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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韓國基督敎長老會總會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Republic of Korea | |
<colbgcolor=#7d5095><colcolor=#fff> 표어 | 교회여, 다시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노래하자 (에스겔 47:8-12, 요한복음 14:6-7, 로마서 8:18-25, 시편 23:1-6) |
약칭 | 기장 |
설립연도 | 1953년 6월 10일 |
소속국가 | 대한민국 |
총회장 | 박상규 목사[1] |
부총회장 | 이종화 목사[2], 김재현 장로 |
총무 | 이훈삼 목사[3] |
교인 수 | 193,221명(국민일보, 2023년#) |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층 (연지동) |
/ 교육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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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기독교장로회(韓國基督教長老會)는 한국의 개신교 중 장로회의 한 분파에 속한다. 약자로 기장(基長)이라고 부른다.[4]한국에서 대한성공회와 함께 가장 대표적인 진보 교단들 중 하나로, 신정통주의와 포스트모던 신학을 받아들인 교단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대한성공회나 정의구현사제단보다도 극단적인 성향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5] 이는 교단을 대표하는 경동교회와 향린교회의 이미지가 커서, 다른 교회들도 동성애를 전면적으로 인정하고 교회 일치 운동에 가세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진보주의 신학과 교회 일치 운동 하면 한국기독교장로회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그 중에서 보수적인 성향을 띄는 '성풍회'의 경우도 오순절교회의 영향을 받은, 은사주의를 기반으로 한 교회 일치 운동에 긍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선교 중심의 교회로 유명한 전주안디옥교회와 복음주의적 성향의 한신교회도 이 교단 소속이다. 실제로 기장은 미국 장로교단 중 가장 진보적인 그리스도연합교회와 교류하고 있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속해 있는 반면 다른 개신교 교회 연합체에 일절 가입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산하 신학교는 한신대학교가 있다. 대학교 과정은 경기도 오산시에서, 신학대학원 과정은 서울특별시 수유동에서 담당한다.
2. 타 교단에 비해 강한 개교회주의
2015년 기준으로 예장에서 가장 큰 교단인 통합과 합동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 수가 각각 279만명과 270만명으로 도합 약 550만에 육박하는 반면, 기장 교단의 교인 수는 약 26만 명 정도이다. 이렇듯 규모는 작지만, 개교회주의를 존중하는 경향이 커서 총회의 결정을 일원화하는 강제성이 다른 교단에 비해 옅은 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동성애에 대한 견해 차이를 인정하는 점인데, 총회 입장에서는 총회 안에서 동성애 진영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막지 않으며, 과거 표결 결과 동성애에 대한 판단을 유예한 적이 있을 정도로 자유도가 높다.[6]그러나, 결혼을 남녀의 결합으로 규정하고 다른 성행위는 피해야 한다는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신앙고백대로 유지하기로 107회 총회가 2022년 결의하고 성소수자목회위원회를 해산하는 등의 조치로 동성애 옹호진영에 제동이 걸렸다. 아직 기장에도 보수적이고 복음주의적인 목회자와 총대들이 더 많다.물론 총회 산하 신학교인 한신대학교의 경우는 동성애를 인정하는 목소리를 강하게 내는 교수들이 있고, 교회 일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운동권과의 교류도 타 교단에 비해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다. 학생회 역시 진보적 색채를 띄고, 교육 과정에서도 기독교 교리에 대해 진보적인 스탠스를 취한다. 확실히 이런 성향은 각 교단별 총회에 소속된 다른 신학교들과 구별되며, 위에도 언급한 것처럼 한국기독교장로회는 개교회주의가 강한 편이기 때문에 총회 안에서의 회의에서도 건설적인 토론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부 이단 드립에 가장 많이 소비되는 교회들이 대부분 이쪽 소속 교회[7]이긴 하지만, 그래도 총회 안에서 자정 작용을 하려는 노력 자체가 있어 왔고, 그것이 교단 특유의 개교회주의에서 유래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대표적인 예제가 바로 교단의 태생적 약점이었던 신사 참배 문제인데, 많은 내홍을 겪긴 했으나 2007년 총회 결의를 통해 공식적으로 교단 차원에서 공식회개 성명을 내고 2007년과 2008년에 한 번씩 '신사참배 회개주일'을 특별 진행한 역사가 있다.[8]
그러므로 이하 서술된 내용들은, 총회의 결의를 따르긴 하는데 그래도 각각의 교회에서 세부 방침을 다르게 잡더라도 어느 정도 용인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전제 조건을 두고 읽는 것이 좋다.
