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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사위(고려 거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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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장인물 ]
||<tablewidth=100%><width=1000><tablebgcolor=#676767,#010101><bgcolor=#454545><color=#ffffff><-3> ||
파일:고려거란전쟁_현종_neat_ver.jpg
파일:고려거란전쟁_강감찬_neat_ver.jpg
파일:고려거란전쟁_양규_neat_ver.jpg
그 외 등장인물 및 특별출연은 등장인물 (고려·거란·기타 국가) 문서 참고.
[ OST ]
||<tablewidth=100%><tablebgcolor=#676767><tablecolor=#ffffff><width=25%>
파일:고려 거란 전쟁 OST Part 1.jpg
||<width=25%>
파일:고려 거란 전쟁 OST Part 2.jpg
||<width=25%>
파일:고려 거란 전쟁 OST Part 3.jpg
||<width=25%> ||
[[고려 거란 전쟁/음악#s-2.1|
Part 1

비상]]
서도밴드
2023. 12. 15.
[[고려 거란 전쟁/음악#s-2.2|
Part 2

폭풍]]
김장훈
2023. 12. 29.
[[고려 거란 전쟁/음악#s-2.3|
Part 3

적동
(붉은겨울)
]]
안예은
2024. 01. 18.
[[고려 거란 전쟁/음악#s-2.4|
Part 4

그 겨울에
나는
]]
IYAGI (이야기)
2024. 02. 03.
그 외 오리지널 스코어는 음악 문서 참고.
[ 관련 문서 ]
||<tablebgcolor=#454545><tablewidth=100%><width=1000> 방영 목록 ||<width=25%> 명대사 ||<width=25%> 역사 탐구 ||<width=25%> 평가(논란) ||
<colbgcolor=#070707><colcolor=#fff> 최사위
崔士威
파일:고거전 최사위.jpg
캐릭터
지위 호부시랑 (1 ~ 4회)
→ 형부상서·통군사 (5 ~ 16회)
→ 참지정사 (16 ~ 22회)
→ 내사시랑평장사 (23 ~ 24회)
→ 문하시랑평장사 (25 ~ 32회)
등장회차 1 ~ 9회, 12 ~ 32회
배우
박유승

1. 개요2. 작중 행적
2.1. 1 ~ 4회2.2. 5 ~ 6회2.3. 7 ~ 8회2.4. 9회2.5. 12 ~ 15회2.6. 16회2.7. 17회2.8. 18 ~ 20회2.9. 21 ~ 24회2.10. 25 ~ 26회2.11. 27 ~ 28회2.12. 29회2.13. 30회2.14. 31회2.15. 32회(최종회)
3. 묘사4. 어록5. 여담

[clearfix]

1. 개요

[ 공식 홈페이지 인물 소개 ]

항상 고려 조정에 있었으나, 거란이 침입하자 통군사로서 참전해 몸소 전장에 나갔다. 현종이 지방제도를 개혁하기 시작했을 때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그 일을 추진한다.


KBS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의 등장인물로 배우 박유승이 맡았다. 강감찬 이전 문신 출신의 군 사령관으로 전장과 조정의 이해관계에 일절 휘둘리지 않고 국가와 군주를 위하는 강직한 신하이다.

2. 작중 행적

2.1. 1 ~ 4회

첫 등장 당시 직책은 호부시랑이다. 유진, 최항, 채충순과 더불어 목종 말년의 재상단의 일원이다. 2회에서 거란 황제모후가 중병이라는 사실을 조정 중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알린다. 당시 재상단 중에서는 직책이 가장 낮고 엄밀히 따지면 재상도 아니다 보니 초반 비중은 제일 낮으며, 3~4회에서도 별다른 활약은 없다.

2.2. 5 ~ 6회

현종이 즉위하면서 활약이 두드러지는데, 5회에서 형부상서로서 재상들과 함께 거란 사신 한기를 설득할 때, 달래는 태도로 접근한 재상들과 달리 고려에도 용맹한 군사와 장수들이 있다며 위협하는 역할을 맡는다. 동원령이 내려지자 행영의 군무를 총괄하는 통군사가 된다.

