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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제

파일:KBS 로고 화이트.svg 공채 탤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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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fff> 서울중앙방송(現 한국방송공사) 탤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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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7bd><colcolor=#000> 장욱제
張旭濟 | Jang Wookjae
파일:장욱제.jpg
본명 장시권(張時權)
출생 1942년 11월 11일 ([age(1942-11-11)]세)[1]
경기도 경성부 주교정
(현 서울특별시 중구 주교동)
학력 동성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연극학 / 학사)
데뷔 1964년 KBS 4기 공채 탤런트

1. 개요2. 연기자 시절3. 연기자 은퇴, 전업4. 출연작
4.1. 드라마4.2. 영화4.3. 광고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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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배우이자 사업가.

2. 연기자 시절

1942년 11월 11일 경기도 경성부 주교정(현 서울특별시 중구 주교동)에서 태어났다. 1961년 동성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입시에 낙방하여 재수를 하던 중 갑자기 공부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모든 것을 포기했는데, 이를 보다못한 형이 동국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연극학과 원서를 사와서 "너는 연극을 한 번 해보는 게 좋겠다. 밑져야 본전인 셈 치고 시험이라도 보라"고 권유하여 응시한 장욱제는 예상을 뒤엎고 합격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기 공부를 하게 되었다.

1964년 KBS 공채 4기 탤런트 시험에 응시하여 무려 2,993명 중 남자 13명, 여자 20명만 뽑는 무지막지한 경쟁률을 뚫고 합격의 영광을 안았고[2], 1965년 동국대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초기 수년 간은 단역이나 엑스트라 역할에 머무를 뿐이었다. 그래도 장욱제는 동대문시장 같은 사람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외모나 말투, 행동거지 등을 수첩에 적으면서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스스로 연구했고 함경도에서 월남한 시장 상인과 친해져서 그에게 함경도 사투리를 배우기도 하는 등 열심히 연기를 공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지켜보며 장욱제를 기특하게 생각한 연출가 겸 극작가 이남섭[3]이 그를 중용하였고 일망타진 일보직전, 임자 있었네 등의 드라마에서 주역은 아니었지만 개성있는 신 스틸러 역할로 시청자들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1969년 장욱제는 KBS 일요사극 녹슬은 단검의 조연인 돌쇠 역으로 출연했는데 주연보다 오히려 눈에 띄는 코믹 연기로 호평을 얻으면서[4] PD이자 작가인 이남섭은 아예 장욱제를 후속작 격인 의리의 사나이 돌쇠의 타이틀 롤로 앞세우면서 그는 유명 연기자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남섭 작가의 다른 코믹 드라마인 10분 쇼[5] 에서는 함경도 출신의 꼬장꼬장한 꼰대 대서사 역을 맡아 이전에 배운 걸직한 함경도 사투리를 유창하게 구사하면서[6] 동네 복덕방 주인 역할인 송해와의 콤비 연기로 시청자들의 인기를 끌기도 했다.
파일:영구_여로.jpg



1972년 4월, 장욱제는 KBS 일일연속극 여로에 주인공인 영구 역으로 캐스팅되어 절륜한 바보 연기와 더불어 아내 분이 역의 태현실과 가슴 절절한 호연을 선보이며 드라마 시청률은 70~80%로 폭발하는 대박을 이끌어 냈고, 이 때 대다수의 어린 아이들이 "땍띠야 땍띠야" 등등 영구 말투를 흉내내며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뒷목을 잡을 정도로 영구 신드롬이 퍼져나가는 공전절후의 인기를 누렸다.[7][8] 당연히 장욱제는 확고부동한 스타 자리에 오르며 전성시대를 구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장욱제를 스타로 만든 영구 역할은 양날의 검이 되어 돌아왔고, 바보 이미지가 지나치게 굳어버린 장욱제는 이후 어떤 역할을 맡더라도 자꾸 영구가 오버랩 되는 바람에 시청자들의 몰입이 깨질 수 밖에 없었다. 고민 끝에 장욱제는 연기를 잠시 그만두고 가수와 예능프로 MC로 외도하기도 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거두지 못한 채 다시 연기자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조금씩 연기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3. 연기자 은퇴, 전업

