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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1 00:41:13

변호인(영화)/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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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송우석 (송강호 扮)3. 최순애 (김영애 扮)4. 박동호 (오달수 扮)5. 차동영 (곽도원 扮)6. 박진우 (임시완 扮)7. 이윤택 (이성민 扮)8. 김상필 (정원중 扮)9. 이석주 (송영창 扮)10. 강형철 (조민기 扮)11. 장수경 (이항나 扮)12. 박병호 (차광수 扮)13. 이흥기 (한기중 扮)14. 윤성두 (심희섭 扮)15. 기웅 (조완기 扮)16. 미스 문 (차은재 扮)17. 이창준 (류수영 扮)18. 엄태남 (박수영 扮)

1. 개요

변호인(영화)의 등장인물을 다루는 문서. 문단 순서는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표기된 순서를 따랐다.

다음 링크는 영화 속 등장인물의 모티브가 된 당시 실제 인물들을 정리한 글이니 참고하면 좋다.

2. 송우석 (송강호 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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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석 (배우: 송강호)
(모티브: 노무현)
노무현의 변호사 시절을 모델로 만들어진 인물. 대전광역시에서 판사직을 거친 고졸 출신의 세무 변호사로 극중에 나오는 송우석은 전에서 부산으로 내려오자마자 부동산 등기부터 시작해서 세금 전문 변호사로 승승장구하였다. 그렇게 떼돈을 버는데 작중 부산 변호사 모임 때 변호사들이 대화를 하면서 '문디 등신같은 짓 하네. 부동산 등기 일을 변호사가 해도 되나? 그거 원래 사법서사(現 법무사)들 하는거 아닌가?', '법이 바뀌어서 변호사도 가능하답니다.',[1] '대학 어디 나왔다는데? 고졸이라고? 그럼 그렇지.' 하며 자존심을 내세워 송우석을 비하하는 대화가 나온다. 그런데, 이 대화에 송우석 본인도 자기 정체를 감추고 끼어 있었다. 이후 김상필이 송우석을 소개하자 당연히 이 변호사들은 금세 말을 아낀다.[2]

굴지의 대기업인 해동건설에서 스카웃 제의까지 받게 되지만, 우연히 부산 부독련사건[3] 변호를 통해 인권 변호사로 각성하고 그 후 각종 시국, 공안사건 및 노동쟁의 변호인으로 활동하게 된다. 처음에는 소시민적이면서도 약간 속물적인 모습을 보이며 학생들이 공부하기 싫어서 데모하는 거라며 학생 운동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다. 이 때문에 동창생인 윤택과 단골집에서 대판 싸웠다. 사실 이때 송우석은, 소위 SKY 출신 변호사들 때문에 숱한 고생을 하곤 했었다. 이것이 고학력 지식인들에 대한 적대감으로 표출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1달이 넘도록 행방불명이었던 단골 국밥집[4] 순애의 아들인 진우가 부독련 사건에 얽혀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모습에 충격을 받고 진우가 읽은 책들을 밤새 읽은 후 자신에게 사건을 맡아줄 것을 부탁했던 김상필을 찾아가 "이런 게 어딨어요,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라고 말하며 진우를 비롯한 학생 9명의 변호인이 된다.

1차 공판 때는 진우를 비롯한 피고인들이 포승줄로 결박되었고 팔에 수갑이 채워져 있는 것을 보고 재판을 시작하기도 전에 관련 법조(형사소송법) 조항을 모두 읊고, 검사가 이 사건은 국보법 사건이라고 말을 끊자 관련 헌법 조항[5]을 읊고는 피고인들의 포승줄과 수갑을 풀어줄 것을 요구하고, 의자에 앉을수 있도록 한다. 2차 공판 때는 직접 영국 외무부의 전보를 받아서 진우가 읽은 책들이 불온서적이 아님을 피력하고, 6.25 전쟁에서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우방국인 영국까지 빨갱이로 뒤집어씌울 거냐며 판사와 검사에게 팩트폭력을 날린다. 그리고 4차 공판 때는 사건을 조작한 진범인 차동영의 앞에서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을 외치며 열성적으로 진우를 변호한다. 처음에는 속물적이었지만 사회의 부조리를 겪고, 인권에 눈을 뜨게 되면서 원칙적이고 강직하게 변해가는 입체적인 인물.
송우석의 실제 모델인 노무현도 송우석처럼 고졸 출신으로 삼수 끝에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험이었던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대전지법에서 판사로 6개월간 재직 후 귀향하여 부동산 등기 전문 변호사와 세무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부림사건의 피해자 고호석의 회상에 따르면, 실제로 노무현은 조세 전문 변호사로 승률이 아주 높고 돈을 갈퀴로 쓸어담는다는 이야기를 듣던 변호사였다. 노무현은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은 세무 업무에 꽤 도움이 되었다"고 자서전에 쓴 바 있다. 기초적인 회계학, 즉 부기의 지식이 없다면 아무리 법조문에 정통해도 세법 관련 업무를 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당시 변호사들 중에 이런 역량을 갖춘 사람은 드물었다. 다만 부산상업고등학교는 당시 중학교에서 1, 2등 아니면 원서를 써 주지도 않을 정도로 지역 탑클래스 고등학교였기에, 설명만큼 빽이 없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 빽이 법조계에서 도움이 되지야 않겠지만...

