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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11:31:45

귀인 양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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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03F95><colcolor=#ffd400>
대한제국 고종의 후궁
귀인 양씨 | 貴人 梁氏
파일:귀인양씨.jpg
출생 1882년 9월 27일
사망 1929년 5월 30일 (향년 46세)
조선 경기도 경성부 계동 사저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35 일대)
능묘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 후궁 묘역
재위기간 대한제국 귀인
1912년 5월 25일 ~ 1929년 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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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03F95><colcolor=#ffd400> 본관 청주 양씨
춘기(春基)
부모 부친 - 양언환(梁彦煥)
배우자 고종 태황제
자녀 슬하 1녀
장녀 - 덕혜옹주(德惠翁主, 1912 ~ 1989)
봉작 궁인(宮人) → 귀인(貴人)
당호 복녕당(福寧堂) }}}}}}}}}
1. 개요2. 생애3. 가족 관계4. 친정(청주 양씨)5. 시집(전주 이씨)
5.1. 배우자 / 자녀
6. 귀인 양씨를 연기한 배우7. 참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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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제국 고종 황제후궁. 덕혜옹주의 생모.

2. 생애

본래 경운궁 세수간에서 일하는 궁인이었다.[1] 당시 일본에 의해 덕수궁 이태왕으로 물러나 있던 고종의 눈에 띄어 승은을 입고 고종의 유일한 딸, 덕혜옹주를 1912년 5월 25일 낳았다.[2] 이때가 고종의 나이 무려 59세였다. 이날 고종은 옹주가 태어났다고 친히 왕림했고, 같은 해 5월 27일 함녕전에서 고종이 흥친왕 이재면 이하 종척(宗戚)들을 인견하여 옹주 탄생을 축하했다고 한다.

양씨는 고종의 늦둥이 고명딸을 낳은 덕분에 종1품 귀인으로 책봉되었으며, 복녕당(福寧堂)이라는 당호(堂號)를 얻었다.

아버지는 양언환(梁彦煥)으로 양씨의 친정은 한미한 집안이었고, 그녀의 오빠 양상관은 시내에서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양씨가 옹주를 낳아 후궁이 되고 고종의 총애를 받게 되자, 양상관은 관복을 입고 궁궐에 출입할 정도로 그녀의 친정은 일약 벼락출세했다.

1919년 1월 21일, 고종이 덕수궁 함녕전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 홀로 지내다가, 1925년 딸 덕혜옹주유학이라는 명분으로 강제로 일본에 끌려가자 이를 비관하며 지냈고 결국 1929년, 유방암으로 쓸쓸히 사망했다.

왕족이 아니면 궁안에서 죽어선 안된다는 법도에 따라
유방암으로 위중한 상태가 되자 오빠인 양상관과 큰조카가 덕수궁에 들어와 양씨를 업어 계동 친정으로 나아갔다.

양씨가 옹주의 생모이긴 하나 정식으로 고종의 후궁이자 이왕가의 일원으로 공인된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사후 서삼릉(西三陵) 후궁 묘역에 안장되었다.

3. 가족 관계

4. 친정(청주 양씨)

5. 시집(전주 이씨)

5.1. 배우자 / 자녀

6. 귀인 양씨를 연기한 배우

7. 참고 문서



[1] <매일신보>, 1929년 6월 1일자 기사.[2] 《순종실록부록》 3권, 순종 5년(1912년, 일본 명치(明治) 45년) 5월 25일 (양력) 2번째 기사. #.[3] 본명은 '스즈키 노보루(鈴木昇)'였다. 그러나 결혼을 하면서 장인 소 다케유키에 의해 데릴사위로 맞이하면서 성씨를 스즈키(鈴木)에서 소(宗)로 바꿨다고 한다. 노보루 역시 장인 소 다케유키와 마찬가지로 덕혜옹주나 소 마사에 관련 발언은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4] 외손녀의 남편인 소 노보루는 가족중 유일하게 일본에 현재 생존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