3. 역사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의 장로회 교단 분열사 문서 참고하십시오.독립 이후 하나의 교단으로 이어져오던 한국의 장로회는 1950년대에 신학적 문제로 기장과 예장으로 분리되었으며, 1960년대 예장 내에서 WCC (세계교회협의회)가입 문제로 통합과 합동으로 분리된다. 1952년까지의 기장 역사는 한국의 주요 장로교인 예장 통합 및 예장 합동과 공유한다.
기장은 캐나다연합교회(United Church of Canada)와 관련이 깊다.[9] 구한말 '선교지 분할 협정(Commity Agreements)'으로 캐나다 선교부가 간도 및 함경남북도를 관할하게 됐고, 기장 교단을 세운 김재준 목사가 용정 은진학교 교목을 역임하며 문익환, 문동환 목사 등을 제자로 삼기도 했기 때문이다. 일본 패망 이후 만주를 장악한 소련에 의해 탄압을 받아 남한으로 내려온 일군의 목회자들이 남북의 통일을 염원하는 개신교 세력이 된 것도 역설적이고 이질적이다. 관련된 내용은 2019년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에 간략히 소개되기도 했다.
두개로 갈라진 예장 교단들 중 예장통합과는 2016년 화해를 하였으나 분리된 역사가 오래되어 교단통합까지는 논의가 진전되지 않는다.
조선신학교에서 모더니즘과 신정통주의(좀 더 정확히는 성서비평학)을 받아들이는 문제로 장로회 내부의 갈등이 벌어진 끝에 결국 김재준 목사가 면직 처분되었고, 결국 대한예수교장로회와 갈라서게 된다. 오늘날 예장(통합) 계열 신학교에서는 카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인 상황이라는 점에서, 50년대의 기장-예장 분열은 안타까운 지점이 많다. 예장 측에서도 이를 인지하고 있는지 김재준에 대한 면직 결의를 2016년 철회하였다. [10][11][12]
본래 조선신학교가 분단 이후 대한민국의 유일한 개신교 신학교였던 만큼 조선신학교를 기반으로 둔 기장은 초창기에는 그 교세가 예장과 큰 차이가 없었는데, 예장 교단이 기장과의 분리 이후 복음주의적 입장에서 복음 전파나 한국 복음화에 초점을 두고 사역하며 교세가 크게 증가한 반면, 기장 교단은 군사 독재 시절 반독재 민주화 투쟁이나 사회적 약자 보호 등 사회 구원에 주력하면서 교세 증가 면에서 예장 교단에 미치지 못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또한 급진적인 포스트모던 신학과 친북 논란 등 자충수가 여럿 두어진 것도 한몫 했다. [13]
1990년대 이후로는 기장 교단에서도 사회 구원과 함께 복음화와 복음 전파에 대해 더욱 초점을 두고 주력하고 있는 추세이다.
