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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9 22:22:43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정윤회 문건에서 넘어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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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발생시기 2014년 11월 28일[1] ~
발생 위치 대한민국
관련 기관 청와대 비서실, 경찰[2]
주요 주제 외부인 정윤회가 청와대 비서실을 통해
국정에 관련된 개입을 하였다는 의혹
주요 이슈 2014년 12월 4일
문건작성자 박관천 경정 소환
2014년 12월 8일
검찰, 박관천 재소환
세계일보, 보도 관련 증거 공직기강비서관실에 제출
2014년 12월 13일
유출자로 수사 받던 최경위, 자살
1. 개요2. 전개과정
2.1. 배경
2.1.1. 정윤회와 문고리 3인방2.1.2. 박지만과 조응천
2.2. 발단
2.2.1. 인사문제에 대한 잡음2.2.2. 청와대 행정관들에 대한 내사
3. 정윤회 문건의 행방
3.1. 세계일보 보도 공방3.2. 청와대의 짜맞추기 수사 의혹
3.2.1. 문서 내용은 모두 허위3.2.2. 유출자는 엄벌
3.3. 검찰의 결론 : 모두가 속았습니다
3.3.1. 문건 작성 경위3.3.2. 문서 유출 경위
4. 박지만 문건의 행방
4.1. 박관천이 작성한 미행 문건 4.2. 조응천이 회수한 세계일보 문건4.3. 측근들에 대한 인사조치
5. 의혹의 결말
5.1. 세계일보 후폭풍5.2.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인가?5.3. 놓치지 말아야 하는 점
6. 반전7. 기타
7.1. 최경락 경위의 자살7.2. 우병우의 민정비서관실서 회유 의혹7.3. 박관천과 금괴7.4. 박동열의 금품수수7.5. 고소 및 기소 내역
수사 초기 박 경정은 한창 조사를 하던 검사와 수사관에게 뜬금없이 “우리나라의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면서 박근혜 정부의 권력 지형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다고 한다. “(정윤회 씨의 전 부인이자 고 최태민 목사의 딸) 최순실 씨가 1위, 정(윤회) 씨가 2위이며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는 ‘황당한’ 내용이었다. 허위로 결론 난 ‘정윤회 동향 문건’만큼이나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근거를 대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5. 1. 7. 동아일보 [단독]박관천의 황당한 ‘권력서열’ 강의

1. 개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주곡이 된 의혹으로, 정윤회라는 자가 청와대 내 속칭 문고리 3인방이라는 비선을 통해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다. 관련문건이 언론에 유포되어 불법유출경위에 대해 검찰이 조사하였다. 박근혜 정부는 관련의혹들에 대한 투명한 공개보다는 내부정보들이 유출되는 점만 국기문란으로 규정하고 철저히 문제 삼아 주변의혹들을 키우는 자충수를 두게 되었다.

2014년 11월 28일, 세계일보는 청와대의 비서실 교체 인사에 대해 정윤회라는 사람이 속칭 문고리 3인방[3]이라는 창구를 두고 정기적으로 국정에 개입하는 비선 실세란 기사를 낸다. 이에 청와대는 불가능한 일이라 반박했고, 문고리 3인방 및 관련자로 지목된 사람들 역시 기사 내용을 전면 부정하며 세계일보를 고소했다. 그러나 이 문건이 청와대의 공식문건임이 드러나자 청와대 및 검찰은 문건의 불법유출경위에 대해서 조사하여 박관천을 통해 세계일보로 흘러들어갔다고 결론지었다. 이 과정에서 김영한 민정수석비서관조응천 비서관이 물러났으며, 세계일보사 사장과 기자 3명이 사직하였고, 최모경위가 자살하게 되었다.

2. 전개과정

2.1. 배경

2.1.1. 정윤회와 문고리 3인방

정윤회는 1995년 최태민의 5녀 최순실[4](1956년생)과 결혼했다가 1998년부터 15대 국회의원 박근혜 후보 입법보조원을 지냈다. 2002년 박근혜 의원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한 후에는 총재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2004년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에 복당한 후에는 공식 직함이 없이 활동했고, 2007년 한나라당 제17대 대통령후보 경선 시기 활동을 중단하고 박근혜 당시 후보와도 연락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14년 중반 최순실과 이혼했다. 정윤회에 대해서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경선 때부터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정윤회를 비롯한 최태민 일가가 직권을 남용할지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2013년 열린 승마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딸 정유연을 국가대표로 뽑히도록 하기 위해 승마협회에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 이후 2014년 3월 시사저널은 정윤회가 대통령의 남동생 박지만을 미행했다는 의혹을 제기하였었다. 그러나 박지만은 막상 검찰 조사에서는 미행사실을 부인했다.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란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 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3인을 가리키는 말로, 이들은 박근혜 의원의 정치 입문 시기에 정윤회에 의해 소개되었으며, 박근혜가 대통령에 오르자 비서실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이들은 정윤회를 사수라고 부를 만큼 밀접한 관계로 알려져 있으며#, 각종 국정현안에 대해 대통령과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이들 3인을 먼저 거쳐야 했다는 주장들을 빗대 문고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본래는 이춘상 비서까지 최측근 4인방이었으나, 이춘상은 2012년 대선 때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재만 총무비서관은 청와대의 인사와 살림살이(재무)를 총괄한다. 이재만 비서관이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보니 최근 이재만 비서관을 사칭한 인사 청탁 사건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개인정보유출에 관여했던 사람도 이재만 비서관 지휘 아래 있는 총무비서관실 소속의 행정관이어서 논란이 된 바 있었다. #

2.1.2. 박지만과 조응천

박지만박근혜의 남동생이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986년 대위로 전역했다. 전역 후 육영재단 이사를 지냈으며, 1991년 삼양산업을 인수하였다. 1989년부터 2002년까지 마약 투약으로 인해 여러 차례 구속수감되었다. 2000년, 삼양산업을 코스닥에 상장하면서 상호를 EG로 변경하였다.

조응천은 검사로 재직하던 1993년 박지만의 마약수사 중 박지만을 알게 되었다. 2005년 변호사로 개업해 김앤장에서 활동하던 조응천은 2011년 박근혜 캠프에 합류하면서 박지만을 다시 만나게 된다. 조응천은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 뒤 민정수석비서관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임명되었다.

