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9 18:11:59

사망유희

Game of Death에서 넘어옴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여신전생 시리즈의 스킬에 대한 내용은 사망유희(여신전생 시리즈)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변희재가 진중권을 상대로 제기한 10회 연속 토론 릴레이에 대한 내용은 사망유희 토론배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이소룡 서명.svg
이소룡
주연 5부작
{{{#!wiki style="margin: 0 -10px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당산대형|
파일:The Big Boss Logo.png
당산대형 (1971)]]
[[정무문|
파일:Fist of Fury Logo.png
정무문 (1972)]]
[[맹룡과강|
파일:The Way of the Dragon Logo.png
맹룡과강 (1972)]]
{{{#!wiki style="margin: -15.5px -10.5px" [[용쟁호투|
파일:Enter the Dragon Logo.png
용쟁호투 (1973)]]
[[사망유희|
파일:The Game of Death Logo.png
사망유희 (1978)]]
}}}
}}}}}}}}} ||
<colbgcolor=#000> 사망유희 (1978)
死亡遊戯|Game of Death[1]
파일:attachment/사망유희/1973.jpg
<colcolor=#ffffff> 감독 로버트 클라우스
이소룡
홍금보
각본 로버트 클라우스
추문회
이소룡
제작 추문회
출연 이소룡
기그 영
딘 재거
칼린 캠프
김태정
원표
로버트 월
휴 오브라이언
댄 이노산토
카림 압둘자바
지한재
왕호
편집 앨런 퍼틸로
음악 존 배리
제작사 파일:영국령 홍콩 기.svg 골든하베스트
배급사 파일:영국령 홍콩 기.svg 골든하베스트
파일:미국 국기.svg 컬럼비아 픽처스
개봉일 파일:영국령 홍콩 기.svg 1978년 3월 23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78년 5월 18일[2]
파일:미국 국기.svg 1979년 6월 9일
제작비 5,000만 달러

1. 개요2. 내용3. 사망적유희4. 기타5. OST

[clearfix]

1. 개요

파일:attachment/game_of_death-tdolbin.jpg파일:attachment/A6432-01.jpg
영문판 포스터 한국판 VHS 표지

이소룡이 후반부 하이라이트 격투 장면만 찍은 뒤 용쟁호투의 섭외가 들어오면서 중단되었다가 1973년에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바람에 실질적으로 마지막 작품이자 유작이 되었다.[3] 이후 남아있던 필름들을 토대로 용쟁호투의 감독이었던 로버트 클라우스(Robert Clouse/1928~1997) 감독이 새롭게 촬영한 것과 편집하면서 1978년에 개봉했다.

2. 내용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에서 촬영한 외국 영화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사기사
(1972)
사망유희
(1973)

(촬영무산)
명월도설야섬구
(1977)
다정검객무정검
(1977)
공산영우
(1979)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1989)
중간인
(1990)
엑시덴탈 스파이
(2000)
서울공략
(2005)
갱스터
(2006)
착신아리 파이널
(2006)
HERO
(2007)
헬로 스트레인저
(2010)
본 레거시
(2012)
외사경찰
(2012)
쾌락지구 3
(2013)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2015)
파풍: 스피드 매치
(2015)
스타트렉 비욘드
(2016)

(촬영무산)
아웃레이지 파이널
(2016)
아이 엠 어 히어로
(2016)
콜로설
(2017)
다운사이징
(2017)
블랙 팬서
(2018)
퍼시픽 림: 업라이징
(2018)

(통편집)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2025)
1. 한국과의 합작 영화는 제외
2. 다큐멘터리, 단편 영화, TV 영화는 제외
3. 영화상의 배경은 한국이지만 실제 촬영은 외국에서 한 영화는 제외
}}}}}}}}} ||



원래 스토리는 불패의 무술대회 우승자인 이소룡을 이용하여 보물을 찾고자 악당들이 그의 아들을 납치하고 이소룡은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 그에 동참한 뒤 보물을 차지한 악당들을 쓰러뜨린다는 내용. 보물이 숨겨져 있는 장소가 한국법주사 팔상전[4]이라는 설정.[5] 그러나 이 영화를 찍을 예정이었을 당시에는 겨울이었고 이소룡이 추위에 약했던 터라 촬영 일정을 미뤘다가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촬영은 무산되었다.[6]

사망탑은 총 다섯 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층마다 무술의 고수가 지키고 있다. 이 설정은 종전에도 안 나온 건 아니지만 엄청난 영향을 줘서 이후 나온 무수한 영화나 만화, 게임, 애니들에서도 나오게 된다. 이 원 설정을 그대로 차용한 가장 유명한 게임이 바로 스파르탄 X.[7]

또한 이소룡의 무술 철학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했다.

