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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9 19:21:21

밥 로스

Bob Ross
밥 로스
파일:Bob Ross01.webp
<colbgcolor=#330000> 본명 로버트 노먼 로스
Robert Norman Ross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출생 1942년 10월 29일
미국 플로리다 주 데이토나 비치
사망 1995년 7월 4일 (향년 52세)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
직업 화가, 군인
서명 파일:밥 로스 서명.jpg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트위치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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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30000> 활동 기간 <colbgcolor=#fff,#191919>1981년 ~ 1994년
부모 아버지 잭 로스(1905년 출생~1968년 사망)
어머니 올리 로스(1920년 출생~1991년 사망)
배우자 비비언 리지(1965년 결혼 / 1977년 이혼)
제인 로스(1977년 결혼 / 1992년 사망)
린다 브라운(1945년 출생 / 1995년 결혼)
자녀 아들 스티브 로스(1966년 출생)
신체 188cm, 75kg, 280mm
종교 개신교(장로회)
묘소 플로리다주 우드론 메모리얼 파크#
군인 경력
복무 미합중국 공군
1961년 ~ 1981년
복무지 알래스카 아일슨 공군 기지[1]
최종 계급 상사 }}}}}}}}}
1. 개요2. 생애
2.1. 성장기 및 군인 시절2.2. 화가 활동2.3. 사망과 씁쓸한 사후
3. 작품의 특징
3.1. 화풍3.2. 평가
4. 스승 윌리엄 알렉산더와의 관계
4.1. 스타일의 차이점
5. 어록6. 여담7. 대중매체에서8. 관련 문서9.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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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external/topidol.files.wordpress.com/bob-ross.jpg
그를 상징하는 사진
Hi, I'm Bob Ross, and for the next 13 weeks, I'll be your host, as we experience The Joy of Painting.
안녕하세요, 전 밥 로스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13주간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동안 여러분의 진행자를 맡을 예정입니다.
The Joy of Painting, 시즌 1 에피소드 1, 밥 로스의 인삿말.
미국 태생의 서양화가. '밥 로스의 그림을 그립시다'라는 TV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특이한 아프로 헤어와 덥수룩한 수염, 그리고 항상 셔츠 앞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애완 청설모[2]가 인상적이다.
어때요, 참 쉽죠?
That easy.

누가봐도 어려운 그림을 참 쉽죠?(That easy)라는 멘션을 날리면서 쓱 그려내는 것과 짤방으로 유명한 화가. 국내에서는 밥 아저씨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져 있다.

2. 생애

그의 생애에 관한 다큐멘터리[3]
그의 특이한 헤어 스타일과 속삭이는 목소리로, 밥 로스는 아마도 TV에서 보기 드문 유명인사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의 창의성뿐만 아니라 그의 긍정성 때문에 미국의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이 되었다.
CBS, 밥 로스의 영원한 인기(2021년)
밥 로스는 아마도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일 것이다. 독특한 머리, 부드러운 목소리, 그리고 "행복한 작은 나무들(happy little trees)"과 같은 특유의 표현으로, 그는 영원한 아이콘이다. 그가 사망한 지 25년이 지났는데도, 그는 그를 애틋하게 기억하는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그의 쇼가 방송될 때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있다. (중략)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는 불안과 불확실한 미래에 살고 있다. 우리 세상은 갈등으로가득 차 있다. 우리의 오락의 대부분은 시끄럽고, 긴장감이 넘치고, 긴박하다. 밥 로스는, 그의 모든 점잖은 단순함 속에서, 그 모든 것의 해독제이다. 캔버스에 도피하는 꿈을 창조함으로써 그는 우리에게 현대 사회의 병폐로부터 진정한 휴식을 준다.
― The Atlantic[4], 밥 로스는 왜 아직도 인기가 많을까?(2020년)

2.1. 성장기 및 군인 시절

밥 로스는 1942년 10월 29일 플로리다 데이토나 비치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잭은 체로키족 혈통의 목수였고#, 어머니 올리는 웨이트리스였다. 그가 어린 시절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9학년 때 중학교를 중퇴하고 아버지의 목수일을 배우며 조수로 일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무렵 사고로 왼손 집게손가락 끝을 잃었는데 이 부상을 나중에도 계속 의식했는지, 이후 TV출연이나 사진촬영할 때 항상 팔레트나 엄지에 왼손 손가락이 가려지도록 손을 쥐곤 했다.
파일:img_59f7dfe80894f.png
파일:external/media.npr.org/1963age21_custom-bf812bfd6917070f83bdf88b4b745067dfd0397d-s700-c85.jpg
군인 시절의 밥 로스
1961년, 18세의 나이로 밥 로스는 미합중국 공군에 입대하여, 알래스카 공군 기지에서 의무기록 부사관으로 20년 동안 근무했다.[5] 따뜻한 플로리다 출신이던 그는 알래스카에서 눈과 산을 처음 보았다고 하며, 이것은 후에 그의 작품의 주요주제가 되었다. 군복무를 하는 동안 앵커리지 미국위문협회(U.S.O. club)에서 처음으로 그림 수업을 배웠고, 이후 파트타임 바텐더로 근무하는 동안 사금채취용 패닝접시에 그림을 그려 판매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그림을 판매해서 버는 돈이 군월급을 넘어서기 시작했고, 군대 업무 때문에 그림을 그릴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남들에게 고함을 질러야 하는 군 복무를 하느니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본업으로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여 전역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 로스의 사진을 보면 항상 정갈하게 빗어올린 엘비스 프레슬리 식의 리젠트 머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의 아프로 스타일은 제대 후 그림을 그려 생활하면서 돈을 아끼기 위해[6] 선택한 것이었는데, 아프로 상태일 때 방송으로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아프로는 그의 상징적인 이미지가 되어버렸고, 이 때문에 주기적으로 파마를 해야해서 나중엔 오히려 아쉬워했다고 한다.

