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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보물 유묵 목록
2.1. 백인당중 유태화2.2.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2.3. 연년세세화상사 세세년년인부동2.4. 치악의악식자 부족여의2.5. 동양대세사묘현 유지남아기안면 화국미성유강개 정략불개진가련2.6. 견리사의 견위수명2.7. 용공난용 연포기재2.8. 인무원려 난성대업2.9. 오로봉위필 청천일장지 삼상작연지 사아복중시2.10. 세한연후지 송백지부조2.11. 사군천리 망안욕천 이표촌성 행물부정2.12. 장부수사 심여철 의사임위 기사운2.13. 박학어문 약지이례2.14. 제일강산2.15. 청초당2.16. 고막고어자시2.17. 인지당2.18. 인내2.19. 극락2.20. 운재2.21. 욕보동양 선개정략 시과실기 추회하급2.22. 국가안위 노심초사2.23. 위국헌신 군인본분2.24. 천여불수 반수기앙이2.25. 언충신 행독경 만방가행2.26. 임적선진 위장의무2.27. 인무원려 필유근우2.28. 일통청화공2.29. 황금백만냥 불여일교자2.30. 지사인인 살신성인2.31. 세심대
1. 개요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체포되어 뤼순(여순) 감옥에 수감되어 있을 당시 쓴 한문 붓글씨를 가리킨다. 유묵(遺墨)이란 생전에 남긴 글씨나 그림을 일컫는다. '안중근 의사 유묵'은 넓게는 그의 유묵 전반, 좁게는 그중 보물로 지정된 31점의 등재 명칭을 의미한다.총 200점 이상으로 추정되며 안중근 의사 기념관 측은 57점을 인정하고 있다. 안중근은 정황상 이들 전부를 검찰관, 간수 등 일본인의 부탁을 받고 써 주었으며 현재 국내외 박물관, 기관, 단체, 개인 등이 소장하고 있다. 이중 대한민국 정부 기관이나 한국의 단체 혹은 한국인에게 기증·인도(引渡)된 26점이 1972년부터 2007년까지 순차로 보물 569-1~26호 '안중근의사 유묵'으로 지정되었다. 이 중 569-4호[1]는 본래 청와대에서 보관했으나 현재는 행방이 묘연하다.[2] 이후 2022년 추가로 5점이 지정되어 총 31점으로 늘었다.[3] #
보물로 지정된 것 외에 안중근의 통역관 소노키 스에요시(園木末喜)가 받은 1점(日韓交宜善作紹介: 일한교의선작소개[4])은 한국인 학자가 세운 도쿄의 국제한국연구원에 기증되었는데 관리를 잘못하여 행방불명된 것으로 추정된다. 2009년에는 옛 주지 쓰다 가이준(津田海純)[5]이 뤼순 파견 시절 안중근으로부터 받은 것을 사찰 측이 1997년 류코쿠대학에 위탁한 유묵 중 세 점[6]이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7]되었다. 또한 2004년 박삼중 스님이 뤼순 감옥 소장의 손자로부터 국내로 들여온 1점(敬天: 경천)은 2009년 TV쇼 진품명품에 소개되어 “값을 매길 수 없다”라는 이례적인 찬사를 받은 뒤[8] 이후 2014년 잠원동 성당이 5억 9천만원에 매입,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기증하여 현재 서소문 순교성지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9] #
안중근은 휘호마다 '大韓國人 安重根(대한국인 안중근)'이라는 당당한 서명[10]과 함께 무명지 한 마디가 잘린 왼손바닥에 먹물을 묻혀 찍어 낙관을 대신하였다. 내용은 주로 논어, 사기 등의 교훈적인 구절이나 본인의 심경, 사상 등을 담고 있으며 독립(獨立)처럼 일본 측이 민감했을 법한 담대한 글귀도 서슴지 않았다.[11] 만 서른의 젊은 나이임에도 힘과 기개가 느껴지는 엄청난 명필인데다 제작 배경과 내용을 통해 그의 식견, 심중과 철학, 나아가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느낄 수 있으므로[12] 근현대 명사들의 휘호 중 최고의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받는다. 나아가 붓글씨를 부탁할 정도로 당시 안중근을 마주한 일본인들이 그의 사상과 인품에 감화되어 단순한 범죄자가 아닌 비범한 인물로 보았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하얼빈 의거와 안중근의사 유묵(7분영상)
아래에 소개된 것은 2022년까지 보물로 지정된 유묵들이다.