이후에 모든 사건을 정리한 다음, 무술 대회에 나가는 시나리오가 있었다고 한다.
바뀐 스토리는 연예인과 스포츠 선수들의 매니지먼트를 빌미로 부당 폭리를 취하는 거대 범죄 조직이 액션 영화 배우인 빌리[14]에게도 제안을 하지만 그는 이를 단칼에 거절한다. 계속된 협박에도 굴하지 않자 조직은 그를 살해하고자 영화 촬영시 총에 맞는 장면[15]에서 공포탄이 아닌 실탄으로 바꿔치기한다. 다행히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뒤 친구 기자의 도움으로 자신이 사망했다는 기사를 내고 장례식도 치르도록 한다.[16] 그리고 사람들이 못 알아보도록 얼굴을 바꾼 채 범죄조직에 대한 복수를 시작한다는 내용. 대역배우를 썼기 때문에 얼굴을 바꾸었다고 해서 이야기의 앞뒤를 맞추었는데, 정작 중요한 하이라이트에서의 격투장면에서는 도로 오리지널 얼굴로 되돌아가버리는 괴이한 스토리가 되고 말았다. 괜히 졸작으로 불리며 감독이 까이는 게 아니다. (물론 당시 기술적인 한계인 것도 있었다.) 북미판은 제대로 된 엔딩 장면도 없이 이소룡에게 쫒기던 악당들의 보스가 지붕 위로 도망치다 결국 추락사[17], 그리고 보스의 시신을 보여주며 급작스럽게 바로 크레딧(...). 홍콩판은 빌리가 경찰들에게 연행이 되면서 끝난다.

북미판 크레딧은 감동 그 자체인데, 이소룡이 나온 영화의 명장면 등을 보여주며, 작중에서 출연한 여배우 칼린 캠프가 직접 부른 'Will This Be the Song I'll Be Singing Tomorrow?'라는 슬픈 곡조의 노래가 나오며 홍콩판은 남성 가수가 부른 비장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3. 사망적유희

스토리만 달랐던 게 아니라 본래 이 영화의 제목은 "사망유희"가 아닌 "사망적유희(死亡的遊戯)"가 원 제목이었다. 스토리도 이소룡 혼자서 사망탑에 쳐들어가는 게 아니라 동료 둘과 같이 쳐들어가는 내용. 이소룡과 같이 사망탑에 올라가는 동료이자 경쟁자로 나오는 배우는 스턴트 배우인 티에 위엔(해원)과 전준.

파일:external/images5.fanpop.com/Game-of-Death-bruce-lee-28442937-1414-1084.jpg

티에 위엔은 스턴트맨 출신이며, 전준은 당산대형 시절부터 이소룡과는 3작품(당산대형, 정무문, 사망유희)이나 호흡을 맞첬다. 그러나, 이소룡이 촬영 도중 사망했기 때문에 '사망적유희'는 남아 있는 필름의 편집과 재촬영 등을 통해 '사망유희'로 개봉되었다. 액션신 역시 3명이 올라가기로 한 것을 이소룡 한 명만 올라가는 것으로 편집했다. 이미 찍었던 액션장면도 많이 편집이 되었다.[18]

이 원작은 1978년 사망유희 개봉 후 묻혀있다 1994년 가을 기적적으로 이소룡의 자료들 중에서 사망적유희의 무술 안무를 모두 기록해 놓은 자료와 스토리라인이 발견되었고, 이를 통해서 촬영된 분량이 원래 생각보다 훨씬 더 많았다는 것이 알려졌으며, 2002년 기적적으로 촬영되었던 35밀리 필름 원본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Bruce Lee in G.O.D 死亡的遊戯 / A Warrior's Journey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왔다. 자세한 내용은 1, 2,3, 4 참조.

2023년 7월 영국에서 발매될 Bruce Lee at Golden Harvest 4K UHD Boxset에서는 무려 50년 동안 흑백사진 컷으로만 존재하던 티엔 위엔이 댄 이노산토와의 대결에서 통나무를 휘두르는 장면이 2D 블루레이 버젼에 실렸다.

