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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수사 외압 논란/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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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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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여름 한반도 폭우 사태 · 해병대 제1사단 포병여단 · 사고 전개
<colbgcolor=#000> 수사 외압 논란
하위 문서 경과 · 전개와 의혹 (윤석열 이종섭 호주 대사 임명 논란)
관련기관 및 관련자 <colbgcolor=#000> 대한민국 대통령 윤석열 · 배우자 김건희
국가안보실 조태용 · 김태효 · 임종득 · 김형래 · 임기훈
대통령비서실 이시원 · 주진우
대한민국 국방부 이종섭 · 신범철 · 박진희 · 전하규 · 유재은 · 김동혁
대한민국 해군 이종호
대한민국 해병대 김계환 · 정종범 · 임성근 · 박정훈
경상북도경찰청 김철문 · 김형률
블랙펄인베스트 이종호
관련 문서 채상병 특검법 · 2024년 국회 무제한토론 ·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요청에 관한 청원 · 황상무 언론인 테러사건 언급 협박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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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2023년
2.1. 7월2.2. 8월2.3. 9월2.4. 10월2.5. 11월
3. 2024년
3.1. 1월3.2. 2월3.3. 3월3.4. 4월3.5. 5월3.6. 6월3.7. 7월3.8.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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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 수사 외압 논란의 경과를 시간 순으로 정리한 문서다.

2. 2023년

2.1. 7월

2.2. 8월

2.3. 9월

2.4. 10월

2.5. 11월

3. 2024년

3.1. 1월

3.2. 2월

3.3. 3월

3.4. 4월

2024년 4월 11일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의 지휘서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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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랑에도 흔들리지 않는 해병대 본연의 모습을 찾아야 합니다.

해병대는 태생부터 도전의 역사였습니다. 제대로 된 장비, 군복도 없었고, 먹을 것도 부족하였지만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한 최강의 부대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격랑 속에서도 해병대는 도전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반드시 승리하는 필승의 전통을 수립하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도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전우의 희생은 핵폭풍급 파급효과와 더불어 법적 다툼으로 인해 국민적 이슈로 치솟아 올랐습니다. 해병대가 정쟁의 회오리 속에서 요동치고 있습니다. 내외부의 상반된 목소리는 해병대에 부담을 가중시키고만 있습니다. 조직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만 하는 사령관으로서 안타까움과 아쉬움, 말하지 못하는 고뇌만이 가득합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현재의 상황이 누가 이기고 지는 시소게임이 아니라 해병대가 무조건 불리하고 지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축대를 지렛대로 세우고 좌우길이를 같게 해놓은 시소라 할지라도, 결국은 한쪽으로 치우쳐야 하는 결과는 해병대에게 큰 아픔과 상처로 남겨질 것이 자명한 현실입니다.

이에 우리는 집단지성으로 냉철하고도 담대하게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이는 미래 역사에 기록될 해병대 도전극복의 또 다른 역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령관은 그 어떤 과정과 결과도 겸허히 받아들일 것입니다.

여러 번 밝혔듯이 해병대사령관은 영광스럽고도 명예롭지만 무겁고도 두려운 직책입니다. 특히 요즘은 하늘조차 올려다보기 힘든 현실이 계속되고 있어서 하루하루 숨쉬기에도 벅차기만 합니다. 하지만 선배해병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쌓아놓은 금자탑을 더욱 소중하게 가꾸어야 하기에, 후배 해병들에게 더 빛난 해병대를 물려주기 위해, 시간시간 숨 쉬는 것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비록 사령관에게 희생을 강요하더라도. 누군가 던져놓은 가시밭길이라도 주저함 없이 나아갈 것입니다. 사령관으로서 남은 기간, 그리고 해병대라는 명예를 짊어지고 있는 기간 동안 여전히 절제하면서도 해병대만 생각하고, 해병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한 최고의 노력을 할 것입니다. 이것은 해병대사령관으로서의 다짐입니다.

