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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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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1984년

코르도바 역사 지구
Centro histórico de Córdoba
1984년

그라나다
:
알함브라, 헤네랄리페, 알바이신
Alhambra, Generalife y Albaicín de Granada
1984년

부르고스 대성당
Catedral de Burgos
1984년

마드리드의 에스코리알 수도원 유적
Monasterio y sitio de El Escorial en Madrid
1984년

안토니 가우디의 건축
Obras de Antoni Gaudí
1985년

알타미라 동굴
스페인 북부의 구석기시대 동굴 예술
Cueva de Altamira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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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세고비아 옛 시가지와 수도교
Ciudad vieja y acueducto de Segovia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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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옛 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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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아빌라 옛 시가지와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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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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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dral, Alcázar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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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망카 옛 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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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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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 Monasterio 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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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
: 카미노 프란세스와 스페인 북부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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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쿠엥카 성곽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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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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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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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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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lau de la Música Catalana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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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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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시에가 베르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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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tios de arte rupestre prehistórico
del Valle del Côa y de Siega Verde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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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rupestre del arco mediterráne
de la Península Ibérica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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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 Alcalá de Hena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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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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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lmeral de Elche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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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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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lesias románicas catalanas de Vall del Bo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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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tio arqueológico de Atapuer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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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saje cultural del Risco Caído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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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세오 델 프라도와 부엔 리테로,
예술과 과학의 경관
Paseo del Prado y el Buen Ret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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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60b1e> 자연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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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냐나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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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데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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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파티아 및 유럽의 기타 지역에
생육하는 고대 및 원시 너도밤나무 숲
Bosques antiguos y primarios de hayas
de los Cárpatos y otras regiones de Europa
복합유산
1997년

피레네 산맥
: 몽 페르뒤 산

Pirineos - Monte Perdido
1999년

이비사의 생물 다양성과 문화
Ibiza, biodiversidad y cult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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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agrada-familia-01.jpg
2016년의 모습.[1][2]
파일:Sagrada_Familia_2021.jpg
파일:Sagrada_Familia_2021_2.jpg
2021년의 모습[3]
Sagrada Familia
성가정 대성전
위치
스페인 카탈루냐 바르셀로나
종교 가톨릭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지위 대성전(Minor Basilica)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조셉 마리아 수비라치[4]
양식 모데르니스메[5]
착공 1882년 3월 19일[6]
완공 공사 진행 중 (2026년 완공 예정[7])
축성 2010년 11월 7일, 교황 베네딕토 16세[8]
세부 정보
전체 길이 90m
전체 너비 60m
신랑 너비 45m
첨탑 총 18개(현재 13개 완성)
첨탑 높이 172.5m(예정)[9]
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
이름 한국어 안토니 가우디의 건축
영어 Works of Antoni Gaudí
스페인어 Obras de Antoni Gaudí
프랑스어 Œuvres d’Antoni Gaudí
국가·위치 스페인 카탈루냐 바르셀로나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84년[10]
등재기준 (i)[11], (ii)[12], (iv)[13]
지정번호 320
언어별 명칭
한국어 속죄의 성가정 대성전
스페인어 Templo Expiatorio de la Sagrada Familia
카탈루냐어 Temple Expiatori de la Sagrada Família
라틴어 Basilica Sanctae Familiae
영어 Basilica and Expiatory Temple of the Holy Family
프랑스어 Temple Expiatoire de la Sainte Famille
독일어 Sühnekirche der Heiligen Familie
포르투갈어 Templo Expiatório da Sagrada Família
이탈리아어 Tempio Espiatorio della Sacra Famiglia
에스페란토 Pentofera Templo de la Sankta Familio
중국어 聖家堂/ 聖家宗座聖殿暨贖罪殿
일본어 サグラダ・ファミリア/ 聖家族贖罪教会(せいかぞくしょくざいきょうかい)

1. 개요2. 명칭3. 역사4. 건축
4.1. 왜 오래걸리는가4.2. 형태와 배치
4.2.1. 북쪽 면: 동쪽 성구실(Sacristy East/Sagristia Est)4.2.2. 북동쪽 면: 탄생의 파사드 (Nativity Façade/Façana del Naixement)4.2.3. 동쪽 면: 성찬 예배당 (Sacrament Chapel/Capella del Sagrament)4.2.4. 남동쪽 면: 영광의 파사드 (Glory Façade/Façana de la Glòria)4.2.5. 남쪽 면: 세례당(Baptistery/Baptisteri)4.2.6. 남서쪽 면: 수난의 파사드 (Passion Façade/Façana de la Passió)4.2.7. 서쪽 면: 서쪽 성구실(Sacristy West/Sagristia Oest)4.2.8. 북서쪽 면: 성모 마리아 탑(The tower of the Virgin Mary/Torre de la Mare de Déu),성모 승천 예배당(Chapel of the Assumption of the Virgin Mary/Capella de l'Assumpció)4.2.9. 중앙부: 복음사가의 탑(The towers of the Evangelists/Torre de Evangelista),예수 그리스도의 탑(The towers of the Jesus Christ/Torre de Jesús)
4.3. 교황 베네딕토 16세축성
5. 세계 최장기 불법 건축물6. 특징7. 매체8. 기타

[clearfix]

1. 개요

파일:external/25.media.tumblr.com/tumblr_mtv84hxOCY1qbyxr0o1_250.gif파일:사그라다_파밀리아_2023년.jpg
완공되었을 때의 예상도 대성당의 모형.
흰색 부분은 2023년 기준 건설이 완료된 부분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가톨릭 대성전.[14] 천재 건축가로 알려진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건축물이자 그가 심혈을 기울인 야심작으로, 고딕 성당의 전통을 잘 계승하면서도 가우디의 독창적인 형태와 구조를 갖춘 건물이다. 1882년부터 착공에 들어간 이래 [age(1882-03-19)]년이 지난 지금도 공사가 끝나지 않았다. 일단 공식적으로는 가우디 100주기인 2026년에 완공 예정이다.[15]

성당이 완공된다면, 예수를 상징하는 탑이 성당의 가운데에 가장 높게 위치하게 된다. 설계된 탑의 높이가 172.5 m로, 완성된다면 울름 대성당의 161.5 m를 넘겨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당이 될 것이다. 172.5 m인 이유는 바르셀로나의 몬주익 언덕이 173m라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하느님이 만든 것을 넘봐서는 안 된다는 가우디의 겸손한 의도다.[16]

2. 명칭

사그라다 파밀리아라는 성당명이 일본측 번역에서 유래한 '성가족'으로 불리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17] 한국 천주교의 공식 용어를 따라 성가정으로 번역함이 맞다. '성가정(聖家庭, Holy Family)'이란 가톨릭에서 모든 가정의 모범이 되는 예수, 성모 마리아, 나자렛의 성 요셉의 가정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서 이 성당의 정식 한국어 이름은 속죄의 성가정 대성전이다.