2. 보물 유묵 목록
보물로 지정된 순서(569-X호)로 나열한다. 569-26호 이후는 문화재 지정번호 제도가 폐지된 뒤 보물이 되어 공식적인 지정번호는 없다.2.1. 백인당중 유태화
百忍堂中有泰和 (백인당중유태화)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이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백 번 참는 집안에 큰 평화가 있다
경술년 2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이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백 번 참는 집안에 큰 평화가 있다
경술년 2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 보물 569-1호
- 지정일: 1972.08.16
- 받은 인물: 미상
유래는 구당서의 효우열전(孝友列傳)에 전하는 장공예(張公藝)의 고사. 당나라 고종 때 화목한 대가족을 꾸린 비결로 하여금 황제를 감동시켜 작위까지 받은 장공예라는 인물의 이야기인데, 인내를 통해 존중과 화합을 이룬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
2.2.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 보물 569-2호
- 지정일: 1972.08.16
- 받은 인물: 미상
독서와 관련된 유명한 결구. 이 오언절구는 추구(推句)[13]에 수록돼 있으나, 안중근의 유명세 탓에 '안중근이 말한 명언'으로 한국 민간에 알려졌다. 원 출전은 주지유의 《답야절문(答野節問)》에 수록된 사언절구 "三日不讀, 口生荊棘. 三日不彈, 手生荊棘 (삼일부독, 구생형극. 삼일불탄, 수생형극)" (사흘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고 사흘간 가야금을 타지 않으면 손에 가시가 돋는다)이다.
남산 안중근의사 기념관에 자연석에 새긴 비가 서 있다.
2.3. 연년세세화상사 세세년년인부동
年〻歲〻花相似 歲〻年〻人不同 (연년세세화상사 세세년년인부동)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해마다 꽃은 서로 비슷하나, 해마다 사람은 같지 않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해마다 꽃은 서로 비슷하나, 해마다 사람은 같지 않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 보물 569-3호
- 지정일: 1972.08.16
- 받은 인물: 미상
출처는 당나라 시인 유희이(劉希夷, 651-679)[14]의 시 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 #
2.4. 치악의악식자 부족여의
恥惡衣惡食者不足與議 (치악의악식자부족여의)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낡은 옷과 거친 밥상을 부끄러워하는 자와는 더불어 의논할 수 없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낡은 옷과 거친 밥상을 부끄러워하는 자와는 더불어 의논할 수 없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 보물 569-4호
- 지정일: 1972.08.16
- 받은 인물: 미상
출처는 논어 상론(上論) 중 선비의 몸가짐을 다룬 제4편 '이인(里仁)'의 9장 "士志於道, 而恥惡衣惡食者, 未足與議也. (사지어도, 이치악의악식자, 미족여의야)"이다. #
보물로 지정된 유물 중 유일하게 유실된 상태이다. 박정희 정부 당시 청와대에 기증되었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게 되면서 개인 유품은 박정희 대통령의 자녀 중 청와대에서 생활한 세 명(박근혜, 박근령, 박지만)을 대표해 큰 딸인 박근혜에게 전달되었고 공용 물품은 청와대에 남았다.
그러나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로 도난문화재에 준하게 취급되고 있는데, 정황상 박근혜가 물건 관리를 허술하게 하여 분실한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는 유물 가치가 높은 김재규가 제작한 "박정희 파텍 필립 뇌물 시계" 역시 분실한 사례가 있는데, 해당 시계는 김재규가 박정희의 환심을 사기 위해 중앙정보부 예산을 유용해 제작한 시계로 안중근 유묵과 마찬가지로 전두환에 의해 박근혜에게 전달되었지만, 박근혜는 이 시계에 대해 "흉물스러운 물건이라 잘 보관하지 않았고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답변한 바 있다.
