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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프 페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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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프 페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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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2654> 프랑스국 초대 국가원수
필리프 페탱
Philippe Pétain
파일:필리프_페탱.jpg
본명 Henri Philippe Benoni Omer Joseph Pétain
앙리 필리프 베노니 오메르 조제프 페탱
출생 1856년 4월 24일
프랑스 제국 파드칼레
사망 1951년 7월 23일 (향년 95세)
프랑스 공화국 일드외 섬 감옥
재임기간 제78대 총리[1]
1940년 6월 16일 ~ 1940년 7월 11일
프랑스국 국가원수[2]
1940년 7월 11일 ~ 1944년 9월 19일
서명
파일:필리프 페탱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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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2654><colcolor=#fff> 부모 아버지 오메르-방탕 페탱
어머니 클로틸드 르그랑
형제자매 마리-프랑수아즈 클로틸드, 아델레이드, 사라, 호세핀
배우자 외제니 아르동 페탱 (1920년 결혼)
학력 생시르 사관학교 (졸업)
신체 169cm
경력 제25대 육군참모총장
제138대 전쟁장관
국무장관
주스페인 프랑스 대사
부총리
제78대 총리
프랑스국 국가원수
종교 가톨릭
군사 경력
복무 프랑스 육군
1876년 ~ 1931년
병과 보병
최종 계급 원수 (프랑스 육군)
주요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리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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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사후 평가4. 수훈 내역5. 어록6. 기타7. 대중매체8. 둘러보기

1. 개요

파일:필리프 페탱.jpg

프랑스군인, 정치인.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베르됭 전투의 영웅이자 조제프 조프르, 페르디낭 포슈와 함께 1차대전 종전 당시 단 3명 뿐이었던 프랑스군 원수(Maréchal de France)이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파리가 함락되고 공화국 정부가 나치 독일에 무력화되자, 나치 독일과 협상을 통해 괴뢰정부인 비시 프랑스 수장에 앉는 최악의 오판을 저지르면서, 오늘날 프랑스인들에겐 영웅반역자라는 두 인생을 산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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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후 평가

페탱이 세상을 떠난 뒤 그를 추모하는 모임이 결성되었으며 그에 대한 재심이 여러 번 청구, 기각되기도 했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나치 청산 분위기가 좀 가라앉은 1950년대 이후에는 공산주의자들을 적극 탄압하는 과정에서 부역자들에 대해서도 악질 매국노와, 좌파 탄압을 위해 나치에 협조한 일반 우익 성향 부역자를 분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데 페탱은 명백한 후자였기 때문이기도 했다.[3] 현대 프랑스에서도 일단 페탱이 매국노[4]는 아니라는 데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고, 단순한 나치 부역자 평가를 내리는 데도 상당히 신중한데 아래의 사진을 보면 알 수가 있다.

파일:attachment/앙리 필리프 페탱/Example.jpg

죽은 지 40년이 지난 후에도 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심지어 사회당 소속 프랑수아 미테랑도 그의 무덤에 헌화를 할 정도.