그리고 당시 법조인 중 90%는 불온 단체 서울대 법대, 9%는 고려대 법대여서, 어찌보면 가방끈 짧은 것도 맞다. 동료 문재인도 경희대 법대 출신이었으니 당시 기준으로는 가방끈이 짧은 셈이다. 노무현과 함께 일한 장원덕의 인터뷰에 의하면 상고 선후배들이 사건을 줬다는 이야기가 있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노무현의 형 노건평은 부산지역의 세무사였고 사건을 물어다 주면서 상부상조도 했다고. 그리고 위 인터뷰에 의하면 등기를 은행에서 떼는데 당시 부산상고는 은행을 가거나 아니면 대학을 갔다. 즉 은행 가면 죄다 노무현 선후배들이라는 것. 실제로 이제는 끝물이기는 하지만 지역 은행에서는 당시 경남상업고등학교와 함께 양대 파벌이라고 한다.

공교롭게도 노무현이 김해시 진영읍의 봉하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송강호도 김해시의 가락면(당시 김해군 가락면, 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에서 태어났다. 또한 노무현의 첫 정계 진출은 부산광역시[6] 동구에서 제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이다.

3. 최순애 (김영애 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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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석의 단골식당 주인.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정이 많고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는 선량한 소시민 아주머니다. 작중으로부터 7년 전, 송우석이 막노동 일을 하며 힘겹게 가족을 부양했을 때 이 식당에서 무전취식을 하고 도망가며 진우에게 들킨 적이 있었다. 이후 현재 시점에서 빚을 갚게 되는데 "묵은 빚은 돈 몇 푼으로 빚 갚는 거 아니다, 마음과 발로 갚는 거다. 자주 오란 말이다!"고 하면서 송우석의 사례를 거절했다.

송우석이 영업이 끝났는데도 고등학교 동창들과 국밥집에서 밥을 먹다 TV 뉴스에 나온 학생 운동 건 때문에 이윤택과 갈등을 넘어 몸싸움까지 벌여 국밥집을 어지럽히게 된 사건에서 지극한 자식 사랑이 드러난다. 송우석이 이걸 돈으로만 해결하려 하며 진우와도 언쟁을 벌이다 "너 그렇게 싸가지 없게 굴면 밖에서 호로자식 소리 듣는다"고 말하자 마침 이걸 들은 최순애가 분노하여 송우석에게 소금을 뿌리며 쫓아내기도 한다. 남편도 일찍 잃고 혼자 진우를 부양한 순애의 역린을 건드린 꼴이었다. 이런 일을 겪었지만 아들인 진우가 국보법에 걸려 잡혀 들어가자 전에 소금 뿌린 거 미안하다며 싹싹 빌고 제발 좀 도와달라며 송우석에게 눈물로 호소하게 된다.

그 후 송우석의 도움을 받아 구치소에서 아들 진우를 면회하지만 만신창이가 된 진우의 모습에 이성을 잃고 바로 옆에 있던 교도관의 멱살을 잡으며 네가 이랬지? 이 찢어 죽일놈아!!를 외치면서 몸싸움을 하려 한다. 이 억울한 고통을 계기로 우석이 사회 정의에 회의감을 느끼고 변호인으로 거듭나게 되므로 매우 중요한 인물. 재판에서 패하고 침울한 우석에게 "너는 할 만큼 했다"며 격려한다. 국보법 재판 자체가 군사정권이 멋대로 결과를 정해놓고 벌이는 부조리이기 때문이다. 6년 후에는 우석의 재판에 방청객으로 착석한다.

