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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꽃/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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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a6f59> 파일:녹두꽃 로고.png 인물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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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주요 인물3. 백가네4. 동학 사람들5. 고부 사람들
5.1. 도계서원5.2. 고부 관아
6. 전주 사람들
6.1. 전라 도임방6.2. 전주 감영
7. 특별출연8. 조선 조정
8.1. 한양 사람들8.2. 경복궁8.3. 운현궁
9. 일본군
9.1. 일본 공사관
10. 그 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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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드라마 녹두꽃의 등장인물을 정리한 문서.

2.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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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항쟁을 이끈 민초의 영웅
“백성에게 쌀을 탐관오리에게 죽음을...”
“경계를 넘어서는 걸 두려워 하지말게. 가보지 않았을 뿐, 갈 수 없는 것이 아니야.”
일명 녹두장군. 동학농민항쟁을 이끈 영웅이자 전라도 동학농민군의 선봉장으로 시대의 고뇌를 온몸으로 껴안은 사나이. 전라도 고부군의 동학 접주. 농부처럼 억세고 다부진 체격. 늘 미소를 띠고 있지만 어딘가 위험하고 불온한 느낌을 풍긴다. 몰락한 양반의 후손으로 읍내에 약방을 내어 호구지책으로 삼고 있다. 시대를 꿰뚫는 혜안과 혁명의 결기를 가슴에 품은 희대의 이단아이며 의병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 준 인생의 스승이자 이강에게는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

태어나서 본 것이라곤 수탈과 난리요, 들은 것이라곤 산 자의 통곡과 죽은 자의 침묵이었다. 이따위 세상은 응당 뒤집어져야 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에 후천개벽의 평등세상이 온다고 주장하는 동학은 도탄에 신음하는 백성들에게 한줄기 구원의 빛과 같았다. 그는 동학에서 혁명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부친 전창혁이 고부군수 조병갑의 전횡을 비난하다 매를 맞고 죽은 뒤, 전봉준은 타들어가는 분노를 억누르며 기회를 엿봤다. 학정에 신음해온 군민들의 원한이 하늘을 찌르는 바로 그때를!

갑오년 정월, 전봉준은 마침내 봉기의 칼을 치켜들게 되는데...여러가지로 이드라마의 진주인공이다.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 후 재기를 엿보다가 역사대로 김경천의 밀고로 사로잡혀 한양으로 압송당한다. 압송되던 중 송자인의 도움을 받아 의원으로 위장한 백이강과 만난다. 전봉준 곁에 선 백이강은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설사 전봉준이 죽더라도 의병들의 계속 굳은 의지로 싸움을 이어나갈 것임을. 먼 발치서 지켜보던 별동대 대원들은 '인즉천' 깃발을 흔들며 전봉준을 배웅했다.

한양으로 압송된 후 백이현의 거병의 배후를 말하라는 회유에도 넘어가지 않고[6] 이어 전봉준은라고 백이현에게 일갈한 후[7] 체포된 다른 동학 동지들과 의연한 죽음을 택한다.

