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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B5F81><colcolor=#fff> 윤상 Yoonsang[1] | |
본명 | 이윤상 (李潤相[훈음], Lee Yoonsang) |
출생 | 1968년 5월 11일 ([age(1968-05-11)]세)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3]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80cm|65kg|O형 |
가족 | 배우자 심혜진 (1975년 5월 19일, 2002년 결혼 ~ 현재)[4] 장남 이찬영(2004년 3월 21일)[5] 차남 이준영(2009년 6월 30일)[6] |
학력 | 예일초등학교 (졸업) 연서중학교 (졸업) 충암고등학교 (졸업)[7] 경희대학교 산업대학 (요업공예학 / 학사) 버클리 음악대학 (뮤직신서시스학 / 학사) 뉴욕대학교 대학원 (뮤직테크놀로지학 / 석사) |
종교 | 불명[8] |
병역 |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 |
소속사 | 팝뮤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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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그룹 | 페이퍼 모드[9], 노땐스, 1Piece |
데뷔 | 1990년 11월 30일, 정규 1집 '윤상' (데뷔일로부터 [dday(1990-11-30)]일, [age(1990-11-30)]주년) |
별명 | 뮤지션들의 뮤지션, 발라드의 조상[10], 러블리즈의 아버지[11], 독거노인[12], 윤마담[13], 록단장[14], 허리 긴 형[15], 아낌없이 주는 나무, 윤버지, 시아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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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가수, 작곡가, 프로듀서, 베이시스트.2. 상세
1988년 무렵부터 작곡가 및 세션 베이시스트로서 활동을 시작하여 그 해 발매된 가수 김현식의 정규 4집 앨범 수록곡인 '여름밤의 꿈'을 작곡하여 이름이 알려졌다. 이후 2년 뒤인 1990년에 김광수의 눈에 띄어 GM기획 소속 가수로 데뷔하면서 연예계에 발을 들인다.[16][17] 발라드 가수로 활동할 때는 본인 특유의 감성적인 곡 스타일과 더불어 잘생긴 외모, 고운 미성과 함께 수많은 소녀팬들을 몰고 다니며 인기를 누렸다. 그리고 동시에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 강수지의 〈보라빛 향기〉와 같은 여러 히트곡도 작곡하면서 작곡가로서의 커리어로도 탄탄하게 시작했다. 그러다 90년대 말부터는 실험적인 면모가 강해지더니, 2000년대 들어서는 더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면서 한국 대중음악계의 선구자 격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2010년대엔 일렉트로닉부터 아이돌 음악까지 섭렵하고 있다.김현철, 손무현, 유정연 등과 함께 한국 대중음악을 80년대까지의 트로트 위주의 시대에서 90년대 이후의 음악 시대로 바꾸는데 상당한 공로를 한 뮤지션 중 하나다.
3. 생애
3.1. 데뷔 이전
1968년 서울특별시에서 사업가인 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어머니 밑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18]깔끔한 귀공자풍 외모 덕에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어린 시절이 좀 어둡다. 부모님이 어릴 때 이혼해서 주위의 편견 때문에 마음의 상처가 매우 많았던 듯하다. 외갓집에 가면 친가 욕하고, 친가에 가면 외갓집 욕하는 상황을 어릴 때부터 겪으며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대립이 너무 싫다고 한다. 이 때문에 성격도 예민해지고 눈칫밥 먹으며 살아야 했다고. 아버지 쪽에서 자신을 좀 부담스러워했다고 느꼈고, 자연스럽게 자라면서 아버지와의 접촉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이 때문인지 학창시절에는 친구들과도 잘 못 어울렸을 정도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했단 것에 대한 상처가 정말 컸던지 윤상은 이후 인터뷰나 방송에서도 이 이야기 자주 한 편인데, 예능 〈힐링캠프〉#와 〈꽃보다 청춘〉#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 때즈음 좀 적응을 못 했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 날 음악 선생님이 내 준 ‘곡 완성하기 숙제’를 해 가게 되었고, 이를 본 선생님이 “너 뭐 음악 따로 배운 적 있어? 없어? 그런데 이런 걸 하다니 대단한데”라고 칭찬을 들어 어렴풋하게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영국 밴드 그룹 듀란 듀란의 곡을 들으면서 베이시스트 존 테일러를 동경해 삼촌을 통해 기타를 득템했다.
서울 충암고등학교 시절[19]부터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곧바로 뮤지션을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격렬한 반대로 미술학원에서 벼락치기 입시 공부를 해 경희대학교 요업공예과에 들어간다. 하지만 공부하려 들어간 대학이 아닌지라 학교에 적만 걸어 놓고 밴드 하고 신촌블루스에서 알바하며 지냈다. 그 덕에 충암고등학교 시절부터 빠질을 했던 봄여름가을겨울과 친분이 생겼고, 이후 봄여름가을겨울의 베이시스트 자리를 제의받았다.[20] 연주 실력도 어느 정도 되었겠지만, 곱상한 외모 때문에 돈맛 좀 보여줄 것 같아서 제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까마득한 형님들이 너무 잘해주는 게 무섭고 부담스러워서 도망갔다고 한다.
손무현과 함께 김완선 백밴드에서 베이스를 치기도 했다.[21] 영상을 찾아보면 뒤에서 연주하는 모습이 보인다.
<rowcolor=#fff> 1989년 김완선의 백밴드시절 연주 모습 | 1989년 이승철 세션 시절 연주 모습 |
3.2. 데뷔
인기 아이돌 윤상[22] |
데뷔곡인 이별의 그늘
본래 충암고 시절 박창학, 김학인과 함께 뉴웨이브 밴드 '페이퍼 모드'를 했다. 이 뉴웨이브 밴드 '페이퍼 모드'를 위한 데모 테이프가 돌고 돌다가 김현식의 손에 들어갔고, 그 테이프에 수록된 〈여름밤의 꿈〉이 김현식의 앨범에 수록되며 작곡가로 데뷔했다. 당시 윤상은 봄여름가을겨울의 열성팬이었던 데다가, 신촌블루스에서 알바도 했던 것 같다. 어느 정도 선은 닿아 있었던 셈이다.
이를 시작으로 김민우, 강수지, 변진섭 등에게 히트곡을 제공하면서 프로듀서 겸 작곡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본인은 딱히 가수로 데뷔할 생각은 없었는데, 우연찮게 김민우 앨범 녹음 중, 김민우의 보컬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아 가이드 보컬 식으로 불러줬다. 이걸 당시 EOS 사운드 프로덕션 김광수(코어 콘텐츠미디어 사장)가 듣게 된다. 그는 윤상에게 “너는 얼굴도 되고 분위기나 목소리도 좋으니 가수 한번 해봐라”라는 제의를 한다. 윤상은 별로 내키지 않았으나 당시 김광수 사장이 제시한 금액이 평소 가지고 싶었던 장비를 다 구입하고도 남는 금액[23]이라 수락해서 1990년 GM기획 소속 가수로 데뷔했다.[24] 이렇게 데뷔한 이후 한동안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니던 탑 클래스 아이돌이었다. 현재는 뮤지션 포지션이지만, 당시에는 윤상을 포함한 이승환, 신승훈, 신해철도 아이돌 포지션이었다. 하지만 본인은 연예인보다 전문 스튜디오 뮤지션이 꿈이었고, 가뜩이나 내성적인 성격에 마음 고생이 많았던 듯하다.
모 기자의 표현에 따르면, “얼떨결에 가수 데뷔를 했는데 거기에 딸려온 연예인이라는 짐을 벗고 싶어 어쩔 줄을 모르는 가수”라고 한다. 라디오 인터뷰에서는 당시 방송을 안 하면서도 자기 음악을 하는 김현철이나 015B와 비교해 자신이 너무 속박당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판매량으로만 가치가 판단되는 것도 싫었던 듯하다. 그러다 세월도 흐르고 가족도 있으니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다고 했다. 당시에 자신에 대해 ‘미쳤던 거지...’ 라고 하며 배불렀던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는 듯이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음악에 관한 자세는 굉장히 엄격하다.
여담이지만, 원래 학창 시절부터 인기가 있고 그런 스타일이 아니었던지라 가수로 데뷔하자마자 아이돌로 통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본인은 그것을 굉장히 의아해했다고 한다. 그래서 맨날 집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어린 팬들에게 자신을 왜 좋아하냐고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있다고 한다.
3.3. 소속사와의 갈등과 군 입대
1집의 엄청난 성공 후, 소속사 사이에 갈등이 꽤 심했다. 1집의 대중적인 성공 후, 소속사 GM 기획(과 광수 사장)은 계속해서 윤상을 아이돌+대중가요 노선으로 끌고 가려 했으나, 윤상은 이제 번 돈으로 장비도 다 구비했으니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해 보고 싶다며 이견을 보였다. 신인 가수상을 받게 되었는데 "1등을 받는 게 뮤지션으로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본인이 출연을 거부해 괘씸죄로 방송 금지를 먹기도 했고, 예능 프로에 출연하는 와중에도 "난 스튜디오 뮤지션인데 왜 이런 걸[25] 하고 있나…" 하는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에는 또 이런 생각이 바뀌어서 예능에 고정 출연하기도 했다.2011년 인터뷰에서도 소녀 팬들을 몰고 다니던 시기가 그립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때로 돌아가라면 차라리 다른 일 할 거예요. 저는 연주자·작곡자·편곡자로서 가수 주변에 머무르는 게 좋은데, 얼떨결에 인기 가수가 됐죠. 낮엔 아이돌 스타처럼 살고 밤엔 곡 쓰는 뮤지션으로 돌아오고… 제일 먼저 놓아버리고 싶었던 건 가수였어요.” 라고 대답했다.
덕분에 2집은 1992년과 1993년에 걸쳐 1년 차이로 《Part 1》, 《Part 2》라는 형태로 나오기도 했다. 《Part 1》은 100만 장 팔리면서 90만 장 팔았던 1집처럼 인기가 좋았지만, 《Part 2》는 30만 장[26]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상대적으로 부진했다.[27] 거기에 갑자기 가수 은퇴를 발표했다가 번복하는 등 고민이 많았다.
이후 대학생 신분으로 입대를 계속해서 연기를 하던 윤상 앞으로 1993년 5월에 입대 영장이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 무렵 그가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한다는 소식까지 들려오며 병역 기피 논란으로 말이 굉장히 많았지만 결국 1993년 12월 현역으로 입대하며 상황은 종료되었다. 자세한 건 아래서 후술. 그에게 군입대로 인한 한 가지 애로사항이 있었다면 원하는 악기를 맘대로 사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분은 늘 절친인 작사가 박창학이 수고했어야 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현재까지도 윤상이 그렇게 아끼는 미니무그.[28]
또 군복무 당시 영화 〈알바트로스〉의 음악 감독을 맡아 OST를 작업을 하기도 했다.
3.4. 전역 후
전역한 후 1996년 복귀작으로 리메이크 앨범인 《Renacimiento》[29]를 발표했다. 총 9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윤상이 불렀던 신곡은 2곡(벽, 배반)뿐이고, 2집 《Part 2》의 〈가려진 시간 사이로〉를 샘플링해온 것으로 보이는 1분 짜리 연주곡인 〈Eco〉 하나를 제외하면 나머지 6개 트랙이 자신이 불렀거나 작곡했던 예전 히트곡들을 이탈리아/프렌치 팝/남미 음악 풍으로 재편곡한 후 해당 국가 보컬들에게 그 나라의 국어로 번안한 가사로 부르게 한 앨범이었다. 이 앨범은 그때까지 계속 윤상에게 따라다니던 일본 음악 표절설에 대한 항변격으로 낸 것이다. 위의 작업을 통해 자기는 일본 음악이 아니라 월드 뮤직에 관심이 있는 것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30]윤상은 월드 뮤직, 특히 남아메리카 쪽 음악을 무척 좋아한다. 김형석, 성시경의 말에 의하면, 윤상은 툭하면 “야. 이거 이탈리아의 무명 뮤지션 b-side의 곡이랑 진행이 비슷한데?”라고 한다며 투덜댄다고 한다. 자신의 음악이 외국인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지, 그 나라 언어로 가사를 붙이면 어떨지 궁금했던 것도 《Renacimiento》 앨범의 기획 의도였다. 하지만 판매량은 10만 장 남짓에 그쳤다.[31]
또한 같은 해에 신해철과 함께 프로젝트 팀 노땐스를 결성하고, 《골든힛트》라는 제목의 앨범을 낸다. 당시 대한민국 최초의 본격 테크노/전자음악 앨범인데, 이후 상당한 희귀 음반이 되었다. 2002년 S.E.S가 리메이크한 노래 〈달리기〉도 윤상이 작곡한 곡이자 본래 이 앨범에 실려있는 곡이다.
1998년에는 지금까지 윤상의 최고 역작이라 불리는 싱글 앨범 《Insensible》을 발표했으며, 이승환이 프로듀싱했다.
2000년 6월에는 윤상의 정규 앨범 중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앨범이자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81위에 랭크된 앨범인 3집 《Cliché》를 발표한다.
데뷔부터 제대까지, 초반에는 외국 곡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곡들과 오빠 부대로 시작했으나 이런 일련의 작업들로 오빠 부대 아이돌 연예인에서 본좌 뮤지션으로 정체성이 확립된다. 그러면서 대중적 인기는 다소 멀어져 갔다.
