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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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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한국의 나이트클럽3. 종류
3.1. 일반 나이트클럽3.2. 성인 나이트클럽3.3. 콜라텍
4. 주의사항5. 여담
5.1. 홍보 공세5.2. 휴업

1. 개요

밤에 을 마시고 춤을 추며 쇼를 보면서 즐길 수 있는 곳.

사실 원래 의미는 흔히 클럽 #, 또는 댄스클럽이라고 불리는 장소도 포함되나, 한국에서는 부킹 등의 특정한 영업방식을 사용하는 유흥업소만을 칭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트 클럽이라고 떼어서 쓰기도 하고, 흔히 줄여서 나이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한국에서는 '클럽"이라고 하면 서양 스타일의 음악을 듣고 즐기는 클럽을 말하므로, 의미의 분화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방송 같은 곳에는 '무도회장'이라는 표현을 쓴다.

기본적으로 외적인 미에 치중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이기 때문에 특히 젊은애들이 많이 모이는 나이트클럽이라면 외형에 조금 신경을 쓰고 가는게 좋다. 일단 남녀를 불문하고 얼굴이 잘생기거나 예쁘게 생겼으면 큰거 하나는 먹고 들어가는 셈이고, 남자인데 본인 얼굴이 조금 아니라면 남자다운 근육질 몸매나 말발로 승부를 할 수도 있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그냥 옷 좀 비싸고 좋은거 입고 머리 스타일좀 신경쓰고 가면 괜찮은 헌팅을 할 수도 있다.

2. 한국의 나이트클럽

한국의 나이트클럽은 외국과 구별되는 여러가지 차이점이 있다. 외국의 클럽은 한국에서 흔히 클럽(댄스 클럽)이라 불리는 곳과 거의 같으며 술을 마시며 음악을 듣고 춤추며 놀거나 쇼를 보는 형태를 한 곳이 대부분이다. 보통 테이블은 없고 바 정도만 있는데, 이는 한국의 클럽(댄스 클럽)과 거의 같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하지만 한국에서 나이트클럽이라는 업소는 이러한 외국의 나이트클럽과는 구별되는 여러가지 차이점이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외국인들에게 "나이트"와 "클럽"의 차이점을 이야기하면 놀란다. 일단 "나이트"라는 것의 개념 자체가 한국에만 있기 때문이다. 일단, 외국의 나이트클럽 또는 한국의 클럽이 플로어 중심으로 운영되며 테이블은 별실이나 구석에 몇 개만 있는 데 비하여, 한국의 나이트클럽은 테이블 중심으로 운영되며 테이블에서 쇼를 보거나, 별도로 마련된 댄스 플로어에서 춤을 추는 식으로 운영된다. 테이블에서 술과 술안주를 시켜 먹는 것은 나 호프집과 비슷하며 외국에서 비슷한 것을 찾자면 중장년층이 주로 찾는 "카바레" 정도가 있겠다. 어찌보면 한국의 나이트클럽은 캬바레와 기존 서구권 댄스클럽의 혼종이라고도 볼수 있다.

또한 한국 "나이트"만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으로는 "부킹"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즉석 만남으로서, 만남을 원하는 남녀를 웨이터가 돌아다니며 짝지어주는 행위를 말한다. 이것을 위해 한국의 나이트클럽은 클럽과 달리 짝을 지어주기도 하는 웨이터가 다수 포진해 있다. 이 부킹 시스템 때문에 중장년층의 탈선 및 불륜의 장이라는 오명을 항상 쓰고 다닌다. 따지고보면 이 점은 댄스클럽의 어두운 면인 부비부비 및 마약유통 문제에 비견되는 셈.

어쨌든, 부킹 시스템은 플로어보다는 테이블 위주의 관객석 배치와 더불어 클럽과 나이트가 가장 구별되는 큰 특징중 하나다. 해당 나이트내에서 전속 웨이터가 다수 포진해서 호객행위를 한다면 나이트이고, 입장 관리자 및 보안 담당자 한두 명만 있고 따로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 곳을 클럽이라고 보면 된다.