3. 백가네

4. 동학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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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 주산리의 접주이자 ‘전봉준의 그림자’로 불리는 최측근.
조병갑을 잡아라!”
고부민란부터 죽음의 순간까지 전봉준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창의군 선봉장 격인 영솔장으로서 별동대를 지휘한다.
우직하고 담력이 강하며 무예에 능하지만, 백성을 괴롭히던 이강이 별동대에 들어온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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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 출신의 최경선 부대원.
“저 놈이 안핵사구만 이?[19]
동록개란 이름은 ‘동네 개’라는 뜻.
넙데데한 얼굴에 다소 맹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입만 열었다 하면은 좌중을 휘어잡는 입담의 소유자. 하지만 어깨 너머로 익힌 판소리는 웬만한 명창이 울고 갈 정도다. 일자무식에 동학 교리는 귀동냥으로도 배운 적 없지만 교주 최시형이 천한 노비 출신이라는 얘기를 듣고 그날부로 동학에 입도했다.[20]
갑오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간단다
좋은 세상이 되면 그럴 듯한 이름 석 자가 새겨진 호패를 차고 고향 원평[21]으로 금의환향하는 것이 꿈이다. 우금치 전투에서 동학군의 포 진지를 뒤에서 기습한 일본군들에 의해서 두 아들과 함께 전사한다. 죽기직전 포탄 하나를 손에 쥐고 심지에 붙인후 포탄 상자 위에서 쓰러지는데 이로 인해서 포 진지가 대폭발하여 자폭 형식으로 동귀어진하게 된다.
실존 인물}}}[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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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빈농 출신의 최경선 부대원.
“몸 좀 풀어볼까?”
능글맞고 눈치가 빠르며 신중하고 용의주도한 면이 있다. 전국의 광산을 떠돌아다닌 이력의 소유자로 화약을 이용한 폭파전문가. 역사대로 전봉준을 밀고한 후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환청, 환각 등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며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다 백이강을 위시한 분노한 의병들에게 사살당해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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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 대접주.
“천하의 전 녹두 낮짝이 어찌이려? 그새 반쪽이 다 되버렸구먼.[23]
“주상전하? 엿이나 처먹으라 그려!”[24]
손화중과 더불어 동학농민군의 2인자 격인 총관령. 본명은 기범이나 “조선의 남쪽을 개벽한다”는 의지로 개남으로 개명했다. 시종일관 강경노선을 추구하였으며 피아가 분명하고 호전적인 인물로 민초들에겐 더없이 따뜻하지만 가진 자들에게는 저승사자 같은 사람. 역사대로 동학농민운동이 실패로 끝난 후 재기를 꿈꾸다 친구의 밀고로 관군에게 포위당해 죽음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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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군 총관령. 정읍 출생으로 무장 접주.
“감히 무장현의 도인들까지 핍박하다니! 하늘이 두렵지 않느냐!”
전봉준, 김개남과 더불어 동학농민군의 3대 지도자 중 1인.
만석꾼 집안의 자제로 한때 벼슬에 뜻을 두기도 하였으나 20대의 나이에 지리산에서 동학에 입도했다. 온화하고 인자한 성품으로 포교에 전념, 호남지방에서 제일 많은 교도를 거느리는 무장포의 접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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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에 가면 박동진을 찾더라고. 대원위대감 심복인디 동학도인이여.[25]
전봉준의 처족 7촌으로 최경선과 더불어 최측근의 한 사람으로 발이 빠르고 영민하여 대외 연락을 도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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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법도 모르는 농부가 태반입니다.”
호남창의대장소 총참모로 병법과 진법에 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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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군의 최고 접주 중의 한명. 극중내내 언급이 없었다가 우금치 전투에서 첫 등장하여 나중에 전봉준, 김덕명, 손화중, 최경선과 함께 재판을 받고 사형을 당하는것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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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의 제 2대 교주. 본관은 경주. 호는 해월.
“속히 사태를 수습하고, 도인들의 안위를 도모하시게.”
교조 최제우가 참형을 당한 이후 은신과 도피를 거듭하면서도 백성들 사이에 동학을 전파하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운 인물. 부드럽고 온화한 성격에 정치적 입장도 무력투쟁보다는 평화적인 방식을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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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에 함께 했어야 하는데, 함께하지 못해 정말 송구하기 이를때가 없습니다.”
천도교의 창시자이자 충청도 출신 동학 북접의 접주로 동학 남접 지도자인 전봉준의 호남 창의군과 연합하여 활약했으며, 훗날 3.1 운동민족대표 33인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만든 독립운동가이자 민족대표들 중의 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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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면 되겠습니까?”
최종화에서 의병장이 된 백이강을 찾아온 의병장이자 훗날의 백범 김구. 황해도에서 동학을 접했던 해주 출신의 동학 접주로 동학 농민 혁명때에는 해주성 전투에서 황해도 동학군의 선봉장으로 활약했으며, 치하포 사건에서 일본군 중위를 살해하고 도주하던 중에 이강의 의병부대에게 의탁한다.[26] 이후 일본군경에 의해 체포되었다가 훗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 된 인물이다. 이 때 당시는 아직 이름이 김창수던 시절이라 자신을 김창수라 답한다.[27] 무엇으로 밥값을 하겠냐는 백이강의 질문에 총을 쥐고서 위의 대사를 말한다.

5. 고부 사람들

5.1. 도계서원

5.2. 고부 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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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갑의 후임으로 부임하는 고부 군수.
“재주도 없는 사람이 신관 사또의 중책을 맡아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해서 장두께 고견도 들을 겸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우유부단하고 일처리가 유능하진 않지만 최소한의 양심과 정의감을 갖춘 관료다.
조정에 변변한 연줄도 없고, 야심도 크지 않아 오지의 수령만 전전하던 인물.
민란이 터지자 모두가 기피하는 고부 수령으로 떠밀리듯 부임해온다.
무골호인으로 갑오년의 난세 속에서도 고부군수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한다. 2차 봉기 당시 동학군에게 무기를 제공하였고, 이 때문에 우금치 전투 뒤 황명심의 신변을 보호하다가 민보군에게 잡힌다. 이후 파직되어 한양으로 압송하라는 명에 따라 일본군에 의해 한양으로 끌려간다.