4. 박동호 (오달수 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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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덕을 모델로 만들어진 인물. 송우석 사무실의 사무장으로 개업 초기 혼자 사무실을 운영한 송우석은 점점 일감이 많아지게 되자 선배 변호사를 통해 사무장을 수소문하게 되고, 소개로 찾아온 박동호를 채용하게 된다.[7] 송우석이 옛날에 신세를 졌던 국밥집 아지매에게 은혜를 갚으려고 만날 국밥집에 가서 점심을 먹느라 이 사람도 지겹도록 돼지국밥만 먹게 된다. 처음에는 국밥이 맛있다고 좋아했지만 나중에는 지겨워서 다른 것 좀 먹자고 애원한다.
꽤 실력 좋은 사무장인지, 변호사들이 너도나도 부동산 등기업무에 뛰어들어 매출이 줄어들자 세무 관련으로 전문 분야를 돌리자고 제안하며 자신의 인맥으로 많은 여러 건수를 물어온다. 송우석의 부하직원이라기보다는 거의 동업자의 모습. 실제로 박동호가 더 나이가 많은지라 초반에는 "사무장님", "변호사님" 하면서 상호 존댓말을 하다가 친해진 다음에는 우석은 "형님"이라고 지칭하고 박동호는 "송변"이라고 하면서 말을 놓는다. 밑에 나오는 "오늘부로 송변 니는 니 편한 인생 니 발로 걷어 찬기라"가 대표적. 이 부분은 실존인물인 노무현이 탈권위적이었던 것과 비슷하다.
작중에서 처음엔 진우 변호건에 대해 말리고 해동건설 건에 대해 계약하자고 주장하며 한때의 우석처럼 소시민적인 태도를 보였다. "오늘부로 송변 니는 니 편한 인생 니 발로 걷어 찬기라"는 대사에 압축된다. 이때 송우석이 우리 자식들은 억울하지 않은 세상에서 살아야지 않겠냐고 말하자 자신의 자식은 유학보낼 거라면서 송우석을 끝까지 말렸다. 그러나 변해가는 우석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에 닿은 게 있었는지 공안이 탈세 혐의를 핑계로 마구 휘저어 아수라장이 된 사무실을 묵묵히 지키고 비서에게도 '너도 울지 말고 같이 정리나 하자''고 말하며 일어나 움직인다. 송우석이 험난한 길로 나아가는 걸 원하지 않았지만 송우석이 선택한 길이니 결국 따라가는 동지. 에필로그에서도 방청석에 앉아있다. 박동호의 모티브가 된 장원덕 인터뷰.

5. 차동영 (곽도원 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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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작의 최종 보스이자 메인 빌런. 부산중부경찰서 소속. 과거 일제강점기 특별고등경찰[8]이었던 아버지를 6.25 전쟁 때 학살로 잃었다.

악랄한 고문 기술자로 서울에서 '공적'을 인정받아 부산 부독련 사건 조작 현장에 특별 파견되었다. 국가가 있어야 국민을 지키고, 약간의 희생이 있어도 국가권력은 공고히 유지되어야 하며, 자신은 경찰이라는 입장에서 필요악적 존재로 더러운 일을 맡아 한다는 비뚤어진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실상은 진짜로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간첩을 수사해서 잡는 대신 무고한 사람을 고문해 간첩으로 만드는, 실제 대한민국 군사독재정권 시대의 대부분의 공안수사관이라던 작자들과 비슷한 정치경찰이다. 이는 송우석이 재판정에서 발언한, 후술되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으로 부정되는 사고방식이다.

