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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8 11:46:23

존베넷 램지 살인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존베넷 패트리샤 램지3. 가족범인설4. 주요 용의자5. 존 마크 카6. 사건 이후
6.1. 2016년 CBS 관련 방송

1. 개요

Murder of JonBenét Rams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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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베넷 패트리샤 램지(JonBenét Patricia Ramsey, 1990년 8월 6일 ~ 1996년 12월 25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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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당일 어머니와 찍은 마지막 사진

1996년 12월 25일 미국콜로라도 주에서 일어난 어린이 살인사건.

12월 25일 존베넷 가족은 이웃인 화이트 부부의 자택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했다. 6세 여아 존베넷 패트리샤 램지가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날인 26일 아침 모친인 팻시는 자택의 계단에 놓인 '당신의 딸을 데리고 있다. 그녀를 무사히 돌려받고 싶으면, 11만 8천 달러의 금액을 준비하라.'는 내용의 협박장을 발견했다.[2][3] 이후 다급히 존베넷을 찾다가 딸을 찾을 수 없자 딸이 유괴되었다고 911에 신고했다.

이에 조사본부가 설치되었으며 부친은 범인이 남긴 세 장의 쪽지를 경찰에게 제공했다. 메시지가 담긴 쪽지는 집에 있던 필기구와 메모지로 써졌으며 돈을 요구하는 내용과 함께 만약 경찰에 신고를 하면 딸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말과 오전 8시부터 10시 사이에 연락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연락은 오지 않았고 후에 경찰이 그때까지 조사하지 않았던 지하실을 존과 지인인 화이트가 탐색하던 중 오전에 화이트가 살펴보지 않았던 와인창고 안에서 딸의 시신을 발견한다.

존베넷은 자신이 평소 아끼던 새하얀 담요에 덮인 채 입에는 접착성 테이프가 붙여져 있었으며 머리 부분을 범인이 사용하던 둔기인 손전등으로 피격당해 큰 상처가 나 있었고 얼굴엔 구타를 당한 듯 시퍼렇게 멍이 들었으며 나일론 끈[4]으로 목이 거의 쪼그라들 정도로 졸린 상태[5]의 끔찍한 모습의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최종적으로 범인은 체포되지 않았다. 발견된 존베넷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두개골이 손상되어 있었으며 성폭행을 당했음이 밝혀졌다.[6] 그 외에도 누군가가 먹인 듯한 파인애플이 위장에서 발견되기도 했다.[7]

2. 존베넷 패트리샤 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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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베넷의 부모

당시 만 6세의 존베넷 램지는 초등학교에 재학하던 활달하고 다부진 성격의 1학년 여학생이였으며 딸을 미스 아메리카로 만들려는 꿈을 가지고 있던 모친 팻시의 후원으로[8] 부모의 후원 하에 만 3세가 되던 해부터 적극적으로 미소녀 선발 컨테스트에 참가했다. 덕분에 리틀 미스 캘리포니아, 리틀 미스 콜로라도, 리틀 미스 선샤인, 리틀 미스 크리스마스[9] 등 많은 타이틀을 보유한 나름 유명한 소녀였다. 종종 라이벌 포지션의 아이가 좋은 연기를 펼치면 때때로 시기와 질투심에 불타올라 매니저에게 "이 드레스 싫어!" 라고 고집을 부렸을 정도로 경쟁심과 승부욕이 강했다고 한다. 존은 훗날 딸이 미인대회에 나가는 것을 막지 못한 점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특히 모친인 팻시 램지는 미스 웨스트버지니아 출신으로 남편보다 13살이나 젊었기 때문에 트로피 와이프라는 비아냥을 들었으며[10] 사건의 특성 때문에 친오빠 혹은 배다른 오빠나 친아버지가 성추행 혹은 성폭행을 했다느니, 딸의 미모를 어머니가 시기해서 죽였다느니, 딸이 남편의 관심을 끌어 질투했다느니 등의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뻑하면 사진과 홈비디오를 찍던 가족들이 하필 사고가 난 성탄전야에는 딱 2장의 사진만 남겼다는 사실이 이러한 의심을 더 증폭시켰다.