프랑스 내에서 페탱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유보적이며, 상당한 민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뜨거운 감자 같은 주제이다.[5] 순수하게 1차 대전의 영웅이자 '반쪽만이라도 남았던 프랑스를 지탱했던 지도자'로 평가하자니 나치 부역이 걸린다. 어찌됐건 비시 프랑스는 나치 독일에 협조했고 독일 점령 기간 동안 프랑스가 겪은 희생과 피해는 비시 프랑스 정부의 지도자였던 페탱에게 명백한 책임이 있다. 그래서 프랑스의 공인들은 아예 유보적으로 그에 대한 평가를 피하기도 하는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2018년 11월, 1차대전 종전 100주년 추모에 즈음해 페탱을 "위대한 군인"[6]이라고 언급했다가 유대인 협회와 야당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등 상당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나치 부역자 중에서도 수괴급이지만 열렬한 나치 동조자라기보다는 시대를 잘못 읽은 사람이고 적극적인 매국 행위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비시 프랑스 치하에서 자국민[7]을 나름 보호하려 들다가 나치에게 끌려가기까지 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치에 협조하여 결국 많은 프랑스인들을 희생시킨 죄가 있는데, 주력군이 궤멸된 상태에서 나치군과 계속 싸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고, 나름 프랑스를 건지겠다는 생각과 히틀러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군사학자들 간에 많은 논쟁이 오고 가는 중인데, 페탱의 선택이 바람직하다는 학자들의 의견은 적색 상황(독일군의 파리 진격, 프랑스 내륙 진출)과 파리 점령 이후 상황에서 '프랑스 병력의 대다수가 자제력을 잃고 와해되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더 큰 피해를 감수하기 전에 독일에게 항복한 페탱의 선택이 바람직했다.'이고, 반대 학자들의 의견은 '충분히 병력들을 재집결하여 프랑스 중부에 전선을 만들거나 리옹-보르도-마르세유 축선으로 전선을 축소시켜 저항할 기회가 있었다.'이다. 실제로 프랑스군은 적색 상황 발동 3일 만에 독일 B집단군이 아브빌과 아미앵 일대에서 베이강 선을 돌파함에 따라 파리 서쪽과 노르망디 쪽으로 진출해오고 마른강 방면으로 공세를 시작한 A집단군이 B집단군과 달리 큰 피해 없이 하루 만에 베이강 선을 돌파하여[8] 파리 동쪽에서 빠르게 남하하자 남동부 집단군이 파리 인근에서 포위 당할 것을 우려해 루아르강 일대로 철수해 방어선을 재구축하려 했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아쉽게도 루아르강 방어선은 혼란 속 베이강선과 달리 그다지 튼튼하지 못했고 14기갑군단은 거의 피해를 보지 않고 루아르강을 도하해버렸다. 어느 의견도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당시 적색 상황이 벌어지기 직전 후퇴할 때 모리스 가믈랭이 사령부 야전군이 사용하던 장비들을 센 강 북부에 죄다 버려두고 와서 막상 반대 의견 학자들의 의견을 따른다고 해도 연합군이 지원 올 때까지 지구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확실한 건 프랑스군은 이미 낫질 작전에 걸려 주력부대가 궤멸하고[9] 2선급 부대와 예비군만 남은 빈 껍데기 상태였다. 연합군이 증원 올 가능성도 낮은 게, 영국군은 됭케르크에 장비를 몽땅 버려두고 철수한 탓에 영국 본토 방어도 힘든 상태였고, 미국은 아직 연합국이 아니여서 올 생각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 준비도 안 되어 있었으며 대서양을 건너와야 하니 개입하고 싶어도 이미 늦은 시점. 그리고 프랑스의 상대는 독일 말고도 하나 더 있었는데, 이탈리아가 재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10] 더군다나 프랑스군은 마지노선에 배치된 중부집단군을 철수시키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중부집단군을 철수시키게 될 경우 독일-프랑스 국경에 배치된 C집단군이 아무런 피해 없이 알자스-로렌을 넘어 오게 된다. 반대 측 학자들 의견대로 생생한 중부집단군이 비록 C집단군에게 영토를 내주게 되지만 베이강선 전투로 다소 피해를 입은 남동부집단군과 합류해 다소 강력한 방어선을 만들 수 있었겠지만 공격 측이었던 독일군은 이미 이를 고려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비군 병력으로 이루어진 독일군 C집단군은 피해를 감수하면서 마지노선에 공격을 가했고 A집단군은 프랑스군의 예상과 달리 마른강을 따라 프랑스-스위스 국경에 도달해 중부집단군과 남동부집단군을 영구히 단절시켜버렸다.[11]

찬반 의견을 떠나서, 페탱의 행위에 매국노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에 대해 프랑스의 다수의 국민들은 조심스런 시각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 내에서는 과거 부역자 재판 당시 반감적 국민정서와 지금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고 이에 따라 평가가 새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명확한 답안[12]을 정해놓고 논쟁이 일어나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을 보인다.[13]

페탱이 1940년부터 인지력 상실 등의 증상을 보였음을 토대로 그가 치매환자였다는 주제의 논문도 나왔다. 프랑스가 항복했을 당시 페탱의 나이는 무려 84세였다. # 페탱이 점점 인지력을 잃어가고 있었다는 논란이 가세되면서 현재 페탱의 정신문제에 대해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그가 치매라면 그 치매가 어느 정도였는지, 정상적인 판단이 가능했는지가 일부 논쟁의 핵심이 되는데, 일각에서 주장하는 페탱의 과도하다고 느껴졌던 부역행위에 대해서도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했던 상황이었다.”라고 설명이 가능해진다.

한국의 박희도, 이광수, 최린 같이 독립운동가였다가 일제의 고문을 못 참고 일제부역자로 전향한 인물들과 비슷한 점이 있다.

