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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14:48:20

정의기억연대 위안부 피해자 이용 논란

윤미향 사태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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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2020년 이전의 논란3. 경과
3.1. 이용수 전 대표의 1차 폭로3.2. 이용수의 1차 기자회견 이후 경과3.3. 이용수의 2차 기자회견과 이후 경과
4. 추가 논란5. 쟁점
5.1. 후원금 사용처 공개 논란5.2. 모금액 유용 논란
5.2.1. 국내, 종합5.2.2. 국외
5.3. 회계금 공시 내용 관련5.4. 정부 지원 보조금 중복 수혜5.5. 안성 쉼터 영리-사적 이용 및 매매 가격 논란
5.5.1. 고가 매입 논란5.5.2. 부실 운영5.5.3. 헐값 매각 논란(불기소처분)
6. 일부 언론의 오보와 정정보도7. 여러 논란에 대한 윤미향의 입장8. 수사 및 재판
8.1. 검찰 수사8.2. 제1심 서울서부지방법원 판결8.3. 항소심 서울고등법원
8.3.1.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횡령 혐의8.3.2.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조의금 모집 혐의8.3.3. 여성가족부 국고보조금 편취 혐의
8.4. 상고심
9. 반응10. 기타
10.1. 다른 위안부 단체인 나눔의 집 관련 의혹

1. 개요

정의기억연대(약칭 '정의연')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이용해왔다는 취지의 일련의 논란들로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었던 당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윤미향의 행보를 중심으로 불거졌다. 이와 함께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의 행보도 함께 서술되어 있다. 이로 인해 윤미향 및 관계자는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지게 되었다. 2023년 2월 10일의 1심 재판에서는 6개 혐의 중 5개 무죄, 1개 일부 유죄로 벌금 1,500만 원을 선고받았었으나 9월 20일의 2심 재판에서 업무상 횡령, 기부금품법위반, 보조금법위반 등 혐의 등이 유죄로 판결이 뒤집혔고 상고심에서 이를 긍정하였다. 재판지연으로 국회의원 임기는 끝마쳤다.

2. 2020년 이전의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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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의 폭로 이전의 논란들은 위 항목으로.

3. 경과

3.1. 이용수 전 대표의 1차 폭로

2020년 5월 25일 2차 기자회견 당시 발언에 의하면 이용수 전 정대협 공동대표는 최소 3월 말 또는 그 이전부터 전 정의기억연대의 이사장인 윤미향 국회의원 당선인이 기부금을 횡령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가지고 있었고 3월 30일 당시 전화통화를 통해 "한번 만나서 얘기해보자. 아니면 이대로 기자회견까지 가버릴 것이다."라고 따지자 윤미향 측에서 "할 수 있으면 기자회견 해봐라"라고 말하곤 만남을 거절하자 실제로 기자회견을 주최해 폭로를 시작한다.

3.2. 이용수의 1차 기자회견 이후 경과

3.3. 이용수의 2차 기자회견과 이후 경과

{{{#!folding 이용수 여성인권운동가, 2차 기자회견 내용 (전문) [접기 • 펼치기]

제가 두 번째 기자회견을 한다. 누구를 원망하고, 또 잘못했다고 하는 건 제가 처음 기자회견을 할 때도 말했고, (이후에) 너무도 많이 생각지 못한 게 나왔다. 그것(윤미향 전 정대협 대표 관련 의혹)은 검찰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신대는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이다. 하지만 공장에 갔다온 할머니와 더럽고 듣기 싫은 위안부하고는 많이 다르다.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은 공장에서 일하고 했지만, 위안부 할머니는 간 곳이 다 다르다.

잠깐 제가 갔는 데를 말씀드린다. 우리 나이로 하면 16살. 만으로 하면 14살이다. 저는 양력으로 돼 있다. 그때는 성(姓)을 갈지 않으면, 성을 갈아 야스하라 도시코라고 했다. 학교도 일본학교에서 글을 알았다. (일본군에 의해) 끌려가서도, 대만 가미가제 협공대 부대로 끌려가서도, 그 장교가 가타카나로 써줘서 대화를 했다. 이 군인이 하는 이야기도 피해자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 군인이 이름을 지어줬다. 야수하라고 지어주면서 “나도 도시꼬 같은 피해자 그후에 겪으면서 끌려가서 당한 것은 말로는 못한다”고 했다. 제가 쭉 30년동안 살면서, 미국으로 어디로 다니면서 증언을 했다. 그러면 제가 확실하고 바른말하고 이러니까(중략).

제가 1992년도 6월 25일날 신고를 할 적에 윤미향이라는 간사한테 (신고를)했다. 25일날 (신고를)하고, 29일날 모임이 있다고 해 갔다. 어느 교회입디다. 교회에 갔었는데 그날 따라 일본 어느 선생님이 정년 퇴직을 하고 돈을 1000엔인가 준다면서 100만원씩 나눠주더라. 그게 무슨 돈인지 몰랐다. 그때부터 (정대협이) 모금하는 걸 봤다. 왜 모금을 했는지 당시는 몰랐다. 따라다니면서 모금을 하는데.

보니까 농구선수들이 농구를 하는데 기다렸다. 그 농구선수가 돈을 들고 모금을 하더라. 그 돈을 (정대협이) 받아 오더라. 그게 왜 그런 줄은 몰랐지만, 부끄러웠다. 농구가 끝나면 돈 거둔 것을 받아 나왔다.

좀 늦었습니다. 늦게인데. (윤미향에게) “배가 고픈데 좀 맛있는 것 사달라”고 했다. (윤미향은) “돈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래도 그것이 그런가보다고 생각했다. 어딜 가도, 교회를 가도, 돈을 주면 그걸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그래도 모르고 쭉 30년을 (정대협이 하는 모금을)해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무엇인냐. 정신대대책협의회이다. 그러면 (정대협 구성을) 공장에 갔다온 할머니로 해야되는데. 빵으로 말하자면 (겉은) 공장 다녀온 할머니들은 밀가루 반죽해서 만두를 빚어놓고, 그 속은 위안부다. 그저께까지도 몰랐다. 어제 저녁 가만 생각하니, 이건 왜 무엇 때문에,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정대협)이 생명을 걸어놓고 끌려간 위안부를 정신대 할머니랑 합해서 쭉 이용해왔다. 저는 그것(정신대·위안부 모두에 대한 활동)도 다 하는줄 알았다. 어저께 제가 생각하니 이럴수가 있나. 30년동안 앉아가지고 애기하는 게 “사죄해라” “배상해라” 하는데 일본사람이 뭔지 알아야 사죄하고 배상하고. 이거는 뒤집어 섞어가 사죄하든 말든 놔두는 거 아니다.

이것은 왜 무엇 때문에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 모임’(정대협)이 위안부 생명을 걸어놓고 끌려간 이 위안부를 왜 자기들이 정신대 할머니를 이용해서 (정대협 입맛에 맞게)이용해나왔나.

저는 그것(정신대·위안부 모두에 대한 활동)도 당연한 줄 알았다. 어제 생각하니 이럴 수가 있나. 30년동안 앉아서 이야기 한 것이 “사죄해라” “배상해라” 하는데. 일본 사람이 뭔줄 알아야 사죄하고 배상한다. 이건 사죄하지말고,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아니냐.

그 학생들까지 고생을 시켰다. 그 학생들 돼지저금통에서 나온 이 돈(모금액) 받아서. 어제 잠 못잔다. (정대협이) 정신대만 하지, 자기가 무슨 권리로 위안부 피해자를 모금의 대상으로 사용하나. 이것을 생각하니 자다 일어나서 울었다. 왜 내가 이렇게 바보같이 이용당하면서 말도 못했나 생각하니, 그래, 기자회견에는 이것을 반드시 밝혀야겠다.

(정대협이) 사죄배상 오가는 걸 막지 않았느냐. 위안부하고 정신대하고 어떻게 같나. 위안부는 생명을 걸어놓고 끌려가 죽은 사람도 많다. 그런데 이걸(정대협의 정신대·위안부 구분없는 활동) 30년을 해왔다. 일본 사람들이 바보냐. 정신대대책위원회(정대협)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데, (정대협이 위안부 문제에)해당하지도 않는데. 일본이 왜 사죄하고 배상하겠느냐. (일본 측에서) 안 하는 이유를 나는 알았다. 이것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팔아먹었다. 내가 왜 팔려야 합니까.