성당 공사를 시작한 3월 19일나자렛의 요셉 성인의 축일이다.

3. 역사

이 성당의 건축주는 교회나 정부가 아닌, 일개 종교 서적 출판사의 사장이었던 주제프 마리아 보카베야(Josep Maria Bocabella)이다. 그는 신앙이 부족한 도시인 바르셀로나에 '속죄하는 의미'로 신자들의 힘을 모아 성당을 건축할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건설 초반에는 신자들이 보낸 기부금으로만 지었다. 당시 카탈루냐의 시대적인 측면에서 보자.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카탈루냐 지방은 산업혁명의 여파로 굉장히 변화가 많았고, 독실한 종교인의 시각으로는 눈 뜨고 못 볼 꼴들이 많이 벌어지던 시대였다. 특히 사회주의적인 사상도 팽배했고 종교시설 다수가 파괴되는 사건들도 종종 일어났다.[18]

성당의 첫 수석건축가는 가우디가 아니라 교구 건축가였던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델 빌라르(Francisco de Paula del Villar)였는데, 그가 설계한 것은 전통적인 고딕 성당의 양식을 본딴 네오 고딕 양식이었다. 그래서 빌라르가 시작하고 가우디가 마무리한 이 성당의 지하는 네오 고딕 양식이라, 이 성당의 전체 양식과 맞지 않는다. 1882년에 착공했지만 1883년 빌라르가 기술고문과 불화하던 끝에 사임하자, 감독으로 참여하던 가우디가 성당의 수석건축가가 되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19]였던 가우디는 성당을 설계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기쁘고 빠르게 잡았다.

가우디는 설계변경을 몇 차례 하던 끝에 지금의 안을 내놓았다. 가우디는 공중부벽(flying buttress) 등으로 지탱되던 기존의 고딕 양식 건물을 '목발'에 의지하는 딱한 인체로 여겨서 고딕 양식을 보완, 재구성하여 자신만의 양식으로 성당을 설계하였다.

가우디는 카탈루냐 지방이 하느님께 죄를 지었다는 생각에 성당 공사에 몰입했고, 친구나 가족들마저 사라진 이후에 자신의 집을 버리고 성당 지하의 작은 방에서 거주하며 설계를 이어갔다. 가우디 사후에도 건축을 진행할 성당 건축위원회의 요구에 따라 가우디는 세밀한 성당 모형을 만들어야 했다.

1926년에 사고로 노면전차에 치여 가우디가 사망하였는데, 이 당시에는 성당의 남동쪽과 북동쪽 일부만 완성된 상황이었다. 이후로도 계속 다른 건축가들이 가우디의 설계를 해석하며 공사를 계속 진행했지만, 1936년 시작된 스페인 내전 기간 동안 하층민들의 폭동으로 성당 지하에 있던 가우디의 사무소가 불타고 모형을 비롯한 많은 자료가 소실되었다. 가우디의 묘지도 파헤쳐졌다. 그 동안 만들어져 있던 성당의 첨탑 4개도 폭파하겠다는 위협을 받았지만 카탈루냐 민병대가 보호하여 성당은 무사할 수 있었다. 1950년대에 와서야 건축을 다시 시작하였다.
파일:external/static.wixstatic.com/bdea0a_d2b086c07ff6763f5d3dfec1b795c188.jpg
가우디가 사망했던 1926년의 성당 모습
현재도 이 건축물의 공사를 이어가는 건축가들은 카탈루냐 지방 사람으로만 구성하는데, 그들의 모습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지하에서 유리벽을 통하여 볼 수 있다.
파일:성 파밀리아 대성당 2019.jpg
2019년 2월의 모습
2019년에는 뒤에 위치한 탑들도 제법 많이 올라간 모습이다.
파일:Sagrada_Familia_2021.jpg
파일:Sagrada_Familia_2021_2.jpg
2021년의 모습
2021년에는 코로나로 인해 공사 진척이 빨리되지는 못했지만 세부적인 요소들이 많이 완성되어 완성된 모습을 점차 찾아가기 시작했으며, 성모 마리아(Virgin Mary)탑이 완공된 모습을 볼 수 있다.

2022년에 '성 루카 복음사가 탑'과 '성 마르코 복음사가 탑'이 완공되었다.#
파일:Sagrada_Familia_2023.webp
2023년의 성당 모습
파일:Sagrada_Familia_231002.jpg
2023년 10월에 완공된 복음사가들의 탑

2023년 10월 복음사가들의 탑 4기가 모두 완공되었다. 여기에 성당 메인 출입구 역할을 맡을 영광의 파사드와 성당 중앙의 예수 그리스도 탑과 회랑까지 건설이 완료되면 성당이 완공될 것이다.