3.5. 아내와의 미국 동반 유학
약 2003년 적지 않은 나이에 미국 보스턴의 명문 버클리 음악대학으로 학부부터 다시 시작하는 유학을 갔다. 당시 그냥 프로듀싱이나 작곡을 하면서 편하게 먹고 살 수도 있었는데, 신디사이저나 제작 과정에 대해 전반적으로 더 알고 싶었지만 국내에서 정보를 구하기에는 한계에 다다랐기도 하고, 더 이상 음악 작업의 재미를 느끼지 못해 유학을 떠났다고 한다. 후에 밝히기를 유학을 결정할 당시에 "어렸을 적 '나는 나중에 이런 뮤지션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는데, 내 생각보다 너무 일찍 그 꿈을 이루어 버려서 더 이상 뭘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유학을 떠날 결심을 했다"고 한다.어릴 때 데뷔해 성공, 남들이 받들어 주는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어린 사람들과, 그것도 자기가 알아서 하는 분위기의 미국에서 여러 모로 생각도 많이 바뀌고 배운 것도 많은 듯하다. 그냥 놀러 간 게 아니라 정말 제대로 공부하고 왔다. 때문에 유학을 마친 후 피부고 뭐고 더 이상 예전의 연예인스러움이 많이 사라졌다. 근데 당시 한 TV 프로그램에서 윤상을 만나러 갔던 나경은을 포함한 여자 아나운서들은 여전히 멋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무튼 고생도 많이 했다. 처음에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장학금을 준다고 했는데, 말을 바꾼 건지 오해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디션을 봐야 된다고 해서 부랴부랴 베이스 연습을 다시 했으나 탈락했다고 한다. 그래도 나중엔 밤새가면서 공부해서 성적 장학금을 좀 받았다 한다.
이때 부인과의 일화가 있다. 필수 교양 과목 등 본인 전문 분야가 아닌 쪽은 윤상이 맨날 부인 심혜진 씨에게 “여보 숙제 해줘”라고 부탁해서 부인이 “네 숙제를 왜 내가 하냐”며 성질을 내면서 해 줬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물론 윤상은 그때마다 “네가 우리 할 수 있을 거라고, 유학 가자고 했잖아.” 라고 설득해서 부인이 결국 해 줬다고 한다. 또한 유학 중에 잠깐 나왔던 모 방송에서는 핼쑥해져서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했다.[32]
원래는 학부만 마치고 올 예정이었지만 공부에 불이 붙어 졸업한 후 다시 NYU 대학원 뮤직 테크놀로지 석사를 졸업했다. 작곡 편곡이 아닌 사운드 메이킹을 배워 왔다고 할 수 있다. 멜로디가 아니라 소리 구성요소들의 디자인 같은 것. 유학 계획도 중간에 바뀌고, 자식도 둘이나 태어나고 해서 학비와 생활비 관계로 공부하랴 일하랴 엄청 빡세게 살았던 것 같다. 이 와중에는 누들로드의 OST와 DMB 방송을 잠시 진행하기도 했다. 누들로드는 본인이 영상 음악 작업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승낙한 이유도 있다.[33]
유학 중에 잠깐 국내로 들어와서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에 게스트로 나와서 말하기를 "유희열 씨도 가정에 충실하고 싶으면 빨리 이쪽으로 오세요. 대한민국에서는 나가면 '와~ 가수다', '와~ 연예인이다' 하면서 이리 오세요, 저리 가보세요 하지? 여긴 그런 거 없어. 집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는 거야."라고 유학 생활의 소고를 밝힌 바 있다.
유학 전 SM엔터테인먼트으로 이적했는데, 당시 SM의 이미지는 강렬한 춤과 노래로 승부하는 댄스 가수를 양성하는 곳이었던 관계로 다소 충격을 불러왔다. '윤상이 이제 자기 음악을 못 하는 거냐'며 주변에서 걱정도 많았다고 한다. 본인은 그런 건 모르겠고 그냥 계약 조건이 제일 좋아서 승낙[34]했다고 언급했다. 저작권에 대한 권리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만, 10억 정도의 계약금을 받았다고 한다. 계약은 매니지먼트 계약이 아니라 정규 앨범 4~5집 발매, 프로젝트 앨범 1장 등 일 관련 계약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윤상은 SM의 자본력과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었고, SM은 색다른 방향으로 이미지 쇄신 + 윤상의 프로듀싱과 곡을 이용할 수 있었으니 꽤 좋은 계약이었던 셈이다. 결과적으로는 둘 다 윈윈한 계약이었던 것. 덕분에 윤상은 아직도 SM을 좋게 평가하고 있으며, 보아와 동방신기 등의 소속 가수들과 꾸준히 작업 중이다. 우연하게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가 음악 감독을 맡은 평양 공연에는 SM의 Red Velvet이 함께했다.[35] 또한 2023년에는 첫째 아들 앤톤이 SM에서 보이그룹 RIIZE로 데뷔한다.
3.6. 유학 이후 근황
2010년이 되어서야 7년간의 긴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 귀국과 동시에 상명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로 임용되어 강단에 서게 되었고, 이 후 성신여자대학교 현대실용음악학과 교수직에 취임, 2017년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다. 2018년부터는 용인대학교 실용음악과에서 학과장을 맡게 되었다.아내와 두 아들은 미국에서 살던 그대로 계속 거주했기 때문에 기러기 아빠로 생활하고 있다.
2010년대 들어 주목받는 모습이 눈에 띄지 않아, 업계에서 밀려난 것이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은 데뷔 전부터 지금까지 노래 외에도 꾸준히 음반 작업에 참여하며 갈고 닦은 실력을 업계에서 인정받고, 왕성히 활동 중이다. 윤상이 SM으로 영입된 후에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처럼 반주(instrumental version)까지 단독으로 선보일 수 있을 만큼 공들여 내놓은 노래들이 앨범에 더 많이 들어가게 됐다고 한다.
2013년 후반부터 2014년 초까지는 East4A와 함께 아이유의 〈누구나 비밀은 있다〉, HISTORY의 〈난 너한테 뭐야〉, 레인보우 블랙의 〈Cha Cha〉를 순서대로 내놓았다. 이후에는 자신의 작곡 팀인 1Piece 결성으로 합작이 좀 뜸해졌다.
부인 심혜진씨와 같이 빅터 우튼이 쓴 책을 번역해 출간하기도 했다.
2014년 9월엔 디지털 싱글 앨범 《날 위로하려거든》을 발표했으며, 이후 제12회 한국대중음악상에 올해의 노래,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노래 등 2개 부문에 수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된 것은 물론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노래를 수상하였다. 트로피를 집 안에 장식해둔 것은 물론, 수상 내역을 자랑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윤상이 후일 〈무한도전〉에서도 정준하에게 이 상을 보여주며 '흔히 날 발라드 전문 작곡가로만 알고 있는데 이런 성과도 거뒀다'고 자랑하며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음을 강조한 것으로 봐서 굉장히 자랑스러웠던 것 같다.
2014년 11월 데뷔한, 자신의 작곡 팀인 1Piece로 울림엔터테인먼트의 첫 걸그룹인 러블리즈의 총괄 프로듀싱을 맡았다. 특히 데뷔 앨범 《Girls' Invasion》의 타이틀곡 〈Candy Jelly Love〉를 비롯한 총 5곡을 작곡, 편곡했다.[36] 더불어 2015년 10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함께 출연하였고 11월 〈마이 리틀 텔레비전〉 녹화에 출연했을 때도 러블리즈 멤버들과 함께하는 등 방송에 동반 출연하여 아빠처럼 챙겨주는 모습을 보여줬다.[37] 덕분에 러블리즈 팬들이 윤상을 좋아한다.
특히나 수많은 극찬을 받은 명곡이자 여전히 인기 있는 러블리즈의 대표곡 〈Ah-Choo〉는 많은 이들이 윤상이 작곡한 곡이라는 사실을 안 뒤 윤상의 소녀 감성에 대한 극찬이 끊이질 않았다.[38] 평론가들은 전반적으로 러블리즈라는 팀은 윤상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해 나가고 있으며, 윤상 특유의 마이너한 감성으로 범대중적인 인기를 얻기에는 쉽지 않아 보이나, 곡의 완성도만큼은 최고에 이른다고 호평하였다.
2016년 러블리즈 미니 2집 《A New Trilogy》 기자 쇼케이스[39]에서 윤상이 러블리즈와의 특별한 인연[40]을 계속적으로 이어갈 것을 선언하였고, 러블리즈를 통하여 본인의 음악적 이상[41]을 펼쳐나갈 것을 발표하였다.
다만 2017년에 새로 러블리즈와 작업한 정규 2집[42] 타이틀 곡 〈WoW!〉는 가사와 노래 구성이 좋게 말하면 독특하고, 안 좋게 말하면 마이너해서 팬들과 대중들의 호불호가 뚜렷이 갈렸다.[43] 그럼에도 후속으로 2017년 5월 2일에 발표된 러블리즈의 정규 2집 리패키지 앨범 《지금, 우리》의 동명 타이틀 곡 〈지금, 우리〉가 5월 16일 SBS MTV 〈THE SHOW〉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작곡가로는 오랜만에 음악 방송 1위 곡[44]을 배출하며 이러한 아쉬움도 털어낼 수 있었다.
2017년 4월 말, 일렉트로닉 전문 레이블 '디지털리언 스튜디오'을 론칭했다. 5월 초 원피스의 신곡 ‘얼론’의 스템 파일을 공개하고 리믹스 컴피티션을 시작으로 매달 한 곡씩 일렉트로닉 장르의 유망한 신인을 소개하는 ‘디지털리언 나우’(Digitalian NOW)라는 레이블 음원 발매 프로젝트도 시작하는 등, 전문적이고 특화된 장르 레이블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
2019년 1월 1일부터 사용 중인 KBS 뉴스 7과 KBS 뉴스 9의 시그널 음악 작곡을 맡았다. # 또한 2021년 6월 7일부터 사용 중인 JTBC 뉴스룸의 시그널 음악 작곡도 하였다.
4. 음악 특징 및 평가
이번 앨범만 해도 얼마나 팔릴 것인가를 생각했다면 이렇게 만들지 않았다. '가요는 후지다, 가요는 팝에 비해 별로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 앞에서 딴 소리가 안 나오게 하는 게 가장 큰 숙제라고 생각된다. 이건 돈을 벌려는 사람에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오히려 판을 소비하지 않는 층을 상대로 기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가요의 질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러지 말고 이런 가요도 있으니까 들어 봐라' 하는 입장도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제작자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을 거다. 그런 일을 한다고 해서 똑똑한 게 아니니까. 나의 자존심의 문제이고, 욕심의 문제다. 나는 모든 에너지가 여기서 나온다고 믿고 있다. 상업적인 가수와 작업할 때는 충분히 상업적일 수 있다. 어떻게 하면 히트할지 누구보다 잘 안다.
- ’09 매경 인터뷰
- ’09 매경 인터뷰
제가 월드 뮤직으로 넘어간 한 가지 이유는 수많은 보사노바가 대한민국에 있었지만 사실 그것을 듣고 겉핥기식 편곡으로 보사노바라고 하는 점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해보자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최소한 보사노바 음악을 한다고 하면 원주민들이 쓴 악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오리지널에 가까운 장치들을 가지고 와 음악을 해야 한다는 의지였다. 그들을 이해하면서도 한 쪽에는 악기에서 오는 뉘앙스를 내 식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예술적인 이유였다. 동경이라고 할까. 그 음악들을 가져 올 때는 최소한 한국에서 어떤 사람이 했던 것보다 이해를 하고 가자는 생각이었다.
- '09 이즘 인터뷰
그를 설명할 때 자주 나오는 말들이 뮤지션들의 뮤지션, 반음계의 왕자님, 살아 있는 신디사이저(심지어 야마하 코리아 엔도서다)와 디지털 사운드 활용 매뉴얼. - '09 이즘 인터뷰
대중적 인기보다 뮤지션들 사이에서 인기가 더 높은 편이다. 들으면 “어 윤상 꺼지?” 하고 알 수 있는 본인의 작곡 특징과 감성을 고스란히 유지하며 웬만한 엔지니어 쌈싸먹을 정도로 음향이나 기술적인 부분도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히트 음악가들은 정점을 찍고는 대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모습들을 보인다. 적당히 베스트 앨범 좀 내 주고, 적당히 예전 히트곡 모아서 라이브 뛰고 가끔 방송 좀 나오고 하는 일이 많은데, 윤상이 수많은 뮤지션들에게 존경받는 이유는 그 태도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도 현역으로 본인 작품은 물론이고 수많은 아이돌 가수 작업들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음악에 관해서는 꼰대질이 없다. 자기보다 한참 어린 전자음악가들과 끊임없이 교류는 물론 작업도 같이 해 나가고 있다. 음악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장르만 고집하는 게 아니라 닥치는대로 듣고 받아들인다. 실제로 JAY-Z, 제드, 데이비드 게타 등 요즘 시류의 음악들도 빠삭하게 알고 있으며 듣도 보도 못한 남미, 유럽, 히말라야 월드 뮤직까지 챙겨 듣는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그냥 윤상 이름값으로 적당히 먹고 살아도 되는 타이밍에 다 때려치우고 유학을 가는 결단을 내렸다.