2016년 10월, 예장(통합)[14] 측에서 총회장을 비롯한 임원진이 기장 총회를 방문하여 고 김재준 목사의 면직 결의를 철회하는 공문을 전달했다.[15] #
4. 지역별 교세분포
현재 기장 교단 소속의 교회들은 수도권보다는 상대적으로 전라도나 충청도의 농촌 지역에 더 많이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기장 교단만을 놓고 보았을 때 어느 지역에 더 교회/교인이 많냐는 놓고 하는 이야기이다. 전라도, 특히 전라북도 지역에서는 기장 교회가 전국에서 가장 많고 비율이 가장 높은 편에 속함에도 전체 개신교 교회 및 교인 수를 놓고 보면 통합, 합동 등 예장 교단이 압도적으로 많다.[16] 예외적으로 전북 임실군만 기장 교단이 압도적이다. 따라서 이곳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지역을 놓고 보았을 때 그 지역에서 기장이 가장 높은 신자화율을 기록하는 경우는 없다. 대부분의 전라북도 지역에서 이 교단은 어느 정도 선방을 한다 할지라도 임실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도 기장은 소수교단으로 위치한다.[17]경상도 지역 농촌에는 구미, 김천을 빼면 기장이 자리잡지 못한 모습이다. 대신 고신, 합동, 통합 등 예수교장로회 계열 교단이 주로 분포한다. 충청도 지역 역시 통합, 합동, 백석 등 예장 교단과 감리회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이다. 대전의 경우 다른 충청지역에 비해 기장의 교세가 약한 편이다.출처
5. 소속 교회
6. 비판
6.1.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반민족행위
우선 조선신학교의 설립자이자 신사참배와 내선일체 부분의 정당화에 가장 큰 지분율을 가진 김재준은 후에 기독교 장로회 교단 성립에서 큰 역할을 한다 (김재준의 친일 논란에 대해서는 에큐메니안 칼럼 참조).김재준과 같은 신정통주의자였던 칼 바르트는 같은 제국주의 치하에서도 디트리히 본회퍼와 함께 바르멘 신학 선언을 작성하며 반나치 활동을 벌였다는 점에서, 김재준의 행보는 비판받을 소지가 충분하다.
또한 1941년 일본 제국을 찬양하는 기념사를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발표한 조승제 목사(근거:뉴스엔조이 칼럼)를 기장 총회장으로 선출하기도 했다.
위와 같이 기장-예장 분립 후의 기장 교단에서 과거 친일 인사들이 적극 채용되었다는 사실은 예장측 지도부와 대조된다. 분립 후 예장에서 1954년 총회장에 선임된 한경직 목사는 신사참배 가담을 이유로 사임함으로써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를 재확인했고, 1992년 템플턴 상을 받았을 때 다시 한 번 일제강점기 당시의 친일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죄하면서 개인 레벨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6.1.1. 반론
다만, 기장과 예장의 분리는 1950년대 이후의 일로, 일제강점기에 친일했다는 비판의 1차적인 타겟은 조선신학교 계열 장로교 전체에 가해질 수 있다. 윗 문단의 비판의 대부분은 예장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특히 1930년대 이후 언더우드[18]가 신사참배에 대해 국가의례라는 입장을 표출해왔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예장(통합)에서 오늘날까지 언더우드를 숭상하며 이에 대한 비판이 없었다는 점은 주지할 만하다.[19](안종철, 2008) 이는 위에서 인용된 바와 같이 기장 내 친일행위에 대한 비판이 기장 교단과의 연관성이 높은 에큐메니안과 뉴스엔조이에서 나온다는 점과 대조된다.당시 장로교 신학교는 조선신학교과 평양신학교 두 군데였는데, 그중 조선신학교는 일제에 순응한 장로회 교인들의 구심점이었던 반면 평양신학교는 신사참배에 강력하게 저항한 학교였다. 예장과 기장 전 계열을 떠나서 당시 신사참배와 친일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은, 주기철 목사 등 신사참배 거부로 투옥된 목사들이 광복 이후 조직한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대한예수교장로회(재건) 등의 '출옥성도파' 극히 일부뿐이다.[20]
일단 기장 분립 이전 형식적으로나마 참회는 없이 취소 결의는 있었다. 1946년 단일 총회에서 신사참배 취소 결의가 있었고, 1947년과 1948년에 반복 확인되었다. 이 부분은 예장과 기장 공통의 역사이다. 그러다가 조헌정 목사가 향린교회 담임 목사이던 시절 본인의 가문이 저질렀던 친일에 대해 사죄한 것 등으로 총회 차원에서 내홍을 겪으며 공식 참회에 대한 내부 조율이 진행되었고, 위에도 언급된 것처럼 2007년 총회 결의를 통해 공식적으로 교단 차원에서 공식회개 성명을 내고 2007년과 2008년에 한 번씩 '신사참배 회개주일'을 특별 진행한 역사가 있다.