4. 건축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건축 역사, 특징을 설명하는 영상. 가톨릭평화방송 제작)

4.1. 왜 오래걸리는가

파일:external/www.iluminet.com/VISITA-BENET-XVI-041.jpg 파일:external/mw2.google.com/49528483.jpg
내부 전경 대성당 지하에 있는 가우디의 무덤
사실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이유로 "동시대에 비견될 다른 건물 이상으로 복잡해서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일단 가우디가 1926년 사망한 이후 공사는 계속되었지만, 1936년 시작된 스페인 내전 기간 동안 건축이 중단되어 1950년대에 와서야 건축을 다시 진행했다. 또한 건축가가 사망한 상태에서 남은 불완전한 설계도를 해석[20]하여 건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성당 건축의 완성도를 위해 꼼꼼한 과정을 거치는 것[21]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적은 인원으로 공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충분히 자본과 인력을 조달받는다면 현대의 기술로 성당 건축이 이렇게 오래 걸릴 이유는 없다. 그러나 바로 이 점이 역설적으로 관광 세일즈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성당 건축비는 상당부분 관람비에 의존하기 때문에 관광객의 유치는 건축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22] 다만 스페인 정부에서는 가우디 100주기가 되는 2026년까지는 완공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발표하고, 장비와 인원을 늘려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완공까지 22세기는커녕 200년이 더 걸린다는 말이 나오는 시점에서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에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 치밀한 완성도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소수 인원과[23] 작은 부분을 조각하는 것에 있어서도 충분히 검토한 후에 진행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자금과 건설 인력은 충분하지만, 상대적으로 시간디자인 인력이 부족[24]하기 때문에 세세한 부분까지 손대지 못하고 계속 공사를 진행한다는 우려가 있다.

원통형 종탑 12개는[25] 마치 거대한 옥수수들이 하늘로 치솟은 듯 보인다. 주변에 높은 건물들이 없어서 원래 높이보다도 더 높게 보인다. 이 옥수수 같은 구조는 사실 안에서 밖으로 뚫린 구멍들로, 완성된 종탑 내부에 이 설치되었을 때를 예상해서 종소리가 온 바르셀로나에 퍼지도록 꼭대기의 종에서 땅바닥을 향하는 각도로 뚫렸다. 스피커의 전면에 송송 뚫린 구멍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4.2. 형태와 배치

파일:attachment/uploadfile/SFc01.jpg
완공 상상도
바르셀로나의 도로 구획이 사선이기 때문에, 이 성당의 정면 방향은 전통적인 서쪽이 아닌 남동쪽을 바라본다. 가우디가 직접 만든 부분은 북동을 보는 부분이고, 성당의 정면이 아니다.

"직선은 인간이 만든 선이고, 곡선은 하느님이 만든 선이다."
- 안토니오 가우디
이 성당을 구성하는 외벽 선은 거의 모두가 곡선 형태다. 이는 그 당시의 서구 건축역사에서 보기 드문 개념이었다. 그러나 가우디가 미적인 감수성에만 의존하여 성당의 형태를 곡선으로 설계한 것은 아니다. 고딕 양식 특유의 공중 부벽(flying buttress)을 "보기 딱한 목발"이라고 불렀던 가우디는 부벽을 덧붙이지 않으면서도 건물의 안전성을 높이고자 곡선 형상에 적합한 구조 역학까지 배려해 건축을 진행했다. 그는 성당의 구조를 결정하기 위해 실을 천장에 매달고 모래주머니 또는 납추를 중간에 매달아 휘어지는 형태를 측정했는데, 이러한 현수선(catenary)은 구조적으로 안정되어 이를 설계에 반영했다.사진
파일:사그라다 파밀리아 평면도.jpg
평면 배치도
완성된 도면에 따르면 높이 100 m 남짓한 종탑이 12개가 들어서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12사도를 상징한다.[26] 이외에 중앙에 세워지는 170 m짜리 가장 큰 탑(J)은 예수를, 그 뒤의 탑(M)은 성모 마리아를 상징한다. 또 별도의 탑(E) 4개는 복음사가 4명(루가(E1),요한(E2),마르코(E3),마태오(E4))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성가정'을 보여주며 라틴 십자가 형태의 성당에 회랑을 설계했는데 성당을 순례하는 묵주기도를 비가 오는 날에도 할수있게 하려는 의도를 담은 것이다. 회랑의 모서리에는 각각 기물을 보관하는 성구실(S1,S2),세례당(B),성찬 예배당(P)이 회랑 북쪽에는 성모 승천 예배당(CH)이 설치될 예정이며 2024년 현재는 서쪽 성구실(S1)만이 2016년에 완성된 상태이다.

가우디가 남긴 북동쪽의 '탄생의 파사드(예수탄생)'(NA)는 완성된 상태이고, 남서쪽의 '수난의 파사드(예수수난)'(PA)도 완성된 상태다. 가장 중요한 남동쪽 정면의 '영광의 파사드(예수영광)'(GL)는 2002년부터 건축을 시작했고 이 성당 건축의 정점을 장식하는 170 m 높이 예수 그리스도 탑을 2026년에 완성한 뒤에 마무리 공사를 2034년까지 할 예정이다.

동쪽 '탄생의 파사드' 조각들은 가우디 시절에 조각했는데, 여기 인물상들은 모두 가우디가 살던 동네 사람들을 일일이 석고로 본을 뜬 후 그걸 보고 크게 돌로 조각했다. 조각 중 아기의 석상도 있는데, 조산원에 가서 일찍 죽은 아기의 시체에 석고 본을 떠서 조각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가우디의 '탄생의 파사드' 부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았다. 반대쪽 '수난의 파사드'는 가우디가 죽고 30년 후 조셉 마리아 수비라치라는 모더니즘 조각가가 맡았다. 그래서 가우디가 설계한 파트와는 조금 느낌이 다르다. (수비라치의 인물상들은 가우디와 완전 반대 성향으로 각진 정형화 및 일부 추상화가 가미되며 얼굴 부분이 음각되어서 어떤 방향에서 바라봐도 감상자를 쳐다보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가우디가 실제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본떠 묘사했다면 수비라치는 간결하고 직선을 주로 사용하여 묘사했다. 이 때문에 널리 알려진 면의 반대쪽을 보고 실망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수비라치는 시대에 맞는 예술적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던 모양이다.
파일:성가족내부.jpg
내부 모습