여러분 생각을 해보세요. (내 가족이) 아들 육형제에 딸 하나다. 우리 부모님은 불면 날아갈까 놓으면 놓칠까, 쌀 하나놓고 불려서, 엄마가 처음에는 감춰서 “수야 이리온나” 부엌에 가서 먹이고 했다. 이런 남의 집 귀한딸, 고명딸을 밤에 그것도 끌고 가서 대만·신주·가미가제부대를 가서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끌고 가서 전기고문과 갖은 칼 가지고 몸을 그려가지고 이렇게 죽여놨다.

이런데 그 군인이 보니까 그 방에 들어가라고 이렇게 머리를 그냥 질질질 끌고 가가지고 광에 큰거 문을 확 열디만은 확 밀었다. 또 이렇게 해가지고 발로, 그것은 돌뿌리보다 더 여문 군홧발이었다. 허리를 발길로 차서 엎어졌는데 너무너무 찢어 지도록 아프고 죽도록 아파서. 잘못한 거 없지만 그런 데도 살려달라고 했다. 이런 데도 머리카락 잡아뜯고 앉혀서 두 팔을, 한쪽팔을 테이블에 걸어놓고 (손목 가리키며) 여기 하나 감고 여기 하나 감고. 지금도 생각난다. 엄마라고 크게 불렀는데 이게 귀에서 나는지 머리에서 나는지, 어린 나이에서부터 지금까지 난다. 이거 왜 그런지 누구한테 말할 수도 없다.

출처 #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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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이용수 여성인권운동가, 2차 기자회견 공개 문건 (전문) [접기 • 펼치기]

저는 위안부였습니다.

그냥 위안부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대만 주둔 가미가제 특공대의 강제 동원 위안부 피해자였습니다.

해방 이후 그 누구에게도 밝히지 못했던 제 삶의 상처를 대중에게 공개했던 것이 1992년 6월 25일입니다. 차마 용기를 내기가 어려워 제 자신이 아니라 친구의 이야기인 것처럼 당시 정대협에 거짓으로 피해를 접수했었습니다.

이후 1992년 6월 29일 수요집회를 시작으로 당시의 참상과 피해, 그리고 인권유린을 고발하고, 우리 인류에게 다시는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다른 피해 할머니들과 함께 문제 해결과 인권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서로 간 존재도 몰랐던 우리 피해 할머니들은 각자 겪은 참상과 인권유린을 이야기하며 부둥켜안고 눈물로 아픔을 함께
했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투쟁이 30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투쟁을 통해 손가락질과 거짓 속에
부끄러웠던 이용수에서 오롯한 내 자신 이용수를 찾았습니다. 먼저 가신 피해자 언니들과 함께 이 문제를 저 이용수가 꼭 >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양국 정부의 무성의와 이리저리 얽힌 국제 관계 속에서 그 결실은 아직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번 기자회견과 입장문을 통해 지금까지 해 온 방식으로는 문제의 해결은 여전히 요원하다는 말씀을 감히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리며, 앞으로 개선해야 할 것들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지만 제 기자회견 이후 전개되고 있는 상황은 제가 기대하거나 예상했었던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30년 동지로 믿었던 이들의 행태라고는 감히 믿을 수 없는 일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저는 당혹감과 배신감, 분노 등 여러 가지 감정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는 두 가지는 꼭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번 기자회견을 준비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일본의 사죄와 배상 및 진상의 공개, 그리고 그 동안 일궈온 투쟁의 성과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고백한 후, 참 힘든 세월을 지내왔습니다만 그럼에도 저는 이 길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부단히 다 잡아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 국민 여러분께 부탁 아닌 부탁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현재 드러난 문제들은 우리 대한민국이 그동안 이뤄온 시민의식에 기반하여 교정되고 수정되어 갈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한 길에 ‘시민 주도 방식’, ‘30년 투쟁의 성과 계승’, ‘과정의 투명성 확보’ 3가지 원칙이 지켜지는 전제하에 향후 제가
생각하는 활동 방향을 몇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이 조속히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피해 사실을 밝히지 못했던 많은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안을 한일 양국 정부와 시민사회가 책임성을 갖고 조속히 같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 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두 번째, 지난번 입장문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한 구체적 교류 방안 및 양국 국민 간 공동행동 등 계획을 만들고 추진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한일 양국을 비롯한 세계 청소년들이 전쟁으로 평화와 인권이 유린됐던 역사를 바탕으로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을 함께 고민하고 체험할 수 있는 평화 인권 교육관 건립을 추진해 나갔으면 합니다.

네 번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전문적인 교육과 연구를 진행하고 실질적인 대안과 행동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구를 새롭게 구성하여 조속히 피해 구제 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섯 번째, 앞서 말씀드린 것들이 소수 명망가나 외부의 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정대협과 정의연이 이뤄온 성과를 바탕으로 우리 국민의 힘으로 새로운 역량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섯 번째,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개방성과 투명성에 기반한 운영 체계를 갖추기 위한 논의가 이뤄지길 바랍니다. 사업의 선정부터 운영 규정, 시민의 참여 방안, 과정의 공유와 결과의 검증까지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도록 깊은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것은, 그동안 이 운동이 시민의 지지와 성원으로 성장해 온 만큼 시민의 목소리를 모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비롯한 활동가, 그리고 국민 여러분 모두가 현재 상황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 지 당혹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투쟁 과정의 문제들이 공론화되길 기대했던 것인데, 여러 가지 문제가 드러나면서 그 과정이 복잡해질 듯 합니다. 제겐 운동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던 여러분이 계십니다. 먼저 한 발을 내디뎌 새로운 길을 열어오신 분들께서 밝은 지혜로 시민과 함께 문제를 풀어낼 수 있도록 도움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는 올해 93세입니다. 제게 남은 시간은 별로 없습니다. 어떤 이익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피해자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력하게 당해야 했던 우리들의 아픔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그리고 미래 우리의 후손들이 가해자이거나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 모두가 걱정하고 있는 코로나19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대한민국 국민은 이미 새로운 길을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그 길을 닦아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느 길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은 함께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한 걸음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를 위한 모두의 한 걸음을 이제 국민이 함께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 드림. #
}}}

4. 추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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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논란 쟁점은 위 항목으로 분리되어 있다.

5. 쟁점

5.1. 후원금 사용처 공개 논란

기부금 중 극히 일부만이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사용되었다는 의혹이 이용수 전 공동 대표의 수요집회 불참 기자회견으로 불거졌다.

5.2. 모금액 유용 논란

5.2.1. 국내, 종합

파일:정의연 영수증.jpg
정의연이 공개한 이용수 전 공동 대표의 수령증 사진

5.2.2. 국외

5.3. 회계금 공시 내용 관련

5.4. 정부 지원 보조금 중복 수혜

정대협과 정의연이 정부 지원 보조금을 중복으로 지급받아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또다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2018년 정의연으로 통합된 정대협은 2019년은 물론이고, 심지어 2020년에도 정의연과는 별도로 1억 원이 넘는 정부 지원 보조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에 대해 고려대 이한상 경영학과 교수는 "사실상 동일한 2개의 비영리 단체가 각각 정부 보조금 등을 받았다면 결과적으로는 중복 수혜가 발생해 다른 단체 몫의 혜택이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여성가족부로부터 지난 2년 간 총 10억원에 달하는 국고보조금을 지원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

5.5. 안성 쉼터 영리-사적 이용 및 매매 가격 논란

정의기억연대의 전신인 정대협이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평화와 치유가 만나는 집' 건물을 매입·매도하는 과정과 실제 쓰임에 논란이 있었다.