다만 윤상의 작업 스타일은 굉장히 느린 편에 속하는데, 작사가 김이나는 그가 마치 스스로를 유배 시킨 양반같다며 평가하기도 했다. 작곡에 대한 재촉 아닌 재촉과 함께, 팔고초려 정도 해도 겨우 붓 하나 들고 몇자 썼다가 다시 내려놓는 정도라고... 그리고 이를 증명해주듯, 윤상이 작곡하며 김이나가 작사했던 가인의 〈돌이킬 수 없는〉이라는 곡의 '데모'를 받기까지 무려 1년이 걸렸다고 한다. 특히 둘 다 가수로서는 같은 연도인 1990년도에 데뷔했던 윤종신과 비교해 본다면, 차이가 더 극심히 보이는데, 윤종신은 대략 15집+월간 윤종신 프로젝트까지 많지만, 윤상은 정규 앨범을 32년 간 단 6번 냈다. 윤상 본인도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를 하는 윤종신을 보며 존경한다고 한다. 본인은 〈연간 윤상〉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할 것 같다 덧붙이기도 했다. 또 2011년 20주년 기념 앨범 발매 뒤에 같은 해에 7집이 발매될 예정이었으나 취소되었으며, 5년 후인 2016년엔 7집 선공개 곡 〈그게 난 슬프다〉를 공개하며 2017년 상반기엔 7집이 발매될 것이라는 썰이 돌았으나 이 역시 엎어졌다. 2019년 인터뷰를 통해 녹음 준비 중 계획을 뒤엎었다 밝히며 다시금 확인 사살했다.#. 2014년 발매된 《The Duets PART1》도, PART1이라 하는 것을 보아 처음엔 PART2나 혹은 그 이상을 계획하고 발매했던 것 같지만 이 역시 아직까지도 소식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 작법
솔직히 말해도 돼요? 저는 윤상 씨 너무 섹시해요. 보니깐 우리가 들어갔을 때가 처음 연주한 거예요. 합주를. 근데 다 맞아. 엘리트들이 발산하는 지적인, 그런 느낌이 너무 나서...
- 윤도현
음악가들은 대부분 멜로디나 주 진행 코드를 잡은 후 편곡 작업을 진행한다. 개중에는 이 작업을 분업화해서 아예 리듬섹션 현악섹션 편곡 등은 세션이나 다른 사람에게 맡겨버리는 경우도 흔한데, 윤상은 이 작업을 거의 반대로 진행한다. 일단 전체적인 사운드(주 멜로디의 반주)를 잡고, 그 뒤에 어울릴 만한 주 멜로디를 작곡해 올리는 식이다. 물론 통기타나 피아노로 기본 멜로디를 잡고 만드는 보통의 방식을 사용할 때도 있다.- 윤도현
말은 쉽지만, 윤상이 이렇게 사운드를 만드는 수준은 그냥 여기에 현악을 넣고~ 여기에 베이스를 이렇게 치고~ 하는 정도가 아니라, 기기, 음향, 주파수 조절, 시간차, 서라운드, 각종 이펙트 등을 고려해 장인/엔지니어에 가까운 집요함을 보인다. 사운드 소스부터 자가 제작해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그냥 스테레오로 틀어 놓으면 편안하고 여백이 많은 발라드풍 가요로 들리지만, 헤드폰이나 좋은 음향 장비로 들으면 '뭐 이런 미친 곡이 있지?'라는 생각이 저절로 나온다. 신디/미디/이펙트로 할 수 있는 소리를 전부 뽑아내 곡 전체에 1000조각 퍼즐처럼 꽉꽉 채워 놓았다. 예를 들어 윤상의 〈악몽〉을 스테레오로 듣다가 헤드폰으로 들으면 가히 신세계를 느낄 수 있다.
빌딩 건축을 음악 작업이라고 할 때, 보통 빌딩 하나를 만드는 데 설계, 자재 조달, 인테리어, 전기 배선, 시공 등이 전부 분업화되어 각기 다른 사람들이 진행한다. 그런데 윤상은 설계, 자재 조달, 시공, 인테리어, 전기 배선을 죄다 혼자서 처음부터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해서 빌딩을 짓는 셈. 사운드나 곡의 구조에 대해 전체적으로 처음부터 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작법이다.
이런 작법의 예로, 아래 두 곡을 들 수 있다.
<rowcolor=#fff> 윤상 - Tango por Uno | 강수지 - 잊으라니 [45] |
- 사운드
유희열이 윤상의 2집 앨범 《Insensible》을 추천하며 붙인 설명 영상 |
사운드에 대한 집착과 예민함 역시 무시무시해서, 단순히 더 좋은 음질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시대에 유행하는 사운드에 맞추기 위해서 전집 기념 앨범도 리마스터링 했다. 실제로 많은 뮤지션들이 엔지니어나 믹싱 관련 윤상의 조언을 많이 구하는 편이다. 이렇게 사운드에 예민해서 세션보다는 자신이 완벽하게 컨트롤이 가능한 프로그래밍에 많이 무게를 두는 편이다. 유희열은 “윤상 음악은 일단 드럼에서 끝난다. 대체 어떻게 이런 소리를 프로그래밍했는지 모르겠다.” 라고 감탄할 정도. 세션들을 지나칠 정도로 과도하게 믿고 세션에 심지어 곡의 주요 편곡 방향을 맡겨버리는 요즈음의 작곡가들과는 달리 완벽하게 곡의 모든 부분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집요하게 밀고 나가는 윤상의 곡들은 훨씬 더 섬세하고 철저한 구상을 느낄 수 있다. 노래가 아닌 연주 부분을 들어보면 이런 부분이 더 잘 드러난다. 이는 2018년 발매된 러블리즈의 Inst. 앨범인 《Muse on Music》에서 1Piece가 작곡한 곡들을 들으면 느낄 수 있다.
〈라디오천국〉에서 밝힌 윤상 본인과 유희열의 작곡 차이는 일단 윤상은 일이 자신의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피가 마르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당시 성시경에게 곡을 주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게 또 흥행이 안 되면 어쩌나 하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고백하기도... 반면 유희열은 타인의 스타일을 배우고 잘 흡수하는 능력이 강하다고 한다. 본인의 색이 없는 것도 색이 될 수 있다고 조언을 해준 적도 있다고 한다.
NYU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프로젝트로 만들었던 〈Play with Me〉에서는 3분 남짓한 시간 동안 아기 옹알이 몇 개와 장난감 소리를 다양한 이펙트를 먹여 가공하고 배치했다. 여기 나오는 실로폰 소리는 당시 자택 근처 아이들 놀이터에 있던 실로폰 소리를 윤상이 이웃집에 민폐 끼칠까 조심해하며 새벽에 녹음기 들고 나가 직접 소스를 따 온 것이다. 곡은 3분이지만 옹알이를 이렇게 다양하게 가공하려면 엉덩이 부을 정도로 며칠 밤낮을 컴 앞에 앉아 있었을 거다.
- 멜로디
- 보컬
윤상 씨의 곡 중에 〈사랑이란〉이라는 곡이 있는데, 이걸 제가 〈스케치북〉에 나가서 부른 적이 있었어요. 근데 부르면서 ‘아, 윤상이라는 가수는 정말 진짜 가수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게, 비교해서 들어보시면, 예를 들어 저는 거의 독립운동하듯이 (에너지 가득한) 스타일로 부를 수 밖에 없는... 이런 발라드가 고음으로 올라가면 힘을 줘서 터뜨릴 수 밖에 없어요. 근데, 상이 형은 저음이나 고음이나 같은 힘으로 쭉 바르는데 그게 너무 아름다워서, 제가 이 노래를 하기로 해놓고선 녹화를 하는 순간에도 계속 '아, 내가 왜 이 노래를 선택했지.\' 했던 기억이 있어요. 이 노래를 들으시면 윤상이 얼마나 훌륭한 보컬리스트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실 수 있을겁니다.
- 이적
성량이 풍부하거나 감정적인 보컬은 아니지만, 본인의 목소리를 어떻게 잘 살리는지 정확히 알고 있으며 특히 완급 조절은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나지막하고 담백해서 쉬운 것같지만, 막상 부르면 원곡 같지가 않다. 이승환은 윤상의 보컬에 대해서 느낌과 감정을 살리는 면에서는 윤상이 최고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단적으로 뮤지션 신해철 왈, "윤상은 노래를 잘 하는데 자기가 그걸 모른다."- 이적
- 프로듀싱
하지만 제대 후인 1997년에 공동 제작한 혼성 듀오 알로(Halo)는 이전과 달리 흥행이 매우 부진한다. 알로는 과거 1730의 멤버이자 프로듀서였던 무아(김주훈)와 보컬 김지혜의 2인조로 구성된 유닛으로 윤상 팬 외에는 아는 사람이 적지만, 당시 알로가 불렀던 ‘랄랄라’, ‘잠자는 숲속의 왕자’ 등은 지금 들어도 윤상 특유의 아기자기하고 촘촘한 편곡이 돋보이는 귀여운 댄스 팝이다. 〈라디오 스타〉에 나와서 왜 제작을 안 하시냐는 질문에 과거에 이렇게까지 망할 줄 몰랐다며 당시에 큰 상처를 받아서 못 하고 있다고 회고할 정도. 유희열이나 주변 사람들은 너무 시대를 앞서갔다, 아깝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음악적인 면에 대한 평가고 앨범 재킷이나 음악 방송 활동 영상을 보면 97년 당시 기준으로도 촌스럽고 이해하기 힘든 의상과 콘셉트로 인해 외면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랄랄라'는 윤상 20주년 기념 앨범에서 소녀시대가 참여해 다시 불렀고, ‘잠자는 숲 속의 왕자’는 아이유 정규 2집 "Last Fantasy"에서 부활한다.
팀의 데뷔 앨범 프로듀싱과 데뷔곡 ‘사랑합니다...’를 담당했다. 이후 2집의 ‘고마웠다고...’는 TV 방송 1위를 한다. 당시 충격을 일으켰던 SM 이적 이후에는 보아, 소녀시대, 동방신기,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 등에게도 곡을 주었거나 지금도 주고 있다.
그 외 함께 작업한 가수들은 아래와 같다.
- 이수영 - 6.5집 "꽃들은 지고" (TV방송 1위)
- 가인 - 탱고, 일렉트로니카를 섞은 ‘돌이킬 수 없는’을 이민수와 공동 작곡하여 가인이 오랜만에 지상파 1위를 차지하게 된다.
- 아이유 - "Real+" 앨범 타이틀 곡인 '나만 몰랐던 이야기'를 주었고, "Last Fantasy"에서도 '잠자는 숲 속의 왕자'를 리메이크해서 주었으며 후술하겠지만, 그 외에도 음악적 교류를 계속 하고 있는 듯하다.
- 박효신 - 정규 2집 "Second Story"의 3번 트랙 '먼 곳에서'와 10번 트랙 '편지'를 작곡했다. 두 곡 모두 작사는 박창학.
- 윤종신 - 윤종신의 월간 윤종신 2012년 10월호 '나쁜'을 작곡 및 편곡했다. 둘 다 뮤비에 출연한 건 덤.
- 유희열(토이) - 토이 정규 앨범에 4집부터 6집까지 총 3번 보컬로서 참여한 바 있다. 7집에는 없는 듯하다.
- 성시경 - 2011년 성시경 7집에 수록된 '아니면서'는 박창학 작사, 윤상 작곡이다. 성시경 자신이 맘에 들어하는 곡 중에 하나로 꼽기도 하다.
특히 아이유에겐 음악 방송에서 피아노 반주를 해 주거나 뮤비 찬조출연 등 전폭 지원을 해 주고 있다. 윤상이 그녀의 아버지랑 동갑이기 때문에 ‘아빠’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46] 근데 윤상은 아이유를 처음 만났을 때 오빠로 부르라고 했다고 한다. ‘나만 몰랐던 이야기’ 뮤비엔 박보영의 연인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아이유와의 인연은 계속되어 아이유 3집 "Modern Times"에서는 가인과의 듀엣곡인 '누구나 비밀은 있다'를 제공했고, 2014년에 발매된 아이유의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에서는 윤상이 김현식에게 주었던 '여름밤의 꿈'을 리메이크했다.
S.E.S.의 마지막 정규 앨범인 5집에 수록된 히트곡 '달리기'도 원래 노땐스 시절 "골든힛트" 앨범에 수록되었던 곡. 물론 리메이크 버전은 희망차고 발랄한 곡이지만, 원곡은 인생을 달리기에 비유한 곡으로 좀 우울하다. 윤상 본인도 라디오에서 S.E.S가 많은 곡들 중 왜 이걸 리메이크했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4.1. 완벽주의
나는 오랜 시간, 그리고 노력을 통해 윤상을 알게 됐다. 그래서 윤상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음악을 하고 싶어하며,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등을 꽤 잘 알고 있다. 윤상은 참 고민이 많은 친구이다. 그 주위의 친구들이 대부분 어떻게 좋은 음악을 만들어 낼지에 대해서 고민하지만 이 친구는 좀 심한 편이다. 웬만하거나 무난하다고 생각되는 마무리를 며칠밤을 새며 수십번 수정을 거듭한다. 완성도에 대한 그의 욕심에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쯤이면 1991년 데뷔해 10년이 넘도록 발표한 정규 음반이 세장 밖에 안되고, 이제서야 겨우 두번째 콘서트를 갖게 되는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노영심 #
- 노영심 #
남궁연: 윤상 씨는요, 약간의 신경쇠약이 있어요. 그래서 (드럼의) 하이햇 소리가 본인의 심기를 건드리면, 연습을 못해요. 그 소리가 리듬 머신보다 못 하면 옆에 가서도 안되고.