6. 전주 사람들

6.1. 전라 도임방

6.2. 전주 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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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감사.
“무장현으로 출동한 병사들은 도대체 뭘하고 있었단 말이야?”
대사헌,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인물. 교만하고 용의주도한 성품. 고부민란이 발생하자 조병갑을 체포하고 전봉준을 살해하려다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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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현의 후임으로 전라 감사로 임명된 전라 관찰사.
네 놈이 청군을 끌어들이는 바람에 지금 제물포일본군이 상륙했단 말이다!”
농민군 대표 전봉준과 전주화약을 체결하고 동학 농민군이 폐정개혁을 추진하는 집강소를 설치한다. 형조, 공조판서를 역임하며 승승장구하던 중 동학농민군 봉기의 책임을 물어 파직된 김문현의 후임으로 임명된다. 모두가 꺼리는 전라감사에 부임하기 직전, 고종에게 ‘편의종사(便宜從事)’의 조처를 내려달라 고집한 뒤 재가를 받아낸다. 세도가 안동 김씨의 피가 흐르나 청렴한 성품으로 백성들에게 명망이 높다. 전봉준이 임금의 밀지를 몰래 가져와 알리며 일본군에 맞서 싸우겠다 하자 식량은 비록 지원 못하지만 무기를 지원하겠다며 협조적으로 나서고, 일본군에 맞서기 위해 다시 거병하고 출정하는 전봉준이 떠나는 길에 마중을 나와 관찰사임에도 큰절을 올리며 전송하는등 애국심도 투철하지만, 결과적으로 농민군이 참패하면서 (진심과 달리 겉으로는 농민군 토벌을 선언할 수밖에 없던) 임금의 뜻을 거스르고 농민군에 협조한 죄를 물어 파직당한다.

7. 특별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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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 사람이 벌써 노망인게야?”
고부 군수이자 영의정 조두순의 조카로 희대의 탐관오리로 이방 백가와 죽이 척척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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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샅샅이 뒤져라!”
고부민란의 진상조사와 민심 수습을 위해 파견된 안핵사. 삼십 대 초반에 과거에 합격한 뒤 영국, 러시아, 이탈리아 등 유럽 주재 참찬관을 지낸 외교관료 출신. 늘 서양을 동경하며 조선사람을 미개인 취급하는 버릇이 있다. 비열하고 영악하다. 장흥부사로 재직 중에 안핵사로 파견되지만 탄압과 수탈로 일관한다.

8. 조선 조정

8.1. 한양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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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당시 관군의 장수. 장위영 영관으로 잔인하고 호전적이며 흉폭하다. 청일전쟁 발발 직후, 평양 전투 등에서 일본군을 지원하다가 동학농민군이 2차 봉기를 일으키자 우선봉을 맡아 진압에 참여해 일본군과 함께 농민군을 학살하는데 앞장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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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초토사 영감이 시킨 것이라 해도 그 도가 지나치다 싶어 묻는 것이네.”
농민군들을 진압하는 관군 선봉장이자 장위영 영관으로 덕장의 풍모를 지닌 인물. 전주여각의 최덕기와는 과거 임오군란에 함께 참여했던 사이. 상사였던 최덕기를 존경한다. 동학농민군의 1차 봉기 때 초토사 홍계훈의 부관으로 종군하였다가 2차 봉기 때는 양호도순무영 별군관으로 임명, 선봉장으로 동학군 진압에 나선다. 조정에서 물러난 후, 이강의 의병부대와 합류하여 일본군과 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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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군량미라 하였느냐?”
장위영 정령관이자 동학 농민 혁명 때 조정의 명을 받아 장위영의 군사들을 이끌고 출정한 경군의 양호초토사(兩湖招討使)로 전봉준이 백산에서 거병하자 양호초토사가 되어 최정예 경군을 이끌고 전라도로 내려와 경군을 지휘 하였으나, 장성 황룡촌 전투에서 패퇴했다. 1882년 임오군란 당시 목숨을 걸고 왕후 민비를 궐 밖으로 피신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중용되었다. 민비에 대한 충성심이 지극하고 용맹하다. 실제 역사에서는 경군을 이끌고 전주를 탈환할 정도의 유능한 지휘관이었으며 성품 역시 근면성실해 좋은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다.