4. 수훈 내역

국내 - 1945년 8월 15일 원수 칭호를 제외한 모든 수훈박탈
* 프랑스군 원수(1918년 11월 21일)
* 레지옹 도뇌르 그랑크루아(1917년 8월 24일)
* 레지옹 도뇌르 그랑도피시에(1916년 4월 27일)
* 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1915년 5월 10일)
* 레지옹 도뇌르 오피시에(1914년 10월 6일)
*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1901년 7월 11일)
* 군사메달(1918년 8월 6일)
* 1914-1918 전쟁십자훈장
* 연합군 승리 기장
국외
* 세르비아 흰독수리 훈장
* 스페인 군사 훈장

5. 어록

독일도 이탈리아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의 위기는 물질적인 위기가 아니다. 우리의 위기란 운명에 대한 믿음을 잃은 것이다...(중략) 지금의 우리는 조타수가 없는 배의 선원과 같다.

1936년 4월에 낸 성명서에서
패배한 조국이 평화를 위해서 휴전조약에 서명하라고 나를 다시 부르고 있소. 이같은 결과는 모두 30년 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짓이오. 이들은 내게 국가를 책임지라고 말하고 있소...(중략) 하지만 이것이 내가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오.

1940년, 프란시스코 프랑코와 대화하며[14]
J’étais avec vous dans les jours de gloire. Je reste avec vous dans les jours sombres. Soyez à mes côtés.
영광의 날에도 저는 여러분과 함께했습니다. 어두운 날에도 저는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이제 여러분도 제 곁에 있어 주십시오.

비시 프랑스 수립 직후의 연설에서
페탱은 프랑스에서 가장 고귀하고 인간적인 군인임에 틀림없다.

레옹 블룸, 1939년 3월
페탱은 항상 반영국적인 패배주의자였지만 이제는 노망난 늙은이가 되어버렸다.

윈스턴 처칠, 1940년 11월
1940년 6월의 프랑스에는 드골만큼이나 페탱이 필요했다.

샤를 드골, 1946년 12월
Maréchal, nous voilà!
원수여, 우리는 여기에 있다!

Devant toi, le sauveur de la France
프랑스의 구원자인 그대 앞에

Nous jurons, nous, tes gars
그대의 소년인 우리는 모두

De servir et de suivre tes pas
그대를 섬기고 따를 것을 맹세한다.

6. 기타

7. 대중매체

유럽전쟁 6:1914에서 현질 4천왕 중 하나이다. 보병 병과에서 최강자.

세계 정복자 4에서 1939년도 프랑스 정복에 등장한다. 독일 전선에 배치되어 있으며 성능은 그다지. 비시 프랑스가 구현되어 있지 않아 이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Hearts of Iron IV에서 역사대로 비시 프랑스 지도자로 등장한다. 가지고 있는 지도자 효과는 매일 정치력 획득량을 0.5씩 늘려주는 '비상대권'.[17] 그냥 주는 건 아니고 비시 프랑스 첫 중점인 '페탱에게 비상대권을'을 완료해야 준다.
대통령 각하 만세에서는 세계 대전 이후 패배한 자국의 혼란상에 대해 고심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그 후 나름대로 프랑스를 살리려고 군사정부를 만드나 프랑수아 드 라 로크에게 권력을 물려준다. 생각보다 잘 다스리고 라로크에게 평화적으로 물려줘서 그런지 라로크도 그를 심하게 비난하지는 않았다.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에서는 프랑수아 드 라 로크 정부의 국방장관으로 등장하고 라로크 실각 후 프랑스 지도자가 된다. 이쪽은 영국과 독일을 동맹까지 깨면서 '먼저' 때린 게 프랑스라 라 로크가 욕을 먹고(그래도 언론플레이 덕에 프랑스 국내에서의 욕은 적었다) 종신형 신세에 처해진다.