나이트클럽의 전성기는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2000년대 초중반부터 NB, M2 등의 대두로 서서히 위상이 뒤집히기 시작하더니, 2010년대 들어서는 클럽이 주류가 되었고 나이트클럽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분위기. 다만 극소수의 나이트클럽은 어지간한 클럽들보다 강한 입지를 뽐내는데, 광주 상무지구의 상무성인나이트클럽은 엄청난 자본력을 바탕으로 가장 큰 규모의 건물을 운영하고 있으며[1], 대전에서는 여전히 나이트클럽이 강세이고 클럽의 수는 손에 꼽을만큼 굉장히 적다. 그 외에도 지방에서는 랜드마크급의 대형 나이트가 존재하여 유흥상권을 책임지는 케이스들이 존재하며 김해에는 월드나이트클럽이라는 10년 넘게 김해에서 버틴 나이트 클럽도 있고, 익산에는 대형 나이트클럽인 샴푸나이트클럽이 존재한다.[2]

3. 종류

3.1. 일반 나이트클럽

20~30대가 주로 많이 찾는 나이트클럽이다. 최신 유행하는 노래를 리믹스해서 트는 경우가 많으나, 외국의 클럽 문화가 들어온 이후에는 어설프게나마 일렉트로니카(혹은 K-EDM화된 2010년대 이후의 일부 가요들 포함)나 힙합 음악을 틀어주기도 한다.

최신 유행에 가장 민감한 곳이다. 1950년대에는 워낙에 먹고 살 형편이 안 되었기 때문에 유흥문화가 철저히 상류층에 국한되어 있었다. 당시 유흥문화는 여럿이 모여 춤을 추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요정을 비롯한 고급 요리집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에 현재와 같은 나이트클럽이라 할만한 곳이 거의 없었고, 댄스홀이라고 하는 곳이 많았으며 주로 재즈 음악을 연주했다. 현인, 이미자 같은 가수들은 주로 이 시기에 댄스홀에서부터 시작하여 스타가 된 경우가 많아서 스탠다드 팝이나 스윙 곡들을 부르며 활동을 시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 시기의 가수들은 창법이 생각보다 서구적이다. 소위 말하는 "꺾기" 창법은 1970년대가 다 되어서야 등장한다. 이것도 일본 엔카와 서양식 소울 창법이 혼합되어 나타난 한국 특유의 것. 이 당시 댄스홀의 분위기는 영화 자유부인에 잘 나타나 있다.

1960년도에 트위스트 열풍이 불고 나서야 한국에는 현대적 의미의 나이트클럽이 등장하게 된다. 이때는 고고장이나 고고크럽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때부터 클럽에는 밴드가 연주를 하지 않을 때 턴테이블을 놓고 음악을 믹스하는 DJ(디스크쟈키)가 등장한다. 이때부터 나이트클럽은 디스코텍이라는 방식이 도입되기 시작한다.[3] 1970년대에는 나이트클럽이 호텔에 입주하거나 아예 단독적인 대형 건물을 갖추며 대형화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이들 중에서는 시설을 갖추었으며 천장이 열린다는걸 세일즈 포인트로 삼기도 한다. 물론 그만큼 나이트 주변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민폐이기 때문에 돔 나이트클럽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이걸 지적한 뉴스기사가 고척 스카이돔이 건설되기도 전이었는데, '차라리 돔 야구장이면 몰라 이딴 걸 짓다니'라고 개탄하는 의견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나이트클럽은 폐업 후 다른 사업체에게 인수되기도 하는데, 그 중 모델하우스로 개수된다든가, 심지어 대구 모 돔나이트클럽은 망하고 난 뒤 개신교 교회가 건물을 사들이기도 하였다.[4] (#)

이때는 록 열풍에 힘입어 하드 록 밴드들이 나이트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했고,[5] 디스코 음악, 이탈로 하우스를 비롯한 7080 댄스 뮤직 또한 나이트클럽의 디제이들을 중심으로 국내에 상륙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세태에서 아주 기가 막힌 사연들이 많은데, 당시에는 야간 통행금지가 있었기 때문에 밤 12시가 되면 모든 도시가 올 스톱이 되는 시대였다. 그래서 아예 작정하고 놀 생각을 하는 젊은이들은 밤 새서 나이트클럽에서 나가지 않고 노는 경우가 있었고, 이에 발 맞춰 밤 새서 개장을 하는 특별행사를 하는 나이트클럽도 있었다. 이를 가리켜 "올나이트"라는 속어가 생겨났다. 또한 올나이트를 하는 나이트클럽 옆에 여관을 지어서 대박이 나는 연계수익 모델도 있었다.