정재형: 아마 유일하게 리듬을 녹음실에서 연습해오면 다시 집에 가지고 가서 다시 편집을 하던 분이에요.
남궁연: 결벽증 환자!
가요계 대표 완벽주의자중에서도 본좌급으로, 이는 주변의 동료 뮤지션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전술했지만, 그가 다작을 하지 않고, 발표한 정규 앨범이 적은 것 또한 이러한 성향도 한몫한다. 너무 많은 스트레스로 앨범 하나 작업하고 나면 건강이 바닥을 치기 때문. 밤낮이 바뀌고, 신경쓰느라 잠 안 와서 술 먹고 자고, 간 나빠지고, 담배 늘고, 스트레스 받고의 악순환. 우울증 치료제와 알코올 의존증 증세까지 달고 다니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었다. 이후엔 금주 및 치료 중이다.하지만 이러한 그의 완벽주의적 성격은 그가 가수로서 데뷔하기 전인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로 활동했을 때부터도 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당시 90년대에는 녹음 후 음정 보정이 가능한 오디오 장치인 오토튠이 없었기에, 녹음한 그대로가 앨범에 넣어야 했던지라 완벽주의적인 면모가 지금보다 훨씬 이상이었다. 게다가 시간이 많이 흘러 그만큼 나이를 먹으니 유해진 지금과 달리, 굉장히 까칠하고 예민한 그의 성격과 합쳐져, 프로듀서 활동 초반엔 녹음하는 상대 가수와 트러블이 발생하는 경우도 꽤나 잦았다.정재형: 아마 유일하게 리듬을 녹음실에서 연습해오면 다시 집에 가지고 가서 다시 편집을 하던 분이에요.
남궁연: 결벽증 환자!
- 강수지는 녹음하면서, 윤상때문에 2~3번 울었던 적이 있다. 사건인 즉슨, 윤상이 작곡한 1집 "보라빛 향기"가 초대박이 나고 2집 "흩어진 나날들" 녹음 중, 이 정도면 다 된 것 같음에도 윤상이 계속해서 자신에게 녹음을 시키자 강수지는 "제대로 나왔잖아."라고 대꾸하였고, 이에 윤상은 "제대로 안 나왔잖아." 라고 받아쳤다고. 이어 윤상이, "이거 누구 노래야? 여기서 한 번 녹음하고 나온 이 노래, 평생 네 곡으로 남을텐데.. 이게 내 노래야?"라며 말을 덧붙이자, 이 말을 들은 강수지는 헤드폰을 벗고 녹음실을 빠져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윤상은 강수지가 얼마 되면 다시 들어올 것이라 생각해서 녹음실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계속 기다리는데도 강수지가 안 들어오자 밖에 나가 보니 그제야 울고 있는 강수지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얘기를 하며, 윤상은 “그 사람의 히트곡을 만든 작곡가의 입장으로서, 두 번째도 히트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도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 '입영열차 안에서'를 부른 김민우 역시 윤상 때문에 녹음실에서 운 적이 있다고 한다. 자신의 녹음본을 들려주고는 어떠냐고 묻는 윤상에게 김민우는 "괜찮은 것 같다"고 답했고, 이 말을 들은 윤상은 그에게 "집에 가라. 그냥." 이라 말했다고.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김민우가 울었다고 한다. 이 얘기를 꺼내며, 윤상 본인은 곡을 만든 작곡가 입장에서는 가수 본인이 녹음을 하다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다시할게요." 라고 말하는 가수가 제일 좋다 밝히면서, 반대로 작곡가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네가 이런 녹음본을 설마 남겨서 음반 발매하고 싶다는거냐?'는 상태에서 '다 한 것 같은데요.' 라며 만족하는 듯한 태도를 갖고 있는 가수에게는 섭섭하다고 하는데, 김민우는 후자와 같은 케이스였기에 윤상의 심기를 거스른 것이다. 윤상은 지금에서야 그때 일을 생각해 보면 김민우에게 미안하다고 밝혔다.
<rowcolor=#fff> ‘노래의 탄생’ 2화 中 | ‘노래의 탄생’ 4화 中 |
4.2. 뮤지션들의 뮤지션
뮤지션들이 가장 존경하는 뮤지션중의 한 명으로, 굉장한 완벽주의자에요. 정말 한땀 한땀을 점묘법으로 완성해가는데, 그것들이 주는 완성도에 많은 사람들이 압도되는.
뮤지션들 인터뷰에서 1위가 윤상이라고 했어요 가장 존경하는 뮤지션으로. 윤상은 진짜 매력적이에요.[49]
- 이적
뮤지션들 인터뷰에서 1위가 윤상이라고 했어요 가장 존경하는 뮤지션으로. 윤상은 진짜 매력적이에요.[49]
- 이적
1990년 내가 데뷔 했을 때, 윤상은 이미 22살의 나이로 이미 우리 가요계를 한번 뒤집고 업그레이드 시켰다. 난 동료이기 전에 그의 팬이었고, 그는 김현철, 정석원 등과 함께 나의 노래를 초라하게 느낄 정도로 세련되고 앞서나가는 음악을 했다. 나는 그를 동경했고 그와 작업을 하고 싶었다.[50]
우리나라 가요계의 우아함의 상징.
- 윤종신
우리나라 가요계의 우아함의 상징.
- 윤종신
세상에서 형을 제일 좋아하는 팬 대회를 연다면 내가 1등할 자신있거든요, 그러니깐 나를 위해서라도 음악 좀 더 많이 만들어줘요. 더 듣고 싶어. 더 듣고 싶으니깐..
실제로 제 눈에는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남자 중에 하나거든요. 제가 입버릇처럼 얘기했던게, "내가 여자로 태어났었으면, 난 윤상을 사귀었을거다." ~라고 얘기했었는데, 지금은 절대 아니에요. 어깨 좁고 허리 긴 형!~
워낙 스펙트럼이 넓어요. 정말 아이돌 음악부터 시작해서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음악적 자양분이 많은 선배이자 최고의 뮤지션.
윤상은 음악인으로서는 정말 최고다. 그 부분에 대한 존경이 너무 강하다. 결과물이 너무 좋으니까 이길 수가 없다. 상이 형이 최고다![51]
- 유희열
실제로 제 눈에는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남자 중에 하나거든요. 제가 입버릇처럼 얘기했던게, "내가 여자로 태어났었으면, 난 윤상을 사귀었을거다." ~
워낙 스펙트럼이 넓어요. 정말 아이돌 음악부터 시작해서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음악적 자양분이 많은 선배이자 최고의 뮤지션.
윤상은 음악인으로서는 정말 최고다. 그 부분에 대한 존경이 너무 강하다. 결과물이 너무 좋으니까 이길 수가 없다. 상이 형이 최고다![51]
- 유희열
최고의 뮤지션이자 아티스트죠. 저는 윤상 씨 처음에 음원나올때, 그 테이프였어요.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어요. 일단 사운드가 기존에 쓰지 않았던 본인만의 독특한 사운드가 있고, 거기에 아날로그가 있어요. 예를 들어 첼로 소리가 들어간다거나, 동양적인 어떤 느낌이라든가.
- 김형석
- 김형석
윤상 선배님을 존경했어요. 제가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가 컴퓨터 음악으로 시작을 했었어요. 그래서 그때 노영심 선배님이랑 같이 방바닥에 앉아서 찍은 음반있죠? 그 집에서 사진 찍은 건데 그것조차 너무 멋있었고, 그리고 그걸 갖다가 흑백 화면을 보며 한 음 한 음 제가 카피를 하며 음악을 연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하림
- 하림
5. 음반
자세한 내용은 윤상/음반 목록 문서 참고하십시오.윤상의 음반 목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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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 윤상 (1990) | 2집 Part I (1992) | 2집 Part II (1993) | 3집 Clichè (2000) | |
4집 移徙 (이사) (2002) | 5집 There Is A Man... (2003) | 6집 그땐 몰랐던 일들 (2009) | ||
EP | ||||
Renacimiento (1996) | Insensible (1998) | |||
싱글 | ||||
날 위로하려거든 (2014) | The Duets PART1 (2014) | 그게 난 슬프다 (2016) | ||
기타 음반 | ||||
골든힛트 (1996) | Song Book: Play with Him! (2008) | mo:tet (2008) | Yoonsang 20th Anniversary (2011) | |
음악 감독 | ||||
파일럿 OST (1993) | 알바트로스 OST (1996) | KBS 누들로드 OST (2009) | 아키에이지 OST (2013) | |
오아시스 OST (2023) | ||||
보컬 참여 앨범 | ||||
A Night In Seoul (토이 4집) (1999) | Fermata (토이 5집) (2001) | ...그리고 김현철 김현철 8집 (2002) | Thank You 토이 6집 (2007) | |
Swallow 조원선 1집 (2009) | Last Fantasy 아이유 2집 (2012) |
5.1. 음악 감독
자세한 내용은 윤상/음악 감독 문서 참고하십시오.6. 그 외 활동
6.1. 방송
<rowcolor=#000000> 방영 연도 | 방송사 | 방송명 | 비고 |
1996년 | |||
8월 28일 | 가족오락관 | 게스트 | |
2009년 | |||
1월 14일 | 라디오 스타 | 게스트 | |
2월 3일 | 상상플러스 시즌 2 | ||
7월 24일 | 유희열의 스케치북 | ||
2010년 | |||
7월 9일, 7월 30일 | 유희열의 스케치북 | 게스트 | |
2011년 | |||
4월 11일, 12월 5일 ~ 12일 | 공감토크쇼 놀러와 | 게스트 | |
7월 22일 | 유희열의 스케치북 | ||
2011년 ~ 2012년 | |||
2011년 9월 9일 ~ 2012년 4월 20일 |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 심사위원 | |
2012년 | |||
5월 24일 | 스페이스 공감 | ||
10월 5일 | 유희열의 스케치북 | 게스트 | |
11월 30일 | GO Show | ||
11월 25일 ~ 12월 9일 | 1박 2일 시즌 2 269 ~ 271회 | ||
2012년 ~ 2013년 | |||
2012년 9월 19일 ~ 2013년 3월 27일 | / | 뮤직 트라이앵글 | 진행 |
2013년 | |||
1월 4일 ~ 2월 1일 | 보이스 키즈 | 심사위원 | |
4월 26일, 7월 5일, 12월 20일 | 유희열의 스케치북 | 게스트 | |
2014년 | |||
8월 1일 ~ 9월 5일 | 꽃보다 청춘 페루편 | ||
10월 17일 | 유희열의 스케치북 | 게스트 | |
11월 10일 | 힐링캠프 | ||
12월 12일 ~ 12월 19일 | 유희열의 스케치북 | ||
2015년 | |||
7월 4일 ~ 8월 22일 | 무한도전 - 영동고속도로 가요제 | ||
7월 8일 ~ 8월 26일 | 무비 스토커 | [52] | |
10월 30일 | 유희열의 스케치북 | 게스트 | |
11월 14일 ~ 11월 21일 | 마이 리틀 텔레비전 | ||
12월 3일 | 해피투게더 3 | 게스트 | |
2015년 ~ 2016년 | |||
2015년 7월 19일 ~ 2016년 1월 26일 | 집밥 백선생 시즌 1 | ||
2016년 | |||
2월 9일 ~ 11월 20일 | 판타스틱 듀오 | ||
8월 11일 | 너의 목소리가 보여 시즌 3 | 게스트 | |
10월 5일 ~ 11월 23일 | 노래의 탄생 | 프로듀서 | |
10월 14일 ~ 12월 9일 | 판스틸러 - 국악의 역습 | ||
12월 23일 ~ 12월 30일 | 믹스 테이프 | ||
2016년 ~ 2017년 | |||
2016년 11월 11일 ~ 2017년 1월 27일 | 팬텀싱어 | 프로듀서 | |
2017년 | |||
8월 11일 ~ 11월 3일 | 팬텀싱어 2 | 프로듀서 | |
2018년 | |||
1월 17일 ~ 2018년 4월 18일 | 싱글 와이프 2 | ||
7월 18일 | 라디오 스타 | 게스트 | |
2018년 ~ 2019년 | |||
2018년 11월 10일 ~ 2019년 1월 26일 | 보컬플레이 | 프로듀서 | |
2019년 | |||
3월 1일 | 유희열의 스케치북 | 게스트 | |
4월 12일 ~ 7월 12일 | 슈퍼밴드 | 프로듀서 | |
8월 31일 | 놀면 뭐하니? | ||
10월 5일 ~ 11월 23일 | 노래의 탄생 | 프로듀서 | |
9월 20일 ~ 11월 8일 | 노래에 반하다 | ||
2020년 | |||
3월 6일 | 너의 목소리가 보여 시즌 7 | 게스트 | |
6월 5일 | 다큐멘터리 3일 실패해도 괜찮아 - 목포 괜찮아마을 72시간 | 내레이션 | |
4월 10일 ~ 7월 3일 | 팬텀싱어 3 | 프로듀서 | |
7월 15일 | 대한외국인 | 게스트 | |
9월 27일 | 선미네 비디오가게 | ||
2021년 | |||
5월 26일 | 곽씨네 LP바 | 게스트 | |
6월 21일 ~ 10월 4일 | 슈퍼밴드2 | 프로듀서 | |
2022년 | |||
6월 21일 | 뉴페스타 | 게스트 | |
7월 17일 | 출발! 비디오 여행 | 나레이션 | |
2023년 | |||
10월 9일 | 동상이몽2 - 너는 내 운명 | 게스트 | |
2024년 | |||
6월 19일 | 라디오스타 | 게스트 | |
10월 10일 | 대학가요제 | 심사위원 | |
2018년 ~ 현재 | |||
2018년 9월 30일 ~ 현재 |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 고정 패널 |
MBC 시트콤 '가문의 영광'에서의 모습 |
2012년말 '1박 2일 시즌2'에 '가사도 음악회' 편에서 유희열, 윤종신과 함께 출연했다. 밴드명은 '유희열과 등대지기' 윤종신과 윤상의 '추대'에 의하여 유희열이 밴드 마스터를 맡았기 때문이다. 윤종신에 따르면 그의 리즈 시절은 문민정부 전이었다고 하며 그리고 성시경은 깨알같이 "나 이사람 믿어주세요"라며 성대모사를 쳤다.
