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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6 09:19:27

아르테미스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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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아르테미스 신전 상상도.jpg
파일:external/helloephesus.com/the-temple-of-artemis.jpg (상) 상상도 (하) 현재의 모습.[1]
명칭 그리스어 Ἀρτεμίσιον
터키어 Artemis Tapınağı
영어 Temple of Artemis
국가·위치 튀르키예 이즈미르 주 셀주크 시 에페소 구
건축년도 불명
파괴 서기 268년
1. 소개2. 역사
2.1. 에페수스의 여신
3. 유물들4. 현대의 모습5. 기타6. 대중 매체에서

[clearfix]

1. 소개

고대 에페소스[2]에 건립되어 아르테미스 여신을 모시던 고대 그리스의 거대한 신전.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로도 손꼽혔으나 268년 로마 제국을 침공한 고트족이 파괴하여 사라졌다. 고대 7대 불가사의를 현전하는 문헌에서 처음으로 언급한 기원전 2세기경의 사람인 시돈의 안티파트로스는 아르테미스 신전을 자신이 본 건축물 중 최고라고 호평했다.
I have gazed on the walls of impregnable Babylon along which chariots may race, and on the Zeus by the banks of the Alpheus, I have seen the hanging gardens, and the Colossus of the Helios, the great man-made mountains of the lofty pyramids, and the gigantic tomb of Mausolus; but when I saw the sacred house of Artemis that towers to the clouds, the others were placed in the shade, for the sun himself has never looked upon its equal outside Olympus.
전차들이 그 위에서 경주를 할 법한 난공불락의 바빌론 성벽과, 알페우스 강변의 제우스를 목도했다. 공중정원과, 태양의 거상과, 장대한 인공산이라 할 만한 높다란 피라미드와, 광대한 마우솔로스의 묘를 봤다. 그러나 내가 구름에 닿을 만큼 우뚝 서있는 아르테미스의 신성한 전당을 봤을 때 이 모두가 그 그늘에 가려졌으므로 말하노니, "태양신 헬리오스마저 올림푸스 밖에서 그와 견줄만한 것은 보지 못했으리라".

《그리스 사화집》(Greek Anthology) IX.58[3], 영어 번역판에서 중역

2. 역사

첫 번째 신전은 청동기 시절부터 존재한 건축물로,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신전을 아마존이 건설했다고 추측했다.

기원전 7세기에 홍수로 폐허가 되었지만, 기원전 550년 리디아의 마지막 왕이었던 크로이소스크레타 섬 출신의 건축가였던 케르시프론과 그의 아들 메타게네스에게 의뢰하여 재건했다. 이 시기에 건설된 신전은 매우 화려했다고 하는데, 높이 30m에 너비도 대략 50 ×110 m가 넘었으리라 추측된다. 즉 현재의 축구장과 비슷한 규모였다. 건물 자체도 크고 아름다웠을뿐더러 기반도 상당히 높은 곳에 건설되어서 에게 해 10 km 밖에서도 보일 정도였다니 위용이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Miniaturk_009.jpg
튀르키예 이스탄불 미니아튀르크(Miniatürk)[4]에 있는 축소 모형. 첫 번째 신전을 모델로 한 것이다.
그러나 기원전 356년, 헤로스트라투스라는 관심종자"나쁜 짓을 저질러서 내 이름을 역사에 영원히 남기겠다." 라는 이유로 불을 질러 두 번째로 파괴되었다. 에페소스에서는 그를 처형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소원인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까지 금지하려고 했지만, 역사가 테오폼푸스가 기록을 남겨 결국 '헤로스트라투스'라는 악명은 그가 바라던 대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5]

이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재건을 지시했다. 대왕 사후인 기원전 323년에 세 번째 건설이 시작되어 로마 제국의 전성기가 끝날 때까지 굳건히 서 있었다. 안티파트로스가 자신이 본 7가지 놀라운 건축물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라고 호평한 것도 바로 이 시기의 아르테미스 신전이었다. 마지막 건설 당시의 모습의 평면은 64.3×119.175 m였다.