6회에서는 강조와 함께 작전을 논의한다. 흥화진 쪽 사정을 걱정하며 지금이라도 수성전으로 바꾸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의견을 제시하지만, '수성전에 들어가면 적의 기병이 국토를 휘젓는 것을 막을 수 없으니, 검차를 믿고 적을 섬멸해야한다'는 강조의 논지에 수긍한다.

2.3. 7 ~ 8회

7회에 고려군의 우위를 맡아 지휘하던 중 강조가 사로잡힌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고 절망한다. 여기에 총지휘관의 생포로 인해 휘하 병력들도 급속히 와해되었다. 결국 8회에 퇴각하던 중 김훈의 계책[1]에 따라 패잔병들을 수습하고 개경에 전투 결과를 보고하기에 이르렀다.

2.4. 9회

9회에 서경에서 강감찬을 만나고 난 후 개경으로 내려가 현종을 알현하였고, 현종의 명을 받아 군사를 모으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가게 되었다.[2] 이 때 "그 정도 일은 조정의 다른 신하를 보내도 되지 않느냐?"라고 의문을 표했지만, 되려 현종으로부터 "조정의 여론이 항복으로 기울었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2.5. 12 ~ 15회

12회에서 충주에서 병력을 모으려 하는데, 그 곳의 호장인 박진이 아들을 잃은 분노에 더해 "전쟁을 일으킨 것은 성상폐하이다."라면서 전면으로 반발하자 이 모습에 분노해 칼을 빼들어 갈등이 극에 달했는데, 다행히 충주사록 김종현이 와서 일단락 되는 듯 했지만, 그에게서 개경 함락의 소식[3]을 전하면서 현종을 호위하려고 했는데, '동원할 충주의 관군이 15명'이라는 김종현의 발언[4]에 탄식하면서 그 병력이라도 모아서 호위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13회에서 김종현과 수습한 군사들을 이끌고 가던 중 몽진 중이던 현종 일행을 만나 충주의 상황이 심상치 않으니 다른 곳으로 피하라고 권고[5]하고, 이후 몽진 행렬 참여하면서 14회에는 호장들에게 동원된 백성들과 싸우는 등 온갖 고난을 겪는다. 15회에서는 김종현과 함께 현종과 별개로 피난하는 원정황후의 호송을 맡으며 황제 일행과 다른 피난길을 가게 되었다.

2.6. 16회

이후 김종현과 함께 원정황후를 어느 관아에 모셨는데, 그녀가 사산한 것을 듣고 오열한다. 전쟁이 끝나고 논공행상에서 참지정사로 승진되었다. 김훈과 함께 현종에게 탁사정, 박섬 등 전쟁 중 도망친 자들을 벌할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2.7. 17회

현종이 밀어붙이는 지방 개혁에 형부시랑 김은부, 판어사대사 장연우, 중추사 채충순, 시어사 황보유의와 함께 포섭되어 지지를 표명한다. 자신 또한 호족의 일원이기에 이를 따르면서도 강경한 개혁에 역풍을 우려하는 장연우와, 송에서 귀부한 인물로 개혁에 자신의 이해관계가 별로 없지만 역으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 언급하는 채충순과 달리 제2차 여요전쟁에서 국력을 동원하는 도중 강경한 충주 호족들의 훼방을 직접 보아온 입장이기에 큰 이견 없이 개혁을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다. 실제로 이러한 배경에 대해 궁금해 한 다른 재상들(유진, 최항)의 의문에 실제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하기도 했다.

2.8. 18 ~ 20회

충주 호장 박진이 개경 복구의 명을 받고 올라오자 이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장면이 나왔다.[6] 이후 18회 후반 현종이 낙마하자 원정왕후와 유진에 의해 행영도통사로서 서경을 비롯한 서북면으로 가게 되어 남쪽으로 내려간 채충순과 더불어 자신들을 내쫓는 것으로 판단하고 형부시랑 김은부를 지킬 것을 판어사대사 장연우에게 부탁한다.