별외로 매입을 중개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빚은 이규민 (경기 안성)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이 상임대표를 맡았던 안성 평화의 소녀상 건립 추진 위원회가 방송인 김제동의 특강료 중 일부를 소녀상 모금액에서 사용했다고 한다. ##

5.5.1. 고가 매입 논란


위와 같은 논란과 관련하여 '당선무효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일부 변호사들의 분석이 제기되었다. #

이들은 업무상배임죄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는데, 이 죄가 성립하려면 ①업무상 기부금을 적정하게 사용해야 할 의무를 고의로 어겼다는 점과 ②이 때문에 정대협에 재산상 손해를 끼친 점이 입증돼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입증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①에 대해서는 "일반 시세보다 높게 구입한 것, 이규민 당선인의 소개를 통해 구입한 점, 본래 목적과 달리 쉼터를 워크숍 장소 등으로 쓴 점, 쉼터를 윤 전 대표의 아버지가 7년간 관리한 점 등으로 볼 때 그렇다"고 했다. 또 ②에 대해서는 "정의기억연대 측에 손해가 있었던 것 역시 맞아 보인다"고 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 확인 결과 비슷한 시기, 비슷한 조건의 건물이 2억 원 정도에 거래된 점, 정의연이 주장한 대로 건축비를 최대로 잡아도 여전히 3억 원 정도가 더 비싼 점 등을 고려한 분석. 후술하겠지만 업무상배임 혐의로 기소되었다. 다만, 제1심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었다.

5.5.2. 부실 운영

5.5.3. 헐값 매각 논란(불기소처분)

6. 일부 언론의 오보와 정정보도

...“‘정의연 오보 사태’는 단순한 검찰 발 받아쓰기 보도 문제로만 볼 수 없다. 정치권력과의 결탁, 검찰 권력과의 유착, 기자의 무지와 취사선택, 기능하지 못한 데스크, 저널리즘 본령에 대한 오해, 단독 보도 남발, 무분별한 받아쓰기 등 한국 언론의 낡은 인식과 고질적 관행이 만든 사건”이라며 “사법부는 윤 의원의 유무죄를 판단할 뿐 정의연 보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 주지 않는다. 언론의 자성이 언론 스스로의 신뢰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당부했다.
...“기사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서 뭐든 하는, 언론 보도 준칙을 잊은 하이에나 떼 같았다. 취재를 했거나 무슨 단서가 있어 보도를 하는 게 아니라 이슈가 되어 지금 사람들이 관심이 있으니 일단 쓰고 보자는 식이었다.

그 과정을 “일사불란하게 짜인 각본의 수순”으로 기억한 강 국장은 “‘정의연 오보 사태’를 보면 단독, 속보 경쟁을 위해 불충분한 1~2명의 취재원 수, 부실한 취재 내용, 심지어는 한 명이 본인의 생각만으로 주장하는 내용들을 그대로 기사화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언중위 제소 등 대응에도 몇백, 몇천 건의 보도가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상황에서 피해구제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강경란 정의연 연대운동국장

언론이 '단독' 타이틀을 걸고 보도했던 기사들 중 일부가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정정보도 처분을 받았다. 언론의 감시와 문제제기는 중요하지만 사실확인에 대한 언론의 책임과 노력 역시 소홀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뉴있저] 정의연 관련 보도, 무더기 오보 정정..."허위 보도로 명예 훼손"

7. 여러 논란에 대한 윤미향의 입장


윤미향 당시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은 2020년 5월 29일 오후에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folding 윤미향 당선인 기자회견 발언 전문 [접기 • 펼치기]

안녕하세요.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윤미향입니다.

지금까지 저에게 제기된 문제에 대해 국민들에게 설명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금부터 입장문을 발표하겠습니다.

지난 26일 또 한 분의 피해자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먼저 30년의 수요시위 버팀목으로 병마와 시달리면서도 전 세계를 돌며 참혹했던 피해를 증언했지만 가해국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도 못 받고 돌아가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영령에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정대협의 30년은 피해자 할머니들과 국민 여러분, 세계 시민이 함께 하셨기에 가능했습니다. 믿고 맡겨주신 국민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깊은 상처와 심려를 끼친 점, 지난 7일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이후 몰아치는 질문과 의혹제기 때로는 악의적 왜곡에 대해 더 빨리 사실관계를 설명드리지 못한 점도 죄송합니다.

피해자를 넘어 인권운동가로 정대협 운동의 상징이 되신 피해 할머니의 통렬한 비판에서 비롯되었기에 더욱 힘들었습니다.

30년 평탄치 않았던 정대협 운동 과정에서 더 섬세하게 할머니들과 공감하지 못한 점. 한시라도 더 빨리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피해자분들의 명예를 회복해드려야겠다는 조급함으로 매 순간 성찰하고 혁신하지 못한 저를 돌아보고 또 점검하고 있습니다.

30년의 수많은 사실을 재정리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저의 입장표명을 기다리게 해 드려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지금부터는 국민 여러분들께서 궁금해 하시는 사항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미 정의연 등에서 사실관계를 소명하여 알고 계시는 사항은 가급적 중복을 피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다 소명되지 않은 내용은 제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국민들께 충분하다고 판단하실 때까지 한 점 의혹 없이 밝혀나가겠습니다.

다만 검찰조사를 앞두고 있어 세세한 내용을 모두 말씀드릴 수 없음을 미리 양해 드립니다.

먼저 모금한 돈을 할머니한테 안 쓴다, 전달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대협은 그동안 전체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을 크게 세 차례 진행했습니다.

첫 번째는 1992년 운동 시작 단계에서 피해자들의 생활이 너무나 힘들어 보여 국민모금을 한 차례 진행을 했습니다. 그 모금액은 당시 신고한 피해자들에게 균등하게 250만 원씩 지원해 드렸습니다.

두 번째는 일본 정부가 법적 대상이 아닌 민간 모금을 통한 아시아여성평화국민기금을 조성,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한다고 할 때 할머니들과 함께 또 국민들과 함께 적극 반대하였고 정대협은 시민모금을 진행했습니다. 시민모금에 한국정부가 예산을 더하여 아시아여성국민기금에 상응하는 지원금 약 4300만 원을 피해자 개인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세 번째, 2015 한일합의를 무효화하고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국민 모금을 진행했고 10억 엔을 거부한 할머니들에게 같은 금액 1억 원씩을 전달하였습니다.

정의연은 이미 5월 8일에 2017년 국민모금한 1억 원을 전달한 영수증과 1992년 당시 모금액을 전달한 영수증을 공개한 바 있습니다.

이용수 할머니의 여러 지적과 고견을 깊게 새기는 결과 별개의 문제로 직접 피해자들에게 현금 지원을 목적으로 모금한 돈을 전달한 적이 없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정대협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 정부에게 1. 역사적 사실 인정, 2. 진상규명, 3.공식 사죄, 4. 법적 배상, 5. 역사교과서에 기록하고 교육, 6.추모비와 사료관 건립, 7.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정대협은 생존자 복지활동을 포함하여 문제해결을 위한 다방면의 활동을 공개적으로 해 왔으며 이런 활동 모두가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며 활동해 왔습니다.

물론 지금도 매월 피해자 방문, 전화, 생활에 필요한 지원 등을 하고 있고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지역에도 함께 지원하는 조직들이 있습니다.

한편 할머니들에 대한 생활비 지원 등 복지사업의 경우 이미 30여 년 전부터 정대협 주도의 입법운동으로 1993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지원법이 제정되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수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왜 성금을 전부 할머니에게 지원하지 않느냐는 일부의 비난은 그간의 성과와 정대협, 정의연 운동의 지향을 살피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30년간의 운동사를 폭넓게 헤아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성 힐링센터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매입과정,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사업평가, 매각 배경과 과정 등은 정의연에서 이미 상세히 발표하였고 언론에 보도된 바 있습니다.

시간절약을 위해 왜 4월 23일에 손해를 보고 매각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완설명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안성 힐링센터 매입과 관련하여 일부 언론은 정대협이 안성시 금강면 상전리 주택을 시세보다 4억 이상 비싸게 매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안성시 금강면 상주리 주택은 실평수 60평의 신축 건물이었습니다. 당시 주택소유자는 건축비가 평당 600만 원이 넘는 스틸하우스공법으로 지어졌고 토목 및 건축공사에 총 7억 7000만 원이 들었다면서 9억에 매물로 내놓았던 것입니다.

당시 매도 희망가를 최대한 내려보기 위해 노력하였고 매도인은 힐링센터의 설립 취지를 듣고 좋은 일 한다면서 최종적으로 매매가격을 7억 5000만 원으로 조정하는 데 동의의 매매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이규민 당선인의 소개로 힐링센터를 높은 가격에 매입하여 차액을 횡령하였다는 의혹을 제기하나 이 또한 명백히 사실이 아닙니다.