물령망동 정중여산
우리의 소중한 전우가 하늘의 별이 된 지 벌써 9개월이 지났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입니까. 고인의 부모님 당부조차 들어드리지 못한 채, 경찰·공수처·법원의 결과만 기다려야 하는 답답한 상황 속에서 해병대 조직과 구성원에게는 아픔과 상처만 있을 뿐입니다. 아니, 결과가 나와도 다시 한번 정쟁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해병대 구성원 모두는 이에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사령관을 포함한 관련 인원이 감당해야 할 몫이며, 필요시 해병대사령부에서 대응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흔들림에도 거리낌없이 해병대 구성원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각각의 위치와 직책에서 해야 할 것만 제대로 해야 합니다. 국가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해병대를 지지하는 이들에게 더 큰 믿음을 줌으로써 '다시한번 해병대'의 가치를 높여야 할 것입니다. 경거망동하지 말고 태산같이 무겁게 행동하라는 의미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외부의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말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은 해병대 깃발 아래 일치단결하여 국가를 방위하고 국민을 지키기 위한 최강의 부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에 현행작전은 물론 교육훈련과 군기강 확립, 안정된 부대관리 등 기본에 충실해야 합니다. '승리하는, 정직한, 함께하는 해병대'를 위해 차분하면서도 담대하게 주어진 책무를 다함으로써 호국충성 해병대를 완성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 잊어서는 안 될 소중한 가치
현재의 상황은 전우를 잃고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사람이라는 소중함을 절실히 느껴야 할 시기입니다. 작전이든 훈련, 운동 경기든 간에 사람없이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한명 한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조직에 대한 사랑을 갖게 해줘야 합니다. 비록 지금은 잘 모르더라도 해병대를 떠난 이후에도 조직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현역과 예비역 한명 한명이 해병대의 큰 자산이 될 것입니다. 사령관 역시 해병대 구성원들을 믿고 직책을 수행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사람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인생의 첫 번째에 둘 것입니다.

다시 한번 해병대, 스스로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
해병대라는 깃발은 결코 쉽게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피와 땀으로 얼룩진 무거운 깃발임을 명심하고, 하나되어 굳게 뭉쳐 서로를 지켜내는 소속감과 전우애를 함양해야 합니다. 노력과 희생, 절제와 솔선수범으로써 해병대다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복종과 충성 그리고 단결로 점철된 팔로워십을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호국충성 해병대를 완성하기 위해 다시 한번 해병대를 소리높여 외쳐야 합니다. 이것이 해병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핵심이 될 것입니다. 비록 현실은 어렵지만, 스스로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 더욱 높이 비상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중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바다는 제 아무리 굵은 소낙비가 와도 그 누가 돌을 던져도 큰 파문이 일지 않듯이 자신의 중심을 굳건하게 지켜나가라는 메시지입니다. 사령관이 전우들의 방파제가 되어 태풍의 한 가운데서도 소중한 가치를 놓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해병대가 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해병대 창설식에서 주장한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자유를 수호하는 역사를 창조하도록 조력할 것입니다.

지난 75년의 역사보다 더욱 밝고 찬란한 75년 후를 그려보며. 전우들에게 소통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사령관이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전우들을 위해 열한 번째 편지를 띄웁니다.

