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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3 08:12:30

알렉산드리아의 등대

알렉산드리아 등대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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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media-2.web.britannica.com/x172307-004-D05DA3A9.jpg.pagespeed.ic.SaEwtg9uuT.jpg 알렉산드리아의 등대 상상화
1. 개요2. 설명3. 구조4. 중세 시대5. 카이트베이 요새6. 복원?7. 기타

[clearfix]
ό Φάρος τῆς Άλεξανδρείας
라틴어: Pharus Alexandrinus
영어: Lighthouse of Alexandria / Pharos of Alexandria
فنار الإسكندرية

1. 개요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는 기원전 3세기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섬에 세운 거대한 건축물을 말하며 모든 등대의 원형으로 통한다.

2. 설명

파로스섬에 만든 등대라서 '파로스의 등대'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하다. 이 등대가 워낙 유명해지다보니 '파로스'라는 말 자체가 그리스어등대를 의미하는 단어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오늘날 그리스어로는 이 등대 자체를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라고만 부른다. 라틴어로도 파로스(Pharos) 또는 파루스(Pharus)는 파로스섬이나 파로스섬의 등대를 가리키면서 또한 전의되어 그냥 '등대'라는 뜻으로도 쓰였다. 유럽 지역의 여러 언어에서도 '파로스'를 어원으로 하는 단어가 등대를 지칭하는 일반명사로 자리잡았다.

고대 알렉산드리아는 파로스섬과 헵타스타디온(Heptastadion)이라고 불리던 1 km 남짓한 제방으로 연결되었는데[1] 이곳의 동쪽 끝에 파로스 등대가 서 있었다. 이집트 해안선은 매우 단조로워서 항구를 찾기가 어려웠는데, 파로스의 등대는 항해의 편의를 위해 건설했을 것이다.

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 휘하의 장군이자 헬레니즘-이집트 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첫 번째 통치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가 건축하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자 프톨레마이오스는 스스로 이집트의 파라오로 즉위하여 자신을 소테르(구원자라는 뜻)로 칭하고 알렉산드리아 항구 부근의 조그만 파로스섬에 등대를 건축하도록 명령하였다. 이에 따라 등대 건설이 시작되었는데 아들인 프톨레마이오스 2세 대에 이르러 완공되었다. 정확한 완공시기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원전 1세기 그리스 역사가 스트라본(Strabon)에 따르면, 기원전 280년 무렵 프톨레마이오스 2세가 치세하던 시절에 크니도스(Knidos)[2]의 소스트라토스(Sostratos)라는 그리스인 건축가가 완공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고대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되었다고 하나, 해당 불가사의를 맨 처음 선정한 안티파트로스는 알렉산드리아에 살다보니 매일 보는 이 등대가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아서 이게 아니라 바빌론 성벽을 선정했다고 한다. 실제로 문헌상으로 바빌론 성벽 대신 알렉산드리아의 등대가 포함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후 6세기, 로마의 시인이자 역사학자인 그레고리우스 투로넨시스가 세계 7대 불가사의를 정리하면서 안티파트로스의 글귀에서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를 넣고 바빌론 성벽을 빼버린 것이 최초이며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전차들이 그 위에서 경주를 할 법한 난공불락의 바빌론 성벽과, 알페우스 강변의 제우스를 목도하였다. 공중정원과, 태양의 거상과, 장대한 인공산이라 할 만한 높다란 피라미드와, 광대한 마우솔로스의 묘를 보았다. 그러나 내가 구름에 닿을 만큼 우뚝 서있는 아르테미스의 신성한 전당을 보았을 때 이 모두가 그 그늘에 가려졌으므로 말하노니, 태양신 헬리오스마저 올림푸스 밖에서 그와 견줄 만한 것은 보지 못했으리라.
그리스 사화집(Greek Anthology) IX.58, 영어에서 중역.

3. 구조

전설에 따르면 등대는 하얀색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높이가 약 130 미터[3]에 달했으며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맨 아랫부분은 정사각형의 거대한 성채, 중간 부분은 팔각형, 맨 윗부분은 원형으로 만들어졌는데 맨 윗 부분에서 빛이 나와 불을 밝혔다고 하며, 맨 꼭대기에는 여신 이시스의 조각상이 있었다. 불빛이 나오는 부분에는 커다란 거울 같은 반사경이 있어 밤에 빛을 반사했고, 내부에는 방이 300개 넘게 있어서 군대의 막사 노릇도 했다. 등대의 불빛은 43 km 밖에서도 보일 만큼 밝았다고 한다.

내부는 3층까지 경사로가 있어 나귀로 연료를 실어 옮겼다고 한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와 같은 장치가 있어서 연료 따위는 그 장치로 날랐다는 이설도 있다.

