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19:38:35

성체성사

성찬례에서 넘어옴
7성사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성체성혈성사)
고해성사
(고백성사)
병자성사
(성유성사/
조병성사)
성품성사
(신품성사/
성직서품성사)
혼인성사
(결혼성사/
혼배성사)
성체성사의 언어별 명칭
한자
그리스어 Θεία Ευχαριστία
라틴어 Sacramentum Eucharistiae (성체성사) / Eucharistia (성찬례)
영어 The Sacrament of the Eucharist (성체성사) / Eucharist (성찬례)
영성체의 언어별 명칭
라틴어 Communio Sancta
영어 Holy Communion
파일:attachment/davincilastsupper.jpg
레오나르도 다 빈치최후의 만찬

1. 개요2. 성체성사의 자격3. 성체성사의 효과
3.1. 성체 기적
4. 성체 훼손 문제
4.1.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등이 성체 훼손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이유4.2. 성체를 적극적으로 훼손한 사례4.3. 부실한 성체 성혈 관리와 이에 관한 대비4.4. 가톨릭 교회법의 관련 조문
5. 영성체의 방법6. 초기 교회의 성체성사7. 교단별 성체성사
7.1. 가톨릭의 성체성사와 영성체
7.1.1. '미사'와 '성체성사'와 '성찬례'와 '성찬 전례'와 '영성체'의 관계7.1.2. 성체성사에 대한 여러 가르침7.1.3. 다른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가톨릭 성체성사에 온전히 참여 가능한가?7.1.4. 가톨릭 신자들이 다른 그리스도교에서 영성체가 가능한가?
7.2. 정교회·오리엔트 정교회 등 동방 교회의 성체성혈성사7.3. 개신교성만찬 예식7.4. 성공회의 성체성사
7.4.1. 모습
7.4.1.1. 이전 모습
7.4.2. 영성체 예절7.4.3. 이론7.4.4. 타교파 신자의 영성체 허용
8. 여담
8.1. 가톨릭: 성체 거양 때의 고백과 대사8.2. 감실이 없는 공간에서 거행된 미사 도중 제병이 남는다면?8.3. 자투리 제병의 활용8.4. 성체의 맛
9. 창작물에서의 성체성사10. 관련문서

1. 개요

<rowcolor=#000> 가톨릭 미사 통상문 감사 기도 제3양식[1] 개신교 BEM 예식서 감사 기도
[사제]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며 축복하시고 쪼개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나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저녁을 잡수시고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고 감사를 드리며 축복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나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신앙의 신비여!

[교우]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
[목사]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떡을 손에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떡을 떼시어 그의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자 받아 먹어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또 식후에 잔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린 다음

“자, 마셔라. 이것은 죄의 용서를 위해 너희를 위해 흘린 내 피로 맺은 새로운 계약의 잔이니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의 신비가 크고 또 놀랍습니다.

[교우]
주 예수여. 주님의 죽음을 저희가 선포하고, 주님의 부활을 저희가 기뻐하나이다. 영광 가운데 주님의 오심을 저희가 기다리나이다.
1 우리는 이 음식을 '에우카리스티아'(감사제, 성찬)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가르침이 참되다고 믿고 죄의 용서와 새로 남을 위한 씻음을 받고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대로 사는 이가 아니면 아무도 여기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2 우리는 이것을 보통의 음식이나 보통의 음료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육화하시어 우리 구원을 위하여 살과 피를 취하셨기에, 우리는 그분 자신의 말씀이 담긴 기도로 축성되고 또한 우리의 피와 살에 자양분이 되어 주는 그 음식은 육화하신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배웠습니다.
― 순교자 성 유스티누스 『첫째 호교론』 66,1-2(AD 2세기 중엽)[2]

그리스도교7성사 가운데 하나이다. 예수최후의 만찬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현재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가톨릭에서는 성체성사(미사)로, 정교회에서는 성체성혈성사로, 성공회에서는 감사성찬례로 부른다. 7성사 중에서 나머지 성사에 대한 입장은 기독교 교파별로 해석이 다를 수 있지만, 예수를 믿는 종교에서는 적어도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를 소홀히 하는 종파가 절대로 있을 수도 없고 상상하기도 어렵다.[3]

영성체(communio)와 친교(communio)가 라틴어로 동일한 단어임에서 볼 수 있듯, 성찬례는 매우 교회론적 의미를 지닌 성사이며, 역사적으로 말해서, “초기 교회 때부터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주님의 날’(주일)을 지키며 산다‘는 뜻이었다.”[4]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혹은 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주일 성찬례에 참례하는 것과 처음부터 하나였다.

이 성사는 '예수께서 신자들과 함께 함'을 뜻한다. 그 기원은 최후의 만찬으로서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을 모아놓고 빵과 포도주를 들어 기도한 후 "이것은 나의 몸과 피다."라고 말하며 나누어준 데서 유래한다. 또 그 외에 요한 복음서 6장 48~59절을 주요 근거로 한다.

이 문서에서는 편의상 성체성사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지만, 성공회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개신교 교파 스스로 '성체'라는 표현을 쓰기를 거부하며, 정교회가톨릭 또한 개신교는 성체성사를 온전히 이룰 수 없다고 본다.
파일:external/archive.sltrib.com/sacredwine_042311~9.jpg 파일:external/1.bp.blogspot.com/pianeta+%2528329%2529.jpg
정교회식 영성체 가톨릭식 영성체[5]

가톨릭·정교회·성공회에서는 성체를 모시는 행위를 영성체(領聖體)라고 한다. 여기서 영(領)이라는 한자가 '무엇인가를 받아들인다, 받는다.'는 뜻이다. 즉, 영성체란 '성체를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동사형으로 쓸 때는 '성체를 영한다.' 혹은 '영성체하다.'라고 표현한다.

이 의식에서 종교적 식인 의식, 예를 들어 폴리네시아의 마나 문화나 아즈텍 제국식인 의식에서 볼 수 있듯이, 문자 그대로 보면 "위대한 사람의 피와 살을 말 그대로 먹어서 자신의 몸 내부에 받아들임으로써 그 인물과 동일화되는 의식" 같은 것을 연상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로마 제국 시대에는 잘못 알려져서 기독교인은 식인을 한다는 말이 널리 퍼져 있었다. 실제로 서기 177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치하에서 기독교인들이 대대적인 박해를 받았을 때 고소당한 죄목 중 하나가 식인이었다.

물론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사람의 시체를 먹는다는 의미에의) 식인[6] 행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말이 외부로 와전되었기 때문. 뿐만 아니라 성인들의 유해(성유물)을 탐하여 가지려 하는 기독교인들의 행동 또한 식인 오해를 부추겼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계몽시대의 지식인들은 성체성사와 식인행위가 다를 바 없다고 까기도 했다.[7] 심지어 보편교회를 비방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근거를 찾는 극단적인 반가톨릭 성향의 극우 개신교종파들도 성체성사를 식인 풍습이라고 비난하고 있다.[8][9]

한 가지 재밌는 사실로, 식인과의 상징적인 유사성이 아즈텍 제국가톨릭을 전파하고 식인 행위를 멈추도록 하는 것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아즈텍인들의 식인을 하는 풍습에 기겁한 선교사들이 "영성체를 하면 예수의 피와 살을 먹는 것이니 식인을 하지 않아도 해는 뜰 것이다." 라고 말했고, 실제로 식인을 멈춘 뒤 해가 떠오르자, 사람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식인을 멈추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아즈텍인들의 인신공양 의식과 성체성사는 개념상 너무 유사했기 때문에, 밀로 만든 빵인 성체와 적포도주로 드리는 성체성사로 '사람의 피와 살을 공양하는 의식'을 대체하는 작전이 성공을 거둠으로써 메소아메리카 지역에서 가톨릭을 빠르게 전도할 수 있었다.

한편, 가톨릭 교회에서 미사 외 시간에 성체 앞에서 기도하는 신심행위를 성체조배(聖體朝拜)라고 한다. 여러 기독교간에 성체성사를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성체조배의 유무에서도 차이가 있다. 상세한 사항은 후술.

2. 성체성사의 자격

일반적으로 현대 성체성사의 자격은 2가지 관점으로 나누어진다. 아래 구분은 영어 위키백과의 것을 따른다.
  1. 개방 성찬례(開放聖餐禮, Open Communion): 세례를 아직 받지 않은 신자 혹은 타 교파 세례교인도 참여할 수 있는 성찬례.[10] 심지어는 성찬예배에 참여한 비신자의 성찬 참여를 허락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현재 성공회를 비롯한 개신교 대부분(특히 자유주의·에큐메니컬 계열)[11]이 이쪽이다.
  2. 폐쇄 성찬례(閉鎖聖餐禮, Closed Communion): 세례를 받았고 그 교단의 신앙에 현재 일치된 신자만이 참여 가능한 성찬.[12] 가톨릭, 정교회[13] 및 일부 침례교가 이쪽이다. 가톨릭과 정교회 공통으로, 세례를 아직 안 받았거나 이단적인 믿음(개신교)에 머무르고 있는 한 영성체를 허용하지 않는다.[14] 폐쇄 성찬례를 취하는 일부 개신교 교회의 경우, 심지어는 같은 교단 교인이라도 자신의 개교회에 등록되지 않았으면 성찬 참여가 허락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과거 성공회도 견진까지 받은 등록교인에게만 영성체가 허락되던 시절이 있었다.
    가톨릭정교회는 모두 폐쇄 성찬례(閉鎖聖餐禮, Close Communion)의 관점을 취하고 있다. 이는 가톨릭과 정교회는 영성체(Communio)가 신앙의 친교(Communio)를 드러낸다고 보기 때문이다. 가톨릭과 정교회에서 영성체(Communio)를 온전히 같이 한다는 건 친교(Communio)가 온전히 이루어졌다는 의미이며, 따라서 친교(Communio)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영성체(Communio)를 함께 하는 것은 일종의 기만이며, 단지 형식주의적인 전례라는 결론이 나온다.[15] 그렇기에 가톨릭과 정교회의 경우 세례성사를 아직 받지 않은 예비신자뿐만 아니라, 다른 교파에서 세례성사를 받고 그 교파에 머무르는 중인 신자들도 성체를 받지 못한다.

세례 받지 않은 예비자이거나 신자이지만 죄를 지은 상태에서 고해성사를 받지 않은 이가 성체를 영하게 되면 모령성체(冒領聖體, Sacrilegious Communion)가 된다.[16] 당연히 고해성사를 통해 용서 받아야 하는 죄목인데, 그냥 죄도 아니고 대죄(大罪)에 속한다.[17] 모령성체라는 개념의 성경적 근거는 코린토1서 11장 27-29절[18]이다. 이와 비슷하게 정교회의 경우도 성체성혈성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고해성사에 참여하라고 하고 있다.[19] 그래서 이것 때문에 일부 신심이 까다로운 신자들은 주일미사는 꼬박꼬박 나오면서도 정작 영성체는 소죄 하나라도 있다거나 고해성사를 본 지 1달이 경과되었을 경우 주저하거나 하지 않는 사례가 꽤 있으며, 극단적으로 모령성체에 민감해하는 신자는 성탄절, 부활절 등의 의무 대축일을 제외하면 아예 영성체를 하지 않거나, 반대로 매 미사 전마다 고해성사를 보기도 한다.

자세히 설명하면, 세례받은 신자가 대죄[20]와 무거운 죄악들을 지었다면 반드시 고해성사를 먼저 보고 성체를 모셔야 한다. 이를 어길 시 올바른 마음으로 성체를 받아모시지 않은 죄(모령성체의 죄)가 되기 때문에 이걸 가지고 나중에 또 고해성사를 봐야 하기 때문. 성체성사 뿐만 아니라 7성사 중 다른 성사들도 마찬가지다.[21] 단, 가톨릭의 경우 세례성사로써 모든 죄가 씻겨진다는 교리가 있기에 예비신자들이 세례(영세) 이전에 고해를 하지 않는다. 첫 고해성사는 영세 후(보통은 1달 뒤)에 이루어진다. 위의 쓴 죄악들이 아닌 작은 죄들은 소죄라고 해서 신실한 믿음과 반성으로 영성체에 임하면 성체성사를 통해서 용서된다고 본다. 소죄도 고해성사로 사함을 받는 것이 권장되는 분위기가 있긴 하지만.[22]

가톨릭이나 정교회는 폐쇄 성찬례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성공회는 개방 성찬례의 원칙을 지키고 있다. 유효한 세례[23]를 받은 신자라면 어떤 교파의 신자이든지 '이론상' 영성체를 할 수 있다. 다른 개신교 교파도 대부분의 경우 성공회와 비슷한 원칙을 가지고 있다. 다만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의 경우 가톨릭에서 받은 세례성사를 인정하지 않기로 결의했으나 최근 다시 인정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개신교의 경우 개교회주의가 강하기 때문에[24] 목사가 재량껏 완전 개방 성찬례를 하는 경우도 있다.

단, 세례성사를 받고도 성체성사가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가톨릭과 성공회는 유아세례를 받은 사람 중 일정 나이 이하의 경우 영성체를 못하게 한다. 아이들의 특성상 성체를 모시는 것도 어렵고, 교리를 이해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일종의 유예기간을 두는 것이다. 이들은 10세 전후에 몇 개월 정도 되는 첫영성체 교육을 받은 뒤, 첫 고해성사를 하고, 비로소 첫영성체를 하게 된다. 이때 여자아이들은 하얀 드레스를 입고 미사보를 쓰며, 남자아이들도 정장을 입고 나비넥타이 등으로 꾸민다. 최대한 예쁘고 귀엽게 차려입히는 것. 그만큼 신자 어린이와 신자 가정에는 큰 행사이다.

그 외의 개신교파에서도 유아세례를 주는 경우 입교[25]를 하기 전까지는 성찬례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가톨릭성공회의 경우 가끔 세례성사를 제대로 안 받은 아이에게는 나가면 사탕을 주거나[26] 안수를 주는 교회도 있다.

가톨릭성공회에서 영성체를 할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이 자리를 잘못 앉게 되어 줄을 서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27] 그럴 경우 팔을 X자로 걸치어 손을 어깨에 대면 된다.[28] 그러면 신부가 알아듣고 강복(안수)해준다. 다만, 정교회에서는 이게 성체성혈을 영하러 나갈 때의 기본 자세이다. 이를 착각하고 정교회 성당에서 영성체 시간에 나가면 불경죄를 저지를 수 있다.

반면 정교회에서는 초기 교회 전통 그대로 세례 받은 모든 이에게 영성체를 할 자격을 준다. 따라서 어린이의 성체에 대한 분별력 여부를 따지며 일정 나이까지 성체를 안 주는 것이 없다. 그래서 유아세례 받은 아기에게도 성체를 준다. 애초에 유아세례를 받을 때 견진성사도 함께 주며, 견진성사를 준 뒤에는 아기에게 첫영성체를 한다. 부모가 아이를 번쩍 들어 올리면 사제가 성체를 아기 입 근처에 조심스레 가져가 아기 눈치를 본다. 스푼에 담긴 성체를 넙쭉 잘 받아 먹는 아기가 있는 반면, 울거나 고개를 흔들어 거부하면 성체를 엎을 수 있기 때문. 아기가 너무 심하게 거부하지 않는 이상 부모가 아기를 들어올린 상태에서 사제가 성체를 주는 풍경이다.

정교회식 영성체나, 가톨릭의 양형 영성체 방식은 포도주에 빵을 적신 형태이기에 어린이에게 알코올 성분의 술을 먹이는 것에 대해 우려가 있을 수 있으나, 애시당초 동서방을 막론하고 성혈로 축성하는 포도주는 물과 섞은 형태라 알코올이 많이 희석된 상태이고, 정교회는 성체를 떠주는 스푼 크기가 매우 작고 가톨릭도 성체에 성혈을 조금만 찍어서 주는 방식이므로 어린이에게 알코올 섭취를 시킨다는 점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3. 성체성사의 효과

성찬례의 최종적인 효과는 성체를 먹은 인간을 그리스도와 결합시켜 '그리스도의 뮈스테리온적 몸'(corpus Christi mysticum, 그리스도의 신비체)[29], 곧 '교회'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이 해석은 가톨릭이든 개신교이든 똑같다.
<rowcolor=#000> 가톨릭 미사 통상문 감사 기도 제4양식 제2에피클레시스[30] 개신교 BEM 예식서 감사 기도 제2에피클레시스
주님, 몸소 교회에 마련하여 주신 이 제물을 굽어보시고
같은 빵과 같은 잔을 나누어 받으려는 저희가 모두
성령으로 한 몸을 이루고
그리스도 안에서 산 제물이 되어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소서.
저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할 때
저희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과 한 마음이 되게 하시고

주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산 제물이 되게 하옵소서.

실제로, 동서방 전체에서 가장 오래된 전례 문헌집인 히폴리투스의 《사도 전승》Traditio Apostolica(3세기 초)에서는 유일한 에피클레시스가 성찬 제정문 뒤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되어있으며, 성체성사를 교회론적 맥락에서 본다.
<rowcolor=#000> 라틴어 역본 에티오피아어 역본
청하오니, 거룩한 교회의 예물에 당신 성령을 보내 주소서. 거룩한 (신비에) 참여한 우리 모든 이를 일치시켜 주시고 진리 안에서 믿음이 굳세지도록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어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게 하소서. 청하오니, 거룩한 교회의 예물에 당신 성령을 보내 주소서. 거룩한 (신비에) 참여한 우리 모든 이를 결합시켜 주시고, 진리 안에서 믿음이 굳세어지도록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어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게 하소서
히폴리투스, 《사도 전승》 제4장, 이형우 아빠스 역주, 분도출판사, 1992, p.87-89
다만 성사의 최종 효과에 대해선 의건이 똑같아도, 성사의 중간 효과, 곧 이 교회적 결합을 가능케 하는 '그리스도의 성체 속 현존(=임재)'[31]이 과연 무엇인가는 점에서는 특히 종교개혁 시대 서방에서 극심한 논란이 되었다. 이런 신학적 해석은 주로 5~6가지 범주가 있으며, 각각 다음과 같다. 순서는 성변화 성찬론과의 신학적 거리에 따라 배열하였다.
  1. 실체변화(實體變化, Transubstantiation)[32]: 빵과 포도주의 실체(substantia)는 몸과 피의 실체로 변화하고, 빵과 포도주의 우유(accidens)[33]는 그대로 남아서 실재(몸과 피의 실체)를 가리키는 상징[34]이 된다는 입장이다. (가톨릭, 성공회 고교회파의 일부[35], 정교회[36])
  2. 성사적 임재설(聖事的臨在說)[37]: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뀐다고 보지는 않으나, 성체'성사'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빵과 포도주에 영적으로 임재한다(함께하신다)고 보는 입장(성공회). 신자가 영해야 성찬의 의미가 있다는 뉘앙스다.
  3. 공재설(共在說, Consubstantiation)[38]: 빵과 포도주에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신다'고 보는 입장(루터교회)
  4. 영적 임재설(靈的臨在說) : 빵과 포도주에 그리스도의 몸body과 피가 신체적으로corporally나 육체적으로carnally가 아니라 영적으로spiritually 임재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여기서 '영적으로 임재한다'는 말은 몸과 피가 빵과 포도주보다 덜 실재적really이라거나 덜 참되게truly 임재한다는 게 아니다.[39] (장로교회).[40]
  5. 실제적 임재설(實際的臨在說, 절충설) : 성사적 임재설과 영적 임재설의 절충적인 입장 그리스도가 실제로 임재하는(Real Presence) 영적 사건이다. 성찬은 단순히 기념이나 상징이 아니라, 바르게 행해지고 수찬자가 믿음으로 받을 때 그리스도가 실제로 임재하고 그 현존이 생생하게 체험되는 사건이 된다. 성찬에는 그리스도의 몸이 실제로 임재하고 수찬자는 그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다. 이것은 화체설이나 공재설이 아니라, ‘영적으로 실제로’(Spiritually really)임재하는 그리스도의 몸을 생생하게 체험하는 ‘진정한 임재’(True Presence)를 의미하는 것이다.(감리교)(웨슬리안 계열)[출처]
  6. 기념설(記念說)[42]: 단순히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입장(침례회)

간단히 요약을 하자면, 성체성사 시 가톨릭·정교회·성공회는 빵과 포도주가 진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being)고 믿고, 성공회·루터회·장로회는 주께서 함께하신다(accompaning)고 생각하며, 침례회는 단순히 상징한다(symbolizing)고 주장한다[43].