1980년대에는 야간 통행금지가 없어지면서 나이트클럽이 대박을 치게 된다. 또한 이 시기에는 당국의 단속과 언론의 도덕적 지탄에도 불구하고 일본 문화가 수입되면서, 나이트클럽에서 새벽이 되면 일본 노래를 틀었다. 일본 댄스뮤직에 맞춰 춤을 추는 젊은이들을 통해 콘도 마사히코안전지대, C-C-B, 체커즈 같은 당대 일본 아이돌의 노래 및 시티 팝들이 확산되었다. 나이트클럽은 밤 12시부터 4시까지 영업이 제한되었지만 몰래몰래 올나이트 하는 업소들도 간혹 존재했다. 이 시기의 젊은이들은 나이트에 갔다가, 새벽이 되면 포장마차에서 한잔하고 첫차가 다닐 때까지 만화방이나 심야다방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여담으로 당시 만화방과 심야다방에서는 포르노를 틀어줘서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세대들이 현재 386세대들이다,

여담으로 나이트클럽이 아닌 일반음식점으로 분류된 술집에서 춤을 추는 행위는 불법이다. 2007년 법 개정 이후 가수나 밴드는 유흥 접객원에서 빠지게 되면서 일반음식점에서 공연하는 것 자체는 합법이지만, 댄스 플로어와 조명을 설치하여 춤을 추는 것은 여전히 불법이다. 그래서 일반음식점으로 등록된 클럽이나 라이브홀에 가면 조명이 관객쪽으로는 없고 무대에만 있다.

1990-2000년대에는 일렉트로니카유로비트(당시의 영상)나 힙합이 등장하였으며, 1980년대부터 주류는 가요 리믹스이다. 그리고 문민정부부터 경제활성화와 자유로운 사회분위기가 강세를 띠면서 단속이 약해졌었다. 당시 단속이 약해진 분위기에 생겼던 우스개소리나 도시전설이 꽤 있었다. 대표적으로, 당시 좀 놀던 고3 애들 몇명이 단속 자주 안 뜨는 나이트에 가서 대학생이라고 뻥치고 예쁜 여대생들을 꼬셔서 같이 놀다가, 하필 그 날만 단속날이라 경찰들이 들어오는 바람에 여대생 누나들한테 "누나들 정말 죄송한데 사실 저희 고3이에요. 누나들이 그냥 저희 잠깐 나이트 구경 시켜주러 데려온 거라고 (경찰한테) 말해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했더니, 그 여대생이 "어머 오빠 우리 고2야"라고 해서, 두 쪽 다 경찰서에 끌려간 뒤, 각각 자기 학교 선생님들에게 두들겨 맞았다는 도시전설이 있다.

요즘은 나이트클럽에서 가요를 주로 틀지만, 예전에는 가요보다 팝송이 훨씬 많이 나왔다. 많은 연예인들이 다운타운 디제이나 나이트클럽 디제이로 경력을 시작했을 정도로, 당시 최신 팝송을 공급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DJ들이었다. 음반 자체도 구하기 힘든 시대였을 뿐더러, 새로운 유행에 관한 정보도 구하기 힘든 때였기에 이들은 서양의 새로운 음악을 공급하는 첨병 역할을 한것. 바나나라마나 비 지스같은 밴드들, Lipps Inc.의 Funky town같은 노래들은 지상파가 아닌 나이트클럽에서 먼저 유행한 뒤 확산되었다. 신기한 것은 1990년대 이전에는 팝송이면 이것저것 안 가리고 틀었기 때문에 가끔 하드 록(딥 퍼플 등)이나 심지어 프로그레시브 록(핑크 플로이드 등)을 틀기도 했고 사람들은 이런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다고 한다. 플로어의 분위기를 다소 진정시키기 위해 중간중간 느린 곡을 트는 경우도 있었고, 이것을 가리켜 블루스 타임이라고 불렀으며, 이는 한국에서 블루스를 남녀가 밀착하여 추는 춤이라고 잘못 알려지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 때 트는 곡 중에는 블루스가 아닌 하드 락 밴드의 락 발라드가 꽤 있었다.[6] 물론 정말로 블루스에 바탕을 둔 게리 무어의 Still got the blues 같은 곡도 있긴 했지만.