박관천은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으로 여러 뇌물사건에서 성과를 올리고 2013년 4월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청와대에 파견되었다가 2014년 3월 경찰로 복귀하였다.

2.2. 발단

2.2.1. 인사문제에 대한 잡음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각종 인사 문제로 구설에 올랐다.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한 윤창중미국에 가서 성추행 사건을 터트렸고, 총리 후보들은 하나 같이 문제가 발견되어 줄줄이 낙마, 특히 그 중 한 명인 문창극은 과거에 교회에서 했던 친일반민족행위자 옹호조의 설교 때문에 총리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다. 새로 부활한 해양수산부의 첫 장관으로 임명한 윤진숙은 인사청문회 때부터 여야가 한 마음으로 반대할 정도로 무능하고 불성실한 언행을 보였음에도 임명을 강행한 후, 여수 원유 유출 사고에서 보인 한심한 대처를 계기로 물러났다. 이러한 “인사 참극”이 계속되자, 일각에서 청와대의 인사에 개입하는 비선 때문에 이런 일이 자꾸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였다.

2013년 8월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이 윤창중 성추행 사태가 터지자 인사 실패를 책임지고 물러났다. 한 언론인터뷰에서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는 “인사와 관련해 허태열 전 실장과 보좌진 그룹이 나뉘면서 두 그룹 간 마찰이 생겼다”고 말하여 허태열 전 실장과 3인방(및 최순실)과의 알력이 있었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

허태열 전 실장에 이어 새로 취임한 김기춘 비서실장은 부속실로 쏠리던 힘을 비서실로 당겨왔다는 평을 듣는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이재만 총무비서관을 포함해 5명으로 구성된 청와대 인사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었으며, 평소 인사 문제에 있어서 뜻을 강력히 관철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2013년 9월 13일 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자 문제가 불거지며 사퇴를 결정하자, 이의 배후에 김기춘 실장이 거론되며 사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 당시 야권에서는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을 덮기 위해, 조선일보를 통해 채동욱의 개인 신상을 흘려 수사 중이던 검찰총장을 찍어내려고 했다"는 주장을 한다.

언론에서 '김기춘 비서실장 경질설' 등의 보도가 자주 나오자, 상부에서 이에 대해 조사하라는 지시가 박관천에게 하달된다. 박관천은 조사 도중 정윤회에 관한 제보를 입수하고 이에 관해 보고서를 작성한다.#

2014년 1월 16일 박관천은 <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 측근 동향>이라는 제목의 감찰보고서를 조응천에게 보고한다. 이 문건에는 정윤회가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라 불리는 청와대 핵심 비서관 세명(이재만, 정호성, 안봉근)을 포함한 10명의 인사를 정기적으로 만나며 후한 말 조정을 휘둘렀던 '십상시'처럼 국정을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또 해당 문건에는 행정직책상 김기춘 비서실장보다 아래에 있는 문고리 3인방이 민간인인 정윤회의 지시를 받아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를 획책하고 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조응천이 이 사실을 상관인 홍경식 민정수석에게 보고하자, 홍 수석은 "김 실장과 관련된 얘기이니 직접 보고하라"며 김기춘 실장에게 직접 보고할 것을 지시하였고, 조응천은 김기춘 실장에게 직접 보고한다. 훗날 김기춘은 여기에 대해 일단 "보고서의 신빙성이 낮아 자기 선에서 묵살했고, 문건 작성자들을 내보냈다"고 주장했다. #

2014년 2월, 청와대에 근무한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박관천은 경찰로 복귀 지시를 받는다.[5] 정작 본인은 복귀 후 승진을 예상하고 남산에 있는 정보분실에 박스 등의 짐을 가져다놨으나 기대가 좌절되자 이 짐을 자신의 근무지인 서울 도봉경찰서 정보과로 옮겼다.

2.2.2. 청와대 행정관들에 대한 내사

2014년 3월 초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는 청와대 행정관들의 비위를 조사한다. .# 하지만 당시에는 아무런 후속 조치가 없었던 듯하다.

2014년 4월 2일과 4월 4일, 세계일보에 금품, 향응을 받거나 근무지 이탈, 공금 유용, 이적 단체 가입 등의 비위를 저지른 10명의 행정관들 중 대부분이 처벌없이 원 소속부처로 복귀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에 김기춘 실장은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하다 비리 혐의가 적발돼 원 소속 부처로 돌아간 공무원들에 대해 징계를 요구한다. # 이에 대해 언론에서는 뒷북 징계라는 지적이 있었다. #

감찰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뒤에는 자료유출 문제로 공직기강비서관실에 대한 특별감찰도 실시됐다.# 이 때 경질된 인원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공직기강비서관실이 거의 와해되었다는 지적이 있을 정도였다. 한편에서는 자료유출 때문이 아니라 정윤회를 감찰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

2014년 4월 10일에서 11일 사이 조응천은 청와대 공용 휴대전화로 걸려온 미상의 전화 통화를 거부한다. 그러자 "정윤회입니다. 통화를 좀 하고 싶습니다"라는 문자를 받는다. 통화가 거부되자 이재만이 조응천에게 정윤회와 통화할 것을 종용한다.#

2014년 4월 15일(공교롭게도 세월호 참사 바로 전날이다) 조응천을 세계일보에 청와대 내외부 인사에 관한 감찰자료가 보도된데 대한 책임을 물어 해임시킨다.

홍경식 전 민정수석도 임명 10개월만인 6월 김영한 수석으로 교체됐다. 홍 전 수석도 표면적으로는 4ㆍ16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높은 상황에서 국무총리 후보자 2명의 연쇄낙마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상황에 대해 책임을 지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선 청와대 내부 문건이 같은 해 4월쯤 청와대 외부로 유출된 데 대한 책임을 묻는 차원에서 경질됐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

3. 정윤회 문건의 행방

3.1. 세계일보 보도 공방

2014년 11월 28일, 세계일보는 위의 <청와대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 측근 동향> 보고서를 인용해 청와대의 비서실 교체 인사에 대해 "정윤회라는 사람이 속칭 문고리 3인방(이재만, 정호성, 안봉근)이라는 창구를 두고 정기적으로 국정에 개입하는 비선실세"란 기사를 낸다. 이에 청와대는 불가능한 일이라 반박했고, 문고리 3인방 및 관련자로 지목된 사람들 역시 기사 내용을 전면 부정하며 세계일보를 고소했다.