이 중에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뀐다고 믿는 경우는 가톨릭정교회성공회이다. 다만 '실체변화'라는 용어 자체는 가톨릭의 것이고, 정교회와 성공회에서는 이러한 믿음에 대해 따로 용어를 써가며 설명을 하지는 않는다. 위에서 가톨릭·정교회의 경우 성체성사에 대한 이해가 같지 않는 다른 교파의 영성체를 막는다고 하였는데, 이는 다른 교파의 경우 실체변화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이후 종교개혁 시기에 나타난 개신교의 경우 실체변화를 믿지 않았다. 종교개혁의 시발점이라 불리는 마르틴 루터의 경우 공재설을 주장하였고, 츠빙글리는 기념설을, 그리고 장로회의 시초인 장 칼뱅은 영적임재설을 주장하였다. 이후 성공회존 웨슬리 신부로 인해서 나온 감리회의 경우 절충설을 지지하였다. 성공회는 칼뱅주의의 영향으로 성사적 임재설이 공식적인 입장이지만 교인 개개인의 신앙으로서 실체변화를 정죄하지는 않으며, 빵과 포도주가 진실로(truly) 예수의 몸과 피의 실재(reality)로 변화한다(change)는 것은 믿는다.[44]

한편 위의 일직선상에 위치시키기 애매한 이론으로 스호넨베르크 등의 가톨릭 신학자가 제시한 "의미변화" 혹은 "목적변화" 설이 있다. 예를 들어 서로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편지를 주고받는다면, 이 편지는 편지를 쓴 사람을 인격적으로 현존하게 하는 매체, 표지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축성된 빵과 포도주는 물질의 변화는 없으나 그 의미와 목적이 변하게 되어 그리스도와 인격적 관계에 있는 이들에게는 공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현존하게 하는 표지가 된다는 것이 이 이론의 요지이다.[45] 교황청은 여기에 대해 성변화가 주관적이라는 오해를 줄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지만, '의미변화'와 '목적변화'라는 해석을 반대하지는 않는다.[46]

이런 해석의 차이는 굉장한 논란거리이다. 이 성사에서 축성한 포도주가 가톨릭·정교회의 해석대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되느냐, 혹은 츠빙글리의 해석대로[47] '그저 상징일 뿐'이냐 여부는 지금도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에서는 교황의 권위에 대한 떡밥과 함께 분란을 일으키는 주요 논란거리이다. 그렇기에 가톨릭·정교회 신자와 개신교 신자가 많이 모이는 종교 관련 홈페이지에서 저 주제로 가열차게 토론하는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다. 실은 이 주제는 철학적으로도 매우 말이 많았다. 심지어는 지동설로 유명한 갈릴레오 갈릴레이마저도 젊은 시절 이 문제에 깊이 관여한 적이 있었다.

교회 일치 운동의 일환으로 가톨릭과 성공회가 합의한 공동 선언에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5. 속량에 관한 그리스도교 교리 설명에서 희생 제사라는 단어는 두 가지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사용되었다. 신약에서 희생 제사의 언어는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役事)를 주로 일컫는다. 교회 전통에서는, 가령 전례들에서 증명되는데, 유사한 언어가 성찬 거행에서 이 역사적 사건의 기념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이렇게 동시에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 '역사적 의미에서 말하자면 오직 하나의 반복될 수 없는 희생 제사만이 있다. 성사적 의미에서 말하자면 성찬례는 희생 제사이다. 역사적 희생 제사가 반복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기만 하다면.'[48]
그러므로 유일하고 역사적이며 반복될 수 없는 희생 제사만이 있다. 이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단 한 번 봉헌되었고 성부에 의해 단 한 번 받아들여졌다. 기념의 거행에서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백성들과 성사적 방법으로 되신다. 교회는 그분의 자기 봉헌으로 들어간다. 결국, 설령 교회가 그 거행에서 능동적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십자가 위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에 그 어떤 효험도 더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교회의 행위는 희생 제사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성찬례 거행에서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의 선물에 감사를 드리며,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의지와 동일시한다. 그분께서는 인류를 위해 아버지께 자신을 봉헌하셨다.[49]

6. 성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와의 친교는 그분의 진실한 현존을 전제하며, 빵과 포도주가 유효한 표지가 된다. 빵과 포도주는 이 뮈스테리온 안에서 그분의 몸과 피가 된다.[50]
Anglican-Roman Catholic International Commission, FIRST ANGLICAN/ROMAN CATHOLIC INTERNATIONAL COMMISSION EUCHARISTIC DOCTRINE - ELUCIDATION (1979)
빵과 포도주의 형상(species) 아래서 이 지상적 실재들(realities)이 그분의 몸과 피의 실재(reality)로 변화될(changed) 때,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성사적으로(sacramentally) 그리고 진실로(truly) 현존(present)하십니다.[51]
the Anglican-Roman Catholic Consultation USA, Five Affirmations on the Eucharist as Sacrifice(1994)

이런 이해의 차이에 의해서 사용하는 빵과 포도주가 달라진다. 정교회가톨릭의 경우 실체변화를 믿기에, 그리스도가 행한 그대로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그렇기에 정교회는 누룩을 넣은 빵과 포도주를, 가톨릭은 면병(누룩을 넣지 않은 빵)과 포도주를 사용한다. 정교회는 최후의 만찬이 과월절이 아닌 과월절 예비일[52]에 있었던 일이므로, 과월절 음식이 아닌 실제로 일상에서 먹는 빵, 즉 누룩을 넣은 빵을 사용하며, 누룩없는 빵 사용에 크게 반대한다. 반면에 가톨릭은 최후의 만찬이 과월절(파스카) 축제 첫날 밤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53] 누룩없는 빵을 먹는 유대의 관습을 따라 면병을 사용한다.[54] 이런 축성이나 성변화의 개념이 없는 개신교[55]처럼 그냥 일반 빵, 보통 카스테라포도주스를 사용하는 일이 절대 없다.

더 나아가 이는 영성체의 횟수에도 차이를 가져오게 된다. 가톨릭·정교회는 매일 미사마다 영성체를 하며, 성공회 및 고교회파 루터교의 경우 매주 성체성사를 진행한다. 그러나 나머지 개신교 교파들은 성찬례 없는 예배가 일반적이다. 성찬례를 자주 해야 1달에 1번 정도이고, 보통은 분기에 1번(1년에 4번) 혹은 반기에 1번(1년에 2번) 정도 진행한다.[56]

3.1. 성체 기적

성체성사 안에서의 기적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대표적인 것으로 란치아노의 성체 성혈 기적이 있다. 문서 참조.

4. 성체 훼손 문제

4.1.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등이 성체 훼손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이유

가톨릭 교회법에서 말하는 성체모독죄는 성체에 대한 물리적인 고의적 훼손 뿐만 아니라 악의적인 의도로 영하는 행위(단순 모령성체[57]는 여기에는 미해당)와 성체나 감실에 가운데 손가락질을 하는 등의 비접촉성 모독행위도 포함된다. 그리고 성체를 영하지 않고 집에 보관할 목적으로 몰래 챙기는 것도 성체모독으로 간주된다.[58] 성체모독죄는 행하는 순간 자동 파문되는건 당연하고, 오로지 사도좌(교황)만이 사면할 수 있는 대죄 중 끝판왕이며, 이런 일을 보고받으면 이단심문소의 후신신앙교리성이 움직인다.

내친구들이라는 잡지에 연재된 중세 수도자들의 생활을 바탕으로 한 만화에서 하느님을 믿지도 않는 졸부가 성체에 뭔가 있다고 생각해 신자도 아니면서 성체를 영하러 줄에 끼어들었다가 신부에게 면박을 받고, 끝내 포기하지 않고 꼬마 한명을 꼬셔서 "범선 모형을 줄테니 성체를 빼돌려달라"는 유혹을 한다. 입에 직접 넣어주는 문제는 혀로 내밀어서 받고 빼돌리라 시키는데, 결국 이건 아니다 싶었던 소년이 졸부의 눈앞에서 성체를 삼키는 걸로 끝나서 망정이지, 중세시대 배경상 걸렸으면 큰일이 될 뻔 했다.

성변화를 지지하는 관점에서는 성체를 손상시키는, 일명 성체모독(host desecration)은 오래된 신성모독으로 간주되었다.[59] 현대에도 성체 모독은 가톨릭 교회법상 최고 수준의 모욕으로 취급되고 있고, 성체를 가져가는 등의 행동도 엄금된다. 성당에 있는 감실이 그저 장식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성체의 보관 등에도 엄격한 규율이 따르는 등, 성변화 시점에 대한 문제가 왜 많이 나오는가를 알 수 있다.

정교회 성찬예배의 성체와 파문당한 가톨릭 사제나 가톨릭 사제 출신의 성공회 사제[60], 고교회[61] 루터교회 사제가 축성한 성체를 모독하는 것도 파문 대상이다. 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성품성사세례성사와 마찬가지로 영원히 철회될 수 없는 성사이기에 파문당하거나 가톨릭-정교를 떠난 성직자가 축성한 성체도 불법적이지만 유효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 가톨릭 교회법에서는 파직·파문 당한 성직자는 더이상 가톨릭 교회에서 성체성사를 집전할 수 없지만, 가톨릭 교회법은 이들이 다른 교파에서 성체성사를 집전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막지는 못한다. 특히 성공회 고교회파 감사성찬례는 가톨릭과 거의 같은 축성 예식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쓰이는 성체가 유효할 가능성을 조금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요약하자면 아무리 개신교라해도, 성공회루터교회의 고교회파에서 거행되는 영성체는 가톨릭의 입장에서도 유효할 수 있는 여지가 조금 있는 것. 가톨릭이나 정교회에서 서품받은 적 있는 성공회 신부가 성공회 성찬기도[62] 제1, 제2양식에 따라 집전한 경우면 애매할 여지가 있으나[63] 제3, 제4양식으로 집전한 경우라면 위험하다. 물론 가톨릭 입장에서 보자면, 가톨릭은 19세기에 성공회의 사도전승 단절을 공식 선포했기 때문에 유효성의 여지는 성공회 성직자 전체가 아닌, 가톨릭이나 정교회에서 사제서품을 받았던 일부 집전 성직자에 국한된 얘기라는 것이다.

반면에 가톨릭 사제 출신인 장로회침례회 목사가 집전한 성찬식은 해당 사항이 없다. 성공회나 루터교회(고교회 한정)와 달리 이들 교회에서의 성찬식에는 축성 예식이 없기 때문이다.[64] 아무리 목사가 가톨릭 신부 출신이었어도 해당 교파의 성찬은 성체성혈이 아닌 그저 포도주와 빵일 뿐이다.

4.2. 성체를 적극적으로 훼손한 사례

일부 사탄교에서는 가톨릭의 성체를 몰래 가져와 이를 훼손·파괴하는 예식을 치르기도 한다. 이를 영어로 Black mass,즉 '검은 미사(흑미사)'라 한다.

파일:external/www.thenutgraph.com/100709_COMM_250.jpg

세계구급 사건은 2009년 <알 이슬람>이라는 말레이시아 이슬람 언론 기자들이 가톨릭 성당에 취재차 방문했다가 미사 중 영성체 시간에 받은 성체를 손으로 부순 것을 잡지에 인증한 사건이 있다. 이는 '우리는 미사에는 참여했지만 배교한게 아니다'라는 것을 인증할 목적이었다고 한다(...).기본적으로 말레이시아는 전체 국민의 60%가 이슬람교를 믿고, 가톨릭개신교는 합쳐서 10%가 될까 말까 한 국가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불만은 신자들을 중심으로만 일어났다. 결국 9개월 후 <알 이슬람>은 잡지 차원에서 사과했고, 쿠알라룸푸르의 대주교가 이를 받아들이는 형태로 마무리 되었다. 물론, 정작 문제의 시발점이 된 성체 모독 행위를 저지른 기자들은 끝끝내 아무런 성명도 내지 않았지만 말이다.

2002년 인도네시아에서는 서로 다른 날 여성과 남성 개신교도에게 각각 4년형과 8년형이 선고되었다.# 이들은 성체를 훼손한 것도 아니고 단지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이 성체를 받고 영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중형을 받았다. 남성의 경우 사건 발생 당일 천여명의 군중이 경찰서에 몰려들어 범인을 인도하라며 돌을 던지며 시위를 벌였고 일부는 사형을 요구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의 무슬림 거주 국가지만 국교 없이 세속주의 법률을 가지고 있으며, 헌법에 의해 가톨릭과 개신교를 포함한 주요 종교들에 대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다.

파일:external/ph.jejusori.net/118771_131384_31.jpg

국내의 경우 2012년 8월 8일 제주특별자치도 강정마을에서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시위를 하고 있던 시기의 일이 화제가 되었다. 천주교 전주교구 문정현 바르톨로메오[65] 신부가 시위 현장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도중, 경찰이 차량통행 방해를 이유로 구석으로 사제를 밀어붙인 결과 성체가 땅에 떨어지고 경찰이 성체를 2번씩이나 밟아 훼손된 사건이다. 미사가 봉헌되는 시간만이라도 공사장 진입을 막기 위해서 문정현 신부는 공사장 진행로 인근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었고, 경찰은 이를 막기 위해서 강제로 밀어냈다. 문제의 사건이 있었던 때에는 문정현 신부가 성반을 들고 이동하는 중이었고, 경찰이 문정현 신부까지 같이 밀어내는 과정에서 성반을 든 신부의 손을 낚아채는 등의 행동을 한 결과 성체가 땅에 떨어진 것이다.[66] 문정현 신부는 신성한 성체가 떨어지자 성체를 보호하려고 했으나, 경찰들이 뒤엉켜 있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고, 상황이 어느 정도 해결된 뒤에야 겨우 수습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들이 떨어진 성체를 밟았으며, 서귀포 경찰서 측은 "유감이나 적법한 공무집행으로 고의는 없었다"고 발표했다.[67] 천주교 제주교구는 성체 수습을 위한 팀을 파견했고, 이후 한국 가톨릭 언론들은 입을 모아서 성체를 훼손한 경찰들을 비난 하였다. 결국 1달이 지난 9월 7일 제주지방경찰청장이 천주교 제주교구강우일 베드로 주교를 예방해 공식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68]

2018년 7월 10일, 한 워마드 회원이 성체 주 예수의 욕설을 쓰고 불태워버리는 심각한 성체모독을 하고 그것을 인증하면서 조롱까지 하는 짓을 저질렀다. 불쾌감을 줄 수 있으니 주의[69] 위 강정마을 사례와 같이 고의성이 없는 성체훼손도 큰 문제가 되었는데 심지어 이 건은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신성모독 행위인 관계로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불교 신자, 개신교 신자는 물론 비종교인들도 "해선 안 될 미친 짓을 했다"며 비판하며 가톨릭 신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사항은 워마드 성체 훼손 사건 참조. 범인이 누구든 간에 교회의 별도 처분 없이도 파문이 자동 결정되어 있다.

4.3. 부실한 성체 성혈 관리와 이에 관한 대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가톨릭 교회에서 성체 성혈을 철저히 관리하기 위하여 모든 구성원들이 지녀야 할 전반적인 태도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미사/자세 문서
번 문단을
철저한 성체 성혈 관리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4. 가톨릭 교회법의 관련 조문

『교회법』 원문 열람
897항, 898항
제1절 성찬 거행 899항
제1관 지성한 성찬의 집전자
900항, 901항, 902항, 903항, 904항
905항, 906항, 907항, 908항, 909항
910항, 911항
제2관 지성한 성찬(성체) 배령
912항, 913항, 914항, 915항, 916항
917항, 918항, 919항, 920항, 921항
922항, 923항
제3관 성찬 거행의 예식과 의전
924항, 925항, 926항, 927항, 928항
929항, 930항
제4관 성찬 거행의 시간과 장소
931항, 932항, 933항
제2절 성체의 보존과 공경 934항, 935항, 936항, 937항, 938항
939항, 940항, 941항, 942항, 943항
944항
제3절 미사 거행 예물 945항, 946항, 947항, 948항, 949항
950항, 951항, 952항, 953항, 954항
955항, 956항, 957항, 958항
사도좌: 로마의 주교좌 명칭. 로마의 주교교황은 그의 직무에 있어 전례 문제에 관해, 곧 적응한 전례를 승인하고 각국 주교회의의 교령들을 인준하며 의식을 실험하고 개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데 있어 최상의 권위를 갖는다.[70]
출처: 천주교 용어사전
제 6 권 교회 안의 제재 (1311-1399)
제 1 편 범죄와 형벌 총칙
제 6 장 형벌의 종지
제 1354 조 ① 제1355-1356조에 열거된 이들 외에도, 형벌이 딸린 법률을 관면할 수 있거나 형벌을 계고하는 명령을 면제시킬 수 있는 모든 이들은 그 형벌을 사면할 수도 있다.
② 형벌을 설정하는 법률이나 명령은 다른 이들에게도 사면권을 수여할 수 있다.
③ 사도좌가 형벌의 사면을 자기에게나 다른 이들에게 유보하였으면, 이 유보는 좁게 해석되어야 한다.
제 1355 조 ① 법률로 설정된 형벌이 부과되었거나 선언된 경우, 그 사면이 사도좌에 유보된 것이 아닌 한 이것을 사면할 수 있는 이는 다음과 같다.
1. 형벌을 부과하거나 선언하기 위하여 재판을 진행하였거나 몸소 또는 타인을 통하여 재결로 형벌을 부과하였거나 선언한 직권자.
2. 범법자가 거주하는 곳의 교구 직권자. 다만, 이례적 상황 때문에 불가능한 경우가 아니면 제1호에 언급된 직권자와 상의하여야 한다.
② 법률로 설정된 자동 처벌의 형벌이 아직 선언되지 아니하였고 그 사면이 사도좌에 유보된 것이 아니면, 직권자는 자기의 소속자들과 자기 지역 내에 거주하거나 그 곳에서 범죄한 이들에게 사면해 줄 수 있다. 또한 어느 주교든지 성사적 고백 행위 중에 사면할 수 있다.

제 2 편 개별 범죄에 대한 형벌 (1364-1399)
제 1 장 종교와 교회의 일치를 거스르는 범죄 (1364-1369)
제 1364 조 ① 배교자나 이단자나 이교자는 자동 처벌의 파문 제재를 받고, 제194조 제1항 제2호의 규정이 준수된다. 성직자는 그 외에도 제1336조 제1항 제1-3호에 규정된 형벌로 처벌될 수 있다.
② 장기간의 항명이나 심각한 추문으로 필요한 경우, 다른 형벌이 추가될 수 있고 성직자 신분에서의 제명 처분도 제외되지 아니한다.
제 1367 조 성체를 내던지거나 독성의 목적으로 뺏어 가거나 보관하는 자는 사도좌에 유보된 자동 처벌의 파문 제재를 받는다. 성직자는 그 외에도 다른 형벌로도 처벌될 수 있고, 성직자 신분에서의 제명 처분도 제외되지 아니한다.
제 1369 조 공연이나 공중 연설 중에 또는 공개적으로 유포되는 글이나 기타 사회 홍보 매체를 이용하여, 모독을 공언하거나 미풍 양속을 심하게 해치거나 또는 종교나 교회에 대하여 모욕을 표현하거나 증오나 경멸을 도발하는 자는 정당한 형벌로 처벌되어야 한다.
출처: 가톨릭길라잡이 - 교회법


파일:CC-white.svg 이 문단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2184
, 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단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2184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5. 영성체의 방법

  1. 양형 영성체: 성체(빵)와 성혈(포도주)를 모두 먹고 마시는 것. 정교회, 성공회 등에서 이 방식을 채택하며, 가톨릭 역시도 신자들에게 교리교육이 되었다는 전제하에선 가장 이상적인 형테로 본다. 영국도 성공회, 가톨릭 모두 양형영성체가 일반적이다. 가톨릭 교리상 인정되는 양형 영성체의 방식은 담그기(intinctio)를 포함하여 총 네 가지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가톨릭에서는 단형 영성체가 통상적이기 때문에 양형 영성체를 거행할 때에도, 기본적으로 성체만 영하는 것이 일반이고 성혈은 원하는 사람만 마시는 듯하다. 성공회의 경우 영국종교개혁의 초기에는 양형 영성체를 강제하였으나 차후 단형 영성체도 허용하게 되었다. 현대 성공회에서도 양형 영성체가 기본이다. 단 신자가 원할 경우 성체만 영할 수 있다.
  2. 단형 영성체: 성체와 성혈 둘 중 하나만 받아서 먹는 것. 일반적으로 성체만 영하는 것을 칭하기는 하지만, 위 교회법 925조에 따라, 포도주의 형상만으로도 가능하다.

포도주를 빵과 함께 곁들여 마시게 하는 영성체를 '양형 영성체'라고 한다. 가톨릭 전례에서 규정하는 양형 영성체의 방식은 네 가지이다.[71] 널리 쓰이는 방식 순으로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1. 신자들이 성체를 먼저 영한 후 정규/비정규 성체 분배자가 포도주를 담은 잔을 기울여 성혈을 영하기를 원하는 신자에게 한 모금 마시게 하는 방법. 이 때 정규/비정규 성체 분배자가 천을 들고 있다가 침이 묻은 부위를 일일이 닦아 주기도 한다. 이 방식이 가장 널리 쓰이고 서방 기독교에서는 이것이 가장 전통이 오래된 원형으로 알려져있다.
  2. 또한 intinctio라고 하여 사제가 축성한 빵을 포도주에 적셔 신자들의 입에 넣어주는 방법이 있다.[72]
  3. 성체분배자가 성혈을 숟가락으로 떠서 신자들의 입에 넣어주는 방법
  4. fistula[73]를 이용해서 신자의 입에 넣어주는 방법도 존재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는 잘 쓰이지 않는 방식이나, 현대 가톨릭의 가장 보편적인 전례인 바오로 6세 미사에서도 여전히 합법이다.