히틀러가 되었다에서는 원 역사처럼 스페인에서 프랑스로 귀국하여 새 총리로 선출되고 독일에 항복하게 된다. 그나마 원 역사보다는 프랑스가 받은 처분이 관대하였고,[20] 독일이 2차대전에서 승리하면서 프랑스도 영국의 식민지를 대거 할양받는 등 떡고물을 나눠 받고, 계속해서 프랑스의 지도자로 남는다. 그러나 막상 식민지에 주둔하고 있는 영국군의 저항이 거세서 새 식민지는 차지하지도 못하고 되레 남은 식민지마저 잃게 생기자, 현실을 직시하고 어떻게든 남아있는 식민지라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식민지인들을 프랑스인들과 동등하게 대우하겠다는 폭탄 선언을 한다. 덕분에 식민지를 유지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에 반발한 이들이 쿠데타를 일으키려다 독일에 발각되어 숙청되면서 본인의 권력은 더욱 강화되었지만 이를 빌미로 독일의 간섭이 더 심해질 것을 내다보고 한탄한다. 그 뒤 원 역사보다 2년을 더 살다가 낮잠을 자던 도중에 사망한다. 비록 프랑스가 해군 함선 대부분과 알자스-로렌 지방을 잃긴 했지만, 해군 함선이야 다시 만들면 되는 것이고 식민지를 늘리진 못했어도 남은 식민지라도 유지할 수 있었으니 원망은 덜 받을 것으로 보인다.

무솔리니가 캐리하는 2차대전?!에서는 프랑스군 사령관, 드골의 쿠데타 이후 프랑스 국방장관으로 등장. 샤를 드골이 소극적이던 피에르 라발을 끌어내리고 항전파를 각성시켜 항전에 나서고 이탈리아의 기갑군단이 난전 중에 난입해서 프랑스군을 도와준 덕분에 파리 함락을 간신히 막아냈지만, 프랑스도 저지대 집단군 150만 명을 포위당해 손실하는 등 엄청난 피를 치르며 알제리인 시민권 부여라는 카드를 고심하던 샤를 드 골에게 자신이 알제리 시민권 부여 선언을 발표하겠다고 한다. 원 역사처럼 욕 먹을 것을 알면서도 그런 선택을 물리지 않는 성격을 보여주었으며, 프랑스가 항복하는 일도 없었기에 구국의 결단을 내린 탈식민주의자 전쟁영웅으로 평가가 바뀔 듯하다.