따라서 이 안중근 유묵이나 역사적 가치가 높은 김재규 시계나 기타 박근혜가 보관 중이던 물건들은 박근혜의 관리 부실로 폐기물로 인식되어 한꺼번에 버려지거나, 박물관 수장고에서 뒤늦게 "발견" 되는 것처럼 어딘가에 처박혀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다만 박근혜가 여러 번 이사를 거쳤음에도 확인되지 않았기에 이러한 분실물들은 버려진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2.5. 동양대세사묘현 유지남아기안면 화국미성유강개 정략불개진가련
東洋大勢思杳玄 有志男兒豈安眠 和局未成猶慷慨 政略不改眞可憐 (동양대세사묘현 유지남아기안면 화국미성유강개 정략부개진가련)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應七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응칠)
동양의 대세 생각하면 아득하고 어두우니 뜻있는 남아 어찌 편히 잠들랴
평화 시국 이루지 못함이 개탄스러운데 정략[15]을 고치지 않으니 참으로 가련하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응칠
국가유산포털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應七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응칠)
동양의 대세 생각하면 아득하고 어두우니 뜻있는 남아 어찌 편히 잠들랴
평화 시국 이루지 못함이 개탄스러운데 정략[15]을 고치지 않으니 참으로 가련하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응칠
칠언절구 형태의 유일한 유묵이다. 동양 평화를 이루지 못하고 죽는 것을 한탄하며 일본에게 계속 침략을 하면 그들이 불쌍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국가유산포털의 고화질 이미지를 보면 '동양'의 오른쪽 그리고 손바닥 도장 위에 종이를 덧댄 자국이 보인다. 과거 민족의 얼 안중근의사 사진첩(1979)에 실린 흑백 사진에는 각 자리에 '贈仙境先生 (증 선경 선생)' 그리고 '謹拜 (근배)'가 적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기사
이에 대해 창원대 사학과 도진순 교수는 2023년 논문에서 당시 신문 기사와 각종 문헌, 연구를 종합하여 선경 선생(仙境先生)의 정체를 통감부의 사카이 요시아키(境喜明) 경시로 판단했다. 사카이는 1895년 한국어, 일본어 회화책을 출간할 만큼 한국어에 능통했으나 을미사변에 가담한 인물이다. 그는 비록 사상적으로는 분명히 문명개화론적 식민주의자였으나 1909년 11월 26일 이후 안중근을 20회 가량 신문하면서 안중근과 친분이 생겨 이듬해 2월 재판이 시작된 이후에도 붓글씨를 보내 소통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유묵 외에도 '사군천리~(569-11호)'와 '장부수사~(569-12호)' 유묵 또한 사카이 경시에게 쓴 글씨라고 보았다. 도진순. (2023). 안중근의 ‘근배’ 유묵과 사카이 요시아키 경시. 한국근현대사연구, 104, 43-93.
2.6. 견리사의 견위수명
見利思義見危授命 (견리사의견위수명)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이익을 보면 옳은지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에 처하면 목숨을 바쳐라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이익을 보면 옳은지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에 처하면 목숨을 바쳐라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 보물 569-6호
- 지정일: 1972.08.16
- 받은 인물: 미상
출처는 논어 하론(下論) 중 '헌문(憲問)'편.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2.7. 용공난용 연포기재
庸工難用連抱奇材 (용공난용연포기재)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서투른 목수는 아름드리 좋은 목재를 다루기 어렵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서투른 목수는 아름드리 좋은 목재를 다루기 어렵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 보물 569-7호
- 지정일: 1972.08.16
- 받은 인물: 미상
자치통감 중 자사(子思)가 위왕(魏王)에게 말한 내용에서 영감을 받아 인용하여 지은 문구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8. 인무원려 난성대업
人無遠慮 難成大業 (인무원려난성대업)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이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큰 일을 이루기 어렵다
경술년 2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이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큰 일을 이루기 어렵다
경술년 2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 보물 569-8호
- 지정일: 1972.08.16
- 받은 인물: 미상
출처는 논어 하론(下論) 중 '위령공(衛靈公)'편이다.
