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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건축]]
1. 개요
건축의 역사를 소개하는 문서.2. 선사시대
2.1. 구석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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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의 둥지. 초기 인류는 이러한 본능적인 둥지 짓기에서 구조물 건축을 떠올렸을 수도 있다. | 15,000년 전 메즈리히 문화권에서 지어진, 메머드 뼈를 사용한 초기 형태의 거주지. | 빌징슬레벤(Bilzingsleben) 유적지의 구조물 터. 기원전 400,000년에서 기원전 350,000년 전의 것이며, 하이델베르크인이 지었을 가능성이 높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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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80,000년~기원전 230,000년에 존재했던 테라 아마타 거주단지의 구조물 복원도. | 구석기 시대의 동굴형 주거지 복원도. |
최초의 '건물'은 피난처, 안전, 예배 등등의 필요성과 이용 가능한 건축 재료, 수반되는 기술 등의 수단 사이의 역동성에서 처음으로 탄생하였다. 인류의 문화가 발전하고 지식이 구전되는 전통과 연습을 통해 정형화되기 시작했을 때, 건설은 비로소 기술이 되었고, '건축'은 건설의 제일 정형화되고 찬탄받는 형식에 주어진 이름이 되었다. 건축의 성공은 시도와 오류의 과정의 결과물로 흔히 추측되는데, 점차적으로 시도는 적어졌고 큰 만족을 준 과정의 결과로서 모방이 많아졌다.
2000년, 도쿄에 있는 메이지 대학의 고고학자들은 일본 사이타마현 치치부시 근처의 언덕에서 2개의 오각형 기둥 구멍을 발견했는데, 그들은 조사를 통해 이것이 약 50만년 전에 호모 에렉투스가 지은 오두막의 흔적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것이 정말로 초기 인류가 건축했는지는 아직까지도 논쟁거리이다.
오늘날 가장 초기에 지어진 것으로 확인되는 건축물은 약 40만 년 전에 지어진 프랑스 테라 아마타 유적지에 있는 구조물이다. 이 시기의 주거지는 주로 나무 등 부패하기 쉬운 재료들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난로와 집터를 제외하고는 주거지의 흔적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한편 수단의 와디 할파 유적지 인근에는 천막의 닻돌로 추정되는 10만 년 된 사암 조각이 발견되었으며, 요르단 동부에서는 약 2만 년 전의 기둥과 짚으로 지어진 구조물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24,000년 ~ 15,000년 전에 있던 말타-부렛 문화와 15,000년 전의 메즈리히 문화에서는 동물들의 뼈, 특히 메머드 뼈로 주거지를 만들어 거주하기도 했다.
구석기 후기는 현대 인류가 출현하고 여러 지역으로 퍼져나가는 시기였지만, 이 시기에 지어진 구조물에 대한 정보나 유물 등이 부족하여 당시 인류가 어떠한 방식으로 주거지를 지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다만 이때부터 인류가 거주지의 '외관'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2.2. 신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의 건축양식신석기 시대(기원전 10,000년~ 기원전 2,000년)에 접어들자 인류사에서 중대한 혁신이 일어났는데, 이는 바로 일부 동식물의 가축화, 공동체 규모와 영속성의 증가, 물질 문화의 대규모 발전, 사회적-의례적 관습문화의 발전 등이었다. 이와 함께 인류는 정착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때쯤 되면 건축물은 살아가는 데 있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새로운 스타일의 건축물들과 이들의 군락은 새로운 생활방식과 경제활동에 필요한 공간을 제공했으며, 변화의 필수 요소이기도 했다.
남서아시아에서 신석기 문화는 기원전 10,000년 직후에 레반트에서 등장했고(토기 이전 신석기 A(Pre-Pottery Neolithic A))와 토기 이전 신석기 B(Pre-Pottery Neolithic B)) 동쪽과 서쪽으로 퍼졌다. 기원전 8000년에 남동쪽 아나톨리아, 시리아, 이라크에 초기 신석기 문화가 있었고, 식량을 생산하는 집단이 처음으로 기원전 7000년 경에 유럽 남동쪽에서, 기원전 5500년 경에 중앙 유럽에서 등장했는데 이 중 스타체보-쾨뢰시-크리스(Körös culture), 선형도기문화(Linearbandkeramic), 빈카(Vinča)를 포함하는 최초의 문화 집단들이 있었다. 안데스를 제외하면, 지협 콜롬비아 시대(:en:Isthmo-Columbian area)와 중앙아메리카 서부(그리고 오대호 지역에서 몇 개의 청동 손도끼와 창의 머리), 아메리카와 태평양의 사람들은 서구와의 접촉 이전까지 신석기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레반트, 아나톨리아,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북부, 중앙아시아의 신석기 시대의 사람들은 대단한 건축가였고, 집과 마을을 건설하기 위해 흙벽돌을 이용했다. 차탈회윅의 집들에는 회반죽이 칠해지고 사람과 동물이 등장하는 정교한 그림이 그려졌다. 지중해 몰타의 신석기인들은 거석신전에서 예배를 드렸다.
유럽에서는 초벽(wattle and daub)으로 만든 롱하우스(Neolithic long house)가 지어졌다. 정교한 무덤도 건설되었는데 특히 아일랜드에 많이 지어졌고, 수천 개의 무덤이 여전히 남아있다. 영국의 신석기인들은 망자를 위해 장분(long barrow)과 돌방무덤을 지었고 커즈웨이드 인클로저(Causewayed camp), 헨지(henge) 부싯돌 광산, 커서스(en:cursus) 유적지 등이 남아있다.