2012년 5월 EBS '스페이스 공감'에 나와서 “방송에서 라이브로 이렇게 많은 노래를 부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말했으며 이후로 조금 뜸하다가 2014년 꽃보다 시리즈 후속 '꽃보다 청춘'에 출연하였다. 유희열, 이적과 함께 졸지에 페루로 아무런 사전준비 없이 떠났다. 윤상은 여타 출연자(유희열, 이적)들과 달리 잠자리, 화장실에 대해 불편해하며 예민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윤상의 불면증으로 인한 것이라 한다. 20년 전부터 술을 꾸준히 마신 후 잠에 들었다고 할 만큼 알코올 의존증이 있었으나 최근 몇 달 전부터 가족과 건강을 위해 끊었다며 심할 때는 약을 복용하며 견딘다고 한다.('꽃보다 청춘' 2화 中) 약을 복용하면서 술에 의존하지 않게 되었지만 부작용으로 소화기관에 이상이 생긴 듯. 이 사실을 들은 이적은 인터뷰 도중, 짜증을 낸 형에게 미안해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며 본인의 한계점에 부딪치며 넘어서려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였다.
2014년 11월 157회 '힐링캠프'에 출연했다.
2015년 5월 시작한 tvN의 '집밥 백선생'에서 백종원에게 요리를 배우는 네 명의 제자 중 한 명이 되었다.
2015년 7월부터 '2015 무한도전 가요제'에 참가한다. 짝이 된 멤버는 정준하. 역시 7월부터 10주간 CGV의 '무비 스토커'라는 영화 토크쇼에 영화 잡지 기자라는 컨셉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2016년 원피스 팀의 일원인 스페이스 카우보이와 함께 '노래의 탄생'의 참가 프로듀서로 출연하였다. 프로듀서로서 윤상이 면모를 드러내 방송 포맷에 어울리는 출연이었다면 호평을 받고 파일럿 프로에서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될 예정이라고 한다.
2016년 8월 11일 '너의 목소리가 보여3'에 출연하였다.
2016년 10월 엠넷의 '판스틸러'라는 프로그램에 고정으로 출연했다.
2018년 3월 SBS '싱글와이프 시즌2'에 출연했다.
2018년 10월 7일 '복면가왕' 86차 경연부터 고정 판정단으로 참여하고 있다.
6.1.1. 위대한 탄생 심사위원
2011년 9월~12년 4월 방영된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2기에서 심사위원으로 출연하였다. 평소의 조근조근한 말투로 감정적으로 화를 내진 않지만 무표정하고 냉정하게 짚을 것은 죄다 짚어 주는 편이라 독설 멘토로 위상을 날린다. 누군가가 말하길 다른 독설들은 그냥 기분 나쁘고 말거나 개인 취향으로 넘길 수 있지만, 윤상의 악평은 엑스레이로 스캔당하고 벌거벗겨져서 밑천이 탈탈 털려버리는 느낌이라고 한다.[53]'너무한 것 아니냐', '윤상이 저럴 줄 몰랐다', '반전이다' 하는 말들도 있지만, 꽤 오랫동안 윤상을 알아온 사람들에게는 크게 놀랄 것 없다. 보통 때는 소심하고 부드럽다. 그러나 음악에 대해서는, 뒤에 나오는 완벽주의자 성향 때문에 본인 작품도 치열하고 진지하고 엄격하게 대하는 사람인데다가 작곡/제작 경력만 쳐도 20년이 넘어간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다. 함께 오래 활동했던 강수지는, 윤상은 화를 내거나 소리를 치는 일은 없지만 녹음시 정말 깐깐해서 같이 작업할 때는 항상 긴장했다고 한다.[54] 작업하던 여자 가수들 여럿 울렸으며 게다가 딱히 평 중에 억지춘향이거나 틀린 말을 한 것도 없다. 덕분에 방송 후 멘티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보니 멘티들이 다들 각잡고 초긴장 상태로 앉아 있었다고 한다.
얼마 후 이승환, 윤하와 같이 고현정이 진행하는 〈Go Show〉에 출연했다. 여기에서 털어놓길, "악평을 한 참가자의 이유가 된 태도 등은 방송에 다 나오지 않고 자기가 악평하는 것만 나와서 자기만 나쁜 사람 되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집에서 간식 먹으면서 방송 보다가 목에 걸려서 쿨럭쿨럭... 그리고 같이 출연하는 이승환에게 전화해서 2시간을 투덜거렸다고.
그런데 실제로 같은 오디션 류 프로그램인 〈팬텀싱어〉에서는 그다지 독설가 포지션이 아니다. 독설은 뮤지컬 감독인 김문정과 오디션계의 베테랑(?)인 윤종신 쪽이 더 많이 날리는 편. 오히려 프로듀서들 중에서도 마이클 리와 더불어 심사기준이 독특하고 소수 의견을 많이 낸다는 점이[55] 특징이기는 하지만, 장점과 단점을 굉장히 균형감 있게 조곤조곤 짚어주는 편이라 밑천이 털리는 경험을 할 정도는 아니다. 물론 〈팬텀싱어〉라는 프로그램이 신예 뮤지컬 배우나 전문 성악가, 대학생들 중에서도 성악과나 실용음악과 등 음악 내공이 대중 오디션보다 높은 참가자들이 대거 참가하기에 윤상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일 가능성도 있지만, 정말로 〈위대한 탄생〉이 악마의 편집을 해댄 것일 가능성도 있다. 본인은 그 당시엔 방송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때라서 필터링 자체를 생각에 두지 않고 다녔다고 한다. 〈팬텀싱어〉는 악마의 편집을 잘 안 하는 편이다.
6.2. 라디오 DJ
1992년 즈음, '밤의 디스크쇼'의 DJ로 활동할때의 윤상[56] |
이후 2000년부터 2002년까지 MBC FM4U에서 오전 9시~11시에 “윤상의 음악살롱” 을 진행하며 윤마담이란 별명으로 불리곤 했다. 2010년 4월 19일부터 2013년 4월 30일까지 약 3년 동안 KBS 제2FM에서 오전 11시~12시에 '윤상의 팝스팝스' 진행을 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보다 록 중심이라면 윤상은 좀 더 소녀스러운 올드팝이나 월드 뮤직을 곧잘 틀어줬다.
이외에도 유희열이 진행하던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성시경의 FM음악도시 성시경입니다 등에 게스트로 꽤 많이 오곤 했다. 특히 성시경은 유희열과 함께 그를 자주 초대했었다.[57] 특히 음악도시의 고정게스트 중 한명이었던 이준오는 성시경과 더불어 윤상 빠심을 인증한 바 있다. 라디오천국의 고정게스트였던 옥상달빛의 김윤주 역시 윤상에 대한 오랜 존경심과 빠심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외에도 2013년 12월 10일에는 두시탈출 컬투쇼에도 출연했다. 이 때 윤상은 초창기 음악을 하고 싶어 김현식에게 찾아갔던 일화라던가, 부인 심혜진과의 일화 등을 소개했다. 그리고 이 때 "윤상 심혜진" 등이 인터넷 검색엔진에 오르락내리락했다.
그 뒤에, 음반 작업을 위해 버벌진트에게 자리를 넘겼다가 최다니엘의 진행을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은 폐지.
2021년 7월 5일부터 2022년 12월 29일까지는 NOW.에서 오디오 쇼 '너에게 음악'을 진행하였다. 이는 윤상이 8년만에 다시 진행을 맡은 음악 프로그램으로,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바람.
6.3. 광고
- 2001년 리바트 (이현우, 김현철, 윤종신과 공동 출연)
- 2001년 랄프로렌 로맨스
- 2002년 LG텔레콤 파워요금제 (배용준과 공동 출연)
- 2003년 미로비젼 그녀에게
- 2003년 우정사업본부 우체국금융 (아내 심혜진과 공동 출연)
- 2011년 삼성전자 하우 투 리브 스마트 레슨 (아이유와 공동 출연)
- 2011년 월트디즈니특별전
- 2013년 삼성전자 갤럭시 S4
- 2014년 다음검색 (유희열, 이적과 공동 출연)
- 2014년 삼성화재 (유희열, 이적과 공동 출연)
- 2017년 사이게임즈 섀도우버스 (박나래, 개리, 윤건과 공동 출연)
- 2020년 뮤직카우
6.4. 서적
- 나를 기억하고 있는 너에게(2009) - 윤상이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의 일상생활을 담은 에세이이다.
- 음악 레슨:인생 연주 비법 - 빅터 우튼의 책을 부인인 심혜진 씨와 공동 번역했다.
6.5. 홍보대사
- 2016년 제1대 대구음악창작소 명예소장
7. 대인관계
7.1. 가족 관계
- 부인인 심혜진씨는 1975년생으로, 윤상의 7살 연하이다. 2002년에 결혼하여 슬하에 2남을 두고 있는데, 윤상의 두 번째 EP 앨범인 《Insensible》의 수록곡 〈언제나 그랬듯이〉의 뮤직비디오를 계기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고 한다. 당시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던 심혜진 씨와 뮤비를 촬영하며 배우와 가수로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둘이 보자마자 서로 필(feel)이 꽂혔다는 것. 당시 소속사 사장이었던 이승환이 뮤비 촬영 기간 내내 회식을 주도했는데, 그 과정에서 윤상이 "앨범 나오면 어디로 보내드리면 될까요?"라고 물으면서 전화번호를 알아내기도 했다고 한다. 부인도 윤상이 마음에 들었던지라 그때 전화번호도 주고, 윤상의 차가 고장 났을 때 본인 차로 태워다 줬다고 한다. 윤상의 직업적 특성이나 유학 시절 고생한 것 때문에 늘 부인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언급하는 편이다. 아내 심혜진 씨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 졸업 후 동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 석사를 마쳤으며, 결혼 이후 연예계 활동은 접었다. 윤상이 아내의 연기 활동에 대해 조언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을 듣고 연기를 안 하겠다고 말했다고 하며, 그렇기에 윤상은 지금에야 아내가 연기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하면 적극 추천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 장남은 2004년생 이찬영 군으로 굉장한 훈남으로 성장하고 있어서 화제가 되었다. 부모님의 장점만 쏙 닮은 외모에 현재 미국 뉴저지주 주니어 수영 선수를 했으며 피지컬도 좋은 편이라 아이돌 뺨친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미국에서 태어나 성장한지라 한국어가 유창한 편은 아니다. 방송에 공개 이후 수년간 꾸준히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아이돌상’이라고 언급되며 외모로 주목받았다. 2021년 5월 tvN '곽씨네 LP바'에 출연한 윤상은 "아들이 원래 수영선수를 10년 동안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수영선수를 못 하는 상황이 되자 '허락해주신다면 음악을 열심히 해보겠다'더라"고 아들이 음악으로 전향한 소식을 전했다.# 이후 2023년 9월 SM 엔터테인먼트에서 신인 보이그룹 RIIZE로 데뷔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7.2. 인간 관계
- 노총각 4인방 (김현철, 이현우, 윤종신)
- 김현철
일명 '족보 브레이커'. 윤상은 1968년생이고, 윤종신과 김현철은 1969년생 동갑내기인데, 윤종신은 윤상을 형이라 깍듯히 부르는 반면, 김현철은 윤상을 친구처럼 막연하게 지내는 사이다. 물론 이는 윤종신보다 김현철이 윤상과 예전부터 알고 지냈던, 친하고도 깊은 사이였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중에서도 김현철은 윤상을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 전태관이라는 대선배들에게 연결시켜주는 등 꽤 교류가 있었고, 덕분에 윤상은 봄여름가을겨울의 베이시스트 자리에 제의받기도 했었다. 물론 그 동네 멤버 베이시스트 중 가장 곱상한 외모여서 뽑히게 된 것도 있었고, 윤상은 저 둘이 너무 챙겨주자 그 자리가 부담스러워 거절했다. - 윤종신
윤종신과는 가수 데뷔를 같은 해에 했었다. 허나 윤종신은 윤상에 대해 "동료이기 전에 윤상의 팬이었다", "나의 노래를 초라하게 느낄 정도로 세련되고 앞서나가는 음악을 했다. 나는 그를 동경했고 그와 작업을 하고 싶었다." 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윤상의 곡을 받고 싶었던 윤종신은 MBC 라디오국 화장실에서 곡을 받을 수 없겠냐 간청을 했고, 윤상 역시 긍정적으로 답했다만, 둘 다 너무 바빴기에 흐지부지 됐었다고 한다. 그러다 나중에 친해지게 되었는데, 그러고 나서도 윤상에게 번번히 곡을 요청했지만 곡이 잘 안 나온다는 이유로 거절 당했다고 하며 2012년 드디어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 때서야 협업을 하게 되었고, 10월 호에 실리게 되었는데, 곡 제목이 바로 '나쁜'이다. 이에 윤종신은 '나쁜' 형 윤상이라 덧붙였다. 이 외에도 윤종신은 윤상을 유희열, 정재형, 김동률 등 섬세한 예술가 타입 오빠부대 뮤지션의 프로토 타입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정재형은 윤상 짭퉁이라고 한다. 농담이지만 윤상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는 발언이다. 음악적 외적으로는 윤상을 굉장히 자주 놀려 먹곤 하는데, '1박 2일'에선 '발라드의 조상님', '권영길 의원'이라며 놀렸다."그러니까 노태우 대통령때. 문민정부 전이죠!"물론 음악적으론 굉장히 높게 평가를 하는데, 대표적으로 그를 보고 우리나라 가요계의 우아함의 상징이라 칭한 것이다.
