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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5 09:27:39

증자(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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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공자와의 관계4. 일화
4.1. 이모저모
5. 증자의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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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曾子 (기원전 505년~기원전 435년)

증자는 중국 전국 시대의 유가 사상가로 동아시아의 효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2. 생애

원래 이름은 증참(曾參).[1]

원 문종 3년[2]에 성국종성공(郕國宗聖公)[3]으로 추봉(追封)되었고, 이것이 현재 성균관 대성전 등지의 공문사당(孔門祠堂) 위패에 표기되는 공식 존호이다.

후에 공자의 적통을 이어받았다고 평가되며, 공자와 나이차이는 46세. 부친 증점(曾點)도 공자의 제자였다.

3. 공자와의 관계

공자는 제자였던 증삼에 대해 그렇게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워낙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제자(약 46세)로 오래 보지 못했던 것도 있고 그의 우직한 성품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논어에서 공자는 증자를 "(우직해서) 노둔하다"[4]고 평가했는데, 주희는 논어집주에서 "이런 우직함때문에 증자가 학문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공자가어에서 증삼이 아버지 증점(曾點)[5] 에게 잘못을 저질러서 맞을 때 변명을 하지않고 맞고만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내용이 상세하나 공자가어는 후대에 지어진 위작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주의를 표해야 한다.
증자가 오이밭을 갈고 있을 적에 뿌리를 잘못 베었다. 증절(曾晢)[6]이 화를 내어 큰 몽둥이를 들고 그의 등을 쳤는데 증자는 땅에 엎드려 남들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오랫동안 (웅크려) 있었다. 잠시 뒤에 깨어나니, 기뻐하며 일어나 아버지에게 나아가 말했다. "아까 제가 아버지께 큰 죄를 지었는데 아버지께서 힘을 주며 저를 가르치는 데에 편찮은 곳이 없으셨습니까?" 물러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거문고를 켜고 노래를 불러 아버지에게 들리게 하니 그 몸이 편해짐을 알았다. 공자가 이를 듣고 분노하여 문하의 제자들에게 말했다. "증삼이 들어오거든 안으로 들여보내지 말라." 증삼은 스스로가 죄가 없다고 여겨 사람을 시켜 공자께 만남을 청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옛 고수(瞽瞍)[7]께서 순이라는 아들이 있으셨고, 순 임금께서는 아버지를 섬겨 아버지가 심부름을 시키고자 했을 적에는 일찍이 곁에 있지 아니한 적이 없었고, 아버지께서 찾아내 죽이려고 할 적에는 일찍이 순 임금을 죽이지 못하셨다.[8] 작은 회초리를 들고 오시면 그 벌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셨고, 큰 몽둥이를 들고 오시면 달아나셨으니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아버지로써 하지 말아야 할 죄를 범하지 않으셨고, 순 임금께서도 지극한 효성을 잃지 않으신 것이다. 지금 증삼은 아버지를 섬김에 자신의 몸을 멋대로 그 폭력과 분노에 기대어 (맞아) 쓰러진 채 피하지 않았으며 이윽고 자신은 죽어 아버지를 불의에 빠뜨리게 하였으니 그 불효가 무엇보다 크지 않겠는가? 너희들은 천자의 백성이어늘, 천자의 백성을 죽이면 그 죄가 어떠하겠느냐?" 증삼이 이를 듣고 말했다. "내 죄가 크도다!" 끝내 공자께 나아가 자신의 잘못을 사죄했다.

曾子耘瓜,誤斬其根。 曾晢怒,建大杖以擊其背,曾子仆地而不知人久之。 有頃乃蘇,欣然而起,進於曾晢曰:「嚮也參得罪於大人,大人用力敎參,得無疾乎?」 退而就房,援琴而歌,欲令曾晳而聞之,知其體康也。 孔子聞之而怒,告門弟子曰:「參來,勿內。」曾參自以爲無罪,使人請於孔子。 子曰:「汝不聞乎?昔瞽瞍有子曰舜,舜之事瞽瞍,欲使之,未嘗不在於側;索而殺之,未嘗可得。小棰則待過,大杖則逃走,故瞽瞍不犯不父之罪,而舜不失烝烝[9]之孝。 今參事父,委身以待暴怒,殪而不避,旣身死而陷父於不義,其不孝孰大焉!汝非天子之民也,殺天子之民,其罪奚若?」 曾參聞之,曰:「參罪大矣!」 遂造孔子而謝過。
공자가어(孔子家語) 육본(六本) 편