다행히 의식을 회복한 현종이 형부시랑 김은부의 큰 딸을 부인으로 맞이한 이후 20회에서 채충순과 함게 개경 조정으로 돌아와 장연우가 김은부를 지켜낸 무용담을 들었고, 이후 김은부를 통해 전해들은 강감찬이 제시한 타협안을 현종과 채충순, 장연우 등이 모인 자리에서 받아들이는 쪽을 선택했다.

2.9. 21 ~ 24회

21회에서 현종의 친조를 요청하는 거란 사신과 긴 설전을 벌였고, 이 후 외교전을 벌이기 위해 채충순과 함께 사신단을 꾸리라는 명을 받는다. 그리고 강감찬의 '거짓 친조 행렬'이라는 계책에 찬성하면서 "거란군은 전쟁을 할 수 있는 시기가 한정되어 있기에 전쟁을 벌이려면 당장 국경으로 이동시켜야 하지만, 우리가 진짜 친조 행렬을 하는 척하면 거란군은 기껏 군사를 이동시킨 명분을 잃고 얌전히 고려 측에서 친조하러 오길 기다리거나 다른 명분을 찾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식으로 시간을 지체시킨다면 끝내 거란군이 전쟁할 수 있는 시기도 잃게 만들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22회에서 '현종의 친조' 대신 '강동 6주(정확히는 흥화진)'을 내놓으라는 거란 사신의 요구에 "영토의 할양은 있을 수 없으며 당장 거란 사신의 목을 베고 전쟁을 준비하자."라고 가장 격하게 반대했는데, 그간 조정 내 최고 주전파였던 강감찬보다도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이후 주연 자리에서도 다시 '강동 6주'를 요구하는 거란 사신에게 "무슨 권리로 그 땅을 요구하냐? 그 땅은 우리 힘으로 여진을 몰아내고 얻은 땅이다."라고 강하게 반박한다. 이후 거란의 협상 목표가 흥화진으로 옮겨진 뒤 '흥화진을 내어주고 다른 성의 방비를 강화하자'라는 채충순 등 다른 재상들이나 신료의 주장에 강하게 반대하다가 대소신료가 모인 자리에서 거란의 흥화진 할양 요구를 거부하는 현종을 보고 감격에 찬 듯 고개를 끄덕인다.

23회[7]에서 거란에 사신으로 갔다가 붙잡힌 형부시랑 김은부의 서찰을 통해 거란이 자신들을 속인 것을 알고 현종이 자신을 비롯한 재상들을 불렀고, 이후 진행된 회의에서 거란 사신을 억류해야 한다는 현종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24회에서는 김훈과 최질을 파직하라는 장연우의 상소에 유진 다음으로 동조하면서 파직이 어렵다면 중랑장으로 강등하라고 현종에게 조언한다. 이후 회차 후반 1014년으로 넘어가면서 복구된 정전을 현종을 비롯한 황실과 다른 대소신료들과 함께 걷는다.

2.10. 25 ~ 26회

이 무렵부터 관직이 문하시랑평장사가 되었지만, 여전히 중추사 채충순과 함께 여전히 지방 개혁을 담당하고 있어서 재정과 관련해 중추사 장연우에게 맡겨야 한다는 검교태사 수문하시중 유진의 말을 듣는다. 이후 궁궐에서 장작주부 박진을 만나 그의 속뜻을 듣고 의심을 하고 이를 서경에서 올라온 어사중승 노전과 동북면에서 돌아온 감찰어사 김종현을 어사대에서 만나 이들에게 박진과 상장군 김훈, 최질을 감시하도록 지시한다. 그러나 이들에게서 김훈과 최질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접했고, 곧이어 이들이 궁궐을 점령하자 장연우와 황보유의가 자청해서 나가자 안타까워했고, 26회 초반 정예병을 잃을 수 없다면서 저들에게 굴복하고 나중에 처단하자는 김은부의 의견에 반박하다가 이후 반란군들이 정전에 들어서면서 현종을 호위하다가 이들에 의해 붙잡혀 내동댕이쳤다. 이후 유진, 최항, 채충순, 강감찬, 강민첨과 회동하면서 자신이 미리 눈치 채고 감시하고 있었음에도 저들의 반란을 막지 못했다면서 더 일찍 알았어야 했다면서 자책했고, 이후 권력을 차지한 무관들의 행태에 채충순과 함께 치를 떨며 분노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후반 유진, 강감찬과 함께 이번 반란의 배후인 박진에 대해 얘기하다가 박진이 현종의 몽진 도중 습격한 범인이라고 추리했고, 이는 해당 장면 이후 강감찬이 박진을 추포하는 계기가 되었다.