성당 내부는 가우디가 숲속을 걷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설계하여 상당히 이색적이다. 나무와 꽃을 닮은 기둥과 천장의 형태가 인상적이다. 각 기둥에는 가톨릭 성인의 상징 문양 등이 있다. 내부의 색은 흰색인데, 이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햇빛에 비치면 그 색을 그대로 벽면에 새겨지도록 설계한 것이다. 동쪽에서 동이 트면 파랑과 연두, 초록 등의 색상으로 구성된 스테인드글라스에 빛이 비추어 탄생을 비유하고, 서쪽으로 해가 지면 빨강, 주홍, 노랑으로 사망을 나타낸다. 특이하게도 스테인드글라스에 그림이나 인물 모양 없이 검은색으로 성인들의 이름만 적었다. 여타 성당에 비해 스테인드글라스의 색이 선명해 태양의 위치에 따라 다른 색이 성당 안을 가득 메우며, 이 때문에 일조량이 많은 날 낮에 가야 성당 내부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설계상 높이가 172.5 m, 현재 높이 약 140 m(복음사가의 탑 기준)의 이 거대한 건물은 바르셀로나의 '스카이라인(산이나 건물이 하늘에 그리는 윤곽)'을 바꿨다는 평을 받는다. 가우디 건축의 특징은 '건축물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기능은 반드시 유지하되 그 외형과 내부공간을 어떻게 구성하여 인간의 상상력을 최대한 자극시킬까.'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흔히 건축물이라고 하면 고정되고 딱딱하고 위치가 바뀌지 않을 듯한 느낌을 주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마치 금방이라도 어디론가 움직일 듯한 모양새다.

4.2.1. 북쪽 면: 동쪽 성구실(Sacristy East/Sagristia Est)

회랑 모서리의 기물을 보관하는 곳이다. 2024년 현재는 미완성된 상태이다.

4.2.2. 북동쪽 면: 탄생의 파사드 (Nativity Façade/Façana del Naixement)

파일:Nativity Facade.jpg
탄생의 파사드 보는법
탄생의 파사드는 성당의 북동쪽 면으로 가우디가 살아있는 동안 완성되었다. 빌라르가 지은 지하실을 제외하고는 가우디가 이 곳부터 가장 먼저 지었는데 성당 내부부터 만들 경우 가우디 사후 예산 부족이나 가우디 본인이 그런 것처럼 후임자가 설계를 변경할수 있어서 종탑을 높게 지어 중앙부의 높이 설계를 변경하기 어렵게 하고 다른 부분을 완성하지 않으면 성당으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지어진 파사드이기 때문에 현재 주 출입구로 사용되지만, 성당이 완성되면 메인 출입구는 영광의 파사드로 옮겨질 예정이다. 예수의 탄생 관련 내용으로 구성되는데, 가장 부조가 많고 화려하며 곡선 위주라 따뜻한 느낌이 든다.

출입문이 세 곳 있다. 왼쪽은 요셉에게 헌정된 희망의 문, 오른쪽은 성모 마리아에게 바쳐진 신앙의 문, 가운데는 예수에게 헌정된 사랑의 문이다. 종탑 4곳은 사도 마티아스(1) 사도 유다 타대오(2), 사도 시몬(3),사도 바르나바(4)[27]를 상징한다. 종탑은 공중에서 계단으로 연결되었는데, 입장료를 내고 올라가서 가우디의 작품을 가까이서 볼 수 있으며, 바르셀로나 시내 전경 또한 한 눈에 들어온다.

4.2.3. 동쪽 면: 성찬 예배당 (Sacrament Chapel/Capella del Sagrament)

파일:사그라다 파밀리아 세례당 예상도.jpg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찬 예배당의 예상도
회랑 모서리의 성찬 예배를 하는곳이다. 2024년 현재는 미완성된 상태이다.

4.2.4. 남동쪽 면: 영광의 파사드 (Glory Façade/Façana de la Glò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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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파사드는 성당의 남동쪽 면으로 2002년부터 건설이 시작되었는데, 완공되면 메인 출입구가 될 예정이다. 영광의 파사드는 예수의 영광을 드러내는 부분으로 지옥과 최후의 심판, 영생을 주제로 한다. 큰 기둥 21개가 주요 건축물이 될 예정이다. 기둥 21개는 성령칠은[28], 칠죄종[29], 칠극(七剋)[30]을 의미한다. 기둥을 구름 모양 조각이 감싸는데 구름에는 사도신경의 첫 구절 "Credo in unum Deum Patrem Omnipotentem, creatorem coeli et terrae."(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를 새길 예정이다. 또한 출입문의 양옆에서 한쪽에는 물을 뿜는 분수가, 다른 편에는 불을 뿜는 버너가 설치될 것이다.[31] 종탑 4개는 각각 사도 안드레아스(9), 사도 베드로(10), 사도 바오로(11)[32], 사도 대 야고보(12)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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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파사드 주 출입문은 이미 완성되었는데 50가지 언어로 주님의 기도를 새겼다. 양쪽 아래에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한국어 글귀도 있다.

영광의 파사드는 완공될 때까지 극복해야 할 큰 장애물이 있으니, 바로 출입구 진입로이다. 가우디가 살아있던 시절 성당의 남동쪽 방면은 공터였고 여기가 주 출입구였다. 그래서 원래의 가우디 설계에 따르면 성당 앞 마요르카 도로 위로 지나가는 공중계단을 건설하여 차량은 그 아래로 다니고 사람은 맞은편 공터에서부터 계단으로 출입해야 한다.

그러나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맞은편 공터에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버렸다. 원래 설계를 실현하려면 그 건물들을 모조리 구매해서 철거해야 하는데, 예산은 큰 문제 없지만 거주민들의 반발이 심한데 그 이유는 관광객들로 인한 피해와 이 영광의 파사드의 자료가 스페인 내전 당시 분실되어 다시 수집하는 과정에서 가우디의 원래 설계인지 후임자들이 추정한 것인지 불확실해져서 토지주들이 건물들을 짓는 과정에서 성당측이 소송을 걸었다가 이 때문에 패소해서 나갈 이유가 없다는 이유이다. 그래서 성당 내부의 벽체와 주 출입문만 지은 상태로 현재 2024년 3월까지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으며 2034년까지의 마무리 공사시기까지 완성하기 위해 거주민들과 협상을 진행 중이다.