파일:external/www.ephesus.ws/bcjoxfli92.jpg

그러나 로마 제국의 힘이 예전 같지 않게 된 서기 268년고트족이 약탈하여 파괴되었다. 신전이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후 그리스도교가 득세한 시절에도 이 신전에서 예배를 드렸다는 기록 등이 있으므로 재건이나 수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 후, 타 종교 신전을 파괴하고 폐쇄하는 와중에 아르테미스 신전도 폐쇄되어 파괴되었다.

한편 고대 유적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신전의 일부 자재는 다른 건축물의 자재로 전용되기도 했는데, 하기아 소피아를 지탱하는 주 기둥의 출처가 바로 이곳이었다.

2.1. 에페수스의 여신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모신 아르테미스 여신은 엄밀히 말하면 그리스 신화에서의 아르테미스와 "동일시" 되는 것이었지, 기원 자체가 아르테미스와 같은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 신상은 외형이 오르엔트의 것을 하고 있었고, 그리스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으며, 이것은 로마 제국 시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는 아주 오랜 과거로부터 지중해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 저 멀리 페르시아에서도 알고 있을 정도로 굉장히 유명한 신이었는데, 정작 그 기원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원래 어떤 이름으로 불렸는지도 모르고, 어떤 여신이었는지도 지금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

이 여신이 아르테미스로 불리게 된 것은 순전히 그리스인들이 아무튼 이 여신은 아르테미스임!!!으로 퉁쳐서 대충 아르테미스라고 여기기로 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공식적으로 그리스 신화의 판테온에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가 그 아르테미스라고 수용되기 이전부터 아르테미스라고 친것인지, 어느 때 쯤에 판테온에 들어가게 되면서 아르테미스로 여기기 시작한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리고 아르테미스로 여기게 된 것인지도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건, 어느 시점부터는 에페수스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그들의 여신을 아르테미스라고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페수스 사람들이 그리스 쪽에서 에페수스의 여신을 아르테미스라고 여겨주기 전 부터 아르테미스라고 불렀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리스 사람들이 이 여신을 아르테미스로 부르기 시작한 쯤에는, 지중해 세계 전체와 오리엔트 저 너머 이란 땅에서도 아르테미스로 부른 것은 확실하다.

이렇다보니, 로마인들 또한, 로마 신화에서 디아나가 아르테미스와 동일하다 보기에, 에페수스의 여신을 디아나, 곧 아르테미스로 여겼다. 역시 이유는 그저 에페수스의 여신은 아르테미스라 여겨지고, 아르테미스는 디아나니까 디아나 맞음! 이런 식일 뿐, 디아나, 곧 아르테미스인 이유에 별다른 해석을 한 바는 없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정황상 과거로부터 지중해 세계 전체에 기이할 정도로 유명한 토착 여신이었던 것으로 생각되고는 있다. 그게 맞다는 역사적 증거 또한 물론 전혀 없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이 에페수스의 여신은 상고로부터 그냥 유명했다. 그 상고에 어떤 이름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여하튼 그때부터 유명했고, 그 에페수스의 여신을 모시는 신전이 있는 땅은 과거로부터 그냥 영험한 땅으로 여겨졌다. 역시 왜 영험하고 신성한 곳인지는 아무 기록도 없다. 그냥 모두가 거길 영험한 성지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심지어 이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 신상이 대대로 유지해온 모습에 대한 해석 또한 사실상 없다시피해서, 외형의 특징이 상징하는 바가 뭔지 지금까지도 확신하기 어려워 논쟁거리로 남아있을 지경이다. 특히, 여러 유방이 달린 모습 같아 보이 부분은 막상 신상의 다른 옷 부분과 같은 색으로 채색이 되어있어, 실제론 여러 유방을 드러낸 다산의 상징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고, 원래 뭔지 모를 장식 같은 것이라 봐야한다는 해석이 꽤나 유력하다. 그런데 뭔 장식인지는 대관절 추측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

여하간 이 여신이 얼마나 유명했고, 그 신전 터는 또 얼마나 영험하다 여겨졌는지 오래오래 전부터 참배하러 오는 사람들이 지중해 전체에서 찾아왔었고, 신전에 봉헌된 제물의 양도 엄청났으며, 하도 그 여신은 그 자리에서 모신다는 게 상식으로 굳어진 나머지, 신전 지반에 하자가 있어 지진으로 자주 파손되어도 자리를 옮긴 적이 없다.

