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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논란


홈페이지
信仰界

대한민국의 종교 전문 출판사로 해당 사에서 발간되는 종교 전문 월간지.

1. 개요

1967년, 창립과 동시에 전도용 월간지로 발행을 시작했다.[1] 당시 발행인 조용기 목사. 1968년부터 초교파 종교 잡지로 발간하기 시작하였으며 현재도 신앙계가 나오는 주간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주일 설교에서 광고를 한다. 현재 발행인 겸 편집자는 이영훈 목사.

특이한 점은 성공회 대천덕 신부[2]의 일대기를 연재하여 시골에서 상속하던 외국인 신부의 영성을 세상에 알렸다는 점이다. 20년 간 연재된 당해 내용은 산골짜기에서 온 편지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있다. 성공회의 문화나 조직 등이 가톨릭의 형태에 가깝기는 하나, 개신교의 유형 중 하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도 신앙 서적 출간을 병행하고 있다.

1988년에는 국민일보 창간에 따라서 한 때는 이 신문사의 월간 잡지로 발행되기도 하였고, 2008년 2월호부터는 '플러스인생'이라는 제호로 발행되다가 2015년 1월호부터는 원래의 이름으로 발행되고 있다.

또한 이 잡지는 다른 기독교 잡지들과 다르게 상업광고도 존재했는데, 과거에는 해태제과, 신동아그룹[3][4], 삼성그룹 일부[5], 한국주택은행[6], 엘칸토 등의 회사들이 많았으며[7] 이후에는 기독교 계열 회사들의 광고를 게재한다.

2017년에는 창간 50주년을 맞이하였다.

2. 논란


[1] 전도용 주간지인 '행복으로의 초대'와는 다르다.[2] 1918년 1월 19일 중국 산둥성 출생. 빈부의 격차가 없는 평등사회를 실천하고자 1965년 강원도 태백시(당시 삼척군 황지읍 및 장성읍)에 예수원을 설립하였다. 2002년 8월 6일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향년 84세. 예수원은 지금도 성공회 대전교구의 특수사목교회로서 초교파 수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3] 주로 대한생명63빌딩 또는 한국콘티넨탈식품 등의 계열사 대다수. 그러나 한국콘티넨탈식품은 1988년에 경영분쟁으로 폐업했고 신동아그룹은 외환위기옷로비 사건 등의 악재로 인해 1999년에 해체되었으며 대한생명은 2002년에 한화그룹으로 넘어갔으며 10년 후 현재의 한화생명으로 변경하였다.[4] 특히 이 그룹 계열이었던 한국콘티넨탈식품은 당대의 코미디언이었던 남철, 남성남, 김형곤, 송영길, 이성미, 장두석 등이 모델로 나온 광고를 게재했다.[5] 삼성전자삼성생명 등과 삼성영상사업단에서 기독교 음악 관련 CD를 홍보하기도 했다. 참고로 삼성영상사업단은 캐치원Q채널을 운영하며 케이블 방송 사업에도 진출하였으나 외환 위기로 인해 1998년에 해체되었다.[6] 주로 올림픽복권(1983년부터 광고에 게재되었다.)과 일반 예금상품. 2002년 KB국민은행에 인수됨. 참고로 이 광고는 당시 주택은행의 구 로고의 마지막 시기이던 1982년경부터 게재되었다.[7] 게다가 1990년대에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막장 다단계 회사인 산융산업의 광고도 있었다. 해당 광고는 1993년 숭민산업으로 변경되면서 사라졌다. 참고로 숭민산업은 2004년 파산했으며 주수도와 조희팔 등 악명높은 사기꾼들이 이 회사의 영업부장으로 있었다.[8] 기독교의 한반도 전래는 매우 늦은 편이었으며, 당시 한반도 국가들이 죄다 그랬듯이 가야의 종교도 무교, 불교, 도교, 유교 등이 주류였다. 이 때문에 가락종친회와 김해 김씨 관련 단체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9] 김활란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으며 이외에도 이기붕의 부인인 박마리아, 모윤숙 등과 함께 등재되기도 하였다.[10] 이것은 신학적으로 보아도 건전하지 못한 주장이다(번영신학). 사실 대한민국의 개신교가 전파된 것은 조선 시대 말기인 1832년 이후의 일이다. 그리고 개신교가 본격적으로 확장된 것은 한국전쟁 후인 60년대부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