진우 일행을 고문하여 거짓 자백을 받아내더니 법정에서 송우석의 증인 신청에 당당히 응한다. 국가권력에 저항하는 사람을 빨갱이 취급하고, 별 상관 없는 일에도 6.25 전쟁이 아직 안 끝났다는 사실을 끌고 오는 등, 당시 군부정권이 쓰던 정당화 논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면서 본인이 잡는 건 진짜 그런 북괴 간첩 같은 게 아니라 힘도 없고 빽도 없는 학생들 뿐이라는 게 코미디. 송우석이 재판중 "니는 니가 애국자 같나? 천만에! 니는 애국자가 아이고, 죄없고 선량한 국가를 병들게 하는 버러지고, 군사정권의 하수일 뿐이야!"는 일침을 찌르는 말에 달리 대응할 말이 없는지 벌컥 화를 내며 "입 닥쳐! 이 빨갱이 새끼야!"라고 소리친다. 다르게 해석해 볼 여지도 충분한데, 작중 차동영이 보여주는 행동은 전형적인 국가주의의 최악의 형태를 보인다. 자신이 충성하는 '국가'를 위해서는 어떤 행동도 합리화되는 식이다. 이런 차동영의 국가관은 국보법을 앞세우는 증언 태도와 조작을 해서라도 예방해야 한다는 수사 철학(?)에서도 옅보인다. 그런 국가관이 송우석을 통해 근본부터 부정당했으니, 자신의 애국심과 근본이 부정당하는 '억울함'에 글썽이며 분노했을 수도 있다. 감독이 어떤 연기를 주문했는지, 배우가 어떤 심정으로 이 연기를 했는지 인터뷰가 있다면 확실하겠지만, 작중 내 장면으로는 이런 상반된 해석도 가능하다. 마지막에 자신의 부하 윤성두가 증인으로 등장하자 잽싸게 재판장 밖으로 나갔다가 검사가 궁지에 몰렸을 때 돌아온다. 군대에 연락해서 군의관인 윤성두의 휴가 기록을 말소하여 헌병들에게 군무이탈자로 끌려가게 만드는 꼼수를 쓴 것. 이후 행적은 불명.[9]

제작 발표회에서 "영화 속 역할 때문에, 임시완의 팬클럽이 제일 두렵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시사회 무대 인사에서도 "이 손이 임시완을 때린 손입니다! 제 손을 잡으면 임시완의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관객들과 손을 잡았다고 한다. 이 밖에도 관객들에게 직접 박카스를 나눠주기도 하는 등 무대 인사에서 상당히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영상
피해자들 및 가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차동영과 가장 가까운 실존 인물은 당시 고문 기술자로 악명을 떨쳤던 이근안이다. 실제로 차동영의 모티브는 이근안이다.

6. 박진우 (임시완 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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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사건 피해자 고호석과 송병곤을 모델로 만들어진 인물. 최순애의 아들로 작중 부산대 공과대학[10] 1학년생이다. 송우석이 학생 운동에 대해 고등학교 동창인 이윤택과 한바탕 싸운 뒤 "엄마가 저렇게 고생해서 너 공부 시키는데 너도 데모하면 천벌받는다"고 말하자 "바위는 아무리 강해도 죽은 것이고 계란은 아무리 약해도 산 것[11]" 이라고 받아친다. 여성들을 모아놓고 야학을 운영했다. 수업 내용이나 참가한 여성들이 '누나한테 첫사랑 얘기 좀 해봐' 라며 박진우를 놀리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도 운영되던 여공들 대상 야학이었던 듯하다. 그런데 차동영 일당이 야학을 습격하여 공안에게 납치되듯이 잡혀가 온갖 고문들을 당한다. 영화에서는 구타, 물고문은 기본이고 얼굴에 수건을 덮고 라면 국물을 코와 입에 부어버리는 속칭 코렁탕 고문, 손발을 철봉에 묶어 온몸을 패는 '통닭구이' 고문까지 재현했다. 그 수위는 남영동1985와 맞먹을 정도. 처참한 고문을 당한 후 어머니가 구치소로 면회 갔을 때, 진우는 우석이 말을 걸자마자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했으며 어머니를 알아보자마자 의자에서 일어서려다 제대로 서지 못하고 쓰러졌다. 실제로 임시완은 1주일 동안 고문 장면을 찍다가 얼굴의 실핏줄이 터져 한동안 선글라스를 끼고 다녔다. 하지만 적나라한 고문 장면이 거북했다는 사람들도 있다. 임시완은 당시 아이돌 활동과 고문 연기를 병행했는데, 덕분에 캐릭터 감정 잡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숙소 안에서는 진우의 우울한 감정을 유지하느라 방 안에서도 잘 안 나왔다는 카더라가 있다. 임시완의 고문 연기에 쏟아부은 노력은 현장토크쇼 TAXI에 출연한 광희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다. 그 시대의 청년들이 마주해야 했던 폭력성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실제는 저것보다 더 심했을 테니까. 박진우의 모티브가 된 송병곤의 글. 그 후 사건과 관련된 1차 공판에서 진우는 판사의 고압적인 질문에 자술서를 본인이 썼다고 말하고 손도장조차 자신이 찍었다고 말하지만, 3차 공판에서는 직접 증인석에 앉아 자신이 취조당할 때의 상황과 느낌을 이야기해 자백이 진실이 아님을 고백했다. 최종 공판이 끝난 후에는 3년형에서 2년후 가석방이라는 조건으로 감경된 처벌을 받았다. 6년 후엔 우석의 시위대 앞에서 박종철의 영정을 들고 있었고,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소설에서는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