1973년 장욱제는 자신의 열렬한 팬이었던 김신자백년가약을 맺었는데, 그녀는 파라다이스 그룹 창업주 전락원 회장의 조카였다.[9] 사실 전락원은 장욱제의 처외삼촌이기는 해도 사업 특성 상 해외출장과 체류가 잦아 이렇다 할 교류는 적었는데, 1977년 어느 날 장욱제가 영화 촬영 차 제주도에 가서 스태프들과 점심식사를 하려고 한 호텔에 들어갔다가 전락원 회장과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그 호텔은 전 회장이 경영하던 곳 중 하나였고 오랜만에 해외에서 돌아와 계열 호텔을 시찰하던 중 마침 조카사위 장욱제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둘이 점심식사를 하던 중 전 회장은 장욱제에게 "자네 연기를 10년 넘게 했으면 할 만큼 한거 아닌가? 슬슬 그만두고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건 어때?"라며 갑작스럽게 제안하였고, 마침 연기 생활에 회의를 갖고 있던 장욱제는 처삼촌의 말에 솔깃 했지만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무심결에 "네, 그러지요" 라고 답하였다. 그 뒤로 특별한 얘기가 없어서 그냥 흐지부지 되나 싶었는데 몇 주쯤 후 전 회장이 장욱제 집에 전화를 걸어 "저번에 내가 한 얘기는 어떻게 되었나? 언제 (연기자) 그만두고 여기 올 건데?"라며 채근하자 아차 싶은 장욱제는 처삼촌의 말이 농담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지금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부터 정리하고 두 달 내로 가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에 전 회장은 "오케이, (1977년)11월 1일 부로 제주도 호텔로 발령낼테니 준비해서 출근하라"며 딱 잘라 지시했고, 결국 장욱제는 출연 중이던 MBC타국113 수사본부 등에서 하차하고 1977년 10월 배우 생활을 접었다.

이후 장욱제는 제주도 허니문하우스 호텔 직원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호텔리어 생활을 시작했고 처음엔 고전을 거듭했지만 나름대로 공부하면서 새로운 이벤트[10]를 기획하여 손님들을 끌어들이는 등 수완을 발휘하며 파라다이스 그룹 내에서 인정받는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1987년에는 제주 파라다이스 호텔 대표이사에 취임했고, 1995년부터는 도고호텔 대표까지 겸임했다. 1996년에는 파라다이스 그룹 유통사업본부장에 취임했고, 1999년부터 장(Jean)인터내셔널 대표에 취임하는 등 제2의 인생도 승승장구 하였다.#

2001년 호텔 사장 직을 퇴임하고 그룹 사외이사고문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장욱제는 개인적으로 무역상 등 사업을 벌였고, 한편으로 연기자로서의 복귀를 타진하여 2001년 SBS 드라마 아버지와 아들주현의 친구 역할로 출연하면서 25년 만에 방송계로 돌아와 화제를 모으기도 했지만 정작 드라마 자체의 인기는 신통치 못하여 조기종영 크리를 먹고 말았으며 비슷한 시기 추억의 악극 여로에 영구 역할로 태현실과 같이 출연했으며 그 뒤로 연기 생활은 완전히 접고 방송출연도 줄이면서 세간의 관심에서 조금씩 멀어져 갔다.

2021년 1월 부로 장욱제는 파라다이스 그룹 고문 자리도 내려놓으며 경영인 생활도 완전히 은퇴했고, 이후 여생을 조용히 보내고 있다.

파일:장욱제_최근.jpg

송승환유튜브 채널 원더풀라이프[11]에 출연하여 자신의 근황과 인생 회고 등을 풀어놓기도 했다.[12] 송승환의 원더풀라이프 장욱제 편 1화(1~8화까지 있음)