내부 구조 상상도

4. 중세 시대

642년 이슬람 정복 후에도 등대는 지속적으로 기능하였다. 다만 796년 맨 꼭대기 부분이 알 수 없는 이유로 파괴되었다. 아마 벼락을 맞아 파괴된 것으로 추측된다.[4] 그 뒤로 아랍인들은 등대 팔각형의 중간 부분 위에 등댓불을 설치하여 사용하였고, 880년 툴룬 왕조의 개창자 아흐마드 이븐 툴룬이 어느 정도 복원하였다. 그러나 950년과 956년, 2번에 걸쳐 지진이 일어나 팔각형 중간 부분의 외벽에 큰 금이 갔다. 그 금은 건물의 안정을 위협했기에 어쩔 수 없이 팔각형의 중간 부분을 철거해야 했는데, 이 부분을 해체하자 등대의 높이는 22m가 줄어버렸다. 이로써 등대 기능을 상실, 감시탑으로 쓰였고 작은 모스크가 들어섰다.
파일:external/c1.staticflickr.com/5967486093_808e9441c5_b.jpg

그러던 1100년에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는데, 이때 반사경이 파괴되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마모의 단계를 거쳤지만 등대 건물은 매우 견고하게 지어져서 1183년 아랍의 지리학자 이븐 주바이르의 기록에도 등장한다.[5] 그러나 1303년과 1323년의 대지진으로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14세기 모로코 출신 여행자인 이븐 바투타는 알렉산드리아를 두 번 방문했는데 1325년에는 지진으로 한쪽 벽이 허물어져 내린 등대의 문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1349년 두 번째 방문했을 때는 파로스 등대가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완전한 폐허로 변했다고 했다.

5. 카이트베이 요새

파일:pict0079.jpg

파일:Qaitbay's_Citadel_2.jpg

잔해가 일부 남아있었지만 1480년 이집트 맘루크 왕조술탄 카이트베이가 그 잔해로 카이트베이 요새를 만들어 완전히 사라졌다. 카이트베이 요새 또한 19세기 영국 해군의 공격으로 파괴되었다가 이집트 고대 유물 위원회에 의해 복원되어 현재 이 요새 안은 사원과 이집트 해군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6. 복원?

1994년 알렉산드리아 바다 속에서 높이 4.55m, 무게 12톤에 이르는 여신상을 비롯한 등대 잔해 수백 점이 발견되었다. 이후 2006년 이집트 고대 유물 위원회가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를 카이트베이 요새 부근에 다시 복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2022년까지도 아무런 후속 소식이 없는데, 고증 문제로 복원이 어려운 상황일 가능성이 높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70px-A_coruna_torre_de_hercules_sunset_edit.jpg
헤라클레스의 탑(Torre de Hércules)
사실 스페인 갈리시아 라코루냐 항구에 로마 제국이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를 모방해 지은 헤라클레스의 탑이라는 등대가 현재까지 남아있지만, 이 마저도 18세기에 근대식 공법으로 개수된 것이라 원형이라 할 순 없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협약 이행을 위한 운영지침'(86조)에 의하면 "지구의 복원은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 복원은 완전하고 상세한 기록에 근거할 때만 수용될 수 있으며, 절대 추측에 근거해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하였다. 유네스코에서 역사유적지구로 지정한 곳에서 문화재를 복원하려면 유네스코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유네스코는 지구 내 완전한 기록이 없는 문화재 복원을 원칙적으로 반대한다. 황룡사 9층 목탑이 복원이 어려운 이유도 이 때문이고(관련기사), 수원화성이 복원될 수 있었던 이유도 역시 이 때문이다. 화성성역의궤 덕분에 '완전하고 상세한 기록'이란 조건을 충족했다.

7.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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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스어로 헵타스타디온(Heptastadion)이란 '7스타디온'이란 뜻이다. 스타디온은 그리스 문화권에서 쓰이던 길이 단위인데, 시대와 지역에 따라 차이가 꽤 크다. 일단 1스타디온을 약 185 m로 보면, 7스타디온은 대충 1.2 km가 된다.[2] 오늘날 튀르키예 남서부 물라(Muğla)주 닷차(Datça) 반도의 끝에 있는 옛 그리스 도시이다.[3] 테헤란로의 GT타워 높이가 130m다.[4] 고대~중세에 지어진 높은 건축물이 현대까지 잘 남아있지 않은 원인들 중 하나가 벼락에 의한 것도 있는데, 피뢰침도 없던 시절인데다가 주변에 높은 건물도 없었으니 벼락이 치는 족족 다 맞을 수밖에 없었다. 동아시아권의 불탑들이나 유럽 대성당의 첨탑들 상당수가 벼락을 맞아서 붕괴되어 실전되었다.[5] 1261년 다시 지진이 강타해 거의 모든 부분이 파괴됐지만, 1272년 이집트의 술탄 알 아쉬라프 칼릴이 재건을 명령해 겨우 등대로서의 임무를 수행했다는 전승도 있으나 확실하진 않다.[6] 내부에 경사로와 수많은 방들이 있는 것까지 잘 표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