7. 이윤택 (이성민 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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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석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부산신보 사회부 기자. 아지매 국밥집에서 송우석과 싸우는데, 정직한 기자들은 죄다 신문사에서 쫓겨난다고 울분을 토하면서도, 본인은 생계 때문에 정부의 보도지침에 입 닫고 직장에 앉아 있던 자기혐오가, 그 당시 파워 속물근성 및 아무것도 모르고 술 취해서 망언하던 송우석을 보고 폭발한 듯하다. 학생 운동을 두고 송우석과 갈등을 겪은 후 법원에서 학생들의 변호인으로 온 송우석에게 "니 돈 좀 버니까 심심했는가베?", "니 정치 하려고 그러나?"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는 "아침부터 소주가 땡긴다"며 기사 취재는 한 후배에게 떠넘기고 다른 후배 기자들을 데리고 술 마시러 갔다. 그런데 정작 재판할 때는 방청석에 있던 걸 보면 마음을 바꿔 다시 온 듯하다. 송우석의 진심을 안 후에는 4차 공판 직전 계란 테러로 옷이 더러워진 송우석에게 자신의 옷을 대신 입으라고 건네고, 이후 우석이 증인을 확보하자 우석의 부탁대로 외신 기자들을 대거 불러와서 언론의 힘을 보여준다. 이성민은 실제로는 부산, 경남 출신이 아닌 경상북도 봉화군 출신으로 그의 대사를 자세히 들어보면 부산 억양이 아닌 대구, 경북 억양이다.

8. 김상필 (정원중 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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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에게 부림사건을 넘겨준 변호사 김광일을 모델로 만들어진 인물. 송우석의 선배격의 인물로 작중 독재정권에 의해 변호사 자격 중지 상태가 돼서 사건을 맡아줄 변호사를 찾아다닌다. 한편으로는 다른 변호사와의 이야기에서 '이걸로 우리까지 얽으려 할 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송우석에게 여러 충고를 했을 때 현실에 좌절하는 인물로 보이기도 했지만, 극후반부에는 송우석의 제1변호사이자 변호사 99명의 대표가 된다.
DVD 코멘터리에서 감독이 해당 인물은 김광일이 맞다고 인증하였다. 김광일은 판사 출신으로 박정희 정권의 입맛에 반하는 판결을 하다 좌천된 뒤 사표를 내고 인권 변호사로 활동한다. 먼저 정계에 입문하여 노무현을 김영삼에게 추천하여 정계 입문 시킨 것이 바로 김광일이다. 3당 합당 직후에는 노무현과 함께 꼬마민주당에 남았으나 민주당이 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할 당시 합류하지 않고 정주영이 만든 통일국민당으로 갔다. 이후 다시 김영삼 진영에 합류해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특히 탄핵 직후인 2004년 월간조선 인터뷰에서는 노무현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변신에 능한 야심가'라며 엄청나게 깠다. # 김광일은 2010년에 향년 70세로 사망하였다.

9. 이석주 (송영창 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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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독련 사건 담당의 단독부 판사.