이 블루레이에서는 특히 이소룡이 처음에 의도한 시나리오대로 속리산 법주사 보물 탈취계획을 거부한 이소룡에게 한국 조폭이 이소룡의 동생들을 납치하자 어쩔 수 없이 이소룡이 조폭의 계획에 대해 영사기로 브리핑 받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한다. 썬글라스를 끼고 있는 이소룡(하이 티엔 역)의 대역배우에게 어눌한 영어발음의 한국 조폭 보스가 1층 황인식, 3층 댄 이노산토, 4층 지한재의 훈련영상을 보여주면서 이소룡이 상대할 고수임을 설명하고 (50여 년간 몇 장의 사진으로만 존재여부가 알려진 홍콩 외곽 촬영장면으로 아래 동영상은 촬영된 풀 동영상이고 영화에서는 편집되어서 사용되었다. 그리고 스틸 사진으로만 나오는 이소룡의 격투장면은 영화 스토리와 상관없는 사진촬영으로 동영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지금보면 유치한 1970년대 쇼브라더스 쿵푸영화 스타일의 오프닝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4. 기타

파일:노영삼_웬그막.jpg 파일:external/e52303ae5ed951ef5e33c564899ae876c45211de9c487a77bdbdf7113836d30d.jpg 파일:attachment/T_CO_gansouraya_001_0004-0_2L.jpg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노영삼 킬빌베아트릭스 키도 괴짜가족하루마키 류

