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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13 18:26:56

숙의 방씨

조선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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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철종의 후궁
숙의 방씨 | 淑儀 方氏
<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조선 철종의 후궁
숙의 방씨 | 淑儀 方氏
파일:서삼릉숙의묘역.jpg
서삼릉 후궁 묘역 전경
출생 연대 미상
사망 1878년 11월 6일
능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 후궁묘역
재위기간 조선 숙의
1853년 3월 31일 ~ 1878년 1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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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본관 온양 방씨
배우자 철종 장황제
자녀 2녀 (조졸)
봉작 숙의(淑儀)
}}}}}}}}} ||

1. 개요2. 생애3. 사후4. 가족 관계
4.1. 시가(전주 이씨)4.2. 배우자 / 자녀
5. 창작물에서6. 참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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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제25대 국왕 철종후궁. 본래 궁녀였으며, 본관은 온양(溫陽)이나 가계에 대해 알려진 바 없다.

슬하에 두 딸을 두었으나 첫째 딸은 3살 때 죽었고 둘째 딸 역시 어릴 때 죽었다고 한다. 옹주의 봉작을 받기 전이었으므로, 사위(부마)도 맞이하지 않았기 때문에 철종의 사후에는 자식 없이 홀로 여생을 보냈다.[1]

2. 생애

1853년(철종 4년) 종2품 숙의(淑儀)에 봉작되었다.[2] 그러나 두 딸과 철종을 모두 먼저 보내고, 1878년(고종 15년) 11월 6일, 숙의 방씨도 세상을 떠났다. 이에 고종은 철종의 다른 후궁이었던 조 귀인(종1품)의 장례 규례를 따라서 장례에 필요한 물품 일체와 관을 짜는 목판을 함께 지급하라고 호조에 어명을 내렸다.[3][4]

3. 사후

묘는 원래 서울특별시 성북구 하월곡동에 있었으나, 1969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있는 서삼릉 경내의 후궁 묘역으로 이장하였다. 봉분 앞에 세운 묘표(墓表)에는 숙의온양방씨지묘(淑儀溫陽方氏之墓)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으며 높이는 150cm이다. 1970년 5월 26일에는 서삼릉과 함께 대한민국의 사적 제200호로 지정되었다.

4. 가족 관계

4.1. 시가(전주 이씨)

4.2. 배우자 / 자녀

5. 창작물에서

6. 참고 문서


[1] 모두 성년까지 성장하지 못했을 뿐, 후사가 없다고 알려진 철종에게는 왕비 철인왕후에서 본 자식 이외에도 후궁 소생 자식들이 많았다. 문제는 그나마 봉작까지 받은 영혜옹주마저 일찍 죽었을 정도로 사망률이 높다는 점.[2]철종실록》 5권, 철종 4년(1853년, 청 함풍(咸豊) 3년) 2월 22일 (정유) 1번째기사. #.[3]승정원일기》 2856책 (탈초본 132책), 고종 15년(1878년, 조선 개국(開國) 487년) 11월 13일 (무오) 10/16 기사. #.[4]고종실록》 15권, 고종 15년(1878년, 조선 개국(開國) 487년) 11월 14일 (기미) 2번째기사.[5] 남편 철종순조의 법적인 양자로 공식 입적되었기 때문에 법적상 시조모는 효의왕후가 맞으나, 법적상의 혈연 시조모는 철종의 양아버지 순조의 어머니인 수빈 박씨이다.[6] 혈연상 시아버지는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의 서자인 전계대원군 이광이다.[7] 혈연상 시어머니는 용성부대부인 염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