가톨릭에서는 현재 단형 영성체를 통상적으로 거행한다. 성체와 성혈이 모두 실체적으로 그리스도라면 '성체만 모셔도 그리스도를 모신 것'이라는 논리적 귀결이 당연히 따르기에 단형 영성체가 가능하고, 동시에 교리교육(성체 단독으로 영해도 실체적으로 완전한 그리스도를 영하는 것) 기능 때문에 단형 영성체가 통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성사가 가리키는 실재(res, 그리스도)에서는 단형 영성체이든 양형 영성체이든 똑같지만, 표지(signum, 빵과 포도주의 모습)라는 면에서는 양형 영성체가 더 충만한 것이기에, 가톨릭 신학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것은 양형 영성체로 본다. 따라서 현 가톨릭에선 교리교육적 의미에서 단형 영성체를 기본으로 하되, 교육이 충실히 되었다는 전제 하에서는 양형 영성체를 이상으로 본다.
14.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 같은 정신과 사목 열정으로 양형 영성체에 대한 트리엔트 공의회의 규정을 새로 조정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성체만 받아 모셔도 영성체의 온전한 효력이 있다는 교리를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의회는 신자들에게 자신이 참여하는 신비를 더욱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특별한 기회에는 한층 더 분명한 성사적 표지의 형태인 양형 영성체도 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281. 영성체는 성체와 성혈 양형으로 할 때에 표지로서 더 충만한 형태를 지닌다. 양형 영성체로 성찬 잔치의 표지가 한층 더 완전하게 드러나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새롭고 영원한 계약이 주님의 피로 맺어졌다는 사실이 더욱 뚜렷이 표현되며, 성찬 잔치와 아버지 나라에서 이루어질 종말 잔치의 관계가 더욱 분명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282. ... 또한 신자들이 성찬의 표지가 더 명백히 드러나는 방식으로 거룩한 예식에 더욱 열성적으로 참여하도록 권고해야 한다.
283.... 교구장 주교는 자기 교구를 위하여 양형 영성체 규범을 정할 수 있다. ... 또한 자기에게 맡겨진 공동체의 사목자로서 사제가 좋다고 여길 경우 언제나 양형 영성체를 분배하도록 허용할 권한이 교구장 주교에게 있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6. 초기 교회의 성체성사

23ὁ κύριος Ἰησοῦς ἐν τῇ νυκτὶ ᾗ παρεδίδετο ἔλαβεν ἄρτον 24καὶ εὐχαριστήσας ἔκλασεν καὶ εἶπεν· τοῦτό μού ἐστιν τὸ σῶμα τὸ ὑπὲρ ὑμῶν· τοῦτο ποιεῖτε εἰς τὴν ἐμὴν ἀνάμνησιν. 25ὡσαύτως καὶ τὸ ποτήριον μετὰ τὸ δειπνῆσαι λέγων· τοῦτο τὸ ποτήριον ἡ καινὴ διαθήκη ἐστὶν ἐν τῷ ἐμῷ αἵματι· τοῦτο ποιεῖτε, ὁσάκις ἐὰν πίνητε, εἰς τὴν ἐμὴν ἀνάμνησιν. 26ὁσάκις γὰρ ἐὰν ἐσθίητε τὸν ἄρτον τοῦτον καὶ τὸ ποτήριον πίνητε, τὸν θάνατον τοῦ κυρίου καταγγέλλετε ἄχρι οὗ ἔλθῃ.[74]
가톨릭 새번역 개신교 새번역
23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24감사를(eucharistēsas)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anamnēsin) 이를 행하여라.25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anamnēsin) 이를 행하여라.” 26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23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빵을 들어서 24감사를(eucharistēsas) 드리신 다음에, 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anamnēsin)." 25식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시고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 너희가 마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anamnēsin)." 26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입니다.
고린토 1서 11장 23-26절
ἐγώ εἰμι ὁ ἄρτος τῆς ζωῆς· ὁ ἐρχόμενος πρὸς ἐμὲ οὐ μὴ πεινάσῃ, καὶ ὁ πιστεύων εἰς ἐμὲ οὐ μὴ διψήσει πώποτε.[75]
가톨릭 새번역 개신교 새번역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요한 복음서 6장 35절

초기교회 성체성사에 대한 가장 중요한 증언은 당연히도 최우선적으로 성경이다. '코린토 전서와 루카 복음서', 그리고 '마르코 복음서와 마태오 복음서'는 비슷하지만 별개의 최후의 만찬 전승을 증언하며,[76] 가장 빠른 증언인 코린토 전서에서도 이미 성찬 제정 말씀은 하나의 전례문으로 자리잡은 상태였다. 곧, 교회는 초창기부터 이미 성찬례의 공동체였던 것이다.

위의 성찬 제정 말씀에서 유래한, 성찬례를 의미하는 희랍어 εὐχαριστία(eucharistia)는 문자 그대로는 '감사'라는 의미이다. 이 에우카리스티아(εὐχαριστία)라는 "명칭의 유래에 관해서 가장 합당한 가설은 다음과 같다. 유다교에서 회식을 시작할 때, 가장 또는 주빈이 빵을 들고 찬양기도(berakah, בְּרָכָה)를 드렸다. 이 말을 그리스어로 옮길 때 찬양이라는 뜻을 지닌 에우로기아(εὐλογία)로 직역할 수도 있지만, 감사로 번역되는 에우카리스티아(εὐχαριστία)로 의역할 수도 있다. 시편의 경우를 보아도 찬양 시와 감사 시는 그 구조와 내용이 거의 같다. 그래서 마르코 계열의 최후만찬 기사에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77](마르 14,22=마태26,26)이라고 표현한 반면, 바오로 계열에서는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78](1코린 11,23~24=루카 22,19)이라고 표현했다."[79]


2세기 초에 시리아 지방 시골 교회에서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그리스도교 교리 및 전례 지침서인 디다케에서 나타나는 성찬례 역시도 눈여겨볼만 하다.
1[80]감사(례)eucharistias[81]에 관해서, 여러분은 이렇게 감사드리십시오.
2우선 잔에 대해서 (이렇게 하시오).
우리 아버지, 당신 종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신 대로 당신 종 다윗의 거룩한 포도나무에 대해 우리는 당신께 감사드립니다.[82] 당신께 영광이 영원히.
3빵조각에 대해 (이렇게 하시오).
우리 아버지, 당신 종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 주신 생명과 지식에 대해 우리는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당신께 영광이 영원히.
이 빵조각이 산들 위에 흩어졌다가 모여 하나가 된 것처럼, 당신 교회도 땅 끝에서부터 당신 나라로 모여들게 하소서. 영광과 권능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히 당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4이 빵조각이 산들 위에 흩어졌다가 모여 하나가 된 것처럼, 당신 교회도 땅 끝에서부터 당신 나라로 모여들게 하소서. 영광과 권능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히 당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5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받은 이들이 아니면, 아무도 여러분의 감사(례)에서 먹지도 마시지도 말아야 합니다. 주님꼐서도 이것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마시오"라고.
《디다케》(AD 100년경), 정양모 역주, 분도출판사, 1993, 9장 1-5절
주님의 주일마다 여러분은 모여서 빵을 나누고 감사드리십시오eucharistēsate[83]. 그러나 그 전에 여러분의 범법들을 고백하여 여러분의 제사가thysia[84] 깨끗하게 되도록 하시오.
『디다케』, 정양모 역주, 14장 1절

AD 100년경 시리아의 한 시골 교회에서 저술된 디다케의 9-10장에서 성찬례의 감사 기도를 다룬다.[85]

디다케의 감사 기도는, 비록 바울로가 전하는 양식(1고린 11,23-25)과는 차이가 있지만, "감사"(eucharistia, 성찬), "영적 양식과 음료"(디다케 10장 3절)[86] 등의 표현은 근본적으로 신약성경의 신앙과 일치한다.

특히 디다케의 감사 기도가 가진 특징은, 고린토 전서 11장과 달리, 하나의 온전한 빵이 떼어지고 부서짐을 통해 십자가에서 달리신 그리스도의 몸이 찢기고 부서지는 이미지를 나타내지 않으며, 이미 나뉜 ‘빵조각’으로 온 세상에 흩어진 교회 즉 그리스도의 몸으로 표현한다는[87] 것이다.
4이 빵조각이 산들 위에 흩어졌다가 모여 하나가 된 것처럼, 당신 교회도 땅 끝에서부터 당신 나라로 모여들게 하소서. 영광과 권능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히 당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디다케》, 정양모 역주, 9장 4절
물론 여기서 고린토 전서 11장과 디다케 중 하나의 표상 중 하나가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신약성경의 이해에서든 후대의 신학적 이해에서든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의 현재화이자, 동시에 매우 교회론적인 의미를 지닌 성사이다. '흩어진 빵의 모임' - '흩어진 그리스도의 몸의 모임' - '흩어진 교회의 모임'을 연결시키는 디다케의 아름다운 연상법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도입된 3가지 감사 기도에서도 유사하게 사용되고 있다.
[감사 기도 제2양식][88]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어
성령으로 모두 한 몸을 이루게 하소서.
[감사 기도 제3양식][89]
주님, 교회가 바치는 이 제사를 굽어보소서.
이는 주님 뜻에 맞갖은 희생 제물이오니
너그러이 받아들이시어
성자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저희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한마음 한 몸이 되게 하소서.
[감사 기도 제4양식][90]
주님, 몸소 교회에 마련하여 주신 이 제물을 굽어보시고
같은 빵과 같은 잔을 나누어 받으려는 저희가 모두
성령으로 한 몸을 이루고
그리스도 안에서 산 제물이 되어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소서.

또한 디다케에서는 성찬례를 제사thysia라고 부르는 것도 눈여겨볼만 하다.
한편 AD 105년에서 135년 사이에 순교한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스 교부는 성찬례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예수 가현 이단자들은) 성체eucharistias와 기도를 멀리합니다. 저들은 성체가 우리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살sarka임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성체야말로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수난하신 그리스도의 살이요, 아버지께서 자애로이 일으키신 그리스도의 살인데도 말입니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스, 〈스미르나인들에게 보낸 편지〉 7,1 in 《일곱 편지》, 박미경 역주, 분도출판사, 2000
여러분은 한 감사례eucharistia에 참여하도록 애쓰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살도 하나요, 그분의 피와 하나가 되게 하는 잔도 하나이며, 제단thysiastērion[91]도 하나입니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스, 〈필라델피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4 in 《일곱 편지》, 박미경 역주, 분도출판사, 2000
여기서는 분명하게 성체를 그리스도의 살로 표현하고 있으며, 제단(祭壇, thysiastērion)이라는 용어를 통해서 성찬례를 제사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시, 2세기 저술인 순교자 유스티누스의 『첫째 호교론』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우리는 이 음식을 '에우카리스티아'(감사제, 성찬)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가르침이 참되다고 믿고 죄의 용서와 새로 남을 위한 씻음을 받고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대로 사는 이가 아니면 아무도 여기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2 우리는 이것을 보통의 음식이나 보통의 음료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육화하시어 우리 구원을 위하여 살과 피를 취하셨기에, 우리는 그분 자신의 말씀이 담긴 기도로 축성되고 또한 우리의 피와 살에 자양분이 되어 주는 그 음식은 육화하신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배웠습니다.
― 순교자 성 유스티누스 『첫째 호교론』 66,1-2(AD 2세기 중엽)[92]

이러한 맥락에서, 4세기 희랍 교부인 예루살렘의 성 키릴로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2 카나에서 그분은 자신의 의지로 물을 포도주로 변화μεταβέβληκεν시키셨다. 그렇다면 그분께서 포도주를 피로 변화μεταβαλών시키신 것은 의심스럽단 말인가? ...... 5 구약은 진설(陳設)된 빵[93]을 가졌다. 그러나 이는 옛 계약에 속했기에 끝났다. 새 계약은 몸과 혼을 의인(義認)하는 하늘에서 온 구원의 빵과 잔을 가진다. 빵이 몸을 향해 있듯이, 말씀은 혼에 알맞다. 6 단순한 빵과 포도주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것들은 주님의 선포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다. 감각은 여기에 반대할 테지만, 믿어라. 맛으로 물질을 판단하지 마라.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는 특권을 받았다는 확고한 확신을 믿어라. ... 9 보이는 빵은 빵맛이 나더라도 빵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다. 가시적 포도주는 포도주맛이 나더라도 포도주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이다. 옛적에 다윗은 “빵이 인간의 마음을 굳세게 하고, 그의 얼굴이 기름으로 윤기나게 되나이다”(LXX 시편 103,15)라고 노래했다. 이러한 앎과 확신에서, 마음을 굳게 하고 영적으로 빵을 먹고 혼의 얼굴에 용기를 내라.[94]
예루살렘의 성 키릴로스(AD. 313-386), 《뮈스테리온적 교리문답》Μυσταγωγικαί κατηχήσεις[95] 4,5-6[96]
"키릴로스에 의하면 이 실재적 현존Real Presence은 빵과 포도주의 실체substance가 변화μεταΒάλλεσθαι되면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키릴로스는 이 변모를 실체변화transsubstantiation라는 의미로 해석한 최초의 신학자이다. "[97] 아닌 게 아니라, 위의 본문에서 키릴로스는 '감각'에서는 빵과 포도주이되 실재에서는 몸과 피라며 감각과 실재를 대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감각과 실재의 대비는, 스콜라학 후 가톨릭에서 실체변화를 설명하는 매우 전형적인 표현이다.(예: "감각으로는 빵이지만 그리스도의 몸이다", "감각으로는 포도주이지만 그리스도의 피이다") 물론 키릴로스의 설명을 미래의 토마스 아퀴나스의 설명과 완전히 동일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이지만, "빵과 포도주의 실체는 몸과 피로 변화μεταΒάλλεσθαι하고 빵과 포도주의 감각은 남는다"라는 핵심적인 개념을 희랍 교부와 스콜라학이 공유함을 알 수 있다.

7. 교단별 성체성사

7.1. 가톨릭의 성체성사와 영성체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성체성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미사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영성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영성체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성체 현시와 강복 예식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성 토마스의 성체 찬미가 문서
번 문단을
성체 현시와 강복 예식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7.1.1. '미사'와 '성체성사'와 '성찬례'와 '성찬 전례'와 '영성체'의 관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미사 문서
번 문단을
성체성사-성찬 전례-영성체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7.1.2. 성체성사에 대한 여러 가르침

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루카 복음 22장 19-20절.[98]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께서
제대 위 사제의 손 안에 현존하실 때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고 온 세상이 떨며
하늘이 기뻐 뛰게 하소서!
오, 위대한 고귀함이여, 놀라운 겸양이여!
오, 숭고한 겸손이여! 오, 겸손한 숭고함이여!
온 세상의 주님, 하느님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분,
우리 구원을 위하여 그토록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조그만 빵 안에 감추고 계시나이다!
형제들이여, 하느님의 겸손을 바라보고,
그분 앞에서 여러분의 마음을 여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들어 높이시도록
여러분 자신을 낮추십시오!
당신 자신을 여러분에게 온전히 내어 주신 그분께서
여러분을 온전히 받아 주시도록
여러분 자신을 위하여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십시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 전체에 보내는 편지 II」, 26-29.
우정에 가장 특징적인 것은 친구들이 함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당신의 육체적 현존을 (미래의) 보상으로서 약속하셨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순례 여정 동안에 당신의 육체적 현존이 우리에게서 충만히 빼앗기도록 내버려두기를 원하시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당신의 몸과 피의 진실을 통한 이 성사 안에서 우리를 당신 자신과 결합시킨다. (중략) 이 성사는 가장 위대한 사랑의 표지이고, 우리와 함께 있는 그리스도의 우정적 현존 때문에 우리 희망의 강력한 지주이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III』, 75, 1.
파일:external/thumbs.dreamstime.com/catholic-priest-chalice-host-communion-15366591.jpg
작은 부스러기도 성체이며 단 한 방울도 성혈
축성된 빵과 포도주를 같이 영하는 것이 영성체의 본 모습이고, 초대 교회는 아가페라고 하는 식사 뒤에 실제로 그렇게 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신자 수가 늘어남에 따라 이와 같은 본 모습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포도주를 흘릴 위험이 있기에 신자들에게는 빵만 나누어지는 일이 잦아졌다. 교회에서는 성체(빵) 부스러기도 소중히 해야 한다고 가르치므로 원래 트리엔트 미사에서는 신자들이 무릎을 꿇고 입을 벌리면 사제가 입 안에 성체를 넣어주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에는 신자들이 손으로도 성체를 받아 모실 수 있게 허용되었다. 그 경우에도 성체에서 떨어진 부스러기까지 영하라고 가톨릭 교회는 가르친다. 그래서 사제도 영성체가 끝나고 성작과 성반을 정리할 때 혹여 성반에 가루 등이 남아 있으면 물을 타서라도 남김 없이 모신다.[99]

이에 관한 일화가 있다. 장티푸스에 감염되어 사경을 헤메던 환자가 병자성사 중 성체를 영하다 삼키지 못하고 토해냈다. 누군가는 그 성체를 영해야 한다. 그래서 사제가 대신 영하고 장티푸스에 감염되어 사망하였다. 1946년에 사망한 천주교 대전교구 서산본당 주임 바로(Barraux, 범발오 베드로) 신부의 사례이다.

대제병과 소제병
미사 중에 큰 제병을 쪼개서 분배하는 것이 빵 나눔의 본 모습이다. 하지만 웬만한 성당에서는 미사 참례 인원이 매우 많기에 한 개의 제병을 그 많은 신자 숫자대로 쪼개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때문에 현대에는 사제가 미사에서 사용하는 큰 제병과 신자들에게 나눠주는 작은 제병을 별도로 준비하여 사용한다. 사제가 성찬 전례의 예물 준비, 성체 거양, 마침 영광송, 영성체 전 기도 직후에 높이 드는 것은 당연히 큰 빵이다. 커다란 성체를 쪼개는 때는 영성체 바로 전, 곧 교우들이 하느님의 어린양을 바칠 때이다. 축성된 빵을 쪼개서 그중 한 조각은 사제가 성혈과 같이 영하고 남은 조각은 작은 제병과 함께 신자들에게 나눠 준다. 봉사자나 맨 앞줄에 있는 신자들이 이 대제병 중 일부를 영할 때도 있다.

비신자가 미사에 참석한다면
세례성사를 받지 않은 비신자가 가톨릭 성당 미사에 참석한다면, 영성체 때 각 손을 반대쪽 어깨에 올려 X자를 만들고 나가면 된다. 성체를 분배해주는 주교신부가 알아보고 손을 머리에 살짝 얹어주며 안수해 준다.

비신자가 영성체 때, 아무것도 모르고 영성체 행렬에 함께 서는 경우가 종종 있다. 비신자들이 많이 오는 혼인 미사나 장례 미사 중에 이런 장면을 많이 볼 수 있으며, 명동성당이나 전동성당처럼 교적 외 신자들의 미사 참여가 많은 성당에서도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난다.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는 장소가 또 있으니 바로 군대 종교활동이다. 이 활동 중 군종 신부가 비신자들에게 정말 중요하게 강조하는 사항이 바로 비신자들은 영성체 때 나오지 말라는 것다. 영성체 때 성체 맛이 궁금해서 나가보는 비신자들이 꼭 한두 명은 있다. 아주 당연히 영성체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바로 티가 난다.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실수로 성체를 영한 적이 있다면 반드시 신부에게 말하자. 성체가 그리스도의 몸인 것은 모두에게 동일하고, 세례를 받지 않고 영하면 대죄를 용서받지 않은 상태에서[100] 성체를 모셨을 위험성은 있다. 하지만 비신자가 성체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진 상태에서 성체를 열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모셨다면 이걸 딱히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런 경우는 자동파문에 이르는 성체모독은 아니고 단순 모령성체로 간주되기에, 어떤 신부와 상담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세례받기 전끼지는 조심해달라는 권면만 받고 끝날 것이다.

감실
파일:external/farm4.static.flickr.com/3480615468_f0083bc3ff.jpg
영성체 때 축성된 빵과 포도주를 신자들에게 분배하고 나서 남는 경우가 있는데, 이 빵과 포도주는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이다. 따라서 이는 사제가 모두 영하거나 아니면 보존해야 한다. 보통 축성된 포도주가 남더라도 그 양이 적기 때문에 성체 분배가 끝난 뒤 사제가 마시고 성작에 약간의 물을 넣어 약간 빙빙 돌리는 식으로 헹궈 방울 하나까지도 전부 마신다. 제병은 따로 모아서 감실이라는 곳에 보관하는데, 이곳에 불이 켜져 있으면 성체가 보관되어 있다는 의미라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다음 미사때 남은 축성된 제병을 영하도록 만들면 끝.