2.2. 화가 활동

전역 후 그는 1974년부터 1982년까지 "The Magic of Oil Painting"이라는 TV그림쇼의 진행자였던 윌리엄 알렉산더를 찾아간다. 윌리엄 알렉산더는 마르지 않은 상태의 캔버스에 물감을 그대로 덧칠해 빠른 시간 안에 그림을 완성할 수 있는 '웻 온 웻(Wet-on-wet)' 기법을 구사하는 화가였는데, 로스는 알렉산더에게 그림을 배운 뒤 그의 회사에 입사하여 외판원 및 방문교사로 근무하며 알렉산더의 그림 강연을 대신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로스는 그의 오랜 사업 매니저이자 친한 친구이자 배신자인 애넷 코왈스키(Annette Kowalski)를 만나게 된다. 애넷은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고 심한 우울증으로 방황하던 중 TV에 나오던 알렉산더에게 그림수업을 듣기 위해 찾아갔는데, 당시 그림수업은 로스가 대신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 때 밥 로스의 가능성을 눈여겨본 코왈스키는 로스에게 파트너십을 제안하였고, 남편 월트 코왈스키와 함께 로스의 매니저가 된다. 그리고 이 예상은 적중했다.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의 첫 방송

은퇴한 CIA 요원이었던 월트 코왈스키는 뛰어난 인맥을 활용해 미국 공영방송PBS와 TV쇼 계약을 성공시키는데, 이것이 바로 그 전설의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The Joy of Painting)》이다. 이 방송은 그야말로 대박이 난다.[7] 이 방송은 미국 전역의 공영 방송국 약 95%가 방송하여 약 8천만 명의 시청자가 시청했고, 그 시절 로스는 매일 200여통의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또한 유럽남미,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등 전세계 약 275개 방송국에 방송되어 엄청난 히트를 쳤다.[8] 1983년부터 시작하여 그가 사망하기 1년 전인 1994년까지 PBS에서 방영되었으며. 총 31개 시즌이고 시즌당 13화이기 때문에 총 403화이다(화 당 약 25~30분).[9] 우리나라에서는 EBS에서 《밥 로스의 그림을 그립시다》는 이름으로 방영되었고, 한국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10]

군인 출신답게 완벽주의자적인 면모가 있었다고 하는데, 카메라의 각도와 연출부터, 스튜디오 조명에 투명한 팔레트가 반사되자 팔레트를 샌딩해서 불투명하게 만들어오는 등 사소한 디테일까지 챙겼다고 한다. 보통 같은 그림을 3번 그렸다고 하는데 첫번째 그림은 촬영 전에 미리 연습으로 그려 촬영장 구석에 세워두었고, 실제 촬영 때 연습그림을 참고하면서 그린 두번째 그림이 시청자들이 TV로 보는 그림이고, 촬영을 마친 후 나중의 예술전시 등을 위해 좀 더 시간과 공을 많이 들여 고품질의 세번째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완벽주의적인 태도를 떠나서, 그의 프로그램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밥 로스의 철학이었다. 그는 항상 같은 물감과 붓을 사용하여 초심자들이 아주 적은 돈으로도 쉽게 그림을 시작할 수 있도록 했다. 전문 도구가 아닌 평범한 페인팅 붓과 나이프를 사용했고, 시청자들이 쉽게 따라할 수 있게 8가지 색상에 초점을 맞춰 페인트 라인을 최대한 단순하게 유지했다.

2.3. 사망과 씁쓸한 사후

파일:FLGOTbobross_ec_640x480.jpg
파일:6f18bd1e81b36e7767174880426c590a.jpg
플로리다 우드론 메모리얼 파크에 있는 그의 묘소
사망 당시 뉴욕 타임스의 기사

1990년 초 림프종에 걸려 건강이 악화되었으며[11], 1994년 5월 17일, '그림을 그립시다'의 마지막 회인 403화를 끝으로 1995년 7월 4일, 향년 5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 외에는 림프종에 걸린 사실을 알리지 않기도 했지만, 매니저였던 코왈스키 부부가 의도적으로 그의 죽음을 은폐했다는 의혹이 있다. 결국 그의 장례식에는 30명 정도만이 참여했다.[12] 로스가 사망하면 팬들이 많이 줄어들어 사업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예상한 모양.. 우리나라에서도 후일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밥 로스를 섭외해달라고 요청하는 의견이 있을 정도로 그의 죽음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미국에서도 밥 로스의 아들에게 밥이 세상을 뜬지 모르고 팬레터를 보내거나 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냐는 안부를 묻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밥 로스는 플로리다 고타의 우드론 메모리얼 파크(Woodlawn Memorial Park)에 묻혔다. 그의 무덤 위에는 "텔레비전 아티스트 밥 로스(Bob Ross, television artist.)"라는 글귀가 새겨진 기념 명판이 있다.
2021년 여름, 넷플릭스에서 그를 다룬 다큐멘터리 <밥 로스: 행복한 사고, 배신과 탐욕>이 공개되었다.# 이 안에는 익히 알려진 밥 로스의 성품 및 성공 과정과 함께, 아들인 스티브 로스와 코왈스키 부부가 지분을 가지고 있는 밥 로스 주식회사(Bob Ross Inc.) 간의 분쟁 또한 다루고 있다.

밥 로스가 그림을 그립시다 이후로 성공하여 큰 돈을 벌어들이게 되자, 코왈스키 부부는 밥 로스 주식회사, 즉 BRI를 설립하여 밥 로스의 물감과 붓을 판매하고 그와 관련된 사업을 시작하였다. 코왈스키 부부와 로스의 사이는 무난한 편이었으나,[13] 코왈스키 부부의 지나친 밥 로스 상품화로 인해 BRI와 밥 로스 사이에 분쟁이 생기기 시작하였으며, 로스가 림프종으로 죽어가고 있는 와중에도 끈질기게 로스로부터 그의 저작권의 권리를 얻어내기 위해 계약을 맺으려고 했다.