4.2.5. 남쪽 면: 세례당(Baptistery/Baptiste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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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다 파밀리아 세례당의 예상도
회랑 모서리의 세례를 하는곳이다. 2024년 현재는 미완성된 상태이다.

4.2.6. 남서쪽 면: 수난의 파사드 (Passion Façade/Façana de la Passi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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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의 파사드 보는법
수난의 파사드는 성당의 남서쪽 면으로, 가우디 사망 후 가우디가 남긴 도면과 지침에 따라 1954년부터 '조셉 마리아 수비라치'가 설계하고 건설하였다. 가우디가 남긴 도면이 완벽하게 디테일하지는 않기 때문에 수비라치의 해석이 많이 반영되었다. 그런 이유로 반대쪽 탄생의 파사드와는 전혀 다른 추상적이고 정형화된 직선 위주 형상이라 전혀 다른 건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가우디는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표현한 이 파사드가 관람객에게 경외심과 고통, 공포를 상기시키길 바랐고, "단단하고 벌거벗었으며 마치 뼈로 만든 것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33]

수난의 파사드는 남서쪽 방향이기 때문에 해질녘의 잠깐을 제외하고 항상 그늘지기 때문에 더욱 어둡고 무거운 느낌을 주는데, 이는 가우디가 모두 의도한 사항이다. 이에 따라 탄생의 파사드는 인물들도 사실적으로 부드럽게 묘사된 반면 수난의 파사드는 인물들이 추상적이고 각진 딱딱한 양상이다. 또한 탄생의 파사드는 빈 공간이 없이 덩굴 잎사귀 조각이 빼곡하게 들어차 따뜻한 숲 속 같은 느낌이지만, 수난의 파사드는 최소한의 부조만 있어 황량하고 쓸쓸한 느낌이 드는데, 그마저도 뼈 모양 기둥들이 감싸 그 느낌이 더욱 배가된다. 종탑 4개는 사도 소 야고보(5), 사도 바르톨로메오(6), 사도 토마스(7), 사도 필리포스(8)를 상징한다.

4.2.7. 서쪽 면: 서쪽 성구실(Sacristy West/Sagristia O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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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랑 모서리의 기물을 보관하는 곳이다. 2016년에 완성되어 현재 사용중이다.

4.2.8. 북서쪽 면: 성모 마리아 탑(The tower of the Virgin Mary/Torre de la Mare de Déu),성모 승천 예배당(Chapel of the Assumption of the Virgin Mary/Capella de l'Assumpci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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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서 바라본 모습과 꼭대기의 별
성모 마리아 탑은 성당의 북서쪽 면으로 2021년 완공되었다. 성당의 다른 3면을 차지한 파사드 3곳에는 예수의 12제자를 상징하는 탑 12기가 있으나, 북서쪽 면에는 성모 마리아 탑 한 기만 있거니와 다른 탑보다 훨씬 굵고 높다. 물론 가장 높은 탑은 마지막에 완성될 중앙의 예수 그리스도 탑이 되겠지만, 그 다음으로 큰 탑이다. 꼭대기에는 지름 7.5미터, 무게 5.5톤짜리 12각 별을 올렸는데[34] 낮에는 햇빛이 반사되고 밤에는 조명이 켜져서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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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승천 예배당의 예상도
또한 성모 마리아 탑의 뒷편 회랑의 중심에는 성모 승천 예배당이 2025년에 세워질 예정이다.

4.2.9. 중앙부: 복음사가의 탑(The towers of the Evangelists/Torre de Evangelista),예수 그리스도의 탑(The towers of the Jesus Christ/Torre de Jesú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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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사가의 탑은 중앙의 예수 그리스도 탑을 둘러싸는 탑 4기로, 신약성경의 4 복음서를 집필한 루가(E1)[35], 사도 요한(E2), 마르코(E3)[36], 사도 마태오(E4)를 상징한다. 높이는 성모 마리아 탑보다 조금 낮지만 12사도의 탑들보다는 높고, 굵기는 파사드의 12사도 탑과 비슷한 정도로 가늘다. 꼭대기에는 전통적으로 복음사가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장식되었는데, 각각 황소(루가), 독수리(요한), 사자(마르코), 천사(마태오)이다. 이 상징물은 성당 내부의 네 기둥의 메인램프에도 장식되었다. 상징물 아래에는 20면체가 있는데 여기서 조명이 나와 추후 완공될 중앙의 예수 그리스도 탑을 비출 계획이다. 또한 루가/마르코 탑에는 엘리베이터가, 사도 마태오/사도 요한 탑에는 계단이 설치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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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28일 루가 탑과 마르코 탑이 완공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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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9월 27~28일에는 각각 사도 마태오 탑과 사도 요한 탑이 완공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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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탑의 3D 그래픽 영상
2026년에 완성될 예수 그리스도의 탑은 십자가로 장식되어 있고 십자가의 유리창으로 바르셀로나의 모습을 볼수있는 전망대가 설치될 예정이다.

4.3. 교황 베네딕토 16세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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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GLORIAM ET LAUDEM DEI
BENEDICTUS PP. XVI, PONTIFEX MAXIMUS,
HANC BASILICAM RITE DEO DICAVIT
ECCLESIAM BARCINONENSEM PASCENTE
CARDINALE DOMINO ALOISIO MARTINEZ SISTACH

BARCINONE, VII, XI, ANNO DOMINI MMX

하느님의 영광과 찬미를 위하여 베네딕토 16세, 교황이요 최고사제장은 유이스 마르티네스 시스타치 추기경이 바르셀로나의 교회를 사목하는 때에 이 바실리카를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바르셀로나에서, 천주강생 2010년 11월 7일
2010년 11월 7일에는 교황 베네딕토 16세바르셀로나를 방문해 이 성당에 대한 준대성전(Minor Basilica) 승격 겸 축성 미사를 봉헌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축성 미사 전문(영어). 성당 건물이 완공되거나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축성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언제 완공될지 아직 장담할 수도 없는 성당이 축성받는 일도 드물거니와 준대성전으로 승격됨은 극히 이례적인 사례이다. 일반인들뿐 아니라 교계에서도 이 성당에 관심이 각별함을 보여준 것이다.