일부에서는 존베넷이 전처의 딸이라고 하는데 존베넷의 부친이 재혼으로 모친 패트리샤와 결혼한 것은 맞지만 존베넷은 둘 사이의 아이가 맞다. 존베넷 바로 위의 작은오빠인 버크 램지도 둘 사이의 자녀다.[11]

3. 가족범인설

우선 시신의 발견 장소가 자택의 지하실이었다는 점과 범인이 요구한 액수가 부친인 존 램지의 보너스 금액와 동일한 액수였다는 점 때문에 범인은 램지 가문의 내부사정에 정통한 인물이라고 추정되었으며 메시지를 사전에 준비하지 않고 램지 가의 메모장을 썼다는 점 때문에 실은 범인이 존베넷의 부친 혹은 모친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었다.

범죄 전문가들에 따르면 범인이 피해자의 집에 들어와 피해자를 살해하고 집안에 있던 메모지를 뜯어 협박편지를 남기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라고 한다. 범인이 집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문서 전문가들이 협박편지를 연구한 결과 존베넷의 모친 팻시의 말투나 주로 사용하는 단어가 아주 유사하다고 하여 역시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러한 의견이 제기되면서 난소암 치료 이후 우울증을 앓던 존베넷의 모친이 우발적으로 딸을 죽였고 아내의 죄를 덮기 위해 부친이 추가로 시신을 훼손했다는 설이 정설처럼 퍼져 부모는 큰 고통을 받았다.[12]

그러나 2008년에 존베넷이 살해 당시 입고 있던 옷과 속옷에서 검출된 DNA에 대한 검사가 이루어지면서 범인은 제3자, 즉 외부인으로 판명되었으며 가족범인설은 부정되었지만 이러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10년 넘게 언론에서는 마치 가족이 진범인 것처럼 다루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믿는 사람들이 많다.

한편으론 검찰이 사건 당시 가족의 지인은 물론 일반인의 출입금지를 통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장의 1차 훼손[13]과 지하실에서 멋대로 딸의 시신을 들고 나온 존의 행동에 의해 2차적으로 잠재적 증거 및 단서가 훼손된 바람에 수사의 진전이 어렵게 되어버리기도 하였다. 당시 검찰이 가족들의 행동이나 일반인의 출입을 단속 및 제재했더라면 수사가 원활히 진행되었을 수도 있다.

존은 악명 때문에 사업에 실패하면서 재산을 잃었으며 팻시는 2006년 난소암으로 사망했다. 존은 이후 자녀를 유괴당한 사람들의 모임에서 만난 여성과 재혼하였다.

4. 주요 용의자

5. 존 마크 카

2006년 태국 방콕에서 한때 초등학교의 교감이었던 미국인 남성이 존베넷 유괴살인 혐의로 체포되었는데 이름은 존 마크 카로 아동 포르노 소지 혐의나 강간 혐의가 있었고 여아를 죽인 살인범과 펜팔을 하기도 한 위험인물이었다. 경찰은 카의 자백 하에 수사를 진행했지만 DN A검사 결과 카는 범인이 아님이 밝혀졌다.

이후 카는 종적을 감추었으나 2008년 시애틀 재판소의 기록에 따르면 여성으로 법적인 성별을 바꾸었으며 달리아 알렉시스 라이크로 개명한 상태였다. 이 사건에 있어서 카의 체포는 카가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는 자백에 의한 바가 크지만 사실 경찰은 이전부터 카를 주목하고 있었다. 2001년 카는 아동 포르노 소지 혐의로 경찰의 주목을 끌었으나 증거인 컴퓨터가 처분되어 체포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제자의 증언이 있었고 그의 첫 번째 아내가 결혼 당시 사실상 13세에 불과했으며 공문서 위조를 통하여 결혼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아내의 증언에 따르면 카는 이전부터 존 베넷 사건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며 애인과 함께 존베넷의 무덤 근처에서 데이트를 즐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경찰이 그의 집을 수색했을 때 권총이 발견된 점과 자신과 연락을 끊은 제자에게 협박을 한 사실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카는 매우 위험한 인물로서 DNA검사 결과가 잘못 나온 것이고 카가 범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후에 이 사건을 담당했던 수사관 마크 베크너가 reddit AMA 도중 밝힌 내용에 따르면 그의 자백은 현장의 증거와 일치하지 않았으며 그가 범인이 아니라고 결정짓기에는 18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확인한 바에 의하면 사건 당시 콜로라도 주에 있지도 않았으며 조지아 주에 있던걸 증명하는 사진들이 있다고 한다.