6.2. 군사정권과 야합
목사와 유명 교인 상당수가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으나, 무려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여한 교단이기도 하다. 교단의 창립자라고 할 수 있는 김재준 목사가 1968년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제1회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여한 바가 있으며, 총회장을 역임하고 당시 한신대학교 총장이던 조향록 목사가 1980년 8월 국보위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여한 바가 있다. 외려 예수교장로회 고신측이 교단 차원에서 그 기도회에 불참했다. 심지어 조향록 목사의 경우 무려 '국가보위입법회의'[21]에도 종교계 대표로서 참여한 바가 있으며, 이후로도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고수했다.[22]물론 전두환 시기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여하지 않은 교단은 고신과 대한성공회 정도밖에 안 되므로 기독교 전체를 까는 소재로 쓰이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역시 신사참배 문제와 마찬가지로 국가조찬기도회를 주도적으로 이끈 세력이 이 교단 소속 목사들이었다는 사실을 흐리게 만드는 변명이다. 특히 이 부분은 그나마 개인 차원의 명목상 사죄 표현이라도 있었던 신사참배 문제와 달리 그 누구도 사과와 회개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 안 좋은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기장의 강원용 목사의 경우 전두환 신군부 정권과 그 뒤에 이어진 노태우 정권에까지 적극 협조했다는 점에서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다만 노태우 정권은 민주주의 선거로 탄생했고 민주화의 디딤돌 역할을 한 조치들, 야당과의 적극적 소통 등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도 많다. 광주민주화운동이후 전두환 정권 집권과정에서 강원용은 국정자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이후 노태우 정권에서는 방송위원회(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6.2.1. 반론
이에 대한 반론은, 성경에서 예수가 말한 바와 같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라는 것이다. 교단 내 다수 목사들의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더라도 사회의 일원인 개신교 주요 교단으로서, 교단 지도부는 국가행사 참여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전두환 정권 시기 조찬기도회에는 예장 측의 한경직 목사 등 역시 같은 이유로 참여했고, 또한 기장측 총회 안에서 조찬기도회 참석 문제로 소수 의견이나마 반대 의견이 나온 적도 있다.그러므로 조찬기도회에 참석하며 군부독재의 정당화에 기여한 바가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는 해도, 그것이 기장 산하 모든 교회가 일괄적으로 군부독재를 옹호했다는 결론으로는 연결되지 않는다. 기장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과정 중에 대한성공회 및 천주교와 더불어 기독교 교단 중 민주화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 곳이다. 이는 6.10 항쟁에서 향린교회가 서울주교좌성당 및 명동성당과 함께 보여준 기여와 희생에서도 잘 드러난다. 대표적인 예제로, 6월 항쟁을 제일 잘 묘사했다고 평가받는 영화인 1987에 나오는 '향림교회'가 향린교회를 모티브로 한 교회라는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비판 측에서 예장고신 측이 전두환 정권 조찬기도회에 참여한 적이 없다고 서술하였는데, 군부독재 기간 중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이후로는 대부분의 조찬기도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비판 측의 이야기가 정확한 근거 자료로 작용하려면, 군부독재 기간 종료 직후 조찬기도회 폐지를 건의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어야 하는데 그런 정황은 발견되지 않는다.[23]
6.3. 대북 행보