하도 유명했던 탓에, 이 신전이 대지진으로 완파되는 참사가 일어나기라도 하면 주변 강대국들이 나서서 재건축을 위해 기부를 제안해왔다. 하지만, 에페수스 사람들은 이 제안들을 매번 거부하고, 에페수스와 장기적인 외교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좋을 나라들에게서 대신 기부를 받아 재건축했으며, 마지막의 방화 사건에서는 아예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해 재건축했다고 한다.

3. 유물들

현재의 위치는 대영박물관의 후원을 받은 대영제국의 발굴단이 확인했으며 이때 수많은 유물들을 대영박물관으로 가져가 전시했다. 이 때문에 터키에서는 지금도 영국을 향해 반환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발굴 책임자였던 존 터틀 우드의 기록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듯이, 이 유물들은 흔히 생각하듯 무작정 훔쳐온 약탈품이 아니라, 당시 오스만 제국 정부와의 교섭(발굴된 유물을 몇 대 몇으로 나눌 것인지 등)을 통해서 술탄의 발굴 허가증을 받아 발굴한 것이라(Wood, 1877), 터키 측에서 무작정 '우리 거니까 내놔라' 하기에는 법적으로 문제가 간단치가 않다. 당시 오스만 정부를 통해 구입한 파르테논 조각 유적과 비슷한 경우다.

4. 현대의 모습

사도 요한의 무덤이 있는 기념 성당에서 내려다보면 바로 보이는 위치이다. 과거에는 바다였지만 강물이 지속적으로 유입되어 지금은 늪지대가 된 광활한 지역과 마주하고 있으며, 현재의 셀축 외곽에 위치하고 있다. 사도 요한의 기념 성당 밑에는 이사베이 모스크가 있는데, 이 모스크 바로 밑에 위치해있다. 가봤자 별거 없고 입장료조차도 받지 않는다. 사도 바오로가 봉변을 당할 뻔한 에페소스 극장은 지금도 유적으로 남아있고, 아르테미스 신전 만큼이나 고대 헬레니즘 세계에서 수준급으로 큰 극장이었는데 마찬가지인 아르테미스 신전과 비교해보면 뭔가 묘한 기분이 들것이다.

5. 기타

당시 이 신전의 위명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성경에도 언급되어 있는데, 사도 바울로가 에페소스에서 팔리던 은으로 만든 아르테미스 신전 모형[6]을 두고 "사람이 만든 건데 왜 신이라고 함?" 이라고 비판한 일이 있었다. 그 때문에 이 근방에서 장사를 하던 은세공자들의 수익에 큰 타격을 입게 되자 이들이 죄다 모여서 데모를 하는데 당시 이 집회의 주동자였던 데메트리우스의 발언은 이러했다.
사도행전 19장 25-27절(공동번역 성서)
"여러분,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이 사업으로 잘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바울로라는 자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고 하면서 이 에페소에서뿐만 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역에서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여 마음을 돌려놓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보고 들었을 것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의 사업이 타격을 입게 될 뿐만 아니라 위대한 여신 아르데미스 신당이 괄시를 받게 되고 마침내는 온 아시아온 세계가 숭상하는 이 여신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고 말 터이니 참으로 위험합니다."