2.9. 오로봉위필 청천일장지 삼상작연지 사아복중시
五老峯爲筆 靑天一丈紙 三湘作硯池 寫我腹中詩 (오로봉위필 청천일장지 삼상작연지 사아복중시)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이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오로봉으로 붓을 삼고 하늘같은 종이 한 장 위에
삼상의 물을 벼룻물 삼아 내 마음에 품은 시를 쓰리라
경술년 2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이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오로봉으로 붓을 삼고 하늘같은 종이 한 장 위에
삼상의 물을 벼룻물 삼아 내 마음에 품은 시를 쓰리라
경술년 2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 보물 569-9호
- 지정일: 1972.08.16
- 받은 인물: 미상
이백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시가 출처. 오언절구 형태의 유일한 유묵이다.
2.10. 세한연후지 송백지부조
歲寒然後知松栢之不彫 (세한연후지송백지부조)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날이 추운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날이 추운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 보물 569-10호
- 지정일: 1972.08.16
- 받은 인물: 미상
출처는 논어 상론(上論)의 '자한(子罕)'편 중 '歲寒然後知 松栢之後凋(세한연후지 송백지후조)'이다. 원문은 後凋(후조)라고 써서 늦게 시든다고 표현했으나 해당 유묵에서는 不彫(부조), 즉 시들지 않는다고 썼다. 나아가 凋(시들 조) 대신에 彫(새길 조)를 사용했다. 게다가 不(아닐 불) 자는 나중에 추가된 듯 之의 오른쪽 아래에 아주 작게 쓴 것 또한 흥미로운 부분이다.
2.11. 사군천리 망안욕천 이표촌성 행물부정
思君千里 望眼欲穿 以表寸誠 幸勿負情 (사군천리 망안욕천 이표촌성 행물부정)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謹拜 (경술이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근배)
천리 밖의 임을 생각하니 바라보는 눈이 뚫어질 듯하오이다
이로써 작은 정성을 바치오니 행여 이 마음을 저버리지 마소서
경술년 2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삼가 절함
국가유산포털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謹拜 (경술이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근배)
천리 밖의 임을 생각하니 바라보는 눈이 뚫어질 듯하오이다
이로써 작은 정성을 바치오니 행여 이 마음을 저버리지 마소서
경술년 2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삼가 절함
이 글에서 가리키는 '임(君, 군)' 즉 글의 수증인(受贈人)이 고종 황제라는 주장이 전파되고 있는 점에 대해 앞서 언급된 논문(도진순(2023)[17])은 본 유묵을 '동양대세~(569-5호)' 그리고 '장부수사~(569-12호)'와 함께 안중근을 스무 차례 신문한 통감부 사카이 요시아키(境喜明) 경시에게 전달된 것이라고 보았다. 나아가 '서' 대신 '근배'를 썼다는 것은 꼭 수증인이 현격히 높은 신분, 직위의 인물이라는 것이 아니며 다만 안중근과 특히 각별했던 이들에게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보았다. 각별한 사이라면 왜 일부 '근배' 유묵에는 수증인 이름이 없는지에 대해 안중근의 사형수 신분을 고려하여 일본인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유묵에 표기하는 것을 조심스러워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2.12. 장부수사 심여철 의사임위 기사운
贈猛警視 (증맹경시)
丈夫雖死心如鐵義士臨危氣似雲 (장부수사심여철의사임위기사운)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謹拜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근배)
다케시 경시께 드림
장부는 비롯 죽을지라도 그 마음은 무쇠같으며 의사(義士)는 위기에 닥치더라도 그 기상이 구름과 같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삼가 절함
국가유산포털丈夫雖死心如鐵義士臨危氣似雲 (장부수사심여철의사임위기사운)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謹拜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근배)
다케시 경시께 드림
장부는 비롯 죽을지라도 그 마음은 무쇠같으며 의사(義士)는 위기에 닥치더라도 그 기상이 구름과 같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삼가 절함
'다케시(猛)' 경시께 드린다고 되어 있으나 앞서 언급된 논문(도진순(2023)[18])은 안중근이 사카이 경시를 '용맹 경시'라고 부르기도 했다는 문헌을 토대로 '다케시(猛)'를 사카이의 별명으로 보아 이 유묵 또한 사카이 요시아키 경시에게 쓴 것이라고 보았다.