8.2. 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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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이리 변함들이 없으십니까, 지겹지도 않으십니까?”
절망과 좌절로 얼룩진 조선의 26대 군주이자 이후 대한제국 제1대 황제(재위 1863∼1907)가 되는 역사적인 인물로 조선의 실권자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아들. 명민하나 우유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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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에 무단으로 들어온 군대도 즉각 철수해야 할 것이오.”
조선의 국모 명성황후. 조선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순간을 겪은 비운의 인물. 기품 있고 단아하지만 정치적 술수가 뛰어나며, 대원군과의 갈등이 심화되던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위기를 겪었으나 청나라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복귀, 10년째 민씨 일파의 태두로 군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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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에게 빌미를 주지 말자는 것이옵니다. 자칫하다간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터질수가 있사옵니다.”
갑오개혁을 주도한 조선의 마지막 영의정이자 최초의 총리대신. 본관은 경주. 초명은 김굉집, 자는 경능, 호는 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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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전 앞에서 그 무슨 망언이란 말이오!”
조선의 대신이자 병조판서.

8.3. 운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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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러고 싶지는 않았네만, 자네 말처럼 며느리 등쌀이 하도 심해서 말일세.”
당시 조선의 군주였던 고종의 아버지이자 병인양요신미양요쇄국정책(鎖國政策)을 펼쳤고 전국각지에 척화비를 세워 나라를 바로 잡으려 노력했던 유명한 인물이었지만, 며느리인 민비와 끊임없이 갈등하고 대립한다. 민비와의 정쟁에서 패배, 실각한 이후 절치부심하던 그는 동학 농민 혁명이 발발하자 이를 계기로 재집권의 꿈을 키워나간다.
* 박동진 (박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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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찰이나 내 놔!”
동학 교도이자 운현궁 흥선 대원군 이하응의 심복.

9. 일본군

9.1. 일본 공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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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국의 이토 히로부미 총리 대신이 전하께 권고한 5개조의 개혁안에 대한 답을 들으러 왔사옵니다.”
조선 주제의 일본 공사관의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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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 이후 조선 주제의 일본 공사관의 공사로 부임한 일본의 정치가.