8. 둘러보기

추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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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colbgcolor=#838383,#191919>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나치 독일 | 아돌프 히틀러 · 헤르만 괴링 · 파울 요제프 괴벨스 · 에리히 레더 · 빌헬름 카이텔 · 하인리히 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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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프랑스 공화국의 국새.svg 제2공화국
<nopad> 자크샤를 뒤퐁 드뢰르 <nopad> 프랑수아 아라고 <nopad> 루이외젠 카베냐크
초대
자크 샤를 뒤퐁 드 뢰르
제2대
프랑수아 아라고
제3대
루이외젠 카베냐크
<nopad> 루이 나폴레옹
제4대
오딜롱 바로
제5대
알퐁스 앙리 도풀
제6대
레옹 포셰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파일:프랑스 국장(1905~1953).svg 제3공화국
<nopad> 국방정부 <nopad> 아돌프 티에르 <nopad> 파트리스 드마크마옹
초대
루이 쥘 트로쉬
제2대
쥘 아르망 뒤포르
제3대
알베르 드브뢰이
제4대
에르네스트 쿠르토 드시세
<nopad> 파트리스 드마크마옹
제5대
루이 뷔페
(제2대)
쥘 아르망 뒤포르
제6대
쥘 시몽
(제3대)
알베르 드브뢰이
<nopad> 파트리스 드마크마옹 <nopad> 쥘 그레비
제7대
가에탕 드 로슈부에
(제2대)
쥘 아르망 뒤포르
제8대
기욤 워딩턴
제9대
샤를 드프레이시네
<nopad> 쥘 그레비
제10대
쥘 페리
제11대
레옹 강베타
(제9대)
샤를 드프레이시네
제12대
샤를 뒤클레르
<nopad> 쥘 그레비
제13대
아르망 팔리에르
(제10대)
쥘 페리
제14대
앙리 브리송
(제9대)
샤를 드프레이시네
<nopad> 쥘 그레비 <nopad> 사디 카르노
제15대
르네 고블레
제16대
모리스 르비에
제17대
피에르 티라르
제18대
샤를 플로케
<nopad> 사디 카르노
(제17대)
피에르 티라르
(제9대)
샤를 드프레이시네
제19대
에밀 루베
제20대
알렉상드르 리보
<nopad> 사디 카르노 <nopad> 장 카지미르페리에 <nopad> 펠릭스 포르
제21대
샤를 뒤피
제22대
장 카지미르페리에
(제21대)
샤를 뒤피
(제20대)
알렉상드르 리보
<nopad> 펠릭스 포르
제23대
레옹 부르주아
제24대
쥘 멜린
(제14대)
앙리 브리송
(제21대)
샤를 뒤피
<nopad> 에밀 루베 <nopad> 아르망 팔리에르
제25대
피에르 발데크루소
제26대
에밀 콩브
(제16대)
모리스 르비에
제27대
페르디낭 사리앵
<nopad> 아르망 팔리에르
제28대
조르주 클레망소
제29대
아리스티드 브리앙
제30대
에르네스트 모니
제31대
조제프 카요
<nopad> 아르망 팔리에르 <nopad> 레몽 푸앵카레
제32대
레몽 푸앵카레
(제29대)
아리스티드 브리앙
제33대
루이 바르투
제34대
가스통 두메르그
<nopad> 레몽 푸앵카레
(제20대)
알렉상드르 리보
제35대
르네 비비아니
(제29대)
아리스티드 브리앙
(제20대)
알렉상드르 리보
<nopad> 레몽 푸앵카레 <nopad> 알렉상드르 밀랑
제36대
폴 팽르베
(제28대)
조르주 클레망소
제37대
알렉상드르 밀랑
제38대
조르주 레이그
<nopad> 알렉상드르 밀랑 <nopad> 가스통 두메르그
(제29대)
아리스티드 브리앙
(제32대)
레몽 푸앵카레
제39대
프레데리크 프랑수아마르시알
제40대
에두아르 에리오
<nopad> 가스통 두메르그
(제36대)
폴 팽르베
(제29대)
아리스티드 브리앙
(제40대)
에두아르 에리오
(제32대)
레몽 푸앵카레
<nopad> 가스통 두메르그
(제29대)
아리스티드 브리앙
제41대
앙드레 타르디외
제42대
카미유 쇼탕
(제41대)
앙드레 타르디외
<nopad> 가스통 두메르그 <nopad> 폴 두메르 <nopad> 알베르 르브룅
제43대
테오도르 스테그
제44대
피에르 라발
(제41대)
앙드레 타르디외
(제40대)
에두아르 에리오
<nopad> 알베르 르브룅
제45대
조제프 폴봉쿠르
제46대
에두아르 달라디에
제47대
알베르 사로
(제42대)
카미유 쇼탕
<nopad> 알베르 르브룅
(제47대)
에두아르 달라디에
(제34대)
가스통 두메르그
제48대
피에르에티엔 플랑댕
제49대
페르낭 부아송
<nopad> 알베르 르브룅
(제44대)
피에르 라발
(제47대)
알베르 사로
제50대
레옹 블룸
(제42대)
카미유 쇼탕
<nopad> 알베르 르브룅
(제50대)
레옹 블룸
(제46대)
에두아르 달라디에
제51대
폴 레노
제52대
필리프 페탱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파일:프랑스 국장(1905~1953).svg 제4공화국
<bgcolor=#F00,#F00> 뱅상 오리올
초대
폴 라마디에
제2대
로베르 슈만
제3대
앙드레 마리
<bgcolor=#F00,#F00> 뱅상 오리올
(제2대)
로베르 슈만
제4대
앙리 쾨유
제5대
조르주 비도
<bgcolor=#F00,#F00> 뱅상 오리올
(제4대)
앙리 쾨유
제6대
르네 플르뱅
(제4대)
앙리 쾨유
<bgcolor=#F00,#F00> 뱅상 오리올
(제6대)
르네 플르뱅
제7대
에드가르 포르
제8대
앙투안 피네
||<tablewidth=100%><tablecolor=#002654><width=53%><nopad><bgcolor=#F00,#F00> 뱅상 오리올 ||<width=47%><#0055A4,#0055A4><nopad> 르네 코티 ||
제9대
르네 마예르
제10대
조제프 라니엘
제11대
피에르 망데스 프랑스
<nopad> 르네 코티
(제7대)
에드가르 포르
제12대
기 몰레
제13대
모리스 부르제스모누리
<nopad> 르네 코티
제14대
펠릭스 가야르
제15대
피에르 플림랭
제16대
샤를 드골
왕국 · 복고 왕정