그리고 DJ의 스타일 또한 일반적인 댄스클럽과 다른데, 양쪽을 섭렵한 다년차 경력 DJ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 사정 기준으로 보통 일반적인 댄스클럽에서는 DJ가 한명당 40분~1시간 가량의 시간을 배정받아 그 시간 동안 믹스셋을 튼다면, 나이트클럽의 DJ들이 믹스를 틀 수 있는 시간은 20분으로 대단히 짧은 편이다. 대신 일반 댄스클럽 DJ들과 달리 DJ 본인이 관객들을 호응시킬 수 있는 멘트(타가다디스코의 진행자가 음악을 끊고 멘트 자주 하는 거 생각하면 될 듯)를 자주 해야 하며, 간혹 직접 나와서 춤도 춰야하는등 댄스클럽 DJ와는 다른 의미로 말빨과 기교가 좋아야 한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평균적인 DJ의 연령대 역시 일반적인 클럽들보다 높다. 일반적인 댄스음악 DJ들이 10대 후반~20대의 연령대라면, 나이트클럽 DJ는 20대 후반부터 50대 이상이라는 듯하다.

부킹이라는 한국 특유의 시스템을 만든 곳이기도 하다. 일단 1980년대 초반까지 부킹이라는 것은 철저히 일부에 국한된 것이라서, 웨이터에게 팁을 주고 "저쪽에 앉아있는 여자애들 좀 괜찮은데 합석 좀 시켜달라"고 하면 데려오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것을 정식화시켜서 일종의 즉석만남을 상설화시킨 것이 현재의 부킹 시스템.

부킹이 완전히 자리잡고 나니 사람들은 술마시고 춤을 추러 오기보다도 이성을 꼬시러 오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물관리라고 하여 들어오는 사람의 외모를 보고 출입을 통제하는 것이 생겼다. 그 전까지는 그런 것 없이 성년이면 너나 할 것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모 라디오 방송의 청취자 사연에 따르면, 1970년대 후반에 고등학교 시절 가발을 뒤집어 쓰고(당시 두발관리하던 시절이라 남학교 중에서 머리길이 3cm만 넘어도 선도부 선생님이 잡아다 두들겨 패는 학교가 많아서 까까머리 학생들이 대다수였다. 여학교 또한 두발 규정이 심해서 단발만 허용이 된 탓에 놀기 좋아하는 여자애들은 가방에 가발을 챙겨 다니기도 했다.) 동네 나이트클럽에 친구들과 놀러갔는데, 동네 다방 마담하고 팔짱으로 끼고 들어온 아버지랑 딱 마주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서로 잠시 당황하다가, 아버지가 당시 돈으로 2,000원 쯤 쥐어 주시면서 "적당히 놀다 들어가고, 엄마한텐 비밀이다."라는 협정을 맺음으로써 무마되었다는 사연도 있었다.

물관리라고 하는 것은 1990년대 초반부터 등장한 것인데, 나이트클럽은 물관리한다는 편견이 여기서 왔다. 이 때문에 전문화된 클럽의 경우 물관리를 하지도 않는데 물관리가 심하다는 편견을 갖는 사람이 꽤나 있다. 당시에는 물관리를 일종의 해괴한 세태로 여기는 언론보도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클럽문화를 널리 퍼뜨리게 한 세대들이 현재 20~30대 MZ세대들이라면 부모인 386세대들은 우리나라 클럽문화를 창시했다고 봐야한다. 그 세대가 20~30대인 심지어 그들이 고등학교에 재학할 1980년대는 전두환의 위시한 신군부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3S정책을 폈쳤는데 이때 유흥문화가 발달하면서 자연히 그세대들이 자연스럽게 클럽을 가셔 즐겼으며[7] 1990년대에는 민주화로 사회적 억압이 없었지고 소득증가로 클럽에 소비할수 계층이 늘면서 더욱더 발달을 하게 된것이다. 386세대들이 우리나라 클럽문화를 창시하고 발전을 엄청나게 기여을 한것 사실이다.

