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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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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어원3. 건축은 예술이다4. 좋은 건축이란5. 분야6. 언어별 명칭7. 관련 문서

1. 개요

firmitas, utilitas, venustas.
안정성, 유용성, 아름다움.[1]
- 고대 로마건축가 비트루비우스[2], 건축의 3요소를 꼽으며
/ Architecture

간단하게 보면 건물을 짓는 것, 또는 건물을 짓는 일을 포함하지만, 이러한 정의는 단순히 짓는 것에 국한된다.[3] 가히 공학과 사회학, 인문학이 모두 접목된 종합 기술로서 인간에게 최적화된 생활 환경을 창조하는 것. 서양에서 Architect와 Builder는 분명히 다른 개념이다.[4][5]

2. 어원

본래 한자 문화권에서는 '건축'이라는 단어는 없었고, 건물을 짓는 행위를 조가(造家), 조영(造營), 영조(營造) 등의 단어로 표현하고는 했다. 일본제국대학이 생기며 이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고, 일본 교수들은 서양의 architecture라는 단어와 견줄 만한 멋진 단어를 찾아 자신들을 기존의 목수들과 차별화하려 하였고, 그 결과 '건축'(建築)이라는 단어가 탄생하였다.[6]

일부 국수주의자의 경우 일본이 만든 단어인 '건축'이라는 용어를 중국이 만든 단어인 '영조'로 다시 대체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7] 반면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김광현 명예교수는 오늘날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건축이라는 용어를 선조들이 사용했던 영조로 대체해야 한다는 낭설'에 대해 비판하며 영조는 건축이 아닌 건설을 의미하는 단어이고, 오늘날 영조업이라는 단어는 중국에서 건설업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건축이 아닌 건설, 시공을 의미하는 단어인 영조라는 용어를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는 건축을 대체하여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3. 건축은 예술이다

파일:Pritzker_Announcements_March7.jpg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 수상자들의 작품
건축과 건축학예술로 보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의 예술학계에선 건축을 제1의 예술로 분류하고, 국내 도서관 분류법의 5판까지는 건축 서적이 예술 서적으로 분류되었다.[8]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 선정 기준도 '건축 예술을 통한 재능과 비전, 책임의 뛰어난 결합'이 주요 선정 기준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건축의 타 순수 예술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음악이나 미술 작품 등은 안 듣거나, 안 보는 것을 개인이 선택할 수 있지만, 건축물은 철거하지 않는 이상 그 근처를 지나며 반드시 보게 된다. 따라서 건축물의 존재 자체가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따라서 건축은 "사회적 책임을 지는 공공성을 띈 기능적 제한 내에서 우수한 디자인 혹은 예술이자 공학 공공재"라고 볼 수 있다.

건축설계를 위해서는 건축물이 지어질 땅에 대한 지역성, 역사성 등을 고려하여 사회학적, 인문학적 관점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분석한 다음, 예술과 디자인의 영역으로 넘어와서 문제를 풀어낸 후, 공학과 기술의 영역으로 넘어와서 실제 건축물로 구현해낼 방법을 모색하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처럼 건축설계에는 인간이 사용하기 위한 공간을 심미적, 실용적으로 설계, 공학적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실제 사용할 수 있게 현실화 하는 일련의 과정이 포함되며, 예술/디자인/공학/과학/기술/인문/사회/역사/철학/심리/경영[9] 등의 모든 분야의 배경 지식을 기초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들 역시 순수 예술 분야와는 다른 기준으로 평가받으며, 아무리 미학적으로 우수해도 이용자에게 불편하다면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10][11]

대표적인 예로 르 코르뷔지에가 말년에 설계한 '르 코르뷔지에 파리 계획안'을 볼 수 있는데, 도시를 구성하는 공학적 연구와 도시와 도시 내의 건물의 건축적 사상을 뛰어 넘어, 도시의 형태와 기능으로 말미암아 거주하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이 미칠 것인지, 거주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 도시와 건축물을 받아들일 것인지, 그리고 여기서 태어나고 자라나는 사람에게 이 도시와 건축물은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까지 고려되어 있다.[12] 즉, 그야말로 진정한 건축이란 이렇게 어떤 특정한 학문으로 나누어 볼 수 없는, 그런 세계에 있다는 것이다.