비선실세가 있다는 의혹이 최초로 제기되었을 때는, 주요 진보 언론들조차 박근혜 대통령의 소통 불능 문제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은 좋지만 청와대의 행보가 이상한 것은 2년차 인선문제[6]가 큰 부분으로 정부의 무능한 인물 선정을 비난한다면 모를까, 십상시 같은 비선 실세가 존재한다는 주장은 너무 나간 것이라는 논지의 컬럼이나 평을 내놓았다. 실제로 대한민국은 대통령이 한 번 갈릴 때마다 중요 인사가 모두 갈려나갔기 때문에 국정 초기의 소통불가능 문제등은 어느 정권에나 있었던 일이란 것을 고려하면, 이때까지는 세계일보가 헛다리를 짚어도 너무 크게 짚어서, 당시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던 진보 언론에서조차 욕을 먹고 있다는 설이 확정적인 시기였다.

하지만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보도에 나오는 내용은 근거 없는 풍설을 모은 이른바 찌라시에 불과하다"고 발표했고, 이어서 청와대는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기자와 세계일보의 사장, 편집국장 등 6명을 직접 고소한다.

이에 세계일보는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보고문건에 바탕을 둔 사실보도가 왜 명예훼손인가?라는 반박사설을 싣으며 청와대의 브리핑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세계일보 : 공직기강비서관실 보고문건이 '찌라시'인가?

청와대는 세계일보의 보도가 찌라시를 보고 한 헛소리[7]라고 일축한 것을, 세계일보 쪽이 "이거 청와대 공식 문서인데?"라고 받아친 것이다.

청와대의 주장대로 문건이 찌라시에 불과하다면 18대 대선 당시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일부를 누설하며 "찌라시"에서 보았으므로 대통령 기록물 유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주장한 바가 있으므로 세계일보를 고소할 근거가 사라지게 되고, 그렇다고 청와대 문서임을 확인해주면 세계일보의 보도 자체를 부정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3.2. 청와대의 짜맞추기 수사 의혹

12월 1일 박근혜 대통령은 진위여부와 유출 경로를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발언했고, 이에 따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찌라시라는 청와대의 주장을 부분적으로 수용해문서유출과 명예훼손 부분을 분리해 수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다. 정교하게 위조된 서류일 수 있다는 주장을 수용한 것이다.

3.2.1. 문서 내용은 모두 허위

정윤회 문건에 관한 수사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형사1부장인 정수봉이 담당하였다. 검찰은 신중을 기하기 위해 문서의 실체와 유출과정을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공개된 수사과정 자체가 문서를 누가 유출한 것인가에 무게가 실린 형국이라 사실상 검찰도 청와대의 짜라시 주장은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유출된 문서를 찌라시로 볼 수 없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 검찰의 입장에 청와대는 침묵을 지켰고, 이 시점을 기해 주요 보수언론인 조선일보동아일보, 중앙일보가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에 대한 사실규명을 요구하는 기사와 사설을 쏟아내 언론계의 위 아 더 월드가 이루어졌다.

보수언론들도 모두 등을 돌리자, 청와대는 고소인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내놓는다.

청와대의 돌변한 태도에 일부 법조인들은 "중요한 건 문서의 진위 여부이지, 누가 유출했느냐가 아니다. 물타기 하지 말라."는 비판을 가했다. 한편 해당 문건이 대통령기록물인지 여부에 있어서는 '직무 수행과 관련된' 문건인지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지므로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한편, 정윤회는 중앙일보를 통해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은 사실이 아니며, 억울하다고 주장하였다. 문건 작성자 박관천 경정의 상관이었던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문건의 내용은 60% 이상이 사실'이며, 박관천은 '자신이 가진 가장 날카로운 이빨'이었다고 말했다. 12월 3일 박 경정 근무지에 대한 압수수색과 소환조사, 서울시경 정보분실 경찰관에 대한 조사가 있었다. 12월 5일 조응천 전 비서관을 소환조사했다. 12월 7일에 박근혜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찌라시에 나라가 흔들렸고, 문건의 내용은 허위라고 언급했다.
인물 주장
파견된 박관천 경정 복제나 유출을 한 적이 없다
청와대 관계자 청와대 내부 인물이 문서 복제 후 검찰을 통해 우회 유출했을 것이다.
청와대 내부 보안 구조상 제3자가 복사하거나 유출시켰을 것이다.

2014년 12월 5일을 기준으로, 문서유출에 대한 입장은 위와 같다. 이 입장 발표로 결국 청와대측도 초기의 찌라시 주장을 철회, 해당 문서가 실제 존재하는 청와대의 문서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것이다.

2014년 12월 6일을 기준으로 이번 사건에 대해 정리한 기사

2014년 12월 8일, 세계일보 측에서는 자신들이 보도했던 문서가 정윤회를 비롯한 비선실세그룹의 멤버가 참석한 모임의 참석자로부터 제보받은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라는 기사를 1면에 실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문제의 문서를 작성한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는 해당 모임을 입증할 자료까지 입수했다고 한다. 이에, 검찰은 해당 제보자가 전직 국세청장 박모 씨라고 판단하여 그를 불러 조사했다.

12월 9일, 12월 3일에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 소속의 최 모 경위, 한 모 경위가 체포되었다. 또한, 한화그룹 IT계열사인 한화 S&C 직원이 최 모 경위, 한 모 경위에게 문건을 전달받아 유출한 혐의로 한화 S&C가 압수수색되었다. 한화S&C가 위치한 건물에는 서울경찰청 정보2분실이 소재하고 있었다.

12월 10일, 문건의 당사자인 정윤회가 검찰에 출석하여 조사를 받았다. 정윤회는 검찰 출석 직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건의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박근혜 대통령과 연락한 적이 없고, 누가 이런 불장난(문건 파동을 지칭하는 듯)을 하였는지 검찰 수사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12월 14일 청와대 이재만 비서관이 고소인 자격으로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한편, 12월 10일 문건 유출 의혹을 산 경찰관 2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으나 12일에 기각되었다.

