 적에는 그 물건이 제때에 들어오게 만들어야 될 것이니 이것이 제때에 들어오지 못하면 쌀값이 졸지에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환산률을 절대로 지켜서 전국이 경제상으로 이익을 보게 되는 것을 국민들이 다 도와야 될 것이니 이것은 국민된 자의 직책이며 우리 국민이 다 지켜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해갈 정책이 광대한 것이나 성공할 능력이 자재한 것이며 미국이 우리의 재건축하는 계획을 양해하고 동정해서 도웁는 힘으로 우리의 목적을 도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민중의 복리를 위해서 성심으로 일을 하는 것이 우리의 정책인 것이니 우리는 희생적 정신으로 합동해서 전력을 다하여 진행할 것이며 우리의 모든 행동과 생각에는 나라를 제일 먼저 도와야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행정상의 정신이며 또 국회와 모든 국민에게 요청하는 것입니다.
결론으로 내가 우리 사랑하는 동포들에게 일르고저 하는 말은 지금 세계가 다 공존주의의 함정에 들어가는 것 같으나 이것은 오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한번 다시 새로 맹서하노니 우리들은 오직 독립으로 또 통일민주국으로 세운 한국을 위해서 우리들은 우리의 생명과 모든 것을 공헌하기에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나라의 독립이 없으면 우리 개인의 자유가 없는 것이며 우리들은 자유가 없는 생명보다 죽음을 택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선서 밑에서 다 합동으로 나아가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우리를 도와 주실 것을 나는 아는 바입니다.
1956년 8월 15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
[1] 조선이라는 나라를 배에, 지배층을 선원에, 백성들을 선객에 비유하며 무기력하게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백성들이 자기 일이라는 주체적 의식을 가지고 깨어날 것을 외치고 있다.[2] 조선인들의 마음을 결박하고 있는 것 중 하나로 여전히 양반과 상놈의 구분을 깨뜨리지 못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양반은 조상이 이름났다는 이유로 능력이 없어도 자리를 차지하고 비천한 출신은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상놈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하니 수많은 잠재적 인재들이 썪고 있음을 비판하며 한 말이다.[3] 이는 20세 이상 국민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보통선거를 통해 대한민국이 수립되면서 실현된다.[4] 이승만은 교육을 중시한 사람답게 부족한 인건비 예산 중 교사의 봉급을 늘 1순위로 지급했다. 다만 이로 인해 경찰, 군인 등 다른 공무원의 처우는 후순위로 밀렸고, 따라서 비리가 횡행하는 문제가 있었다.[5] 이 책이 쓰여진 1941년 당시는 이미 중일전쟁과 폴란드 침공으로 세계정세가 뒤숭숭한 상황이었다. 평화주의를 배격하자는 전쟁광적 발언이 아니다. 이미 전쟁이 벌어진 와중에 외치는 평화주의는 적국에 이익을 가져다 줄 뿐 진정한 평화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한 것일 뿐이다. 일본 내막기를 읽어보면 당시 평화주의자라는 자들이 얼마나 대책없는 자들이었는지 알 수 있다. 조지 오웰 역시 같은 시기에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 적이 있다. "한 쪽의 전쟁 수행을 방해하는건 다른 쪽의 전쟁 수행을 돕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기본적인 상식입니다." 이를 그대로 읽으면 평화주의 자체에 반대하는 것 같지만 이 발언 당시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이었다. 전쟁이 발발한 것은 이미 평화와의 저울질이 끝나고 결단이 내려진 상태를 의미하기에 평화주의란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서만 유효하다는 것을 확신했던 것이다.[6] 당시 표현으로는 호열랄(虎烈刺). 헌데 언젠가부터 한자 발음이 와전되어 호열자라고도 불렸다.[7] 출처: 로버트 T. 올리버의 『건국과 나라 수호를 위한 이승만의 대미투쟁』[8] 許政, 《雩南 李承晩》, 1970, 太極出版社, p. 219-220[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창궐 이후로는 이 말을 패러디해 역으로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로 패러디되기도 한다. 2009년 1박 2일 혹한기 특집에서 재발굴된 이후 꾸준히 유행어는 아니어도 쓰인 문장이었다.[10] 이승만의 발언 중 제일 유명한 말이라서, 이승만 성대모사를 하는 개그맨들은 십중팔구 다 이 문장을 따라한다.[11] 다만 미국에서 철강 산업에 태클을 건 데다가 보유 기술도 없던 국면이라 전쟁 후에 철강 산업을 진행하지는 못 했다.[12] 출처: 장택상, <대한민국 건국과 나>, 91쪽[13]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하여 미군과 국군이 서울을 다시 탈환하자, 이승만을 비롯한 정부 인사들은 부산에서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의 민심이 매우 좋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이승만에게 서울 시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권유를 하자, 이승만이 버럭 화를 내면서 내뱉은 말로 알려져있다. 당시 서울을 점거한 북한군에게 협조한 부역자 색출을 한다면서 무려 55만 915명을 검거하고 # 그들 중에서 800명을 사형시킨 일이 너무 지나친 처사라는 비판 여론이 일자 이승만은 사형시키지 않은 시민들을 모두 풀어주었고, 결국 이기붕이 이승만을 대신해서[a] 許政, 《雩南 李承晩》, 太極出版社, 1970, p. 342-344[a] [a] [17] <38선은 없어졌다. 