제2·3·4공화국 · 비시 정권 · 제5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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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bgcolor=#fff,#1f2023> 파일:Escudo_de_la_Diócesis_de_Urgell.svg 우르헬교구장
<rowcolor=#23235A> 제1대 제2대 제3대 제4대
페레 도르치 길롐 데 몽카다 라몬 트레바일랴
<rowcolor=#23235A>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페레 데 나르보나 니콜로 카포치 우크 데스바크 길롐 아르나우 데 파타우
<rowcolor=#23235A>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페드로 마르티네스 데 루나 베렝게르 데릴 이 데 팔랴르스
<rowcolor=#23235A> 제13대 제14대 제15대 제16대
아르나우 로제르 데 팔랴르스 자우메 데 카르도나 이 간디아 로데리크 데 보르자 이 에스크리바 페레 폴크 데 카르도나
<rowcolor=#23235A>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주안 데스페스 페드로 호르단 데 우리에스
<rowcolor=#23235A>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후안 페레스 가르시아 데 올리반 페레 데 카스텔례트 주안 디메스 료리스 미켈 제로니 모렐
<rowcolor=#23235A> 제25대 제26대 제27대 제28대
우크 암브로스 데 몽카다 안드레우 카펠랴
<rowcolor=#23235A> 제29대 제30대 제31대 제32대
안토니오 페레스 파우 두란 후안 마누엘 데 에스피노사 멜시오르 데 팔라우 이 보스카
<rowcolor=#23235A> 제33대 제34대 제35대 제36대
페레 데 코폰스 이 데 테이시도르 주안 밥티스타 데스바크 이 마르토렐
<rowcolor=#23235A> 제37대 제38대 제39대 제40대
시메온 긴다 아페스테기 조르디 쿠라도 이 토레블랑카 세바스티안 엔파란 아스쿠에 프란세스크 주제프 카탈란 데 오콘
<rowcolor=#23235A> 제41대 제42대 제43대 제44대
프란시스코 페르난데스 데 하티바 이 콘트레라스 호아킨 데 산티얀 이 발디비에소
<rowcolor=#23235A> 제45대 제46대 제47대 제48대
프란시스코 안토니오 데 라 두에냐 이 시스네로스 베르나르도 프란세스 카바예로 이 마테트 보니파시오 로페스 이 풀리도 시모 데 과르디올라 이 오르토네다
<rowcolor=#23235A> 제49대 제50대 제51대 제52대
주제프 카이샬 이 에스트라데 살바도르 카자냐스 이 파제스
<rowcolor=#23235A> 제53대 제54대 제55대 제56대
주안 주제프 라과르다 이 페놀례라 주제프 푸자르짐주교구장 서리 주안 밥티스타 벤료크 이 비보 자우메 빌라드리크 이 가스파르교구장 서리
<rowcolor=#23235A> 제57대 제58대 제59대 제60대
주스티 기타르 이 빌라르데보 리카르트 포르네자 이 푸치데마자교구장 서리
<rowcolor=#23235A> 제61대 제62대 제63대
주안 마르티 이 알라니스 조안엔리크 비베스 이 시실리아 주제프류이스 세라노 펜티나트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45%; min-height:2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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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5px 0 -10px; letter-spacing:-0.05em"
파일:푸아문장.png 푸아 백작
<rowcolor=#23235A> 제1대 제2대 제3대
로제베르나르 3세 가스통 1세 가스통 2세
<rowcolor=#23235A> 제4대 제5대 제6대
가스통 3세 마티외 이자벨
<rowcolor=#23235A> 제7대 제8대 제9대
장 1세 가스통 4세 프랑수아
파일:나바라 왕국 국장.svg 나바라 국왕
<rowcolor=#23235A> 제9대 제10대 제11대
프란치스코 1세 페부스 카탈리나 1세 헨리케 2세
<rowcolor=#23235A> 제12대 제13대 제14대
호아나 3세 헨리케 3세 루이스 2세
파일:부르봉 왕조 문장.svg 프랑스 국왕
<rowcolor=#23235A> 제14대 제15대 제16대 제17대
루이 13세 루이 14세 루이 15세 루이 16세
파일:프랑스 제1제국 국장.svg 프랑스 황제
<rowcolor=#23235A> 제18대
나폴레옹 1세
파일:부르봉 왕조 문장.svg 프랑스 국왕
<rowcolor=#23235A> 제19대 제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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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프랑스 왕국 7월 왕정 국장.svg 프랑스인의 왕
<rowcolor=#23235A> 제21대
루이필리프 1세
파일:프랑스 공화국의 국새.svg 프랑스 대통령 파일:프랑스 제2제국 국장.svg 프랑스 황제
<rowcolor=#23235A> 제22대
루이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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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23235A> 제23대 제24대 제25대 제26대
쥘 그레비 사디 카르노
<rowcolor=#23235A> 제27대 제28대 제29대 제30대
펠릭스 포르 에밀 루베 아르망 팔리에르
<rowcolor=#23235A> 제31대 제32대 제33대 제34대
폴 데샤넬 알렉상드르 밀랑 가스통 두메르그
<rowcolor=#23235A> 제35대 제36대
폴 두메르