1990년대 한정으로 락카페라는 것이 존재했다. 야간통행금지는 폐지되었지만 당시 존재하던 유흥업소 규제 관련 법안으로 인해 생겨난 독특한 업소다. 해당 문서 참조.

3.2. 성인 나이트클럽

40-50대가 주로 많이 찾는 나이트클럽으로 속칭 카바레 또는 관광나이트라 불린다. 외국에서도 이런 형식의 중장년층 위주의 나이트클럽을 카바레라고 호칭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카바레라고 하면 라이브 밴드가 음악을 연주해주는 곳을 말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 클럽은 대부분 젊은 층만을 받기 때문에[8]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클럽 문화를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주로 트로트나 흘러간 가요를 많이 틀며, 노래 중간에 블루스타임이라고 하여 느린 춤곡 같은 것을 틀기도 한다. 트로트 가수[9]나 연예인, 코미디언, 각종 기예단, 스트립댄서 등이 출연하여 쇼를 하는 클럽이 많은데, 사실 이러한 방식의 "쇼"를 하는 나이트클럽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일반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시대가 변하게 되면서, 2010년대에는 응답하라 시리즈토토가 붐을 반영해 이러한 성인나이트에서 플레잉하는 곡들 중 1990년대 가요의 비중도 점차 늘기 시작했다. 성인대상 나이트클럽의 플라이어에서 출연진에 1990년대 가요 아티스트(당연히 이미테이션 가수도 많이 섞여 있다)를 내세우는 플라이어도 제법 보일 정도.

2010년대의 이미테이션 가수 채용현황에 대해 고찰한 유튜버. 실제 업계 경험자와의 짧은 인터뷰 포함 #

이태원이나 홍대의 클럽에서 노는 연령대의 경우 성인나이트에 오면 독보적으로 어린 나이대가 되며, 이태원이나 홍대의 클럽에서 놀다가 나이를 먹은후 성인 나이트로 옮겨가는 일이 많다. 즉, 2020년대 기준으로 성인 나이트에 가는 40~50대들중 나이먹고 늦바람이 난 경우를 제외하면 젊을 적인 2000년대 초~2010년대에 이태원이나 홍대의 클럽에서 놀다가 2020년대가 되면서 나이를 먹고 성인 나이트로 옮겨온 것으로 보면 되는 셈이다.

심지어 일부 성인 나이트에선 20~30대는 너무 어리단 이유로 입장을 막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40~50대가 주류인 곳에 20~30대가 오면 40~50대 입장에서 어린 손님들이 불편한 경우도 있다보니 직원 입장에서 다른 손님들이 불편해하는 일을 사전에 방지하는게 크다.

6.25전쟁 때는 전쟁터에서 수많은 젊은 사람들과 학도병들이 피흘리면서 쓰러져가고 있는데 카바레를 영업한다고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3.3. 콜라텍

무알콜 나이트클럽이라고도 한다. 1990년대 중반에 도입되었으며 술을 전혀 팔지 않는 나이트클럽으로 본래 도입 취지는 청소년들의 건전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것이었으나, 요즘에는 그러한 취지는 상관없이 완전히 변질된 곳이다.(당시 콜라텍 영상)

1990년대 중반, 청소년의 일탈을 막고 건전한 청소년 문화를 육성하기 위해 유럽권에 있던 "청소년 전용 댄스클럽"을 벤치마킹해서 만든 곳이었지만 야간자율학습 실시 및 피씨방 등의 대체제가 등장하면서 인기가 확 떨어졌다. 게다가 당시에도 콜라텍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치하고 시시한 곳'으로 외면받았으며(#), 기성 사회의 여가 문화에서 단순히 주류만 뺀다고 해서 청소년 문화가 될 수는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금 콜라텍이라 불리는 곳들은 변질되었다고 보는 게 통설이지만, 청소년용 클럽이라는 개념 자체는 근근이 연명하고 있다. 하단 서술 참조.