10. 그 외 인물




[1] 정말로 이렇게 하면 그 인내천이라는 새 세상이 오는 것 입니까? 후술하겠지만 ~지라 등의 말투는 전남에서만 쓰이지 전북에선 쓰이지 않는다. 고증 오류.[2] 손병희 선생 또한 극중에 나온다.[3] 전봉준은 그의 사상이 위험한것을 간파하고 몇번이고 문명의 무서움을 역설하면서 그를 설득했다. 그러나 백이현은 문명이 가져다 주는 빛에 눈이 멀어 어둠을 보지 못했고 그의 예견대로 이용당하고 말았다.[4] 어찌보면 먼저 발전한 문명권을 너무 믿었던 순진한 개화파의 말로라 볼 수도 있다.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김옥균 일파가 했던 것처럼 먼저 성공적인 개화에 돌입했던 일본을 개화의 모델링으로 어겼다가 그 진상을 깨닫고 이현처럼 실망하게 된 개화파는 현실에도 분명히 존재했다. 사실 일본보다 그나마 해악을 덜 끼쳤던(?) 다른 외국만 봐도 조선을 진심으로 우호국으로 대하고 도울 생각보단 이권을 노리는게 더 앞서긴 했으니, 이 시기에서 개화파들이 어느 나라에 기대봤자 가망이 적긴 했다.[5] 나는 이문에 죽고 사는 장사치일세. 팔자대로 살 것이란 말이네.[6] 대원군을 지목하면 목숨만 부지하고 고종을 지목하면 관직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조선엔 농민군 말고도 다른 의병들이 있고, 그들의 정신적 지주는 대원군과 임금이기 때문에 둘 중 하나만 정치적 생명을 끊어놔도 침략을 손쉽게 할 수 있다는 일본의 생각을 간파한 것이다.[7] 결국 전봉준은 한참 미래의 일을 내다본 셈이 되었다. 일본이 동학 농민 운동 이후로 야금야금 조선을 넘보다가 끝내 을사늑약을 체결, 결국 그보다 더한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었음을 생각해보면...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일으킨 동학 농민 운동은 동아시아 세력의 균형을 뭉개버리고 결국 일본이 대한제국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39] 겸사겸사 일본은 이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승리하면서 끝내 조선까지 편입, 일본 제국이 되고 우리나라에는 지독한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고야 만다.[8] 세상은 말이다.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 먹히는 법이야.[9] 박혁권이 연기했던 배역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길태미도 이와 비슷한 명대사를 남겼다.[10] 애초에 백가가 경제적으로나마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당시의 부패하고 막장이 된 사회상 때문이었다는걸 고려해보면 상황이 나쁘게 뒤집힐 가능성은 언제든 발 밑에 깔려있다 튀어나올 수 있는 것이긴 했다. 그리고 앞날을 생각해볼 경우 겨우 자식 하나 관리로 앉혀놨다 해서 과연 얼마나 갔을지..[11] 그런데 그 손, 남의 탓이 아니야. 네 탓이야.[12] 여종이란 설정으로 보아 주인댁 아이를 낳았지만 의 자리로 승격하진 못한 모양이다. 당장 아들도 몸종 신세로 굴려지는 상황이니.[13] 날도 추운데 이제 그만 안채로 들어가세요.[14] 조선 시대때 천시되던 일곱 부류의 사람을 통틀어 이르던 말. 노비, 기생 (영인), 상여꾼 (조례), 광대 (혜장), 무당 (사령), 백정, 승려의 일곱개의 부류를 이르기도 하며 이것들 말고 수군이나 상공업자 등 여러가지가 존재한다.[15] 사실 그동안 한국 사극에서 천보총이 나온 적이 없어 이 드라마에서 천보총이 나왔을 때 신기하게 여겼던 시청자들이 많았다.[16] 이 녀석들, 안핵사 어디있어?[17] 총 5발을 쏘았는데 4발을 군졸들에게 치명상을 입혔고 나머지 한발이 백이현의 왼팔을 맞추었다.[18] 학동이네 아버지, 기억하고 있나?[19] 저 녀석이 바로 안핵사로구만?[20] 실제 역사에서는 김덕명에게 자신의 집을 바치고 이 집을 동학군들의 총 기지로 써달라하면서 합류하게 된다는 기록이 전해진다.[21] 원평은 현재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원평리 일대를 말한다.[22] 바로 전봉준을 밀고한 김경천이다.[23] 천하의 전 접주 얼굴이 어찌그런가? 어느새 반쪽이 다 되어버렸구만.[24] 주상전하? 말도 안되는 소리 집어 치우라고 그래![25] 운현궁에 도착하면 박동진을 찾아가게. 대원위 대감의 심복인데 동학 도인일세.[26] 실제로는 장교가 아니라 일본 민간인 츠치다 조스케(土田譲亮)를 살해한 것이 맞지만, 드라마에서는 흔히 알려진대로 중위를 죽였다고 나온다. 다만 살해 장면을 직접 묘사한 게 아니라 김창수의 말을 그대로 전한 방식이라 적당히 논란을 피해갈 순 있다.[27] 대신 자막으로 백범 김구임이 밝혀진다.[28] 도깨비의 사투리.[29] 백가가 숨어있는 곳을 알고 있습니다요.[30] 대장, 저 녀석이 여기 동학 교도들의 교주라는 소문이 있다는데 정말 괜찮겠어?[31] 어라? 표창이 어디로 갔지?[32] 갱위기포, 다시 봉기한다는 내용이로군요.[33] 관군이 아무리 허술하긴 해도 죽창들고 설치는 농민들한테 당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어. 어머니 다시 만나야 할거 아니야?[34] 이렇게 작명씬은 원래는 개그 장면이었지만 우금치 전투에서 자신이 총에 맞았는데 두 아들까지 사살당하자 동록개가 “성계야! 방원아!”라 외치며 통곡 속에 죽어가는 장면으로 조선왕조의 몰락을 상징하는 의미심장한 장면이 되었다.[35] 해당배역을 맡은 김대한 배우는 나중에 힘쎈여자 강남순에서 리화자 (최희진 분)의 덩치가 큰 조선족 친구 역으로도 등장한다.[36] 총 13명 정도가 보여졌는데 다음화에선 야포를 무력화 시키는 작전에서는 이들중에서 7명이 참가했다.[37] 전봉준은 이들이 공격할줄알고 단검을 빼들었으나 왕초 거지가 자기들도 받아달라는 말에 '진작 좀 이렇게 말할것이지....' 라고 말하며 허탈해하면서 기쁘게 받아들인다.[38] 뚱뚱한 체구의 왕초 거지는 물론 낫을 들고 싸우던 거지도 대포를 지키고 있던 관군과 싸우다 죽었고 그나마 단도를 들고 무쌍을 벌이던 거지 한명만이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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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사실 이것은 1차 동학농민항쟁 시절 조선 측의 반란 진압 능력에 대한 부실함과 고종 측이 아예 외세에 손 빌리기를 시전해버린 것이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 그것 때문에 일본이 참견할 여지가 성립되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