로스는 이를 막고자 이부동생인 지미 콕스에게 자신의 저작권의 51%, 방송에도 자주 나왔던 아들 스티브 로스에게 자신의 저작권의 49%의 권리를 증여하는 내용의 문서를 변호사를 통해서 작성하였으나, BRI와 콕스와 맺은 별개의 계약으로 인해 밥 로스 사후 그의 저작권을 행사할 권리와 그림들의 권리는 BRI로 넘어가버리고 말았고, 이를 알게 된 스티브 로스는 BRI를 고소하였으나, 비용부담과 콕스로부터 BRI가 구매한 51%의 지분을 이기지 못한 채 패소하였다.

2021년 현재의 BRI는 밥 로스의 아들 스티브 로스가 아닌 코왈스키 부부의 딸이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뻔뻔하게도 밥 로스의 얼굴과 이름이 들어간 티셔츠, 머그잔, 밥 로스 머리 모양 화분, 밥 로스의 시그니쳐 물감 등을 판매하고#, 유튜브를 통해 밥 로스의 그림을 그립시다를 방영해가며 막대한 수익을 얻고 있고, 로스의 그림들은 그가 유명해지기 전에 생계를 위해 판매하였던 몇몇 그림 이외에는 모조리 BRI의 창고 안에 골판지 상자로 정리된 채로 썩고 있으며#, 코왈스키 부부는 훈련된 유화가라면 어렵지 않게 베끼고 ROSS라고 사인하기만 하면 만들 수 있는 로스의 그림들을 본인들만이 뭐가 진짜 로스의 그림인지 알아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라며 주장하고 살아가고 있다.

아들 스티브 로스는 밥 로스의 방송들과 그림으로 인한 수익을 하나도 받지 못한 채, 아직도 그림교실을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중이다.

밥 로스와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은 BRI로부터 고소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핵심인물 몇몇을 제외하고는 다큐멘터리의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으며, BRI는 해당 다큐멘터리를 고소하였다.
사람들은 그들(코왈스키 부부)이 우리 아버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야 해요.
— 밥 로스의 아들 스티브 로스

3. 작품의 특징

3.1. 화풍

밥 로스의 그림을 모두 볼 수 있는 갤러리

특징으로 '웻 온 웻(Wet-on-wet),[14]이라는 기법을 주로 사용한다. 전통적인 유화 방식이 먼저 칠한 층의 유화 물감이 다 마른 뒤 다음 층을 칠하는 것과는 달리[15] 마르지 않은 상태의 캔버스에 물감을 그대로 덧칠해 나아가며, 정교한 디테일보다는 이나 나이프에서 나오는 우연을 이용하여 복잡한 텍스처를 단숨에 완성하는 기술이다.[16]빠르게 그림을 그려나가는 데 유리한 방식으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것은 그가 군에 근무하는 동안 휴식 시간에 그리기 위한 것이었다. 초벌칠 이외의 물감은 통상보다 유분이 적은 물감을 사용하기 때문에 물감을 산화 중합시키지 않고 덧칠한다. 이것은 전통적인 '팻 오버 린(Fat over lean)'라는 유분이 적은 데다 더 많은 유분을 요구하는 전통적인 유채화의 격률에 따른 것이다.

로스의 유채화 방식은 밥 로스 기법이라고 불린다. 다만 관념적인 직접 그리기는 예로부터 존재하고 있어, 그가 '고안했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세부적인 것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로스도 회화학원의 TV 프로그램을 갖고 있던 화가 윌리엄 알렉산더에게 배워 이 기법을 터득했다. 거기에 붓이나 나이프의 특징적인 사용으로 지금까지 그림을 그린 적이 없는 사람도 부담없이 유화를 그릴 수 있도록 한것은 로스의 공적이 크다. 그래서 로스는 미술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또한 초안을 사용 하지 않고 처음부터 착색하는 것도 이 기법의 특징이다. 현재 전문 화가가 사용하는 아크릴 물감의 제소를 초벌칠에 사용한 것은 밥 로스이며, 일반적으로는 얻을 수없는 극적인 효과를 낳기 시작했다. 사용하는 물감은 13색, 젯소, 초벌용 유화 물감은 총 5종류. 미방송 분의 프로그램에서는 몇 색의 아크릴 물감도 사용한다. 붓은 10종류, 칼은 두 종류를 그림에 따라 구분한다.

이러한 기법과 밥 로스의 그림 스타일이 합쳐진 형태를 쉽게 말하자면, 항상 비슷하지만 그릴 때마다 달라지는 그림. 이러한 덧칠 기법이 가능한 이유는 로스의 물감은 색깔별로 점성이 다르다는 것에 기인한다. 어두운 색은 되고 밝은 색은 묽다. 따라서 밥 로스 코스북에서도 어두운 색부터 깔고 밝은 색으로 그리는 순서로 되어있다. 그래서 밥 로스 기법을 일반 유화 물감을 써서 그리려고 하면 색이 겹쳐서 뭉개지기 쉽다.

3.2. 평가

Bob Ross is one of the most iconic American painters of the 20th century.
밥 로스는 20세기의 가장 상징적인 미국 화가 중 한 명이다.
뉴욕 타임스#
나는 밥 로스가 현재, 어떤 면에서, 전후 가장 유명한 미국 예술가라고 말하는 것이 부정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략) 로스의 예술 스타일은 사실 "편안하게 친숙한" 것을 의미하는데 특히 도움이 된다. 그의 그림들은 아늑한 현실주의 스타일로 그려졌고, 풍경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자유분방하고 미리 소화된 문화적 이미지에서 마음으로부터 발명한 풍경들을 마술처럼 만들어냈다.