변호사들을 모두 불러 모아 대충 정리하자고 말한다. 사실상 답정너국가보안법 사건인 데다가 사법부도 군사정권의 영향력 아래에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뻔한 짜고 치는 고스톱일 수밖에 없다. 재판 직전에도 송우석을 불러 본인의 방에서 해동건설에서 스카웃된 마당에 뭣하러 국보법 피의자를 변호하느냐며 살갑게 대하기도 한걸봐서는 혐의를 전면 부정하리라고는 상상을 못하고 피고인과 변호측이 '서로 편한 게 편한 거지' 라는 사고이겠다. 나중에 윤택이 외국 기자들을 모아준 덕분에 결국 윤성두를 증인으로 채택하지만 차동영의 계략에 의해 송우석과 증인을 퇴정시킨다. 그래도 뿌리까지 악인은 아닌 듯, 비록 3년형을 선고하긴 했어도 검사측에 2년 뒤 가석방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애초에 처음에도 송우석에게 피의자 중 친척이 있냐고 물으면서 더 챙겨주겠다고 말한 것을 보면 최대한 낮은 형량을 선고해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국보법을 들먹이며 고자세로 일관하긴 했지만 시종 검사 측이 송우석에게 논리로 밀린 데다가 외신까지 들이닥친 상황이고, 본인도 해당 사건이 부당했다는 것을 인지했는지 이 정도에서 마무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듯.
당시 실제 재판에서 판사를 맡은 사람은 변호사 서석구로, 부림 사건에서 1심재판에서 피고인 이호철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가 진주지원으로 좌천당했다. 이후 변호사를 개업했다. 또한 김영삼 정부 시절만 해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망언을 남기며 전두환 전 대통령을 기소유예 처분한 검찰을 비판하고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등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중반부터 성향이 변했는지 5.18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반대하고 세월호 참사 유족들을 비판하는가 하면 박근혜를 옹호하며 앞장서서 변호하고, 태극기 집회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극우 성향으로 전향하였다.

10. 강형철 (조민기 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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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독련 사건의 담당 검사. 차동영과 결탁하여 부독련 사건의 학생 9명을 기소한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차동영이 고문으로 받아낸 자백만을 증거로 유죄 판결을 받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송우석이 자신이 내놓은 증거를 모조리 반박하고, 피고인이 무죄임을 입증하는 여러가지 증거를 제출하여 자신을 압박하자, 크게 송우석에 의해 완전히 코너로 몰렸으나, 차동영이 윤성두의 휴가 기록을 말소하자 다시 상황이 급변되어 윤성두를 탈영병으로 만들어, 그의 증언을 무효화 하는데 성공했으나, 결국 다른 변호인들과 타협해 징역 3년을 구형하는 대신 2년 후 가석방으로 풀어주기로 하는 양형 거래를 한다.
당시 담당 검사 최병국을 모델로 만들어진 인물로 차동영과 달리 무능한 모습만 강조되었다. 재판 중 조지 포먼과 무하마드 알리에 대한 변론에 김일성 찬양이라고 이야기한 게 최병국이라고 한다. 이 내용은 훗날 월간 '말'지에 자세하게 묘사되었다.

11. 장수경 (이항나 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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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석의 아내. 남편을 물심양면으로 내조한다. 우석과 티격태격하며 사랑싸움(?)을 하는 장면이 상당히 귀엽다. 압권은 "애들 잔다"며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우석에게, 그가 채용한 미모의 비서를 두고 바가지를 긁다가 우석의 말빨에 넘어가는 부분. 상대가 생활 연기의 달인인 송강호라 중요하지 않은 배역임에도 케미가 상당히 좋다. 송우석이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을 지지하지만, 4차 공판 직후 집으로 아들 건우[12]의 신상과 관련된 의문의 전화를 받고 송우석의 5차 공판을 말리는 등 마음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권양숙을 모델로 만들어진 인물이나 유사점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소설판 및 영화의 삭제 장면에선 송우석의 장인이 빨갱이란 뉴스가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송우석이 좌절하는 장면이 나오기는 한다.

12. 박병호 (차광수 扮)

부독련 사건의 변호인 중 한 명. 공안 검사 출신으로 법조계의 현실을 잘 알아서 '국보법 사건은 어차피 유죄로 끝날 테니 형량이나 줄이면 다행이다'란 소극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송우석이 '고문에 의한 진술서는 법대로라면 증거능력이 없다'고 정론을 말하자, '법대로라면 현직 대통령부터 군사반란 및 내란죄로 구속됐어야 한다'는 현실론에 따라 판검사에게 적당히 굽힐 것을 요구하며 사사건건 충돌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송우석을 보고 생각이 변한 듯 나중에는 결국 인정하고 변론에 적극 가세하며, 송우석이 퇴장당 한후에도 비록 무죄 판결까지는 아니지만 최대한 선처를 호소해 적은 형량으로 합의를 보는데 성공한다. 이후 송우석의 99명 변호인에도 이름을 올려 4번째로 호명된다.