문익환 목사의 옥의 티 중 하나다. 그는 노태우 정부 시절 무단 방북 후 직접 김일성과 합의문을 만들었던 전적이 있다. 물론 문익환 목사는 북한 체제를 비판했고 실제로 북한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간 단체를 해산하여 한 노력으로 인해 사상 자체는 비판할 수 없다. 오히려 그는 매우 건전한 가치관을 가진 목사였다. 모범적 삶을 살았기 때문에 존경받을만한 분이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양해를 구하고 갔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동일 교단 소속 한상렬 목사는 이와 달리 매우 불건전한 사상을 공개적으로 드러냈으며 노골적으로 북한을 찬양했다.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경직되고 일체의 북한 방문이 금지된 상황에서, 개인 판단으로 무단으로 방북하여 김정일과 만나려다 북한에 의해 거절 당하고 돌아오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는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과 관련해서 논평을 통해“북측에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하나님의 위로가 북녘 동포들에게 함께 하기를 기도하며, 북측이 하루 속히 큰 슬픔을 이기고 안정을 되찾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밝혔다. 기사 이는 북한이 독재정권임을 알지만 단순히 인간적 측면에서 애도를 한 것이고 일부 소속 교회의 종북주의적 입장은 한국기독교장로회 내에서 소수일 뿐이라는 것이 옹호측의 입장이지만 설득력에 있어서는 미지수다.
6.3.1. 반론
앞선 모든 문단들에 적용되는 사항으로서, 교단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개별 목사에 대한 비판은 핀트에 어긋난 것으로 보인다. 개별 목사의 행보는 교단차원에서 완전히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개인에 대한 비판으로 그쳐야한다. 무엇보다 교단 지도부를 맹목적으로 우상화하는 일부교단과 달리 기장에서는 김재준의 친일, 강원용의 군사독재 협력 등에 대해 신학생들이나 일선 목사들이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학교에 대자보가 붙는 경우도 많다. 결정적으로 이러한 개별 목사들의 친일 혹은 친군사정권 팩트로서 비판 측이 인용하는 칼럼이 어느 언론사에 실린 것인가를 살펴보면, 기장측 언론인 에큐메니언, 뉴스엔조이다. 교단차원에서의 내부비판은 반성의 단초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개별목사에 대한 비난이 교단의 성격을 기술하는데 얼마나 유의미한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친북 논란에 휩싸인 목사는 기장의 일부 목사들에 해당한다. 그들이 비판에서 말하는 '네임드 목사'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친북 활동을 해서 논란과 물의를 일으키고 언론에서 자주 호명되기 때문에 '네임드'로 인식되는 것인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본 문서의 다른 부분에서도 나와있듯이, 기장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고 다양한 교회와 다양한 목사가 있다. 만약 기장이 포용성이 없다면 보수주의 드라이브를 거는 목사 교회를 내치거나 친북적인 목사를 내치거나 둘중 하나를 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친북논란에 휩싸이게 된 까닭은 다름아닌 기장의 포용성에서 그 이유를 찾는 게 옳다.
비판에서 제기하고 있는 것은 한상렬 목사와 문익환 목사 두 건에 불과한데, 그것은 극소수의 건수를 잡아서 과대해석하는 일반화를 범하는 것이다. 이것이 일반화의 오류가 아니려면, 즉 친북이 기장의 전체적인 경향성이라면, 다른 사례들 역시 발견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문익환 목사의 비서였던 하태경에 의하면 문익환은 말년에 범민련이 주체사상파에 의해 잠식되자, 이를 해체하고 새로운 통일 운동 기구를 만들고자 시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범민련 내부의 '진짜 종북'(즉 주사파)들에게 프락치로 몰렸다고 한다 인터뷰 자료. 통일운동과 평화운동 그리고 종북주의는 얼핏 경계가 모호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며, 문익환 목사의 사상은 교회가 종북으로 몰리기 무서워서 통일운동과 평화운동자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주의였다.
