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배역의 실존 인물에 대한 내용은 채충순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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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거란 전쟁/음악#s-2.1| Part 1
비상]]
서도밴드
2023. 12. 15.[[고려 거란 전쟁/음악#s-2.2| Part 2
폭풍]]
김장훈
2023. 12. 29.[[고려 거란 전쟁/음악#s-2.3| Part 3
적동
(붉은겨울)]]
안예은
2024. 01. 18.[[고려 거란 전쟁/음악#s-2.4| Part 4
그 겨울에
나는]]
IYAGI (이야기)
2024. 02. 03.그 외 오리지널 스코어는 음악 문서 참고.
<colbgcolor=#070707><colcolor=#fff> 채충순 蔡忠順 | |
캐릭터 | |
지위 | 중추원부사 (1 ~ 4회) → 직중대[1] (5 ~ 16회) → 중추사 (16 ~ 29회) → 참지정사 (29 ~ 32회) |
등장회차 | 1 ~ 32회 |
배우 | |
한승현[2] |
[clearfix]
1. 개요
|
2. 작중 행적
2.1. 1 ~ 4회
1~2회부터 등장 당시 직책은 중추원부사. 유진, 최항, 최사위와 함께 목종 말년의 재상단의 일원이다. 3회에서 김치양 파벌과 언쟁을 벌이고 목종과 함께 정전을 지키다가 대량원군이 위기를 알려오자 황보유의를 탈출시켜 대량원군을 구원하는 임무를 맡긴다. 그러나 목종이 폐위 및 시해된 이후 4회에서 벌어진 현종 즉위 연회에서 싸늘한 분위기를 지적하는 강조를 향해 최항에 이어서 자신은 조정의 재상으로서 지금까지 해온 대로 조정에서 일할테니 그 이상은 바라지 말라고 한다.2.2. 5 ~ 8회
5회에서 중대성의 직중대로서 거란 사신 한기를 영접하는 자리에서, 다른 재상들이 부드러운 말투로 간곡히 사정할 때, 여진족은 믿지 못할 족속인데 그런 여진이 거짓으로 고한 걸 가지고 고려를 정벌하면, 거란의 황제는 역사에 크나큰 오점을 남기시게 될 것이라고 일침을 가하며 강온양면전술로 설득한다. 6회에선 흥화진의 백성들을 근심하는 현종을 다른 재상들과 다독이며 우선은 주무시라고 청한다.7회에서 강감찬과 대치하던 유진을 말렸는데, 이후 강감찬의 언급으로 보아 가족들을 미리 향리로 피신한 것으로 보인다.[3] 8회에선 송나라가 거란과 전연의 맹을 맺어 더 큰 전란을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하며, 여기서 더 이상의 피해는 없어야 한다며 다른 대신들과 친조 요청을 주장한다.
2.3. 9 ~ 10회
9회에서 친조가 받아들여졌다는 소식 이후 현종의 포로가 된 백성들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현종의 질문에 "그들을 구할 방법이 없으며 모두 거란으로 끌려가 노비로 팔릴 수 있다."고 대답한다.10회에서 거란 진영에서 돌아온 강감찬에 의해 친조가 현종의 허락 아래 그가 벌인 기만술임을 밝혀지자, 최항, 강감찬과 세 명만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을 속였다는 것에 먼저 강감찬에게 분노한 최항에 이어 분노한 모습으로 강감찬에게 "그러다 발해가 멸망했기에 우리는 파국을 막고자 했을 뿐이었고, 비록 비루하게 연명해도 존재하는 것과 사라지는 것은 분명 다른 것이며, 자신들도 무조건 내어주고자 한 것이 아니라 '염윤'[4]처럼 목숨을 걸고 협상을 하여 피해를 최소화하고 국익을 수호하고자 했는데, 강감찬이 그 기회를 빼앗았고 전쟁을 더욱 막다른 절벽으로 내몬 것이라 말하며, 후손들이 과연 누굴 원망할지 모르겠다."는 일침을 남기고 최항과 더불어 그 자리를 떠난다. 이후 현종과 다른 관료들과 더불어 조정에서 서경에서의 전투 상황을 듣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2.4. 11 ~ 16회
11회에서 항복을 주장하고 강감찬의 주장의 허점을 비판하면서도 최항처럼 따로 강감찬에게 압박을 넣는 등의 비난은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고, 후손들의 손가락질이나 나라를 망친 역적이라는 오명 등도 자신들이 감내하겠다면서 현종에게 충성심을 보인다. 이후 현종의 몽진 행렬에 동참해 12회에는 유진, 최항 등 다른 대신들과 작별하고 계속해서 몽진 행렬에 동참해 현종을 보필하다가 충주 호장 박진 일행의 기습을 받고 포위당했다.13회에서 이를 막으려다가 제압당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지채문, 장연우, 황보유의가 구원해 와 위기를 넘겼고, 이후 행군하던 과정과 창화현에서 현종에게 '호족'을 비롯해 고려의 지방 상황에 대해 잠깐 설명한다. 14회에서는 그나마 있던 병사들도 달아나자 아예 말고삐를 잡는 신세[5]였지만, 다행히 하공진이 도착해 위기를 넘겼고, 이후 친조를 청하는 포문을 작성해 현종에게 넘겼다.