이 말을 듣고 은세공자들은 물론 에페소스 주민들까지 전부 격노해서 '에페소의 여신 아르테미스 만세'를 외치고 다녔고, 사도 바울로의 동행이었던 마케도니아 사람 둘을 붙잡아 극장으로 끌고 갔다. 이들의 기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도시 전체가 소란해졌고, 사도 바울로가 저들을 말리고자 극장으로 뛰어들려 하자 사도 바울로를 따르던 신도들뿐만 아니라 그와 친분이 있던 아시아의 지방 장관들까지 뜯어말려야 했으며, 바울로를 훼방놓으러 왔던 유대인들조차 성난 주민들의 기세에 눌려 조용히 해달란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7][8]

소동은 거의 두 시간 동안이나 이어졌고, 결국 에페소스 시장[9]이 직접 나서서 '에페소스 시민 여러분, 여기가 아르테미스 여신님 모시는 동네라는 거 모르는 사람 아무도 없고 이 사람들이 아르테미스 여신님을 직접 깐 것도 아닌데 이렇게 난리피울 거 없잖아요. 만약 문제가 있으면 당사자들끼리 법대로 합시다. 안 그러면 로마에서 소요죄로 뭐라고 할지도 몰라요.'라고 말한 끝에 간신히 해산시켰다고 한다.

이 사건은 성경에 종종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황당한 기록 중에서도 특출나게 황당한 분위기로 기록되어있는데, 사도 바올로는 신전 모형을 대고 비판을 했을 뿐, 정작 그 신전에서 모시는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에는 아무 말도 한 적이 없다. 게다가, 이전에 신전 모형을 보고 비판을 했던 것도 에페수스가 아닌 다른 도시에서 했던 강론이었고, 바올로는 커녕 그의 일행 그 누구도 사건 시점에서 에페수스에서 강론을 하긴 커녕 뭘 할 계획이고 뭐고 없이, 에페수스에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을 뿐이었다.

이후 전개는 더 황당해서, 데메트리우스란 은세공업자가 벌인 선동 연설은 분명 전부 사실(?)만을 말한 것이지만, 정작 에페수스의 시민들은 "예수쟁이들이 에페수스의 여신님을 모욕했다!"란 의미로 착각 해서 우르르 몰려나왔다는 것이다.

사도 바올로와 그 일행은 "사람이 신이라고 여긴다고 해서 신이라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했을 뿐이지 어디 신전의 어디 신을 두고 "그거 신 아님" 이라고 한 적은 없었다. 게다가, 다신교도들이 예수쟁이(?)가 되었다는 내용도 그 자체는 맞는 말이다만, 연설의 의도는 이 예수쟁이들이 아르테미스 신도를 빼돌린다!라는 것도 골때리는 점이다.

지중해 세계에 신이 한둘이 아니므로 바올로 일행이 "아르테미스 신도"를 개종시켰다고 말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게다가, 어떤 아르테미스를 말하는 건지도 주어를 슬쩍 빼먹었다. 지중해 세계에 아르테미스라고 여기는 신이 한둘이 아닌데다, 따지고보면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는 그저 지중해 세계에서 아르테미스라고 부르는 신일 뿐, 그 기원 자체는 아르테미스랑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인데, 마치, 그리스 신화의 아르테미스, 로마 신화의 디아나 등을 포함해서 아르테미스랑 동일시하여 판테온에 수용해둔 이곳 저곳의 수많은 신들 전부를 욕한 것으로 들리게 선동한 것이다.

한술 더 떠서, 지중해 세계 전체의 모든 아르테미스의 위신을 떨어트린다!란 말도 교묘한 선동으로, 이것은 아르테미스랑 별 상관 없으며, 그저 "저쪽에선 이 분을 아르테미스라고 부른데~ "하는 다른 지역 신들까지 슬쩍 끌고와서 같이 엿 먹었다고 확대해석하게 유도하기까지 한것.

여기에 진짜 선동 요소인 에페수스의 밥줄인 에페수스의 여신 굿즈 수입이 하락한다!!는 것과, "에페수스 사람의 자부심인 (아르테미스로 모두가 부르는) 위대한 에페수스 여신님의 신전이 디스를 당했다!" 는 또다른 선동 문구를 끼워넣음으로써 에페수스를 뒤집어 엎어놓은 것이다.

그러자, 에페수스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저 새끼들이 여신님을 욕했다!" "여신님 만세!" "여신님은 위대하시다!" 이런 말을 이리저리 외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아르테미스라고 불리는 신들을 사람들 전부"가 우르르 몰려와서 난동을 피우기 시작하는데, 정작 사도 바올로와 그 일행은 아직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심지어 이렇게 난동이 벌이면서 끌고간 사람은 바올로가 아닌 일행일 뿐인 엉뚱한 마케도니아 사람이었다. (...)