2.13. 박학어문 약지이례
博學於文約之以禮 (박학어문약지이례)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글을 널리 배우고 예로써 절제한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글을 널리 배우고 예로써 절제한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 보물 569-13호
- 지정일: 1972.08.16
- 받은 인물: 미상
출처는 논어 상론(上論) '옹야(雍也)'편이다.
2.14. 제일강산
第一江山 (제일강산)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이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제일가는 강산
경술년 2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이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제일가는 강산
경술년 2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 보물 569-14호
- 지정일: 1972.08.16
- 받은 인물: 미상
2.15. 청초당
靑草塘 (청초당)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푸른 풀이 자라는 연못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푸른 풀이 자라는 연못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 보물 569-15호
- 지정일: 1972.08.16
- 받은 인물: 미상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2.16. 고막고어자시
孤莫孤於自恃 (고막고어자시)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이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혼자 잘난 척하는 것보다 외로운 것은 없다
경술년 2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이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혼자 잘난 척하는 것보다 외로운 것은 없다
경술년 2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 보물 569-16호
- 지정일: 1972.08.16
- 받은 인물: 미상
진나라의 병법가 황석공(黃石公)의 책 소서(素書)가 출처.
2.17. 인지당
仁智堂 (인지당)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이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어질고 지혜로운 집
경술년 2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이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어질고 지혜로운 집
경술년 2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 보물 569-17호
- 지정일: 1972.08.16
- 받은 인물: 미상
2.18. 인내
忍耐 (인내)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인내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인내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 보물 569-18호
- 지정일: 1972.08.16
- 받은 인물: 미상
2.19. 극락
極樂 (극락)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극락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극락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 보물 569-19호
- 지정일: 1972.08.16
- 받은 인물: 미상
2.20. 운재
雲齋 (운재)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구름 위의 집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구름 위의 집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 보물 569-20호
- 지정일: 1972.08.16
- 받은 인물: 미상
2.21. 욕보동양 선개정략 시과실기 추회하급
欲保東洋 先改政略 時遇失機 追悔何及 (욕보동양 선개정략 시과실기 추회하급)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동양을 보존하려면 먼저 정략[19]을 고쳐야 한다
때가 지나고 기회를 잃으면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랴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동양을 보존하려면 먼저 정략[19]을 고쳐야 한다
때가 지나고 기회를 잃으면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랴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 보물 569-21호
- 지정일: 1991.07.12
- 받은 인물: 뤼순 감옥 의사 오리타 도쿠(折田督)[20]
러일전쟁에 종군하고 뤼순 감옥으로 전근되어 일하던 의사 오리타 도쿠(折田督)가 받았다. 2차대전 패전 이후 오리타의 가족이 만주를 떠나 일본으로 귀국하며 가져온 유묵은 조카 오리타 간지(折田幹二)에게 넘겨졌다. 이후 오리타 간지는 94세이던 1989년 자신의 아들 오리타 군조(折田薰三, 오카야마대학 의과대학 교수)와 당시 단국대학교 장충식 총장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단국대학교에 유묵을 기증하게 되었다. # 현재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2.22. 국가안위 노심초사
贈安岡檢察官 (증안강검찰관)
國家安危勞心焦思 (국가안위노심초사)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謹拜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근배)
야스오카 검찰관께 드림
국가 안위를 위해 걱정하고 애태우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삼가 절함
國家安危勞心焦思 (국가안위노심초사)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謹拜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근배)
야스오카 검찰관께 드림
국가 안위를 위해 걱정하고 애태우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삼가 절함
- 보물 569-22호
- 지정일: 1993.01.15
- 받은 인물: 안중근을 취조한 뤼순법원 검찰관 야스오카 세이시로(安岡靜四郞)
사기 하본기(夏本紀)가 출처. 야스오카 검찰관 사후 그의 장녀가 소장하다가 1976년 2월 11일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했다.