"전통 예술이 아닙니다. 그것은 좋은 예술이 아닙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알리려 하지 않습니다."라고 로스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그 성격상,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은 뭔가 비범하거나 성취하기 어려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것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은 매우 친밀한 미학이다. 이것은 분명하지만 밑줄 칠 가치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밥 로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전체 결과물이 그림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중략) 분명히 차이점은 밥 로스가 청중들의 욕구를 소비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청중의 취향을 아마추어 예술가 자신으로 동일시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팝 아티스트들을 능가한다. 팔기에 가장 매력적인 이미지는 연예인이나 성이나 상품이 아니다. 그것은 예술가로서의 당신 자신의 생각이며, 당신처럼 충분히 훌륭하고 행복한 것이다.
— Artnet[17]#
그는 입문하기 비교적 어려운 유화에 대중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했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는다. 또한 어렵게만 여겨지던 페인팅에 대한 인식을 깨트리고,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영상 하나만 갖고도 사람들에게 큰 흥미를 주었기 때문에 그림에 관심이 없던 이들에게도 긍정적인 평을 받는다. 그러나 예술계에서는 그를 무시하고 저평가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그는 예술업계보다는 교육업계 종사자에 가깝기 때문에, 저평가하기보다는 그냥 별 관심이 없는 것에 가깝다.

종종 밥 로스의 그림을 소위 '이발소 그림'이라며 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로스가 그림을 그리는 목적이 취미 미술 강의임을 무시한 발언이다. 누구든지 1~2년 정도만 배워서 따라할 수 있는, 전통적인 유화에 비하여 훨씬 쉽고 간단한 기법을 이해하기 편하게 가르쳐주는 것은 누가 뭐래도 그만의 큰 장점이다. 즉, 쉽고 빠르게 한 장의 그림은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의 진짜 목적이며,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의 기법 등을 소개하는 것 역시 이러한 현대인의 취미 생활을 위한 것이다.

로스 본인이 자신의 작품을 지고의 예술품인 양 떠벌리고 다닌 것도 아니다. 추구하는 방향이 다른 대중 미술가인 로스를 그렇게 까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대리석만이 석재가 아니듯, 현대를 살아가는 일반인의 취미를 위한 대중 미술 역시 현대 미술에서 중요한 영역이다. 실제로 저 시기, 국내를 포함해 그로 인해 미술계에 관심을 가지고 그쪽으로 진로를 정한 이들의 수 역시 무시할 수 없을 정도. 밥 로스의 예술은 '그들의 예술'과 다른 것이지 예술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 탓으로 대중적인 명성에 비해 예술계에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당연하지만 이는 그가 순수 미술 시장에 진입하지 않은 것에 기인한다. 로스 본인도 자신을 예술가로 포장한 적이 없다. 실제로 예술품 옥션에서 그의 그림은 2000년대 딱 2개가 그것도 저가로 판매된 것에 그쳤다.[18]

그의 주 수입원은 PBS 방송이 아닌 책과 비디오 판매였다는 것을 밝힌 바 있는데, 이에 그가 예술로 돈을 번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것은 화가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순진하고 악의적인 억지 비판일 뿐이다. 그럼 화가는 죽을 때까지 똥국에 맨밥만 먹으면서 살아야 하나? 화가들은 예로부터 유명 화가부터 길거리 화가까지 그림을 팔아 돈을 벌고,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이들은 자신만의 전시회를 열어 그림을 사줄 고객을 확보하기도 했으며, 그 외에 화법 강의를 하거나 제자를 받거나 자신만의 화구를 개발해서 팔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는 현대의 일러스트레이터의 역할도 수행해 왔다. 자신의 그림으로 돈을 벌지 않은 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이들이다. 그가 받는 비난은 결국 로스는 예술적이지 않고 별로 대단치도 않은 기법에, 정통파 유화를 배운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기들보다 못한 그림으로 대중의 인기와 고평가를 받는 것이 고깝다고 여긴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로스는 그에 비해 예술적으로는 저평가되는 자신의 그림을 고평가받는 그림처럼 비싸게 판 것도 아니고,[19] 그저 자신처럼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쳐주고 돈을 받았을 뿐이다. 실제로 방송에서도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에 대해서 계속 강조하고 있으며 완성도보다는 자신의 만족이 가장 중요하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밥 로스의 사후 로스의 그림 기법 자체는 수준이 높거나 진지하게 인정받는 기법이 아니라 일반인이 쉽게 배워서 그릴 수 있는 취미로 주로 거론되는 추세이고, 실제로 로스 본인도 그런 목적[20]을 두고 만든 기법이기 때문에 수준이 높지 못한 점을 비난한다는 것은 논지가 어긋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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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를 붓으로 칠하고 저기를 나이프로 문지르고 하더니, 순식간에 짠 하고 멋진 풍경화가 나타나는 광경이 어린 마음에 신기하게 보이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다 크고 봐도 신기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로스가 대중에게 인상적으로 각인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그림은 형태와 디테일을 하나하나 정해가면서 그려나가는 것이다'라는 일반인의 고정관념을 깬 부분이다. 이미 그린 수풀이 붓으로 몇 번 칠하니 호수가 된다든지 하는 모습은, 그때그때 마음 가는 대로 그려 나간다는 일종의 낭만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 데다, 유화를 배우지 않은 일반인 입장에서 보면 신기할 수밖에 없다.
파일:external/4.bp.blogspot.com/bob%2Bross%2Bseascape.jpg파일:external/www.deshow.net/bob-ross-landscape-painting-281-2.jpg
파일:p08mv4p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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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가 자주, 잘 그리는 풍경은 로스의 과거에서 알 수 있듯이 "알래스카에 있을 법한 풍경"들이다. 특히 뒤에 산이 있고 앞에는 풀밭과 나무가 있으며, 그 사이로 이 흐르거나 호수가 있는 식의 풍경은 거의 클리셰라고 해도 좋을 정도. 그 외에도 흰 구름이 있는 파란 하늘이라든가 오로라도 잘 그려낸다.[21] 반면 해변의 파도나 황량한 풍경 등은 그에 비해서는 잘 그리지 못하며, 자연의 풍경에 통나무집 같이 사람이 만든 것을 추가로 힌두 개 그려넣는 것은 자주 하지만 인공물 투성이인 도시 풍경은 아주 못 그린다고 한다.(애초에 그린 적이 거의 없기도 하다.) 또한 인물을 그리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확히는 딱 한 번 지나가듯 그린 적이 있다. 그리고 만화체로 캔버스에 "자신을 괴롭히는"(giving me a hard time) 직원들을 그린 적이 있다.
밥 로스는 생전에 자신의 그림이 아마 동네 미술관에 걸릴 순 있어도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갈 일은 없을 것 같다고 했는데, 정작 사후 그의 작품이 스미소니언 국립 미국 역사 박물관의 영구 보존품이 되었다. 2019년에 밥 로스 재단은 스미소니언에 네 점의 그림들과 다른 기념품들을 기증했다. 스미소니언은 2020년 밥 로스 공인 강사들과 함께 그림 워크샵을 열기도 했다. 스미스소니언 국립 미국 역사 박물관은 로스의 작품인 'On a Clear Day'의 세 가지 버전을 소장하고 있는데 이 중 하나는 박물관이 2021년 전시하기도 했다. 로스의 대표 이젤, 팔레트 나이프, 그리고 그가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 붓들도 전시되고 있다.# 2019년에는 시카고에 있는 드폴 미술관(DePaul Art Museum)에서 열린 ‘New Age, New Age: Strategies for Survival’에서 그의 작품이 전시되기도 했다.[22]#