이 난동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나중에는 난동을 피우고 있는 군중이 "우리 근데 여기 뭐 때문에 모인거임?" 몰?루 하는 것으로 더욱 황당함이 가중되는데, 대관절 사건의 앞 뒤를 알 수 없어, 평소 같았으면 냅다 "저 바올로라는 예수쟁이는 신전의 신들을 욕하고 다니는 한량이오!"라고 외치며 기름을 끼얹었을 뻔한 유대인 반대파들 마저도 뜬금없이 이 난동에 휩쓸려 욕을 두들겨 맞으며 꼼짝도 못할 뿐이었다고 기록되어있다.

결국 무려 2시간 동안 엉뚱한 사람 붙잡고 극장[10] 에서 린치해서 죽일 판까지 번진 폭동급 소요가 일어나는 동안 에페수스의 관원들은 사태 파악도 못하고 있다가, 한참 뒤에서야 진상을 파악하고[11][12][13] 겨우겨우 로마제국의 무력을 들먹여서 해산시켰다는 마무리가 압권이다.

사실 다른 고대 종교들이 그렇듯 그리스 종교도 신과 인간의 관계가 기브 앤 테이크식이었으며, 인간은 신의 이름을 드높이고 신은 인간의 이익을 도모해주는 윈-윈 일종의 기복신앙이었다. 그래서 신의 이름을 드높이는 것과 자기가 부를 얻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았고, 인간의 영역과 신의 영역이 구분되지 않았으며, 그래서 인간의 것과 신의 것이 잘 구분되지 않았다. 이 사건은 기복신앙을 배척하는 기독교 교리가 전통적 기복신앙과 충돌한 사건이다.

6. 대중 매체에서

문명 시리즈에서 문명 3에서 최신작 문명 6에 이르기까지 불가사의로 등장한다.