이렇게 공자가 화를 낸 이유는 단지 순간의 화로 자식을 매질해 죽게 만들면 그 부모가 가질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크고 후회가 많을 것인가 해서이다. 적당히 도망가서 아버지의 화가 풀어질 때까지 숨어 있다가 차후 그 문제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 하는데 우직하게 맞고있는 증삼을 나무란 것이다. 증삼의 효는 공자가 보기엔 불효이자 융통성 없는 행동이었다. 공자도 융통성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제자인 증삼의 행동은 자기가 봐도 심각할 정도로 융통성이 없어 보였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했다. 결국 이 고사를 통해 후대 증삼 계통의 유학의 일면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제일 뛰어났던 안회는 요절했고, 공자의 말씀을 가장 잘 기억하고 잘 실천하는 그가 적통을 이어받아서 공자의 손자인 자사에게, 자사는 맹자에게 그 계보가 이어진다. 그러나 사실은 공자 제자 중 가장 젊었고, 증자의 제자들이 후에 유학을 꽉 잡았기 때문에 증자가 공자의 적통이 된 셈.[10]

일반적으로 공자의 제자 중 뛰어난 제자로 알려진 공문십철이나 72현들은 대부분 타국 출신들이었고 공자가 효로 언급한 인물은 증삼이 아니라 민자건이었다. 그러나 민자건은 제자를 두지 않고 본인의 실천적인 효를 중요시 하고 가난으로 요절했기 때문에 그 후학은 없어졌다. 수제자라고 할 수 있는 안회는 일찍 죽었고 친구이자 공자 제자들 중에 리더격인 자로는 출사한 위(衛)나라의 국내 문제에 휘말려 희생당했다. 또 자공이나 자하, 자유 등은 3년상이 끝나자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활동했으며 말년에 가장 아낀 자장 역시 고향인 진(陳)나라로 돌아가 활동했다. 이렇듯 뛰어난 제자들은 일찌감치 자신의 고향에 출사를 해 노나라에서 제자를 기르지 않았으며 제자를 기른 후학 중[11]에선 증삼이 가장 성공했기 때문에 결국 노나라에서 공자의 적통을 인정받게 되었다. 전국초기에 활약한 오기도 노나라에서 공부를 한 유학자였는데 증삼의 아들 증신에게서 배웠다.[12] 이렇듯 노나라에서 헤게모니를 잡은 증삼일가는 결국 유학의 정통으로 자리매김하게 되고 맹자를 통해 결정적으로 크게 발전해 지금까지 이어져 오게 되었다.

4. 일화

공자의 뛰어난 제자 중에 한 사람이었지만 그것은 배우는 자세와 효를 실천하는 자세 때문이고, 사실 스승인 공자가 직접적으로 "증자는 둔하다"라고 할 정도로 머리가 뛰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뛰어나지 못한 머리 대신 매일같이 스승의 말씀을 실천하려고 노력했고 배운 모든 것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때문에 그의 사상에서 중시되는 강령이 바로 '반성(성(省), 살핌)'이다.[13] 그래서인지 그와 관련된 일화 대부분이 자기 반성에 관련된 얘기이다. 특히 "예기"에서 두드러지는데, 증자의 반성은 일단 본인의 재량껏 일을 한 뒤 자신을 되돌아보고 '이랬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며 자기반성을 하는 것이지 잦은 실수를 하고 그걸 반성하는게 아니다.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 갈 적에 아들이 어머니를 따라가려 울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너는 돌아가거라. 돌아오면 너를 위해 돼지를 잡아주겠다." 아내가 시장에 갔다오니 증자가 돼지를 잡고자 했는데 아내가 이를 저지하며 말했다. "아이에게 농담을 했을 뿐이에요." 증자가 말했다. "아이는 이를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소. 아이는 아는 것이 없으니 부모에게 기대어 배우고 부모의 가르침을 듣는데 지금 당신은 아이를 속였으니 이는 속이는 걸 가르치는 일이오. 어머니가 자식을 속이면 자식은 부모를 믿지 못할 것이니 가르침이 이루어지 않기 때문이오." 끝내 돼지를 잡아 삶았다.