2024년 4월 11일
해병대사령관 해병중장 김계환

3.5. 5월

3.6. 6월

3.7. 7월

3.8. 11월



[1] 임기훈 국방비서관은 국방비서관실에서 수사계획서를 요구하거나 받아간 일은 단 한 번도 없다고 8월 30일 오후 국회 운영위 발언
"첫 번째 우선 수사계획서를 의원님 말씀하셨는데 제가 여기 오기 전에 확인을 했는데 저희 국방비서관실에서 수사계획서를 해병대 수사단에게 요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담당 행정관이 수사단장한테 혹시 조사가 진행이 될 텐데 필요한 자료가 있느냐라고 물어본게 전부고 수사단장 답변이 본인이 자료를 정리해서 주겠다라고 해서 받은 게 수사소위 수사 계획서라고 타이틀이 적혀져 있는 한 장짜리 문서입니다. 그게 전부구요. 그 뭐 세간에서 주장하는데도 수사계획서를 요구했는데 그쪽에서 거절해서 뭐 부득이하게 줬다 이런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씀을 드리고
두 번째는 이제 언론 브리핑 자료와 관련해서 저희들이 수사 결과 보고서를 요구를 했다라는 것도 단 한 번도 수사 결과 보고서를 갖다가 제출해 달려가고 요구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언론 브리핑이 있다라는 것은 제가 여러 경로를 통해서 사실은 그 다음 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거 한번 확인을 해봐라라고 얘기를 받았었고 그래서 그 전날 30일 저녁에 전달된 것으로 이해를 하는데 실제 제가 언론 브리핑 자료를 받아본 것은 31일 아침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제가 아까 뭐 국방부 장관님 이런 말씀을 드렸는데 사실 언론 브리핑이 31일 날 저 예정이 되어 있었다 있다고 알게 되는 것은 장관님이라기보다도 어떤 그 국방부하고의 지속적인 소통을 그 평상시에도 계속을 하다 보니까 31일날 14시에 언론 브리핑이 예정이 돼있다라는 걸 알게 된 거지 제가 뭐 장관님하고 뭐 이거부터 몇 시에 몇 시에 이렇게 보고를 받고 그럴 입장도 아니고 그런 상황도 아니었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2] "7. 30. 일요일 2시 18분경 안보실 행정관인 해병 대령 김형래로부터 전화가 와서 자료를 요구받은 사실은 있으나 제가 가지고 있지 않은 자료라 줄 수 없다고 이야기했고 필요하다면 국방부를 통해 받으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권인태 해병대사령부 정책실장 진술조서[3] 사망 사고 시 일병이었으나 7월 20일 사단장 명의로 상병으로 추서[4]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행정관이 수사 보고서 제출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8월 30일 오후 국회 운영위 발언[5] 언론 브리핑 자료를 받으라고 지시한 것은 임기훈 국방비서관이며 7월 31일 아침 7시경 자료를 받음,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요구하거다 보고 받지 않았으나, 언론 브리핑 자료는 행정관이 통상적으로 챙긴다고 8월 30일 오후 국회 운영위 발언[6] 국방비서관실 근무자, 임기훈 국방비서관이 확인, 8월 30일 오후 국회 운영위 발언[7] 2023년 11월 1일 국회 국방위[8]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확인, 8월 30일 오후 국회 운영위 발언[9] 31일에는 두 회의를 따로 진행, 어느 회의인지는 특정하지 않았으나 문백상 안보실 회의, 8월 30일 오후 국회 운영위[10] 박정훈 대령과 김정민 변호사의 8월 24일 전화에서 꽝꽝꽝꽝으로 표현[11] 02-800-7070 이태원로 대통령실로 5층에 등록된 전화번호로 청문회에서 7070 이 천공천공이냐는 말이 나옴. 현재 이 번호는 폐쇄됨.[12] 54분 4초 + 2분 48초 = 56분 52초[13] 이 전화가 위 꽝꽝꽝꽝 전화와 같은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음[14] 김계환 2023년 8월 25일 국회에서 발언[15] 임성근[16] 이장관은 초급간부들이 굉장히 힘들 것 같다서 지시했다고 23년 8월 국회에서 발언[17] 보류 지시 등 처리 후 출국, 8월 2일 한-우즈벡 방산진흥 컨퍼런스 개최[18] 시간 및 녹취 내용은 아직 밝혀지지 않음[19] 7월 31일부터 8월 1일까지[20] 언제 보내는 것인지 확인되지 않음[21] 군검찰은 경찰에 수사자료를 인계한 해병대 수사단 광역수사대장과 부사관 등 2명도 공동정범으로 기소하려 했지만, 박 대령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는 결론에 따라 불기소되었다.