2013년 6월 당시 정의연 관계자들은 힐링센터 매입을 위해 경기도 인근을 둘러보던 중 소식을 들은 당시 안성신문 대표였던 이규민 당선인이 지인을 통해 부동산을 소개하여 준다고 하여 안성시 금강면 상중리 주택을 답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해당 주택이 신축 건물인 점, 조경이나 건물구조가 힐링센터 목적과 부합하였던 점. 교통이 편리하였던 점을 평가해 매입을 결정했습니다.

거래가 성사되고 나서 정대협이 이규민 당선인에게 중개수수료 등 명목으로 금품을 지급한 일 또한 전혀 없었습니다.

그후 2015년 9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안성 힐링 센터에 대한 중간평가를 하였고 그해 12월 30일에는 공문을 통해 정대협의 사업 중단 및 사업비 잔액 반환, 힐링센터 매각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래서 2016년부터 정의연은 안성 힐링 센터는 시중에 매물로 내놓게 된 것입니다. 매각 당시 주택의 감가상각, 오랫동안 매수 희망자가 없어 시간이 흐르면서 건물가치가 하락한 점. 또 주변 부동산 가격 변화 등 형성된 시세에 따라 매매가격이 결정되었고 그 결과 4억 2000만 원에 매도하였습니다.

5년째 매수 희망자가 없어 사업비를 반환하지 못한 상태라 어렵게 성사된 계약 자체를 더는 미룰 수가 없었습니다.

설명드린 바와 같이 안성 힐링센터는 시세와 달리 헐값에 매각된 것이 아니라 당시 형성된 시세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오랜 시간 매각이 지연되는 점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기부금에 손해가 발생한 점에 대하여 저도 너무나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힐링센터 매입 및 매각 과정에서 제가 어떠한 부당한 이득을 취하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안성 힐링센터 거래 후 저희 부부와 이규민 당선인이 베트남 라비기행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제의하고 있습니다.

안성 힐링센터 거래와 나비기행은 전혀 관련이 없으며 참가자 전원이 개인 경비를 부당하여 진행한 것입니다.

2015 한일합의 내용을 제가 사전에 알고 있었으면서도 할머니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차 밝힌 바처럼 이는 명백히 사실이 아닙니다. 이런 사실은 외교부의 입장발표를 통해서도 확인되었습니다.

지난 5월 10일 외교부 대변인은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합의 검토 결과 보고서에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다. 피해자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는 구절이 있다고 브리핑 한 바 있습니다.

또한 당시 2015년 한일 정부간 합의 이후 제가 할머니들에 일본 정부가 주는 위로금 수령을 막았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이 또한 정의연이 수차례 충실히 해명한 것처럼 모든 할머니들에게 수령 의사를 확인하였으며 온전히 각자의 뜻에 따라 수령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였습니다.

당시 저는 할머니들이 위로금을 수령한다고 해서 그 할머니들을 2015 한일합의에 동조한 것으로 매도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이 문제 근본적 책임은 양국 정부에 있음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피해 할머니들을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밀실에서 합의를 강행한 외교 당국자들이 잘못된 합의의 책임을 정대협과 저에게 전가하는 점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제 남편의 신문사가 정의연의 일감을 수주하여 부당한 이익을 챙겼다는 의혹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정의연은 1년에 1회 창립월인 11월에 그해 활동을 보고하고 향후 주요 사업방안을 제시하는 내용의 소식지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2019년 정의연은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수원시민신문을 포함하여 4개업체 견적을 확인하였고 당시 최저금액을 제시한 수원시민시민에 소식지 디자인과 편집, 인쇄를 맡긴 것입니다.

소식지 제작 등 과정에서 남편이나 제가 어떠한 이득을 취한 일은 전혀 없습니다.

제가 상대 탈북 종업원의 월북을 권유하거나 동조하였다는 의혹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피해자 할머니들께서는 성폭력 피해자, 인권운동 관련 당사자, 활동가를 초청하여 식사하고 교류회를 통해 밥상공동체를 형성하는 만남을 종종 가져왔습니다.

마리몬드 직원들과 자장면데이, 평화나비들과의 모임, 세계무력분쟁지역 생존자들을 초청하여 여성인권운동 선배로서 할머니들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활동 등이 같은 취지의 교류모임이었습니다.

2018년 11월 남편과 장경욱 변호사는 저와 정대협 측에 탈북 종업원들이 할머니들을 만나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힘이 될 것이라는 내용으로 만남을 제안하였고 이를 길원옥 할머니께 전달하였더니 흔쾌히 수락하였습니다.

2018년 11월 17일 마포쉼터 평화의 우리집에 류경식당 탈북종업원들을 초대해 탈북민들이 직접 지은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함께하고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평향이 고향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길원옥 할머니와 탈북 종업원들은 탈북 종업원들이 남한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학교 공부가 끝난 후 밤늦도록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등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입니다.

저와 정대협이 탈북 종업원들에게 금전을 지원했다, 월북을 권유했다 하는 등의 일부 언론보도는 모두 사실이 아닌 허위임을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분명히 하게 밝힙니다.

다음으로 제가 저의 개인명의 계좌를 이용해 후원금을 모아 개인적 이익을 위해 사용했다는 의혹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대협 활동을 하면서 제 개인명의 계좌 4개로 모금이 이루어진 사업은 총 9건입니다.

전체 할머니를 위한 것이 아닐 경우 대표인 제 개인 계좌로 모금을 했습니다. 특별한 경우라서 이제 보니 제 개인 명의 계좌를 사용한 것이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다만 고 김복동 할머니 장례비 모금의 경우 법적 지위가 없는 시민장례위원회가 장례를 주관하기에 정대협 명의계좌를 활용하는 게 적절치 않았고 관행적으로 상주였던 개인명의 계좌가 많이 활용되어 제 명의로 통장을 개설했습니다.

최초 모금은 2012년부터 이루어진 전시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나비기금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길원옥 할머니, 김복동 할머니 미국 유럽 캠페인을 위한 모금, 베트남 빙빙성 모금, 베트남 비노아 학살 50주년 위령제 지원을 위한 모금, 안점순, 김복동 할머니 장례비 모금 등이 있었습니다.

일시적인 후원금이나 장례비를 모금하기 위해 단체 대표자 개인 명예 계좌가 활용되는 경우가 있었고 저도 크게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금액에만 문제가 없으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행동한 점은 실로 죄송합니다.

사업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고 남은 돈을 정대협 계좌로 이체하는 방식으로 나름대로 정산을 하여 사용하여 왔지만 최근 계좌이체 내역을 일일이 다시 보니 허술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스스로가 부끄러워집니다. 하지만 제 개인계좌를 통하여 모금하였다고 해서 계좌에 들어온 돈을 개인적으로 쓴 건 아닙니다.

최근 문제제기 이후 모금계좌로 이용된 4개의 계좌의 거래내역을 하나하나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 계좌내역상 9건의 모금을 통해 약 2억 8000만 원이 모였고 모금목적에 맞게 사용된 돈은 약 2억 3000만 원이며 나머지 약 5000만 원은 정대협 사업에 사용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계좌이체를 하면서 적요란에 이체 이유를 거의 모두 부기해 놓았고 각 글의 내용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그에 따라 총수입과 총지출을 비교한 결과 파악된 상황입니다.

2014년부터 6년이 넘는 기간동안 수많은 거래내역이 있기에 세부적인 내역을 이 자리에서 일일이 말씀드릴 수는 없겠지만 고발된 사실 중 하나이므로 구체적으로 조사과정에서 자세히 소명해 가겠습니다.

현재 제가 살고 있는 수원 권성구 금곡 LG아파트의 경매매입을 포함하여 가족들이 현금으로 주택 5채를 구매했는데 제가 정대협의 자금을 횡령해 사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런 일은 단연코 없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저와 남편 계좌의 과거 현금 흐름을 다시 한 번 세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먼저 저희 부부의 주택 관련입니다. 3채는 이미 매각한 제 명의의 명진아트빌라, 한국아파트와 현재 살고 있는 LG금곡아파트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1993년 저와 남편은 돈을 합쳐 전세자금 1500만 원으로 신혼살림을 시작했습니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친정부모님이 사시던 교회 사택에서 무상으로 거주하면서 돈을 모았고 그 사이 1995년에 명진아트빌라를 4500만 원에 취득했습니다.

1995년 저와 제 남편의 저축과 제 친정 가족들의 도움으로 한국아파트를 7900만 원에 샀습니다. 명진아트빌라는 2002년 3950만 원에 매각했습니다.