曾子之妻之市,其子隨之而泣,其母曰:「女還. 顧反爲女殺彘。」妻適市來,曾子欲捕彘殺之,妻止之曰:「特與嬰兒戲耳。」曾子曰:「嬰兒非與戲也。嬰兒非有知也,待父母而學者也,聽父母之教,今子欺之,是教子欺也。母欺子,子而不信其母,非所以成敎也。」遂烹彘也。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좌(外儲說左) 상편
曾皙嗜[19]羊棗,而曾子不忍食羊棗。公孫丑問曰:「膾炙與羊棗孰美?」
증석이 고욤나무 열매를 매우 좋아하여 증자께서 고욤을 차마 드시지 못했다. 공손추가 (맹자에게) 물었다.
"회자와 고욤 중 무엇이 맛있습니까?"

孟子曰:「膾炙哉!」
맹자가 말했다. "회자다!"

公孫丑曰:「然則曾子何爲食膾炙而不食羊棗?」
공손추가 말했다. "그렇다면 증자께서는 어째서 회자는 드시고 고욤나무 열매만 드시지 않았습니까?"

曰:「膾炙所同也,羊棗所獨也。諱名不諱姓,姓所同也,名所獨也。」
맹자가 말했다. "회자는 누구나 좋아하지만, 고욤나무 열매는 (증자의 아버지 증석만이) 홀로 좋아하셨다. 이름은 피휘하고 성(姓)은 피휘하지 않음은 성은 누구나 다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이름은 (개별적으로) 혼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맹자(孟子) 진심(盡心) 편
전하는 바[21]에 이른다. "공자께서 노나라를 떠나신 것은 조두(俎豆)에 올린 제물에 고기가 없었기 때문이고, 증자가 아내를 떠나보낸 것은 남가새를 쪘으나 익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傳曰:『孔子去魯,燔俎無肉;曾子去妻,蔾蒸不熟。』
월절서(越絕書) 편서외전기(篇敘外傳記)
증자가 병환이 생겨 문하 제자들을 불러 말했다. "내 발을 펴 보아라! 내 손을 펴 보아라! 시(詩)에 이르길, '전전긍긍하여 마치 깊은 연못을 밟은 것과 같이 하고, 얇은 얼음을 밟은 듯이 한다.' 라고 하였다. 이제서야 나는 그 면하는 바를 알았노라! 소자[22]들아!"

曾子有疾,召門弟子曰:「啟予足!啟予手!《詩》云『戰戰兢兢,如臨深淵,如履薄冰。』而今而後,吾知免夫!小子!」

논어(論語) 태백(泰伯) 편

4.1. 이모저모

훗날 백제의자왕은 왕자 시절 효자로 이름이 높아서 '해동 증자'라고 불렸다고 한다.
부모를 섬김에 효로써 하고 형제들과 더부름에 우애로써 하였으니 당대에 해동증자라 불렀다.