공안 검사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부터 구속됐어야 한다고 말하는 등, 그 역시 당시 상황에 대해 부당하다고 느끼며 반감을 가지고 있으나 직접 대항하지는 못하는 이들을 뜻한다는 해석이 있다.

공교롭게도 이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 차광수는 동시대를 다룬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저 현직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허삼수 역을 맡았었다.

13. 이흥기 (한기중 扮)

14. 윤성두 (심희섭 扮)

대한민국 육군 중위 군의관. 차동영의 밑에 배치받고, 고문실에서는 '윤 과장'으로 불리며 고문 취조를 당하는 학생들의 진료를 맡는다. 진심으로 괴로워했는지, 심하게 구타당한 진우를 응급치료할 때 '기절한 척하고 있어'라고 말하고 "링거 맞고 있을 동안은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도 한다. 결국 마지막 공판 당시 휴가를 나와 짜장면 배달부를 매개로 송우석과 접촉, 증인으로 나서서 증거 조작 및 고문 사실을 폭로하지만 차동영의 계략에 의해 탈영병으로 전락하여 육군 헌병들에게 끌려가고, 그의 증언 역시 삭제된다. 정황을 보면 차동영이 위에 얘기해 윤성두의 휴가 신청을 무효화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주먹구구식 행정체계의 헛점을 이용해 몇 시간 만에 이미 처리된 휴가를 말소시켜 그를 근무지 이탈자로 만든다. 1987년의 추모식 때 잠깐 모습이 비춰졌다. 더불어 윤성두라는 인물은 실제 부림사건에는 등장하지 않는 인물로, 청명계획을 폭로한 윤석양을 모델로 만들어졌다.[13]

15. 기웅 (조완기 扮)

친구 진우와 함께 부독련 사건의 피고인 누명을 쓰고 모진 고문을 당한다.

16. 미스 문 (차은재 扮)

송우석이 새로 개장한 사무실에 채용된 여직원. 원래 직업은 다방 레지. 그래서인지 미숫가루 등 음료를 탈 때 굉장히 맛있게 타는 것으로 보인다. 송우석이 받아야 할 연락을 대신 받기도 하고, 박동호와 사무실 분위기를 북돋워주는 약방의 감초 역할. 송우석의 아내가 미스 문의 고용 사실을 알고 송우석을 의심했지만, 그저 해프닝으로 끝났다.

17. 이창준 (류수영 扮)

파일:변호인 이창준.jpg

해동건설 회장의 아들이자 부회장. 회사의 증여세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송우석을 찾아가 정식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한다. 이후에 송우석이 부독련 사건의 변호인이 되어서 정부의 조작에 훼방을 놓자 송우석을 짜르라는 압박이 들어오게 되고 송우석과 독대를 한다.

이 자리에서 그는 "미국 유학 시절 겪어봤던 미국식 민주주의가 진정으로 부러웠고 한국에서도 이루어지길 바란다.",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차지한 정치인들이 태반이기 때문에 혁명 등을 통해 힘으로서 민주주의를 쟁취해야 한다.", "국세청에 줄 뇌물 액수와 변호사 수임료가 비슷함에도 굳이 변호사를 고용하려는 이유는 당신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고 말하는 등 현 정권과 상황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며 단순히 옳고 그름과 따지고보면 이에 침묵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송우석을 비롯한 민주화 운동가들의 행동 역시 옳다고 생각한다는 자신의 입장을 얘기해준다.[14]

하지만 부르주아 중산층의 주도로 혁명을 이루어 내려면 중산층이 두터워져야하기에, 적어도 국민 소득을 지금의 3배 이상 올리는 등 국민들이 어느 정도 힘을 길러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지금은 일단 너무 나서지 말고 물러나라고 설득하지만 끝내 송우석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확실히 사회의식부터 최소한의 윤리의식과 정의감이 있고 확고한 소신과 철학에 멀리 볼 줄 아는 감각도 가진 인물로, 돈과 권력밖에 모르는 졸부, 문제적 재벌 2세와는 확실히 다른 면모를 보인다. 다만, 지나치게 현실적인 입장의 인물이기도 하다. 부림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1981~82년경)의 대한민국 1인당 GDP는 2천달러 대였다. 그게 3배가 된 때는 1987~89년 3저 호황기다. 어?![15]