15회에 고향 쪽으로 내려간 원정황후와 최사위, 김종현을 배웅하고, 현종을 모시고 다시 몽진길에 오르는데, 관복을 벗고, 평복 차림에서 산을 넘고 강을 건너는 등 꽤 힘들게 이동했다. 이후 공주에 도착해 공주 절도사 김은부의 환대를 받으면서 "얼마만에 먹는 밥이냐?"하며 좋아했고, 다음 날 현종과 함께 나주로 이동한다. 16회에서는 나주에서 현종과 함게 개경으로 돌아오면서 이후 논공행상을 통해 중추사로 임명되었다.[6]
2.5. 17회
현종이 호족들을 제압할 것을 선언한 후로 유진과 최항에게 몽진 길에서 겪었던 일들을 설명해준다. 최항은 그럼 폐하를 시해하려 한 호족들만 처벌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묻지만, 채중순은 '지금 폐하의 눈에는 자신을 시해하려 한 호족이나 충성하는 호족이나 다 똑같아보일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후 현종이 밀어붙이는 지방 개혁에 형부시랑 김은부, 중추사 채충순, 참지정사 최사위, 시어사 황보유의와 함께 포섭되어 지지를 표명한다. 포섭되기 직전 재상진들의 회의에서 본인의 언급에 따르면 송나라에서 귀부한 사람이라 언급하는데[7], 지방에 기반이 있는 호족들과 달리 귀부를 하여 중직에 올라선 재상이란 입지 때문에 지방개혁에 있어 크게 반발하지 않지만, 동시에 그로 인해 자신이 현종의 힘이 되어주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를 보였다.2.6. 18 ~ 21회
18회에서는 김은부를 탄핵하려는 강감찬의 상소에 대해 아직 죄상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하다가 최구에 의해 반박당한다. 19회에서는 유진의 현종과 김은부의 호족 개혁에 찬성하는 신하들을 개경에서 떨어뜨려 놓으려는 계략으로 지방에 파견을 나간다.20회에서는 개경으로 다시 돌아와 김은부를 지킨 장연우의 무용담을 듣다가 2절까지 하려는 장연우를 말린다. 이후 최사위, 김은부, 장연우와 함께 현종과 만나 강감찬이 제시한 타협안을 검토하고 이에 찬성한다. 21회에서는 다른 대신들과 함께 친조 요구를 하는 거란 사신에게 이렇게 무례하게 대하면 친조가 늦춰질 것이고, 어느 제후국의 군주가 마음 놓고 거란 땅을 밟겠냐고 말한다.