2.11. 27 ~ 28회

27회에서 최질에 의해 박진을 처단하지 못하자 문신들과 현종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데 내관들을 시켜서 박진 베었어야 했다고 현종한테 말한다. 이후 최질이 거란과의 친조를 이행하라고 하자 이 역적놈들아라고 하면서 최질에게 달려드나 병사들에게 막히고 현종이 친조를 이행하겠다고 하자 모든 관조정 관리들과 함께 그를 막아서며 통곡을 한다.

28회에서는 최질의 명령에 의해 병사들이 대신들을 궁궐에 감금하여 비중이 없었다.

2.12. 29회

현종이 멋진 계략으로 역도 무리들을 전부 소탕했다는 소식을 듣자 모든 신하들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3차 여요전쟁 발발을 앞두고 강감찬의 대회전 주장에 유진, 최항 , 채충순 등의 대부분의 다른 대신들이 반대하지만 문신들중 제일 먼저 찬성하여 찬성론의 물꼬를 튼다.

2.13. 30회

현종과 함께 고려군의 첫 승전보를 듣는 모습으로 등장. 하지만 이후 '거란군이 곧장 개경으로 진격하고 있다'는 전언을 듣고 대신들을 소집한 현종에게 다시 한번 피난을 권유하지만, 오히려 현종은 개경을 방어한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래서 '함께 거란과 맞서 싸울 사람은 병부로 찾아와 병장기를 지급받아라'라는 공고를 낸 현종의 말에 따라, 병부에서 무기를 지급받을 백성들을 기다려보지만 아무도 안 오자 한숨만 쉰다. 그 때 강감찬 처가 제일 먼저 찾아와 '돌멩이라도 달라'고 하자 "돌아가십시오 부인. 부인께서 오실 곳이 아닙니다."라며 만류했지만, 곧바로 양규 처와 강조 처도 찾아와 활을 지급해달라는 말을 듣는다. 이후 굳은 표정으로 현종에게 이를 보고하면서 "그 3명이 전부였소?"라며 절망하는 현종에게, 조금씩 웃어보이며 '아니다. 그 이후에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고 보고한다.

2.14. 31회

개경으로 빈접털이를 하러 오는 소배압의 군대를 향해 현종이 모든 고려의 신하들과 백성들을 총동원해 횃불을 들고 나가 개경에 여전히 대군이 상주하는 것처럼 속여 보자는 의견을 내어 본인 또한 모든 고려사람들과 함께 진짜 횃불을 든 채로 성 밖으로 나가 진짜로 거란군들을 속여 물러나게 하는데 성공한다.

2.15. 32회(최종회)

강감찬의 최종 승전보를 듣고 현종을 비롯한 모든 조정의 인물들과 함께 감격과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이후 송나라의 사신이 고려에게 사신을 보내 자신들과 협공하여 거란을 치자 했다고 현종이 전하자 이제까지 당한것을 갚아줄 좋은 기회라며 가장 먼저 찬성한다.

