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장로회 경동교회 京東敎會 | Kyungdong Presbyterian Church | |
<colbgcolor=#CCC><colcolor=#000>규모 | 대지면적: 1663.5 m² 건축면적: 887.1 m² |
교단 | 한국기독교장로회 |
주소 | 서울시 중구 장충단로 204 |
링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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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동교회 내부. 설교단 쪽을 내려다보는 구조이다 |
경동교회는 서울시 장충동에 위치한 한국기독교장로회의 대표 교회이다. 경동교회의 예배당은 한국의 현대건축사에서 유명하다.
2. 건축
김호민 건축가가 소개하는 경동교회 |
지금도 나는 매 주일 경동교회를 출입할 때마다
건물 구석구석에서 그 당시 김수근 선생과 나눈 대화가 생생하고
그 분의 살아있는 몸을 만나는 것처럼 느낀다.
강원용 - <당신이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입니까>
건물 구석구석에서 그 당시 김수근 선생과 나눈 대화가 생생하고
그 분의 살아있는 몸을 만나는 것처럼 느낀다.
강원용 - <당신이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입니까>
경동교회 건물은 건축학도에게 있어서 반드시 답사해야 하는 현대 서울 건축 중 하나이다. 수상 내역은 아래와 같다.
이 교회는 건축가 김수근의 대표작 중 하나로 유명하다. 두 손을 모으는 듯한 형상은 흡사 카타콤을 연상시키며 다소 막힌 구조는 뒷편과 십자가 바로 위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을 강조하는 기능을 한다.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2년 제30회 서울특별시 건축상을 수상하였다.
건축 자체는 1980년 완료되었으나 이후 교회측의 필요에 따라 건축학적 가치와 상관없는 증축을 하여 원래의 형상이 다소 훼손된 상태라고 한다. 김수근의 건축설계사무소인 '공간' 사옥에 있는 경동교회 초기 구상을 보면, 예배당의 위층에 열린 모임공간을 만들었으나 교회에서 실용적인 이유로 거기에 천장을 덧댔다. 김수근의 제자이자 경동교회 설계에 참여한 승효상 역시, 여러 차례에 걸쳐 이 점을 비판하였다.
2012년 '서울건축문화제' 당시 경동교회 건축을 아래와 같이 일목요연하게 소개하였는데, 경동교회 건축을 간편하게 일람하고 있기에 아래와 같이 인용한다.[2]
서울의 번잡한 도시 풍경 속에 위치하는 이 건축의 특징은 교회의 회중석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가로로부터 건물의 뒤쪽으로 돌아들어가야 하는데, 작가는 이 경로를 예배자가 도시의 일상성에서 신성으로 전이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그 종교성을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성취하게 하도록 길다랗게 경사진 진입로를 통해 예배자들을 이끌며 세속의 번잡을 순화하는 역할을 한다.
본당 내부는 콘크리트의 알코브들이 둘러싸면서 경사진 공간을 제단 쪽으로 집중시키며 긴장감을 고취시킨다.
외관을 지배하는 붉은 벽돌은 거칠게 자른 마구리 면이 종교적 성격을 대신한다. 건축의 형태는 상승하면서 줄어드는 수직적 억양이 종교적 상징성을 나타낸다. 노출콘크리트로 끝낸 내부는 중세 교회와 같이 인상지어지면서, 절제된 빛의 표현과 함께 종교적 의미를 더한다. 옥상에는 이 교회의 다양한 행사를 가능케 하는 ‘열린 교회’가 있으며, 이 교회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다. 이 건축의 모습은 풍부한 메타포를 만들면서 강한 상징을 갖게 한다.
본당 내부는 콘크리트의 알코브들이 둘러싸면서 경사진 공간을 제단 쪽으로 집중시키며 긴장감을 고취시킨다.
외관을 지배하는 붉은 벽돌은 거칠게 자른 마구리 면이 종교적 성격을 대신한다. 건축의 형태는 상승하면서 줄어드는 수직적 억양이 종교적 상징성을 나타낸다. 노출콘크리트로 끝낸 내부는 중세 교회와 같이 인상지어지면서, 절제된 빛의 표현과 함께 종교적 의미를 더한다. 옥상에는 이 교회의 다양한 행사를 가능케 하는 ‘열린 교회’가 있으며, 이 교회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다. 이 건축의 모습은 풍부한 메타포를 만들면서 강한 상징을 갖게 한다.
이외에도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건축적 의의는 아래와 같다.