2012년 지금의 수원 금곡 LG아파트를 경매로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남편이 암수술을 받은 다음이라 조금 더 편한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했습니다.

칠보산이 가까운 지금 아파트단지를 가보고 마음에 들어했지만 시세가 너무 비쌌습니다. 남편은 세대수가 많은 단지라서 경매 물건이 있을 수 있다면서 경매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아파트를 경매로 취득하게 된 것입니다. 취득가액은 2억 2600만 원이었습니다. 한 차례 유찰된 후 2회차 경매에서 저희만 단독으로 입찰하였습니다.

저는 경매 과정을 모르고 남편이 진행했습니다. 자금은 제가 가지고 있던 예금, 남편 돈, 가족들로부터 빌린 돈으로 해결했습니다.

저의 개인계좌와 정대협 계좌가 혼용된 시점은 2014년 이후의 일입니다. 그러나 현재 아파트 경매취득은 2012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후원금을 유용했다는 주장은 전혀 맞지 않습니다. 기존에 갖고 있던 한국아파트는 2013년에 매각되었는데 14년 동안 시세가 1억 1000만 원이 올라 매각금액은 1억 8950만 원이었습니다.

이 돈으로 빌린 돈을 변제하고 일부 남은 돈은 저축하였습니다. 남편 명의의 함양 소재 빌라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시누이 명의의 농가주택에 사시던 시부모님은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2017년에 1억 1000만 원에 팔고 시어머니가 혼자 살기에 편한 함양 시내 빌라를 남편 명의로 8500만 원에 매입했습니다.

잔액은 배우자가 보유하다 2018년 4월 19일에 저의 계좌로 입금했습니다. 저의 친정아버지 소유 아파트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약 22년간 교회 사찰 집사로 근무하면서 교회 사택에 사셨습니다. 주택비용이 안 드는 만큼 더욱 알뜰히 저축하셨고 22년 근무한 퇴직금을 한꺼번에 받아 현재 사시는 아파트를 4700만 원에 매입했습니다.

저와 저의 가족의 주택매입은 어떤 경우에도 정대협 활동과 무관하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딸 미국 유학에 사용된 돈의 출처가 정대협이고 제가 정대협 돈을 횡령하여 딸 유학자금을 댔다는 의혹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딸 미국 유학에 소요된 자금은 거의 대부분 남편의 형사보상금 및 손해배상금에서 충당되었습니다. 그 외 부족한 부분은 제 돈과 가족들 돈으로 충당하였습니다.

참고로 남편과 저의 가족들이 받은 형사보상금 및 손해배상금은 총 약 2억 4000만 원입니다. 저는 급여를 받으면 저축하는 오랜 습관이 있습니다.

주택마련과 딸의 학비 그리고 조금이라도 안정된 삶을 꿈꾸기 위한 제 나름대로의 최소한의 생활방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의연, 정대협 활동을 통해 강연, 원고, 책 인쇄 등 특별수입은 기부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쏟아진 의혹에 대해 부족하나마 진솔하게 말씀드렸습니다. 보다 더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겠지만 현재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양해바랍니다.

다시 한 번 국민들과 피해 할머니들의 기대와 응원에 부합하지 못하고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30년 정대협 운동의 역사에 부끄럽지 않도록 철저히 소명하겠습니다.

잘못이 있다면 상응하는 책임을 지겠습니다. 다만 피해자와 국민들, 정대협, 정의연이 함께 이룬 성과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폄훼와 왜곡은 멈추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열일곱 분뿐입니다.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진실규명과 일본 정부의 책임 이행, 재발방지를 위해 국민 여러분과 해외 각지에서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신 여러분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는 제 의정활동에 얽힌 실타래를 풀어가는 노력과 함께 김복동 할머니와 김학순 할머니 등 여성인권운동가로 평화운동가로 나서셨던 할머니들의 그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지난 30여 년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고 싶습니다.

다시 새어나오는 2015 한일합의 위안부 합의가 정당했다는 주장을 접하며 다시는 우리 역사에 그런 굴욕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전시성폭력 재발방지의 길도 모색하고 싶습니다. 부족한 점은 검찰조사와 추가 설명을 통해 한 점 의혹없이 소명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납득하시까지 소명하고 책임있게 일하겠습니다.

끝까지 경청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하고 앞으로 조사에 성실히 임할 것을 말씀드리면서 제 입장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당시 기자회견 내용 전문-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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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미숙했던 점이 있었던 것을 인정하며 검찰 수사에도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2012년 이용수 할머니의 비례대표 출마를 만류한 녹취에 대해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밝혔으며, 검찰 조사를 받겠다는 점에서 사실상 국회의원직 사퇴를 거부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당사자인 이용수 할머니는 회견을 보기는 했지만 큰 관심은 보이지 않았다고 하며, 이를 두고 소명이 아니라 반박이라며 검찰 조사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8. 수사 및 재판

<rowcolor=#fff> 제1심 항소심 상고심
2023년 2월 10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


벌금 1500만원
2023년 9월 20일
서울고법 형사1-3부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
2024년 11월 14일
대법원 2부


상고기각

8.1. 검찰 수사

8.2. 제1심 서울서부지방법원 판결


검찰 수사 결과 윤미향 의원은 다음의 혐의를 받는다. 서울서부지검의 수사결과 보도자료 PDF
1. 윤미향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정의연의 전신) 직원 2명과 공모해 2014년 1월~2020년 4월까지 여성가족부의 '위안부 피해자 치료사업'과 '위안부 피해자 보호시설 운영비 지원사업' 등 7개 사업에 거짓으로 인건비 보조금을 신청해 6,500여만 원을 부정 수령한 혐의

2. 윤미향이 정대협 상임이사이자 정의연 이사(45세)와 함께 정대협이 운영하는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이 법률상 박물관 등록 요건인 학예사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학예사가 근무한다고 허위 신청해 등록하는 수법으로 2013년부터 2020년까지 문화체육관광부 10개 사업, 서울시 사업 8개에서 총 3억여 원의 보조금을 부정 수령 및 사기 혐의

3. 윤미향과 위 정의연 이사가 관할 관청 등록 없이 단체계좌로 2015년~2019년 정대협 및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과 관련해 약 27억 원 모집, 2016년~2020년 정의연과 관련해 약 13억 원 모집, 2019년~2020년 '김복동의 희망' 관련 1억 원 모집 등 총 41억 원의 기부금품을 모집한 혐의

4. 윤미향과 위 정의연 이사가 2015년 해외 전시 성폭력 피해자 지원 '나비기금' 약 4,000만 원, 2019년 김복동 할머니 장례비 약 1억 3,000만 원 등을 관할관청에 등록 안 된 윤미향의 개인 계좌로 모금한 혐의(기부금품법 위반)

5. 윤미향이 개인 계좌로 모금하거나 정대협 경상비 등 법인 계좌에서 이체받아 2011년~2020년 임의로 1억여원에 달하는 돈을 쓴 혐의

-2012년 3월~2020년 5월 개인 계좌 5개로 위안부 피해자의 해외여행 경비, 조의금, 나비기금 등 명목으로 합계 3억 3,000여만 원을 모금해 그중 5,700여만 원을 개인 용도로 사용
-2011년 1월~2018년 5월 정대협 법인계좌에서 지출 근거나 증빙 없이 개인 계좌로 돈을 이체해 사용하거나, 개인지출 영수증을 업무 관련 지출 증빙 자료로 제출해 보전받는 등 2000여만 원을 개인 용도로 사용
-2018년 10월~2020년 3월 정대협 마포쉼터 운영 관련 비용을 보관하고 있던 직원 명의 계좌에서 2,100여만 원을 개인 계좌로 이체받아 사용

6. 윤미향이 2020년 6월 7일 숨진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 손영미 소장과 공모해 2017년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의 심신장애를 이용해 피해자가 받은 여성인권상 상금 1억 원 중 5,000만 원을 정의연에 기부하게 하는 등 2020년 1월까지 정의연 등에 총 9번에 걸쳐 7,900여만 원을 기부·증여하게 한 준사기 혐의

