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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 |
보은 속리 정이품송 報恩 俗離 正二品松 Songni Jeongipumsong Pine Tree, Boeun | |
소재지 |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상판리 17-3번지 |
관리자 | 보은군 |
분류 | 자연유산/천연기념물/문화역사기념물/민속 |
수량/면적 | 1주 |
지정연도 | 1962-12-07 |
가지 절반이 잘려나가기 이전의 모습
1. 개요
報恩 俗離 正二品松.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상판리에 있는 수령 600~700년의 소나무. 1962년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세조가 얽힌 전설이 있어 대중들에게는 한국의 천연기념물 중에서도 매우 유명하다.2. 특성
높이 15 m, 가슴 높이 둘레 4.5 m, 가지 길이 동쪽 10.3 m, 서쪽 9.6 m, 남쪽 9.1 m, 북쪽 10 m이다. 삿갓이나 우산을 편 버섯 모양으로 가지가 자라 아름답고 웅장한 모습이었지만, 1993년 강풍으로 서쪽 가지가 부러져서 생기를 잃었다.[1]생물학적 가치도 높다. 그도 그럴 것이 동아시아에서 소나무는 건축 자재,[2] 땔감, 송진 등 쓸모가 많아 오래된 나무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수백여 년 동안 왕실과 정부에게 보호를 받아온 이 소나무는 한반도의 고중세 생물유전자원으로서 가치가 아주 높다. 또한, 세조가 얽힌 일화를 간직하여 역사적 스토리텔링 자료 및 관광자료로서 가치도 높이 평가받는다.
3. 세조와 얽힌 일화
세조가 재위 10년(1464) 속리산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소나무 아랫가지에 걸릴까 염려하여 연(輦)이 걸린다고 말하자 소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번쩍 들어올려 어가(御駕)를 무사히 지나가도록 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세조는 이 소나무에 정2품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이후 조선 왕조 내내 왕실의 보호를 받았다.세조가 부정적으로 재평가받는 현대에는 세조가 자신의 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해 프로파간다의 일환으로 정이품송 설화같이 자신과 관련된 긍정적인 설화를 퍼뜨렸을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3] 그리하여 정이품송의 명성도 어느 정도 빛이 바랬고, 역사적 스토리텔링 자료 및 관광자료로서의 가치 또한 교차검증을 위한 가치로 격하된 감이 있다. 그에 따라 정이품송보다는 차라리 단종의 능인 장릉에 있는 충절송과 정령송이 역사적으로 훨씬 가치 있는 소나무라는 인식도 생겼다.[4] 다만 충절송은 단종 당대에 심어진 나무는 아니라는 평이 대세다. 실제 보면 정이품송보다 훨씬 작은, 수령이 별로 안되는 나무다. 즉 최근에 심어진 나무인데다 인지도도 너무 낮아서 역사적 가치까지 둘 수 있을진 의문.
4.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103호
속리산 법주사로 가는 길 한가운데 서 있는 속리의 정이품송은 나이가 약 600살 정도로 추정되는 소나무로, 높이 14.5m, 가슴높이 둘레 4.77m이다.
이 소나무가 정이품송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세조 10년(1464)에 왕이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이 소나무 아래를 지나게 되었는데, 가지가 아래로 처져 있어 가마가 가지에 걸리게 되었다. 이에 세조가 "가마가 걸린다"고 말하니 소나무가 자신의 가지를 위로 들어 왕이 무사히 지나가도록 하였다고 한다. 또 세조가 이곳을 지나다가 이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리하여 세조는 이 소나무의 충정을 기리기 위하여 정이품(현재의 장관급) 벼슬을 내렸고, 그래서 이 소나무를 정이품 소나무라 부르게 되었다.
이 소나무는 살아오는 동안 각종 재해를 입었는데, 특히 1980년대 초 솔잎혹파리의 피해 때문에 많은 비용을 들여 대규모 방충망을 설치하기도 했다. 이 소나무는 원래 삿갓 또는 우산을 편 모양으로 단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는데, 1993년 강풍으로 서쪽 큰 가지가 부러져 그 모습이 많이 상하였다.