4. 좋은 건축이란

위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건축은 건물을 세우는 것을 일컫는데, 그렇다면 과연 '건물은 무엇일까'부터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전적 정의를 생각해 보면 건물은 "사람이 안락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으며 그 공간의 목적에 맞는 행위를 할 수 있게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충분히 독립된 공간"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즉 건물이란 사람이 일단 들어가서 살 수 있어야 하며, 그 건물이 세워진 목적에 맞게 적절한 기능성을 가지고 있어야지 그때부터 건물은 제 기능을 시작하는 것이다.

만약 화장실이 벽이 하나도 없고 모조리 개방된 시설이었다면 그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벽이 없기에 '안락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사람들이 지나가는 통로가 벽으로 모조리 막혀있다 해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통로 주변이 모조리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면 사람들이 그 벽을 통과해 지나갈 수 없기에 통로로써의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처럼 아주 단순하게나마 그 공간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 즉 프로그램에 대해 건축가는 항상 고심하며, 그 프로그램에 가장 잘 어울리면서 동시에 가장 경제적이고 여기에 더해 상당한 미학적 심미성까지 가질 수 있는 건축 설계를 목표로 하는 것이 좋은 설계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건축은 미학인가? 실용인가'를 염두에 두고 지난 100여 년간의 건축 사조를 되짚어보면 르 코르뷔지에로 대표되는 모더니즘 건축과, 최근의 유리궁전으로 대표되는 포스트모더니즘 사조의 힘겨루기(?)가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건축이란 실용적으로 편해야 한다"를 모토로 기능주의를 극한으로 밀어붙인 모더니즘 건축[13]은 그 기능주의가 갖는 살풍경함과 몰개성함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사조에게 두들겨맞는데, 정작 또 현대 건축은 DDP 등에서 보듯 "예술적이긴 한데 쓸모없는 공간낭비가 너무 심하지 않나?" 같은 소리도 듣고 있다. 이를테면 형식과 실질의 균형을 찾아가는 게 현대 건축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건축이란 건물을 세운다라는 의미 그 뿐이라 볼 수도 있겠으나 현대사회의 여러 변화에 따라 건물이라는 정의 자체까지 변화하고 있고 따라서 휴지를 뭉쳐놓은것 같이 생긴해체주의와 같은 다양한 양식과 미학 - 철학적 시도가 많이 일어나고 있고 이 변화의 밑받침엔 최첨단으로 발전하는 공학 기술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 여기에서 보듯 좋은 건축이란 말 한마디로 정의하기에는 연관된 학문과 문화가 무지하게 많다.

5. 분야

5.1.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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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시공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건축공학과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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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언어별 명칭

<colbgcolor=#f5f5f5,#2d2f34> 언어별 명칭
한국어 건축()
아랍어 بَنَّاء(bannāʾ)
영어 architecture(아키텍처)