성당이 위협을 받을 때의 성체와 성혈
(상략)그런데 5월 11일 새벽 2시경, 문을 두드리며 요란하게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에 장 멕틸디스 수녀는 놀라 창문으로 내다보니 정치보위부원들이 수녀원을 에워싸고 있었다. 정치보위부원 옆에는 권 마오로 수사가 서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안심이 되어 나가서 정치보위부원들을 객실로 안내하고 손님을 접대하듯이 차를 대접하였다. 그동안 세명의 서양인 수녀 가족은 급히 수녀원 성당으로 달려가서 분원장 임마꿀라따 수녀가 떨리는 손으로 감실 문을 열고 성합을 꺼내서 50개나 되는 성체를 두 명의 수녀들에게 영해주고 자신도 영하여 성합을 비웠다.
서양인 수녀 가족이 물 한 컵으로 성체를 거의 다 영하였을 때 정치 보위부원들이 수녀원 성당으로 들어와 "빨리 나오시오."라고 소리쳤다.(중략)
오 쿠니베르트 신부는 수녀가족이 올라타자마자 "성체를 어떻게 했습니까?" 하고 물어서 "성체를 다 영하고 왔습니다."라고 하니 "데오 그라치아스!(하느님 감사합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성체를 영할 기회를 못 찾았소. 성당으로 절대로 못 들어가게 하였기 때문에..."라고 탄식하며 안타까워 하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신고산 본당 감실에 모셨던 성체는 오 쿠니베르트 신부가 피랍된 직후 본당 회장이 모두 영하였다.
『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 원산수녀원사』, 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 278p~279p

성당에 화재가 발생하거나 지진, 홍수와 같은 천재 지변, 또는 전쟁 등의 돌발 상황이 닥쳤을 때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이 가능한 한 제일 먼저 챙기는 것이 감실에 모신 성체다. 일례로, 광복 후 북한에서 천주교 탄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 때 사제나 수도자들이 연행이 임박하거나 내무서에 출두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성당 감실에 모신 성체를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영하게 한 뒤[101] 남는 것은 사제 스스로 영하여, 성체 모독의 상황을 원천봉쇄하였다. 6.25 전쟁 때도 남하하는 북한군이 성당을 점거할 때 성직자들이 목숨을 걸고 물 한 모금 못 마신 채 성체를 한 입에 털어넣었다는 에피소드들이 많다. 이러한 일화들은 신부들을 포함한 가톨릭 신자들에게 성체가 얼마나 중요하고 성체 신심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 보여준다.

7.1.3. 다른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가톨릭 성체성사에 온전히 참여 가능한가?

가톨릭 교회와 온전하게 일치되어 있지 않은 동방 교회들도 크나큰 사랑으로 성찬례를 거행한다. “동방 교회들은 비록 (가톨릭 교회와) 갈라져 있지만 참된 성사들을 보존하고 있다. 특히 사도 계승의 힘으로 사제직과 성찬례를 지니고 있어 아직도 우리와는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따라서 “적절한 상황에서 교회 권위의 승인을 받아 이루어지는 어떤 성사 교류는 가능할 뿐만 아니라 권장되는 것이다.”

종교 개혁으로 가톨릭 교회에서 갈라져 나간 교단들은 “특히 성품성사의 결여로 성찬 신비 본연의 완전한 실체를 보존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가톨릭 교회는 이들 교단들과 성찬례 공동 거행을 할 수 없다.[102] 그러나 이 교단들도 “거룩한 만찬에서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고,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는 삶을 상징한다고 고백하며,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기다리고 있다.”

교구장의 판단에 따라 절박한 필요성이 생겼을 때, 가톨릭 성직자들은 가톨릭 교회와 온전한 일치를 이루고 있지 않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사(성체성사, 고해성사, 병자성사)를 베풀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진하여 성사를 청해야 한다. 곧 이 성사들에 대하여 가톨릭적 신앙을 표명하고 올바른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99-1401항.
① 가톨릭 교역자들은 가톨릭 신자들에게만 적법하게 성사를 집전하고, 가톨릭 신자들 역시 가톨릭 교역자들한테서만 적법하게 성사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이 교회법 조문의 제2항, 제3항, 제4항 및 제861조 제2항의 규정은 보존된다.
② 가톨릭 교역자에게 가는 것이 물리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불가능한 가톨릭 신자들은 필요하거나 참으로 영적 유익이 있는 때마다 그리고 오류나 무차별주의의 위험이 회피되는 경우에 한하여 참회(고해)와 성찬(성체) 및 병자의 성사를 유효하게 보존하는 교회의 비가톨릭 교역자들한테서 이 성사들을 받을 수 있다.
③ 가톨릭 교회와 온전한 친교가 없는 동방 교회들의 신자들이 참회(고해)와 성찬(성체) 및 병자의 성사를 자진하여 청하고 또 올바로 준비했다면 가톨릭 교역자들은 이들에게 적법하게 집전할 수 있다. 또한 사도좌의 판단에 따라 이 성사들에 관하여 위에 언급한 동방 교회들과 같은 조건에 있는 다른 교회들의 신자들에게도 이와 같다.
④ 죽음의 위험이 있거나 또는 교구장 주교나 주교회의의 판단에 따라 다른 중대한 필요성이 긴급하다면, 가톨릭 교회와 온전한 친교가 없는 기타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그들의 공동체의 교역자에게 갈 수 없고 이 성사들을 자진하여 청할 때 그들이 이 성사들에 대하여 가톨릭적 신앙을 표명하고 또한 올바로 준비한 경우에 한하여 가톨릭 교역자들이 이들에게 적법하게 이 성사들을 집전할 수 있다.
⑤ 제2항, 제3항 및 제4항에 언급된 경우에 관하여 교구장 주교나 주교회의는 비가톨릭의 교회나 공동체의 적어도 해당되는 지역의 관할권자와 협의한 후가 아니면 일반 규범을 제정하지 말아야 한다.
『교회법』 844조.
성찬기도 중에 우리는 매번 "신앙의 신비여!"라고 고백한다. 사제의 감사기도가 끝나면 모든 신자가 그리 믿는다는 뜻으로 "아멘"하고 응답하며 성체를 영할 때고 "아멘"을 반복한다. '예, 그리스도의 몸을 믿습니다'라는 고백이다. 물론 이 '아멘'은 교의에 대한 순수한 지적 동의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아멘'은 삶 속에서 응답되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 지켜야 할 긍정의 언어다. 따라서 아무나 쉽게 영성체에 초대받을 수는 없다. 가톨릭 신자들도 마찬가지다.
영성체를 허락하는 기본 조건은, 감사기도 끝 부분과 영성체 도중에 진실한 마음으로 모든 신자와 함께, 가톨릭 신앙에 따라 성찬례 때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아멘'이라고 응답할 수 있는가, 또 이 '아멘'을 삶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루터칼뱅은 이 '아멘'을 말할 수도 없었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교황권' 뿐 아니라 미사에 대해서도 강력히 저항했기 때문이다.
발터 카스퍼Walter Kasper 추기경, 『일치의 성사: 성체성사와 교회』Sakrament det Einheit: Eucharistie und Kirch, 조규만 조규홍 옮김, 분도출판사, 2013, pp.78-79[103]
'성체성사에 온전히 참여하다.'라는 명제를 위한 필수 조건은 당연히 영성체이다. 즉, 이 문단의 제목은 '다른 기독교 신자들이 가톨릭 성체성사에 참여하여 영성체를 할 수 있는가?'로 풀이된다.

가톨릭은 가톨릭 신자와 위급한 상황에 있는 정교회 신자에게만 영성체 참여를 허락하며 (가톨릭 교회법 844조 3항,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99, 1401항), 성공회를 비롯한 개신교 신자에게는 영성체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사제나 평신도가 비신자 및 예비 신자에게 매우 엄중히 강조하는 주의사항이다. 영성체 참여가 가능한 상태가 되기 위한 가톨릭 교회의 입장은 매우 까다롭다. 가톨릭 신자로 인정받는 이라고 하더라도 대죄, 중죄 상태에 있는 이가 특별한 사유 없이 고해성사로 죄를 해소하지 않는 상태에 있으면 영성체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심지어 가톨릭 신자가 미사에 지각한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영성체를 할 수 없다. 가톨릭 신자에게도 이렇게 까다롭게 규정을 적용한다면, 가톨릭 신자가 아닌 이들에게는 어느 정도로 엄격할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가톨릭에서 개신교 신자나 비신자들에게 가톨릭의 영성체를 허락하지 않는 근본 이유는 위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와 『교회법』의 볼드 표시된 부분이 암시해준다.

흔히들 가톨릭에서 개신교 교인들의 영성체 참여를 막는 이유를 개신교의 세례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성공회의 경우가 좋은 반례로, 가톨릭은 성공회의 세례는 인정하지만, 성공회 교인들(천주교에서 성공회로 옮긴 부류도 포함하여)이 가톨릭 미사에서 영성체를 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성공회를 비롯한 개신교 신자에게 영성체 참여를 허락하지 않는 현실적 이유는, 가톨릭에는 고해성사와 영성체 참여를 결부시키는 교리를 가지고 있는데, 고해성사가 필수가 아니거나(성공회 및 일부 루터회) 아예 없는(성공회/루터회를 제외한 개신교) 개신교도에게 영성체 참여를 허락하는 것은 가톨릭 신자에 대한 역차별의 소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개신교도들이 금육이나 금식과 같은 규율을 지켰을리도 없을 것이고. 정교회의 경우 가톨릭 신자가 정교회에서 영성체하는 것을 좋게 보지 않는다. 정교회의 공심재/금육/금식 규율이 현대 가톨릭보다 까다롭기 때문.

엄밀히 말하면, 개신교 신자에 대한 영성체 허락은 100% 원천 차단된 것은 아니지만, 성변화 성찬론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주교의 관면을 받아야 하는 등 여러가지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다. 떼제 운동 창시자인 Brother Rodger 목사처럼 교황으로부터 관면을 받아 가톨릭 영성체를 허락받은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한국에서는 개신교 신자의 가톨릭 영성체가 더욱 힘들어진다. 타 기독교 신자가 영성체 관면을 받기 위한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가톨릭 신학 기준으로 유효한 세례를 받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천주교에서는 성공회를 제외한 개신교 세례의 유효성을 매우 의심(사실상 거의 불인정)하기에[104] 영성체 관면을 위한 조건 성립이 잘 되지 않는다.

가톨릭 영성체를 다른 기독교 교파들에게 개방하는 문제는 에큐메니즘 관점에서 만년 떡밥이 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특히 성공회루터회 교인들은 가톨릭 영성체 개방 문제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실제로 성공회 측에서 가톨릭성찬례를 서로 교류하자는 요구를 몇 차례 했었으나, 위와 같은 이유로 번번히 거절당했다. 기장이나 감리회, 예장통합 등 에큐메니컬 계파들도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주류 예수교장로회(에큐메니컬 운동에 참여 중인 통합측을 제외한 합동, 고신 등)나 침례회에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사실 이들 보수적인 개신교 교파에서는 가톨릭 미사에 참례하는 것 자체가 그들의 교의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일례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는 칼뱅주의 교인더러 가톨릭 미사 참여를 금지한다. 가끔씩 가톨릭 측에서 영성체를 다른 교파에 개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인할 때마다 진보적인 성향의 성공회의 일부, 루터교회, 한국기독교장로회, 에큐메니컬 성향의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등 에서는 매우 아쉬워하는 논평을 내지만, 대다수 대한예수교장로회침례회, 심지어 보수적인 성공회 신자들의 일부 등은 관심 자체가 없다. 사실, 이들 보수적 교파에서는 '가톨릭의 성체(면병)를 아예 받지도 말라'고 해당 교파 신자들에게 주의를 주기도 한다.

7.1.4. 가톨릭 신자들이 다른 그리스도교에서 영성체가 가능한가?

가톨릭 교회는 가톨릭 신자가 정교회 영성체에 참여하는 것을 특수 상황에서만 용인한다. 여기서 말하는 특수 상황이란, 가톨릭 신자가 외딴 섬으로 여행 갔는데, 그곳에 가톨릭 성당은 없고 정교회 성당만 있는 상황과 같은 때이다. 물론 이것은 가톨릭 교회만의 용인이다. 정교회 측에서는 가톨릭 신자의 정교회 영성체 참여는 모령성체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영성체 참여 조건이 가톨릭보다 까다로운 편(예를 들면, 더 엄격한 금육/금식 규정, 가톨릭 세례성사의 유효성 의심)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교회는 정교회에서 '견진을 받은' 신자들에게만 성체를 베푸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외국에서 어느 정교회 신부님이 성체를 주신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 신부님의 잘못이지 정교회가 허용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가톨릭 교회는 가톨릭 신자가 성공회 영성체를 포함한 개신교 성찬식에는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가톨릭 교회법 844조 2항)[105] 이는 가톨릭 교회는 성찬식(성체성사) 참여를 그 성찬식이 집전되는 해당 교파와의 일치를 위한 행위로 보는데, 이교(離敎; schism) 교회[106]나 이단(heresy)[107]의 성찬식 참여가 가톨릭 교의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톨릭은 '가톨릭만이 유일한 참 교회'라는 교회관을 가지고 있다.

한편, 가톨릭 교회법에는 '유효하지만 불법적인'(valid but illicit)이라는 개념이 있다. 성사 자체의 유효성은 인정되지만 특수한 상황[108]이 아니고서는 성사 참여가 허락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정교회 성찬예배, 교황청과 일치를 이루지 못한 전통 가톨릭 단체들의 미사, 가톨릭·정교회 사제 출신인 성공회 사제가 집전하는 감사성찬례[109]가 있다. 사실 정교회나 전통 가톨릭 측에서도 가톨릭 신자가 자기네 영성체에 참여하는 것을 꺼린다.[110] 정교회, 전통 가톨릭의 영성체 조건[111]이 가톨릭에 비해 까다롭기 때문.

7.2. 정교회·오리엔트 정교회 등 동방 교회의 성체성혈성사

이렇게 해서 하느님의 백성은 지상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음식들 가운데서 선택한 빵과 포도주를 바쳐 봉헌함으로써 영적 생명의 자양분인 천상의 식사, 곧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부여받게 된다. 정교회는 빵과 포도주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실질적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뀌는 이 변화를 설명하려고 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비이며 믿음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핀란드의 대주교 바울로, 우리가 지닌 신앙 중에서

동방 교회에서는 서방 교회처럼 누룩을 넣지 않은 제병을 주는[112] 아르메니아 교회를 제외하고는 누룩을 넣은, 그야말로 이다.[113] 이 때문에 서방교회에서 주로 사용하는 제병이 아니라 통상적인 빵이다. 밀가루, 소금, 물, 누룩 딱 4가지 재료 외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빵으로 먹을 때의 맛은 바게트와 비슷한 정말 말그대로 '빵 맛'. 콥트 정교회의 경우에는 정교회에 비해서 좀 더 넙데데한 빵을 사용하며 예배 시작 전에 구워온 빵을 신부가 고르는 순서가 있다.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경우 '드포다보'라고 부르는 에티오피아 정교회 전용 성체 빵이 있다. 크기가 넓적하고 크며 표면이 많이 거친게 특징이다. 시리아 교회의 경우도 마찬가지 형태의 빵을 사용하는데 이 두 교회는 성체 축성 때 신분에 따라[114] 봉헌해야 하는 특성상 다양한 무늬가 새겨진 도장을 찍는 정교회와 달리 비슷한 크기의 십자 모양을 중심으로 한 원형 도장을 찍는다.

이 차이는 성서의 성체성사 제정일을 파스카(과월절)로 보느냐 그 전날로 보느냐에 따른 것이다. 동방에서는 파스카를 위해 모이긴 모였다고 인정하지만, 요한 복음서에 근거해 모인 날과 식사를 한 시점이 파스카 예식 전날이라고 본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먹었던 빵은 '누룩을 넣은 빵'이라는 것이 희랍 신학의 해석이다. 또한 성서에서 쓰인 '아르토스'라는 빵을 지칭하는 단어가 '누룩을 넣은 빵'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이는 정교회 교리문답에 나와있는 내용. 또한 성령이 누룩으로 상징된다고도 한다.

반면 라틴 교회는 최후의 만찬이 파스카 만찬이었다는 공관 복음서(마태오, 마르코, 루카 복음서)의 증언을 근거로, 유다인들이 파스카 만찬 때 먹는 누룩 없는 빵을 사용한다. (오리엔트가 아닌)동방 정교회가 누룩없는 빵을 쓰길 거부한건, 하나의 교회에서 일치가 끊어졌던 아르메니아 교회말고는 당시 동방에서 누룩없는 빵을 쓰는 교회는 없었고, (교회의 관점에서 이단인) 아르메니아 교회의 주장을 라틴 교회가 수용하려 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파일:external/cdn.shopify.com/prosforo.jpg
잘 구워진 정교회 '프로스포라'(성체용 빵)

파일:external/media1.wataninet.com/%D9%82%D8%B1%D8%A8%D8%A7%D9%86-%D8%A8%D9%8A%D8%AA-%D9%84%D8%AD%D9%85-1.jpg
콥트 정교회에서 사용하는 성체용 빵 '코르반'[115]

파일:드포다보1.jpg
에티오피아 정교회에서 사용하는 '드포다보'

성체가 될 빵은 반죽을 마치고 나서 둘로 나누는데, 이것은 하늘과 땅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를 합칠 때 두 반죽 사이에 기름을 칠해서 떨어지기 쉽게 한다. 그 다음 도장을 찍고 굽는데, 도장을 찍은 부분이 바로 성체가 되는 부분과 기도용으로 쓸 부분들이다. 성체가 되는 부분은 이 중 가운데 정사각형으로 'ICXC-NIKA'라고 쓰여진 자리로, '그리스도의 승리'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성체가 될 부분만 도려내 축성한 뒤 영성체 시간에 이를 전부 성작 안에 담고 포도주와 섞는다. 이때 동시에 '제온'이라고 불리는 끓은 물을 집어넣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결합되는 것을 상징한다.[116]

주님의 기도가 끝나고 영성체송을 한 뒤 성체성혈을 영하기 위한 기도를 신자들이 모두하면 신부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경건한 마음으로 나올지어다."하며 외친 뒤 신자들은 모두 앞으로 줄을 선다. 그리고 이를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스푼으로 떠서 영한다. 그리고 영할 때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세례명을 말하며 "주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과 피가 하느님의 종 OO에게 주어지니, 생명과 영생이 될지어다."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복사들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스푼에서 성혈이 떨어지지 않게 붉은 보자기를 계속 깔아줘야 한다.

파일:external/blogs.ancientfaith.com/prosph.jpg
슬라브식 정교회 프로스포라

파일:은사르1.jpg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느슈하르(Նշխար / Nšxar)

그리스식과 슬라브식의 빵을 굽는 모양이 조금 다른데, 거대한 빵 하나에 큰 도장 하나를 찍어서 제병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그리스[117]이며, 슬라브식은 작은 빵을 여러 개 만든 뒤 각각에 맞는 도장을 찍어서 사용한다. 신자들이 많을 때는 빵을 크게 만들어서 성체가 될 부분을 어마어마하게 크게 만든다. 때문에 정교회 성반과 성작은 대체적으로 가톨릭의 것에 비해서 훨씬 대형 사이즈이다. 모양과 치장도 굉장히 화려한 편이다.

성체가 되지 않고 남은 빵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 있는데, 이 빵들은 전부 그날 성당에서 성찬예배를 드린 모든 사람들이 다 먹는다. 신자가 아니라 그날 성찬예배에 참례한 모든 사람들이다. 이 축성된 빵을 '안티트론'[118]이라 하는데, 원래 성체성혈을 받지 못하는 예비신자들에게 주는 '위안물'의 뜻을 가진다. 처음 오신 분들이나 예비신자들도 소외감 없어서 좋고, 받아가면 신부의 따뜻한 웃음과 빵을 받아가기에 좋은 풍경을 보인다. 중세~근대 초기까지는 가톨릭에도 유사한 관습이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요즘처럼 영성체를 자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성체가 참여하지 않은 신자들은 사제가 축성한 일반 빵을 대신 받았다.