속리의 정이품송은 나무의 모양이 매우 아름다우며, 크고 오래된 나무이어서 생물학 및 생물유전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고, 임금에게 섬기는 그 시대상을 잘 전해주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등 문화적인 가치 또한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이 소나무가 정이품송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세조 10년(1464)에 왕이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이 소나무 아래를 지나게 되었는데, 가지가 아래로 처져 있어 가마가 가지에 걸리게 되었다. 이에 세조가 "가마가 걸린다"고 말하니 소나무가 자신의 가지를 위로 들어 왕이 무사히 지나가도록 하였다고 한다. 또 세조가 이곳을 지나다가 이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리하여 세조는 이 소나무의 충정을 기리기 위하여 정이품(현재의 장관급) 벼슬을 내렸고, 그래서 이 소나무를 정이품 소나무라 부르게 되었다.
이 소나무는 살아오는 동안 각종 재해를 입었는데, 특히 1980년대 초 솔잎혹파리의 피해 때문에 많은 비용을 들여 대규모 방충망을 설치하기도 했다. 이 소나무는 원래 삿갓 또는 우산을 편 모양으로 단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는데, 1993년 강풍으로 서쪽 큰 가지가 부러져 그 모습이 많이 상하였다.
속리의 정이품송은 나무의 모양이 매우 아름다우며, 크고 오래된 나무이어서 생물학 및 생물유전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고, 임금에게 섬기는 그 시대상을 잘 전해주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등 문화적인 가치 또한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5. 정이품송 소개문구
보은 속리 정이품송은 높이 16.5m, 가슴 높이의 줄기 둘레는 5.3m이며, 수령은 약 600년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모양이 아름답고 큰 소나무이다. 이 소나무에는 얽힌 이야기가 있다. 조선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로 행차할 때 임금이 타고 있던 가마(연)가 이 소나무 아랫부분 가지에 걸리게 되어 임금이 "나뭇가지에 연이 걸린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이 소나무는 스스로 가지를 위로 들어 올려 임금의 가마가 무사히 지나가도록 했다고 한다. 이를 기특하게 여긴 세조가 그 자리에서 지금의 장관급에 해당하는 정 2품의 벼슬을 이 소나무에 내렸다. 이때부터 이 소나무는 <연 걸이 소나무> 또는 <정이품송>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6. 기타
보은군의 마스코트인 정이와 송이가 정이품송을 모티브로 했다.
청주역의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 스탬프.
대한민국 기본료 160원 시기 보통우표.
보은군청은 정이품송 맞은편에 3만 ㎡ 넓이로 터를 확보하여 훈민정음마당(정이품송공원)을 건설했으며(한겨레, 경향신문), 2019년 1월부터 문을 열었다.
사진출처 : LG사이언스랜드 - 천연기념물 정이품송을 아버지로 둔 소나무
정이품송의 첫 자식인 장자목(長子木)의 모습.
2023년 8월 10일 태풍 카눈으로 인해 정이품송의 가지 2개가 부러졌다.조선일보
7. 외부 링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보은 속리 정이품송
- 두산백과 : 보은 속리 정이품송
- 한국어 위키백과 : 정이품송
- 시사상식사전 : 정이품송
- 한국민속문학사전 설화 편 : 보은속리정이품송
- 대한민국 구석구석 : 보은 속리 정이품송
- 답사여행의 길잡이 : 속리의 정이품송
[1] 이때뿐만 아니라 최근까지도 폭설이나 태풍, 강풍과 호우 등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어 예전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2] 매우 튼튼해서 집을 짓고 선박을 만드는 데에도 많이 쓰였다.[3] 2019년 영화 광대들: 풍문조작단에서는 이런 프로파간다설을 차용해 영화의 줄거리로 삼았다.[4] 참고로 중국 태산 오대부송과 황산 영객송도 이런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