파일:비시 프랑스 국장.svg 비시 프랑스 국가원수 파일:프랑스 공화국 임시정부 국장.svg 임시정부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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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프 페탱 샤를 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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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23235A> 제37대 제38대 제39대 제40대
뱅상 오리올 샤를 드골 조르주 퐁피두
<rowcolor=#23235A> 제41대 제42대 제43대 제44대
자크 시라크 니콜라 사르코지
<rowcolor=#23235A> 제45대 제46대
프랑수아 올랑드 에마뉘엘 마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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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공화국군 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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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프랑스 국기.svg 1차 세계대전 프랑스군의 장성급 지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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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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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énéral de corps aérien Général de division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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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énéral de division aérienne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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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소장
준장
Général de brigade / Contre-amiral
Général de brigade aérienne
육군
준장
모리스 가믈랭 | 모리스 뒤발 | 아돌프 메시미
해군
준장
-
※ 문서가 있는 인물만 종전 당시 계급으로 서술
※ 윗 첨자 :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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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자유 프랑스 국기.svg 2차 세계대전 프랑스군의 장성급 지휘관 파일:비시 프랑스 대통령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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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échal de France / Amiral de France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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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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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다를랑(파일:Frc_V.png파일:자유 프랑스 국장.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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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énéral d´armée aérienne
육군
대장
막심 베이강 (파일:Frc_V.png) · 모리스 가믈랭(POW) · 앙리 지로(파일:자유 프랑스 국장.svg) · 샤를 욍치제(파일:Frc_V.png) · 필리프 르클레르(파일:자유 프랑스 국장.svg) · 장 드라트르 드타시니(파일:Frc_V.png파일:자유 프랑스 국장.svg) · 마리피에르 쾨니그(파일:자유 프랑스 국장.svg) · 르네 프리우(파일:Frc_V.png) · 조르주 카트루(파일:자유 프랑스 국장.svg) · 가스통 비요트 · 르네 올리(파일:Frc_V.png) · 조르주 블랑샤르(파일:Frc_V.png) · 알퐁스 조르주(파일:Frc_V.png파일:자유 프랑스 국장.svg) · 알퐁스 쥐앵(파일:Frc_V.png파일:자유 프랑스 국장.svg) · 샤를 샹송(파일:자유 프랑스 국장.