[1] 복원 상상도 사진과 비교해보면 기둥 한 개와 신전의 벽으로 보이는 벽돌 외에는 잡초만 무성한 채로 방치되어 있다.[2] 현재 튀르키예 셀추크 부근[3]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는 없는데, 저자인 안티파트로스가 그 등대를 매일 봤던 알렉산드리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문헌상으로 바빌론 성벽이 빠지고, 알렉산드리아의 등대가 포함된 것은 6세기 무렵 로마의 시인이자 역사학자였던 그레고리우스 투로넨시스가 세계 7대 불가사의 목록을 재정립하고 발표하면서부터였으며, 이때 바빌론 성벽이 빠지고 알렉산드리아의 등대가 들어가게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왔다.[4] 튀르키예 전역에 있는 유명 유적지들의 미니어처를 모아놓은 전시장이다.[5] 요즘은 이 사건이 신전 재건축(!)을 위한 신전 사제 조직의 자작극이라는 것이 반쯤 정설이 되어 있다. 상식적으로 신전이 완전히 새로 지어야할 수준으로 불이 나기는 어렵고, 실제로 이 사건 이전까지 지진으로 파손되어 재건축해왔을 뿐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대리석이 잔뜩 들어간 건물이 겨우 불 한번 난다고 복원 불능이 될리도 만무하므로, 당초 지반 자체가 지진에 취약하니, 더 튼튼하고 더 크며, 아름답게 지을 명분을 삼으려고 자작극을 벌였거나, 혹은 방화 이후 이 사건을 부풀려서 언플에 활용했다는 것이다.[6] 개역한글판에서는 은감실, 공동번역에선 은으로 된 신당 모형이라고 나와 있다. 오늘날 주요 랜드마크에 가면 기념품으로 파는 그 랜드마크의 모형을 생각하면 된다.[7] 군중들이 아르테미스 신도였기에 다신교도 입장에선 똑같은 일신교도인 유대인이 나오자 '아르테미스는 위대하시다'를 두 시간 가까이 연호한다(...).[8] 사도행전에 기록된 유대인들의 행보를 요약하자면, 사도 바울로가 가는 곳마다 소문을 따라 쫓아가서 방해 공작 및 선동을 일삼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살벌한 인간들이었다. 모사드의 기원? 물론 유대인들 전부 다 그랬다는 건 아니지만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사도 바울로를 엿먹이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던 극성종자들이었는데 이런 사람들조차 찍 소리도 못했다고 나온 건 이 대목이 유일하다.[9] 개역한글판에는 서기장으로 나와 있다.[10] 고대 다신교 사회에서 극장은 신전, 시장과 한세트로 설치되는 장소로 대중 문화 유흥 시설이라곤 해도, 근원은제례의 연장선에 있는 곳으로 여기서 이유 없이 사람을 헛소리로 몰아서 죽거나 다치게 할 경우 평판에 좋을 일이 절대 없을 장소이다.[11] 마케도니아 사람이라 해도 아마 로마 시민인데다가, 아니라 처도 마케도니아 사람을 엉뚱한 이유로 멋대로 린치했다간 발칸과 아나톨리아에서 에페수스의 평판이 어떻게 될진 말 할 것도 없다. 게다가 아에 명백히 로마시민인 사도 바올로는? 엉뚱하게도 린치의 당사자로 끌려나오진 않았다지만, 말리려다가 두들겨 맞아 다치거나 죽기라도 하면? 그나마 로마 시민이 아닌 사람이 해코지를 당한다 처도, 이미 소요 자체가 가짜뉴스에 속아 벌인 불법 대폭동인지라, 도시 내에서 수습하지 못하면 결국 아시아에 주둔한 로마 군단이 출동할 것이다.[12] 여기에 제일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것은 엉뚱한 지역 사람을 끌고와서 린치하려 한 것이나, 로마 시민이 불법적으로 위해를 입을 뻔한 것이나, 불법적인 소요로 로마의 질서를 모독한 것 따위가 아니다. 사도 바올로와 그 일행은 딱히 아르테미스라고 불리는 여신 중 누구라도 골라서 깐 적이 지금까지 전혀 없으므로, 데메트리오는 아르테미스라고 불리는 신이란 신은 다 끌여들어서, 가짜뉴스 선동을 벌인 것이다. 로마가 사건을 조사하다 이게 알려지는 순간, 에페수스의 여신을 신봉하는 에페수스 신도들이 쌩 구라 선동질로 수많은 지중해 세계 여신들의 위엄을 모조리 욕 보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다. 만약 이렇게 되어버렸다면 이 사건에서 "예수쟁이"들은 아무래도 상관없이 묻히고, 지중해 세계 전체에서 에페수스 놈들이 그들의 신을 우리 판테온에 받아들여준 우리의 호의를 배신했다란 인식이 퍼져버렸을 것이다.[13] 다행이도(?) 그렇게까지 사건이 악화되진 않았지만, 정말 그리되었다면 결국에는 에페수스의 은장이 놈들이 우리 디아나 여신까지 끌어들여 욕 먹였다!로 해석되어 사건이 로마 제국 원로원 의제로 제출되는 역사적 사건(...)이 되어버리고도 남았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면, 십중팔구 엉뚱하게 끌려나온 마케도니아 사람 둘은 린치로 크게 다치거나 사망하였고, 사도 바오로도 무사하지 못하였을 것이고, 그 주변에 구경왔던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일 테며, 난동을 부리는 군중의 폭동으로 이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신체적 위해를 입게되었을 터, 곧, 전 지중해에서 로마제국의 위신이 폭락하는 초대형 참사가 되었을 것임은 물론, 마케도니아에서 "저 에페수스 놈들이 우리 사람을 죽였다!"고 폭동이 나고, 시리아-팔레스타인에서는 유대인들이 린치로 피해를 입은 것으로 폭동이 나고, 그 외에 지중해 세계 이곳 저곳에서 참사로 인한 소요가 발발, 저 천인공노할 에페수스 놈들을 제발 족쳐주시오!하고 난리가 나고도 남는다. 즉, "겨우" 로마 군단이 출동하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