축성 이전까지는 내부공사가 덜 되었는데, 교황이 격려차 방문해 직접 미사를 집전하겠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부랴부랴 미사를 집전할 수 있을 만큼 내부공사를 진행했다는 설이 있다.

5. 세계 최장기 불법 건축물

지구상에 현존하는 최대 규모의 불법 건축물이었다고 뒤늦게 드러났다. 그것도 무려 137년 동안이나 그 상태가 지속되었고, 이 부문에서 현존하는 건축물들 중에서는 단연 세계 최장기 기록을 세웠다.

2015년, 아다 콜라우(Ada Colau) 시장이 취임하면서 바르셀로나시 행정을 대대적으로 점검했다. 이때 시청 도시계획과에서 성당이 주변 도로와 시설에 상당히 근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당의 토지등기부를 찾아보려고 했다. 도시계획과 공무원들은 주변시설이 성당 토지를 침범했다고 여겨서 성당의 토지등기부를 보고 확실하게 경계를 정해 시설을 이전할 생각이었으나... 무슨 연유인지 성당의 토지등기부가 보이지 않았다. 도시계획과는 성당의 토지등기부가 어딘가 처박혀 있으리라 생각하고 찾아다녔다. 하지만 그렇게 1년여간 수색하던 끝에 설마설마하던 결론에 도달했다. 그 누구도 대성당에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았던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1882년 성당 공사의 첫 삽을 뜨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건축을 시작하던 때에 성당 터의 행정구역은 바르셀로나시가 아닌 산 마르티(Sant Marti)시였다. 건축이 시작되고 3년이 지나 1885년, 가우디는 성당의 수석건축가로서 산 마르티 시청에 건축 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37] 하지만 산 마르티 시청에선 무슨 이유인지 가우디가 신청한 건축 허가를 승인도 거부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신청서만 받고 어영부영 넘겼다. 그러다가 1897년 산 마르티가 바르셀로나에 합병되자 관리감독의 권한은 당연히 바르셀로나시청에 넘어갔지만, 이런 와중에 아무도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허가 없이 건축 중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로 130여 년이 흐른 것이다.

2016년 바르셀로나시청에서 공식적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무허가 건축물이라는 사실을 발표하고 성당 건축위원회와 협의에 들어갔다. 본래 스페인의 건축규정은 무허가 건축물이면 파괴하고 원복하도록 하지만, 일정기간 해당 건축물이 이의제기 없이 존재했을 경우 존속을 허락한다. 참고로 카탈루냐는 이 기간이 6년인데, 바르셀로나시가 문제를 인지한 시점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이미 공사를 시작한 지 130년이 넘었으므로 법률상으로도 성당의 존속을 인정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이를 '권리행사의 태만에 의한 권리의 소멸'[38]이라고 한다. 간단히 말해서, 어떠한 권리(이 경우에는 정당한 토지사용권자의 토지사용권)가 상당한 기간 동안 침해된 상태였는데도,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나 단체가 아무도 없었으므로 원래의 권리자가 해당 권리를 포기했다고 간주한다는 것이다.[39]

물론 존속과 벌금은 별개이다. 무허가 건축물이기 때문에 어쨌거나 벌금을 내야 했다. 130여 년 동안 누적된 벌금을 계산, 합의한 결과 성당 건축위원회는 3600만 유로(약 4천만 달러 또는 466억 원)를 차후 10년간에 걸쳐 시청에 지급하기로 하였다. 물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1년 입장료 및 헌금 수입은 내야 할 벌금보다 큰 650억원 수준이라 예산에 큰 지장은 없다고 한다#.

2019년 6월 7일, 공사를 시작한 지 137년 만에 이행강제금을 납부하고 정식으로 착공 허가를 받아 합법건축물이 되었다.기사

6. 특징

특히 해가 질 무렵 붉은 노을을 받았을 때 성당의 모습은 황홀경 그 자체다. 가우디는 40년 동안 이 성당 건축에 혼신의 힘을 다했으며 1926년 노면전차에 치여 사망할 당시에도 성당 앞에서 상념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사후 그가 안장된 곳 역시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지하. 유네스코는 가우디의 또 다른 작품인 구엘 공원과 카사밀라 등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하면서 "인간의 창조적 천재성이 과연 어디까지 뻗칠 수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며 극찬했다.

반면 1984, 동물농장 등으로 유명한 언론인 조지 오웰스페인 내전바르셀로나에서 의용군으로 복무하면서 공화군 민병대들이 "다른 건물은 잘만 폭파하는데도 흉측하게 커다란 성당은 또 예술 작품이라면서 내버려뒀다."라면서 수기집인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깠다. 오웰의 사회주의적인 이념 성향을 생각해 보면 당시 프랑코의 쿠데타 세력과 결탁한 가톨릭 교회에 대해 적개심을 표출하는 게 당연하지만, 당시 카탈루냐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던 전국 노동 연맹 소속의 아나키스트 민병대원들은 다른 성당들은 모조리 철거했으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경우 특유한 매력에 감화되어 이 성당만큼은 철거를 하지 않기로 카탈루냐 자치 정부인 제네랄리타트와 서로 협의하여 보존하는 방향이 된 것이다. 이거까지 부수면 그야말로 문화대혁명이 되어버린다

또한 역설적인 건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가치관을 가졌던 가우디가 이 건물을 계획한 이유 자체가 상술한 아나키즘 같은 급진 좌파 세력들을 보고 "쯧쯧, 바르셀로나가 이런 빨갱이 천지가 되면 하느님한테 밉보이겠다. 멋진 성당을 새로 지어 도시 전체 스케일로 참회해야지."라는 발상, 즉 아나키스트 본인들 입장에서는 자기들을 죄인 취급했던 별로 달갑지 않았을 법한 동기에서 착수했다는 것이다.