3. 묘사

드라마 상에서는 2차 여요전쟁 이후 서북면 군사 지휘관으로서의 행적, 지방제도 개혁에 기여했던 업적이 다수 생략되었다. 서북면에서의 행적은 유방에게 넘어갔고 지방제도 개혁은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고 채충순과 엮여 대사로만 간략히 언급되었다. 원작 소설에서는 첫 등장부터 형부상서 겸 임시직으로 통군사를 맡고 있다고 나오는데, 청렴하고 현명한 고려 제일의 인재 중 하나이자 문무를 겸비하여 존경의 대상이라고 소개되며, 강조에게 행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직접 세 방면으로 진군하여 거란군을 견제하기 위한 계책을 주장하는 등 군사 지휘에서 높은 권세를 지녔다고 나온다.[8] 드라마에서는 황실에 충성하고 본인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신하로 묘사된다. 통주에서도 강조의 작전에 대해 수긍하며 따르고, 현종의 호종도 함께 하며 이후 현종의 개혁 정책에도 찬동하며 시행하는 등 전체적으로 맡은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관리로 묘사된다. 은근히 강단도 있어서 전쟁 전 거란과 외교 회담을 할 때 한기를 쏘아붙이거나 문신임에도 전투 상황에서는 몸을 아끼지 않고 싸우는 모습도 보여주고, 전쟁 이후에는 강감찬과 더불어 거란에 대해 가장 강경한 입장을 고수한다.[9]

문관 출신 사령관인 강감찬과 유사한 포지션이나 주인공이자 역사적으로 위인의 반열에 오른 강감찬에 비해 명확한 한계가 존재하며 차이점 또한 분명하다. 지방관임에도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중앙 정계로 진출한 강감찬과 달리 최사위는 능력과 별개로 애시당초 조정의 요직에 속한 중신이었다. 강직한 성격 또한 공통점이나, 군주에게 직언을 서슴치 않아 수많은 반대 의견을 겪었던 반골에 가까운 강감찬과 달리 최사위는 직설적일지언정 군주의 명령을 충직하게 따르는 신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최사위가 군주 현종의 몽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과 달리 강감찬은 대외적으로 거란과의 전쟁에서 활약하였다. 결정적으로 최사위가 군을 통솔하는 장군임에도 거란과의 전쟁에서 크게 패배한 것과 달리[10] 강감찬은 3차 여요전쟁에서 군을 이끌고 거란을 패퇴시켰다. 사실 실제 역사에서 최사위는 군사적 식견은 다소 떨어졌지만 현종 대의 지방 제도 개혁을 주도한 인물이었으며 죽은 후에는 강감찬과 더불어 현종의 배향공신에 들어갈 만큼 현종 치세에서 중역을 맡았던 재상이었는데, 본작에서는 비록 본격적인 시작을 하지 않아 향후 전개를 알 수 없지만 실제 역사에서 지방제도 개혁 주도 역할을 한 그의 공이 김은부에게 빼앗긴 측면이 있다.

사실 김은부는 지방행정 개혁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딱히 기록이 없으며[11], 고려사 최사위 열전을 보면 최사위가 지방 제도 개혁을 어떻게 진행했는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21회 작중 김은부는 거란에 사신으로 가서 거란에게 붙잡혀 있고, 23회에서 강감찬이 현종이 김은부를 잘 있는지 보기 위해 동북면으로 파견을 가는 실제 역사가 드라마에 반영되었으므로 최사위가 지방제도 개혁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사실도 드라마에서 묘사될 가능성이 있는데, 다만 이 무렵(실제 시기로는 1011년 후반 ~ 1012년) 최사위도 서북면 지역에 몇 차례 파견을 간 기록이 있어서 실질적으로 주도할 시간이 있을지 의문이 들었고, 드라마에서는 이 부분을 그냥 넘기면서 제대로 반영이 되지 않았다.[12] 그래도 25회에서 채충순과 더불어 지방 개혁을 해야 한다고 언급하는 부분이 있어서 큰 사건 위주(김훈 최질의 난제3차 여요전쟁)로 흐를 종반부에서도 나름 활약을 할 것으로 보인다.

4. 어록

이 고려에도 용맹한 군사들과 지략이 출중한 장수들이 수없이 많소.
막상 전쟁이 일어나면 귀국의 피해도 상당할 것이오.
폐하께... 이 일을 어찌 고해야 하겠나?
이럴 수가... 개경이 함락되다니, 개경이...
역적놈들아! 하늘이 두렵지도 않느냐!!!