윤상은 한때 위 3명과 같이 묶이며 연예계 대표 노총각 4인방으로 유명했었다.[58] 연예인 중에서 대표 노총각을 꼽으면 항상 저 네 명이 세트로 따라다녔을 정도. 게다가 이 네명의 조합으로 KBS 2TV에서 주말 프라임 시간대에 노총각 장가 보내기 프로젝트를 벌이며 고정 예능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윤상이 제일 먼저 클럽을 탈퇴했으며, 지금은 네 명 모두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유부남이 되었다. 윤상, 김현철, 윤종신, 이현우 순으로 탈퇴하였다.
- 박창학
작사가 박창학은 윤상과 20년 넘은 친구로, 충암고 시절 윤상과 '페이퍼 모드'라는 밴드에 같이 있기도 했었다. 고교 수련회 때 윤상의 기타를 보고 엄청나게 칭찬해 준 옆반 반장이었다. 당시 윤상은 리드기타가 아니라 백킹/리듬기타를 쳤는데 그래서 '얘 좀 특이하네?!'라고 생각한 듯하다. 처음에는 박창학은 자기보다 음악도 더 듣고 같이 놀러 다니는데 공부도 잘 해서 짜증이 났었다고 한다. 데뷔 초반부터 윤상은 본인 곡의 가사는 전부 박창학에게 맡기고 있으며, 작업 초기 단계에서도 계속 같이 하고 있다. 덕분에 윤상이 내는 앨범은 늘 'Produced by 윤상, 박창학'이라는 크레딧이 적혀 있다. 윤상은 그를 가리켜 "내 음악의 절반은 박창학이다. 내 앨범은 사실 2인조 밴드가 만드는 셈"이나, "내 편곡은 한 시대의 고민에 지나지 않지만 그(박창학)의 가사가 내 편곡 위에 앉으면 그때서야 '노래'로 마침표가 찍힌다." 라는 말을 했을 정도로 박창학에게 크게 의지한다. 3집부터는 제목까지 박창학이 일임해서 짓는다고. 싱어송라이터와 작사가가 이렇게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나가는 케이스는 대한민국 가요 역사에 이들이 거의 유일할 것이다. 참고로 그 이전에 윤상은 작사도 해왔지만 박창학의 가사를 읽어보곤 거의 무조건적으로 맡기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박창학이 윤상이 쓴 곡을 전부를 하는 건 아닌데 99%는 박창학의 가사라 생각해도 좋다. 특히 자신의 정규 앨범은 거의 모든 곡이 그의 가사이다. 허나 최근엔 윤상과 협업이 거의 없는데, 사실 이건 윤상 본인이 곡을 별로 안 만드는 이유도 있다.
- 유희열
유희열과는 각별한 사이다. 유희열 본인이 “데뷔하고 유명해지면 윤상하고 친해지는 게 꿈이었다”, “내가 대한민국 최고의 윤상 오덕”, “윤상은 예전 노래, 외모 다 안 촌스럽다”, “내가 여자였으면 윤상하고 사귀었을 거다”, “윤상은 진짜 멋있다” 등의 발언을 했을 정도로 팬심을 드러내기도 했고, 한때 유희열이 자기 음악색이 모호한 것 같아 고민하던 때, 윤상에게 “색이 없는 것도 네 색이야” 라는 말을 듣고 용기를 얻기도 했다고 한다. 유희열은 윤상의 보컬을 매우 좋아해 "토이" 앨범에도 객원보컬로 자주 기용한다. 뿐만 아니라 그 역시 라디오 프로에도 자주 초대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는 윤상과 함께 '사랑하오'를 부르며 꽃다발을 바치고 무릎 베게를 하기도... 또한 한때 윤상 공혼에 이런 그림도 그려서 준 적이 있다.
- 김이나
작사가 김이나와의 관계도 각별하다. 김이나가 윤상의 오랜 팬이었으며, 김이나를 통해서 윤상은 다시 대중음악 메인스트림에 작곡가로 복귀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 인연은 가인의 '돌이킬 수 없는'의 곡을 윤상에게 부탁했는데, 진척이 너무 느려 김이나가 이민수와의 협업을 제의했다고 한다. 윤상에 의하면 이민수와의 협업을 통해서 현재 대중음악의 작법에 대해서 많이 배웠으며, 결국 1Piece의 그림을 그리는 단초가 될수 있었다고 한다.
- 캐스커의 이준오
소문난 윤상 빠. 아이돌 관련 웹진인 아이돌로지에 이준오가 추천하는 아이돌 음악 편이 게시되었는데, 레인보우 블랙의 'Cha Cha'를 추천한 이유에 "윤상이십니다"라고 적었다. 근데 또 이 곡에 대해서 윤상 본인은 자기가 생각했던 의도와 크게 다른 결과물이 나와서 놀랐다고 한다. 원래는 시크하고 도시적인 발랄한 곡을 만들려고 했고, 보컬 디렉팅도 그렇게 했는데 음원이 나오고 뮤비가 공개되자 영 다른 결과물이 나왔다고 한다. 이 음악도시에서는 성시경과 이준오가 윤상 무한 찬양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성시경은 윤상이 기침도 멋있게 한다고 찬양하기도 했다.
하라는 방송은 안 하고윤상 보컬 덕질하는 유희열, 김동률, 이상순.
- 015B의 정석원은 우리 시대의 음악인들 중 윤상에게 영향을 안 받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정석원과 윤상은 같은 1968년생. 윤상 - 5월 11일생, 정석원 - 12월 23일생이다.
- 이승환은 윤상의 보컬에 대해서 느낌과 감정을 살리는 면에서는 윤상이 최고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윤상은 이승환의 대표곡들 중 하나인 '당부'의 편곡과 세션으로 참여하기도 했고, 두 사람이 함께 이소은을 가요계에 데뷔시키는 것에 공을 세우기도 했다.
7.3. 러블리즈의 아빠
자세한 내용은 1Piece/러블리즈 문서 참고하십시오.이 덕분에 윤상은 멤버들의 개개인의 별명과 취향까지 잘 알 정도로 친밀해졌고, 러블리즈 멤버들 또한 항상 윤상에 대한 고마움과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16년 5월 15일 SBS 〈인기가요〉 스승의 날 특집에서 MC들의 가장 러블리즈의 가장 기억에 남는 스승으로 윤상이란 대답으로 각별함을 보여줬고[60], 후술할 〈복면가왕〉에 출연해 판정석에 있던 윤상을 만났던 베이비소울도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최근 들어서는 친자식처럼 생각하고 곡을 주셨음을 느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 윤상이 판정단으로 참여한 뒤, 러블리즈의 멤버들도 복면가왕에 출연해서 정체를 공개할 때마다 아빠 미소를 보여주고 있다. 판정단으로 처음 참여했던 날엔 마침 베이비소울이 출연했는데, 1라운드와 2라운드에서 베이비소울의 보컬 특징[61]을 설명했지만 확신을 갖지는 못 하는 모습이었다가, 베이비소울이 가면을 벗은 뒤 뒤늦게 "벱솔이 넌 줄 알았다!"고 이야기하다 김성주와 김구라, 그리고 베이비소울에게 반격을 당하며 맥을 못 췄다. 이때 "가능하면 남인 척하는 창법을 쓰지 않았....니?"하는 윤상의 회심의 질문에 라고 묻는 윤상의 질문에 "평소에 부르던 대로 했는데...ㅎ"라고 답하는 벱솔의 답변에 시무룩해하는 윤상의 표정이 백미. 그래도 약 3달 뒤 류수정이 나왔을 땐 수정의 보컬 특징을 정확히 설명[62]하면서 추리에 성공했다.
윤상과 러블리즈의 돈독한 관계 때문에 '미리 좀 알려주지'하는 원성도 듣지만, 노래 잘 한다는 평도 항상 따라온다. 거기에 매우 흐뭇해하는 윤상의 아빠미소는 덤.
2022년 11월 23일 너에게 음악 러블리즈 데뷔 8주년 방송에서 밝히기를 2014년 여름에 러블리즈 멤버들과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을 믿게 하려는 생각으로 '너희들은 날 모르겠지만 너희 부모님은 날 잘 알 거다.'고 했다고 한다. 멤버들 중에서 실제로 부모님께 물어본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8. 여담
- 1990년대 초반에는 오빠부대 아이돌이었지만 의외로 스캔들이 별로 없었는데, 이유인즉슨 학생 시절 좋아했던 여자애가 받았던 선물을 고스란히 돌려주면서 “난 공부 잘하는 애가 좋지 기타 잘 치는 애는 별로야” 라고 해서, 차였다는 것보단 나름의 프라이드를 가지고 음악가를 꿈꿨는데 그게 폄하된 것에 충격을 받아 여자에게 거의 마음을 닫고 살았다고 한다. 신해철은 윤상의 호스트 스테이션이라는 드립을 쳤으며 윤종신은 “윤상이 초식남 유희열과 더불어 초육식남이다” 라고 폭로했다.
- 윤상은 90년대 초에 자신이 아이돌처럼 소비되는 것에 지쳐서 예능에 거리감을 두다가 2000년대부터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예능에 발을 다시 담그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의외로 본인의 의사가 강했다. 조용하고 잔잔한 이미지를 탈피해 "나도 좀 웃긴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앞서 서술되었듯, 당시 시트콤 연기를 도전하고 모 토크쇼에도 고정적으로 출연하는 등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를 했다. 다만 본인은 흑역사로 생각하는 듯하다. 이후 윤종신이 본격적으로 예능을 하는 걸 보고 좀 안쓰러웠다는데, 생각보다 훨씬 대박이 터져 윤종신의 본업을 모르고 개그맨인줄 아는 세대가 등장할 정도가 되었으니...[63] 유희열에겐 "내가 그러는 걸 봐서 니가 손 안 대고 코푼 거다"라고 말했었는데, 유희열은 그 이전에 뮤직비디오나 라디오에서 충분히 망가져 왔었고 윤종신처럼은 아니지만 예능계에 나름 안착한 셈이다.
그의 베이스에는 '밀짚모자 해적단의 해골 마크'가 붙어 있다.[64] |
* '무한도전'에서 비판을 받으면 희열을 느낀다며 심지어는 더 거칠게 다뤄달라고도 했다. 곽씨네 LP에서는 자신의 음악적 영감을 주는 감정 또한 열등감에서 오는 것이 많다고 밝히기도 했다.
* 사용하는 베이스 기타는 초기엔 뮤직맨 스팅레이와 '큐비키(Kubicki)'社의 'Ex-Factor'를 사용했으나, 이후엔 Moollon의 Jazz Bass를 사용한다. 위의 해골 스티커가 붙은 베이스다.
* 2014년 12월 19일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했을 당시, 신민아가 '혼자만의 겨울'을 부를 때 건반 연주를 하다가 노래가 끝날 즈음에 코피를 흘렸다. 영상
* 입맛이 상당한 초딩 입맛이다. 떡볶이를 좋아한다. '수요미식회' 떡볶이 편에 나오기도 했다.
* 생각보다 뉴스 시그널 곡을 많이 작곡하였다. 2017년 2월 19일부터 사용된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의 오프닝 타이틀 곡을 작곡한 것은 물론 2019년 1월 1일부터 사용 중인 'KBS 뉴스 7'과 'KBS 뉴스 9'의 시그널 음악 작곡을 맡기도 했다.# 또한 2021년 6월 7일부터 사용 중인 'JTBC 뉴스룸'의 시그널 음악 작곡도 하였다.
* 본명은 예명으로 '윤상'을 택한 이유는 주영형 유괴 살인 사건의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마침 윤상은 피해자 이윤상과 나이도 비슷했기에[65] 더욱 이름을 피할 이유가 있던 것.