또한 2019년에는 그의 작품 중 가장 큰 전시회인 1993년 세션과 아카이브 비디오에서 발췌한 24개의 풍경의 작품이 현재 버지니아 주 퍼셀빌에 있는 프랭클린 파크 아트 센터(Franklin Park Arts Center)에서 전시되고 있다.# 이 곳에서 진행한 '행복한 사고: 밥 로스 오리지널 그림 전시회'는 2019년 9월 일일 관객이 15,000명 이상 몰리며 엄청난 히트를 쳤다. 이 현상은 큐레이터 엘리자베스 브레이시에게 놀라운 일이었는데, 밥 로스는 오랫동안 현대 미술계에서 소외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권위있는 현대 예술 잡지 '프리즈[23](frieze)'는 이 현상을 보고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가 마침내 미술계의 인정을 받는다."라는 평을 남겼다.# 2020년에는 캐나다 펜틱턴 미술관(Penticton Art Gallery)에서 그의 개인전이 열렸고#, 또 같은 해에 네덜란드의 박물관 '뮤지엄 모어(Museum MORE)'가 그의 개인전을 여는 유럽 최초의 박물관이 되었다.#

4. 스승 윌리엄 알렉산더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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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밥 로스는 1970년대 초반부터 1982년까지 《유화의 마법(The Magic of Oil Painting)》이라는 PBS 방송국의 TV 시리즈에서 이름을 날리며 유명했던 화가 윌리엄 "빌" 알렉산더의 제자였다.[24] 알렉산더는 본 프로그램을 통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알라 프리마(Alla prima)" 기법(속칭 "Wet-on-wet")[25]을 선보이며 자신의 미술 수업과 사업을 홍보했었다.

이후 알렉산더의 아래에서 수행을 하며 그의 기법을 그대로 연마한 로스는 본인도 알렉산더처럼 미술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기 시작한다. 로스 특유의 매우 차분하면서도 안정이 되는 다분한 톤의 수업 방식은 당시에도 학생들로 부터 커다란 호응을 얻었고 이를 통하여 치솟기 시작한 그의 인기는 곧 PBS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밥 로스의 인기를 실감한 PBS는 1983년에 알렉산더가 진행하던 《유화의 마법》 프로그램을 《밥 로스의 그림을 그립시다(The Magic of Oil Painting)》로 교체하게 된다.#

자신의 제자에게 교체당한 알렉산더의 당시 심정은 실제로 알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는 초반에 외적으로 이에 대해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1984년 1월 무렵에 방영된 《밥 로스의 그림을 그립시다》 시즌 2에서는 쇼에 출연하여 밥 로스를 가리키며 "전 이제 이 위대한 붓을 위대한 사람에게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바로 밥 로스입니다. 축하합니다."라고 말하며 붓을 전해주기도 하였다.# 로스 역시 방영 첫 화에서 자신의 기술을 알렉산더에게 전수 받은 것이라고 소개했고, 시즌 2에서는 알렉산더로부터 매우 귀중한 선물을 받았다며 그 선물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제자 밥 로스가 본 TV 프로그램을 통해 명성이 하늘을 찌를 정도로 성공을 거두는 동안 알렉산더가 이후 다른 화가들과 1984년부터 방영한 《빌 알렉산더의 미술, 그리고...》[26]는 비교적 묻히게 된다.

1987년에 밥 로스는 알렉산더 아트의 사장인 시드 너드슨(Sid Knudson)에게 실망하게 된다. 본래 그는 로스의 당시 거처였던 켄터키 주로 보내진 알렉산더 아트의 판매에 한해서는 로열티를 로스에게 주기로 동의한 상태였으며, 로스의 아내인 제인이 여행 겸 강의를 하러 간 남편 대신 주문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인은 로스에게 전화하여 주문의 상당량이 없어졌다고 말했고, 급기야 점차 줄어들다가 아예 없어진다. 로스는 시드 너드슨에게 전화하여 원인을 물었고 이내 뉴욕에 사는 시드의 형제가 주문의 일부를 강탈했음이 밝혀진다. 이에 분개한 로스는 자신의 사업 매니저인 애넷 코왈스키의 모든 주문을 처리하면서 알렉산더 아트와의 관계를 끊고 그를 기반으로 밥 로스 Inc.를 세웠다. 그리고 밥 로스 Inc.는 곧 연간 15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미술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처럼 로스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알렉산더는 1991년 뉴욕 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저를 배신했습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Wet-on-Wet 기법은 제가 발명한거에요. 그를 가르쳐줬더니 저를 베끼고 있어요."라면서 "제가 화나는 것은 단순히 저를 배신한 것 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그 이상으로 더 잘 그린다고 생각한다는 거죠."라는 험담을 서슴지 않았다.#

허나 인터넷을 조금만 찾아보면 알겠지만, Wet-on-wet (알마 프리마) 기법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시작해 인상파 화가들도 자주 사용한 방법이기 때문에, 발명은 턱도 없는 소리고 발전시켰다는 말이 들어맞다. 더 자세히는 본 알마 프리마 기법에 앞서서 캔바스를 하얀 페인트로 미리 칠해놓는 등의 방법은 알렉산더의 전매 특허였다. 결국 자신이 Wet-on-wet 기법을 발명했다기 보다는 자신만의 독특한 바리에이션을 개발했었고 그 기법을 로스가 전수 받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렇지만 초보자가 그림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끔 쉬운 입문법을 제공하면서 연구 끝에 새로운 물감이나 기법을 사용하는 등 알렉산더보다 로스를 더 높이 치는 여론이 많다.