2.7. 22 ~ 24회
22회에서 거란의 사신이 찾아와 강동 6주의 할양을 요구하자, 사신에게 베푸는 주연(酒宴) 자리에서 그에 앞서 사신이 계속 현종을 군호인 '대량원군(大良院君)'으로 호칭하는 것을 지적하며 이미 현종이 즉위한지 2년째인데 마땅히 책봉을 우선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후 거란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가진 2차 주연에서 거란 사신이 자신들의 목적이 실제로는 흥화진의 할양에 있음을 밝히자, 현종과 재상단의 대책회의에서 2차 여요전쟁에서 입은 고려의 극심한 피해와 현재의 흉년을 강조하며 영토를 떼주더라도 당장의 전쟁은 피해야한다고 주장한다.23회에서는 거란이 자신들을 속인 것을 알자 거짓된 방식으로 우리를 농락하고 우리의 사신을 납치했다고 분개하면서 거란 사신을 억류하는 것에 동의한다. 24회에서는 김훈과 최질을 파직하라는 장연우의 상소에 동조한다.
2.8. 25 ~ 26회
25회에서 김훈 최질의 난이 발생할 때 정전에서 계속 현종을 지킨다. 26회에서는 정예병을 소모하지 않기 위해서 일단 굴복한 후 나중에 처단하자는 형부시랑 김은부의 제안에 희생을 강요하더라도 역도를 처단해야 한다고 반박하며, 무신들이 집권한 후 문신들과 모여서 이 반란은 계획된 반역이라고 말한다. 그 후 무관들에 의해 개판이 된 조정을 최사위와 함께 지켜보며 분노한다.2.9. 27 ~ 28회
27회에서 최질에 의해 박진을 처단하지 못하자 문신들과 현종이 모여서 회의 할 때 참석한다. 이후 최질이 거란과의 친조를 이행하라고 하자 황제를 거란에 팔아먹냐면서 분개해서 달려들지만 병사들에게 배를 얻어맞고 쓰러지고 이후 현종이 친조를 이행하겠다고 하자 그를 막아서며 모두와 함께 대성통곡을 한다.28회에서는 최질의 명령에 의해 병사들이 대신들을 궁궐에 감금하였기에 다른 대신들과 같이 나오는 장면이 전부이다.
2.10. 29 ~ 30회
29회에서는 현종이 계략으로 역도 무리들을 전부 소탕했다는 소식을 듣자 모든 신하들과 함께 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후 강감찬이 최후의 전투를 위해 출전하기 직전 강감찬의 대회전 계획에 최항과 함께 반대했다.30회에서는 강감찬의 승전보를 기다리다가 첫 전투에서의 소식을 듣고 기뻐하지만, 거란군이 개경을 향해 도강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다른 대신들과 마찬가지로 우려를 표한다.
2.11. 31회
개경으로 빈접털이를 하러 오는 소배압의 군대를 향해 현종이 모든 고려의 신하들과 백성들을 총동원해 횃불을 들고 나가 개경에 여전히 대군이 상주하고 있는것처럼 기만술로 속여보자는 의견을 내자 상대는 너무 위험한 도박인거 같다며 큰 우려를 표한다. 그래도 어차피 죽기 아니면 살기란 각오로 가능성이 있다면 한번 해보자는 현종의 뜻에 따라 모든 고려사람들과 함께 진짜 횃불을 든채로 성밖으로 나가 진짜로 거런군들을 속이는데 성공한다.2.12. 32회(최종회)
최종회에선 강감찬의 최종 승전보를 듣고 현종을 비롯한 모든 조정의 인물들과 함께 감격과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3. 어록
무엄하오! 궁궐에 닥친 재앙을 어찌 성상 폐하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오! |
우린 조정의 재상들이오. 지금까지 해 온 대로 이 조정을 위해 일할 뿐이오. 그것 말고는 더 바라지 마시오. |
폐하, 이 고려의 황제는 폐하시옵니다. |
여진들은 본래 승냥이 같은 습성을 갖고 있는 자들이오. 그런 자들이 거짓으로 고한 사실을 가지고 고려를 정벌하신다면, 거란의 황제께선 훗날의 역사에 크나큰 오점을 남기시게 될 겁니다. |