5. 여담



[1] 김훈 본인이 전열을 정비해 적을 막는 동안 통군사가 흩어진 패잔병들을 수습해 각각 곽주와 서경으로 배치하는 계책이다. 사실 총책임자라 할 수 있는 강조가 생포되고 고려군이 뿔뿔이 흩어진 상황에서 그나마 임시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원작에서는 강조가 사로잡혔다는 소식에 멘붕에 빠진 후 남쪽으로 조원과 함께 퇴각하던 도중 그에게 동북면 도순검사 탁사정에게 가서 동북면의 병력을 모아 서북면의 서경 쪽으로 가라고 말한다.[2] 참고로 원작에서는 최사위 등이 군사를 모으는 일에 관하여 조정에서 논의가 오갈 때에 김종현이 처음 등장한다.[3] 이때 김종현이 일부러 귓속말로 전했는데, 이는 직전인 5회에서 이미 박진과 한 번 대치했던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후 최사위가 크게 놀랐기 때문에 박진도 얼핏 눈치는 봤다.[4] 그것도 이 '15명'이 충주 사록인 김종현을 포함한 숫자이다.[5] 이게 호재가 된 것이 추격대를 지휘하는 야율적로가 호장 한 명을 잡아 협박하여 길잡이를 하게 하였는데 호장은 백산을 지났으니 충주로 향한 것이 분명하다며 그 쪽으로 유도했는데, 아닌 게 되어 거란군의 추격이 늦춰졌다. 안타깝게도 그 호장은 야율적로에게 죽게 되지만.[6] 12회에서 통군사인 자신에게 대놓고 개기는 것도 모자라 현종까지 모욕하는 박진을 직접 겪었고 여기에 분노해 칼까지 빼들었던 최사위 입장에선 갑자기 재물까지 바쳐가며 개경 복구를 돕겠다니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7] 여기서부터 자막으로 관직이 '내사시랑평장사'라고 적혔다.[8] 이때 그의 작전에 항마군 및 김숙흥을 포함한 귀주군도 참여하는데, 거란군이 그의 예상보다 더 격렬히 저항하여 귀주군이 시간을 벌어줬으나 그의 후퇴 명령을 받고도 도망치지 못하고 포위되는 등 난항을 겪으며, 그의 부대도 거란군에 의해 궤멸할 위기에 처하다가 귀주 기병대의 등장으로 가까스로 탈출한 귀주군 덕분에 목숨을 건진 후 전령을 보내 강조에게 사실상 후퇴하라고 청하여 통주로 다시 돌아가게 한다. 이후 김숙흥의 활약을 칭찬하며 그를 임시로 귀주의 부방어사에 임명한다.[9] 사실 최사위는 2차 여요전쟁 내내 통군사라는 직책 상 통주 전투를 지휘하다 복귀하자마자 바로 남쪽으로 파견나가는 등 조정에 있던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그렇지 만약 조정에 남아있었다면 홀로 항전을 주장하던 강감찬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10] 최사위 1명의 실책이라기보다는, 사령관 강조를 위시한 고려 제장들 전체가 안일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11] 고려사의 기록 누락과 부족을 생각하면 김은부도 나름대로 이 일과 관련해서 일을 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지방개혁 주도는 엄연히 최사위가 했다.[12] 대신 김훈과 최질의 반역심을 강감찬보다 먼저 간파하고 감시하며 작중 흑막인 박진의 정체를 간파하는 날카로운 식견을 보였으나, 스스로 현종에게 박진을 고발하거나 행동에 나서지는 않고 강감찬에게 알려주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렀다.[13] 게다가 이 드라마의 주인공 중 하나인 강감찬 역의 최수종과는 태조 왕건, 해신(대하드라마는 아니지만), 대조영에 이어서 네 번째로 만나는데, 앞의 두 대하드라마 작품은 적대적인 진영 혹은 관계였다면, 해신과 이번 작품에서는 위에도 언급했듯이 그래도 나름 호의적이거나 비슷한 위치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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