7. 관련 문서



[1] 구조, 기능, 미라고도 한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의 메달에도 이 단어들이 각인되어 있다.[2]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할때 그 비트루비우스 맞다.[3] 기술가정을 배운 사람이라면 알 수 있듯이, 건축은 인간이 편안하고 쾌적하며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를 지닌다.[4] 심지어 "The Architect로 쓸 경우 '조물주'가 된다!"라는 말로 많은 건축교수나 건축사들이 말을 하곤 하지만, 거의 용례가 없는 단어이며 실제로 그런 의미로 서양인들이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성경 등에서는 'the maker'라는 말로 조물주를 표현한다. 이런 식의 단어 선택은 한국 건축인들 사이에서 자주 쓰이는데, 예를 들면 "'우주(宇宙)'가 '집 우(宇)'와 '집 주(宙)' 자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우주는 집이고 우주를 만든 신은 집을 만든 것이기에 아키텍트이며, 우리 아키텍트들도 따라서 신의 속성이 있느니 어쩌니..." 이런 경우는 겉멋이 든 허세 정도로 치부하는 것이 옳다.[5] 다만 한국에서는 이를 뭉뚱그려서 하나로 본다. 현시창,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에서만 현시창.[6] 단, 건물의 건축과 유지 보수를 통칭하는 의미인 영선(營繕)이라는 단어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행정법에서도 아직 공적 시설에 한해 영조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7] 우리 선조들은 건축이라는 말 대신 참 좋은 단어를 사용했었다. 한자말이긴 하지만 '영조(營造)'가 그것이다. 우리말로는 '지어서 만든다'는 뜻이다. 그렇다, 집은 세우는 게 아니라 짓는 것이다. 밥을 짓고 농사를 짓고 시를 짓듯이 집은 지어서 만드는 것이다. 짓는다는 뜻은 무엇인가. 어떤 재료를 가지고 생각과 뜻과 마음을 통하여 전혀 다른 결과로 변화시켜 나타내는 것이다. <건축이란 무엇인가> p.16[8] 다만 6판으로 개정되면서 건축은 제외되었다.[9] 건축을 예술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기능은 경제성이다. 그림은 물감과 종이가 있으면 그릴 수 있고, 영화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간단한 유튜브 영상이라도 찍을 수 있다. 하지만 돈이 없다면 땅을 살 수도 없고 타일 한 장을 깔 수도 없다. 자신이 작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음악이나 회화 등과 다르게 남의 부탁을 받아 남의 돈으로 작품을 하기 때문에 엄청난 제약을 받고 대부분은 평생 작품다운 작품 활동을 해볼 수 없는 직종이다. 물론 예술도 분야에 따라서는 건축보다도 훨씬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경우도 많기에 일반화할 수는 없다. 이러한 건축의 중요함을 잘 나타내는 말로 "사람은 건물을 만들지만 그후엔 건물이 사람을 만든다."윈스턴 처칠옹의 말씀이 있다.[10] 대표적으로 미스 반 데어 로에의 판스워스 하우스이다. 강철과 백색 외장, 유리만으로 이루어진 이 건물은 누가봐도 투명하고 현대적이며 세련되었지만 문제는 주택이었다는 것. 온통 유리로 되어 있는 이 곳은 겨울이 되면 유리에서 얼음이 어는 것은 일상에, 유리 특성상 내부가 전부 다 비쳐 보여서 사생활을 아예 보호받지 못한다! 거기다가 완전한 수평을 지향한 천정은 이윽고 물이 흘러 빠지지 못해 고여 새어내려오기 시작해 집안이 온통 물바다가 되기 일쑤였던 것. 결국 판스워스는 미스와 소송전을 벌였지만, 한국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건축가의 철학에 손을 들어줘 판스워스는 결국 패소하고 21년간 보초를 서듯 거주하다 타국으로 이사를 가버렸다. 그리고 이 건물은 수집가의 손을 거쳐 박물관으로써 개장된다...[11] 비단 이 사례뿐만 아니라 수많은 스타 건축가들은 유명해진 뒤 자신의 철학과 사상에 심취한 나머지 판스워스처럼 휘둘리기 쉬운 건축주를 만날 경우 통제불능의 망가진 어떤 무언가를 짓는 경우가 일쑤이다. 물론 건축가의 잘못도 있겠지만, 이처럼 미학적·철학적 완전성을 추구하다 정작 가장 중요한 건축 본연의 가치를 잃게 될 경우 아무리 스타 건축가라 해도 짓고 난 뒤 비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건축이며 이런 건물들의 말미도 결국 박물관행이 된다는 점도 같다.[12] 물론 현실의 건물과 도시들은 계획도시인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계획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가치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긴 역사를 가지고 자연히 구성되어온 시간들이 계획을 대체한다. 여러 환경과 상황,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선택되고 탈락하여 남은 정수이기 때문이다. 사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지나가는 곳이 바로 도시인데 그 곳이 어떻게 구성되고 순환되는지에 대한 “도시적 맥락”을 정확히 간파하고 이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다. 특히나 한명 또는 소수의 건축가라면 더더욱.[13] 정작 르 코르뷔지에는 말년에는 그런 기능주의에서 다소 탈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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