* 나이에 비해 동안인 편이고 사실 데뷔 때랑 그리 큰 차이가 없다. 근데 하필이면 윤상의 주변 인물들에 이승환, 김정민, 신승훈 등을 비롯한 초동안 연예인들이 있어 묻혀 노안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다. 보면 알듯이 윤상 또한 50대의 나이로는 안 보이는 동안 외모의 소유자이다. 윤상 본인도 평소에는 실제 나이보다는 어리다는 말을 듣지만 다른 이들 옆에만 있으면 노안 소리를 들으며 억울해하기도 했다. 특히나 이승환과 윤상은 3살차이로, 이승환이 윤상보다 형이지만, 외모만 보고 그 반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윤상이 이승환을 보며 호칭을 '형'이라 하자 이를 몰랐던 주변 사람들이 기겁을 했고, 이에 윤상이 충격받기도 했다. '위대한 탄생' 때는 주변에서 하도 이승환과 외모 비교를 한 것도 모자라, 윤상의 팬들마저 다른 건 다 상관없는데 피부만 어떻게 해달라며 부탁하자, 윤상 본인도 부끄럽다며 처음으로 외모를 가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 '팬텀싱어' 전 시즌의 심사위원을 맡았으나 정작 그 참가자들이 '복면가왕'에 나오면 알아보는 경우가 적다.[66] 오히려 서울대 참가자들인 손태진, 고우림의 선배인 카이, 그리고 '팬텀싱어'와 연관없는 김현철이 맞췄다.[67] 170차 경연에 백형훈이 참가했을 때 그 모습이 두드러지게 보였다.[68] 이는 '슈퍼밴드'도 마찬가지며 심사위원으로 나오는 방송만 여러 개라 그런 듯하다.
* 펭수를 좋아하는 '펭클럽'의 회원인듯하다. 펭수가 크리스마스 캐롤송 프로젝트에서 음악의 프로듀서, 즉 음악대의 단장 역을 제안하자 이를 흔쾌히 승락하기도 했으며, 프로젝트 내내 펭수를 칭찬, 격려하고 콩깍지 제대로 씌인 모습을 보이며 덕질을 하였다. 이후 비하인드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2020년 초부터 펭수 빵과 우유만 골라 먹었을 정도라고 한다. 동물음악대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펭수가 엣헴송을 부르자, 직접 들었다며 기뻐하기도 했다. 이후 펭수는 윤상이 진행하는 '너에게 음악'에 초대되어 다시 한번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기도 했다.
* 성격은 대체로 소심 만렙. 본인의 작업 스타일에 걸맞게 사소한 것에만 예민한 듯하다.[69] 심지어 부인과 연애 중 기사가 터지자 "어...어떡하지;;" 하며 소심한 모습을 보이다가 1년이 흘러 부인이 미국으로 가버렸다는 일화도 있다. 물론 이후엔 나이도 먹고 가정도 있어서 많이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소심함 덕에 '1박 2일'에서 귀여움 터지는 아저씨 면모를 보여주었다. 조근조근 단호박 돋게 할 말 다 하는 편. "내가 다시는 너랑 '테레비' 안한다"
* 활동명이 윤상이라서 성을 윤씨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들인 앤톤의 데뷔 이후 아들의 한국 이름인 이찬영으로 알게 된 사람들도 많은 편으로 방송인 송은이와 김숙도 '본인들의 팟캐스트'에서 앤톤의 데뷔와 한국 이름을 이야기하다 윤상의 본명이 '이윤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윤상 오빠한테 속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오해가 극대화된 사건이 후술된 ‘방자경의 종북몰이’다.
* 전자음악을 학파라고 가정하면 크라프트베르크는 학장이라며 크라프크베르크를 극찬한 적이 있다. 실제로 윤상이 직접적으로 크라프트베르크의 영향을 받았는지는 언급이 없어서 알 수 없으나 윤상 자신도 전자음악을 하는 만큼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극찬한 것으로 추측된다.
9. 수상 경력
- 2011 MBC 방송연예대상 버라이어티부문 특별상
- 2012 제2회 가온차트 K-POP 어워드 올해의 작곡가상
- 2015 제12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노래상
- 2018 제9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 표창
- 2019 MBC 방송연예대상 공로상
10. 사건사고 및 논란
10.1. 표절 판정
<rowcolor=#fff> 1989년 윤상이 작곡한 변진섭의 ‘로라’ | 1985년 발매된 사이토 유키의 ‘정열’ |
윤상이 변진섭에게 작곡해 준 '로라'는 명백하게 일본 아이돌 사이토 유키의 '정열'이라는 곡과 매우 유사해, 결국 1993년 공연윤리심의위원회에서 사이토 유키의 '정열(情熱)'을 표절 했다는 판정을 받았다.[70]# 이 때문에 모 방송에서 변진섭 다큐를 방영할 때 MBC 방송국 자료실에서 변진섭 2집 씨디를 꺼내서 뒷면을 보여주는데, ‘로라’에 '금지곡'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는 장면이 그대로 나오기도 했다.
공연윤리위원회는 윤상의 〈로라〉에 대한 공연 금지와 판매 금지 조치를 1993년 5월 19일부로 단행하였으나, 금지 처분은 곧 해지되었고, 현재는 온라인 음원 사이트를 통해 구입이 가능한 상태이다.
이 외에도 '이별의 그늘'은 공개 당시부터 히사이시 조의 '천공의 성 라퓨타'와 비슷하다는 의견이 있었으며 언론에도 거론된 적이 있다. #
유튜브에도 윤상의 표절 의혹 곡들이 상당수 올라와 있다.
10.2. 병역 기피 논란
표절 논란과 더불어 그의 또다른 흑역사 중 하나.윤상은 1987년 신검을 받고 1급 판정을 받았다. 이후 대학생 신분으로 입대 연기를 해 왔다. 그러던 중 1991년 5월 윤상은 서울지방병무청에 아르헨티나 이민사실을 신고하였다. 이후 윤상은 1992년 1월 아르헨티나 영주권을 획득하였고, 1992년 5월 아르헨티나 국적을 취득하였다고 한다. 윤상은 실제로 아르헨티나에 이민가서 거주하는 것으로 서류를 조작, 위조하였다고 한다. 이에 따라 윤상은 병역이 면제되었다.[71]
하지만 서류상 이민처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윤상은 영주권 획득 1주일 만에 귀국하였고, 이후 2집 음반을 출시하는 등 가수, 드라마 OST 감독,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 등 국내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이에 검찰이 윤상을 병역 기피 혐의로 추적하게 되었다. 당국이 병역 기피 혐의로 추적하자 윤상은 1993년 10월 13일 MBC FM '윤상의 디스크 쇼' 방송을 펑크 내고 잠적하였다. 윤상 잠적 후 해당 프로그램은 박정운, 서태지와 아이들을 급하게 임시 대타 DJ로 섭외하여 방송 공백을 막았고, 이후 신성우를 후임 DJ로 낙점, 10월 26일부터 '신성우의 디스코쇼'로 긴급 대체해 방송하게 되었다. #
윤상이 잠적하자 검찰은 1993년 10월 윤상을 병역기피 혐의로 수배했다. 윤상의 매니저는 기자들에게 "윤상이 심장병이 악화되어 방송을 갑자기 중단하게 됐다."며, 시골에서 요양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방송가에서는 "건강상의 이유라면 굳이 잠적까지 할 필요가 있겠냐"면서 뭔가 밝히기 껄끄러운 문제가 발생한 게 틀림없다고 의심했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미국에서 건너온 윤상의 신분상 비자문제가 발생해 잠적했다는 說이 나돌았으나 출입국관리국측에 확인한 결과, 그같은 사안이 공식적으로 접수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그들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만한 스캔들을 피하기 위해 잠적한 것 같다"는 의혹이 강력하게 제기되었다. # #
결국 도피 두 달만인 12월 9일 윤상은 언론을 통해 12월 21일 입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후 윤상은 실제로 12월 21일 화요일 의정부 306 보충대에 입대했다. 입대와 함께 그의 아르헨티나 국적은 취소되었고 다시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받았다. 검찰은 윤상의 306 보충대 입소를 확인한 후 사건을 내사종결 처리했다. # #
아르헨티나는 특이하게도 국적을 한 번 취득하면 국적포기가 절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은 원칙적으로 복수국적을 허용하지 않지만 아르헨티나의 경우에는 이중국적을 허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종종 아르헨티나 국적을 취득하여 병역 면제에 악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윤상의 경우 입대하면서 아르헨티나 국적이 취소되었다고 언론이 보도했지만, 실제로는 현재도 아르헨티나 국적을 보유한 이중국적자일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아르헨티나 국적과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한 이중국적자의 경우 주로 부모가 아르헨티나에 이민을 가서 선천적으로 이중국적을 보유하게 된 케이스가 많은데, 본인이 실제로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며 생활하고 있으면 병역을 이행하지 않아도 되지만 본인이 자원입대할 경우 이중국적 상태에서 병역을 이행할 수 있다.
훗날인 2018년 평양 공연 단장을 맡았을 당시 "병역기피를 시도한 인물을 굳이 평양 공연의 단장으로 임명했어야 하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
10.3. 방자경의 종북몰이
2018년 4월에 대한민국 예술단의 평양 공연을 진행하기 위해, 3월에 공동경비구역(JSA·판문점) 북한 지역 통일각에서 남북 실무 접촉을 했다. 이때 윤상은 대한민국 예술단 음악 감독 자격으로 박형일 통일부 국장, 박진원 청와대 통일비서관실 선임행정관과 함께 실무 접촉 회담에 참석했다. 그러자 3월 18일 방자경 나라사랑바른학부모실천모임 대표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문보궐정권은 반 대한민국 세력들과 한편 먹는데 남북실무접촉 남수석대표로 윤상씨라면 김일성 찬양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간첩 윤이상, 5.18광주폭동 핵심으로 보상금 받고 월북한 대동고출신 윤기권, 김일성이 북한에서 만든 5.18영화의 주인공 윤상원 이들 중 누구와 가까운 집안입니까?"[72]
라는 글을 작성하였고, 윤상을 종북 이미지와 연관지으려 시도해 논란이 되었다. #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손석희가 언급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윤상의 본명은 제일 위의 표에도 적혀 있듯, '이윤상'으로 윤씨가 아니다. 그가 윤상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선 여담 항목에 따로 후술하겠다만,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알 수 있는 정보를 조사해보지도 않고 무작정 까내리기를 시전한 것. 그리고 애초에 ‘임을 위한 행진곡’은 김일성 찬양가도 당연히 아니거니와 작곡자는 김종률로 윤상과는 관련이 없다.
이에 방자경은 19일 "주적 북한에 가서 공연하겠다는 윤상 씨에 대해 올린 글 중 정정할 부분이 있습니다"라면서 "윤상 씨는 본명이 윤상이 아니라고 합니다"라고 잘못을 인정하였다. 또한 19일과 20일 2번에 걸쳐 SNS에 "윤상 씨를 종북으로 글 쓴 사람처럼 허위 기사들로 도배됐다"라고 해명하였다.