2.23. 위국헌신 군인본분
爲國獻身軍人本分 (위국헌신군인본분)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謹拜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근배)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삼가 절함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謹拜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근배)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삼가 절함
- 보물 569-23호
- 지정일: 1993.01.15
- 받은 인물: 헌병 지바 도시치(千葉十七)
군필자라면 익숙할 법한 문구. 대한민국 국군의 표어이다. 특히 육직 부대라면 영내에서 자주 볼 슬로건이며, 타군에서도 정훈교육 자료로 많이 쓴다.
안중근이 사형 직전 자신의 공판정 왕래 시 경호를 맡고 감시하던 간수 지바 도시치에게 작별 선물로 써준 글귀로, 이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지바는 안중근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안 씨, 나는 일본의 군인, 특히 헌병이기 때문에 당신과 같은 훌륭한 분을 중대범인으로 간수하게 된 것이 매우 괴롭소."
그때 안중근은 되레 자신의 감시자를 위로한다.
"아니오. 당신은 군인으로서 당연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오. 이토 때문에 굴욕적으로 한국 군대가 강제로 해산된 뒤에, 나는 동지들과 대한 제국 의병대를 결성하고 그 참모 중장이 되었고, 이 의병에 속하고 있는 동지들은 각기 생업에 종사하면서 독립과 평화를 위해 동맹하는 것이며 농부는 농사에, 선전 유세를 담당하는 사람은 선전 유세로, 이와 같이 각기의 임무를 별도로 하고 있소. 이토를 죽이게 된 것도 나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였소. 군인은 나라를 지키고 일단 유사시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그 본분이기 때문에 서로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자기의 임무에 최후까지 충실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오."[21]
지바 도시치는 다시 한번 감동하며 안중근에게 휘호를 요청하지만 안중근은 정중히 거절한다. 그러나 사형 집행되던 바로 그 날, 우리가 익히 아는 마지막 날의 모습대로 하얀 명주 한복을 입은 안중근이 지바를 부른다.
"지바 씨. 그때 말한 거 오늘 씁시다."
안중근은 자신의 임무에 괴로워하던 군인 지바에게 이런 휘호를 써 준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爲國獻身 軍人本分).〉
《안중근 평전》, 김삼웅 저
"안 씨, 나는 일본의 군인, 특히 헌병이기 때문에 당신과 같은 훌륭한 분을 중대범인으로 간수하게 된 것이 매우 괴롭소."
그때 안중근은 되레 자신의 감시자를 위로한다.
"아니오. 당신은 군인으로서 당연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오. 이토 때문에 굴욕적으로 한국 군대가 강제로 해산된 뒤에, 나는 동지들과 대한 제국 의병대를 결성하고 그 참모 중장이 되었고, 이 의병에 속하고 있는 동지들은 각기 생업에 종사하면서 독립과 평화를 위해 동맹하는 것이며 농부는 농사에, 선전 유세를 담당하는 사람은 선전 유세로, 이와 같이 각기의 임무를 별도로 하고 있소. 이토를 죽이게 된 것도 나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였소. 군인은 나라를 지키고 일단 유사시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그 본분이기 때문에 서로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자기의 임무에 최후까지 충실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오."[21]
지바 도시치는 다시 한번 감동하며 안중근에게 휘호를 요청하지만 안중근은 정중히 거절한다. 그러나 사형 집행되던 바로 그 날, 우리가 익히 아는 마지막 날의 모습대로 하얀 명주 한복을 입은 안중근이 지바를 부른다.
"지바 씨. 그때 말한 거 오늘 씁시다."
안중근은 자신의 임무에 괴로워하던 군인 지바에게 이런 휘호를 써 준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爲國獻身 軍人本分).〉
《안중근 평전》, 김삼웅 저
2.24. 천여불수 반수기앙이
天與不受反受其殃耳 (천여불수반수기앙이)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이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하늘이 준 것을 받지 아니하면 도리어 그 벌을 받는다
경술년 2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이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하늘이 준 것을 받지 아니하면 도리어 그 벌을 받는다
경술년 2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 보물 569-24호
- 지정일: 1999.12.15
- 받은 인물: 미상
출처는 사기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의 '천여불취 반수기구(天與不取 反受其咎)'. 국립제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보물 지정 당시에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었다가 2020년 9월 개인 소장가로부터 기증받아 다음해인 2021년 11월 26일 국립제주박물관에 복합문화전시관이 들어서자 복합문화전시관 개관 특별전인 '제주와 박물관, 동행'展에서 최초로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2.25. 언충신 행독경 만방가행
言忠信行篤敬蠻邦可行 (언충신행독경만방가행)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말이 성실하고 신의가 있으며 행실이 돈독하고 경건하면 오랑캐 나라에서도 도를 행할 수 있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국가유산포털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말이 성실하고 신의가 있으며 행실이 돈독하고 경건하면 오랑캐 나라에서도 도를 행할 수 있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손자 야기 마사즈미(八木正澄) 씨가 2002년 10월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했다.