3.2.2. 유출자는 엄벌

2014년 12월 13일 수사를 받던 최경락 경위가 이천시 고향 근처에 주차된 마티즈 안에서 번개탄을 피우고 숨진채 발견되었다. 유서와 자해 흔적을 미루어 자살로 추정되었다.
"경찰은 힘없는 조직이다."
- 외압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면서 남긴 최경락 경위의 유서.

2014년 12월 14일 문건 유출혐의로 수사를 받은 최 경위가 자살하면서 "경찰은 힘없는 조직이다."라는 유서를 남겨서 파문이 일었다. 검찰은 문건유출이 경찰에서 이루어졌다는 수사를 진행 중인 상태였고, 경찰정보의 최고중요지인 서울경찰청 정보분실에 압수수색을 실시해 경찰의 자존심을 긁어둔 상황에서 터진 일이라 그야말로 충공깽 상황이었다. 설상가상 최 모 경위의 유서에 '힘없는 조직'이라는 말이 거론되어 청와대의 명령을 받은 검찰이 작정하고 모든 책임을 경찰에 떠넘기려다 좋은 기회를 잡은 김에 다른 의혹도 죄다 넘겨버리려는 것이 아니냐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파일:external/www.the-pr.co.kr/12300_40823_4336.jpg
#

3.3. 검찰의 결론 : 모두가 속았습니다

3.3.1. 문건 작성 경위

문건 작성자인 박관천 경정과 문건 내용을 제보한 것으로 알려진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 또 박 전 청장에게 이른바 ‘십상시 모임’ 내용을 알려준 인물로 지목된 김춘식(43) 대통령국정기획비서관실 행정관 등 3명이 모두 동국대 동문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김 행정관은 박 전 청장과 지난해 동국대 동문 지인의 소개로 만나 알게 됐고, 박 경정은 박 전 청장과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에 다녔다. 박 경정은 검찰 조사에서 “박 전 청장이 비밀회동설을 내게 알려주면서 김 행정관으로부터 들은 것이라고 했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박 전 청장과 박 경정은 학연 외에 같은 TK(대구경북) 출신으로, 경북 경산시 출신인 박 전 청장은 경산중학교를 나온 박 경정과 오랜 친분을 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보고서 밑그림을 던져준 것으로 지목받은 박 전 청장은 같은 경산 출신이자 ‘3인방’ 중 한 명인 안봉근(48)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과 친분이 두텁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 전 청장은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 조사 결과 그가 안 비서관과 자주 교류해온 사실이 드러나면 ‘국정개입 동향 보고’ 문건의 신빙성에 대한 판단도 달라질 수 있다.

‘정윤회 씨 국정개입’ 문건을 처음 보도한 <세계일보>는 이날 ‘안 비서관이 박 전 청장에게 정윤회와 그를 따르는 비선 모임의 동향에 대해서도 일부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문건 출처가 안 비서관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안 비서관은 이날 “정부 출범 뒤 박 전 청장과 만난 적도 통화한 적도 없다”고 부인했으며, 청와대 안팎에서도 안 비서관이 박 전 청장에게 내밀한 이야기를 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들어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많다.#

3.3.2. 문서 유출 경위

12월 14일, 청와대 이재만 총무비서관이 고소인 자격으로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12월 15일, 대통령 동생 박지만이 참고인 자격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이후 박지만은 비공개로 1차례 더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청와대는 내부 감찰을 통해 조응천 전 청와대 비서관, 박관천 경정 등으로 구성된 7인회가 유출을 주도했다는 보고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조응천은 7인회 의혹을 부인했다. 세계일보는 청와대가 세계일보 간부로 지목한 사람이 세계일보 자매사인 스포츠월드 관리팀장일 뿐 세계일보 소속이 아니며 7인회의 구성원으로 지목된 다른 구성원들을 모르고 있다며 7인회 의혹이 허위라는 입장을 밝혔다.

12월 말, 박관천이 문건유출 혐의(대통령기록물 유출) 및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구속되었다. 검찰은 조응천에 대하여서도 문건유출 혐의 및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등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였으나, 서울중앙지법 영장담당판사는 영장을 기각했다.

2015년 1월 5일, 서울중앙지검은 중간수사결과발표를 통해 이른바 '정윤회 문건'은 증권사 정보지에 근거한 허위이며, 박관천과 조응천이 박지만을 이용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 한 것으로 추측된다며 박관천은 구속기소, 조응천과 유출에 참여한 한 경위는 불구속기소한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박지만 미행설 역시 박관천이 꾸며내 박지만에게 제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검찰(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 정수봉)은 정윤회 문건 내용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고 수사결과를 밝혔다. 이른바 '십상시 모임'에 대해서도 실체가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유출은 '책임떠넘기기를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이른바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사건 수사를 사실상 마무리했다. 그간 나온 여러 가설은 책임회피를 하려는 이들이 스스로 만들어내 유포한 낭설이라는 것.

다시 말해 박경정이 반출하고, 한경위가 복사해서 최경위가 유포했다는 쪽으로 문건수사의 노선을 잡은 검찰은 사법처리에 대한 안건만을 남겨 사실상 이번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을 박경정이 거짓으로 작성한 문건을 경찰 두 명이 유포하여 전국민과 국가기관, 청와대까지 속여넘긴 것으로 해석하였다. 다만 박경정의 범행 동기를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에 따른 부실수사라는 비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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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병우 민정비서관이 청와대 문건유출사건 등 까다로운 일들을 무난히(?) 마무리하면서 문서 유출 혐의로 조사 받던 최 경위가 마티즈 안에서 번개탄 피우고 자살한 일은 잊자김기춘 비서실장한테 높은 신임을 얻었다. 이때 우병우는 상관인 김영한 민정수석을 제치고 김기춘 실장에게 직보하는 일이 잦았다. 호랑이를 키웠네 이 때문에 김영한 민정수석이 '항명'하여 문서유출사건 관련 국회 운영위원회 증인 출석을 거부한 뒤 사퇴하였고, 우병우가 그 후임으로 민정수석이 되었다.

