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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5-04 23:01:58

창경궁 관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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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23호 창경궁
<colbgcolor=#bf1400> 창경궁 관덕정
昌慶宮 觀德亭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와룡동)
건축시기 창건연대 미상
1642년 (중건)
파일:창경궁 관덕정.png
파일:pal_ckk_pct19_ori.jpg
<colbgcolor=#bf1400> 관덕정[1]
1. 개요2. 이름3. 역사4. 구조5. 여담

1. 개요

창경궁정자이다. 춘당지 동북쪽 야산 기슭에 있다.

임금이 신하들과 주로 쏘는 곳으로 활용했다.

2. 이름

예기》의 〈사의(射義)〉 편에 나오는 "활쏘기란 그의 높은 살펴보는 것(射者所以也)"이라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지방에 있는 관아들에도 관덕정이란 이름의 정자가 많이 설치되었다. 대표적으로 제주도관덕정을 들 수 있다. 현재에도 여러 활터의 이름으로 많이 쓰인다.

3. 역사

파일:동궐도 관덕정.png
<colbgcolor=#bf1400> 《동궐도》 관덕정
《궁궐지》에 의하면 '관덕정은 영화당의 동쪽 잠원봉 북쪽에 있고 남쪽에는 잠단(蠶壇)이 있는데 바로 1472년(성종 3년)에 채상단(採桑壇)을 옛터에 지었다. 공혜왕후 한씨가 항상 잠례를 거행했다.'고 한다. 이를 보아 조선 전기에는 누에 관련 행사를 하는 공간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다 임진왜란 때 불탄 후 1642년(인조 20년)에 그 자리에 관덕정을 세웠다. 처음에는 취미정(翠微亭)이라 부르다가 1664년(현종 5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위에 언급했듯 활쏘는 곳으로 주로 쓰였으며, 이외에도 관덕정 앞 빈터에서 군사훈련과 무과 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창경궁창경원이 되면서 많은 전각들이 헐렸음에도, 관덕정은 살아남았다. 다만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이후 1980년대복원되어 오늘에 이른다.

4. 구조

5. 여담


[1] 첫 번째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br두 번째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창경궁관리소.[2] 보통 전통 건축에선 단층이라고 표현한다.[3] 부재 끝 부분만 화려하게 칠하는 단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