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육군 | 막심 베이강 ( 라울 마그랭베르느레( 샤를 드골( | ||
해군 | 프랑수아 다를랑( 에밀 뮈즐리에( 로베르 조자르( | |||
공군 | 조제프 비유맹 | |||
※ 문서가 있는 경우만 표시. 계급은 2차 대전 종전 당시 계급 ※ 괄호 : 프랑스 제3공화국 항복 이후의 소속 | }}}}}}}}} |
<colbgcolor=#002395><colcolor=#fff> 장마리 아브리알 Jean-Marie Abrial | |
본명 | 장마리 샤를 아브리알 Jean-Marie Charles Abrial |
출생 | 1879년 12월 17일 |
프랑스 제3공화국 타른주 레알몽 | |
사망 | 1962년 12월 19일 (향년 83세) |
프랑스 타른주 두르뉴 | |
학력 | 프랑스 해군사관학교 (졸업) |
군사 경력 | |
복무 기간 | 프랑스 해군 |
1898년 ~ 1943년 | |
최종 계급 | 중장 |
주요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
1. 개요
프랑스의 군인.2. 생애
프랑스 제3공화국의 레알몽에서 태어났으며 1898년 프랑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군 소위로 임관했다. 1차 대전 당시 대양함대의 제대 지휘관을 지냈고 대잠수함전대장을 지냈다. 종전 후 지중해의 구축함 사령관을 지내기도 했다. 1925년 대령으로 진급하고 중순양함 투어빌의 함장을 지냈다.1930년 소장으로 진급하고 1936년 중장으로 진급했다. 지중해에서 3년간 복무하다가 2차 대전이 발발하고 프랑스로 복귀해 북쪽 해안을 담당했다. 막심 베이강과 공동으로 담당했으나 베이강의 부대는 무너져 파리를 빼앗겼다. 됭케르크 철수작전 당시 프랑스 육해군을 총괄지휘했고 최후까지 철수 후방사수를 담당했고 군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독일군에게 항복했다.
비시 프랑스 소속 해군사령관으로 복무하다가 1943년 제대했다. 1944년 비시 프랑스가 무너지고 나치 부역자로 체포되어 수감되어 있다가 1947년 석방되었고 됭케르크의 전공이 인정되어 1954년 명예가 회복되었다. 1962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