7. 기타
- WCC, WCRC, CCA, NCCK의 회원 교단이다.
- 대한민국 현대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 교단으로, 6월 항쟁이 태동한 곳들 중 하나인 향린교회가 바로 기장 소속의 교회. 보통 민주화운동을 생각하면 가장 많이 떠올리는 곳이 명동성당이지만, 향린교회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향린교회에서 강남향린교회, 들꽃향린교회, 섬돌향린교회가 분립되어 개척되었으며, 이 중 섬돌향린교회(임보라 목사)는 한국에 몇 안되는 성소수자 친화적교회이다.[24] 이들 교회는 단순히 성소수자를 배척하지 않는 걸 넘어, 아예 성소수자 축제 등 퀴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회다.
- 최근 섬돌향린교회에서 성소수자를 위한 예배를 드리고있는 임보라 목사에 대해 예수교장로회 합동을 비롯한 보수 교단들이 이단 판정을 하겠다고 나섰다. 이는 기독교장로회측에 공식적인 통보도 없이 타교단(그것도 같은 장로회 교단)의 목사에 대해 이단 여부를 판정하겠다고 하는 것이여서, 문제가 되고 있다. 앞으로 기장측의 대응과 합동측의 판정 결과에 기독교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25]
- 사실 기독교장로회 소속 교회들이라고 해서 모두 경동교회나 향린교회처럼 가는 건 아니며, 그외 다른 교회들로 가면(특히 지방쪽) 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들과 별 차이 없는 경우도 많다.
- 토착화에 신경을 쓰는 교단답게 전주고백교회 등 일부 교회에서는 예배 시작때 서양식 탁자종이 아닌 동양식 종이나 좌종(坐鐘)[26]을 치기도 한다. 또 유독 한복 두루마기 처럼 된 예배용 스톨이나 강단보를 사용하는 교회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 향린교회의 경우 국악찬송가를 부르기도 하며, 각종 전통악기들이 교회 예배에 사용되기도 한다.
- 한국의 개신교 교파 중에선 대한성공회와 함께 술, 담배, 제사 문제에 비교적 관대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역시 진보적인 개교회 한정이며 성풍회에 소속된 보수 성향 교회들은 예장처럼 술, 담배를 금지한다.
- 진보적인 교단으로 유명하지만 소속교회 혹은 성도들이 모두 진보적인 것은 아니다.[27] 기장 내에도 보수적인 교회들을 주축으로 한국기독교성풍회가 조직되어 있다. 성풍회 교회[28]들의 분위기는 다른 예장 교단들과 크게 다르지 않고, 예장교단 소속교회들과의 교류도 많다.[29] 이들 성풍회 교회들은 다른 예장 교회들처럼 전도에도 열심이라 기장교단 내 지분을 착실히 늘려가는 중이다. 또한 개개인들 중에서도 보수적인 신자들도 많다. 대표적으로 제7대 고양시의원이었던 자유한국당 이규열 전 의원으로 기장측 능곡교회 장로이다.
- 나무위키에서 가장 먼저 문서가 생성된 대한민국의 개신교 교단이다.
8. 나무위키에 등재된 인물
- JIN
- 강원용
- 고건
- 권오중
- 김관영
- 김상근 - 목사, KBS 제13대 이사장
- 김성주 - 방송인. 경동교회에 출석한다. 이따금 성경봉독을 한다.
- 김영진 - 정치인.
- 김영훈(고지능자)
- 김용민 - 언론인, 벙커1교회 담임목사[30]
- 김재준
- 목일신
- 목치숙
- 문동환 - 목사, 교육자, 정치인. 문익환 목사의 동생
- 문익환
- 박동진 - 국악인.
