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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9-17 09:38:34

귀인 정씨(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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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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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조선 선조의 후궁
귀인 정씨 | 貴人 鄭氏
귀인 정씨묘 위치
출생 1557년 11월 6일(음력 10월 6일)
사망 1579년 6월 1일(음력 4월 27일)
(향년 23세)
묘소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 298-18
재위기간 조선 숙의
1571년 ~ 1573년
조선 소의
1573년 ~ 1578년
조선 귀인
1578년 ~ 1579년 6월 1일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8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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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본관 연일 정씨
부모 부친 - 정황(鄭滉)
모친 - 부평 한씨(富平 韓氏)
배우자 선조
자녀 없음
봉작 숙의(淑儀) → 소의(昭儀) → 귀인(貴人)
}}}}}}}}} ||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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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선조의 후궁. 아버지는 안악 군수를 지낸 정황(鄭滉)이며, 어머니는 한씨이다. 그녀의 고모는 인종의 후궁 귀인 정씨이고, 송강 정철의 조카가 된다.[1]

2. 생애

최립의 《간이집》에 실린 〈귀인 정씨의 묘지명〉에 따르면, 그녀는 1571년(선조 4) 숙의로 간택되어 입궁하였다.[2] 1573년(선조 6년) 명나라 만력제의 즉위에 따라 정2품 소의가 되었다가 1578년(선조 10) 왕대비 인순왕후의 상이 끝나면서 종1품 귀인으로 품계가 올랐다.

그런데 정씨는 23세의 나이로 임신하였는데, 보통 후궁이 출산할 때는 으레 그 어머니가 입궁하여 도와주는데도 외부인이 궁중에 들어오는 것은 법도에 어긋난다며 거절하였다. 증세가 심각하여 선조가 궁궐 밖으로 나가서 출산할 수 있게 해주었지만, 하필 난산이어서 출산 중에 사망하였다고 한다.
[1] 현재 귀인 정씨의 묘는 조부, 부친 등의 묘와 함께 있는데 가까운 곳에 송강 정철의 시비와 송강문학관 등의 시설이 있다.[2] 묘지명과 달리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에는 1571년에 간택하였다는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