파일:external/www.russianstore.com/195ma85_tabernacle_01.jpg

작은 빵 조각이 성체가 되고 이걸 신자들이 다 나눠서 영한다는 점에서, 여러 개의 면병을 넣은 성합을 보관해야 하는 서방 교회의 감실과 달리 동방교회는 서방교회 신자들이 감실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작은 함에다가 보관한다. 남은 성체를 보관하는 서방교회의 감실과는 다르게 따로 순수하게 축성한 성체를 모시는 기능만 하며, 어쩌다 병자성사나 위급상황에서 꺼내 쓸 뿐, 서방교회의 성체성사처럼 모두 보관해놓고 꺼내서 쓰는 건 아니다. 그러면 성찬예배 후 남은 성체성혈은 어떻게 되는가, 바로 성찬예배가 끝난 후 신부가 남은 성체와 성혈을 부속 제대에서 모조리 영한다. 감실에 보관한 성체는 절대로 썩지 않는다는 재밌는 사실도 있는데, 동방교회 역시 서방교회와 마찬가지로 실체변화를 기반으로 하는 성체성사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단, 동방교회가 실체변화에 기반한 성체성사 신학을 교리로 하고 감실이 있음에도 여기에 모셔진 성체 앞에 절하며 묵상하는 이른바 성체조배나 성체를 모시고 행렬하는 성체거동 같은 전통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서방교회(가톨릭)의 경우 따로 사제용 제병을 축성한 성체를 성체조배실이라는 별도의 방 안에 성광에 모셔 앞에 두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것을 신앙생활의 일부로 보는 데 비해[119], 동방교회는 오히려 이를 매우 이상하게 여긴다. 동방교회는 정작 서방교회와 동일한 실체변화의 교리를 보유했음에도 그 교리를 근거로 성체조배 등을 비판하는데, 이 빵과 포도주가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면 그것은 단순히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120]으로 생각할 수 없으며, 따라서 그것은 성찬예배 밖에서 보여지며 묵상할 대상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그 자리에서 영해야(먹어야) 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121] 하지만 반대로 서방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참된 몸과 피니 그리스도의 본질을 담았고 때문에 성체조배 등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정교회식 성체성사의 성체는 지역과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나 공통적인 제빵 방법은 위의 것을 따른다. 빵을 적당한 재료의 비율로 반죽한 뒤 틀을 찍어서 문양을 새기는데 이를 프로스포론(Prosporon)이라 부른다. 틀 문양이 새겨진 빵을 오븐에 넣은 뒤[122] 제대에 올려놓으면 끝.

정교회에서는 성체 외에도 축복하는 빵이 있다. 대표적으로 8월 27일이 축일인 로도스의 성 파누리오스(Άγιος Φανούριος) 축일에 봉헌하는 '파누로피타(Φανουρόπιτα)'라는 달콤한 맛의 케이크가 있는데, 사람들이 파누로피타를 구워서 성당에 가져오면 축일 전날 만과예배 시간에 사제들이 축성을 하고 예배 이후에 일부는 다함께 나눠먹고, 나머지는 가져가서 다음날 먹는다. 또한 성 파누리오스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과 신부의 수호성인이기도 해서 파누로삐따 조각을 배게 밑에 놓고 잠을 자면 그날 꿈에서 앞으로 결혼하게 될 남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믿는 민속이 있다.

안디도로도 부스러기를 함부로 털거나 버려서는 안 된다. 만약 먹을 수 없거나 부스러기를 털어야 한다면 화단이나 화분에 놓는 것을 권장한다.

7.3. 개신교성만찬 예식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성만찬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정교회·가톨릭과 달리 개신교는 세례와 성찬은 성사로 인정하고 있으나, 루터교회는 공재설, 개혁교회는 임재설, 기념설의 교리이기 때문에 빵은 그냥 빵일 뿐이며, 성체라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빵과 포도주(포도즙)를 다루는 특별한 예절은 없다.[123] 굳이 찾으면 세례자만 성찬을 받도록 하는 점 정도. 세례 및 입교를 받았다면 참여할수 있다.

개신교 입장에서 가톨릭의 성변화설은 초기교회에 없는 전통이 13세기 교리로 확정된 것이라 보기 때문에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가톨릭 교회에서 개신교를 공격할 때 또는 가톨릭 우세지역에서 개신교 신자들을 색출하여 박해할 때의 주 레퍼토리 중의 하나가 성찬의식이었는데, 무릎을 꿇고 입으로 성체를 받는 걸 거부한 신자들을 이단이라 하여 색출하는 용도로 쓴 것. 개신교와 가톨릭의 입장은 신학적 차이에서 비롯되는데 때문에 종교개혁 시기 또한 그 이전 발도파와 롤라드파 시절에도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영향을 받은 스콜라 철학의 산물로 비판했었다. 한편 역사적으로 롤라드파의 발상지이며, 훗날 개신교가 권력을 잡고 가톨릭 신자들이 박해를 받은 영국에서는 기존 가톨릭의 성변화 교리를 "빵을 섬기는 우상숭배"라 비판했다. 그리하여 영국 가톨릭 신자들에게 구 전례는 박해에 저항한 신앙의 상징으로 20세기까지 여겨졌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영국 가톨릭 신자들은 "지금까지 우린 무얼 위해 지켜왔던 것이냐"며 반발했을 정도.

한편 초기 개신교 내에서도 빵과 포도주에 그리스도의 몸이 직접 임재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루터의 견해와, 빵과 포도주는 그대로 형태나 속성이 변하지 않을 뿐더러 성찬은 기념만을 위한 것이라는 츠빙글리, 둘 사이에서 영적 임재설을 주장한 필리프 멜란히톤, 장 칼뱅까지 중요한 논제로 다루었으며 후대 루터파 신학과 개혁주의 칼뱅파 신학자들의 가장 큰 차이점 중의 하나가 성만찬이었다.[124]

루터파에선 '이것은 내 몸이다'라는 성경 구절을 문구 그대로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며 맞섰고[125], 츠빙글리는 네덜란드 인문주의의 영향으로 루터가 중세 4가지 성경 해석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몸을 먹는 것은 식인종이나 하는 짓이고, 빵도 십자가에 메달려야 하냐고 비꼬았다. 한편 칼뱅은 츠빙글리의 견해가 지나치게 과격하다 역시 비판하며 그리스도의 몸은 천상에 편재함과,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성경 구절을 근거로 영적 임재설을 주장했다.

성만찬에 대한 이러한 불일치는, 초기 루터와 츠빙글리 등의 감정 싸움을 넘어 개신교를 분열시켰고, 루터와 칼빈 등이 '성경 해석'에 대한 가톨릭적 방법론을 사실상 수용케 했을 정도로 매우 중대한 문제가 되었다. 원래 프로테스탄트 개혁 초창기의 확신은 "전통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명한 성경의 객관적 의미가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고전 11:24, 새번역) 같은 지극히 간단한 구절에서마저 개혁가들이 일치를 보지 못했으며, 따라서 루터이든 츠빙글리이든 칼빈이든 간에, 초창기 프로테스탄트 개혁과 달리 교단의 공식적인 해석 전통을 중시하는 움직임이 급속도로 자리잡게 된다. 즉 초기에는 "루터 선생님과 츠빙글리 선생님이 대화하면 이성적으로 의미가 자명해지겠죠"라는 관점을 지녔으나, 얼마 안 가서 "저는 취리히 사람이라서 성만찬은 단순 상징이라고 생각해요"라며 교단 전통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
성찬에 대한 개혁자들 사이의 심각한 불일치는 관주도적 종교개혁[126]을 항구적으로 두 개의 운동으로 분리시키는 일 이상의 역할을 했다. 그것은 루터가 아주 단순하다고 여겼던 그런 성경구절들의 해석에서도 일치를 이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널리 증명해보였다. 1510년대 말과 1520년대 초에는 낙관적인 성경주석관이 일반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에서도 분명히 나타났다. 그러나 1530년대 말에는 일반 그리스도인이 오직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에 능숙하며, 복잡한 언어학적 이론들에 익숙한 경우에만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프로테스탄트 성경독자들은 성경해석의 수단으로서 어떤 '필터'를 제공받았다. 이러한 '필터'의 한 예로, 루터의 "소요리문답"(Lesser Catechism, 1529)은 독자들에게 성경을 이해하는 한 틀을 제공했다. 그런데 가장 유명한 성경 안내서는 칼빈의 "기독교강요" - 특히 1529년의 최종판 ㅡ 였다. 이 책은 처음에 칼빈이 루터의 요리문답을 모델로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41년도 불어판 서문에서 칼빈은 "기독교강요"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참으로 성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나아가게 하는 열쇠나 입구와 같게 될 것"이라고 진술했다. 달리 말해서 독자들이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성경해석의 수단으로 사용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쯔빙글리에게 쮜리히 시와 쮜리히 교회는 사실상 하나였고 동체였다. 다음 장에서 살펴볼 것처럼, 이것은 그의 교회론 및 성례론과 관련하여 특별히 중요한 문제였다. 결국 시의회는 신학적이고 종교적인 문제들에 개입할 권리를 갖게 되었다. 쮜리히의 종교개혁은 더 이상 올바른 성경해석에 관한 문제로 구애받지 않게 되었다. 시의회는 사실상으로 그들이 ㅡ 교황이나 공의회가 아닌 시의회가 ㅡ 쮜리히 시민들을 위해 성경을 해석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선언했으며, 이러한 권리를 행사할 의도가 있음을 알렸다. 성경에는 실로 해석하기 애매한 경우들이 있는데, 시의회가 성경 해석자로 활동할 것을 일방적으로 결정함에 따라 쮜리히 종교개혁의 정치적 성공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었다. 바젤과 베른에서도 쮜리히의 모델에 근거한 비슷한 결정이 내려져 스위스 종교개혁을 강화시켰으며, 1530년대 중엽에 제네바를 정치적으로 안정시킴으로써 간접적으러 칼빈의 종교개혁의 성공을 이끌었다.

초기 개신교 내부의 세력 갈등은 성경해석의 권위가 누구에게 있느냐의 문제와 관련된다는 사실이 명백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권위를 갖고 있다고 인정받은 사람은 누구나 종교개혁의 다양한 갈래들의 이데올로기 ㅡ 곧 사회적, 정치적인 견해 ㅡ 에 사실상으로(de facto) 통제를 받고 있었다. 비슷한 방식으로 교황의 세속적 권위는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한 권위 있는 성경해석자로서의 역할과 결부되어 있었다.

.... 관주도적 종교개혁이 초기에는 각 사람이 성경해석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후에는 사회적, 정치적 결과를 염려하게 되었다. 1525년의 농민반란은 루터를 비롯한 일부 사람들에게 솔직히 개별 신자들(특별히 독일 농민들)은 성경을 해석할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성경의 중요성을 그처럼 강조했다가 나중에 덜 교육받은 멤버들이 동일한 성경을 해석하게 될 것을(달리 말해서 관주도적 종교개혁자들과 다른 해석에 도달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성경으로 직행하는 일를 거부했던 것은 루터파 종교개혁의 아이러니의 하나이다. 예를 들면, 뷔르템베르트 공국의 학교규칙은 가장 유능한 학생들에게만 최종 학년에 신약성경을 배우는 일 ㅡ 라틴어나 헬라어로 배워야 했다 ㅡ 을 허락하도록 규정했다. 어쩌면 훨씬 다수였을 나머지 보통 학생들은 그 대신에 루터의 "소요리문답"을 읽도록 규정되었다. 직접적인 성경해석은 사실상 이렇게 소수의 특권을 지닌 집단의 몫이 되었다. 거칠게 표현해서 그것은 성경 해석자로 교황을 지목하는가, 루터나 혹은 칼빈을 지목하는가의 문제가 되었다. '성경의 명료성'의 원칙은 종교개혁 내부의 보다 급진적인 사람들이 성경을 해석했던 용례에 비추어 조용히 무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슷하게 모든 사람이 신실하게 성경을 해석하는 권리와 능력을 갖고 있다는 이념은 결국 오직 급진파들만의 소유가 되었다.
앨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 씀, 최재건 번역, "종교개혁사상"(Reformation Thoughts: An Introduction) 제3증보판 255-259쪽

성만찬을 거행할 때 사용되는 빵은 주로 카스테라가 많다. 특히 일본 나가사키식 카스테라가 많이 이용되는데 모양이 정갈하고 단정하며 엄숙하게 보여서 교회에서 성찬식을 할 때 자주 사용된다. 식빵을 잘라서 쓰거나, 아예 통식빵 혹은 모카빵을 뜯어서 나눠주기도 한다. 혹은 현지화하여 백설기, 인절미, 술떡 같은 떡을 나눠주는 경우도 있다. 에큐메니컬 성향 교단에서는 성공회나 루터교처럼 면병을 나눠주는 경우도 많다. 포도주 같은 경우 음주를 금기시하지 않는 종파는 실제 포도주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금주 교리가 있는 종파는 성만찬에도 술을 사용하지 않고 대신 포도주스를 사용한다.

코로나19 때문에 성찬키트라는 것도 나왔는데, 그 안에는 잔은 포도주스 그대로지만 빵으로는 카스테라 대신 얇은 전병이 들어있다.

반가톨릭 성향의 보수파 중 일부는 가톨릭, 정교회의 성변화를 '예수님을 다시 죽이는 죄악'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개신교 성만찬 참가 자격은 좀 케바케다. 해당 개교회나 교단에 소속된 세례 교인에게만 허락되는 곳도 있고 천주교나 정교회를 비롯한 타 교파 세례 교인에게도 허락되는 교단도 있다.
자신이 세례받은 개신교 신자인데 굳이 성체를 영하고 싶다면, 천주교 미사 대신에 성공회 감사성찬례를 가보자. 성공회는 가톨릭과 달리 유효하게[127] 세례를 받은 기독교인이면 출신 종파 상관없이 성공회의 감사성찬례에서 성찬을 영할 수 있다. 다만 성찬을 제대로 받는 방법을 미리 익히고 가거나, 타 교회 개신교 출신이라고 미리 이야기해두는 것이 좋다. 앞서 언급되었다시피 성공회는 열린 성찬례를 지향하고 있고, 복음주의계열 개신교 신자들을 환영하기 때문에 예절을 친절하게 소개해준다. 과자 받아먹듯이 대충 받아먹거나 이상한 방식으로 모시면 주위로부터 어그로를 끌 수 있다. 대한성공회의 경우 고교회 시절의 유산이 남아 있기 때문에 가톨릭 못지 않게 혹은 가톨릭보다 더한 성찬 예절을 따진다.[128] 심지어 일부 성공회 신자들은 성공회에 대한 이해가 없는데 어떻게 성찬을 하느냐면서 반발하는 사례도 있기 때문에 성체에 대한 공경과 예절은 반드시 사전에 숙지하여야 한다. 다만 외국의 경우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또 하나의 방법도 있는데, 온라인몰에서 특히 쿠팡에서 무교병을 검색해보면 비슷한 물건을 확인할 수 있다. 그걸 구매해서 사용해봐도 될듯하다. 다만, 판매자가 개신교 용품 전문 판매자인 점은 감안해둘 것.

텍사스의 한 장로교회 장로이기도 했던 아폴로 11호의 착륙선 조종사 버즈 올드린 착륙 직후 착륙선 내부에서 성찬식을 했다. 지구가 아닌 곳에서 행해진 최초이자 유일한 성만찬이었다. 또한, 이때 사용된 빵과 포도주는 인간이 지구 외 천체에서 최초로 먹은 음식과 음료다.

7.4. 성공회의 성체성사

7.4.1. 모습

타교파 신자로서 성공회 영성체 시 예절이 궁금하다면 이 부분 참조.

성공회에서는 축성된 포도주를 보혈이라고 지칭한다.

성공회도 큰 틀에서 서방교회이고 종교개혁으로 가톨릭에서 분리되어서 성체성사 예절이 천주교과 비슷하다. 해외 고교회파(Anglo-Catholic, High Church) 성공회 성당에서는 천주교의 트리엔트 미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장궤 영성체[129]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천주교와 달리 성체와 보혈 모두를 영하는 양형성찬례가 기본이다. 포도주는 공동잔으로부터 직접 마시는 경우가 많고[130] 대한성공회에서의 표준과 같이 빵을 잔에 담그는 것(intinction)은 흔하지 않다.[131] 단, 주교의 판단에 따라 전염병 등 특수한 상황에서는 천주교와 같은 단형성찬례를 행한다.

대부분의 세계성공회 공동체에 속한 교회들은 매 감사성찬례마다 성체성사를 행한다.[132] 대한성공회에서는 면병과 포도주를 사용하며, 타 개신교단처럼 카스테라, 효모빵, 포도주스 등을 사용하지 않는다.[133] 성공회 성당에도 남은 축성된 성체를 보관하는 장소가 있다.[134]

대한성공회에서는 천주교와 마찬가지로 부분적으로 연령 제한을 두나, 성공회 보편적으로는 2000년대 이후 정교회에 대한 관심과 학습이 이루어진 터라 영유아의 영성체를 권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135] 한국의 경우 일정 연령대 이상[136]의 아동부터만이 영성체를 모실 수 있다는 얘기. 따라서 성공회도 첫영성체 기념행사를 치른다. 다만, 천주교에 비해 상대적으로는 첫영성체 행사를 덜 장대하게 치르는 편이다. 천주교 첫영성체 행사에서는 행사 전용복을 입히고 치르지만, 성공회 첫영성체 행사에서는 그냥 평상복 차림으로 하는 정도의 차이. 성공회 내 어린이 첫영성체 예식도 성공회 부모 밑에서 성장한 모태신앙인 한정이다. 이 역시 영성체에 대한 신학적 입장 차이 때문. 아동이든 성인이든 일정 기간의 교리 교육을 이수해야 영성체를 할 수 있는 천주교와 다르게 성공회는 타 교파 세례교인에게도 영성체를 허용하기에 성인의 경우는 첫영성체의 의미가 약할 수밖에 없다. 해당 성인이 타 교파 세례교인 출신이면 예비신자, 아니 단순히 감사성찬례에 참석하는 것으로도 첫영성체가 되기 때문.
7.4.1.1. 이전 모습
현재는 타교파 신자들에게도 열려있고, 영미권에서는 일부 '저교회 성향 신부'가 관할사제인 성당의 경우 완전히 열린 식탁(fully open table)[137]을 추구하고 있으나, 과거에는 상상이상으로 폐쇄적이었다.

특히 옥스포드 운동(Oxford Movement)의 영향을 받은 교회들에서는 영성체에 대한 이해를 트리엔트 공의회 이전 이상 수준까지 되돌리려고 했기에 반드시 견진성사를 받아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객관적으로 알 수는 없으므로 교구 신자들에게만 영성체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교롭게도 옥스포드 운동을 추종하던 사제들이 영국의 확장시기에 선교사로 많이 파견되었기에 선교지 교회인 아프리카와 동아시아 교회들에 영향을 끼쳤다. 대한성공회도 예외는 아니어서 1960-70년대만 해도 견진성사를 받은 신자만 영성체를 할 수 있었다.[138] 심지어 성찬의 전례 때에는 밖으로 나갔어야 했다(!). 즉 당시에는 타 교파 신자는 물론이고, 세례만 받고 견진을 아직 안 받은 성공회 신자 조차도 영성체를 할 수 없었다. 이후 한국의 성공회 사제들과 신자들에게도 존 스토트(John Stott)나 제임스 패커(James I. Packer) 등 영미권 성공회의 '복음주의' 신학이 각광받게 되고, 교단 내의 분위기도 '전례적 전통, 사회적 진보, 그리고 에큐메니즘'이라는 자칭 '현대 옥스포디언'[139]으로 전향됨에 따라 더욱 열린 성찬례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즉, 대한성공회에는 그런 제약이 없어지고, 다양성과 관용을 강조하기 때문에 다른 종파의 그리스도인들이 성공회 감사성찬례에서 성찬에 참례하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 삼지 않고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싱가포르 등 다른 동아시아 지역의 성공회나 특히 아프리카의 교회에서는 여전히 엄격한 성찬례를 유지하고 있다.

7.4.2. 영성체 예절

All may, some should, none must.
모든 것이 허용돼있고, 어떤 것은 권고되고, 무엇도 강제되지 않는다.

성공회는 다양한 신학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기도서를 통해 하나가 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영성체 예절에도 마찬가지이다. 즉, 예절상의 사소한 논쟁을 피하고 감사성찬례 과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큰 의미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그러나 통상적인 예절은 아래와 같다.
  1. 공경의 의미를 담는다.
  2. 가능하면 성체와 보혈 모두 영한다.
  3. 가능하면 두 손으로 받는다.

나머지는 신자의 자율이다. 저교회 성향 교회에서 감사성찬례를 참여해도 장궤하는 신자를 막지 않고, 고교회 성향 교회에서도 외양적 공경의 의미를 대놓고 무시하지만 않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천주교 신앙경험이 있는 자라면 (현대) 천주교 방식대로 영해도 문제시되지 않는다.

따라서 여기에서 교회의 성향(churchmanship)과 신자의 신앙 배경이 작용한다. 저교회파로 갈수록 위의 세 원칙 이외의 모든 것을 생략하여 북미의 도시빈민교회 등과 같이 바게트 빵과 포도주스[140]를 나누기만 하는 경우도 있다. 전례적인 성향으로 갈수록 장궤를 하고 나아와 제대앞의 altar rail에 무릎을 꿇은 채 혓바닥으로 영성체한 후 성호를 긋고 하는 것이다. 신자의 신앙 배경의 측면에서는, 동방교회 전통에서 온 신자는 성호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긋고 손바닥이 아닌 혀에 성작을 받는다. 장궤 문화가 없는 한국에서 온 신자는 장궤 대신 깊은 절을 한다.