5. OST


[1] 이 제목 때문에 애초부터 불길했다는 말도 떠돌았지만 어디까지나 끼워맞추기다.[2] 서울 28만 관객으로 흥행에 성공했다.[3] 우연찮게도 출연자 기그 영도 개봉 후 얼마 안 있어 아내를 살해하고 자살하는 바람에 유작이 되었다. 이소룡과의 차이점이라면 이소룡과 달리 매우 불명예스럽게 유작이 된 것이라는 점이 있다.[4] 법주사의 불상이 동양에서 가장 커서(당시 기준) 로케 장소를 이쪽으로 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는 대륙 공산 중국이 개방하기 전이라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영화를 촬영할 만한 동양풍 전통 건축물 자체가 흔치 않았다. 물론 일본도 있지만 거긴 중국이랑 건축 양식이 달라도 너무 다르게 생겨서 홍콩 영화를 찍기는 힘들었다.[5] 후에 일부 설정이 오사원이 제작한 속편인 사망유희 2탄인 사망탑에 차용된다.[6] 애초에 아열대 기후대에 사는 사람들은 한국의 추위에 매우 약하다. 이소룡은 추위에 약한 광동인 혈통이었고 다른 중국계 미국인들도 광동인 등 남방 한족 혈통이 많다. 중국계 러시아인 등 동구권의 중국계 주민들은 반대로 북방 한족 혈통이 많다 보니 한국의 추위에 강하거나 아예 한국의 추위를 덥다고 느끼기까지 한다.[7] 제목은 성룡 영화지만 주인공과 붙잡힌 히로인 이름이 그 성룡영화에서 차용한 것만 빼면 알맹이는 확실히 사망유희다.[8] 맹룡과강에서 악당 가라테 고수로 나왔다.[9] 이소룡의 최초의 제자 중 하나로, 해당 씬을 찍기 위해 이소룡이 키무라에게 직접 전형적인 영춘권과 당랑권 스타일을 가르치는 영상도 있다.[10] 이소룡의 친구이자 절권도 제자. 필리핀 최고의 무술가이자, 이소룡에게 봉술과 쌍절곤을 가르치기도 했다. 영화 '일라이'의 무술 감독이다. 이소룡이 찍은 영상 기준으로 이노산토의 무술은 까다롭지만 정해진 리듬이 있어 그 리듬을 깨부숨으로서 승리했다. 이소룡 사후에는 가장 권위 있는 절권도 지도자로 활동했다. 참고로 딸도 스턴트맨을 하고 있다. 청설모 작가의 플래시 애니 부활 이소룡에서도 나온다. 6화 막판에 실루엣으로 나온 뒤, 7화에서 제대로 나온다. 물론 여기에서도 여전히 이소룡과의 쌍절곤 대결에서 농락 당한 뒤 이소룡의 정권을 정통으로 맞고 사망.[11] 홍콩 버전은 미등장. 실제로 합기도 7단의 고수. 합기도 창시자 최용술의 제자이다. 강하지만 비슷한 기술을 반복해 쓰기에 이소룡이 일부러 몇 번 당해보고 그 기술을 파해한 뒤 백 브레이커로 승리. 참고로 지한재와의 대결에서 이소룡은 그라운드 기술을 걸고 낭심치기를 하는데, 후에 철권 시리즈마샬 로우포레스트 로우 부자의 잡기 기술 중 하나로 재현된다.[12] 참고로 이 영화 촬영을 마친 뒤 합기도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판단해 자신의 촬영분을 영화에 사용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가 이소룡이 세상을 떠나자 그를 기리는 뜻으로 허락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한재가 등장하는 경우(영어 버전)와 등장하지 않는 경우(홍콩 버전), 또 등장하지만 잠깐만 나오는 경우 등등 버전이 제각각이다. 심지어 일본 공개시에는 등장은 하는데 목소리만 삭제되는(어차피 대사는 없지만) 경우도 있다.[13] 다른 층의 고수들과 달리 한 가지 형태에 연연하지 않고 신체 조건도 이소룡보다 훨씬 우월한 여러모로 포스가 넘치는 인물이다. 사실상 역대 이소룡 영화 내의 악역들 중 전투력 설정치는 최강. 카림 압둘자바와의 싸움은 이소룡이 막판에 겨우 이겼다는 인상을 준다. 그 다음으로 이소룡을 고전 시킨 악역이라 하면 맹룡과강에서 척 노리스가 맡은 콜트. 이소룡이 찍어 둔 영상을 보면 싸움의 전반부는 카림 압둘자바가 일방적인 우위를 점한다. 이소룡이 공략법을 바꾸고 큰 덩치 때문에 스탠딩에선 강하지만 한 번 쓰러지면 일어나기 힘들다는 사실과 햇빛에 약하다는 것을 눈치 채고 온갖 방법으로 그를 그라운드로 몰고 간 뒤에 헤드락으로 겨우 승리한다.(사실 이 대결장면은 원래 계획에는 없었으나 우연히 여행차 홍콩에 온 그를 보고 아이디어가 떠오른 이소룡이 제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한다.)[14] 극 중에서 이소룡이 맡은 인물. 이 이름은 게임 더블 드래곤의 주인공 형제 중 한 명이 차용했다.[15] 이 부분에서 전작 정무문의 마지막 장면이 사용되었다.[16] 실제 이소룡의 장례식 장면이 사용되었다. 범죄조직의 음모로 죽었다는 이야기도 당시 실제로 떠돌던 소문.[17] 참고로 이때 보스가 떨어지는 와중에 건물 외벽에 수직으로 줄줄이 걸려있던 네온사인 간판의 유리들을 스쳐지나가며 다 깨트리고 떨어진다. 흑막을 그냥 단순히 떨어져 죽게하는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서 그런지 감전사+유리파편이 더해지는게 인상적인 장면. 그리고 이 장면은 데드 오어 얼라이브 시리즈의 스테이지 기믹으로 오마쥬되기도 했다.[18] 원래 앵글에는 같이 올라간 동료가 화면에 나오는 장면도 있었지만 이소룡만 확대 후 크롭한 장면들도 있었다.[19] 사망적유희라는 이름으로 이소룡이 촬영해놨던 원본 영상은 유튜브를 찾아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20] 사실은 암살 음모.[21] 크로우 촬영 당시의 소품용 총기 관리는 그야말로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원래는 연출을 위해 실탄에서 화약만 제거한 총알을 넣었다가, 이후 촬영에서 탄두가 없는 공포탄으로 교체해서 쏘는 장면을 연출했는데 실탄의 탄두 부분이 빠져서 총열 내부에 끼어있었고 이걸 확인하지 않은 채 공포탄을 넣고 쏘자 이 탄두가 공포탄의 가스압력으로 발사되어 버린 것. 이 때문에 의도치 않게 이 총기사고를 일으킨 배우는, 죽는 순간까지 브랜든 리의 죽음이 트라우마로 남았고 계속해서 악몽을 꾼다며 괴로워했다는 씁쓸한 후일담도 있다.[22]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이야기도 있다. 자바가 휴가를 내어서 이소룡네 집에 놀러 왔는데, 그때를 이용하여 영화를 찍었다는 것.[23] 하지만 싸우는 부분에서 대역이 후에 새로 촬영한 장면에서 눈에 띄는 옥에 티가 있다. 원래 이소룡이 신고 있는 운동화는 아식스 제품인데, 대역이 신고 있는 운동화는 아디다스 제품이다. 재연 디테일이 아쉬운 부분.[24] 인간 노하라 히로시는 이소룡, 로봇 노하라 히로시는 당룡(이소룡 대역)하고 비슷하다.[25] 두번째로 거물은 용쟁호투랄로 쉬프린(1932~ ) 아르헨티나 출신 피아니스트, 작곡가, 편곡가, 그리고 지휘자로 수많은 TV, 영화 음악(드라마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원작 음악도 그가 맡았다!)을 작곡하여 그래미 상을 4번 수상하고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만 6번 올랐던 거장이다. 이제 이 사람도 나이가 있다보니...88세에서야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엔니오 모리코네 못지않게 아카데미 상복은 없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