2.1. 주입구의 방향
'Hidden Architecture'는 경동교회의 주입구(main entrance)를 의도적으로 불편하게 배치한 것을 건물이용자 측면에서 해석하였다. 경동교회 건물이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들어오는 경로를 구불구불한 배치하여 이용자들이 종교심을 가질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이 건물에서 상향적 사선을 많이 쓴 점을 주목했다.#들어오는 길목을 일부러 큰길에 내지 않고 틂으로서 진입하는 경험의 과정 속에서 성과 속을 분리하려 했다는 점은 승효상 인터뷰에서도 증언되었다.#
2.2. 깨진 벽돌
경동교회 건축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불규칙하게 깨진 붉은 벽돌이 전면에 배치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공간 사옥에 보존되어 있는 설계노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다수의 블로그에서도 이 지점을 언급한다. 특히 '건축블로그,공간' 블로그에서는 # 경동교회 건축을 김수근 후기 종교건축의 정수로 평가한다.2.3. 노출 콘크리트
경동교회 건물 외부에 깨진 벽돌이 강조되는 것과 대조적으로 예배당 내부는 노출 콘크리트로 구성하였다. 승효상의 초기 구상 노트에 따르면 1980년대 당시 이는 매우 실험적인 제안이었으며, 오히려 노출 콘크리트를 통해 '따뜻한 느낌'을 주려했다고 한다.2.4. 경동교회 건축을 설명한 외부 링크
2.4.1. 건축가 측면에서
2.4.2. 도시건축(미관) 측면에서
- 2014 서울건축주간 Open House Seoul 홈페이지의 경동교회 소개 #
- 2019 서울건축주간 Open House Seoul 홈페이지의 경동교회 소개 #
- 중앙일보에서 소개한 서울의 현대건축 답사지 7 #
2.4.3. 신학적 측면에서
- 경동교회의 건축해설 #
3. 한국기독교장로회의 대표교회
- 경동교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교단을 대표하는 교회로, 기장 교단을 대표하는 김재준, 강원용 목사 등의 목회자들이 사역했던 교회이다. 한신교회나 강남교회, 전주 안디옥교회 등 같은 교단 내에 있는 다른 중대형교회에 비해 신자 수는 적지만, 역사적 대표성 등으로 인해 교단 내에서 대표적인 교회로 꼽힌다. 경동교회는 특히 에큐메니컬 운동에 상당히 적극적인 교회인데 매년 6월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과 교환예배를 17년째 진행해오고 있다. 경동교회 신도들도 세례를 받았다면 교환예배에서 영성체를 할 수 있다. 또 성공회 서울교구 최초의 여성 사제인 김기리 미리암 신부가 성공회로 옮기기 전에 다녔던 교회이기도 하다. 경동교회의 경우 예배에서 상당히 전례적인 것을 강조하는 편인데, 이유는 경동교회가 스코틀랜드 장로회의 예배 형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 개신교 교회에서 거행하는 변경예배보다 훨씬 절차를 강조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 경동교회의 또 다른 특징 중의 하나는 바로 주일예배 형식인데, 일반적인 우리나라의 개신교 특히 장로교회와는 달리 교회력과 성서일과에 따라 성서본문(구약, 서신서, 복음서)이 낭독되고 기도문과 시편송, 성만찬 기도 등이 정해져 있는 상당히 전례적인 예배를 드리기로도 유명하다. 경동교회의 이러한 형태는 박종화 목사 이후에 정립된 것으로 보는데, 이는 박종화 목사가 독일에서 유학하면서 독일을 포함한 유럽 개신교회의 전례 회복 운동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3] 후임 채수일 목사 역시 박종화 목사의 한신대 및 독일 유학 후배였으며, 현직 임영섭 목사도 박종화 목사 시기에 부목사로 재임했었던 인물이기 때문에, 박종화 목사가 정립한 경동교회 식 예배형식은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 박종화 이전의 경동은 오히려 이전의 경직된 예배순서를 깨는 것으로 유명했다. 교회에서 연극을 올리거나[4] 특히 1970년에 있었던 통기타 예배사건 등 한국 복음성가와 CCM 운동의 근원지로 작용했던 것이다.
[1] 25년 건축상은 작품의 원형의 가치와 이를 오랫동안 보존한 것을 치하하기 위한 목적의 상이다. 수상소식을 들은 승효상 건축가는 코웃음을 쳤다고 알려져있다. 실제로 승효상은 '본래 건축의 의미와 형태를 교회 측에서 훼손하였다'는 입장이다.[2] 다만, 이 글에서 경동교회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으로 언급하는 옥상의 '열린 교회' 부분은 2012년 당시에도 이미 사라진 자질로서, 문화제 행사 진행 장소에 한번도 답사를 해보지 않고 이전의 글을 복붙해버리는 서울시 건축 담당자들의 탁상행정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3] 성공회의 고교회파 움직임에 영향을 받아 유럽의 비성공회 개신교에서도 19세기~20세기에 걸쳐 예전 회복 운동이 일어났다.# 오히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수 성향 장로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 형태가 오리지널에 더 가깝다는 주장도 있다.[4] 지금은 한국의 대부분 개신교회가 그렇지 않지만 예배당을 성소로 인식하고 찬송이 아닌 노래를 부르거나 연극 등을 올리는 것을 터부시하던 시기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