어쨌든 알렉산더의 로스를 향한 악감정은 자신이 가르쳐준 기법으로 출세했으면서 자신을 충분히 챙겨주지 않았다는 일방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악감정이 이미 TV 프로에서 교체당한 초반부터 자라났었는지, 아니면 로스가 알렉산더 아트와 연을 끊고 밥 로스 Inc.를 창설하여 성공한 이후부터인지는 알 수가 없다. 결국 1991년 인터뷰 이후 얼마 되지않아 밥 로스는 1995년에, 윌리엄 알렉산더는 1997년에 사망하면서 둘이 서로에 대한 감정 및 관계를 더 솔직하고 자세하게 털어놓을 기회는 영영 없어지게 되었다.

4.1. 스타일의 차이점

영어가 된다면 오스틴 클리언(Austin Kleon)의 리뷰도 참고해 보자. 로스와 알렉산더가 각각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볼 수 있다.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 첨언하자면, 리뷰어는 "알렉산더는 열정적이고 '현란한 붓놀림'을 보여준 대신, 로스는 친근한 히피 스타일이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알렉산더는 유럽인이고,[27] 로스는 미국인이었다"라면서 애초에 두 사람의 스타일이 다르다고 평했다. 하지만 바로 그 다음에, "하지만 아마도 중요한 사실은,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은 미술(에 관한 지식)을 정말로 많이 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로스와 PBS 제작진이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라고 하여 로스의 접근성을 높게 샀다. 또한 해당 리뷰에 링크된 기사("The Undying Magic of Bob Ross's Happy Little Trees(밥 로스의 행복한 작은 나무의 죽지 않는 마법)")를 보면 "그 프로그램 자체가 너무 간단했기 때문에[28] 여러 사람을 미술로 이끌었으며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했다."면서 로스의 파급력이 크다고 강조했다.

리뷰의 마지막에 있는 말로 정리가 가능할 것 같다. "무엇을 그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리느냐의 문제이다.(It ain't what you paint, it's how you paint it.)" 하지만 사람들의 감상평은 '밥 로스 판정승'인 듯.

5. 어록


We don't make mistakes. We have happy accidents.
실수하는 게 아닙니다. 행복한 우연이죠.

Just beat the devil out of it.
악마도 도망갈 만큼 터세요.

Take life easy, just let it go.
인생을 편하게 사세요. 그저 내버려두는 겁니다.

This is your world, you're the creator, find freedom on the canvas
캔버스는 여러분만의 세상입니다. 자유롭게 만들어 보세요.

All you need to paint is a few tools, a little instruction, and a vision in your mind.
몇 가지 도구와 약간의 방법, 그리고 진심어린 상상력만 있으면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Believe that you can do it, because you can do it.
할 수 있다고 믿으세요. 정말로 할 수 있으니까요.

Talent is a pursued interest. In other words, anything that you're willing to practice, you can do.
재능은 지속적인 관심과 같아요. 그러니까 연습할 의지만 있다면 재능도 쌓을 수 있습니다.

Mix up a little more shadow color here, then we can put us a little shadow right in there. See how you can move things around? You have unlimited power on this canvas -- can literally, literally move mountains.
여기에 그림자에 쓴 색을 조금 더 섞으면, 약간의 그림자가 바로 생겨납니다. 어떤 원리인지 바로 아시겠죠? 이 캔버스에는 무한한 힘이 들어 있어서, 문자 그대로 산을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I can't think of anything more rewarding than being able to express yourself to others through painting. Exercising the imagination, experimenting with talents, being creative; these things, to me, are truly the windows to your soul.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보람찬 일은 없죠. 상상력과 솜씨를 발휘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것, 저는 이런 행동들이 여러분의 진실어린 심상을 드러내 준다고 생각합니다.

There's nothing wrong with having a tree as a friend.
나무랑 친구가 된다고 해서 문제될 건 없어요.

The job requires you to be a mean, tough person. And I was fed up with it. I promised myself that if I ever got away from it, it wasn't going to be that way anymore.
직업을 가지면 지독한 사람이 되기 마련입니다. 전 거기에 학을 뗐어요. 그래서 직장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두 번 다시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Gotta have opposites. Dark and light, light and dark continually in a painting. If you have light on light, you have nothing. If you have dark on dark, you basically have nothing. There we are. You know it's like in life. You've gotta have a little sadness once in a while so you know when the good times comin. I'm waitin on the good times now.
상반되는 요소가 필요해요. 그림에서는 어둠과 빛, 빛과 어둠 하는 식으로 이어집니다. 빛에 빛을 더해봤자 아무것도 생기지 않고, 어둠에 어둠을 더해봤자 어차피 원래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그런 겁니다. 삶도 마찬가지에요. 슬픔도 가끔 조금씩 겪어봐야 나중에 오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지금, 기쁨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 아내와 사별한 뒤에 첫 복귀 방송에서. Bob Ross - Mountain Ridge Lake (Season 23 Episode 3)

I have to paint fast on television because of the limited time, but I don't want people to see what I'm showing them as work, something to worry and fret over. This is supposed to be fun.
시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방송 중에는 그림을 빨리 그릴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시청자들에게 제가 걱정하거나 초조해하면서 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원치 않습니다. 그림을 그린다는 건 즐거워야 하는 일이니까요.