그리하여 업주들은 변칙 영업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중장년~노년층 공략. 저렴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춤추고 이야기하는 공간으로 변질된 것.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성인콜라텍'이라는 형태의 업소가 등장(#), 편법으로 주류를 판매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콜라텍은 자유업종이라 편법 영업을 단속할 법규가 없었다. 콜라텍 내부의 식당을 별도의 업소로 신고하면 술과 안주를 판매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성인콜라텍을 중장년~노년층의 건전한 문화로 받아들이려는 시각도 있는 한편(#1, #2), 관련 법규 부족으로 안전 사고 등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문제점도 있었다.

2010년대 들어서는 연령대가 조금 더 높아져서 60대 이상의 '신 중년층'이 찾는 장소가 되었다. 만 원 남짓한 돈으로 식사와 술도 즐기고 동년배들도 만나며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것이다.(#1, #2

2011년 말부터 신촌의 "틴플"[10] 등을 중심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댄스클럽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부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예상이 있다. 주 5일제 수업의 전면 실시 및 야간자율학습의 선택제 실시 등을 통해 생긴 여유 시간을 가진 청소년층을 공략하는 것.

위의 콜라텍과 동일한 면허를 가지고 하기 때문에 콜라텍이라 불리는 것이 맞지만, 이미 콜라텍이라는 용어는 노년층들의 사교장이라는 의미로 변질된지 오래이므로, "청소년 클럽"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사실 나이트클럽보다는 전문화된 댄스클럽에 가까운 장소이다.

하지만 생기자 마자 일부 청소년들과 개념없는 업주들에 의한 사고가 생기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인 시선이 싸늘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성인 나이트클럽의 유흥주점이나 일반음식점 면허와 달리 콜라텍 면허의 경우 자유업이기 때문에 단속이 어렵다고 한다.

나이트클럽/일반클럽 등을 섭렵한 DJ의 분석 및 우려.(#) 해당 업계인이 나이가 있는 탓에 청소년 클럽에는 입장할 수가 없어서 외부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 및 논란의 현장으로 간접적인 실태만 바라볼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감안해야겠지만, 요점만 말하면 업장에서 홍보할때 플로어에서 키스하는 커플의 사진을 올리는 식으로 홍보해 일부러 탈선을 조장하는 측면이 있고 업계에서 이런저런 내부 문제를 스스로 규제하지 않는 이상 콜라텍의 변질을 능가하는 사회적인 문제로 터질 것이라는 경고를 하고 있다.

4. 주의사항

특성상 안전사고 위험이 항상 있다. 2003년 7월 제주시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안전 사고가 발생하며 당시 23살 여성이 무대와 벽 사이 틈으로 떨어져 두 다리가 무릎 위에서 잘렸으며 12시간이나 봉합 수술을 시도했지만 끝내 두 다리를 잃고 정도가 심한 절단 장애를 갖게 되었다.[11]

또한 이런곳이 그렇듯 이권자들이나 일부 업계인들이 조폭같은 범죄조직과 연계되기도 해서[12] 나이트클럽에 무지한 일반인들의 시선은 아무래도 좀 위험한 장소일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드라마나 영화같은데서 깡패들끼리[13] 나이트클럽에서 시비가 붙다가 패싸움이 벌어지는 클리셰를 써 먹기도 한다. 비교적 근래 창작물의 예를 들면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허삼식 산하 나이트클럽 이권 관련 항쟁씬도 이러한 부분이 반영된 것이었다.

그리고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몰려 있다는 점, 시끄러운 소리 등등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뺏는 점 등등 때문에 화재 등이 일어나면 큰 인명 피해가 일어날 수 있다. 화재가 일어나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자기가 들어온 입구로 나가려고 하기 때문에[14] 압사 사고도 같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고, 그 때문에 탈출이 어려워져서 사망자가 늘어날 수도 있다.

최근만 봐도 2009년 태국 산티카 클럽 화재로 66명 러시아 흐로마야 로사지 나이트클럽 화재로 156명, 2011년 대만에서 9명, 2013년 브라질에서 키스 나이트클럽 화재 242명, 2015년 대만 14명 루마니아에서 콜렉티브 나이트클럽 화재 64명 사망 등 여러 사건이 있었다. (나이트클럽 화재사건 모음)

2003년 미국 로드아일랜드주에서 있었던 스테이션 나이트클럽 화재 사고 영상(심약자 주의)을 보면 알겠지만 몇 분만에 전체가 불길에 휩싸이는 것을 볼 수 있다. 100여명 사망, 230여명 부상.