- 박목월
- 백아연
- 복기왕
- 서영훈
- 손학규 - 정치인
- 손혜원 - 정치인
- 송호열 - 서원대학교 교수
- 신낙균
- 신동엽 - 코미디언. 경복교회 출석교인.@
- 양경규 - 정치인
- 엄태석 - 교육자, 서원대학교 교수
- 윤미향 - 정치인
- 윤종군
- 이춘석
- 임보라 - 목사
- 장상 - 목사, 교육자, 정치인
- 정갑영 - 교육자
- 정상수 - 래퍼
- 조희연 - 교육자, 서울특별시 교육감.
- 한명숙 - 전 국무총리.
- 한상렬 - 사회운동가, 목사.
- 함태영 - 제3대 부통령, 법조인[31], 목사, 독립운동가
- 황주홍
9. 관련 문서
[1] 광주 성광교회 담임목사.[2] 보령 초대교회 담임목사.[3] 성남 주민교회 담임목사 역임[4] 이와 대비되는 의미로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예장이라고 부르는데, 보통 길거리에 보이는 대부분의 장로회 교회가 예장에 속한다.[5] 2차대전 이전의 자유주의는 모더니즘 사조와 연관이 깊고, 반대로 2차대전 이후의 자유주의는 신정통주의와 함께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된다.[6] 다른 개신교 교단에서는 이런 식으로 총회의 '주류 흐름'에 대해 반발하는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다.[7] 밑에서도 언급하겠지만, 신사참배 관련 문제와 군부독재 협력 관련 문제가 있었던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8] 2번만 하고 말았던 이유는, 그것이 연례행사가 될 경우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해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교회언론회에서 2010년에 낸 논평을 보면, 당시의 진보주의 개신교 교단의 전반적인 입장을 확인해볼 수 있다.[9] 여담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은 "캐나다 장로교회"의 영향을 받았다. 캐나다 장로교회는 캐나다 개신교회에서 에큐메니컬 운동의 결과 캐나다연합교회가 성립될 때 합류하지 않고 지속을 택한 교회들이 유지한 교단이다. 공교롭게도 대신은 기장과 완전히 정반대 성향을 띄고 있다. 또한, 신사참배에 거부한 출옥성도 교단 셋 중 하나[32]인 대한예수교장로회(순장)측도 캐나다장로교회 선교사의 영향을 받은 함경도 출신 이계실 목사를 중심으로 분립되어 이어진다.[10] 지역적으로는 함경도 출신의 목회자들이 기장 측을 많이 선택했고 평안도와 황해도 출신(서북 지역) 목회자들이 예장을 많이 선택했는데, 이는 함경도 지역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캐나다 선교사들과 일본의 신학의 영향을 많이 받은 반면, 서북 지역 목회자들은 보수 신학이 강한 미국의 북장로회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 이러한 결과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있다.[11] 이외에 서북 세력이 주류를 이루던 예장 교단에 대항하여 경기도와 충청도 등 기호지역의 상당수 목회자들 역시 기장 교단에 가담하였다. 현재는 수도권이나 충청도 장로교회들도 예장 교단 소속이 대다수이다.[12]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들이 선교를 맡았던 전라도 출신 목회자들은 예장과 기장 양측에 모두 많았고, 호주 선교사들(주로 부울경)과 미국 북장로회의 선교 지역이었던 경상도 지역 목회자들은 주로 예장 교단에 참여하였다.[13] 가령 보수 개신교계 최대 교단 중 하나인 예장 합동의 경우 기장 목사에 대해 동성애 허용여부 관련 이단 검증에 나서는 등 갈등이 빈번히 빚어지고 있다. #[14] 현재 한국의 개신교 교단들 중 최대 교단으로, 그 다음으로 대규모 교단인 예장(합동)과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가입 문제로 갈라졌다.[15] 2016년 9월 이루어진 예장(통합) 101회 총회 결정 사안.[16] 전라도 지역 예장 교단들의 교인 수는 100만명 이상이나, 기장 교인 수는 10만 남짓으로 10:1의 비율이다.[17] 전라북도에서 대대로 살아온 익산군(현재의 익산시 시내 지역) 일대에서 살아온 사람에 의하면, 기장 교단은 그래도 전라북도 지역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통합, 합동과 더불어 전라북도의 메이저 교단이라고 직접 말해 주기도 하였다.