4. 박지만 문건의 행방

4.1. 박관천이 작성한 미행 문건

'정윤회 문건'도 박관천의 잘못이고, '박지만 미행 문건'도 모두 박관천의 잘못이다. - 검찰#
'박지만 미행설' 역시 박 경정이 만들어냈다는 게 검찰의 결론이다. 검찰에 따르면 박지만은 2013년 말 지인에게서 미행설을 듣고 박 경정에게 확인을 지시했다. 박 경정은 지난해 1월 그에게 "정윤회 사주를 받은 남양주 카페 운영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미행한다"고 보고했다.

박 회장은 이 내용을 지인들에게 말했고, 결국 지인에 의해 <시사저널>에 전달돼 3월 '정윤회의 박지만 미행설'이 보도됐다. 그 직후 박 경정은 미행설을 정리한 4쪽짜리 문건을 만들어 박지만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수사 결과 남양주 카페 운영자는 정윤회와 전혀 알지 못하고 미행을 한 적도 없었다. 검찰은 박 경정 스스로 검찰 조사에서 문건 내용은 허위라고 인정했다고 밝혔다. 또 검찰은 "박지만이 (박관천이 작성해 건넨) 미행문건을 청와대에 전달하려 할 때 박관천이 이를 적극 만류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박지만 미행 문건'은 박관천 경정 혼자 주도한 일이긴 하지만, 큰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조응천 전 비서관이 함께했다고 봤다. 조 전 비서관은 2013년 6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박지만 회장에게 청와대 내부보고서 17건을 전달했다. 이 자료들은 모두 원본 문서였다. 특히 2013년 12월~2014년 1월에는 정윤회 관련 문건을 집중적으로 작성해 건넸다.

검찰은 두 사람이 이같은 행동을 한 동기로 "박지만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역할 또는 입지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추단된다"고 설명했다.#

2015년 1월 6일 세계일보는 이 문건에 대해 김기춘 실장의 동의가 있었다고 보도한다. #

4.2. 조응천이 회수한 세계일보 문건

공직기강비서관실 근무자들은 최근 <한겨레>에 “3월 이후 청와대 내부 문서가 대량으로 유출됐다는 게 파악된 뒤, 청와대를 떠난 조 전 비서관이 <세계일보>로 흘러간 문서 일부를 구했고, 이 문서들을 ‘유출 관련 보고서’에 첨부해 정호성 비서관에게 전달했다”고 전했다.#
동아일보 기자 : "6월 말엔 시중에 돌고 있는 청와대 문건 일부를 회수했나. "
조응천 : “청와대 문건을 다량 갖고 있다는 사람의 연락을 받았다. ‘증거물을 보고 싶다’고 했더니 ‘갖고 있는 것 일부’라며 100쪽 넘는 복사본 문건을 보내왔다. 경악했다. 청와대를 떠났지만 박 대통령에게 알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김 비서실장 등을 믿을 수 없었다. 고민 끝에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에게 건넸다. 애가 탔는데 조치가 없었다. 공직기강비서관실에 함께 있던 오모 행정관에게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에게 건네줄 것을 부탁했다. 제1부속비서관은 대통령을 수시로 만나는 자리니까.”

동아일보 기자 : "조치는 이루어 졌나?"
조응천 : “민정수석실 비서관이 ‘의도가 뭐냐’고 전화를 걸어왔다. ‘청와대 문서가 다량으로 돌아다니는데 그냥 두는 건 직무유기다’라고 고함을 질렀다. 민정수석이 교체됐길래 전화를 걸어 ‘심각한 일이 있다’며 수습해 줄 것을 간곡하게 요청했다. 하지만 다시 민정수석실 비서관이 전화를 걸어와 ‘무고(사실이 아닌 것을 거짓으로 꾸밈)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당장 조사부터 하라’고 소리쳤다. 배가 구멍이 뚫려 침몰하고 있는데 ‘누가 구멍을 냈나’고 하다니…. 직후 엉뚱하게도 오 행정관이 대기발령(7월 초)이 됐다.”
2014년 6월. #

당시 정 비서관 등 청와대에선 ‘문건 내용이 신빙성이 없고, 유출 경로나 출처가 명확하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조 전 비서관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정 비서관 등 문건을 전달받았던 청와대는 얼마 뒤 이를 다시 조 전 비서관 쪽에 되돌려줬다. 청와대 내부적으로는 조 전 비서관이나 박지만 회장 쪽이 3인방을 포함해 청와대 측근 참모들을 흔들려는 의도로 문건을 활용하고 있다는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조 전 비서관의 부탁으로 정 비서관한테 문건을 전달했던 행정관은 대기발령을 받았고, 이후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했던 행정관 10여명도 일제히 교체됐다.#

박 회장의 변호인인 조용호 변호사(법무법인 새빛)는 지난 17일 언론에 전달한 자료에서 “박지만 회장이 세계일보 조현일 기자로부터 청와대 유출문건을 전달받았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조 기자를 만났을 때 조 기자가 유출문건을 가져와 박 회장에게 보여주기는 했지만 이를 교부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박 회장이 청와대 문건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 적도 당연히 없다”고 밝혔다. 조 변호사는 “박지만 회장이 세계일보 조현일 기자와 만나 청와대 유출문건을 보고나서 국정원장에게 연락을 해 유출 경위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박 회장은 국정원장을 개인적으로 알지도 못할뿐더러, 국정원장에게 직접 그러한 요청을 할 수 있는 사이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세계일보>는 ‘박지만 문건’을 박 회장에게 전달했을 뿐 당시 보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달 28일 ‘정윤회 씨 국정개입’ 보고서는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에 대해 <세계일보>는 “‘박지만 문건’이 청와대에 건네지면 대대적인 보안점검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으나 실제 점검이 이뤄지지 않아 그 경위를 취재했다. ‘정윤회 문건’ 보도는 그 취재 결과 중 일부다. 보도는 현재 진행형이다. 어떤 보도를 먼저 할지는 (편집국의) 판단 문제”라고 밝혔다. <세계일보>는 ‘박지만 문건’과 ‘정윤회 문건’을 한꺼번에 입수했는지, 각각 입수했는지에 대해 밝히지 않고 있다. 당시 박 경정이 청와대에 전달한 유출 보고서에 ‘현직 행정관→대검 수사관’ 등을 지목한 내용은 검찰 조사에서 허위로 드러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유출 보고서에 적힌 경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아무개 경위가 꾸며낸 가상의 유출경로”라고 설명했다. 박 경정과 조 기자 모두 최 경위가 꾸며낸 유출 경로에 속았다는 설명인데, 최 경위는 유서를 통해 ‘억울하다’고 밝히고 있다. 검찰이 밝힌 내용을 검증할 수 없게 된 셈이다.#