많은 성공회 교회의 교리교육(catechism)에서 성작을 집는 손이 오른손잡이는 오른손, 왼손잡이는 왼손이 되어야 맞기에, 성작을 받을 때 반대손을 위에 두라고 가르친다. 만약 받은 성체를 만지지 않고 곧장 입으로 넣으려면 오른손잡이도 오른손을 위에 둔다.

다만 대한성공회의 영성체 예절은 두가지로 나뉘는데, 가장 통상적인 예절의 경우는 위에 설명한 것 처럼 성체를 받을 때는 오른손을 펴서 아래로 받치고 그 위에 왼손을 펴서 손바닥 위에 성체를 받는다. 이 때 성체를 주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성체"라고 선언하고 신자는 "아멘"이라고 응답한다. 성체를 받은 후 옆으로 이동해 오른손으로 성체를 집어 보혈이 담긴 성작에 적신 뒤, 입으로 가져가 영한다. 이때도 성작을 들고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보혈"이라고 선언하고 신자는 "아멘"이라고 응답한다.

두번째 예절은 대전교구의 일부나 나이 지긋하신 사제들이 집전하는 경우로 사제가 신자에게 성체와 보혈을 찍어서 직접 입에 넣어준다. 이때 사제가 "그리스도의 성체와 보혈, 아멘" 하고 선언하는데 신자는 응답하면 안된다.

북미의 성공회 교회들에서는 전례 전반에 대하여 '잘 모르겠으면 앞사람을, 앞사람이 시원찮으면 그 앞사람을, 두 사람 모두 시원찮으면 성가대를 참고하라'는 경험칙(rule of thumb)을 소개한다. 영성체 예절에서도 이것이 적용되어, 앞사람이 하는 것을 참고삼아서 할 수 있다.

아래의 북미의 '신 옥스포드주의 고교회파'라고 하는 'Society of Catholic Priests' 소속 주교가 집전하는 북미 교회에서의 영성체 과정을 나열한 것이다. 따라서 참고용일 뿐 개인별로 알맞게 수정(adapt)할 수 있다.
  1. 제대(altar)를 향해 장궤 혹은 깊은 절을 한다.
  2. 제대 앞에 무릎꿇는 곳이 있으면 무릎을 꿇고 성호를 긋는다.
  3. 사제가 성체를 들고 선언하는 동안 두 손을 포개어 앞으로 내놓는다. 사제로부터 받은 성체는 최대한 손대지 않고 영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포개는 방식은 아래와 같다.
    1. 성작(chalice)에 성체를 담그거나, 혹은 손가락으로 성체를 잡고 영하려면 자신의 주된 손을 아래에 놓고 반대손을 위에 놓는다. 오른손잡이라면 왼손을 위에 놓고, 왼손바닥에 성체를 받는다. 잔에 성체를 담그려면 바로 영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주된 손의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조심스럽게 성체를 집어서 영한다.
    2. 성체를 그대로 영하고자 할 경우 자신의 주된 손을 위에 놓고 성체를 받는다. 오른손잡이는 오른손바닥에 성체를 받고, 그대로 양손을 입으로 가져가 영한다. 아래의 예시 참조
      파일:eucharist1.gif파일:eucharist2.gif

      사제: 'The Body of Christ'
      응답: 'Amen'
      영성체받기 전에 성호를 긋고, 손바닥에 받은 성체를 그대로 입에 넣는다.
      그 후에 보혈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다시 성호를 긋는다.
  4. 제대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으면 움직이지 않고 성작(chalice)이 올때까지 기다린다. 만약 서서 영성체할 경우, 성작이 있는 쪽으로 이동한다.
    1. 만약 성체를 아직 영하지 않았으면 성작에 담궈서 영한다. 이때 보혈을 흘리지 않도록 조심한다.
  5. 장의자로 돌아가면서 성호를 긋는다. 돌아갈 때는 제대를 향해 깊은 절을 하지 않는다.

7.4.3. 이론

성공회는 처음에 켄터버리 대주교 토마스 크랜머가 1549년 《공동기도서》를 펴내며 루터교의 성찬 입장을 모호하게나마 지지했다가 1552년 견해를 수정하여 츠빙글리의 견해를 받아들였다. 이는 성공회가 독일보다는 스위스 남독일의 츠빙글리 계열의 신학자들이 영국으로 초청하여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 다만 1553년에 발표된 <42개조 신조>에서는 칼뱅의 영적 임재설을 수용하고 있다. 이후 엘리자베스 1세 치세에 <42개조 신조>를 'Via media'(중도의 길 혹은 중용)의 기치에 따라 수정한 <39개조 신조>가 발표되었고, 해당 교의는 다시 조정되어 이른바 '성사적 임재론'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성공회 신자들은 대체로《성공회 39개 신조》에서 알 수 있듯 화체설에 회의적이다.[141] 그러나 성공회는 신자 개개인이 성변화 입장을 취하는 것을 굳이 제재하지는 않는다. 사실 성체의 실체변화라는 설명에 회의적일 뿐이지 천주교/정교회의 성변화의 본질적인 맥락(real presence, 현존)을 공유한다고 보는 성직자와 신자들도 많다. 말 그대로 성체와 보혈 안에 주님이 현존하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용은 성공회(영국국교회)의 역사에 기인한다. 종교개혁 이전부터 14세기 롤라드파와 존 위클리프가 주도하여 화체설을 부인하여 헨리 5세 시기 극심한 탄압을 받았으며, 16세기 들어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10여년전부터 이러한 운동이 잉글랜드 교회에서 다시 살아났었다. 헨리 8세 시절 로마교회와의 단절을 선언했음에도 가톨릭 성향에 기운 헨리 8세는 성변화를 부인한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신학자들을 화형으로 태워죽였고, 메리 1세 시절에도 개신교도들을 색출하여 탄압할 때 성체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는 이들을 잡아 넣었고, 이에 따라 성변화를 부인하는 개혁주의자(청교도)들이 "성변화는 빵을 섬기는 우상숭배"라고 반발하였다. 이후 엘리자베스 여왕 이후 정권교체가 이루어지자 이때는 도리어 가톨릭 성향의 신자들을 탄압 당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이유 때문에 훗날 갈등에 대한 반성과 상호간의 화합을 위해 교회 내에서 받아들일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개인의 신앙에 관해서 존중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천주교 영성체와 차이점은, 천주교는 통상적으로는 평신도에게 성체만 주지만(단형 영성체) 성공회에서는 정교회와 마찬가지로 성체와 보혈을 모두 준다.(양형 영성체) 다만 정교회와 다른 점이, 성공회의 양형 영성체의 방법은 받은 성체를 포도주가 담긴 잔에 찍어둔 다음에 먹어도 되고, 받은 성체를 먹은 뒤 성작 앞에가서 성작을 들고 성혈을 조금 마실 수 있다.[142] 그리고 사제가 성체와 보혈을 찍어서 입으로 영하게 할 수도 있다.

대한성공회성가수녀회수녀들이 만든 제병(祭餠)과 포도주로 성찬의 전례를 행한다.[143] 천주교와 달리 백포도주가 아닌 적포도주를 사용한다.

성공회에도 환자 영성체에 관한 지침이 존재한다. 실제로 몸이 아파 감사성찬례에 참여하지 못하는 신자의 요청이 있으면, 사제가 주일 감사성찬례 후에 그 신자의 집으로 찾아가 성찬의 전례를 하기도 한다. 성변화를 받아들이는 천주교는 성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서 환자 영성체를 신학적으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지만, 공동체의 경험을 중시하는 성공회에서는 가급적 감사성찬례에서 성체를 영해야 제대로 된 영성체라는 신학적 입장을 보이기 때문.[144]

모령성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영성체 참여를 지나치게 주저하는 태도에 대해 성공회는 대체적으로 부정적으로 본다.[145] 오히려 성체성사 참여에 결격 사유가 없는 신자가 고의적으로 성찬례에 참여하길 거부하는 것이 독성의 위험이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천주교에서는 가급적 죄가 하나라도 없는 상태에서 영성체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는 반면에, 대한성공회의 사실상 표준[146] 교리서인 <신앙의 개요>에 따르면 인간 모두는 죄인이고 그 모자람을 채우기 위해 영성체가 더욱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하루에 여러 번 성찬례에 참석하게 될 경우에, (천주교 신자들처럼 처음 한두 번만 영성체하고 그 다음 성찬례에서는 보고만 있기보다는) 매번 영성체에 참여할 것을 강력히 권장한다.[147] 사실 그런 권면이 아니더라도 성공회 신자들은 영성체를 대부분 영한다.

의외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천주교 미사의 영성체를 성공회의 감사성찬례로 대신해도 되냐"고 천주교 관련 사이트에서 문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한성공회가 고교회파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가톨릭과 매우 비슷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성공회는 성변화를 믿지 않기 때문[148]이기도 하지만 성공회의 서품양식이 천주교 입장에서 문제 있어서 무효하다고 보기에, 천주교에서는 성공회의 영성체를 신학적으로 무효하다고 주장한다.[149] 천주교 교회법상으로 원칙적으로는 천주교 신자가 성공회의 감사성찬례를 포함한 다른 교단의 성만찬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가톨릭 『교회법』 844조 2항).[150] 천주교·정교회 사제 출신 성공회 사제가 집전한 성공회 영성체는 유효하지만, 천주교의 주장에 따르면 불법적이라 특수한 상황에서만 참여가 허용된 것이다. 하지만 현대 천주교 신자들이 다른 교단이나 다른 종교에 대한 이해 차원에서 타 교파나 종교의 예식에 참관하는 경우[151]도 있기에 보수적인 신앙관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교회일치운동의 일환으로서 성공회 감사성찬례를 비롯한 다른 개신교 교단의 예배에 참여하는 것을 굳이 말리지 않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천주교 미사/영성체를 대신할 생각으로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천주교와의 신학적 차이 때문에 가톨릭에서 하는 성체조배, 성체행렬 같은 의식은 일반적이지 않다. 고교회파에서나 특별 축일에 가끔 하는 정도. 대한성공회의 경우 90년대 이후 성목요일 성체조배(성체수직)[152]을 제외하고는 위의 전통들이 소멸되었다.

7.4.4. 타교파 신자의 영성체 허용

성공회는 교파에 상관없이 세례성사를 받았다면 '이론상' 누구나 성체를 영할 수 있다.[153] 신자가 아닌, 천주교나 정교회 신자, 타 개신교단 신자가 성공회 성당에서 성체를 영하는 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것.[154][155]

이에 따라 대한성공회장로회(예장통합, 기장) 및 감리회와 교환 예배가 가능하고, 캐나다와 미국의 성공회가 루터교회복고 가톨릭교회와 완전한 상통(full communion)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현 대한성공회를 기준으로 타교파 신자들의 영성체를 허용하지만 언급되었다시피 천주교와 정교회는 성공회의 성체를 성체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성공회 교리가 무시당한다고 성공회 신자들이 불편해하는 경우도 있을 뿐만 아니라 천주교와 정교회의 교리상으로도 성공회에서의 영성체는 적법하지 않기 때문에 천주교 미사와 정교회의 성찬예배가 아닌 이상 성체를 영하면 안되는 것이 맞다.

개신교 신자들의 경우 제약과 제한이 없지만 성공회는 성체 성혈을 영하는 예절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영성체의 예절을 익히고 성체에 대한 공경을 갖추어야 한다.". 영성체는 집단적 행위이므로 앞사람이 하는 모습들을 유심히 관찰하여 예절을 익히는 것이 도움이 된다. 아니면 천주교 신앙 경험이 있다면 천주교식 예절대로 성체를 영해도 별 문제는 없다.

만일 자신이 성공회 감사성찬례(미사)에 처음 나온다면, 주변의 신자들이나 새 신자 도우미 등에게 영성체 모시는 법을 물어 보면 된다. 장로회와의 성공회 교환예배 때는 성공회 사제가 장로회 교인들한테 "왼손을 위로 가게 손을 모은 상태에서 성체를 모시라"는 식으로 약식 예절을 공지하기도 한다.

8. 여담

8.1. 가톨릭: 성체 거양 때의 고백과 대사

파일:external/liturgyguy.files.wordpress.com/img_0424.jpg
미사 성찬 전례의 감사 기도 중 사제는 축성된 제병과 제주(포도주), 즉 성체와 성혈을 들어 보이는데, 이를 성체 거양(聖體 擧楊)이라고 한다. 트리엔트 미사에서는 이때 성체·성혈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Dominus meus et Deus meus)'[156]이라고 고백하였다.

이렇게 고백하면 7년 부분 대사, 매일 미사에 참례하여 성체 거양 시 아래와 같이 고백하고 고해성사, 영성체, 교황의 뜻에 따라 기도하면 한 주에 한 번 전대사가 주어진다고는 하는데, 정확한 출처는 명확치 않다.

원래 이 규정은 성체 성혈을 사제가 들어올릴 때 성체신심이 과한 신자들이 쳐다볼 수도 없다고 고개를 더욱 수그리기에, 성체성혈을 바라보며 기도하라고 만든 대사 규정이다. 사실 성체·성혈을 들어올리는 의식 자체가 신자들이 바라보게 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고. 현행 바오로 미사에서는 대사 규정이 무효화된 것은 아니지만, 조용히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흠숭하는 기도를 올리는 것을 올바른 참례 예절로 여긴다.

8.2. 감실이 없는 공간에서 거행된 미사 도중 제병이 남는다면?

일반 가정집에서 열리는 가정미사, 펜션 등에서 열리는 주일학교나 청년회 캠프 미사, 성당 내 모임의 야외 친목행사 도중 열리는 미사 등 감실이 없는 성전 이외 공간에서 미사를 거행할 때 신자들 모두에게 성체를 분배한 뒤에도 제병이 남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는 사제가 남은 제병을 모두 영하거나 대열의 가장 마지막에 서서 성체를 영하는 신자에게 몰아주고 그 자리에서 영하도록 한다. 어쨌든 현장에 감실이 없기 때문에 남은 제병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없으므로 이날 미사 때 분배하기 위해 챙겨온 제병 중 축성된 제병은 모두 남김없이 영해야 한다.

그래서 이러한 현상을 최대한 나오지 않도록 하고자 일정 중 미사가 포함된 야외 행사를 추진할 경우 주최측에서 인원 파악에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있다. 성체 제병이 남으면 난감해지므로 애초에 인원 파악을 확실히 해서 제병이 남지 않도록 하는 셈이다.

8.3. 자투리 제병의 활용

가르멜 수도회에서 동그란 제병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부스러기를[157] 모아다 만드는 과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자투리에 달걀과 설탕을 가미해 버무린 후 오븐에 구워 일종의 기념품 성격의 쿠키를 만든 것이라고 보면 되는데, 미사 중 먹는 진짜 제병과 모양이 다른 것 외에 맛도 100% 똑같지는 않다. 실제 면병은 더 맛이 없고 눅눅한 느낌. 만약 제병과 같은 것을 시중에서 판매한다면 절대 안 팔릴 맛이다. 원래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니까

참고로 전술한 것처럼 제병과 포도주는 오직 축성기도를 통하여 사제가 축성하여야 비로소 성체와 성혈이 되는 것이므로, 자투리를 쿠키로 가공+비신자가 먹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축성 안 된 제병은 그저 제병(과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비공식적인 루트이지만, 제병을 제작하고 있는 교회라면 성직자를 통해서 우연히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정교회의 경우, 성찬예배에 사용하는 제병이 가톨릭이나 성공회 등 서방 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은 교회와 달리 효모가 들어간 빵을 사용한다. 성찬예배가 끝나고 모든 회중들에게 축성되었지만 신학적으로 성체가 아닌 부분으로서 영성체에 사용되지 않은 부분의 제병을 나누어 주는데, 이를 안디드로라고 한다. 이 자투리를 받을 때에는, 비록 그것이 성체는 아니더라도 봉헌물로서 축성된 빵임을 인지하고 함부로 다루면 안되며, 위로받는 마음으로 먹어야 한다.

8.4. 성체의 맛

가톨릭성공회 등 서방 교회의 제병은 곡물로 만든 얇은 뻥튀기 같은 맛이 난다. 과자 중에서는 웨이퍼가 비슷한 맛을 낸다. 시중에 판매되는 과자들 중 가장 유명한 웨이퍼라 하면 웨하스라고 할 수 있는데, 이건 중간중간에 크림이 묻어 있어 웨이퍼 자체의 맛을 느끼기는 힘들 것이다. [158] 좀 더 크림의 영향을 느끼지 않고자 하면 비슷한 웨하스류 과자인 쵸코하임의 과자 테두리 부분을 먹어보자. 다만 느끼는것 이상으로 감미가 많이 된 시중의 웨하스와 달리 성체는 순수한 밀가루와 물로 만들기 때문에 훨씬 맛이 심심하다.

정교회의 성체는 서방 교회와 달리 효모로 발효시킨 빵을 사용하므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빵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다만 한국에서 흔히 먹는 간식용 빵이라기 보다는, 서구권의 식사용 빵에 더 가까운 것이다. 정교회의 영성체에서는 서방 교회와 달리 성작 안에 포도주에 잠긴 성체를 사제가 스푼으로 떠서 먹여주는 방식을 취하기에, 빵의 맛만을 느끼고 싶다면 성찬예배가 끝난 뒤 위로품으로 나눠주는 축성된, 그러나 성체는 아닌 빵 조각인 안디드로를 먹을 수 있다.