2.26. 임적선진 위장의무
臨敵先進爲將義務 (임적선진위장의무)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謹拜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근배)
적을 만나면 먼저 진격하는 것이 장군의 의무이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삼가 절함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謹拜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근배)
적을 만나면 먼저 진격하는 것이 장군의 의무이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삼가 절함
- 보물 569-26호
- 지정일: 2007.10.24
- 받은 인물: 미상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2.27. 인무원려 필유근우
人無遠慮必有近憂 (인무원려필유근우)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사람이 먼 생각이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있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국가유산포털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사람이 먼 생각이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있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출처는 논어 하론(下論) 중 '위령공(衛靈公)'편이다. 처형 3일 전 가미무라(혹은 우에무라)가 안중근을 방문하여 받았다는 신문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1910년 3월 23일에 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28. 일통청화공
贈淸田先生 (증청전선생)
日通淸話公 (일통청화공)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謹拜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근배)
기요타 선생께 드림
날마다 고상하고 청아한 말을 소통하던 분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삼가 절함
日通淸話公 (일통청화공)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謹拜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근배)
기요타 선생께 드림
날마다 고상하고 청아한 말을 소통하던 분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삼가 절함
- 지정일: 2022.06.23
- 받은 인물: 간수과장(看守課長) 기요타(淸田)
2.29. 황금백만냥 불여일교자
黃金百萬兩 不如一敎子 (황금백만냥불여일교자)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황금 백만 냥은 하나의 아들을 가르침만 못하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황금 백만 냥은 하나의 아들을 가르침만 못하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 지정일: 2022.06.23
- 받은 인물: 경수계장(驚守係長) 나카무라(中村)
출처는 명심보감의 구절 "황금이 가득한 바구니는 아들에게 하나의 경서를 가르침만 못하고, 아들에게 천금을 줌은 아들에게 하나의 기예를 가르침만 못하다(黃金滿籯, 不如教子一經, 賜子千金, 不如教子一藝)"이다.
2.30. 지사인인 살신성인
志士仁人殺身成仁 (지사인인살신성인)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뜻이 있는 선비와 어진 이는 몸을 죽여 인을 이룬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뜻이 있는 선비와 어진 이는 몸을 죽여 인을 이룬다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 지정일: 2022.06.23
- 받은 인물: 안중근의 공판을 지켜본 기자 고마쓰 모토고(小松元吾)[24]
출처는 논어 하론(下論) 중 '위령공(衛靈公)'편이다. 고마쓰 기자의 후손이 2016년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했다.