4.3. 측근들에 대한 인사조치

1. 청와대
4월, 민정수석실 조응천 비서관 라인 경질 (민정수석실 파견 경정급 경찰관 5명이 7월까지 원대복귀)
5월, 백기승 전 국정홍보비서관 사퇴

2. 국정원
5월, 남재준 국정원장 사임
9월, 1급 간부 Z 씨가 인사 일주일 만에 철회 : 청와대 지시로 퇴진 후 국내 정보와 무관 부서로 이동
 
3. 기무사 군 인사 건
10월, 이재수 전 사령관 전격 교체
 
4.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
김진선 전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 사퇴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김 전 위원장 사퇴가 김 실장과 정윤회 씨 사이의 암투와 무관하지 않다는 정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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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의혹의 결말

청와대 측은 선거 이후 정윤회는 박근혜 대통령과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계속해서 유지하였고 검찰 수사도 실체가 없는 사건이라는 쪽으로 가닥을 잡자 언론들 모두 잠잠해지고, 없던 일처럼 되었다.

5.1. 세계일보 후폭풍

세계일보 회장이 취임 50여일 만에 교체되고, 2015년 2월 문건 보도의 한복판에 있던 조한규 사장이 사실상 경질되면서 후폭풍을 겪었다. 또, 세계일보 모체인 통일그룹 관련 회사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가 실시되는 등 권력기관의 외압설도 끊이지 않았다. 결국, 2015년 8월 13일 해당 보도를 한 기자 3명이 "회사 내부에서 일어난 일련의 문제들은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 보도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회사 소란의 원인을 제공한 만큼 이제 그 책임을 제가 지겠다"고 사표를 냈다. 다만 사표가 수리되지 않아 세 기자는 모두 회사로 복귀했다. 2016년 7월 14일 청와대는 세계일보를 상대로 낸 명예훼손혐의에 대해 고소를 취하했다. #

5.2.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인가?

2014년 초만 해도 야당의 거물 의원을 기소할 수 있을 정도였고, 외부에 보도되자 찌라시라고 몰아붙일 정도로 민감한 내용이 어째서 청와대 외부로 유출된 것인지에 대해선 여러 가설이 있다. 2014년 12월 5일을 기준으로 가장 그럴듯한 것으로 평가받는 것은 권력 암투설, 이른바 십상시가 되지 못한 2군세력의 가지지 못하면 부숴버릴 거야 자폭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지지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박지만 라인’의 인물이 올해 들어서 줄줄히 좌천되었음을 주장하는 기사가 나온 바 있다.

이 일은 근본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의 그동안 행적을 보면 알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극단적으로 사람을 잘 만나지 않으며 공무처리도 비슷해서, 정말 알려지지 않는 측근들 아닌이상 대통령과 직접 대화하거나 건의하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전임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총리실 비선을 통해 일으킨 민간인 사찰사건과 달리 박근혜 대통령은 처음부터 수십년간 알고 지낸 몇몇 지인들, 즉 비선이 아니면 접근조차 어렵고. 모든 일을 극소수의 심복들을 통해 전달 받으려는 태도가 애초부터 이런 사건을 내재하고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당대표였던 김무성마저 대통령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고 토로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예 그 이외의 사람들은 대통령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속칭 문고리 3인방을 만나지 않으면 안되는 구조를 자초하게 된 것이다. #

5.3. 놓치지 말아야 하는 점

문서유출 건과 명예훼손 건으로 수사가 나뉘자, 법조인들은 어차피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극소수라 문서열람 기록을 수사하면 다 나온다고 말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도대체 이걸 왜 만들었는가?', 그리고 '문서 내용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게 우선이고 유출경로는 그 뒤의 이야기여야 하는데, 모두 유출 자체에만 목을 매고 있어 사건의 본질이 흐려졌다.[8]
공공기록물관리에 의한 법률상 공공기관의 기록물을 무단으로 은닉하거나 유출한 경우 3년 이하 징역 혹은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며, 실제 문서로 유출하지 않고 구두로 전한다 해도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고 허가없는 복제와 유출은 6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만약 권력암투로 인한 게 사실이라면, 내부 권력투쟁에서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 문서를 작성해 유출한 것이라면 관련자들을 엄벌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문서 내용이 허위 작성된 것이 아니라 사실이라면, 공정한 인선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소수의 사람이 국정을 농단했다는 것인데, 이러한 중대한 사안에 대해 청와대와 대통령 및 그 지지자들은 '문서 유출'에만 초점을 맞추고 유출자를 색출해 처벌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검찰도 실제로 그렇게 수사를 진행했다. 이처럼 '문서의 진위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진실성이 의심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국, 청와대의 선긋기로 인해 십상시의 국정개입이 실제로 있었는지, 정말 권력 암투가 있는 건지에 대해서는 진상 규명이 어려워졌다. 진짜 실세가 누구냐는 후속 의혹 기사들이 등장하는 상황에 대해 청와대에서는 엄중히 받아들이고 국민적 불신을 해소하는 노력을 보여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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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6. 반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확대되면서, 상황이 180도 반전되었다. 이 사건이 처음 보도될 당시의 최순실의 인지도는 아버지인 최태민을 언급하면서 지나가는 수준으로 언급된 정도였다. 정윤회가 최순실의 전 남편[9]인 점, 내부문서 유출에 강력히 반발하던 청와대가 최순실에게 주도적으로 문서를 유출한 점, 그리고 최순실 본인이 각종 인사문제 및 대통령연설문 작성을 비롯한 각종 국가사업에 관여,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의혹들 대부분이 사실로 밝혀져 버린것. 당시 검찰측에서 결론지은 비선실세의 실체 따위는 없다는 발언은 검찰측이 진짜로 비선실세들에 대해 전혀 몰랐던가 아니면 알면서도 입을 다문것이 되었다.

