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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06 14:26:26

조정(전진)

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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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趙整[1]
생몰연도 불명

전진의 인물. 자는 문업(文業). 진주(秦州) 약양군(略陽郡) 청수현(清水縣) 출신. [2]

2. 생애

18세가 되었을 때, 전진 조정에 임관하여 저작랑을 지내다가 황문시랑, 무위(武威) 태수, 비서시랑을 역임하였다. 조정은 환관이었으나, 아는 것이 많고 기억력이 좋았으며, 글재주도 있어서 상소를 올리거나 천왕 부견의 면전에서 간언한 것이 50여 차례나 되었다고 한다.

건원 5년(369년) 11월, 전연의 오왕 모용수가 당시 전연의 전권을 잡고있던 태부 모용평과 불화하여 전진으로 망명해오니, 천왕 부견이 그를 관군장군으로 삼았다. 그때 모용수는 부인 단씨(叚氏)와 아들을 데리고 전진으로 왔는데, 단씨를 본 천왕 부견은 그녀가 마음에 들어하며 총애하였다. 한번은 천왕 부견이 단씨를 불러 마차에 태우고 궁중 뒷뜰에서 함께 노니는 모습을 본 조정은
"참새가 제비집에 들어오는 것은 보지 못했으나, 단지 뜬구름이 대낮을 가리는 것만 보일 뿐이로다."
라 노래하였다. 천왕 부견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조정에게 즉시 사과한 뒤, 단씨에게 명하여 마차에서 내리게 하였다.

건원 10년(374년) 12월, 어떤 자가 황궁에 침입하여 명광전(明光殿)까지 들어와 크게 소리치기를
"갑신(甲申: 384년), 을유(乙酉: 385년)년에 양과 물고기가 사람을 잡아먹으니 슬프도다! 다시는 남는 것이 없겠구나!"
라 하였다. 천왕 부견은 당장 그 자를 체포하라 명했지만, 끝내 잡을 수 없었다. 이때 양(羊)과 물고기(魚)를 합치면 선비족(鮮)을 뜻하는 한자가 되었기에, 조정은 비서감 주융과 함께 전연이 멸망하면서 항복했던 선비족들을 모두 죽일 것을 진언하였으나, 천왕 부견이 따르지 않았다.

건원 14년(378년) 9월, 천왕 부견이 여러 신하들과 술을 마시면서 주융을 주정(酒正)으로 삼고, 사람들로 하여금 완전히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라 명하였다. 그러자 조정이 즉석에서 《주덕가(酒德歌)》를 지어 불렀다.
地列酒泉天垂酒池
땅에 주천(酒泉)이 늘어서고, 하늘에 주지(酒池)가 드리우니,

杜康妙識儀狄先知。
두강(杜康)은 묘한 지식이 있었고, 의적(儀狄)은 이를 먼저 알았네.

紂喪殷邦桀傾夏國
주(紂)은나라를 잃었고, 걸(桀)하나라를 기울였으니,

由此言之前危後則。
이로부터 말하자면, 앞날의 위험은 후대에 교훈이 되리라.
이에 천왕 부견이 크게 기뻐하며 조정의 《주덕가(酒德歌)》를 주계(酒戒)로 삼았고, 매번 연회가 열릴 때면 예법에 따라서 세 잔만 마셨다.

건원 16년(380년) 7월, 전진이 세워진 이래로 저족의 여러 부족들이 번성하여 인구가 겉잡을 수 없이 늘어가자, 천왕 부견은 이들 500,000호를 나누어 삼원(三原), 구종(九嵕), 견(汧), 옹저(雍氐), 무도(武都)로 분산시키고, 여러 종친들을 보내 각기 다스리게 하였다. 장락공 부비가 저족 3,000여 호를 거느리고 업(鄴)으로 향하면서 파상(灞上)에 이르렀을 때, 졸지에 부모, 형제와 헤어져 이산가족 신세가 된 자들이 모두 슬피 울었다. 조정은 이를 듣고 훗날 연회에 참석하여 거문고를 타며 노래하였다.
阿得脂阿得脂
아득지, 아득지,[3]

博勞舊父是仇綏尾長翼短不能飛。
왜가리는 천적을 만나도 꼬리가 길고 날개가 짧아 날지 못하는구나.

遠徙種人留鮮卑一旦緩急語阿誰!
종족을 멀리 보내고 선비(鮮卑)를 남기면,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누구를 불러야 할까!
부견은 비록 그 뜻을 알고 미소를 지었으나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부견의 치세 말기에 선비족들을 더욱 총애하게 되어 정사를 게을리 하였다. 이에 조정은 다시 부견 앞에서 거문고를 타며 노래하였다.
"듣자하니 과거 맹진(孟津)의 강은 천리길을 굽이 흐르면서도 강물을 스스로 맑게 하였는데, 누가 이를 탁하게 어지럽히려 하는가!"
이를 들은 부견이 음악을 중단케 하고 물었다.
"이는 짐에게 하는 말인가?"
그러자 조정이 다시 노래를 이어갔다.
北園有一棗布葉垂重蔭。
북쪽 정원의 대추나무 한 그루, 천 같은 잎으로 어두운 그늘을 드리웠도다.

外雖饒棘刺內實有赤心!
바깥의 가시는 비록 두터우나, 안으로는 실로 정성된 마음이 있구나!
노래를 다 들은 부견이 웃으며 말했다.
"역시 조문업(趙文業)이로다."
조정이 말로 사람을 풍자하는 재치가 모두 이와 같았다. 이후 관중 일대에 불교가 융성해지자, 조정은 부견에게 출가하여 승려가 되기를 청했으나, 부견이 그를 아껴 불허하였다.

건원 21년(385년) 8월, 비수대전에서 패망한 부견이 후진요장에게 피살당하니, 조정은 마침내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그리고 이름을 도정(道整)이라 고치고, 상락산(商洛山)에 은거하면서 경률(經律)을 연구하였다. 훗날 동진의 옹주자사 치회가 그 기풍을 흠모한 나머지 도정을 핍박해 동진으로 데려갔고, 도정은 이후로 양양(襄陽)에 거주하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0세.


[1] 또는 정(正).[2] 또는 제음군(濟陰郡) 출신.[3] 아무 의미없는 단순한 여음구다. 린타오현 지방 방언인 "아드(阿得)"에서 파생된 표현이라는 주장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