事親以孝,與兄弟以友,時號海東曾子。

삼국사기(三國史記) 卷28 의자왕(義慈王) 편

5. 증자의 후손

명나라 때 증자의 직계 후손에게 한림원 오경박사(翰林院五經博士)의 직위를 세습하도록 했고 청나라의 뒤를 이은 중화민국에서는 1914년 봉사관(奉祀官)으로 개칭했다가 1935년 종성봉사관(宗聖奉祀官)으로 다시 개칭했다. 76대손 증번산(曾繁山)이 1대 종성봉사관으로 봉직했지만 아들 없이 1940년 세상을 떠나자 75대손 증경양(曾慶瀼)이 대리한 후 69대손 증육준(曾毓墫)의 5남 증전록(曾傳錄)의 5대손인 74대손 증헌의(曾憲禕)가 1941년 2대 종성봉사관이 되었고 국부천대 때 1948년 타이완으로 건너간 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 관습적으로 '증삼'이라고 읽지만, 증자의 (字)가 자여(子輿)로 輿가 수레라는 뜻이고, 전국시대 때 이름(名)과 자(字)는 서로 의미상 연관되어왔음을 감안하면, 曾參의 參은 (곁마 참)의 의미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증참'이라고 읽어야 한다. 곁마는 수레를 끄는데 힘을 쓰는 주력마가 아니라 곁에서 보조해주는 말이라는 뜻으로, 겸손함을 표현하는 이름이었다. 다만 한국에서는 과거부터 '증삼'이라고 읽어왔기에 본문은 그대로 둔다. 중국에서도 독음의 혼동이 비슷하게 나타나 zēng cān이라 읽지 않고 zēng shēn이라고 읽는다.[2] 지순(至順 )원년, 서기 1330년[3] 성(郕)은 의미가 조금 불분명하다. 일단 관련된 걸 짚어 보면, 춘추시대에 성나라가 있긴 있었는데, 증자 출생 약 200년 전에 이미 멸망했다. 다만 함께 추봉된 자사, 맹자의 예를 보면, 아마 증자 본인의 출생지와 관련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스승 공자와 증자 본인의 고향인 노(魯)나라 영토 안에 옛 성나라 땅이 있었기 때문. 국(國)은 당연히 '~나라'의 뜻. 종(宗)은 조종(祖宗)의 그 종. 공자가 유학의 '태조(太祖)'라면, 증자는 유학의 '태종(太宗)'인 것이다. 본래 수제자였던 안회가 요절해 대신 증자가 유학의 맥을 잇게 되었다. 성(聖)은 '~하신 성인聖人'의 뜻. 앞의 '종'과 결합되어 '종성(宗聖)'을 증자의 고유 칭호로 만든다. 대충 '공문(孔門)의 도통(道通)을 받아 흥성(興盛)케 하신 성인' 정도의 의미로 파악하면 될 듯. 공(公)이라 함은 쉽게 말해 공작(公爵). 앞에서 굳이 뭔 뜻인지도 모를 이름의 성나라(郕國)를 갖다 붙인 이유는 이 '공작'이 제후의 작위이므로 반드시 거할 나라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명색이 공작이니 체면 살려주기 위해 사라진 나라를 가공으로 세워서 거기에 영주로 앉힌 셈.[4] 논어공자가 기존의 제자들인 자고, 증삼, 자장, 자로 네 명을 평가할 때 했던 말이다. 논어 선진(先進)편에 의하면 "증삼은 노둔하다.(參也魯)라고 짧게 평가했다.[5] 이름(名)은 點(점), 자(字)는 절(晢) 또는 석(晳)[6] 증자의 아버지. 공자가어에서는 절(晢)로 써져있고, 맹자 진심 하편에서는 석(晳)으로 기재되어있다.[7] 임금의 아버지[8] 이게 무슨 뜻이냐면 맹자 만장(萬章) 편에 의하면 아버지 고수가 순 임금을 죽이려고 했던 기록을 의미한다. 기록에 의하면 "(순의) 부모가 순에게 창고를 완성시키라고 시키자 (창고의 지붕에 올라갈 때) 사다리를 떨궈 아버지가 고수가 창고에 불을 질렀다. (순에게) 우물을 파게 했는데, 나오자 그를 매장시키고자 했다.(父母使舜完廩,捐階,瞽瞍焚廩。使浚井,出,從而掩之.)"[9] 시경 노송(魯頌) 편 반수(泮水)에서 비롯된 말로 지극함을 뜻한다.[10] 성리학, 양명학도 맹자계열인데 맹자계열을 거슬러 올라가면 증자가 나온다. 하지만 순자는 증자계열이 아닌 자하 계열이다. 그러나 증자의 '반성' 중시 사상은 '인위적 수련'을 중시하는 순자의 성향에 잘 부합했으므로 순자도 증자를 섬기면 섬겼지 유자, 자사, 맹자처럼 비판의 표적으로 삼진 않았다. 