이후 밝혀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에서 제기된 비선의 국정개입의 문제점과 개입의 규모를 아득히 초월하면서 결국 정윤회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잔가지에 불과했음이 밝혀졌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해외 순방을 가있는 동안 최순실이 직접 경찰 인사에 개입하여 일을 수습시키려고 한 정황이 밝혀졌다.# 결국 경찰측은 파워게임에서 저만치 밀려나간 비선에게 인사개입이나 당하던 힘없는 존재였다.

최순실 특검도 이와 관련하여 한일 경위와 접촉하였고, 정윤회를 출국금지 시켰다. # 다만 이후 조사에서 정윤회 본인에 대한 혐의는 나온 게 없다. 최순실 본인도 전남편 정윤회가 오히려 박근혜 곁을 떠나기를 종용했고, 이로 인한 갈등이 이혼 사유 중 하나였다고 밝혔다.#

7. 기타

7.1. 최경락 경위의 자살

2016년 11월 19일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 "대통령의 시크릿" 방영을 통해 비선실세 국정농단에 관련된 이후 45세의 나이로 자살한 서울지방경찰청 산하 정보과 소속 최경위의 자살에 대해 재조명하였다. 당시 최경위의 업무는 공직자들의 비리여부를 수사하는 것이였다.

자살한 최 경위는 14장의 유서를 남겼는데 유가족들은 가족들에게 남긴 분량을 제외한 8장을 공개했다. 유서 내용에는 경찰의 명예를 지키고자 죽음을 택했다는 취지로 작성하였으며, 자신의 친형에게 (현 박근혜 정권의)임기가 2년만 남았어도 자신이 끝까지 싸웠겠지만 남은 임기가 너무나도 길어서 아무런 희망도 없음을 심정을 토로했다.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자살한 최경위가 알았던 것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는것.

이때 의혹제기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12월 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본인이 직접 "비선이니 숨은 실세가 있는 것같이 보도를 하면서, 의혹이 있는 것같이 몰아가고 있는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것도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 문란 행위입니다.[14]"라고 말하면서 의혹을 전면부인및 문건 외부 유출을 강력하게 비난한다. 이후 표적은 국정을 농단한 비선실세가 아닌 문건을 유출한 사람에게 집중되면서 수사의 초점은 문건을 유출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찾는 것으로 바뀌었다. 한마디로 사건 덮어두기를 위한 꼬리자르기 + 내부고발자 색출.

최경위 사건 관계자는 최경위가 이후 (경찰)지방청 간부와 전화통화를 하고 만났으며 여기서 최경위 네가 이번 사건을 안고 가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오갔다고 증언했으며, 당시 문건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드러난 비선들에 대한 내부 고발인 만큼, 경찰 자체만으론 해결이 안되니깐 기자의 힘을 빌려서 밖으로 꺼내고자 하다가 힘겨르기에서 경찰이 밀린 것이라고 평했다. 이에 대해 정윤회 문건을 최초 보도한 조현일 기자는 유출된 문건에 대해 검찰이 그 내용을 확인 했더라면 비선 문제가 나왔을 것이고, 최경위 개인의 죽음외에도 오늘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지금같이 대한민국이 혼란이 빠지진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7.2. 우병우의 민정비서관실서 회유 의혹

(중앙일보 단독)정윤회 문건 수사 때 우병우의 민정비서관실서 회유했다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의 핵심 피의자였던 한일(46) 전 경위가 10일 “문건 유출자로 지목돼 수사받을 때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의 회유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한 전 경위는 “그해 12월 8일 오후에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의 P행정관이 연락해와 ‘문건을 최경락 경위에게 넘겼다고 진술하면 불기소도 가능하다’며 협조를 종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바로 전날에 당한 검찰의 압수수색 때 제출한 내 휴대전화에 저장된 내용들을 그가 알고 있었다. 내가 최 경위에게 이런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덧붙였다. 그 뒤 한 전 경위는 “최 경위에게 문건을 넘겼다”고 검찰에서 진술했고, 최 경위는 언론에 이 문건을 제공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최 경위는 닷새 뒤인 13일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 경위는 유서에 ‘민정비서관실에서 그런 제의가 들어오면 흔들리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썼다. 이후 검찰은 박관천(50) 전 경정이 청와대 근무 때 만든 문건을 가지고 나와 정보분실에 둔 것을 한 전 경위가 복사해 최 경위에게 넘겼고 이를 최 경위가 언론에 유포했다고 결론 내렸다.

중앙일보는 이같이 보도하며 한 전 경위 말이 사실이라면 당시 민정비서관실이 검찰의 보고를 받아가며 사건 조기 진화를 위해 수사에 개입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언급 하였다.

7.3. 박관천과 금괴

2015년 3월 검찰은 박관천 전 경정의 은행 대여금고에서 골드바 11개를 발견했다. 당시 박 전 경정은 정윤회 문건의 유출자로 지목돼 법정 구속된 상태로 검찰 조사를 받던 중이었는데 검찰 조사 결과 금괴 6개는 유흥주점 업주 오모 씨로부터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오 씨는 당시 경쟁관계였던 룸싸롱 업주 이모 씨가 다른 경찰을 매수해 표적수사를 하자 더 높은 직위에 있던 박관천 전 경정에게 뇌물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박관천 전 경정은 또 2012년 조희팔 사망 사건을 수사하면서 사망진단 의사의 면담 등을 토대로 조 씨가 사망했다고 결론내고 발표한 인물이다. 경찰청은 그러나 지난해 10월 조희팔의 사망 발표에 과학적 근거가 없었다며 3년만에 말을 바꾸며 수많은 추측과 의혹을 낳기도 했다.