2.31. 세심대
洗心臺 (세심대)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마음을 씻는 대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마음을 씻는 대
경술년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 지정일: 2022.06.23
- 받은 인물: 미상
[1] 恥惡衣惡食者不足與議: 치악의악식자부족여의[2] 기사에 따르면 1972년 보물 지정 후 1976년 3월 청와대에 기증되었으나 1980년 전후 사라졌고 분실 경위는 파악되지 않았다. # 정황상 10·26 사태 이후 박근혜에게 인도되었을 가능성이 높아보이나, 그 이후 왜 분실된 것인지는 오리무중이다.[3] 다만 2021년 11월 19일부로 문화재 지정번호 제도가 폐지되어 이들 5점에 공식적으로 부여된 지정번호는 없다. 만약 계속 번호를 부여했더라면 569-27~31호가 되었을 것이다.[4] 일본과 한국의 친선은 양국이 서로를 잘 알게 되는 것에 있다는 뜻. 안중근의 취조, 재판 등에 입회해 통역을 맡았던 소노키 스에요시(園木末喜)에게 처형 전달인 2월에 써 준 것. 안중근 의사가 일본을 증오한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동양평화와 한일우호를 염원했다는 증거인 귀중한 유묵이다. 특히 양국의 언어를 구사하여 한일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통역관에게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붓글씨를 써 주었다는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소노키 스에요시는 이 유묵을 소중히 간직했으며, 그의 딸 요시코가 1986년 도쿄의 국제한국연구원에 기증했다.[5] 뤼순에 파견되어 있던 오카야마현 소재의 정심사(淨心寺) 주지.[6] 논어의 不仁者不可以久處約(불인자가이구처약·어질지 않은 자는 오랫동안 거북한 제약을 견디지 못한다)과 敏而好學不恥下問(민이호학불치하문·영민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여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중용의 戒愼乎其所不睹(계신호기소불도·군자는 그 보이지 않는 바에 경계하고 삼간다) 세 점이다. #[7] 앞서 류코쿠대학 위탁소장품으로는 獨立(독립) 휘호가 알려져 있었다.[8] 보험가로 6억을 내긴 했지만, 실제로 한 말을 들어보면 가격 책정을 거부한 것이나 다름없다.[9] 안중근은 가톨릭 신자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천(敬天), 즉 '하늘을 공경하라'는 안중근의 신앙이 반영된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보물로 지정되지는 않았으나 안중근의사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는 '천당지복 영원지락(天堂之福 永遠之樂)' 또한 그의 신앙심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10] 아명인 안응칠(安應七)로 서명하기도 했는데 '동양대세사묘현 유지남아기안면 화국미성유강개 정략불개진가련' 유묵이 한 예시.[11] '독립' 휘호는 뤼순에 파견되어 있던 오카야마현 소재의 정심사(淨心寺) 주지 쓰다 가이준(津田海純)이 받았고 정심사 측은 이를 비롯한 유묵 여러 점을 류코쿠대학에 1997년 위탁하여 현재 대학 측이 소장중이다. # 앞서 서술되었듯이 류코쿠대학은 2009년에 정심사 위탁 유묵 세 점을 새롭게 공개하였다.[12] 유묵 같은 필기류의 유물은 필체도 필체지만 그 글씨를 쓴 사람의 행적에 따라서 가치가 크게 달라진다. 예컨대 안중근의 유묵은 엄청난 가치를 지니지만, 역시 명필로 알려진 친일파 이완용의 유묵은 거의 무가치로 평가받는다.[13] 작자 시기 미상. 여러 책에서 좋은 글귀를 뽑아놓은 초학자용 한문 교재[14] 자는 정지(廷之)이다.[15] 정황상 일본의 침략 정책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16] 이름의 境 자를 사용한 일종의 별명으로 불리고 안중근 또한 이례적으로 아명 '안응칠'로 서명할 만큼 서로 나름의 친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17] 도진순. (2023). 안중근의 ‘근배’ 유묵과 사카이 요시아키 경시. 한국근현대사연구, 104, 43-93.[18] 도진순. (2023). 안중근의 ‘근배’ 유묵과 사카이 요시아키 경시. 한국근현대사연구, 104, 43-93.[19] 정황상 일본의 침략정책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20] 오늘날 인터넷 상에는 오리타 '타다스'라는 독음이 퍼져 있으나 1989년 2월 22일 해당 유묵이 기증될 당시의 동아일보 기사에서 분명히 '오리타 도쿠'라고 표기하고 있다. 기사 그로부터 유묵을 물려받은 조카 오리타 간지(折田幹二)에게 직접 일본에서 유묵을 인수하며 오리타 일가와 소통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된 기사이므로 여기에 나온 '도쿠'가 정확할 가능성이 더 높다.[21] 정황상 이 말이라도 안 했으면 지바는 안중근의 마지막을 지키기도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22]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 설명에 의한 독음[23] 2008년 경매에 출품되었을 당시 여러 기사에서의 독음 #[24] 다만 元吾는 일반적으로 '겐고'라고 읽는다. 고마쓰가 어떤 발음을 사용했는지 확인이 필요한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