[18] 널리 알려진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한국명 원두우)가 아닌 그의 아들 호러스 호톤 언더우드(한국명 원한경)이다.[19] 언더우드가 신사참배를 국가의례라고 주장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신사는 미국의 "무명용사의 묘 또는 링컨 기념관과 같은 성격”의 것이다. 둘째, 참배 의식에는 간단한 묵례만 있고, “궤배(跪拜, genuflection)와 부복(俯伏, prostration)”은 없으므로 “예배행위”가 아니다.[20] 예장(고신)의 경우 1938년 이루어진 신사참배 요구와 그로 인한 평양신학교의 폐교, 이어진 조선예수교장로회(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의 신사참배 결의에 항거하여 빠져나온 목사들을 중심으로 설립된 교단이다.[21] 널리 알려진 국보위의 후신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항목 참조.[22] 이에 대해 박정희 정권 말~전두환 정권 초 한신대학교가 종합대학으로 인준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는데, 그렇게 본다면 본인에게 이익을 준 상대방이기에 다른 과를 무시하고 우호적으로 보았다는 설명이 되므로 더욱 부정적인 면모가 된다.[23] 최초의 공식 채널을 통한 조찬기도회 폐지 청원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한 2018년의 시도였다. 그것도 개신교 쪽과 아무 상관 없는, 오히려 반기독교에 가까운 성향의 청원이었다.[24] 성소수자만 있지 않기 때문에 성소수자 교회라는 표현은 애초에 잘못된 표현이다. 성소수자 목회를 중심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교회로는 예장통합 출신 박진영 목사가 시무했던 독립교회인 로뎀나무그늘교회가 유일하다.[25] 보수 교단 측에서 임보라 목사가 이단으로 의심된다는 근거로 드는 것이 퀴어 신학이라는 성소수자에게 포용적인 신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성애에 대한 찬반을 뒤고 하고라도, 이 문제를 가지고 신학적으로 이단이라 규정하는 게 맞는 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기독교의 이단 판정은 그 교회의 신자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는냐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성소수자에게 포용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단으로 지목하게 된다면, 이는 국내 기독교계에서도 판정 결과를 놓고 내홍이 있을 것이고, 미국이나 유럽의 많은 기독교 교단들과도 적지 않은 마찰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26] 원래는 불교에서 사용하는 법구로,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북한 지역의 사찰에서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남한 사찰들이 상대적으로 덜 사용하는 편이지만, 불교용품 판매점이나 사이트에서 꾸준히 판매할 정도 수요는 나온다. 일본 애니메이션 등에서 '띵' 소리 나는 게 바로 이것이다. 같은 진보 계열인 성공회에서는 감사성찬례 때 종 대신 사용하며, 한국 천주교 역시 미사 때 좌종을 사용하는 경우가 꽤 있다. 인도나 네팔, 티베트 등지에도 좌종이 있지만 우리나라 좌종과는 모양과 소리가 약간 다르다. 좌종을 영어로는 싱잉 볼(singing bowl)이라고 부른다.[27] 반대로 보수적인 교단에도 진보적인 성도가 다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명성교회 신도이지만 차별금지법 제정에 호의적인 진선미가 그 예.[28] 대표적으로 서울 구로구의 ㄱ교회, 강서구의 ㅂ교회, 전북 전주시의 ㅇ교회 등.[29] 특히 기장과 포지션이 가장 가까운 예장통합과의 교류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예장백석, 예장합동 등과의 교류도 부분적으로 있는 편이다.[30] 2022년 6월 목사고시 합격 후, 12월 목사 안수 받음.[31] 대한제국의 판사, 검사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