특히 총 11개인 금괴 가운데 나머지의 출처를 놓고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박 전 경정은 그러나 검찰수사 당시 나머지 금괴는 자신이 구입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

7.4. 박동열의 금품수수

2015년 9월 4일 이른바 '정윤회 문건' 수사 당시 문건 내용의 제보자라고 알려졌던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이 금품수수 의혹으로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것으로 4일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심재철 부장검사)는 서울 강남 일대 유흥업소 업주 박모 씨에게서 박 전 청장에게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수천만원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씨는 2011년부터 최근까지 룸살롱 등 유흥업소 여러 곳을 운영하며 매출을 누락하거나 축소하는 등의 수법으로 195억원 상당의 세금을 내지 않은 혐의로 3일 구속됐다. #

7.5. 고소 및 기소 내역

일자 대상 주장 결과
2014년 6월 25일 박지원 SBS의 라디오를 통해 "인사는 만만회가 다하고 있다" / "만만회는 정윤회, 박지만, 이재만이 핵심이다"라 인터뷰 검찰2014년 8월 28일 박지원을 명예훼손으로 기소
2014년 8월 3일 산케이 신문 "세월호 참사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정윤회가 함께 있었다"라 보도 검찰이 명예훼손으로 기소. 2015년 12월 17일, 1심에서 무죄 판결. 검찰항소 포기로 확정. [15][16]
2014년 11월 28일 세계일보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을 보도 청와대가 세계일보를 고소. 2016년 7월 14일 청와대는 명예훼손 혐의 고소를 취하.#
박관천 공무상 비밀 누설 및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2007년 룸살롱 업주 오모 씨로부터 수사 무마 청탁과 함께 시가 1억원대 금괴 6개를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2015년 10월 16일 1심에서 징역 7년과 추징금 4340만원 선고, 2016년 4월 29일 2심에서 집행유예[17]#
조응천 공무상 비밀 누설 및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1심, 2심 모두 무죄[18]#


[1] 최초 의혹제기는 2013년이었으나, 관련 문건이 실존하는 것으로 확인되어 언론에 보도된 것은 2014년 11월 28일이다.[2] 최초 문서 유출자의 신분이 경찰관이라 얼떨결에 수사를 같이 들어가게 되었다.[3]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 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4] 사건이 처음 터질 당시에는 최태민과 정윤회, 박근혜의 관계의 연결고리 정도로 지나갔는데, 그때 당시에는 최순실이 공직이 없고 일반인들에겐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어서 의심을 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람도 정윤회처럼 실세 파워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증언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2016년 9월, 유사한 의혹으로 논란이 불이 붙어 결국 10월 이 사람과 박근혜 대통령이 관련된 초대형 핵폭탄이 터졌다.[5] 조응천의 진술로는 김실장에게 보고서를 올린 후 1주일간 박관천 복귀시키라는 지시가 빗발쳤다고 한다[6] 2014년 내내 이어진 인선문제, 중요 기관장의 교체와 자질 문제 의혹 등[7] 참고로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18대 대선유세 당시 부산에서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에 담긴 내용을 누설한 바 있는데, 이후 그는 그 내용의 출처에 대해 “찌라시에서 봤다”고 발언한 바 있다.[8] 수사기관과 언론이 비밀의 내용보다 비밀의 유출경로에 주목하였고 결국 내용이 묻혀 버렸다는 점에서 초원복집 사건과 소름끼치도록 닮았다. 이러한 일련의 여론 흐름 자체를 김기춘의 작품으로 보는 사람이 많으며, 최순실 게이트에서 용의자들이 태블릿 PC를 계속해서 걸고 넘어지는 것도 김기춘의 기획일 거라는 세간의 추측도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9] 공교롭게도 사건이 일어난 2014년도에 이혼했다.[10] 당시 야당의 거물의원이 기소되자 진보언론들은 세계일보의 과거 기사를 재평가하는 움직임을 보였고, 보수계열 언론들은 6.4 지방선거가 여당의 패배로 끝남에 따라 책임론과 차기 당권을 주도하려는 과정에서 생겨난 권력암투라 비난하며 만만회 의혹 자체를 날조된 것이라고 못박는 등 과민 반응을 한 것이 수상하다는 의심을 샀으나, 그 뒤로 세월호 참사 관련 보도 때문에 산케이 신문을 고소하는 일이 이어져 청와대가 고소드립에 맛들렸다는 정도로 치부된 일인데, 이번 세계일보의 보도로 재조명받게 되었다.[11] 상고심이 법리심인것을 감안하면 2심에서 무죄가 나온 것은 사실상 재판이 끝났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12] 이때 자신의 억울함때문인지 식당 이름을 정윤횟집,십상스시중 하나로 할까 하다가 마티즈를 걱정한주변의 만류로 별주부라고 정했다.[13] 국회운영위원회는 국회 소속기관, 대통령 소속기관 및 국가인권위원회의 소관에 속하는 의안과 청원 등의 심사, 기타 법률에서 정하는 직무를 수행하는 곳이다. 즉, 대놓고 청와대를 깔 수 있는 위치다.[14] 정작 대통령이 문건을 대거 유출해 버렸다... 김무성이 괜히 헌법의 수호자인 대통령이 헌법을 어긴 것이라고 탄핵 사유라고 극딜한게 아니다.[15] 재판부는 해당 기사가 허위 사실을 직시했다고 봤지만 면책사유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는 해당 사안이 공인인 박 대통령에 대한 것으로 일본인들에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알릴 가치가 있는 사안이었으며, 공인에 대한 기사는 허위 사실이라고 해도 작정하고 비방의 목적을 가진 것이 증명되지 않은 이상 기본적으로 면책사유가 되며, 기사 내용도 한일 양국 시민사회의 사회적 판단에 맡겨야지, 범죄가 성립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토가 한 행동 자체가 반드시 올바르다고 할 수 없다고 덧붙었다. 5일 뒤 검찰도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무죄가 확정되었다.[16] 여기에 대해서는 박근혜 정부가 법리적인 판단보다 외교적인 판단을 앞세웠다는 비판이 있었다. 실제로 2015년 12월 28일 한일 양국은 위안부 문제 협상을 타결 지었다고 발표한다.[17] 골드바를 받은 혐의가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인정하지 않아 대폭 감형[18] 정윤회 문건을 제외하고 박 회장 부부 등의 동향이 담긴 나머지 문건의 원본은 대통령 친인척에 대한 특별감찰 업무 과정에서 작성된 것이라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한다고 봤다. 하지만 박 회장에게 전달된 문서는 청와대 문건의 출력본 또는 복사본이라서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