4. 출연작

4.1. 드라마

4.2. 영화

4.3. 광고

5. 여담



[1] 여로에서 부부로 같이 연기한 태현실과 생년월일이 같다.[2] 동기생으로 이일웅, 김진해, 남일우, 반효정 등이 있었다.[3] 1934~1985.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까지 다녀온 실력파 프로듀서이자 작가였으며, 여로 등의 수 많은 히트작을 집필하였다. 평소 드라마 연출은 본명인 이남섭을 내세웠지만 대본 명의는 이석진이란 가명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후 이남섭이 줄곧 연출과 각본까지 독점하는 것에 대하여 KBS의 연출자들과 연기자들이 "당신만 연출이랑 대본까지 다 해먹느냐?" 라며 배척하면서 거의 쫓겨나다시피 KBS에서 나온 후 MBC 드라마 3840 유격대 등을 집필하고 시인으로도 활동했지만, 말년에는 KBS 공채 1기 탤런트아내 김난영(1941~1985)의 매니저 역할로 전락하였다. 1985년 사랑하는 아내 김난영을 신장암으로 먼저 떠나보낸 후에 자신도 혈액암으로 시름시름 앓다 얼마 안가 세상을 떠난 순애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4] 당초 녹슬은 단검의 주연은 신성일의 뒤를 잇는 미남 배우로 인기를 끌던 오영일 이었고 장욱제는 오영일의 방자 역할이었지만, 오영일의 연기가 워낙 딸려서 어쩔 수 없이 장욱제의 비중이 늘어났다고 한다. 참고로 1960년대 영화계의 청춘 스타로 인기를 누리던 오영일은 1971년 배우를 그만둔 후 사업가로 전직하여 성공하였고 2020년 향년 76세를 일기로 작고하였다.[5] 제목 그대로 10분 분량의 이 드라마는 박정희 정권의 새마을운동 등 국책 사업을 소재로 한 일종의 홍보 드라마였다.[6] 당시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표준어를 쓰는 것이 상식이던지라 방송에서 사투리를 쓰면 이채롭게 보던 시절이었다.[7] 바로 전 해인 1970년 TBC의 드라마 아씨가 굉장한 인기를 끌었지만 TBC의 시청권은 서울부산에 한정되어 있었는지라 타 지역에선 아오안이었을 반면, KBS는 진작에 전국 네트워크를 구축한 상태였기 때문에 굳이 비교한다면 여로의 파급효과는 아씨를 훨씬 능가했을 것이다.[8]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국영방송이었던 KBS는 매달 징수원들이 각 가정을 방문하여 시청료를 걷었는데, 이전에는 "재미없는 방송만 내보내면서 무슨 시청료냐?" 라고 불평하며 시청료 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시청자들이 여로가 방영된 뒤에는 시청료 징수원에게 "좋은 드라마를 방영해줘서 고맙다" 면서 기꺼이 시청료를 지불했다는 것이었다.[9] 장욱제의 장모님은 전락원 회장의 첫째 누님 전숙자 씨이며, 장인은 소싯적에 축구선수로 활약한 후 한국 루어낚시의 대부가 된 위수 김홍동 선생이다. 또한 장욱제의 처이모이자 전락원의 둘째 누님 전숙희 씨는 수필가로 한국 문예계에서 이름을 남겼다.[10] 대표적인 이벤트로 신혼여행을 온 부부들을 초대하여 맥주술안주, 음료수를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고 장욱제가 직접 MC로 나와 신혼부부들의 결혼 계기 등 신변잡기를 물어보는 토크쇼를 진행하면서 호텔 예약을 기본 2~3개월 전에 해야 할 정도로 히트를 쳤다. 장욱제가 연기자 생활을 잠시 접고 쇼 프로 MC를 했던 경력을 이 때 적절하게 살린 셈이다. 이후 장욱제의 인맥을 동원하여 당대 유명 가수를 초빙하는 디너쇼 형식도 추가했고, 박정희 대통령이 제주도 방문 시 장욱제가 근무하던 호텔에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그야말로 잭팟을 터뜨릴 수 있었다.[11] 삼성생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고 있다.[12] 송승환은 여로에 아역으로 출연하여 장욱제와 부자지간을 연기한 바 있다.[13] 원래 제목은 잡았네요 였지만, 장욱제의 극중 막판 고정 대사이자 유행어였던 "일망타진 일보직전 이었는데..."를 따라 드라마 제목까지 바꿨다고 한다.[14] 그 사장은 발음만 안좋았을 뿐 정상적인 지능의 소유자였다고 한다.[15] 여로에서 분이(태현실)를 괴롭히던 김달중 역할의 김무영은 장욱제와 어린 시절부터 친한 사이였다. 그런데 김무영은 술을 굉장히 좋아했고, 이로 인하여 뇌졸중이 발병하는 바람에 1975년 연기자 생활에서 은퇴하고 말았다. 이후 가업인 신성금고의 사장으로 일했지만 뇌졸중 후유증으로 많지 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