Traditionally, art has been for the select few. We have been brainwashed to believe that Michaelangelo had to pat you on the head at birth. Well, we show people that anybody can paint a picture that they're proud of. It may never hang in the Smithsonian, but it will certainly be something that they'll hang in their home and be proud of. And that's what it's all about.
전통적으로, 예술은 몇몇 선택받은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었어요. 우리는 태어날 때 미켈란젤로 같은 재능을 타고나야 하는 거라고 세뇌받아 왔죠. 하지만 저희는 사람들에게 누구나 자랑스러워할 만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어요. 스미소니언 박물관 같은 데 걸릴 일은 없겠지만, 집에 걸어 두고 자랑할 만한 작품은 되겠죠. 그럼 충분한 거고요.

I've never claimed that this is investment art. When we first started out, all the art colleges and universities across the country would sort of badmouth what we were doing. It's funny that a lot of them now are sending us letters saying, 'We may not totally agree with the way you paint, but we appreciate what you're doing, because you're sending literally thousands of people into art colleges.'
제가 하고 있는 게 상업 예술이라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저희가 처음 방송을 시작했을 때, 전국의 미술 대학들은 저희 방송에 대해 험담을 늘어놨었죠. 지금은 바로 그 대학들이 편지를 보내서 "우리는 당신네 화풍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네 방송에 감사를 표하고 싶소. 매년 말 그대로 수천 명씩 입학시켜 주고 있으니까." 라고 하고 있다니 우스운 일이죠.

That easy.
참 쉽죠?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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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젤 다리에 시너로 씻은 붓을 두들기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각 시즌을 봐도 로스가 그림 그리는 것보다 오히려 붓 두들기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완성된 그림을 보는 것보다 (붓을) 두들기고 나면 매우 흐뭇해하는 표정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본인도 두들기는 것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스태프들은 오히려 시너가 튀어서 청소해야 한다며 싫어했다고 회고했다.그리고 나중에 자기를 괴롭히는 스태프들이 있다면서 켄버스에 카툰체로 그린 후 복수했다 다만 시너는 휘발성이 상당히 강하며 흡입시 중독증상과 환각을 일으키고 발암 물질인 벤젠이 포함되어 있어 이런식으로 투다다당 하고 털게 되면 공기 중에 분자들이 훨신 많이 튀어 건강에 매우 해롭다. [34] 실제로 로스가 림프종에 걸리게 되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것이 그가 좋아하는 색인 티타늄 화이트[35] 위와 같은 붓 털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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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know, just recently, I was doing a demonstration in a mall, and I had a man come to me and he said "Bob, I can never paint because I'm color blind. All I can see is gray tones.". So I thought today, we'd do a picture in gray just to show you that anyone can paint.
그러니까, 최근에 백화점에서 시연회를 열었을 때 말이죠, 어떤 분께서 저를 찾아와 "밥, 저는 그림을 그릴 수가 없어요. 색맹이거든요. 회색조밖에 보이지 않아요"[42]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드리기 위해 회색조로만 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The Joy of Painting, 시즌 2 에피소드 4, "Shades Of Grey"
* 평생 동물 애호가였던 밥 로스는 항상 상처입은 동물들을 구조하고 건강을 되찾도록 보살폈다. 어린 시절 로스는 욕조에 악어를 키우기도 했다. 항상 동물을 사랑했던 로스는 다친 어린 악어를 건강을 되찾기 위해 욕조에서 기른것으로 유명하다. 로스는 성인이 되어도 그의 유명한 애완 청설모를 포함해 어미를 잃고 다친 동물들의 주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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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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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관련 문서