7. 윤미향이 안성쉼터를 거래 시세 확인 없이 시세보다 비싼 7억 5000만 원에 매수해 정대협에 손해를 끼친 업무상 배임 혐의

8. 윤미향이 관할관청에 신고 없이 2014년 1월~2019년 7월 안성쉼터를 시민단체 등에 50여 회 대여하고 합계 900여만 원을 숙박비로 지급받아 미신고숙박업을 운영해 공중위생관리법을 위반한 혐의
이에 윤미향 의원이 같은 날 검찰의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하는 입장문을 냈다. 2020년 9월 14일 네이버-중앙일보 윤미향 "모금액 사적으로 안썼다" 檢기소에 조목조목 반박 [입장문 전문]

그런데 2020년 11월 10일 윤미향 재판을 담당하는 서울서부지방법원 이대연[21] 부장판사가 회식을 하던 중 쓰러져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에 대해 동료 판사는 "서부지법에 온 뒤 어려운 형사사건을 주로 맡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으로 안다"며 "형사 사건에서 합리적 판결을 내리는 판사"라고 설명했다. 담당 판사의 사망에 따라 재판은 연기되고, 후임 재판장이 지정될 것으로 보인다. # # # 후일 이대연 판사는 법원의 날 표창을 받았다. 그의 배우자는 서울남부보훈지청장을 상대로 국가유공자 소송을 냈으나 1심에서 패소했다. 서울행정법원 2022구합52249

2023년 1월 6일, 검찰은 징역 5년 형을 구형했다. # 2월 10일 선고될 것이라고 한다.
사기, 보조금법위반, 지방재정법위반[22] 무죄
기부금품의모집및사용에관한법률위반 무죄
준사기 무죄
업무상배임 무죄
공중위생관리법 위반 무죄
횡령 일부 유죄
판결문 전문은 서울서부지방법원 2023. 2. 10. 선고 2020고합204 판결문 전문을 참고할 것.

윤미향은 1심 판결에서 벌금 1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로써 의원직 상실을 면하게 되었다.[23]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 및 기부금품법 위반, 사기, 업무상 횡령 등 8개 혐의로 기소됐으나, 업무상 횡령 혐의에 대해서만 일부 유죄가 인정되고, 나머지는 모두 무죄를 선고받은 것이다.

이는 모금 방법에 문제가 없었으며, 횡령한 금액보다 많은 금액을 위안부 단체에 기부한 점이 참작된 것으로 보인다. 같이 기소된 김 모 이사도 무죄를 받았다. # #
가) 피고인 A[24]은 위와 같이 개인 계좌를 이용하여 C단체 활동과 관련한 모금 등을 하였다. 이중 (계좌번호 1 생략) 계좌, (계좌번호 2 생략) 계좌의 경우에는 수입ㆍ지출에 대하여 장부ㆍ회계처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지출과정에서 증빙자료를 정리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누가 얼마나 기부하였는지, 총 기부금액은 얼마인지 등은 피고인 A 이외에는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피고인 A이 각 모금의 목적에 따라 이체하거나 사용한 돈을 제외한 나머지 돈에 대해서는 어떤 명목으로 사용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계좌번호 3 생략) 계좌의 경우에는 피고인 A의 개인 돈과 섞여 사용되었고, 이로 인해 공적 용도의 지출과 사적 용도의 지출을 구별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처럼 피고인 A은 개인 계좌를 통해 C단체 활동 관련 자금을 관리하면서 어느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았고, 오로지 자신만이 그 사용처를 정확히 알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였다. 이러한 개인 계좌 관리 방식은 그 자체로 횡령의 고의와 불법영득의사를 외부적으로 발현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으므로 피고인 A이 위 계좌에 있는 C단체 자금을 사용하였는데 그 사용처에 관한 납득할 만한 설명과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고의와 불법영득의사로 C단체 돈을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추단[25]할 수 있다.
유죄판결이 난 업무상황령의 경우, 법원은 윤미향이 개인 계좌에 보관한 1,700여만원을 임의로 57회에 걸쳐 사용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특히 윤미향은 계좌 하나에 개인 돈과 후원금을 함께 넣어 섞어 사용하기도 했다. 반면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는 검사 제출 증거만으로는 업무상횡령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26]이에 따라 고의성이 없다고 판결된 금액을 제외한 '1,700여만원의 횡령만 인정'되어 '일부 유죄'가 되었다. 단체의 계좌가 아닌 개인계좌를 사용한 상황이기 때문에 횡령하지 않았다는 입증책임이 윤미향에게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판결문을 보면 판사가 표로 정리하여 건 별로 유무죄를 세세히 다 판단하였다.

할머니를 기망한 준사기의 점에서는 할머니의 치매 상태가 쟁점이 되었다.
사실조회회신에 따르면, K-MMSE 검사는 치매 진단을 위해 고안된 검사가 아니고, 주로 치매약을 처방할 때 건강보험이 적용되기 위해 필요하며, 반복 검사로 인한 학습효과 등으로 인해 오류가 발생하는 등의 이유로 의사들은 위 점수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CDR의 경우 알츠하이머 치매가 아닌 다른 치매에는 예민하게 평가되지 않는 단점이 있고, CDR, GDS는 각 해당 검사를 실시하는 의사나 임상심리사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같은 환자를 다르게 판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P 할머니의 경우 2017. 7. 10.부터 K-MMSE 점수가 19점 이하로 나오기는 하나, 위 점수가 19점 이하이면 중증 치매로 볼 수 있다는 근거가 확인되지 않고, 오히려 CDR, GDS의 경우에는 각 최고점이 중등도 치매(CDR 2점, GDS 5점)에 해당하는 점수에 불과하다. 의무기록사본, C단체 대표자회의록 등에서 P 할머니의 치매 증상을 확인할 수 있긴 하나, 증상이 날짜별로 나열되어 있을 뿐 그 내용만으로 치매 증상이 얼마나 더 심각해졌는지, 어느 지점부터 중증 단계에 접어든 것인지 쉽게 판단하기가 어렵다. 또한 그 내용을 보더라도 치매 증상이 기재되어 있을 뿐, P 할머니의 재산 처분행위와 관련한 의사결정능력 유무를 알 수 있는 내용, 특히 별지 범죄일람표 (7) 기재 각 기부행위 당시의 상태를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다.
재판부는 의료적 기법을 동원해 파악한 할머니의 치매 상태 정보만으로, 그 (공소사실로 지목된 범죄행위) 당시 처분할 사리분별능력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또 그 당시 할머니가 여러 기관과 소통하고 다른 할머니와 의사소통했다는 증거도 검사 측에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공중위생관리법위반의 점은 윤미향이 쉼터를 숙박업소처럼 사용해 돈을 받고 운영했다는 의혹이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관련 다큐멘터리 촬영자, 시민단체를 위한 것이었으므로 영리의 목적으로 숙박업소로서 계속적ㆍ반복적으로 이용한 것으로 보기는 부족하다고 보았다.

이에 대해 검찰 측은 균형을 잃은 판결이라고 반발했다. #

8.3. 항소심 서울고등법원

사기, 보조금법위반[A] 일부유죄
사기, 지방재정법위반[A] 무죄
기부금품의모집및사용에관한법률위반 일부유죄
준사기 무죄
업무상배임 무죄
공중위생관리법 위반 무죄
업무상횡령 일부 유죄

윤미향은 일부 유죄 부분도 모두 무죄를 받아내겠다며 항소의 뜻을 밝혔으며, 검찰 측에서도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하여, 항소심이 진행되었다. 이후 검찰은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윤미향 "사익 취한 적 없어…국회의원 대가 너무 커" 오열

이후 동년 9월 20일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마용주, 한창훈, 김우진 부장판사)는 업무상 횡령 및 기부금품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윤 의원에게 벌금 1500만 원을 선고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2023노719). 형이 확정되면 윤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다.

판결문에서 판사는 업무상횡령, 기부금품법위반, 보조금법위반 등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또한 횡령 가액이 7,895만 원으로 늘어났다. 반면, 준사기의 점, 업무상배임의 점, 공중위상관리법위반의 점은 무죄 판결을 유지했다. 법률신문

이후 윤미향은 유죄가 선고된 부분에 대해 상고의 뜻을 밝혔으며, 검찰 측에서도 무죄가 선고된 부분에 대하여 상고했다.

8.3.1.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횡령 혐의

재판부는 후원금 횡령 액수를 1심 1,718만원보다 대폭 늘어난 7,958만원으로 인정했다. 참고로 검찰 측이 주장한 액수는 1억 35만원이다. 약 79%가 인정된 것.