6. 사건 이후

당시 콜로라도 경찰은 이런 가택 침입 살인사건의 수사에 매우 미흡했고 처음 존베넷이 실종되었을 때부터 시신이 발견된 후까지 사건 현장을 제대로 보존하지 않고 누구나 드나들 수 있도록 개방하여 사건 현장의 훼손이 많았다고 한다.

외부의 침입이 없었다는 말과 달리 당시 깨져 있던 지하실의 창문[18][19]과 외부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부츠 자국까지 남아 있었는데 경찰은 이를 제대로 포착하지 않고 램지 집안 사람들의 알리바이에만 매달렸다고 한다.

사건이 발생하기 며칠 전에 있었던 크리스마스 기념 퍼레이드에 존베넷이 참가했는데 수상한 남자가 존베넷에게 말을 걸었고 퍼레이드 내내 미행을 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사건 이후 존베넷과 같은 무용교실에 다녔던 에밀리라는 소녀가 누군가에게 납치될 뻔한 적이 있었는데 주위에선 이에 대해 동일범의 소행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제기되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애초에 경찰이 부모 곁에서만 맴돌지 말고 보다 외부에 집중하여 적극적으로 수사를 했다면 범인이 검거되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팻시 램지는 난소암으로 사망하기 몇 년전에 CNN과의 인터뷰에서 하늘로 간 딸에게 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정말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가 곧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하고 싶네요.' 라고 답변을 남겼다.

한국에선 이 사건이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소개된 바가 있다. 다만 내용이 상당 부분 생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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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 존 램지가 출간한 책.

사건 이후 램지 가족은 자신들이 살던 4층(지하실 포함)짜리 저택[20]을 판다. 이 주택은 투자 목적의 회사에서 구매하여 유료 투어 상품을 판매하려고 했으나 큰 재미를 못 보고 여러 차례 매물로 나왔지만 결국 안 팔렸다. 안 좋은 사연이 있는 데다 워낙 크게 알려진 사건의 범죄현장이라 그런 듯하다. 가장 최근 매물가는 부동산 전문 사이트 질로우에 올라온 220만 달러 매물이다.

엉뚱하게도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조승희의 범행 당시 성명문에서도 사건의 용의자 존 마크 카의 이름이 부정적인 맥락으로 언급되어 있는데 조승희 본인이 스스로를 박해받던 순교자처럼 미화하기 위해서 '악한 자들'의 예시로 인용한 것이다.

6.1. 2016년 CBS 관련 방송

2016년 9월 CBS에서 The Case of: Jonbenet Ramsey보기(Part 1.) 라는 프로그램으로 이 사건을 재조명하였다. 범죄전문가들을 고용해 조사 및 분석한 결과 당시 9세였던 친오빠인 버크 램지가 사건의 진범이라는 분석결과를 내놓았다. 근거는 사건 직후 어머니인 팻시 램지가 911에 전화한 내용을 분석한 결과 너무 작위적인 연기톤으로 신고를 하였으며 신고 말미에 전화가 끊긴 줄 안 팻시 램지가 친아들 버크 램지와 대화한 내용이 복원되며 결정적인 증거를 잡혔다는 주장이었는데 범죄 관련 전문가들은 일단 통화내용 복원이란 것 자체가 불가능한 헛소리라고 일축했다.

오빠인 버크 램지가 성인이 된 후 나온 방송에서 히죽히죽 웃는 행동을 보인 것을 가지고 자폐증이라는 분석을 내놓았지만 심리 전문가들은 어이없고 기가 막힌 상황에 직면했을 경우 충분히 보일 수 있는 반응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21] 특히 방송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보이면서 몇 달간 특집 방송을 위해 오빠 버크와 가까이 지낸 닥터필은 버크의 반응은 지극히 정상적인 방어기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존 베넷 램지의 생존한 가족들은 CBS를 상대로 한 소송을 준비했으며 2016년 12월 28일 뉴스 보도에 따르면 버크가 CBS를 상대로 약 7억 5000만 달러의 피해보상금 소송을 냈다고 한다.#

경찰이 다시 한 번 램지 가의 일원인 버크에게 사건의 조사에 협조하여 줄 것을 요청했지만 버크가 거부해 더 이상의 수사의 진전은 없다.