[1] 가수 데뷔를 하고 발매한 정규 1집부터 싱글 앨범, EP와 같은 앨범은 물론, 7집 선공개 곡인 그게 난 슬프다에서까지 모두 'yoonsang'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무슨 연유인지 정규 2집 파트 1, 2 자켓엔 'yunsang'으로 표기되어 있다.[훈음] 윤택할 윤 서로 상[3] 독립문 옆 박도순 산부인과 3.5kg 출생[4] 전 배우이다. 1995년 HBS 현대방송(현 영화전문채널 OCN Movies)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나인티너스 선발대회 출신이다.[5] 미국 출생으로, 미국 본명은 앤톤 찬영 리이다. 윤상이 좋아하는 작가인 안톤 체호프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SM엔터테인먼트 소속 보이그룹 RIIZE의 멤버이다.[6] 미국 뉴저지 주 출생. 미국명 Christopher Juneyoung Lee(크리스토퍼 준영 리). 현재 주니어 수영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2023년만 하더라도 179cm였으나 2024년 5월 20일이 된 시점에는 그 사이 키가 더 커 신장이 184cm인 장남 앤톤의 키를 넘어섰다고 한다. 즉, 현재 최소 185cm이다. 모 윤상의 에세이 ‘나를 기억하고 있는 너에게’ 188p를 보면 ‘태영’이라고 나온다. 출생신고 직전 혹은 개명을 통해 이름이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6월생이라 June인걸로 추정. SNS 아이디 또한 그렇게 쓰여 있다. #[7] 탁재훈과 중·고등학교 동창이며, 학교 다닐 적에는 서로 몰랐다고 한다.[8] 꽃보다 청춘 페루편(2014)에서 개신교도라고 잠시 언급하였으나 2024년 현재는 알 수 없는 상태이다. 그럼에도 위키백과에서는 개신교라고 서술했다.[9] 윤상이 고등학교 때 결성한 밴드이다.[10] 1박 2일에서 언급.[11] 박경림이 라디오에 나온 러블리즈 멤버에게 윤상이 어떤 존재냐고 물으면서, 오빠냐 아저씨냐라고 물었더니 '아빠 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윤상이 굉장히 날카롭고 이지적인 인상인 데다가 실제로 성격도 그렇지만 러블리즈와 함께 있으면 정말 아빠처럼 얼빠져서 헤헤거리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이례적으로 걸그룹의 전 앨범을 프로듀싱한 경우로는 러블리즈가 유일하다.[12] 혼자 집에서 음주하는 일이 많아 정원영, 유희열 등이 윤상을 지칭하며 놀리는 별명.[13] 라디오 “윤상의 음악살롱”을 진행하며 생긴 별명이다.[14] 순록+단장. 펭수가 지어준 별명이다. 동물 중에 순록과 닮았는데 크리스마스 캐롤 프로젝트에서 프로듀서 역, 즉 (동물)음악대의 단장이라 칭하며 생긴 별명.[15] 뒷태만 보면 180cm은 가볍게 넘기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허리가 길어 생긴 별명. 사실 이것도 유희열, 윤종신, 이적 등이 윤상을 놀릴 때 쓰는 별명이다.[16] 윤상 데뷔 일화[17] 윤상이 김민우 1집 수록곡 〈입영열차 안에서〉를 썼는데, 자신이 만든 노래의 가이드 보컬 녹음본을 김광수에게 카세트 테이프로 줬었다. 이후 김광수가 차에서 윤상의 목소리로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부분을 듣는데 너무 좋아서 윤상에게 “가수 안 할래?” 물으니 “노래를 잘 못합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김광수가 “노래는 가창력으로 하는 게 아니다. 노래는 가슴으로 부르는 거다. ‘나도 저 노래를 저런 느낌으로 부를 수 있다’는 생각을 대중이 하게 만들면 된다”고 말해주며 데뷔를 시켰다고 한다.[18] 사실 이 시절 외동은 매우 드물었으며 외동은 1980년대 중후반은 가야 흔해졌다.[19] 2부. 야간고 출신 아니다. 2부는 현재도 아주 간혹 있지만 그 당시는 종종 존재했다. 보통 중고등학교가 같이 있는 학교에서, 중학생이 하교한 후 오후 3시 이후에 그 교실에서 수업을 시작하여 밤에 끝나는 방식. 정말로 야간에만 여는 야간학교와 달랐지만 세간의 인식은 야간고등학교와 별다르지 않았다. 직장인, 만학도도 흔했다. 음악 활동 하느라 그랬는지 수업 시간에 그렇게 잠을 자 별명이 '잠상'이었다고 한다.[20] 당시 봄여름가을겨울의 베이스 장기호와 키보드 박성식이 팀을 탈퇴하고 사랑과 평화에 영입이 되면서 베이시스트 자리가 공석이었다. 집안에서 장남인 장기호와 박성식은 당장의 생활비가 필요했던지라 사랑과 평화에서의 제의를 뿌리칠 수 없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 둘은 훗날 퓨전재즈 밴드 빛과 소금을 결성한다.[21] 당시 김완선이 집으로 초대해 식사로 크게 한상을 차려주어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JTBC 〈슈퍼밴드〉 심사 중 밝힌 바로는 베이시스트를 하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 70% 정도는 등떠밀려서 되고 자신도 그랬다고 한다.[22] 왼쪽부터 1990년 발매된 정규 1집 《윤상》 커버, 1992년 발매된 정규 2집 《윤상2 - Part I》 후면 커버, 1993년 발매된 정규 2집 《윤상2 - Part II》 커버다.[23] 사고 싶었던 신디사이저가 당시 800만 원이었는데, 앨범 당 3000만 원의 계약금을 제시했다고 한다.[24] 윤상 데뷔 일화[25] 지금의 윤상이라면 상상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예능 '일밤'에 출연해 이에 김을 끼운다던지 쌍코피 분장을 하고 헤헤 웃는 등 개콘에서나 볼 수 있는 몸 개그를 보이기도 했다.[26] 이후 '슬기로운 음악 대박과'에서 밝혔는데 실제 판매량은 45만 장이었다고 한다. 소속사에서 판매량을 속였고 그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음악은 실패한다는 강박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27] 둘 다 명반인데 《Part 1》은 대중적인 면이 강했고 《Part 2》는 실험적인 면모가 강했기 때문. 사실 실험적이라면 1집부터도 마찬가지지만 유달리 2집의 《Part 2》는 그런 면이 강했다. 그리고 그런 본격적인 행보는 줄곧 계속되었다. 더구나 〈이별없던 세상〉이 반응이 올 무렵 입대를 해서, 판매량이 탄력을 받지 못한 점도 있다.[28] 3집 《Cliche》 앨범에서 신스베이스는 전부 이 악기로 했을 정도. 본인의 책인 《나를 기억하고 있는 너에게》에서도 마지막 후기에 따로 자세히 언급했다. 이후 인터뷰에서 미니무그 자체는 데뷔 후 바로 구매했지만 MIDI 컨버터가 없어 레코딩에 사용하지 못하다가 3집 작업할 즈음에 MIDI 컨버터를 구해서 레코딩에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데, 박창학이 구해준 물건은 사실 MIDI 컨버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29] 레나시미엔토. 스페인어로 르네상스[30] 하지만 이후에 결국 윤상이 작곡한 변진섭의 '로라'가 사이토 유키의 '정열'을 표절했다는 판결이 나게 된다.[31] 여담으로 윤상이 군대에서 전역한 뒤 야심차게 프로듀스한 '알로'라는 혼성 그룹이 있는데 이것 또한 망했다. 유희열은 이 앨범과 프로젝트에 대해 시대를 너무 앞서갔던 것이라 말하기도. 후에 알로의 타이틀 곡인 〈잠자는 숲속의 왕자〉는 아이유가 리메이크했고 앨범 수록곡 중 하나인 〈랄랄라〉는 소녀시대가 윤상의 《Song Book》 앨범에 참여했을 때 리메이크되었다.[32] 윤종신은 보통 결혼하면 찌는데 왜 이렇게 마른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었는데 당시 유희열의 말에 따르면 학업과 함께 일도 병행해야 했으니 몸이 남아나질 않는 게 당연했다고 한다.[33] DMB 라디오를 한다고 했을 때 봄여름가을겨울, 유희열을 비롯한 선후배 동료 모두 희한해 했다고 한다. 저런 걸 할 사람이 아닌데 해서 사람이 달라졌나 생각이 들었다고.[34] 이전 앨범을 발매했던 회사가 IMF로 음반 사업을 못 하게 되자 선급금을 반환할 것을 요구하여 급전이 필요하기도 한 상황이었고, 윤상의 음악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고 유학 중에 음악 작업을 해도 괜찮다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승낙한 것.[35] 이외에 공연 기획자 출신인 탁현민 청와대 비서관이 소녀시대 서현 측에 부탁해 무대에 올랐다고 한다. 이북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참한 인상을 갖춘 연예인이라는 이유였다고.[36] 나머지 4곡인 '남보다 못한 사이', '그녀는 바람둥이야', 'Delight', '너만 없다'는 각각 베이비소울, 유지애, JIN이 러블리즈로 데뷔하기 전에 발표했던 솔로곡이다.[37] 러블리즈가 들어오자 "인사성이 참 바른 아이들"이라고 칭찬부터 하기도 했다.[38] 음악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Ah-Choo'는 러블리즈에게는 역대급 음원 성적을 가져다 주었고, 윤상 본인에게도 근래 들어 가장 뛰어난 음원 성적을 거둔 곡이다.[39] 직접 사회를 맡아 쇼케이스를 진행하였다.[40] 데뷔 앨범부터 함께 준비해서 연습생 시절부터 알고 지내왔으며 러블리즈 멤버들의 별명을 모두 알 정도로 애정이 많고 방송에서 언급을 자주 할 정도로 친분이 깊어졌다.[41] 현재의 아이돌 음악과는 또 다른 느낌의 마이너한 감성이지만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러블리즈란 아티스트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이상을 표현할 것으로 쇼케이스 초청 기자들 앞에서 포부를 밝혔다. 뒤이어 러블리즈를 (파트너를 넘어) 자신의 신스팝을 구현해 줄 최적의 오브젝트라고 극찬하기까지 했다.[42] 여기서도 직접 쇼케이스의 사회를 맡음으로써 변함없는 각별한 관계를 인증했다.[43] 일부 팬들은 다른 수록곡인 ‘〈Cameo〉가 타이틀이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을 토로했다.[44] 가장 마지막으로 1위를 했던 곡은 아이유의 '나만 몰랐던 이야기'로, 그 '지금, 우리'까지 6년이란 시간이 걸렸다.[45] 앞선 곡 〈Tango por uno〉에 주 멜로디를 만들어 올린 곡이다.[46] "Last Fantasy" 앨범의 Thanks to에 보면 ‘상아빠’라고 부르는 게 나온다.[47] 유재석의 드럼비트를 하나의 음악으로 만드는 과정을 찍는 놀면 뭐하니? - 유플래쉬 편에서, 드럼을 처음 쳐봤기에 다소 엉망이었던 유재석의 필인을 살려냈지만, 그래도 윤상이 평소 본인의 성격상이면 분명 넘어가지 못할 부분을 "이정도는 용서해 줄 수 있지 않냐."며 어물쩍 넘기려하자, 이를 들은 유희열의 대꾸. 이에 윤상은 "야, 이게 내꺼냐?"라고 답했다.[48] 2012년 윤상의 단독 콘서트에 이승환이 보낸 화환의 멘트이다.[49] '꽃보다 청춘' 1화 中[50] 2012 월간 윤종신 10월호 中[51] '꽃보다 청춘' 1화 中[52] 8회까지만 출연하다 중도하차하였다.[53] 대표적인 독설로 "발전 가능성이 제로다.", "준비가 전혀 안된 것 같다. 나가라."[54] 하드함 그 이상의 녹음 과정 안에서 힘들어하거나 귀찮아할때면 딱 한 마디로 정리했다고 한다. "지금 녹음하는 이 노래 평생 네 이름 적힐 네 노래야."[55] 대중음악 및 크로스오버 계열에서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 윤상답게 가창력의 측면이든 무대 구성의 측면이든 원곡에 대한 이해와 그 해석의 참신성을 매우 중시한다고 볼 수 있겠다.[56] 사진 속 배경은 당시 윤상의 개인 스튜디오[57] 1대 신해철, 2대 유희열, 3대 이소라, 4대 성시경 순이다.[58] 말이 노총각이지 결혼 당시 윤상은 35세로 요즘 기준으로는 그다지 혼기가 늦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서른을 넘기면 무조건 앞에 '노'자가 붙던 시절이라...[59] 다만 1Piece 멤버 개인 차원에서의 작사·작곡이나 프로듀싱은 이뤄졌다. Davink가 《치유》의 수록곡인 〈Temptation〉을 작사·작곡했고, 스페이스 카우보이가 《SANCTUARY》를 프로듀싱했다.[60] 기사제목발췌: '인기가요' 러블리즈 케이·미주 "윤상 선생님, 감사합니다"[61] 아이돌 그룹에서의 메인 보컬.[62] 걸그룹의 리드보컬. 실제로 류수정은 러블리즈에서 리드보컬을 맡고 있다.[63] 참고로 윤종신은 윤상과 달리 원래부터 예능을 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64] 2011년 '위대한 탄생 2' 준준결승, 멘티 전은진과의 합동 공연에서 그는 같은 베이스를 들고 왔지만, 그때는 베이스에 이 마크가 붙어 있지 않은 것을 보아 적어도 2011년 이후에 붙인 것으로 보인다.[65]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의 피해자 이윤상은 1980년에 중학교 1학년으로 1967년생이다. 윤상은 1968년생.[66] 이벼리가 참가했던 시점에선 '팬텀싱어' 참가자들 사이에서 이미 '팬텀싱어' 출신만 못 맞추는 걸로 소문났던 모양.[67] 김현철이 비대면 남친으로 참가한 배두훈의 정체를 정확하게 추리했으나 오히려 윤상은 저런 개인기 할 사람이 아니라며 부정했다.[68] 배두훈이 참가자들 중에 오빠는 풍각쟁이처럼 어깨 넓고 키 큰 참가자가 딱 한 명 있다고 했지만 윤상은 저런 실루엣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중에 밝힌 바로는 나팔바지 때문이었다고.(그럴 만도 한 것이 팬텀싱어는 정장 차림으로 경연하는 경우가 잦다.)[69] 왕년엔 조수석이나 뒷좌석에서 앞차 옆차 운전에 열을 올리며 욕했다고 한다.[70] 이 표절 판정이 나온 1993년 5월은 공연윤리위원회에서 13곡을 표절로 판정하는 등 표절곡이 우수수 쏟아진 해였다. 잼의 ‘난 멈추지 않는다’, 이상은의 ‘사랑할꺼야’, 임재범의 ‘이 밤이 지나면’, 신성우의 ‘내일을 향해’, 신승훈의 ‘날 울리지 마’, 양준일의 ‘리베카’ 같은 당대 인기곡 다수가 표절로 확정됐다. 표절이 상당히 심각했던 국내 가요계를 알 수 있는 대목. 다만 그중 신성우의 '내일을 향해'와 잼의 '난 멈추지 않는다'는 훗날 재판정을 받고 표절이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났다.[71] 오랜 과거의 일이고 불미스러운 일이라 언론 기사마다 그의 아르헨티나 국적 취득 시기 등 내용상 약간의 차이가 있다.[72] 당시 트위터 게시글 그대로 작성. 띄어쓰기를 안 하는 등 문법적 오류가 있음은 SNS 게시글 특성상 그럴 수도 있으므로 차치하더라도, 문재인 정부를 '문보궐정권'으로 칭하거나 5.18광주 민주화운동을 '5.18광주폭동'으로 칭하는 등 비하 표현과 왜곡 발언을 일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