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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8 18:54:05

숙의 김씨(철종)

조선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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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궁 : 환조 ~ 연산군 · 중종 ~ 고종
왕자 : 목조 ~ 연산군 · 중종 ~ 고종
왕녀 : 익조 ~ 연산군 · 중종 ~ 철종
※ 정식 후궁 첩지가 있거나 문서가 등재된 사람만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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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조선 철종의 후궁
숙의 김씨 | 淑儀 金氏
파일:서삼릉숙의묘역.jpg
서삼릉 후궁 묘역 전경
출생 1833년 4월 25일[1]
사망 1900년대(향년 66~76세 사이)[2]
능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 후궁묘역
재위기간 조선 궁인
1856년 이전 ~ 1895년 1월 12일
대조선국 궁인
1895년 1월 12일 ~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 궁인
1897년 10월 12일 ~ 1899년 5월 7일
대한제국 숙의
1899년 5월 7일 ~ 1910년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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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본관 김해 김씨
부모 부친 김치욱(金致郁)
배우자 철종 장황제
자녀 슬하 1녀
장녀 - 옹주(1856)
봉작 궁인(宮人) → 숙의(淑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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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창작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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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철종후궁. 본래 궁녀 출신으로 아버지는 김치욱(金致郁)이며, 어머니는 알 수 없다. 슬하에 딸 하나를 두었으나 일찍 죽어서 옹주의 봉작은 받지 못하였다.

2. 생애

1856년(철종 7) 음력 7월 5일, 23세의 나이에 철종의 딸을 낳았다.[3] 이때 김씨를 '궁인 김씨(宮人金氏)'라고 썼기 때문에 본래 궁녀 출신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이유를 알 수 없으나 이때는 정식으로 후궁 봉작을 받지 못하고 철종 사후에 비로소 종2품 숙의(淑儀)가 되었다.[4]
조령(詔令)을 내리기를, "철종 때 승은을 입은 궁인 김씨의 옛일을 추모하여 마땅히 특별한 은전(恩典)을 베풀어야 할 것이니 숙의로 봉작(封爵)하라." 하였다.
고종실록》 고종 36년 5월 7일

철종의 후궁 중, 귀인 박씨, 귀인 조씨, 숙의 방씨가 자식을 낳고 바로 후궁으로 봉작된 것과 비교되는 경우이다.[5]

3. 창작물에서



[1] 음력 3월 6일.[2] 일제감정기 이전엔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3] 승정원일기 2581책 (탈초본 124책) 철종 7년 7월 5일 경신 5/28 기사. #[4] 철종의 후궁들 중 왕자를 낳은 박씨와 조씨는 바로 후궁 봉작을 받았으나 왕녀 한명만 낳은 김씨와 범씨는 철종 사후에 후궁 봉작을 받았다. 방씨는 왕녀 둘을 낳고서야 후궁 봉작을 받았다. 예외적으로 이씨는 왕자를 낳고도 후궁 봉작을 끝내 받지 못하였다.[5] 숙의 방씨는 왕녀 둘을 낳고 나서야 후궁으로 봉작되었다. 다만, 왕자를 낳은 궁녀들은 바로 후궁으로 봉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