[1] e에 애큐트가 찍힌 -ét는 실제 발음은 베넷이 아니라 베네(이) 정도가 된다. 에릭 베네와 같은 케이스다.[2] 만약 FBI나 경찰에 이를 알릴시 딸의 목숨은 보장할 수 없다는 추신이 있었다.[3] 당시 환율로 한화 약 1억 600만원이라는 금액이다.[4] 나일론 끈은 팻시가 사용하던 부러진 미술용 붓의 손잡이 부분에 묶여져 있었다. 아마 범인이 살해 및 포박을 용이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붓을 파손해 범행에 사용한 듯하다.[5] 구글에 검색하면 사진이 나오지만 일부 이미지는 잔혹도가 상당하니 심약자는 주의할 것.[6] 부검 당시 그녀의 성기에서 부러진 미술 붓 조각이 발견되었고 질 내벽이 훼손된 점이 밝혀졌으나 범인을 찾는데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는 정액 등은 검출되지 않았다고 한다.[7] 램지 부부나 화이트 부부는 당일 식사에 파인애플이 나온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그 말은 즉슨 누군가 존베넷에게 파인애플을 먹였다는 것이다.[8] 그녀도 미스 웨스트버지니아 출신으로 딸인 존베넷처럼 모친의 손에 의해 유년기부터 어린이 미인대회에 출전했다고 하며 미스 아메리카의 꿈을 지니고 있었으나 끝내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특히 그의 어머니이자 존베넷의 외조모는 팻시에 대해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9] 생전에 마지막으로 참가했던 미인대회였다.[10] 실상 부부가 처음 만날 때 팻시는 거의 30세, 남편은 42세로 둘 다 엄연히 성인이었고 원조교제도 아니었다. 하필이면 팻시가 둥근 얼굴에 이목구비가 튀지 않는 동안으로 더 어려 보이는 반면 남편은 탈모가 심각해 나이차가 더 많아 보이게 된 점도 편견에 일조했다.[11] 장남인 존 앤드류는 전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며 존베넷 이전에도 존은 "엘리자베스 파스크 램지(Elizabeth Pasch Ramsey)" 라는 딸을 하나 둔 적이 있었다. 존베넷에게는 이복언니가 된다. 하지만 그녀는 사춘기 시절의 방황 등으로 인해 평소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으며 1992년 향년 22세의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고 한다.[12] 사우스 파크에서는 버터스 엄마가 버터스가 탄 차를 강물에 넣어 죽인 뒤 이를 은폐하려고 푸에르토리코인에게 납치되었다고 거짓말하는 에피소드(시즌5 14편)에서 실명으로 램지 부부가 등장한다. 10년 후 트레이 파커와 맷 스톤은 인터뷰에서 부적절한 묘사였다고 유감을 표시했지만 이미 팻시 램지는 사망한 후였다.[13] 존베넷의 침실에 있던 침대 시트의 세탁, 주방과 부엌의 정돈 등[14] 존베넷과 이름과 같지만 이쪽은 John Bennett로 표기가 다르다. 애초에 존이 딸의 이름을 지을 때 자신의 의향에 따라 자기 이름을 프랑스식 스타일로 어레인지해서 지었다고 한다.[15] "그녀의 살해는 나에게는 수술보다 힘들었어요. 그녀는 나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심지어 맥레놀즈는 자신의 심장 수술 당시 존베넷이 선물했던 글리터 가루를 수술실에 들고 갔을 정도다. 어떤 아이도 산타 할아버지 행사를 하는 자신에게 선물을 준 적이 없었다고 한다. 아내에게 자신이 죽으면 뼛가루에 이 글리터 가루를 섞어 달라고 했으니 존베넷에게 매우 애착이 강했던 걸 짐작할 수 있다.[16] inTouch지와의 인터뷰.[17] '팻시는 팬티 한장도 백화점 와코루 매장에서 산다' 식의 발언을 했다.[18] 사건이 발생하기 6개월 전인 1996년 6월 열쇠를 잃어버려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던 난감해하던 존이 지하실의 창문을 깨고 들어온 적이 있었다고 한다.[19] 현관문 쪽이나 다른 곳엔 흔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보아 범인은 이 사실을 이미 눈치채고 침입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20] 방이 15개나 되는 대저택이었다. 사실 15개 침실은 아니지만 드레싱룸, 어린이 놀이방 등을 모두 포함하면 그렇게 된다. 미국에서는 침실의 정의가 크든 작든 옷방이 딸려 있냐의 여부에 있기 때문이다. 구글에서 jonbenet ramsey house plan이라고 치면 집의 층별 도면이 나온다.[21] 사건 당시 버크 램지는 9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