재판부는 "위안부 지원 등의 모집금을 철저히 관리했어야 했음에도 기대를 저버린 채 횡령해 지원하고 응원하는 시민들에게 피해를 입혔고 직접적인 변상이나 회복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다만 30년 동안 인적·물적 기반이 열악한 상황에서 활동했고 여러 단체와 위안부 가족들이 선처를 호소했던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검찰이 기소한 윤미향의 혐의는 가장 오래된 것이 2011년[29] 그리고 어지간한 혐의들은 공소제기일 기준 5년, 7년 이내의 것들이다. 또 은행이나 카드회사 등 금융기관들은 최소 10년 이상 이체와 결제내역을 보존한다. 윤미향이 기소된 것이 2020년이므로 2011년부터의 기록은 모두 보존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결제기록에 적혀 있는 금액이 정당하게 사용되었는지의 여부를 윤미향 측이 소명(疎明)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된다. 쉽게 말해 법관으로 하여금 피고인의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추측'이 들게 한다면 소명에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본 사건의 경우, 윤미향이 공식적인 법인계좌 대신 개인계좌를 사용했기 때문에 영수증을 일일이 정리하고 이게 횡령이 아니라 정당하게 썼다는 내역을 일일히 다 입증을 해야 유죄를 피할 수 있다. 1심에서는 이것이 성공해 대부분 정당한 목적으로 인정이 되었으나[30] 항소심에서는 윤미향 측의 입증 정도로는 횡령이 아니라는 걸 완벽한 수준으로 증명하지 못 한다고 판단해서 상당부분 유죄선고를 받았다. 애초에 개인(대표자, 대표이사)와 법인은 명백히 다른 법적 주체이므로, 양 주체의 재산을 혼합해 두는 것[31] 자체가 문제의 소지가 크다. 기업범죄 유형 중에서 은행원이 은행 돈을 횡령하는 유형 보다는 회장님이 회삿돈을 유용한 사안에 빗댈 수 있다.

덧붙여 판결문을 세세히 읽어보면 수원에서 긁은 것을 가지고 서울에서 일어난 회의용이라고 하던가, 미국 면세점에서 카드를 긁고 선물용이라고 하면서 특정인을 거론하지 못해 유죄로 판결된 사안, 어떻게 썼는지 윤미향이 도저히 소명을 하지 못해서 사적 유용을 자백한 사안도 있다. 물론 제대로 소명을 한 부분은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무죄 판단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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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조의금 모집 혐의

서울고등법원은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 조의금 명목으로 윤 의원 개인 계좌로 1억2천967만원을 모금한 혐의도 유죄로 인정되었다.

판결문을 입수하지 못한 일부 언론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이 부분 죄책이 횡령죄배임죄라고 오해하는 듯 한데, 공소장형의 양정에서 문제된 죄책은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제16조 제1항 제1호, 제4조 제1항에 따른 "무등록 기부금품 모집의 점"이었다. 다만, 기부금 모금행위에 해당하는지 사회상규상 용인되는 조의금 모금이었는지를 두고 검사 측은 '조의금이 아닌 정의기억연대 자체 사업을 위한 기부금'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윤미향은 관할관청에 등록하지 않고 개인계좌로 2019년 김복동 할머니의 장례비 명목으로 기부금 약 1억 3000만 원을 모아들였고, 항소심 판결문에 따르면 장례위원회는 모인 돈 중 106,500,000원을 시민단체 후원, 시민단체 활동가 자녀들에 대한 장학금 수여, 'M'·이 사건 박물관·L단체 후원 등의 용도로 사용하고, 24,048,340원은 장례식 이후 다이어리 제작·삼우제 준비·주유비·점심 식대 등의 용도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제1심에서는 김복동 할머니가 생전에 정당행위로 위법성을 조각했지만, 항소심에서는 위와 같은 검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모집된 금전의 성격을 통상적인 조의금이 아닌 기부금으로 보았다. 이에 무등록 기부금 모집행위가 인정되어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제16조 제1항 제1호, 제4조 제1항에 따른 죄책 부분이 유죄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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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3. 여성가족부 국고보조금 편취 혐의

서울고등법원은 인건비를 허위로 계산해 여성가족부에서 6천520만원의 국고보조금을 편취한 혐의도 1심과 달리 유죄로 인정했다. 윤미향 옹호자들은 검찰이 무리해서 기소를 했다고 주장하나, 이 사안 역시 검찰이 주장한 액수가 전부 인정되었다.

윤미향정의연 직원들과 공모하여,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여성가족부의 '위안부 피해자 치료사업', '위안부 피해자 보호시설 운영비 지원 사업'과 관련하여, 사실은 인건비 보조금을 받아도 인건비가 아닌 일반 운영비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할 것임에도 거짓으로 인건비 보조금 신청을 하여 총 7개 사업 합계 6,520만 원을 지급받는 방식으로 국고보조금을 편취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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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상고심

전심재판에 관여한 서경환 대법관이 있는 1부로 배당받았다. 이는 형사소송법 제17조에 따라 잘못된 배당으로, 정정되었다. 서경환이 2심 초기 심리를 맡다가 나가서 판결문에는 다른 판사 이름으로 나왔기 때문. # 당초 천대엽 대법관으로 배정되었으나, 김상환 대법관과 법원행정처장 직을 교대하게 되면서 김상환 대법관이 심리하게 되었다.

2024년 11월 14일 상고가 기각되어 항소심대로 확정되었다.#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이 최종 확정. 윤미향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났지만 차후 선거에 8년(집행유예 기간 3년 + 형 만료 후 실효 시까지 5년) 동안 출마할 수 없다. 2032년 11월 15일까지 선거 출마 금지.

9. 반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정의기억연대 위안부 피해자 이용 논란/반응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위안부 문제의 재발견은 배봉기할머니의 최초 증언이 있었으나 냉전상황등 여러문제로 인해서 제대로 공론화 되지 못하였고 오랫동안 의제화 되지 못하다가 피해자의 증언에 의해 운동이 조직되는 과정이 아니라 운동이 먼저 이루어지고 피해자가 나중에 발견되는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그결과 국내에서는 김학순 할머니가 운동이 조직되었다는 소식을 듣게되고 국내 최초증언자가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뒷북치는 역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참고로 라울 힐베르크 박사의 베스트셀러(《유럽 유대인의 파괴 제2권》)에 따르면, 유대인 대학살의 피해자들은 오래 전에 북아메리카서유럽에서 비슷한 사례를 겪었기 때문에 자기들을 대변하는 법인들의 투명성을 매우 꼼꼼하게 따지는 경향이 있다.

해당 사건은 동시에 일본 정부 및 우익 세력이 주도하는 위안부 관련 왜곡 주장에 동조하는 친일적인 논자들에게 이 사건이 빌미가 되기도 했다. 혹자는 이 사건이 터지고부터 노골적으로 친일에 동조하는 이들이 생겨났다고 하는데, 분명히 해둘 것은 정의연이나 윤미향이라는 인물의 문제는 그것대로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전하는 관련 자료의 신빙성이나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의 불법성, 나아가 정부 및 군부 차원의 개입이 존재했으며 그것이 명백하게 식민지 피지배국에 대한 가해이자 전쟁 범죄, 인권 침해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할 수 있다.[32][33] 오히려 일본군 위안부 동원에 있어 일본 정부와 군부가 조직적으로 개입(관여 내지 묵인)했다는 증거가 더 많다. #### '일본 정부와 군부가 일본군 위안부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주장은 이미 2007년에 한국 정부도 아니고 미국 정부의 의회 조사국이 낸 보고서에서 "일본 정부와 군이 일본군 위안부 제도를 직접 만들었으며, 일본군은 위안부의 동원에서부터 수송과 위안소 운영까지 모든 단계에 개입했다"고 명시함으로서 일본 정부의 억지 주장을 발라 버렸다. ##

10. 기타

10.1. 다른 위안부 단체인 나눔의 집 관련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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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 합의사항49
토론 - 합의사항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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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에 비슷하게 위안부 피해자 지원 역할을 맡은 나눔의 집 역시 비리 의혹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같이 주목되고 있다. 다만, 정의연과 나눔의 집은 서로 별개의 단체이며 동업으로써 약간의 교류가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두 단체는 좋지 않은 관계라는 이야기도 있다.

