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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와 조선 시대의 잡과(雜科)는 국가 운영에 필요한 전문 기술관(기술직 관리)을 선발하기 위해 실시된 과거 시험이다. 유학 지식을 평가하는 문과나 무예를 평가하는 무과와 달리, 의학, 법학, 천문학, 외국어 등 실용적이고 전문적인 지견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2. 상세
잡학의 경우 이보다 많은 종류가 있었으나, 잡과는 역·의·음양·율학 네 분야에 한정하여 실시되었다. 잡과는 초시와 회시 2단계로 나누어 그 분야를 주관하는 실무 부서 책임 아래 시험이 치러졌다. 문·무과와 달리 전시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nopad> |
| 잡과 선발 인원 |
3. 역사
1. 잡과의 정의 및 역사적 변천잡과는 광종(고려) 9년(958년) 과거 제도가 처음 도입될 때부터 시행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의업(醫業)과 복업(卜業)만이 존재했으나, 성종(고려) 대에 이르러 명법업·명산업·명서업 등이 추가되며 체계화되었다.
- 고려시대: 법학(명법업), 수학(명산업), 서예(명서업), 의학(의업), 점복(복업), 지리(지리업) 등 다양한 종목이 운영되었습니다. 특이하게도 잡과 시험 과목에 삼례·삼전 등 유교 경전이 포함되기도 하였다.
- 조선시대: 태종 2년(1402년)에 이르러 역과(번역·통역), 의과(의술), 음양과(천문·지리·명리), 율과(법률)의 4개 과로 정비되어 구한말 과거제가 폐지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4. 주요 시험 종류 (조선시대 기준)
| 구분 | 전공 분야 | 오늘날의 직역 |
| 역과 (譯科) | 한학(중국어), 몽학(몽골어), 왜학(일본어), 여진학 | 외교관, 통역사 |
| 의과 (醫科) | 의학 및 약학 | 의사, 약사, 한의사 |
| 음양과 (陰陽科) | 천문학(학문), 지리학(풍수), 명리학(복서) | 과학자, 기상학자 |
| 율과 (律科) | 법률 및 형벌 | 법조인 (판사·검사) |
5. 응시 자격 및 선발 과정
잡과는 신분상 천인을 제외한 양인 이상이면 응시가 가능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문과와 달리 양반층보다는 향리나 서리, 또는 대대로 해당 기술직을 계승해 온 중인 계층이 주로 응시하였다. 특히 문과 응시가 제한되었던 서얼(庶孽)이나 하급 관리의 자제들이 관직 진출의 통로로 활용하기도 했다.- 선발 절차: 잡과는 3년마다 치러지는 식년시의 일환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예비 시험인 '초시'와 본 시험인 '복시'의 2단계를 거쳐 선발하였으며, 문과와 달리 임금 앞에서 치르는 '전시'는 생략되기도 하였습니다.
- 운영 기관: 각 전공에 따라 사역원(역과), 전의감(의과), 관상감(음양과), 형조(율과) 등 해당 전문 부서에서 교육과 시취를 주관하였다.
6. 합격자의 사회적 지위
잡과 합격자들은 조선 시대 신분 구조상 중인(中人)계층을 형성하였습니다. 이들은 국가 운영에 필수적인 전문 기술을 보유했으나, 정치적 승진에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했다.- 관직의 한계: 문과 출신 양반과는 달리 고위직으로 올라가는 데 제약이 있었다. 대체로 정3품 당하관 이하의 관직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으며, 품계에 맞는 직책을 받지 못하거나 경제적 보상이 낮은 경우도 있었다.
- 가업 세습과 응집: 잡과 합격자들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가문을 형성하고, 혼인을 통해 그 지위를 대대로 유지하며 독자적인 계층을 굳혔습니다. 특히 역관이나 의관 중 일부는 사신단에 참여해 명이나 청나라과의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기도 하는 등 경제적 실리를 누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