가우디의 건축은 사실 카탈루냐 지방의 건축적 전통을 충실히 계승했다. 많은 작품에서 카탈루냐 지방에서 볼 수 있는 타일 공예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점이 유명하며, 시공도 지역 장인들에게 의존했다. 이 성당의 몬세라트의 검은 성녀를 포함한 많은 외부 장식, 구조적 요소도 카탈루냐 전통적인 고딕 건축 양식에서 따온 것이다. 바르셀로나 구 시가지에 있는 바다의 성모 마리아 성당 (Santa María del Mar), 바르셀로나 대성당 등에 가보면 격자형 기둥 장식 등을 비롯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에서도 보이는 많은 전통적 건축 요소를 볼 수 있다. 사실상 전통적인 마지막 고전식 성당 건설이라고 해도 좋다.

가우디는 같이 일하는 노동자들을 많이 배려했다. 성당 남서쪽 수난의 파사드 근처에는 작은 집이 있는데, 바로 노동자들의 자녀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다. 노동자들이 성당을 짓는 데 신경을 쓰느라 아이들에게 소홀해질 수 있는 부분을 세심하게 잡아낸 부분이며 현재는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흔히 성당이라고 하면 당연히 석조라고 생각하겠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완전한 석조 성당이 아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정석대로 로 짓기 시작했지만, 1950년 경에 근처 채석장의 돌이 바닥난 뒤로는 철거된 석조 건축물의 자재를 재이용 하다가 그것마저도 바닥난 지금은 이란이나 영국 등지에서 채취한 돌을 가공해서 이를 근처에서 한데 합친 다음 그 사이에다가 철근 콘크리트를 집어넣은 '패널'을 만들고 그걸 현장에 있는 또 다른 철골구조물과 연결하는 방식으로 만든다.[40] 누군가는 순수한 석조 건물이 아니라고 실망할 수 있겠지만, 가우디는 이 성당의 재료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지정한 적이 없으며, 콘크리트를 사용한다고 해서 건축물의 격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20세기의 걸작 건축물들은 거의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성당 지하에는 현대식 박물관이나 화장실이 있고, 탑 내부에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등 현대 건축물로서의 요소도 있다. 북동쪽의 종 탑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가 계단으로 내려올 수도 있다. 단, 원형 계단에 난간이 없으니 심약자는 주의. 지하의 박물관에는 가우디의 스케치, 모형, 사진 등이 있다. 성당은 지금도 공사 중이기 때문에 내부에는 시멘트 포대와 공구가 여전히 흩어져 있다.

가우디는 이 성당의 건설기간을 200년으로 잡았다. 한마디로 예상 완공년도를 2082년으로 잡은 것.[41] 그런데 유럽의 건축물들을 보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처럼 건설기간이 170년 남짓 되는 건축물부터 밀라노 대성당처럼 건설기간이 400년을 훌쩍 넘어가는 건축물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해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공사기간은 다른 성당들보다 비교적 짧다는 것. 아무래도 수백 년씩 걸려 짓는 근대 이전의 건축 방식을 21세기인 현재까지 지속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건물이라는 점이 눈여겨 볼 부분인 듯하다. 가우디가 사고로 사망한 후 다른 건축가들이 일을 이어받아 대신 건설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바르셀로나 내에서도 2026년에 완공시키겠다는 스페인 정부의 입장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2026년에 완공을 안 시킬 거 같다는 예측도 많다. 이 성당은 100년이 넘게 건축 중이라는 것이 가장 큰 메리트고, 완공되면 그냥 유럽에 흔히 있는 성당의 하나처럼 여겨질 것 같다는 이유 때문. 여기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까지 겹치면서 완공이 예상보다 한참 미뤄지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지만 코로나 사태가 일단락 된 이후부터는 스페인 정부가 2026년 완공을 위해 바짝 건설 속도를 올리고 있다.

공사 기간이 길다보니 오래전에 지은 부분은 때가 타 최근에 지은 부분과 색차이가 꽤 나기도 한다.

고딕 양식이 대개 그렇긴 하지만, 이 성당은 워낙 높이나 경사, 모양, 색조 때문에 밤에 조명이 거의 꺼진 상태로 보면 은근히 공포 분위기마저 느껴진다.[42]

세계문화유산이며 현재 공사 중인 관계로 홈페이지에서 예매를 받아 하루 입장 인원수를 제한한다(가우디 투어는 예외). 성수기에 방문한다면 방문 최소 일주일 전에는 미리 홈페이지에서 예약하자. 만약 예약을 놓쳤다면 가우디 투어에 합류하거나 홈페이지에서 취소표를 기다려보자. 취소표가 10분에 하나씩은 난다.

테러의 표적이 될 뻔 했다.


아시아나항공 신규 노선 광고 영상

대한민국에서 이와 비슷한 건축물로는 매미성이 있다. 공사가 현재진행중이고, 토지 침범으로 건축법 위반 요소가 있다.

