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 | |||
출생 | 1611년 | ||
사망 | 1632년 6월 26일 (향년 21세) | ||
오스만 제국 코스탄티니예 | |||
재위기간 | 왈라키아 보이보드 | ||
1623년 8월 14일 ~ 1627년 11월 3일 | |||
몰다비아 보이보드 | |||
1629년 6월 ~ 1630년 4월 29일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00><colcolor=#fff> 부모 | 아버지: 라두 9세 어머니: 아르기라 미네티 | |
형제 | 미네아 3세 | ||
배우자 | 룩산드라 베글리치 | ||
가문 | 드라쿨레슈티 가문 | ||
종교 | 기독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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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왈라키아 공국 제55대 보이보드, 몰다비아 공국 제52대 보이보드.2. 생애
1611년경 왈라키아 공국 제51대 보이보드이자 몰다비아 공국의 공인 라두 9세와 아르기라 미네티 사이의 아들로 출생했다. 형제로 미네아 3세가 있었다. 1623년 8월 23일, 라두 9세는 오스만 제국 궁정의 지시에 따라 왈라키아 공국에서 몰다비아 공국으로 옮겨졌고, 알렉산드루 5세 코코눌이 그를 대신해 왈라키아 보이보드로 선임되었다. 그는 4년간 왈라키아 공국을 다스렸지만, 1627년 11월 3일 '관리들에게 너무 많은 금 자루를 보내 국고를 낭비했다'는 비방을 받고 코스탄티니예로 소환되었고, 알렉산드루 4세 일리아슈가 그를 대신해 왈라키아 보이보드에 선임되었다.1629년 6월, 몰다비아 보이보드 미론 바르노브스키모빌라가 오스만 제국에 공물을 지불할 때 황금 봉지 40개[1]를 추가해서 자기에서 넘겨달라는 오스만 관리의 요구를 거부했다가 모함을 받아 폴란드에 있는 자신의 영지로 은퇴한 뒤, 알렉산드루 5세가 몰다비아 보이보드로 선임되었다. 19세기 루마니아 역사가이자 작가인 니콜라이 안드리에스쿠보그단(Nicolai Andriescu-Bogdan, 1858 ~ 1939)는 저서 <야시 시의 역사(Istoria orasului Iaşi)>에서 알렉산드루 5세가 오스만 관리들에게 100,000개가 넘는 베네치아 금화를 제공해 몰다비아 보이보드에 가까스로 선임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보야르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등 무능한 모습을 보였고, 결국 1630년 4월 29일에 오스만 제국 궁정에 의해 해임되었다. 그 후 코스탄티니예에서 조용히 지내다 1632년 6월 26일에 사망했다.
알렉산드루 5세는 생전에 스칼라티의 보야르 스칼라토스 베글리치의 딸 룩산드라 베글리치와 결혼했지만 자녀를 낳지 못했다.
[1] 한 봉지에 500개의 황색 금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