9. 창작물에서의 성체성사



[1] 『로마 미사 경본』 622~623면, 「미사 통상문」 110~112항, 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17.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2] 유스티누스, 『첫째 호교론 • 둘째 호교론 • 유대인 트리폰과의 대화』, 안소근 옮김 (분도출판사, 2024), 104[3] 이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모든 그리스도교 교단들에서 예수를 제물(파스카 양)로 한 '제사'로 해석되고, 구약의 파스카 예식에는 먹는 것도 엄연히 포함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제삿밥'을 먹는 것도 파스카 '제사'의 뺄 수 없는 절차이고, 예수가 바로 그 '제삿밥'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성만찬을 적게 하는 목사라도 이론상으로는 이 '제삿밥'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4] 발터 카스퍼Walter Kasper 추기경, 『일치의 성사: 성체성사와 교회』Sakrament det Einheit: Eucharistie und Kirch, 조규만 조규홍 옮김, 분도출판사, 2013, p.17.[5] 가톨릭식 영성체는 신자가 무릎을 꿇으면 성직자가 입 안에 넣어주는 것이 원칙이다. 한국 천주교에서는 마치 손영성체만이 원칙인 것처럼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이는 잘못이다. 신자들은 언제든지 사제에게 입영성체를 요구할 수 있다(경신성사성 2004년 교령 「구원의 성사」 92항). 자세한 내용은 미사/성찬 전례 문서의 올바른 영성체 규정 문단 참조.[6] 다만, 가톨릭-정교회 교리상으론 '식인'이란 말이 또 틀린 건 아니다. 물론 '식인'이 시체를 먹는다는 의미라면 성찬은 식인이 아니지만, '사람을 먹는다'는 한자말 어근풀이상으로는 食人으로 볼 순 있다. 어디까지나 한자말 풀이에서는 말이다.[7] 예를 들어 드니 디드로의 백과전서에서는 식인 풍습 문서가 성체성사로 리다이렉트되어 있다. 이것이 이 도서가 가톨릭 교회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는 것에 기여했을 것이다.[8] 다만 온건파, 혹은 중도적인 개신교 종파에서도 성체성사를 희생제사로 보는 관점을 십자가의 단회성 대속을 부정하는 오류로 비판한다.참조 히브리서도 참조해볼 것.[9] 그리고, 안티 기독교 사이에도 식인 풍습과 다를 게 없다고 힐난받는다. 대표적으로 국내 만화 <레이더스>가 있는데, 작가 박진준이 안티 기독교인을 자처하며 만화 내용도 예수의 성체성혈이 말그대로 산자의 살과 피라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작중에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비틀어 좀비가 된 12사도들이 예수를 뜯어먹는 카니발리즘 연회로 그려낸 장면은 지금 봐도 그로테스크하다.[10] 대표적인 예가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아직 침례를 받지 않은 사람도 성찬을 받아먹을 수 있다.[11] 미국 장로회(PCUSA), 미국 복음주의 루터회(ELCA), 미국 연합감리교회(UMC) 등.[12] 어디에서 세례를 받았는지가 아니라, 세례 후 현재 어느 신앙을 믿고 있는지가 결정적인 조건이다. 즉 장로교에서 세례를 받았더라도 현재 가톨릭 신앙을 믿고 있다면, 그리고 가톨릭으로 일치하는 적법한 절차를 이미 거쳤다면, 가톨릭 영성체가 가능하다. 한국 가톨릭 사목현장의 경우 개신교 세례 입증 조건을 더 까다롭게 취급하지만, 이건 현장 사목환경의 문제이다. 교리상으론 '어디서 세례를 받았냐'가 아니라 '루터교에서 받은 세례이든 장로교에서 받은 세례이든 아무튼 지금 가톨릭 신앙에 일치된 상태인가'가 더 중요하다. 정교회에서도 '이단자의 세례도 세례다'는 원칙을 공유한다.[13] 기도문에 '성찬례의 존재를 외부에 알리지 않겠다'는 내용도 들어간다[14] 다만 가톨릭-정교회간의 성찬 교류는 꽤 복잡하다. 서로를 개신교보다는 가까운 상대로 보고, 따라서 성찬도 상대적으로 더 공유하지만 온전한 공유는 아니며, 정교회가 여기서 더 상호 성찬 교류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15] 가톨릭에서는 "교회의 일치를 해치거나, 오류에 대한 공식적 동의, 신앙의 일탈, 악표양, 무차별주의의 위험성을 내포하는 성사 교류는 하느님 법으로 금지된다."(제2차바티칸공의회 동방교회교령 26)고 공식적으로 선포했으며, 정교회에서 '성사 교류'는 '같은 교회'의 유의어이다.
약간 재밌는 비유로, 가톨릭 평신도 신학자인 Klaus Berger는 친교 없는 교단끼리의 공동영성체를 '결혼 없는 섹스'에 비유했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사는 데 성관계가 가장 친밀한 사항이듯이, 성찬식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하는 데 가장 친밀한 행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로 일치하는 성찬식을 시작할 수는 없다. 서로 진정으로 하나가 되고 양쪽의 제도와 권위를 인정할 때 비로소 함께 성찬례를 거행하는 것이 각자 이룩한 공동체를 표현하는 최상의 방법일 것이다. 즉 함께 성찬식을 거행하는 것은 일치운동 끝 단계에 이르러 할 일이지, 처음부터 할 일이 아니다."(클라우스 베르거, 《예수》 제2권, 전헌호 옮김, 성바오로, 2013, pp.304-305)
[16] 개신교에서도 모령성체의 개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커다란 죄(罪)에 놓인 사람은 성찬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는 구절처럼 성공회 39개 신조장로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등에서도 비슷한 것이 규정되어 있다. 모령성체의 개념 자체가 성경(고린도전서 11장)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 따라서 개신교 성찬식/성찬예배 전반부에 회개기도 절차가 들어있다. 다만 개신교의 성찬론은 정교회, 가톨릭과 다르기에 그 의미가 다르긴 하다.[17] 성체모독과는 달리 이는 고해성사를 통해 용서받으면 된다. 예비신자의 경우 세례성사를 통해 용서된다.[18] 그러므로 부당하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그분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니 각 사람은 자신을 돌이켜보고 나서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셔야 합니다. 주님의 몸을 분별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가톨릭 성경)[19]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고해성사를 성체성사 참여의 필수조건으로 보지는 않지만,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고해성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성체성사 참여 자격이 없다.[20] 십계명교회법을 의도적으로 어긴 죄로서 지옥에 떨어지는 죄악들. 예를 들어 고의적인 강도나 살인, 도둑질, 주일미사와 의무 대축일 미사에 고의로 빠지고 냉담하는 행위, 점을 보는 등의 미신행위, 혼전 성관계자위행위, 불륜, 간통, 낙태, 동성 간 성행위를 포함한 성적 간음죄, 피임 혹은 피임을 찬성하는 언행 등. 다만 어쩔 수 없이 미사에 빠졌다면 고해성사 대신 묵주기도 5단과 선행, 성경읽기 등으로 대신할 수 있다... 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군인의 경우 예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고, 그 외에는 다음 미사 참례 전에 (정확히 말해 성체성사에 참여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고해성사를 봐야한다.[21] 대표적으로 혼인성사/견진성사를 앞둔 신자들에게 신부가 혼인성사/견진성사에 앞서 고해성사를 먼저 보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22] 다만 일부 소죄의 경우 고해 중에 신부가 "그건 굳이 고해 안 해도 됩니다"라며 다그치는 경우가 있긴 하다. 이건 소죄 같은 소소한 것은 별로 고해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신자 개인이 강박적으로 소죄까지 신경쓰다가 자칫 지쳐서 교회와 멀어지거나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경계하는 차원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이 많은 신자들의 경우 이렇게 세심증에 빠지는 경우가 적지만은 않은데 가톨릭에서는 이처럼 죄를 범하는 것을 지나치게 경계하다 우울감이나 불안의식에 휩싸이는 것도 결코 좋지 않게 보기 때문에, 본인이 이런 상태라면 주변 성직자나 수도자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도 좋다.#[23] 물과 삼위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경우. 물과 삼위 하느님(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 중 하나라도 아니라면 유효한 세례로 보지 않는다.[24] 심지어 개교회주의가 강하지 않은 일부 성공회 교회에서도.[25] 견진성사와 비슷하다[26] 단,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 미사지침에 따르면, 첫영성체를 하지 않은 어린이에게 성체 대신 사탕이나 과자류를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성체는 사탕이나 과자에 비교될 수 없는 것이므로, 그런 어린이들에게는 경외심을 가지고 성체를 모실 준비를 하도록 교육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상술했듯 어린이 미사 때는 그런 이유로 저학년 아이들에겐 가만히 묵상하라고 지도하며, 첫영성체를 앞두고 저게 무엇이구나를 깨닫게 한다.[27] 어린이 미사 때의 풍경을 예로 들자면, 성당 처음 간 초딩 1학년 이하의 꼬마들은 헌금할 때 "저거 돈 가져가라는 거야? 우와 예수님 대인배!"라는 생각으로 헌금 바구니에 손을 집어넣어 가져갔다가 주일학교 교사나 수녀한테 혼나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초등학교 저학년(1~3학년)까지는 선생님들이나 수녀들이 꼬마들한테 앉아 있으라고 지도한다. 1년마다 첫영성체 미사에 참례하면서 저게 무엇이구나 하는 것을 대충 감 잡는 게 보통.[28] 잘못 줄을 서는 경우가 아니라도, 알러지 등의 이유로 성체나 성혈을 영하지 못하는 경우도 이렇게 해도 된다.[29] 뮈스테리온(신비)은 '유한한 정신으로는 이성적으로 깨달을 수 없거나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진리' 혹은 '하느님 은총의 상징적 표지'(=성사)를 말한다.[30] 『로마 미사 경본』 631면, 「미사 통상문」 122항, 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17.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1] '현존'과 '임재'는 presence의 두 한국어 번역이다.[32] 개신교 신학자들은 '화체설'(化體說)이라고 하기도 한다. 가톨릭에서의 공식적인 용어는 '실체변화(實體變化)'이다. 용어 자체가 교파의 관점 및 해당 주제의 위상을 대표하기 때문에 신학자들은 용어 자체를 놓고 논쟁을 하기에 용어의 선택은 민감한 문제이다. 다만 개신교의 주된 입장은 성만찬 항목에서 설명하므로 여기에서는 가톨릭의 용어를 사용.[33]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에 의하면, 우유는 양(quantitas), 질(qualitas), 관계(relatio), 장소(ubi), 시간(quando), 자세(situs), 소유(habitus), 능동(actio), 수동(passio)이다. 성체성사의 경우 빵의 외형적 모습과 맛, 질감 등이 우유에 속한다. '우유' 개념에서 주의할 점은, 우유는 환술이나 가짜가 아니라 엄연히 존재자(ens, 有)라는 점이다. 곧, '빵의 모습을 한 몸'에서 아무튼 '빵의 모습'은 진짜이다. 그렇기에 성체성사에서 현대 물리학적 의미의 '물질'이 변화한다고 말하는 건 오해를 부를 수 있다. 현대 물리학적 의미의 '물질'은 우유에 기반한 개념이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질료'와 다르기 때문이다. 곧, 빵의 양, 빵의 질, 빵의 관계, 빵의 장소, 빵의 시간, 빵의 자세, 빵의 능동, 빵의 수동을 가진 것은 설령 '몸의 실체'라고 하더라도 현대 물리학적 의미에서는 '빵의 물질'이다. 물론 '물질'의 변화라는 것이, 그 '물질'의 실체(형상과 질료)가 변화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한에서, '물질'이 변화되었다고 할 수는 있다.
참고로 이 부분은 서양인들에게 정말 난해한 부분인데, 영어 substance와 프랑스어 substance는 라틴어 substantia(실체)가 어원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에는 (현대 물리학적 의미에서의) '물질'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Transubstantiation(실체변화)라는 말을 들은 언중은 자연스럽게 '물질변화'와 혼동하는 참사가 쉽게 일어난다. 다행히 한국어 '실체'는 누가 봐도 형이상학적 언어이기 때문에 이런 혼동의 여지가 적으나, 한국 개신교의 경우 영어권의 영향이 강한 반면 교부/스콜라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substance를 악의 없이 '물질'로 오역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하루 빨리 시정되어야 한다.
[34] '상징'이라는 키워드에 오해가 많은데, 이 키워드의 사용 자체는 가톨릭 교리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정통 스콜라 성사론에 반드시 필요한 표현이다. 애당초 성사(sacramentum)라는 말부터가 라틴어에선 '상징적 표지'란 의미이다. 스콜라학의 성사론에선 '실재(res)'와 '성사(sacramentum)'를 구분하는데, 가령 성체성사에서 빵과 포도주의 우유(accidens)가 sacramentum이다. 그리고 res는 몸과 피의 실체이며, sacramentum 은 res(몸과 피)를 겨냥하는 상징이다. 즉 눈 앞에 있는 빵과 포도주의 모습이 몸과 피를 상징한다는 점에선 가톨릭이든 츠빙글리이든 견해가 똑같다. 여기서 차이는, 가톨릭은 빵과 포도주의 모습 속에 몸과 피의 실체가 정말로 있다는 것이고, 츠빙글리는 이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희랍 교부들 및 이에 기반한 정교회 측 성사론도 근본적으론 '실체변화'와 같다. '실체변화'라는 용어는 라틴 스콜라학의 발명품이지만, 희랍 교부들은 성체가 완전히 몸과 피의 실재이면서도 동시에 상징이라고 플라톤적으로 표현하여, 라틴 스콜라학이 아리스토텔레스적 개념으로 설명하고자 한 것과 동일한 결론을 내렸다. 애당초 가톨릭의 트리엔트 공의회 역시도 라틴 스콜라학적인 개념으로서의 '실체변화' 자체를 믿을 교리로 고정한 것은 아니며, 따라서 실체와 우유라는 아리스토텔레스적 개념으로 설명하는 방식 자체를 교의적으로 믿을 필요까지는 없다. 다만 '실체변화'라는 설명이 가리키는 것이야말로 '믿을 교리'이고, 이것이 정교회와 완전히 똑같은 것이다.
[35] 말 그대로 성공회 고교회파 중에서도 일부가 성변화를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가톨릭·정교회로부터 성사의 유효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성체 신심의 문제가 아니라 성찬례를 거행하는 성직자의 자격의 문제와 교리논쟁의 문제이다. 가톨릭과 정교회는 성공회의 사도전승성례전의 유효성을 인정하지 않기에 성공회 성직자에게 성체, 성혈을 축성할 능력(유효성 관련)과 권한(합법성 관련)이 없다고 본다.[36] 정교회의 경우 '실체변화'라는 용어를 교의적으로 공인하지 않았다. 다만 정교회의 성체 교리가 가톨릭과 일치한다는 건 널리 인정되며, 일치 대화에서도 성체 교리로 논쟁하진 않는다. 가령, 아래에서 상세히 설명하듯, 희랍 교부인 예루살렘의 성 키릴로스는 성체를 빵이 아니라 '빵맛이 나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봤고, 성혈을 포도주가 아니라 '포도주맛이 나는 그리스도의 피'라고 봤다. 이는 현대 가톨릭에서 성체에 대해 교육하는 매우 전형적인 설명이기도 하다.[37] 성공회의 공식 입장. 실재적 임재설이라고도 한다. 성공회는 신자들이 성체성사에 대해 여기 소개된 실체변화부터 기념설까지, 어떤 입장을 취해도 모두 관용한다. 어쨌든, 공식 입장은 성사적 임재설이다.[38] 共在說. 마르틴 루터의 해석이다. 정작 루터교회에서는 공재설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공재설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톨릭에서 왔기 때문 실질적 임재설 혹은 실재설이라 부른다.[39] [Question 170] How do they that worthily communicate in the Lord's Supper feed upon the body and blood of Christ therein?
[Answer] As the body and blood of Christ are not corporally or carnally present in, with, or under the bread and wine in the Lord's Supper, and yet are spiritually present to the faith of the receiver, no less truly and really than the elements themselves are to their outward senses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70항
[40] 장로교 신자들도 헷갈리는 경우가 많은데, 장로교의 성만찬론은 단순 상징설이 아니며, '실재적 임재'(실제적 임재)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웨스터민스터 대요리문답에선 신체적으로corporally 임재하지 않을뿐 몸body은 실재로really 임재한다고 본다.[출처] 웨슬리의 성만찬, 김진두, http://m.kmc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289[42] 츠빙글리의 해석이다. '상징설'이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절충설'을 '상징설'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43] 침례회는 여러모로 가톨릭·정교회 등의 보편교회들과 대척점을 형성하는 교회로 보고있는데, 이렇듯 성찬론에 대해 침례회의 급진적인 성격도 이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44] 이는 미국에서 있었던 가톨릭-성공회 공동 선언을 근거로 한다: 「We affirm that Christ in the eucharist makes himself present sacramentally and truly when under the species of bread and wine these earthy realities are changed into the reality of his body and blood.」[성체 속에서 그리스도는 스스로를 성사적으로 그리고 참되게 현존케 하십니다. 이때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아래서 지상적 실재들이 그분의 몸과 피의 실재로 변화합니다] (〈Five Affirmations on the Eucharist as Sacrifice, Anglican-Roman Catholic Dialogue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45] 손희송 베네딕토 주교, "일곱성사, 하느님 은총의 표지",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1, 184~186p.[46] 애당초 '의미변화'와 '목적변화'라는 설명부터가 가톨릭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현대인에게 번역해주기 위해 등장한 것이다.[47] 엄밀히 말하면 이는 칼빈의 해석과는 구분되지만, 가톨릭의 교과서적 이론인 ‘실체변화’와 가장 직관적으로 구분되면서도 교육적으로 간단하기에 츠빙글리의 설명이 선호된다. 칼빈 역시도 초기에는 츠빙글리에 가까운 성만찬 신학을 가졌으나, 이후 루터에 가까워졌고, 이후에 다시 중간 지점으로 옮겨가면서 성만찬 신학을 발전시켰다. #[48] In the exposition of the Christian doctrine of redemption the word sacrifice has been used in two intimately associated ways. In the New Testament, sacrificial language refers primarily to the historical events of Christ's saving work for us. The tradition of the Church, as evidenced for example in its liturgies, used similar language to designate in the eucharistic celebration the anamnesis of this historical event. Therefore it is possible to say at the same time that there is only one unrepeatable sacrifice In the historical sense, but that the eucharist is a sacrifice in the sacramental sense, provided that it is clear that this is not a repetition of the historical sacrifice.[49] There is therefore one historical, unrepeatable sacrifice, offered once for all by Christ and accepted once for all by the Father. In the celebration of the memorial, Christ in the Holy Spirit unites his people with himself in a sacramental way so that the Church enters into the movement of his self-offering. In consequence, even though the Church is active in this celebration, this adds nothing to the efficacy of Christ's sacrifice upon the cross, because the action is itself the fruit of this sacrifice. The Church in celebrating the eucharist gives thanks for the gift of Christ's sacrifice and identifies itself with the will of Christ who has offered himself to the Father on behalf of all mankind.[50] Communion with Christ in the eucharist presupposes his true presence, effectually signified by qthe bread and wine which, in this mystery, become his body and blood.[51] We affirm that Christ in the eucharist makes himself present sacramentally and truly when under the species of bread and wine these earthy realities are changed into the reality of his body and blood.[52] 요한 13,1.[53] 마르 14,16.[54] 다만 초기에는 서방교회도 누룩 넣은 빵을 쓰다가, 8세기에 누룩의 유무여부는 교리상 중요하지 않다며 성체 부스러기를 흘리지 않는다는 실용적인 이유로 지금과 같은 제병을 쓰게 된 것이다. 15세기의 피렌체 공의회에서 누룩 없는 빵의 사용이 가톨릭 교리로 확정됐다. 유대에서 파스카 축일에 먹는 무교병과 가톨릭의 성찬에 쓰는 제병은 실제론 상당히 다르다. 참고로 성혈도 초기에는 적포도주였으나 잘못해서 흐르면 얼룩이 안 지워지기에 성혈 또한 실용적인 이유로 백포도주를 사용한다.[55] 루터회와 성공회는 제외한다. 이들 교파는 실체변화를 믿진 않지만 성찬식 때 축성 개념은 있기 때문. 이 둘은 가톨릭·정교회처럼 다른 빵이나 포도주스를 사용하지 않고 면병과 포도주를 사용한다. 루터회와 성공회는 한국의 개신교에서 소수 교파여서 낯설 수는 있겠지만 특이한 것은 아니다. 세계 개신교에서는 오히려 저 교파들이 장로회나 감리회 이상의 메이저 교파이다.[56] 이에 대해 예수께서 직접 명하신 전례를 너무 소홀히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물론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개신교들의 반성이 필요하긴 하지만, 이는 교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에 기인한다. 가톨릭·정교회·성공회 및 고교회파 루터교와 같은 주교제 교회들은 (주교좌교회가 아닌 일반적인 교회라면) 주일미사/예배에 참례하는 신자 수가 100명 내외이다. 이에 반해, 개교회주의 개신교 교회는 조금만 커져도 출석 신자가 천 명을 넘어가게 되고, 지방 중소도시들에도 수천 명이 출석하는 교회들이 몇개씩 있으니, 매주 성찬례를 하는 게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개신교 교회들이 분기 혹은 반기에 한 번 정도 성찬례를 거행하는 것은, 안하는 게 아니라 못 지키고 있는 것. 개신교 내에서도 원래는 매주 성찬례를 하는 게 맞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다.[57] 대죄를 고해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걸 받아모시면 용서받겠지'라는 생각으로 성체를 영하는 경우.[58] 개인이 사사로이 성체를 집에 보관하는 것은 교회법에서 금지하고 있다. 성체조배실에 비치된 성체조차도 교구장의 허가를 받아서 그 보관이 허락된 것이다.[59] 개신교에서도 성체와 성혈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결코 좋게 보지 않는다. 가톨릭, 정교회에 비해서는 덜 민감한 주제이긴 하지만, 빵과 포도주는 최소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하며, 교단에 따라서는(특히 성공회, 루터교회) 예수 그리스도가 현존한다고 본다. 