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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조선 광해군의 후궁 소의 권씨 | 昭儀 權氏 | |||
출생 | 1603년[출처] | ||
사망 | 1624년 이후 | ||
능묘 | 미상 | ||
재위기간 | 조선 숙의 | ||
1618년 8월 24일 ~ 1622년 이전 | |||
조선 소의 | |||
1622년 이전 ~ 1623년 4월 13일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8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본관 | 안동 권씨 | |
부모 | 부친 권여경(權餘慶) 모친 상산 김씨 | ||
배우자 | 광해군 | ||
봉작 | 숙의(淑儀) → 소의(昭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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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광해군의 간택 후궁. 아버지는 장흥부사 등을 역임한 권여경(權餘慶)이며, 어머니는 상산 김씨 김인선(金麟善)의 딸이다.2. 생애
1617년(광해군 9년) 장흥 부사 권여경의 딸이 숙의(淑儀)로 간택되었으며, 이에 따라 권여경의 관직도 높아지게 되었다.[2] 1618년(광해군 10년) 정식으로 숙의에 봉작되었고,[3] 이후 소의(昭儀)로 품계가 올랐다.[A][5]한편, 권씨의 아버지 권여경은 딸의 총애를 빙자하여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등 횡포를 부렸다. 오죽하면 당시 《광해군일기》에서는 권여경을 가리켜 '가는 곳마다 탐옥스런 짓을 하여 마치 전쟁을 치른 듯하였다'고 평했다.
그러나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1623년(인조 1년) 9월 14일 소의 권씨는 연산(連山)에 유배되는 처분을 받았다.
1624년(인조 2년) 김장생이 '저 부인네들에게 무슨 죄가 있느냐'며 소의 권씨 등을 풀어줄 것을 건의하였지만, 인조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이후의 행적은 찾을 수 없다.[6]
[출처] 서치상. (2020). 광해·인조 연간의 해인사 수다라장과 법보전 상량문 연구. 건축역사연구, 29(1), 65-76.[2] 1614년(광해군 6년) 권여경은 철산 군수 시절에 읍비(邑婢)를 간음하고 관아 안에서 함께 살고 있다고 하여 탄핵 받은 전적이 있을 정도로 평판이 좋지 않은 인물이었다.[3] 이때 사관은 궁중에 숙의가 다섯 명이나 되어 서로 총애 받으려고 다투며 관직을 사고 팔고 뇌물을 받으니 정치가 어지럽다고 썼다.[A] 서치상. (2020). 광해·인조 연간의 해인사 수다라장과 법보전 상량문 연구. 건축역사연구, 29(1), 65-76.[5] 정확한 진급 시기는 미상이나 1622년(광해군 14년)에 소의로 칭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그 이전에 소의에 봉작된 것으로 보인다.[6] 반면 권여경은 1628년(인조 6년)에 유배지에서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