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 | ||
이름 | 한국어 | 멤피스와 네크로폴리스 ―기자에서 다슈르까지의 피라미드 지역 |
영어 | Memphis and its Necropolis – the Pyramid Fields from Giza to Dahshur | |
아랍어 | ممفيس ومقبرتها منطقة الأهرام من الجيزة إلى دهشور | |
프랑스어 | Memphis et sa nécropole – les zones des pyramides de Guizeh à Dahchour | |
상형문자 | 𓉴 (Mer, 메르)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등재연도 | 1979년 | |
등재기준 | (i)[1], (iii)[2], (vi)[3] | |
지정번호 | 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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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집트 다슈르에 소재한 피라미드. 이집트 고왕국 제4왕조의 파라오 스네프루가 지은 3번째 피라미드다. 기자의 대피라미드와 카프레의 피라미드를 이어 이집트에서 3번째로 거대한 피라미드이기도 하다. 피라미드를 이루는 석회암의 녹슨 붉은빛에서 이름을 따와서 '붉은 피라미드(Red Pyramid)'라고 부른다.2. 역사
선대 파라오 조세르가 처음으로 피라미드 형태의 무덤을 만들어 무덤으로 쓰기 시작한 이래, 이집트 파라오들은 죽어 묻힐 무덤으로 피라미드를 많이 지어댔다. 제4왕조의 파라오 스네프루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스네프루는 유난히 까다로운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전 파라오들은 기껏해봐야 계단식 피라미드 정도에 만족했지만, 스네프루는 그와달리 겉면이 매끄러운 사각뿔 형태의 피라미드를 짓고 싶어했던 것. 선대 파라오들도 이런 피라미드를 만들 생각은 했지만 기술 부족과 예산 때문에 함부로 시도하지 못하던 참이었다.스네프루는 과감히 다슈르 지방에 자신의 피라미드를 세우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기술 부족으로 공사 도중 사면이 붕괴해 무너져내리는 대참사가 발생, 버릴 수밖에 없었다.[4] 첫 번째 피라미드가 처참한 실패로 돌아가자 스네프루는 두 번째 피라미드를 착공했다. 이번에는 실패를 교훈삼아 더 크고 단단한 석재를 사용했기에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중간에 균열이 생기는 등 붕괴 위험이 높아지자 공사 도중 각도를 낮췄다. 결국 이 두 번째 피라미드는 중간에 면이 굴절된 독특한 모습의 피라미드가 되어버렸다.[5] 당연히 심미안이 높았던 스네프루의 마음에 들 리 없었고, 스네프루는 세 번째 피라미드의 착공을 지시하니 이게 바로 '붉은 피라미드'다.
붉은 피라미드는 스네프루 재위 30주년인 기원전 2575년, 혹은 기원전 2551년까지 약 10~15년에 걸쳐 지어졌다. 과거의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각도를 상당히 낮춘 43도 정도로 잡았다.[6] 결과적으로 붉은 피라미드는 다른 피라미드들에 비해서는 사면 각도가 상당히 낮아 주저앉은 듯한 느낌을 주지만 어쨌든 붕괴하지는 않았으며 공사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고고학자들은 아마 붉은 피라미드에 만족한 스네프루가 이 곳에 묻혔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수 천년의 세월 끝에 죄다 도굴되어버린 통에 그 사실을 확인할 길은 없다. 이 곳에서 발견된 부장품은 단 하나도 없다.
3. 상세
붉은 피라미드의 높이는 105m, 바닥은 220m x 220m에 이른다. 맨 꼭대기에는 삼각뿔 형태의 작은 마감돌 '피라미디온'이 얹혀 있었는데, 죄다 도굴당해서 사라져버린 다른 피라미드들과는 다르게 붉은 피라미드의 피라미디온은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현재 붉은 피라미드 바로 앞에 전시 중인데, 금으로 도금되지도 않았고 평범한 돌덩어리에 불과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7]내부 투시도 | 바닥이 모두 뜯겨나간 매장실의 모습 | 좁은 통로 |
좁은 하강 통로를 따라 끝까지 내려가면 수평인 첫 번째 방이 나온다. 이 방은 높게 쌍으로 경사진 천장이 얹힌 상태로 그 높이가 무려 12m나 된다. 방 반대편에는 두 번째 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있다. 이 통로는 딱 남쪽 벽 중앙에 있는게 아니라 살짝 서쪽으로 치우쳐 있는데, 고대 시절에는 여기를 막아놨다. 도굴꾼들을 막아내기 위한 시도였다고 한다. 지금은 뚫린 통로를 통해 들어가면 두 번째 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 첫 번째 방과 딱히 다른 것도 없고 볼만한것도 없다.[8] 두 번째 방의 남면에는 큰 나무 계단이 있는데, 이 계단을 올라가면 드디어 마지막 세 번째 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세 번째 방은 높이가 15m나 되는 방으로 가장 크다. 아마 파라오의 미라가 안치된 매장실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역시 기울어진 코벨형 천장을 하고 있다. 특이한 점이라면 이전 두 개 방은 모두 장축이 남북으로 정렬되어 있지만 이 세 번째 방은 장축이 동서로 정렬되어 있다는 것. 첫 번째와 두 번째 방은 바닥이 매끄럽고 석회암으로 덮여있는 상태지만 세 번째 방의 바닥은 하나같이 울퉁불퉁하고 모조리 파헤쳐진 상태다. 도굴꾼들이 도굴 과정에서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 바닥을 뜯어버렸기 때문으로 추측한다. 매장실에서는 미라는 당연하고 관은커녕 그 흔한 도자기 조각마저도 한 점 발견되지 않았다. 이미 2,000년도 전에 도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2]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3]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4] 이걸 '메이둠 피라미드'라고 부르는데 아직까지도 남아있다.[5] 이 피라미드도 역시 아직까지 보존된 상태다. '굴절 피라미드'라고 부른다. 겉면도 어느 정도 잘 보존된 상태에다가 이집트 피라미드 건축 발전의 생생한 증거이기에 매우 건축학적 가치가 높다.[6] 이는 굴절 피라미드의 위쪽 사면 각도와 비슷한 수치다. 이미 한번 검증된 각도를 사용해서 실패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려 한 것이다.[7] 다만 일부 고고학자들은 이 피라미디온이 실제로 쓰였을까 의심하기도 한다. 피라미디온의 사면 각도가 피라미드의 사면 각도와 약간 다르기 때문.[8] 여담이지만 이 두 번째 방은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바로 수직 아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