9. 외부 링크



[1] Eielson Air Force Base[2] 이름은 피포드(Peapod). 다람쥐는 국내 더빙 방송에서의 오역이다.[3] 2011년 PBS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다.[4] 미국의 유서 깊은 시사잡지[5] 훈련소 교관을 맡은 적도 있다고 한다.[6] 파마도 싼 편은 아니지만, 그가 젊은 시절에 하던 리젠트 머리에 들어가는 왁스와 헤어스프레이 값에 비하면 싼 편이다.[7] 비영리 기관 인터넷 아카이브에서 PBS에서 방영된 모든 에피소드를 정리해 놓았으니 보고 싶다면 여기로 들어가자.유튜브는 여기서[8] 인기에 힘을 입어 일본에 방문한 적도 있다. 그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9] 얼마나 유명했는지 미국에서 동명의 그림 그리기 비디오 게임이 출시된 바 있다.[10] 현재 시점에서 EBS 더빙판인 그림을 그립시다 풀영상을 구할 방법은 더 이상 없으며, 2006년에 DVD로 출시된 6화 분량에서 겨우 그 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2020년 6월 말부터 EBS1에서 다시 한번 더빙판을 방영하기 시작했다. 방송 시간은 일요일 오후 5시에서 5시 30분까지.[11] 생전에 담배를 좀 많이 피울 정도로 애연가였던 것만 빼면 건강 관리를 잘 한 편이라고 했다.[12] 아들 스티브 로스는 다큐멘터리에서 이를 회상하며 매우 통탄해하는 모습을 보였다.#[13] 애넷 코왈스키와 밥 로스의 불륜이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정확한 증거는 없고 BRI는 해당 사실을 부정하고 있으나, 밥 로스의 아들 스티브 로스가 증언하였다.[14] 직역하자면 '젖은 것 위 젖은 것'. EBS에서 방영한 밥 로스의 그림을 그립시다에서는 덧칠 기법으로 번역했다.[15] 유화 물감 특성상 레이어 하나가 마르기 위해서는 보통 일주일가량 걸리며, 두께에 따라서는 그 이상이 걸리므로 린시드 따위를 사용하여 하루 정도로 건조를 끝내게 할 수 있다.[16] 그래서 문서에 작성된 유행어들 못지않게 자주한 말이 Whatever!(뭐가 됐든!)[17] 유명 예술 시장 매체[18] 하지만 방송을 포함해서 30,000개에 달하는 작품을 남겼는데 시장에 나와있는 것이 거의 없는 게 미스터리이다. 방송에서 그린 것들은 지방 PBS에 기부되었다고 하더라도 3만 작품 중 거래되는 것이 없다. 다만 뉴욕 타임스가 취재하면서 미스터리가 풀렸는데 알고 보니 대다수의 작품은 유산을 관리하는 회사에서 관리하고 있었고 일부는 박물관에 소장되고 있었다.[19] 그럼에도 로스의 그림이 아무나 살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하지는 않다. PBS에 나와 그렸던 그림들은 대략 500~1200만 원대. 그림 자체의 수준보다 로스의 인지도로 인해 어느 정도 수요가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로스가 사망했고 후손들이 남은 작품들을 판매하지 않아 꽤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작품들은 전부 팔아서 운영비로 쓰라고 PBS에 기부한 작품들이기 때문에 로스는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사실 엄밀히 따져보면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이나 판화가 아닌 화가가 직접 작업한 작품이 500~1200만 원대 라는 것은 무명 화가의 작품에 비해 약간 비싼 수준에 불과하다. 로스의 인지도와 이름값을 생각하면 상당히 저렴한 편.[20] 일반인이 접하기에도 쉽고,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않아도 되는.[21] 인물화나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길거리 화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길거리 화가들 역시 이러한 풍경 그림을 주로 그리는 경우가 많다.(SF 등에 나올 듯한 우주 그림을 그리는 이들도 포함)[22] 미국의 시각 예술가 리즈 매직 라저(Liz Magic Laser), 포스트 블랙 아트로 유명한 라시드 존슨(Rashid Johnson)의 작품과 함께 전시됐다.[23]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로 꼽히는 프리즈 아트페어의 창립자가 이 잡지를 만든 사람이다.[24] 밥 로스가 세상을 떠난지 2년 후인 1997년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세로 로스와 달리 장수했다.[25] 수채화 기법들 중 하나. 밑그림을 채색하지 않고 최소한의 붓질만으로 채색을 끝내는 것.[26] 원제: The Art of Bill Alexander and…[27] 실제로 독일계 미국인이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으로 넘어온 이민 1.5세.[28] 카메라 3대, 등장인물(밥 로스) 1명, 미술 도구, 특수효과 일절 없음. 저예산의 극치다. 또한 로스의 아프로 머리는 머리 깎을 돈을 줄이려던 게 스타일로 고정됐다고 한다.[29] PBS는 미국의 6대 지상파 방송사 중 하나로, 비영리 공영 방송국이다.[30] 밥 로스의 회사는 미술 용품과 비디오 테이프를 팔고, 수업을 했으며, 세계를 돌아다니며 그림을 가르치는 미술 강사들로 구성된 팀을 두기도 했...는줄 알았으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런 말이 뻔한 거짓말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31] 대략 1980년생부터 1995년생까지를 지칭하는 세대[32] 전술했듯, 원래의 밥 아저씨의 참 쉽죠?라는 표현은 사람들이 자신처럼 그림을 그리며 행복해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그림은 어려운 게 아니라고 시청자들을 격려하는 의미에서 했던 말이다.[33] 대표적으로 "We don't make mistakes, it's just happy little accidents."(여러분들의 그림에) 실수라는 건 없어요, 그냥 행복한 우연일 뿐이죠. 라던가, "Just let it happens." 그냥 흘러가게 두세요. 등.[34] 이때문에 일반적으론 붓 세척 이후에는 뚜껑을 잘 닫아주는 것이 좋으며, 사용 후에도 버리지 말고 물감 침전물을 걸러 재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35] 2-B군 발암물질로 발암에 걸릴 확률은 낮지만 그래도 몸에 해로운 것은 맞다.[36] 환경채널 버전의 밥 아저씨는 '좋아요'를 연발하며, 무척이나 손쉽게 그림을 그려낸다. 물론 보는 우리는 전혀 좋지 않다.[37] 실제로 20대 그림쟁이들 중 《그림을 그립시다》를 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된다.[38] 글로벌 오펜시브 프로 경기에서 프로게이머가 슈퍼 플레이를 하면 마치 핵 프로그램을 쓰는 것 같다는 의미에서 생긴 이다. VAC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건 핵이나 치트 차단 프로그램인데, 밥 로스가 그림을 그냥 캔버스에 붓과 나이프 몇 번 사샤삭하면 그림이 완성되는 것에 대해서 로스가 핵을 써서 VAC에 차단당하게 생겼다고 열폭 반, 찬사 반으로 말하는 것이다.[39] 그래서 채널의 명령어 중엔 !ripdevil 즉 지금까지 방영된 붓턴 횟수를 세는 명령어도 있다. 2022년 3월 19일 기준, 10만 9천 번을 넘어섰다.[40] 밥 로스가 방송 말미에 God bless라고 끝을 맺을 때도 있어서, GG GB로 도배 되기도 한다.[41] 트위치 채널 공지 원문: We will be playing Bob Ross episodes starting Friday at 6PM PST and ending Monday around 9pm PST. 최근에는 금요일 12PM(EDT)에서 월요일 12PM(EDT)로 약간 바뀌었다.[42] 정확히는 무채색밖에 안 보이는 전색맹이다.[43] 온라인 샵의 경우 미국/EU/영국 지역에 따라 배달 가능 구역이 정해져 있다. 만약 대한민국에서 구입하고 싶다면 미국 온라인 샵으로 들어가야 한다.[44] 밥 로스 영어 공식 유튜브의 이 채널이 등재되어 있어서 공식 유튜브 채널 맞다.#[45] 코왈스키 쪽에서 부정하는 관계로 증거가 없으나 아들의 증언이 있으며 이미 사실상 확정으로 여러 뉴스와 미디어에서 확정적으로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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