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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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마그랭베르느레(파일:자유 프랑스 국장.svg) · 앙투안 베투아르(파일:Frc_V.png파일:자유 프랑스 국장.svg) · 에드가르 드 라르미나(파일:자유 프랑스 국장.svg) · 앙리 프라이덴베르크 · 앙드레 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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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자유 프랑스 국장.svg: 자유 프랑스 / 파일:Frc_V.png: 비시 프랑스, POW: 전쟁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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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항복 이후인 7월 10일, 프랑스 상하 양원은 내각에 헌법개정의 전권을 부여하는 총투표를 실시, 찬성 569표, 반대 80표로 압도적 지지로 내각, 정확히는 내각 수반인 페탱 총리에게 헌법개정의 전권을 부여한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이 헌법개정권을 불법으로 규정하여 페탱의 합법적 총리 임기를 헌법이 개정되는 7월 11일까지로 국한하고 그 이후를 불법내각으로 규정하고 있다.[2] 안도라 공동 영주 겸임.[3] 사실 페탱은 전쟁 직전 스페인 대사로 나가 있었고, 프랑코와도 관계가 깊었기 때문에 전쟁 기간 동안 프랑스에 돌아가지 않고 스페인에 남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 프랑코 역시 "지금 프랑스로 귀국하시면 매국노가 된다"고 말렸다. 하지만 페탱은 결국 프랑스로 귀국하는 길을 택했다. 상황을 잘못 읽었을 뿐, 자기 나름대로는 나라를 위해 움직였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본인의 안위를 생각했다면 스페인에 남는 게 최선이었기 때문.[4] 자신의 안위를 위해 나라와 국민을 적극적으로 나치에 팔아넘긴 피에르 라발 같은 자들을 의미한다. 페탱은 당연히 이런 자들과는 거리가 있었고, 비시 정부의 핵심 지도자들 중에 그에 대한 재판만이 유일하게 논란이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5] 이원복 교수의 교양만화 <먼나라 이웃나라> 프랑스편 후반부(1998년판부터 추가)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오는데, 프랑스 사람이랑 역사 얘기를 하려면 페탱이나 비시 프랑스에 대한 언급은 꺼리는 게 낫다고 언급했다.[6] 정확히는 1차 대전기 동안은 훌륭한 군인이었으나 2차 대전기에 그가 내렸던 결정은 재앙이라고 언급하며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고 평했다.[7] 유대인과 좌파 제외. 특히 비시 프랑스는 헝가리와 불가리아도 거부했던 독일의 유대인 송환 요구를 수용했고 비시 프랑스의 유대인 탄압정책이 자발적이었음을 페텡 스스로 인정하기까지 했다.[8] A집단군은 부대 재배치으로 인해 B집단군보다 4일 늦은 6월 9일 공세를 개시했다.[9] 프랑스군은 북부, 중부, 남동부 3개의 집단군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낫질 작전으로 포위당한 건 북부집단군이었고 중부집단군은 마지노선에 발이 묶여있었다. 사실상 프랑스군에게 남은 전력은 남동부집단군 하나뿐인데, 후방 부대다 보니 소집된 예비군이 주력이었고 거기에 북부전선에서 와해된 패잔병을 추가편성해 보강한 정도라서 의미 있는 전력은 아니었다.[10] 이탈리아가 약체이건 아니건, 정규군의 공세는 그 자체만으로 경계의 대상이기에 독일군을 방어할 부대 일부를 이탈리아 전선에 돌려야 한다. 이는 그만큼 대독일 전선이 힘겨워진다는 뜻이기도 하다.[11] 그렇다고 프랑스군의 오판이 아주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다. 파리 정면에 배치된 독일군 18군은 강하게 방어선을 압박하고 있었고 파리를 무방비 도시 선언한 6월 13일 기준 독일군 16기갑군단은 파리의 측면을 지나 트루아에 육박하고 있었다.[12] “페탱은 매국노다” 또는 “페탱은 국익을 수호했다.”와 같은 규정.[13] 다만 이 의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단체 및 사학계에서의 논쟁은 예외로 하는 경우가 많다.[14] 나치 독일프랑스 침공으로 인해 패전 직전에 몰리자 당시 총리였던 폴 레노가 수습을 위해 페탱을 급히 호출했던 상황이었다. 프랑코는 프랑스로 떠나는 페탱에게 '저들은 장군님을 희생양으로 삼을 셈입니다!'라고 말하며 극구 만류했다고 전해진다.[15] 책제목이 정말 선정적으로 번역된 경우다. 원제는 정치적 재판의 역사인데 한국에 들어오면서 나는 죄 없이 죽는다가 되었는데 여기에 소개되는 사람들이 나치 전범들, 일본 제국 전범들.(루이 16세, 찰스 1세, 에리히 호네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비롯하여 다른 케이스도 많다.) 이 책도 전범들 변호가 아닌 전범들을 다루던 재판 과정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법률적인 문제인데 제목 한번 예술적으로 번역한 셈이 되겠다.[16] 실제로 페탱의 진급은 매우 느려서 40살을 넘긴 나이에도 소령을 달지 못 했고, 50대 후반에 대령을 달고 연대장을 역임한 후 퇴역할 날만 기다리다 1차대전이 터지면서 장군이 되었을 정도. 이렇다 보니 그가 대장으로 진급했을 때의 나이는 무려 60세였다.[17] 원래는 '긴급조치'로 번역되었으나 변경되었다.[18] 실제 역사에서는 1934년 프랑스 폭동이 된 사건이다.[19] 자크 도리오,마르셀 데아 같은 전직 좌파시트들은 프랑스를 왜곡하고 기형적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하며, 프랑스 루트중 가장 막장인 마르셀 뷔카르는 프랑스를 독일보다 더한 괴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폴 레노레옹 블룸 같은 민주주의자들 경우 민주주의자들은 군대 발목만 잡았었다고 경멸한다. 예외적으로 샤를 모라스의 군주주의 프랑스의 경우 어떻게 군주제 같은 걸로 독일제국을 이겼는지 황당해하면서, 아예 생각하기를 포기한다.[20] 알자스-로렌 할양, 포로 전원 석방, 프랑스 군정청 계획 취소, 프랑스령 식민지 유지, 재무장 허용 등 독일이 1차대전 때 당한 것보다 훨씬 관대한 조건을 내걸었다. 이렇게 관대한 조건 때문에 자유 프랑스의 결집력도 약해진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