신석기 시대에 발전한 정착지와 '도시'에는 다음이 있다.
- 튀르키예의 괴베클리 테페, 기원전 9,000년경
- 팔레스타인의 예리코, 기원전 8,350년경[2][3]
- 튀르키예의 네발리 코리, 기원전 8,000년경
- 튀르키예의 차탈회위크, 기원전 7,500년경
- 파기스탄의 메르가르, 기원전 7,000년
- 독일의 헤르츠하임, 기원전 5,300년
- 스코틀랜드 오크니 제도의 하우어 냅과 스카라 브레이, 기원전 3,500년경
- 루마니아, 몰도바, 우크라이나의 쿠쿠텐티-트리필리아 문화에서 지어진 3,000개 이상의 정착지들,[4] 기원전 5,400년~기원전 2,800년
3. 고대
3.1. 메소포타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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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지구라트가 있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도시의 상상도 |
3.2. 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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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기원전 3,100년경부터 시작된, 파라오가 통치하던 고대 이집트의 여명기에는 수많은 건축 스타일과 모티프가 생겨났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후 세계의 존재를 믿었으며, 사람이 죽고 그 영혼이 사후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몸이 온전하게 남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미라를 만들었다. 이후 그들은 도굴과 훼손을 막기 위해서 마스타바[5]라는 무덤을 짓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평평한 상부를 가진 어도비식[6] 건축물이며 지하 30m 아래에 관을 위한 지하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그뒤 고대 이집트의 사제이자 건축가였던 임호텝은 파라오 조세르를 위해 새로운 무덤을 설계하였는데, 이것이 최초의 피라미드인 조세르의 피라미드(기원전 2667년~기원전 2648년)이다. 이 피라미드는 계단식으로 지어져 있으며 이집트식 무덤건축의 과도기 형태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사각뿔 모양의 매끄러운 면을 가진 피라미드는 기원전 2,613년에서 기원전 2,589년 사이에 통치한 파라오 스네페루를 위해 만들어진 피라미드이다. 가장 거대하고 웅장한 피라미드는 시네페루의 아들 쿠푸(기원전 2,589년~기원전 2,566년)를 위해 만들어진 기자의 대피라미드로, 고대 세계의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이 이집트에서 가장 규모가 큰 피라미드이다. 피라미드에는 광택이 나는 흰색 석회암이 사용되었고, 이들은 모르타르를 통해서 단단하게 고정되었다. 또한 꼭대기는 금으로 덮여 있었다.[7] 내부에는 왕의 묘지로 가는 좁은 통로가 있었다.
자원의 부족과 함께 왕권이 약화되자 피라미드는 점차 유행에서 밀려났고, 대신에 사원과 같은 종교 건축물들을 짓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피라미드와 마찬가지로 고대 이집트의 사원들도 계속해서 발전을 거듭하였다. 본래는 나무 등으로 만든 작은 신사였던 것이 점차 대규모 사원으로 발전하였으며 신왕국 시대(기원전 1,550년~기원전 1,070년)에 이르러선 거대한 홀과 안뜰을 가진 웅장한 석조 건물이 되었다. 왕과 사제들은 이 사원들이 일종의 '질서(Cosmos)'를 상징했고, 신들이 이 무덤을 보고 자신과 세상을 되살릴 것이라고 믿었다. 입구에는 지평선의 언덕을 상징하는 2개의 쌍둥이기둥(파일론)이 있었으며, 내부에는 파피루스 덤불을 상징하는 기둥이 줄지어 늘어져있는 복도가 있었고 계속 나아가면 신들의 동상이 있는 성소가 나왔다.
고대 이집트 시기에 발전한 건축 요소 중 하나는 고왕국 말기부터 시작된 카베토(Cavetto)와 코니스(Cornice)[8] 등인데, 후일 이러한 요소들은 18~19세기경에 일어난 후대의 이집트 리바이벌 건축에 다시금 차용되었다.
3.3. 인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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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인도 아대륙에서 출현한 최초의 도시 문명은 오늘날의 파키스탄과 인도 북서부에 위치했던 인더스 문명으로, 그 중심지는 모헨조다로와 하라파 등이었다. 이 도시들은 상하수도 시스템와 배수로 뿐만 아니라 공중 목욕탕과 쓰레기 처리 시설까지 갖춘 고도의 계획도시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서쪽의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교류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신석기 시대에서 동기 시대를 넘어 야금술에 대한 지식과 함께 발전했다. 몇몇 중심 도시들은 인구가 30,000명에서 60,000명이 넘어갔으며, 문명 전체로 넓혀서 본다면 최대 100만에서 500만 사이의 사람들이 거주했을 것이다.
[1] 인류가 독특한 환경에 적응하고 단순히 '거주'의 목적이 아니라 '신호' 또는 '의사 전달'의 목적으로 구조물을 짓기 시작했다는 주장도 있다.[2] 중석기 시대의 나투프 문화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3] 예리코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성벽도시이기도 하다.[4] 일부 정착지는 인구가 15,000명이 넘어갔다.[5] 아랍어 '마스타바(مصطبة)'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돌로 된 의자'라는 뜻이다.[6] 모래, 찰흙, 물로, 또 특정한 종류의 섬유나 유기 물질 따위로 만든 건축물들을 총칭하는 용어이다.[7]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은 겉면이 풍화와 침식같은 자연적인 요인, 혹은 인위적인 요인으로 인해 사라지고 난 뒤에 남은 내부 부분의 일부이다.[8] 이것들은 모두 몰딩, 즉 건물 끝부분을 마감하는 기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