예전 사건이지만 1991년 한국에서도 방화로 16명이 사망한 적이 있었다. 거성관 방화 사건 참조. 지금은 다행히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고 있지만 출입 시에는 비상구 위치를 잠깐이라도 눈여겨 보자.

한편 사람이 많이 있기도 하고 (자기네들 기준으로) 타락한 서구 문명의 상징 같이 보이기도 해서 그런지 이슬람 극단주의자와 같은 자들이 테러 표적으로 삼기도 한다. 2002년 발리 폭탄 테러2016년 올랜도 나이트클럽 총기난사 사건이 대표적인 예.

또한 젊고 혈기 왕성한 애들이 많이 모이는데다가, 술이 끼어드는 장소이기에 만취 상태에서 간혹 다른 사람하고 시비가 붙거나 추태 행각들도 중간중간 일어난다. 그래도 그나마 나이트클럽 관련 사업을 하는 대한민국의 어깨들은 공권력의 눈치를 보는 편이라서 취객들을 주먹으로 다스리는 경우는 웬만해선 의외로 드물고, 최대한 말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엔 무력을 쓰는 일도 많았지만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무력사용을 자제하게 된것. 사실 이건 비단 나이트 뿐만이 아니라 사창가 등 타 업소에서도 마찬가지다.

5. 여담

5.1. 홍보 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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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2000년대 중반의 전형적인 나이트클럽(중년 캬바레) 전단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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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이후의 성인 나이트클럽 전단지[16]

일반인들이 나이트클럽하면 보통 떠올리는 것 중 하나이며 보통 댄스클럽과 달리 한국식 나이트클럽에서 살포하는 전단지의 경우 특유의 쌈마이한 디자인이 특징이며, 이는 2010년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반적인 댄스클럽의 전단지가 비교적 예술적인 도안에 출연자 관련 정보는 이름(내지 예명/가명)으로만 간략히 표기하는데 비해,[17] 이쪽은 보통 출연자들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강조하고, 그 옆에 큰 글씨체로 출연자 이름을 적는다.

놀랍게도 이 광고는 거짓이 아니며, 진짜 해당 가수 본인이 출연하여 공연을 한다. 가끔 보면 나이트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가수도 섭외되어 출연하기도 한다. 섭외비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18][19]나이트 입장에서는 정말 큰 맘 먹고 지르는 것이라 공격적으로 광고하는 것이다.

물론, 정말 예전에는 이름만 조금 틀린 이미테이션 가수를 쓰기도 했다. 대놓고 그걸 콘셉트로 잡기도 했었으나 요즘은 그러는 경우가 거의 사라졌다.[20][21]

이미테이션 가수들이 있던 시절에는 별별 해괴한 짝퉁이 많았었는데, 그 중 비틀즈 이미테이션 밴드가 나온다는것을 비틀즈 사진 그대로 써놓고 '비틀즈 전속출연'이라고 쓴 전단지는 짤방거리가 되어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고, 또 여기에 지지않게 히틀러(!)도 있었다(...).

그외에 관련 홍보문구들은 더 크게 써놓고 글자별 색깔은 알록달록 원색인 것도 특징. 밑부분에는 보통 공연이 열리는 나이트의 장소를 적는데, 거기에 해당 나이트에서 전속으로 고용한 웨이터의 별명도 업소명만큼이나 강조된다.

그 특유의 쌈마이함 때문에 간혹 웃겨보이는 전단지는 짤방으로 돌거나, 나이트 전단지 형식으로 패러디하는 유형의 짤방이나 패러디 홍보물도 있다.(예시)

이외에도 길거리에 특정한 나이트클럽의 웨이터 명함이 살포되기도 한다.