휴전 결사반대. 38선 대신 압록강을 달라. 38선 대신 두만강을 달라. 통일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여러 개 구호를 번갈아 들면서 휴전협정이 조인되기까지 몇 달 동안 데모를 해야 했다. 이때 학생들만이 아니라 전국민이 결사적인 데모를 하였다.[18] 이는 이승만의 외교적 성과로 손꼽힌다. 2020년대에도 이 조약의 실용성은 인정받으며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동력이 되었다는 평을 받는다. 현재와 달리 당시 미국은 극빈국이었던 한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 돈이면 차라리 일본에 투자하는게 훨씬 효과적일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이때 조약을 체결하지 못하고 미국이 약속한 단순한 군사적 지원에 만족했다면 신생 독립국이었던 대한민국은 안보 불안에서 비롯한 과도한 군비로 인해 성장 동력을 잃고 현재까지도 여전히 중진국 수준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19] 대체 연료의 공급 없이 녹화사업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석탄과 도시가스 공급 없이는 나무를 베어 연료를 충당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자연재해 빈발로 이어져 경제 성장 동력을 크게 저하한다. 현대 아프리카 국가 대부분이 겪는 문제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20] 출처: 김정렬 국방장관의 회고록 "항공의 경종"[21] 이승만은 역설적이게도 본인이 열심히 강조한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의해 하야하게 되었다. 이승만이 어떻게 하야하게 됐는지 아는 사람이 이 어록을 보면 마치 자기자신과 싸우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3.15 부정선거 문서를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이승만 본인이 부정선거를 처음부터 끝까지 획책한 건 아니었다는 옹호 의견도 제기된다. 당시 이승만은 이미 대선 승리가 보장되었기에 부정선거를 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그의 건강이 좋지 않아 사망시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되면 정권이 바뀔 수 있었기에 자유당 인사들이 눈치껏 부정선거를 획책한 것이다. 이승만도 혁명 1주일 전에야 국무회의에서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눈치채고 선거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승만은 3.15 부정선거가 있기 전인 2월 13일 정부통령 선거 직전 '긴급담화'(일명 2.13 담화)를 발표해 "1956년 선거에서처럼 대통령과 부통령 당선자가 서로 다른 당에서 나오면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응종치 않겠다고 선언했던 것이나, 당시 최인규(당시 내무부장관)가 법정에서 2.13 담화가 자신에게 큰 압박으로 다가왔었다고 고백한(학민사편집부 편, <혁명재판>, 학민사, p39) 것을 보면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를 직접적으로 지휘하지 않았다 한들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자유당 간부들을 비롯해 제1공화국 내각 인사들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기붕을 당선시켜야 한다"는 압박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으리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22] 이승만은 독립운동가 시절에도 그랬지만 외교에 집중하는 국정운영 스타일로 인해 내치에 부족한 점이 많았다. 이를 지적하며 "외교에는 귀신, 인사에는 등신"이라 평한 1954년 사사오입 개헌 당시 동아일보 기사가 일품. 이를 옹호하는 이들은 식민정책으로 인해 교육의 기회가 적어 고졸이 엘리트로 취급받았던 때에 독립하자마자 전쟁까지 겪고 북한군이 사회인사나 학자를 납치해가는 바람에 인재가 부족했던 것이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독립 당시 한국에는 박사 학위자가 5명(...)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반 이상이 월북해 버렸다. 아무튼 이로 인해 임기 내내 국내 문제에 시달렸고, 급기야 여당의 과잉충성과 여기서 비롯한 부정선거를 예방하지 못해 권좌에서 쫓겨났다.[23] 말년에 이승만 스스로가 "내가 4.19 혁명 때 '그렇다고 합니다'란 말만 믿다가 이렇게 되었다."고 자조한 것은 자기 스스로가 국정에 있어 치명적인 실책을 범했음을 자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애초에 엄연히 제1공화국의 수반으로서 자유당 정권의 중심이었던 이기붕의 폭주를 막지 못했으니 부정선거를 예방할 책임이 있음은 분명하다. '불의에 궐기한 백만 학도', '정신이 살아있는 국민'을 이야기한 이 발언은 유체이탈 화법이 아니라 자신의 직무유기에 대한 국민의 저항권 행사를 치하하고 감사하는 발언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 있으며, 옹호 측에서는 이승만이 부정선거를 자행한 게 아니기에 그는 독재자가 아니라는 결정적인 근거가 된다. 그리고 이런 사태를 결국 그가 예방하지 못한 것임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24] 녹취된 이승만의 실제 육성과 목소리를 우리말과 영어로 들어볼 수 있다.[25] 이는 확실히 윤치호가 남긴 마지막 글인 '한 노인의 명상록'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