설령 목사가 츠빙글리처럼 성찬을 단순 상징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목사 면전에서 예수 욕하기 vs 사제 면전에서 예수 폭행하기 정도의 차이이지, 성찬 모독을 악행으로 보는 건 똑같다. 가톨릭, 정교회에서도 개신교 성찬식에 대한 모독을 성체 모독으로 보지는 않지만 독성죄(신성모독)에 해당하는 행위로 본다. 다만 그 성찬식을 집전한 이가 가톨릭 사제 출신이었다면 문제는 달라질 수 있다. 아래 문단 참조.[60] 대한성공회의 경우 최석진 요셉 신부, 구균하 라우렌시오 신부가 이에 해당(최 신부는 천주교 의정부교구, 구 신부는 천주교 부산교구 소속이었다). 이들 신부가 성공회 감사성찬례에서 축성한 면병은, 가톨릭 입장에서도 '불법적이지만 유효한 성체'인 셈.[61] 저교회 루터교 예배에는 성찬축성 예식이 없다.[62] 가톨릭의 감사기도에 해당[63] 가톨릭의 입장에서는 크랜머가 임재설 성찬론에 따라 축성양식을 비틀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64] 그래서 성공회-장로회 간 교환예배에서 장로회 목사가 집전을 주관해도 성찬예식때 옆에서 성공회 사제가 축성문을 외는 식으로 보조하는 이유다.[65] 한국 가톨릭에서 진보적 성향이 가장 뚜렷한 신부로 '길 위의 신부'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문규현 바오로 신부와는 친형제 관계로 문정현 바르톨로메오 신부가 형이다.[66] 게다가 경찰은 문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던 간이 제대를 발로 밟아 부쉈다. 가톨릭에서 제대는 예수를 상징한다. 공권력이 예수의 몸을 구타한 것이나 다름없는 행동이었던 셈.[67] 사실 대한민국은 엄연히 국교가 존재하지 않고 종교의 자유를 보호하는 세속주의를 헌법에 명시한 국가이기 때문에 성체를 훼손한 것이 특별히 법적으로 중한 잘못으로 간주되지는 않으나, 여론을 의식해 도의적인 차원에서 사과 등 추가 조치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68] 이후 성주군에서 사드 배치 반대 집회에 참여한 원불교 신자들과의 충돌이 발생하자, 경찰은 종교인들이 관련된 대규모 집회시위에 정복을 착용한 '종교CARE팀'을 편성해 운용하고 있다.[69] 현재 본 링크를 타고 가면 삭제되었다고 뜬다.[70] 비신자를 위해 쉽게 말하자면, 사도좌 = 교황이라 이해해도 큰 무리는 아니다.[71] Institutio Generalis Missalis Romani (IGMR) 2011 기준[72] 한편 대한성공회를 포함한 여러 성공회 관구의 경우 intinction이라 하면 신자가 직접 성체를 손에 들고 성혈에 찍어 먹는 전례로 이해한다. 가톨릭에서는 이 방식이 불법이다. 성공회의 존재감이 큰 북미권의 가톨릭에서는 intinction할 때 신자가 직접 성혈에 담그려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에 주의시키는 경우가 많다.미국가톨릭주교회의록[73] 은이나 금으로 으로 만든 전례용 관. 스타벅스에서 파는 다회용 빨대랑 비슷하다[74] 23ho kyrios Iēsous en tēi nykti hēi paredideto elaben arton 24kai eucharistēsas eklasen kai eipen· touto mou estin to sōma to hyper hymōn· touto poieite eis tēn emēn anamnēsin. 25hōsautōs kai to potērion meta to deipnēsai legōn· touto to potērion hē kainē diathēkē estin en tōi emōi haimati· touto poieite, hosakis ean pinēte, eis tēn emēn anamnēsin. 26hosakis gar ean esthiēte ton arton touton kai to potērion pinēte, ton thanaton tou kyriou katangellete achri hou elthēi.[75] egō eimi ho artos tēs zōēs· ho erchomenos pros eme ou mē peinasēi kai ho pisteuōn eis eme ou mē dipsēsei pōpote.[76] 전자의 전승이 희랍적이라면, 후자의 전승은 히브리적이다.[77] (발췌자 주석) λαβὼν ἄρτον εὐλογήσας[labōn arton eulogēsas] -마르 14,22[78] (발췌자 주석) λαβὼν ἄρτον εὐχαριστήσας[labōn arton eucharistēsas] -루카 22,19[79] 손희송, 『일곱 성사, 하느님 은총의 표지』,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1, p.144.[80] (번역자 주석) 100년경에는 먼저 회식(아가페=애찬)을 하고, 이어서 미사(성찬)를 드린 것 같다.[81] εὐχαριστίας[82] (번역자 주석) 번안하면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종 다윗에게 약속하셨었고 아버지의 종 예수를 거쳐 계시하신 거룩한 포도나무를 두고 우리는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D. Dibelius). "거룩한 포도나무"는 병핸문들(9,3; 10,2.3)을 눈여겨보건대 구원을 가리키는 은유이다.[83] εὐχαριστήσατε[84] θυσία[85] "디다케의 성찬예식에 대한 불분명함은 다양한 해석을 낳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에게 인정되고 있는 해석은 이 기도가 성찬예식에서 행해졌다는 것이다."(황훈식, 「고대교회 성찬기도의 역사」, 『신학과 선교』, 2018, 55p.)[86] 바울로는 성체성혈을 "영적 양식" 및 "영적 음료"(1고린 10,3-4)라 말한다.[87] 이어진, 「디다케 9-10장의 성만찬 연구」, 『장신논단』, 2016, 193p.[88] 『로마 미사 경본』 619면, 「미사 통상문」 105항, 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17.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89] 『로마 미사 경본』 624면, 「미사 통상문」 113항, 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17.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90] 『로마 미사 경본』 631면, 「미사 통상문」 122항, 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17.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91] θυσιαστήριον[92] 유스티누스, 『첫째 호교론 • 둘째 호교론 • 유대인 트리폰과의 대화』, 안소근 옮김 (분도출판사, 2024), 104[93] (발췌자 주석) 출애굽기 25,23-30, 레위기 24,5-9의 빵을 말한다. 한국어 성경에서는 제사빵(가톨릭 새번역), 진설병(개역개정)으로 번역한다. 영어권의 경우 킹제임스성경 및 가톨릭 번역들은 showbread로 번역하는데(KJV, JB, NAB), 재미있게도 현대 개신교 성경들 및 공동번역들은 ‘현존의 빵’Bread of the Presence으로 번역한다.(NIV, NLT, ESV, RSV, NRSV) 히브리어lehem ha panim를 직역하면 ‘얼굴의 빵’이기 때문에 개신교 쪽이 더 올바른 번역이다.[94] (2) Once at Cana in Galilee He changed water into wine by His sovereign will; is it not credible, then, that He changed wine into blood? ...... (5) The Old Covenant had its loaves of proposition, but they, as belonging to the Covenant, have come to an end. The New Covenant has its heavenly bread and cup of salvation, to sanctify both body and soul. For as the bread is for the body, the Word suits the soul. (6) Do not then think of the elements as bare bread and wine; they are, according to the Lord’s declaration, the Body and Blood of Christ. Though sense suggests the contrary, let faith be your stay. Instead of judging the matter by taste, let faith give you an unwavering confidence that you have been privileged to receive the Body and Blood of Christ. ...... (9) In this Knowledge, and in the firm conviction that the bread which is seen is not bread, though it is bread to the taste, but the Body of Christ, and that the visible wine is not wine, though taste will have it so, but the Blood of Christ; and that it was of this that David sang of old: “Bread strengthens the heart of man, soon his face glistens joyously with oil”,(Ps. 103[104].15, Sept.) strengthen your heart, partaking of this Bread as spiritual, and make cheerful the face of your soul.[95] Mystagōgikai katēchēseis[96] 《The Works of Saint Cyril of Jerusalem》 Volume 2, Leop P. McCauley, S.J., Chestnut Hill, Anthony A. Stephenson 번역, 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ress, 1970, pp.182-186으로부터 중역. 여기서 다른 영어 번역도 볼 수 있다. 본문의 희랍어 표기는 원문에 따라 발췌자가 적은 것이다.[97] "According to Cyril this Real Presence is brought about by a changing of the substances of the elements (μεταΒάλλεσθαι) and thus he is the first theologian to interpret this transformation in the sense of a transsubstantiation."(Johannes Quasten, 《Patrology》 Volume 3, Newman, 1960, p.375.)[98] 『성경』, 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05).[99]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278항.[100] 세례를 안 받았으면 고해성사를 볼 수 없으니[101] 판공성사 도중 내무서원들이 들이닥쳐 신도들이 신부를 에워싸고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신부가 감실을 열어 자신을 에워싼 사람들에게 성체를 영해준 다음 스스로 연행된 평양 대신리성당 주임이던 박용옥 디모테오 신부의 일화가 있다.[102] 가톨릭과 성공회의 연합 미사가 불가능한 근거.[103] 참고로 카스퍼 추기경은 반개신교와는 거리가 매우 멀며, 오히려 가톨릭 내 수구파들의 증오를 받을 정도로 진보적인 추기경이다. 그런 카스퍼 추기경조차도 다른 교단과의 성찬 공유는 단호하게 거부할 정도이니, 나머지 신학자들의 의견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104] 반대로 보수성향의 개신교에서도 가톨릭의 영세를 인정하지 않는다. 성경적 그리스도교가 아닌 아예 다른 종교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105]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펴낸 <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 책자에서도 해당 지침을 언급(84쪽)하고 있다.[106] 사도적 보편교회의 교리를 그대로 유지하지만, 교황의 교도권을 따르지 않아 가톨릭 교회와 갈라진 집단. 정교회나 러시아 정교회가 여기에 속한다.[107] 4대 세계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교리를 따르는 교회들(예컨대 오리엔트 정교회), 교황권에 대항하고 종교개혁으로 가톨릭 교회에서 독립한 교파들 (대표적으로 성공회를 비롯한 개신교)이 여기에 해당된다.[108] 가톨릭 미사 참례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거나 죽을 위험에 있는 경우[109] 나머지 성공회 사제가 집전하는 감사성찬례는 나머지 개신교 성찬예배와 동급으로 취급[110] 개신교 신자가 해당 교회에서 영성체를 하려는 경우와 다르게 원천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참여 조건이 좀더 많이 까다로운 것이지.[111] 금육금식 및 공심재 규정, 현대 가톨릭에서는 대죄가 아닌 일부 대죄 등[112] 다만 더 두껍고, 성혈과 함께 신부가 성체를 떼어서 나눠준다.[113] 다만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슈퍼에서 파는 드라이이스트같이 준비된 누룩을 사용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전통적인 방법대로 반죽을 미리 만들어서 신맛이 날 때까지 1주일 동안 숙성시켜 자연스럽게 누룩이 들어간 밑반죽을 이용해서 제병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제병을 만들 때 밑반죽에 밀가루와 물을 섞고 다시 그중 일부를 떼어 다음 성체를 위한 밑반죽으로 쓴다. 소금은 들어가지 않는다.[114] 성모 마리아, 12사도, 산 이, 죽은 이 모두[115] '코르반'은 하느님께 바친 것는 뜻의 히브리어 내지 아람어에서 유래하였다.(마르코 7,11 참조)[116] 단, 성직자단은 따로 영한다.[117] 정교회 한국대교구도 그리스 방식으로 성체용 빵을 만든다.[118] 현대 그리스어로는 안디도로(Αντίδωρο)라고 부른다.[119] 성체를 성체조배실에 모셔두려면 교구장 명의의 허가가 필요하며, 실제로 성체조배실에 교구장 명의의 허가증이 비치되어 있다.[120] 이콘 파괴 논쟁에서도 이 성체, 성혈에 관한 논쟁이 곁들여지긴 했는데, 당시 이콘 파괴론자들은 하느님의 모습을 직접 상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성체와 성혈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콘 공경론자들은 성체와 성혈이 참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이므로 이를 상징처럼 여기는 것은 실체변화를 부정한다고 파괴론자들의 주장을 역으로 공격했다.[121] 성공회도 비슷한 입장이다.[122] 오븐이 발명되기 전인 19세기 후반까지는 화덕을 썼다.[123] 다만 예장통합, 기장, 기감과 같은 에큐메니컬 교단 내 전례에 관심이 많은 일부 부류를 중심으로 왼손이 위로 가게 성찬을 영하는 예절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124] 다른 하나는 예정설 문제.[125] 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성찬은 십자가 사건과 때놓을 수 없는 관계로서 예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몸과 피를 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확증하며 약속해주는 성례전으로서 예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실재적인 육적 제물이 되어 희생을 하신 것 처럼 성찬의 빵과 포도주도 실재적인 육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루터교 입장이다.[126] (발췌자 주석) 루터교, 성공회, 스위스 개혁주의처럼 공권력(국왕, 제후, 시의회 등)이 주도하는 종교개혁을 말한다.[127] 물로 받았고, 삼위일체의 이름이 예식문에 들어가있으면 된다.[128] 실제로는 천주교 출신자가 천주교 방식대로 영해도 문제삼지는 않는다. 성체 가루까지 신경쓸 정도로 천주교에서 성체를 매우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을 성공회에서도 인식하고 있기 때문.[129] 제대에 무릎을 꿇고 있다가 사제로부터 성체와 보혈을 모시는 것[130] 찰스3세 대관식 감사성찬례에서도 성공회 주교들과 국왕 부부가 그렇게 보혈을 영했다.[131] intinction이 병균의 전염위험을 높인다는 연구결과에 따른 것이다. 빵이 병균으로 오염되었을 때 잔에 담그는 행위를 통해 병균이 더 퍼진다는 논리다.#[132] 특히 대한성공회의 경우는 감사성찬례를 드리면서 성찬의 전례가 빠지는 경우가 당연하게도 없다. 주일에 드리는 감사성찬례는 물론이고, 주중에 드리는 감사성찬례에서도 성체성사를 한다. 다만, 성공회에서는 예배를 전례에 따라 몇가지의 형식으로 정형화해놓았는데, 주일 감사성찬례가 아니라면 비교적 간단한 형식으로 예배를 드리기도 한다. 해외의 일부 저교회적 성향을 띄는 성당에서는 성체성사 시행 빈도수 측면에서 다소 소홀히하는 경우가 없진 않다.[133] 단, 세계성공회 공동체에서는 알코올중독 등의 문제나 스스로의 금주 혹은 미성년자의 영성체를 위해 포도주스를 따로 준비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영미권의 경우는 글루텐 불내증 문제 때문에 gluten-free 성체를 따로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영미권의 저교회파에서는 바게트 빵을 나누기도 한다.[134] 따라서 모령성체, 성체모독이라는 개념이 천주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도가 약편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지 않은자가 성공회에서 성체를 영한 경우 천주교와 같이 성체를 모독했다고 보기도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데 실패했다고 보는 경향이 더 강하다. 물론 성체를 발로 짓밟는 식의 행위는 중징계 대상이다.[135] 심지어 장로회의 예장통합 교단에서도 유아의 성찬참여가 논의된 적 있다.[136] 정확한 연령이 정해지진 않아서 해당 성당의 관할사제(주교좌는 주임사제)의 판단이 관여되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한 연령(대략 7세)이면 무난히 받아들여진다. 관할사제에 따라 미취학 아동에게 성체에 보혈을 찍어 입영성체를 하는 경우들도 어렵지않게 볼 수 있다. 참고로 천주교의 경우 대략 10세(한국식 나이). 연령 제한이 천주교와 다른 것은 아무래도 성체성사에 대한 신학적 차이 때문인 듯.[137] 성찬례의 원형이 되는 최후의 만찬에 예수를 배반한 유다도 참여했음에 착안하여 세례받지 않더라도 '영성체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고 스스로 원한다면' 식탁에 나오는 것을 막지 않는 정책. Sara Miles의 "Take this bread"등을 통해 대중적으로도 알려져있다.[138] 이 경우 견진일이 곧 첫영성체일이다.[139] Society of Catholic Priests(위키백과 설명) 등. 여담으로 2000년대 무렵 세계 성공회가 여성 서품 문제로 두 동강이 나면서, 여성 서품과 에큐메니즘을 강조하고자 캔터버리 대주교 측에서 SCP를 직접 후원하는 등 힘을 실어주게 되었다. 이에 따라 고교회파 선교 교회이나 여태껏 교세가 크지 못한 교회에서는 SCP = 일반적인 성공회라는 공식이 자리잡은 인상이 있다. 독자적 신학을 갖추지 못한 대한성공회 역시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140] 홈리스 사이에서 알코올 중독 문제를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에 아예 포도주스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141] 신학적으로는 성공회 형성 과정에서 칼뱅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 부분 중 하나이다.[142] 일부 신부들이나 신자 중에서 후자의 방식으로 하는 것을 볼 수 있다.[143] 한국 천주교에서는 미사용 백(白)포도주로 롯데칠성음료마주앙을 쓴다. 물론 마주앙을 안 쓰고 독자적으로 만든 미사주를 쓰는 성당도 있다. 대한성공회에서도 성가수도회에서 만든 적(赤)포도주가 소진되어 없을 때에는 일시적으로 마주앙을 쓰는 경우도 있다.[144] 천주교에서는 참여 신자가 한명도 없는 사제 단독의 미사도 의미있다고 보지만, 성공회에서는 그러한 감사성찬례는 무의미하다고 보아 인정하지 않는다.[145] 반면에 천주교에서는 모령성체 문제가 민감한 주제이기에, 특히 보수적인 신앙관을 가진 이들은 "고해성사 안 했으면 미사 때 아예 영성체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하기도 한다.[146] 성공회 특성상 엄밀한 의미의 표준 교리서(가톨릭의 교황청판 표준 교리서 수준)는 없지만 <신앙의 개요> 책자는 성공회 기도서에 수록된 교리문답의 해설판이기에 사실상의 표준 교리서라 봐도 무방하다.[147] 참고로 가톨릭은 1일 2번까지만 영성체 참여를 허용한다.[148] 엄밀히 말하면, 성공회는 성변화를 믿지 않는다기보다는 성변화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39개조 신조와 같은 기본적인 신앙 고백을 대놓고 부정 하지만 않는다면 그리스도교 내에서 역사적으로 깊이 성찰되었던 성찬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포용한다.[149] 국내 신앙상담 사이트에 질문하면 성공회 영성체 모독도 파문 대상이라고 답해주는 경우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천주교 입장에서) 성공회의 성체 그 자체가 파문 대상은 아니다. 따라서 천주교 신자가 성공회 영성체를 모독해도 해당 집전 성공회 사제가 천주교 사제 출신인 경우가 아니고서는 천주교 교회법에 의해 파문당하지는 않는다. 대신 "독성죄"(축복받은 묵주나 성모상 등을 함부로 훼손한 것과 동급)이다. 때문에 고해성사와 더불어 사제와 1대1 면담을 하게 되는 수가 있다. 왜냐하면 성공회의 성체는 실제적으로 유효한지는 차치하고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관을 의심받을 수 있다. 그리고 성공회 성당에 가서 성체성사 중에 성체를 모독을 하거나 성공회의 성찬을 조롱한다는 것은 교파를 떠나 그 자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또한 그 성찬례에 함께 한 성공회 교인들에게도 인간 대 인간으로서 전혀 예의가 아니다. 단, 정교회 영성체를 모독한 경우에는 천주교 교회법 상으로 파문 대상이다.[150] 현대 천주교의 표준적인 지침은, 타 교단의 예배에 참석하고, 함께 기도하며 찬미드리는 것은 허용하지만, 성찬은 자제하는 것이다.[151] 신학교 과정에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비기독교계 타 종교(불교, 이슬람교 등)에 대해서도 천주교 신학생들은 개론 수준으로 학습하기도 한다.[152] 성목요일 저녁부터 성금요일 새벽까지 성체 앞에서 밤을 새가며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이건 천주교에서도 연중시기의 성체조배와 더불어 그 시기에 하는 의식이다. 다만 연중시기 성체조배와 달리 성광에 넣지 않고 수난감실이라는 별도의 감실을 설치한다.[153] 성공회에서는 천주교 신자와 정교회 신자가 성공회 감사성찬례에서 영성체를 하는 것을 문제 삼지 않으나, 천주교와 정교회에서는 성공회 감사성찬례에서 영성체를 자제하도록 지도한다. 최소한 천주교 신자들이 주일 영성체를 천주교 영성체 대신에 성공회 영성체로 갈음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성공회 신자가 자신들의 미사와 성찬예배에서 영성체하는 것 역시 허용하지 않는다.[154] '세례받은 자의 영성체'(Open communion subject to baptism)는 대한성공회와 영국교회에서 공식적인 정책이고 영국교회의 경우 Church Canon으로 이를 못박아두었다.# 실제 교회에서는 '세례받은 자의 영성체가 원칙이나 세례여부를 묻지 않는다'라는 정책을 가진 성공회 교회들이 많다. 특히 2010년대 이후 현재는 완전히 열린 식탁(fully open table)이라고 하여 세례자체를 조건으로 하지 않는 성체성사도를 지향하는 곳들도 많이 있고 (설사 히잡을 쓰고 오거나 卍자 목걸이를 하고 오더라도) 사제가 세례여부를 조건으로 신자의 영성체를 막는 경우는 없다.[155] 대한성공회의 경우 일부 선교형 성공회 교회와 피정의 집에서 신부와 주교의 판단 하에 세례 여부와 상관없이 영성체를 허락할 때도 있다. 이런 교회에서는 비신자는 물론 아주 가끔 타 종교인(예를 들면 불교 승려 등)도 영성체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완전 오픈 성찬례 문제는 세계 성공회 내부 뿐만 아니라 대한성공회에서도 논란거리이다. 이미 언급되었다시피 모든 교회들이 에큐메니컬을 지향하거나 사회 참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 뿐더러 여전히 보수적인 신심을 가지고 있는 교회들도 있기 때문이다. 우선 여성 사제 논쟁으로 세계 성공회가 크게 분열되고, 이후 성소수자 사제 서품 문제로 또 분열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세계성공회(Anglican Communion) 입장에서는 그나마 이런 사태에도 불구하고 참아주고 있는 보수적인 교회들의 이탈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오픈 테이블을 공식적으로 지지하지 않고 유예중이다. 대한성공회의 경우 전체 성공회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선교형 교회들이나 일부 교회들은 완전히 열린 식탁을 지향한다. 이들은 영성체를 특정 교파(교회 공동체)와의 일치가 아닌 교파를 초월한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라고 주장 하지만 일부 신자와 사제들은 영성체는 공동체 내의 일치라는 점을 더 강조하면서 반발하기도 한다.[156]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던 사도 토마스가, 부활한 예수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서 한 고백(요한 복음서 20:24~29).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 구절만 가지고서 밤새도록 기도했다고 한다.[157] 제병을 만들 때, 먼저 밀가루 반죽으로 커다란 판을 만든 뒤 동그란 모양으로 작게 잘라내 굽는 것이므로, 이 과정에서 동그라미 외 부분인 자투리가 꽤 남으며, 선별과정에서 모서리가 깨진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158] 가장 비슷한 간접체험은 싸구려 아이스크림 콘을 입에 넣고 불려먹는것이다.

10. 관련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