간혹 규모가 큰 나이트클럽은 차량 홍보를 하기도 하는데, 그 클럽이 있는 대도시 번화가를 돌면서 요란한 조명에 음악소리는 뻥뻥 울리지, 주변 시민들 입장에서는 다소 눈살이 찌푸려지는데다 지나가는 차량에 큰 민폐를 끼치기도 한다. 기사, 기사 2. 저 차량광고들도 대부분은 불법광고이며, 차량 역시 불법으로 개조했다. 심지어 이런 광고차량은 경우에 따라 지휘통제차량까지 동원해서 대열을 이루기도 한다.(...) 기사

5.2. 휴업

KBS 스펀지 188회에 따르면 한 때 우리나라 나이트클럽도 유일하게 휴업을 하는 날이 있는데, 그 날은 바로 현충일. 호국선열들의 마음을 기리는 뜻에서 쉰다고 한다. 하지만 의무는 아니고 자발적으로 하기 때문에 영업을 하는 곳도 있다.


[1] 심지어 저기는 이태원 메이드의 물주이다.[2] 코로나때 휴업후 2023년 재개장[3] 디스코텍은 원래 "밴드가 연주하지 않고 음반만 틀어주는 주점"을 뜻한다.[4] 현재는 건물 자체가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는 주상복합아파트가 건설 중이라고 한다.[5] 당시 신중현을 비롯한 많은 수의 유명 록 뮤지션들이 남대문의 닐바나같은 대형 나이트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했다.[6] Deep purple의 Soldier of fortune, Scorpions의 Still loving you 등이 단골 넘버였다.[7] 실제로 386새대중 막내라인 60년대 후반생들은 고등학교때 클럽에 가서 유흥을 즐기면서 사회적문제가 되기도 했다.[8] 나이가 많으면 체력이 떨어져 젊은 사람들만큼 신나게 놀기 어려우므로 분위기를 깨트린다고 하여 입장을 제한한다.[9] 밤무대를 뛰는 경우도 많았지만, 당대 유명 가수를 흉내낸 이미테이션 가수들이 있었다. 예를들면 조형필, 패튀김, 너훈아(2014년 별세) 등. 물론 예명만 그렇지 엄연히 실명이 따로 있다.[10] 이대역 근처에 있었으며, 현재는 사라졌다.[11] 2003년 당시 장애 1급이었으나 2019년 7월부터 종전 1, 2, 3급은 정도가 심한 장애로 나머지 등급은 정도가 가벼운 장애로 변경되었다.[12] 당장 부킹 문서만 해도 일부 웨이터들이 범죄조직 말단에 연결되어있다는 서술이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EDM클럽업계도 대형 클럽들이 버닝썬 게이트로 인해 범죄 커넥션과의 연결고리가 기정사실화되어서 남말할 처지는 아니다.[13] 혹은 깡패와 그 깡패들을 잡으려는 경찰들 간에[14] 나이트클럽과 같은 다중이용시설은 화재 등을 대비해서 출구를 여러 개 만들어 놓는 경우가 많지만, 화재와 같은 급박한 상황에서는 본능적으로 자기가 들어온 입구로 나가려고 하기 때문에 한 곳에만 사람들이 몰리기 쉽다. 불길을 피하려다 몰리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15] 해당 전단지는 2008년도에 제작되었으나, 1990~2000년대에 주류였던 성인 캬바레 타입의 전단지에 가까운 듯하다.[16] 참고로 해당 주소지에는 신드롬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17]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이태원 케잌샵 인스타에 올라오는 클럽 전단지와 비교해보자.[18] 나이트관리를 주업으로 한 전직 조폭 출신의 증언에 의하면 한번 섭외하는데 30분에 2-3천만원이 들어간다고 한다.[19] 흔히 연예인들이 빚더미에 오르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밤무대 행사에 출연하는 것이다. 현금 정산이 금방 되고 비교적 큰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20] 애초에 요새 그런 짓 했다가 손님들에게 걸리면 아예 가게 문 닫아야 한다. 나이트 짬밥 있는 사람들이면 정말 본인이 출연한건지 이미테이션인지 금방 알기 때문이고, 저기는 짝퉁가수 쓰고 속였더라는 소문이 순식간에 퍼져나가기 시작하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21] 감이 잘 안오면 영화 범죄와의 전쟁을 보면 나이트클럽에서 박창우(김성균)가 밤무대 출연가수로 소방차를 부른다면서 어디서 이미테이션 댄스팀을 데려온 후 섭외비를 삥땅쳤는데, 그 사실을 알고 같이 숟가락 얹으려는 김서방(마동석)과 싸우다 맥주병으로 김서방 머리를 후려갈겨 뻗게 만드는 장면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