당장 순자의 1장에서 '청출어람' 운운 다음에 나오는 게 '삼성(參省=三省=세 가지 측면에서 자신을 반성함)'으로, 이는 논어에 나오는 증자의 첫 말이다.[11] 후일 위(魏)나라를 건국한 문후는 자하의 제자였으나 자하는 은둔생활을 즐겼기 때문에 많은 제자를 남기지 않았으며 결국 증삼만큼 많은 영향력을 가지지 못했다.[12] 증삼의 아들인 증신의 제자이다. 사서에서는 증자라고 기록되어 있어 증삼에게 배웠다고 생각들을 하나 자(子)는 일반적으로 당대에 선생에 대한 경칭이기도 했다. 증삼은 연대상으로 오기가 10대가 되기 이전에 요절했다. 오기가 노나라로 유학할때는 증자의 제자와 자녀들이 노나라 학계를 주름잡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겼다.[13]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증자 왈: "나는 하루 세 가지로 내 몸(자신)을 살핀다, 타인을 위해 도모함에 성실하지 않지는 않았던가? 친우와 교우함에 신실하지 않지는 않았던가? 전해받은 것을 못 익히지는 않았던가?" - 논어 학이 4장, 증자가 논어에 처음 등장하며 하는 말이다.[14] 현재는 후대의 모 사건 때문에 거의 쓰이지 않게 된 돼지 체()자를 사용했다.[15] 전한 시대에 지어진 열녀전(列女傳)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있으며, 맹자의 어머니와 맹자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다만 열녀전은 춘추전국시대가 끝나고 진나라를 지나며 전한 시대에 지었기에 신빙성이 떨어진다. 반면 한비자는 어느 정도 증자와 동시대 인물이기에 아래 내용에는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 흥미롭게도 한비자가 속해있던 법가의 또다른 주요인물인 상앙 또한 증자와 비슷하게 신뢰를 강조했다는 일화가 있다. 상앙이 진나라의 군주 효공에 의해 등용되어 자신의 개혁정책을 반영한 법을 만들었는데, 이 법을 반포하기 전에 신뢰를 주기 위해 도성 저잣거리의 남쪽 문에 나무를 한 그루 심어놓고 이 나무를 북쪽 문으로 옮겨심는 자에게 십금을 주겠다고 선포했다. 허나 모두들 나무 하나 옮겨심는데 십금이나 주겠다고 하니 오히려 이상하다고 여기며 행하지 않았고, 상양은 상금을 오십금으로 올렸다. 그러다 어떤 사람이 포고한대로 나무를 옮겨심자 상앙은 그 즉시 오십금을 주었고, 이 이야기가 퍼지며 사람들에게 신뢰를 사게 된 상앙은 그제서야 법을 반포했다.[16] 본명은 증점이다. 석은 그의 자가 '석'이라서 공자와 동료나 그의 제자들은 저 자의 석을 따서 그를 '증석'이라고도 불렀다. 증석은 아들과 함께 공자의 제자였다[17] 감과 비슷하나 알맹이가 작고 몹시 떫다.[18] 膾炙. 육회(회膾)와 불고기(자炙)로 제사에 올리는 고기 요리를 뜻한다.[19] 이 뜻은 호(好)처럼 그냥 좋아한다는 뜻을 넘어 엄청나게 좋아한다는 뜻을 가진다.[20] 마름과 모양이 비슷한 뾰족한 열매가 열리는 육상 식물.[21] 전(傳)이라서 춘추좌전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춘추좌전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22] 제자들을 친근하게 부를 때 쓰는 호칭이다.[23] 즉 부모, 스승, 연장자, 상사가 자신의 자리에 맞는 대우를 받고자 한다면 먼저 그 자리에 어울리는 행동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24] 메인 화자는 공자의 3대 제자중 하나인 먼치킨 자공이다.[25]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증점 또한 공자의 제자인데다 미학적으로 공자가 칭찬한 인물인데 성격이 난폭하게 나온다. 다만 이 고사는 증자가 실제로 말했던 고사이므로 사실이다.[26] 《梁書·卷四十七·列傳第四十一》:太守王僧度引曇恭爲功曹,固辭不就。王儉時隨僧度在郡,號爲滕曾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