7. 매체

8. 기타


[1] 가우디 생전에 지어진 북동쪽의 탄생의 파사드가 보인다.[2] 색이 어두울수록 지어진 지 오래된 부분이다.[3] 왼쪽은 '수난의 파사드'가 보이고, 오른쪽은 '탄생의 파사드'가 보인다. '영광의 파사드'는 완성이 아직 되지 않았다.[4] 가우디가 사망하자 가우디가 설계하지 못한 부분을 이어 설계한 인물이다. '수난의 파사드'가 바로 이 사람의 작품이다.[5] 모데르니스메(Modernisme)는 카탈루냐 지방의 특정한 근대 양식을 말한다. 모더니즘 양식과 단어는 비슷하지만 의미는 다르다.[6] [age(1882-03-19)]년째 및 [dday(1882-03-19)]일째.[7] 마무리 공사는 2034년까지이다. 원래 가우디가 예상했던 준공 연도는 2082년이었다.[8] 통상 성당은 완공 후에 축성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완공되지도 않은 성당을 교황이 직접 방문하여 축성부터 하였다는 것은 교황청이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보여주는 증거이다.[9] 2023년 1월 기준 140m 정도까지 만들어진 상태다. 예정대로 완공된다면 161m의 독일 울름 대성당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당이 된다.[10] 2005년 등록확장[1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12]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13]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14] 그 전에는 '대성당'이라고 불렀으나,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완공되기도 전에 대성전으로 축성하여 그 위상이 격상되었다(하단 참조). 대성당이라고 부르는 것이 틀린 호칭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천주교 성당의 지위 구분에 따르면 대성당(cathedral)은 엄밀하게는 주교좌성당(명동대성당이 대표적이다)을 뜻하는 말로 쓰이므로, 대성전(basilica)이 더 정확한 명칭이다. 참고로 바르셀로나 대주교좌가 있는 주교좌성당은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아니라 흔히 '바르셀로나 대성당'이라 부르는 성십자가와 성에울랄리아 대성당(Catedral de la Santa Creu i Santa Eulàlia)이다.[15] 그러나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로 2026년보다 더 늦게 완공될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코로나가 일단락된 이후 스페인 정부가 공사 속도를 바짝 올리면서 예정대로 2026년까지 성당 건설을 마친 다음 마무리 공사를 2034년까지 할 예정이다.[16] 심지어 가우디는 자신이 사망한 뒤 후대의 자손들이 자신의 이런 의도를 어기고 성당을 더 높이 만들 것을 우려하여 성당을 지탱하는 지하 예배당을 173m 까지의 무게만 지탱할 수 있도록 건축했다고 한다.[17] 일본 천주교회에서는 Holy Family를 '聖家族(성가족)'으로 번역한다.[18] 카를 마르크스가 했던 "정신은 물질의 생물학적 부산물이다."라는 말처럼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교회들을 파괴하였다. 이 무렵 스페인의 가톨릭 성직자나 수도자들이 봉변을 당하는 일도 많았다.[19] 얼마나 독실했는지 건축학교 시절 과제로 요한묵시록을 하든가, 설계하던 도중 수도원으로 은둔한다든지, 40일 동안 금식을 하거나…[20] 원래 가우디의 집안은 주물 장인이라, 그가 만든 건축물 중 대부분은 주물로 모형을 만든 후 내부를 채우는 형식이었으니 후배 건축가들이 난감하게 여겼음은 당연하다. 내전 때 가우디의 작업실에 화재가 나서 가우디가 남겼던 설계와 모형이 많이 소실된 탓도 있다. 성당 지하의 박물관에서 파괴된 모형과 그것을 복원해놓은 모습을 볼 수 있다.[21] 세부 장식물을 디자인하여 모형제작 후 검토하여 실제 시공.[22] 사실 현재 필요한 건설 비용은 다 모았고, 공사만 남았을 뿐이다.[23] 앞서 말했듯이 건축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카탈루냐인들로만 구성한다. 게다가 가우디가 내건 제약도 적어서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면서도 건축을 진행할 수 있다.[24] 그나마도 설계에 없는 부분은 상상력으로 메꾸어야 하니 골 때리는 일이다.[25] 2024년 현재는 8개만 완공된 상태[26] 요한과 마태오가 복음사가의 탑으로 가면서 대신 바르나바와 바오로가 들어와서 12개다.[27] 사도 바오로처럼 12사도에는 포함되지 않는 사도이다.[28] 성령이 신자들에게 베푸는 슬기, 통달, 의견, 굳셈, 지식, 효경, 경외 등 일곱 가지 은총을 말한다.[29] 가톨릭 전통에서 그 자체로서 죄이면서 또한 다른 죄의 원인이 되기에 '죄들의 근본'이 된다고 고른 7가지 악덕을 말한다. 각각 교만, 인색, 질투, 분노, 음욕, 탐욕, 나태[30] 칠죄종의 일곱 가지 악덕에 대항하여 이길 수 있는 일곱 가지 미덕을 말한다. 각각 겸손, 자선, 친절, 인내, 순결, 절제, 근면.[31]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한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상징한다.[32] 단 사도 바오로는 12사도에는 포함되지 않는다.[33] 실제로 수난의 파사드 면의 기둥들은 정말 뼈처럼 생겼다.[34] 여기서 12각 별은 요한묵시록에서 '묵시록의 여인'(성모 마리아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됨)이 쓴 12개 별로 된 관을 상징한다. 이는 성모 마리아를 묘사하는 미술 작품들에서 즐겨 쓰이는 상징이다.[35] 12사도에는 포함되지 않는다.[36] 12사도에는 포함되지 않는다.[37] 스페인 건축 규정에 따라 건축허가를 받으려면 일단 지자체에 토지 사용 허가부터 받아야 한다. 사용을 허가받은 해당 구역을 urban area라 부른다. 허가가 떨어지면 이런저런 관련서류를 넘기고 이를 검토하는 과정이 최대 10년이 걸리는데, 10년까지 서류에 대한 답변이 없으면 서류가 허가받았다고 친다. 허가하지 않는다면 지자체가 서류를 추가로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방식이다. 근데 여기선 urban area 허가부터 받지 않았다.[38] "권리 위에 잠자는 자 보호하지 않는다." 라는 법언으로 유명하다.[39] 이러한 규정은 기간 등 세부 사항의 차이만 있을 뿐 다른 나라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에도 점유취득시효 제도가 존재한다.[40] 이는 이런 조치가 없이는 수백 미터가 넘는 높이를 자랑하는 첨탑 부분이 강풍이나 지진을 제대로 견딜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41] 생전에 가우디는 "내 의뢰인(하느님)께서는 서두르지 않으신다"고 말하며 완공 속도보다 완벽한 건물을 짓는 것을 강조했다.[42] 이는 가우디의 의도된 설계라는 이야기도 있다.[43] 심의문제로 다리 부분이 지느러미로 되어 있다.[44] 참고로 이 인간 베이브 루스의 60번째 홈런볼을 받은 사람이 앉았던 벤치에 트럼프 기업 회장의 화장실 휴지까지 훔친 경력이 있었다. 도둑이 된 계기가 프란시스코 프랑코 치하 독재정에서 국가 단위의 반달리즘에 휘말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