[22] '선(先) 보직해임'된 경우에는 해임으로부터 7일 이내에 보직해임심의위원회를 열어 심의해야한다.[23] 윤석열 개인 명의 전화, 검사 시절 부터 사용, 대통령실 업무용이 아닌 일반 휴대전화[24]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에서 위조서류를 증거로 제출한 검사,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됨[25] 해병대에는 검찰단이 없기 때문에 해군 검찰단의 지시를 받는다.[26] 사유는 '군기 위반'[27] 경찰청에 운전해가서 자료를 제출해서 이첩함[28] 군형법 제45조 집단 항명에 해당되며, 집단의 수괴는 적전인 경유 사형, 전시 7년 이상 무기, 그 밖의 경우 3년 이상 유기징역이다.
이종섭 장관은 국회에서 집단항명수괴죄라고 보고한 것은 국방부 검찰단장이며, 이 보고를 받고 집단형명으로 하라고 지시했다고 국회에서 증언했다.
[29] 심의위원장은 해병대 부사령관 정종범 소장[30] 김계환 사령관이 박정훈 수사단장에 보여주었다라는 "사단장은 빼라"라는 문자[31] 국회 국방위원회 야당 간사인 김병주 의원, 박주민·최강욱(법제사법위원회), 임호선(행정안전위원회), 윤준병(운영위원회) 의원[32] 위원장 1명과 상임위원 3명으로 구성. 3명 이상의 출석과 3명 이상의 찬성으로 안건을 의결[33] 김용원 상임위원, 이충상 상임위원[34] 견책은 파면, 해임, 강등, 정직, 감봉 등 총 6개의 공무원 징계에서 가장 수위가 낮은 것[35] 징계사건의 경우, 해병대사령부화성시에 있으므로 그러하다.[36] 해병대사령부 채수근 상병 사망사건 수사 진행경과[37] 언론에 알려진 문서 이전에 다른 버전의 문서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38] 중앙군사법원국방부장관이 임명하는 판사와 검사가 영장을 심사[39] [오늘 이 뉴스] "결국 내 지시 어겼다고 정훈이 엮을 것"..적중한 해병대사령관의 '예언' (2023.09.25/MBC뉴스)[40] 2024년 1월[41]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 국회 통과···국민의힘 퇴장[42] 민주당 채상병 특검법 의사 일정 바꿔가며 강행처리 한 것, 대단히 유감|정진석 비서실장 브리핑 (24.5.2.)[43] 최소 장성급으로 보인다.[44] 김 사령관의 휴대폰에는 이것 말고도 엄청난 분량의 녹음 파일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평소 습관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불명.[45] 중령, 사고 동시 채해병의 소속 포대 대대장[46] 증인선서 후 위증을 하였을 때 위증죄로 처벌받을 수 있으나 선서를 하지 않고 위증하면 처벌받지 않는다. 증인선서를 하더라도 사실만 말한다면 당연히 처벌받을 일이 없겠으나 의도적으로 증인선서를 거부했다는 점은 청문회에서 말한 것들이 대놓고 거짓말이라고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삼척동자가 봐도 뻔히 보이는 속셈을 부릴 정도면 최소한 법적으로라도 더 이상 책잡히기 싫은 모양이다.[47] 발표 내용에서 "7여단장 등 부대원들에게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라거나 50사단장의 작전통제권 행사를 방해한 위법부당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48] 발표 내용에서 "수변으로 내려가서 바둑판식으로 수색하라는 지시는 소방과 협의된 수색 지침대로 군사교범상 의심지역 집중수색 방법인 바둑판식으로 꼼꼼하고 면밀하게 수색할 것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고 현장 지도 과정에서 1사단장의 작전 수행 관련 지적과 질책에 따른 일선의 부담감이 일부 확인되었으나 이를 이유로 포11대대장의 임의적인 수색지침 변경을 예상하긴 어렵고 사망의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 또한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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