2020년 7월 9일 오후에 조계종을 예정에 없이 찾아간 이용수 할머니는 전임 나눔의 집 원장이자 현 조계종 총무원장인 원행 스님을 방문하여 그가 위안부 할머니를 극진하게 대접했었고, 현재 나눔의 집 논란에서 원행 스님과 관련된 논란은 절대로 사실이 아니라며 원행 스님을 옹호했다. #

이후에 진행되면서 나눔의집 후원금 반환 청구가 기각되었다. 해당 기사


[1] 이용수가 미국에서 증언한 것이 사실이지만 김복동 역시 해외에 나가 증언하였다. 아이 캔 스피크를 제작한 영화사 시선 측은 이 영화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본 사람들이 세계에 나가서 증언한 일을 모티브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르면 피해를 입고 해외에 나가 증언한 모든 위안부가 관련돼 있다.[2] 학술적인 면에서는 '성노예'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피해자들은 보수적인 성문화 환경에서 성장하였고 그에 따라 성 관념이 성립되었는데, '성노예'라는 말은 지나치게 과격한 표현으로 받아들이기 충분하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말했다시피 ‘일본군 위안부(comfort women)’라는 표현 대신 ‘강제적인 일본군 성노예(enforced sex slaves)'라는 표현이 전쟁 범죄의 피해자라는 인식에는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피해자 본인이 싫다고 반대한 것을 무시하고 표현한 것 자체가 피해자의 인권을 짓밟은 잘못된 일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서에 이 명칭 문제에 대해 자세히 나와있다.[3] 해당 단체는 '반일 종족주의'의 공동 저자인 이우연과 주동식 미래통합당 의원 주도로 이루어진 단체로, 2019년 12월부터 소녀상 철거 및 수요집회 중단 요청 뿐만 아니라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고 일본 극우들과 연대를 맺는 등 논란을 빚어왔다.[4] 영상은 1.25배-1.5배 속도로 보는 편이 잘 들린다.[5] 이용수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대구에서 가질 무렵 곽상도 의원은 서울 여의도에 있었다. 곽상도 의원으로 오해받은 인물은 임대윤 씨로,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로 출마한 적이 있는 인물이다. 링크[6] 그 원문에 붙은 태그부터가 #내가애먹인것보다_더큰욕을본듯_오늘횽아_뭔날인가?이다.[7]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규탄하는 미국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 채택을 위해 2000년부터 꾸준히 상정하였으며 2014년 사망하였다.[8] 당시 한일합의안 불발과 더불어 생존 중인 피해자분들의 어려운 생계가 주목을 받아 많은 기부금과 지원사업이 진행되었었다.[9] 같은 시기 정의연에 들어온 기부금과 지원은 약 32억여원이었다.[10] 당시 지원 대상은 연별로 다른데, 대략 23~30명이었다. 다시 말해 지원 받은 피해자에게 돌아간 금액이 3년 동안 총 3~400만원에 불과했다는 이야기.[11] 일단 이러한 의식을 갖고 있다는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윤추구와 사적 운영이 위주가 되는 사기업과는 달리, 정부 보조금과 기부금 위주로 운용하는 NGO와 같은 비영리 단체는 그 목적과 운영에 있어서 비과세 등 여러 혜택을 받고 있으며, 그 때문에 원래 투명한 자금사용과 운영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우리나라가 NGO 운영에 크게 간섭하거나 법 적용을 철저히 하는 편이 아니라 이러한 해이한 운영이 보편적일지는 모르나, 원래 전 세계적으로 NGO는 보통 사기업들보다도 더 투명하고 철저한 회계처리가 요구되는 분야이다.[12] 혹시 이 문제로 기부를 꺼리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어 언급하자면, 정의연의 주장은 NGO에 간섭이 덜한 국내에서도 정상적은 아니다. 한 예로, 승일희망재단은 정의연보다 규모가 작은 4명 남짓에 불과하고, 자산규모도 67억이라 정의연처럼 외부 회계감사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이 재단은 400원 단위의 지출을 포함해 모든 수입, 지출을 원단위로 표기하여 꼼꼼하게 회계를 하고 있다. 링크 덤으로 NGO단체의 재정 및 회계를 공개하여 더 신중한 기부를 할 수 있게 돕는 NGO도 있으니 참고 바람. 링크[13] 해당 컨테이너는 안성시청의 자체 조사결과 불법 증개축된 것으로 확인되었다.[14] 홋카이도 소재 '노스컬러즈'라는 회사의 제품으로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수입된 적이 없다.[15] 내부 말고 외부[16] 정의연과 매수자 사이의 계약을 성사시킨 공인중개사 A씨는 “불법건축물을 책임진다는 계약 사항이 있기 때문에 계약 파기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한다.[17] 해당 민변은 그런 일 없다고 반박했고, 김어준은 이를 간첩몰이 공작이라고 주장했다.[18] 심지어 한국경제는 이 기사를 '이달의 기사' 로 선정하고 해당 기자에게 기자상을 수여했다. #[19] 논란의 주체가 된 안성 쉼터와는 다른 건물로, 명성교회가 소유하고 사용권만 정의연에 양도한 상태이다.[20] 여론은 싸늘하게 보고 있으며 이전 윤미향이 갑자기 이용수 할머니를 찾아간 게 진짜 인권 침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더 웃긴건, 그토록 할머니를 위한다는 단체가 정작 길원옥 할머니의 기부금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21] 광주석산고등학교, 고려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부장검사에서 판사로 전직한 최초의 케이스라고 한다.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있을 때는 손혜원 전 열린민주당 의원의 목포 부동산에 대한 검찰의 몰수보전 청구를 인용하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22] 사기와 보조금법위반은 상상적 경합이다.[23] 벌금으로 의원직 상실까지 가기 위해선 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위반에서 벌금 100만원 이상을, 국회선진화법 위반으로 500만원 이상을 받아야 한다.[24] 윤미향[25] 추정되어 미루어진다[26] 정대협의 계좌 자금은 다양한 목적으로 모금돼 모금 목적을 하나로 제한하기 어렵고, 관련 활동과 사용처가 정대협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면 (횡령의) 고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기사에 나와 있다.[A] 각 죄는 상상적 경합 관계[A] [29] 서울서부검찰청 2020년 9월 14일 보도자료에 적시되어 있다.[30] 예컨대 돈을 이체할 때마다 ‘OOO 할머니 선물’, ‘해외로밍’, ‘OOO 할머니 바지’, ‘OOO 할머니 운동기’, ‘OOO 할머니 점심’, ‘평화비 건립’ 등 사용처를 적어둔 기록이 남아있어 윤미향 측에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한다. #[31] 어려운 말로 '혼융'이라 한다.[32] 혹자는 일본군이 태평양전쟁을 일으켜서 위안부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 민간에서의 사기·약취, 인신매매 등을 조장하고 그래서 어떻든 조선인 여성을 위안소로 흘러가도록 만든 것까지도 역시 넓은 의미의 강제연행이라고 할 수 있다는 이른바 ‘광의(廣義)의 강제연행설’을 "일제 시대에 일본정부, 일본군의 시책을 어떤 식으로든 따랐었던 당시 한 세대 전원을 모조리 강제연행 경험자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친일인명사전 발간 당시 한국의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비판을 친일 자체에 대한 비판인 것마냥 호도하면서 나아가 일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의 배후에 북한의 사주를 받은 종북세력이 있다고 확대해석하는 논리나 다를 것이 없다.[33] 신동혁북한 정치범수용소 관련 증언이 거짓으로 밝혀졌다고 해도 정치범수용소의 참상은 강철환, 안명철, 김용 등 수많은 생존자와 관련자의 증언들로 입증된 사실이라는 것이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것과 유사한 셈이다.[34] 윤미향 본인도 "이분(위안부 피해자)들은 험난하게 세상을 살아와 누구도 믿으면 안 된다는 피해 의식을 갖고 있다. 머리빗을 보고 '예쁘다'고 말하면 안 된다. 자기 것을 탐내 훔쳐 갈 것이라 의심한다"고 발언한 바가 있다.[35] 일본 법원으로부터 최초로 공인받은 일본군 위안부이며, 일기장에서 원색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정대협을 비난했다.[36] 사실 이쪽은 박상학 등으로부터 무조건적으로 전광훈을 피해자로만 묘사하고 문재인 정부를 맹비난하는 청원서를 받은 것의 영향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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