비록 적에게 항복한 비루한 모습으로 연명할지라도 존재하는 것과 사라져버린 것은 분명 다른 것이오. 정녕 그걸 모르시오? 우리라고 무조건 내어주기만 할 작정이었겠소? 아니오. 우리도 목숨을 내걸고 염윤처럼 협상할 생각이었소. 어떻게든 고려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국익을 수호코자 했소. 한데 공은 우리한테서 그 기회를 빼앗은 거요. 그리고 이 전쟁을 막다른 절벽으로 내몬 것이오! 후손들이 과연 누구를 원망할지 모르겠구려. |
폐하, 후손들의 손가락질은 소신들이 감당하겠사옵니다. 적국에 영토를 떼어넘긴 역적이라는 오명도 소신들이 기꺼이 감수하겠사옵니다. 군주에게 항복이란 굴욕을 안긴 간신이란 낙인도 소신들이 모두 감당하겠사옵니다. 하니 부디... 항복을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
그럼 황제 폐하를 거란에 갔다 바치잔 말이오?! |
4. 여담
- 원작 소설에서는 조정에서 가장 의심의 여지 없이 믿을만한 신하라고 설명되며, 목종이 후계 관련 문제로 그와 최항을 가장 먼저 찾기도 하였고, 현종에게 명목상의 항복 표문을 통해 거란군을 철군하게 하자는 계책을 낸 사람도 채충순으로 나온다.[8]
- 모든 사극들이 그렇듯 다른 남성 배우들은 수염을 직접 붙여서 연기를 했지만 한승현 만은 진짜로 본인 수염을 기르면서 연기를 했다.
[1] 강조의 정변 직후인 음력 1009년 2월에는 직중대에 임명된 것은 맞지만, 바로 다음 달인 음력 1009년 3월에 '이부시랑 겸 좌간의대부'로 승진하였기에 원작에서는 그의 관직이 이부시랑이라고 설명된다.[2] 해치에서 경종 역을 맡았으며, 본작이 2번째 사극 출연이자 첫 대하사극 출연이다.[3] 기회주의적으로 보이는 행동이지만 유진의 말처럼 자신도 사람인지라 혈육의 안정을 말하고 자신은 목숨을 받칠 것이라 하는데 정말로 도망치려 했다면 자신도 낙향해버리면 그만이다. 가족까지 보내놓았다는 것은 자신은 여기서 죽는 한이 있어도 있겠다는 역설이기도 하다. 실제로 채충순의 충심은 사서에서도 분명히 드러나듯이 현종이 몽진을 갈 때에도 끝까지 호종한 대신들 중 한 명이다.[4] 제1차 여요전쟁 때 활약한 명신 서희의 아명이다. 최항, 채충순은 서희의 말년을 바라본 후배 관료이고, 강감찬은 서희와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다.[5] 전전승지 양협이 있었지만, 당시 양협은 옥새를 늘 들고 있었고 다른 이들은 백성들과 맞서고 있었다.[6] 중추사는 중추원의 관리로 중추원은 권력을 잡으려는 강조에 의해 폐지된 적이 있는 기관이다. 이 시기에 다시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7] 역사에서 광종 대에 고려로 귀부한 채인범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이 인물과 채충순의 나이 차 및 채인범의 묘비에 적혀 있는 자식 관련 기록들을 바탕으로 채충순을 채인범의 장남으로 추정하는 시각이 있다. 드라마는 이 시각을 정설로 받아들여, 채충순을 채인범의 장남이자 송에서 귀부한 집안으로 설정한 듯하다. 또한, 역사 속 채충순도 북송 출신 주저를 천거하여 고려의 관리로 만든 이력이 있어 주저와 같은 송 출신으로서 그를 고려에 천거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8] 드라마에서 강감찬에게 활약을 너무 몰아주어 비판을 받았는데, 원작에 나온 채충순의 활약 중 하나 역시 드라마에서는 강감찬의 것으로 대체된 것이다. 참고로 원작에선 거란군이 결국 개경으로 진군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최항의 항복 의견에 동의하여 그 전에 먼저 거란에 고려의 요구 사항을 보낸 뒤 근왕군을 적당한 지점에 모이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감찬의 몽진 주장에는 위험성 등의 이유로 2차례나 반대하여 우려를 표하지만, 실제 역사대로 현종을 끝까지 충신으로서 호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