관점에 따라선 이창준이 당시 독재 정권에 반감을 가지고 부당한 부분이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으나 직접 저항하지는 못한 '침묵하는 다수'인 중산층들을 상징한다는 해석이 있다.[16] 다른 관점에선 극중 대사로 이 시기에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는 사람인데 그런 무지막지한 짓을 벌인 자들의 정권에 괜히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싸우면 또다시 같은 비극이 생기는 것이 뻔한 만큼 일단 당장은 피하고 힘을 기르면서 현실을 감내하려는 캐릭터라고 볼 수도 있다.
배우 류수영은 송우석 역을 탐냈으나 너무 잘생긴 외모 때문에 배역에 어울리지 않았고, 이에 이창준 역할로 만족해야 했다. 류수영은 비록 특별출연이지만 영화 변호인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꼽았다.#

18. 엄태남 (박수영 扮)

류수영과 마찬가지로 특별출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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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후 법 개정으로 다시 불가능해졌다. 이 대사는 정체를 숨긴 송우석이 했다.[2] 작중 김상필은 실존인물 김광일로 부울경 최고 명문고인 경남고에 서울법대 출신의 성골 중의 성골이었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이 차렷하고 고개 숙일 만한 커리어다.[3] 실제 역사에서는 부산 학림사건, 속칭 부림사건[4] 송우석이 일을 하며 사법시험 공부를 하던 시절 외상으로 밥을 주기도 하였고, 외상을 갚을 돈이 없자 밥값을 안내고 도망가기까지 한 적이 있어 이에 대한 미안함과 보답으로 단골집을 만들었다.[5] 무죄추정의 원칙 부분이다. 국보법 사범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재판에서 그 재판에서 판결이 있기전까지는 그 사람을 무죄로 추정한다는 원칙이다.[6] 당시 부산직할시.[7] 더 나아가 커피 끓여줄 여직원을 채용했다가 아내에게 추궁을 당하게 된다.[8] 일제 시절 특별고등경찰은 '특고' 라고 불렸으며 주로 사상범이나 독립운동을 수사하던 경찰 내 특수조직이었다. 이들은 공공연한 고문으로 악명이 높았으며 일본에서조차 피의자를 고문으로 사망케 하여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사건 조작에도 능해서 조선어학회 사건과 같이 단순학술단체도 독립운동 단체로 둔갑시키기도 하였다. 정보기관이 없던 당시의 일본 제국에서 군 소속의 헌병대와 함께 사실상의 정보기관 노릇을 했다. 당연히 특별고등경찰 소속의 한국인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된다. 그리고 바로 사실상 이 특별고등경찰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기관이 바로 공안조사청.[9] 시간이 흐르면서 전두환 정부가 무너지고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서 그 사이 다시 처벌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10] '부산공대'라고 언급되는데, 부경대학교 공과대학의 전신인 부산공대와는 다르다. 부림사건이 일어났던 1981년 당시 부산공대는 부산공전이라고 불리는 국립 2년제 전문대였다. 이후 1983년에 4년제 개방대학으로 바뀌었고 1996년 부산수산대학교와 통합하면서 현재의 부경대 공과대학이 되었다. 그러나 부림사건에서 부산공전 학생은 1명도 없었고, 연루자는 모두 서울대 혹은 부산대 학생 출신이었다. 실제 모델이 된 인물도 부산대학교 재학생이었으며 영화적 맥락을 봐도 진우는 4년제 대학생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러므로 부산공대는 부산대 공대의 준말이다. 요즘 언중들은 어색하게 여기지만 1980년대에는 서울의대, 연세상대, 고려법대 따위처럼 대학 이름에 단과대의 약칭을 붙인 조어법이 흔히 통용되었다. 공교롭게도 임시완부산대 기계공학과를 재학했으며 임시완은 모교 선배이기 때문에 진우 역에 더욱 욕심이 났다고 밝혔다.[11] 최명희의 소설 '혼불' 에서 인용한 대사다. 이 대사는 2차 공판 후 진우가 송우석에게 "다 끝났다던데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라 말할 때 송우석이 이 말을 진우에게 그대로 돌려준다.[12] 모티브는 노건호.[13] 그 밖에 1992년 14대 총선 당시 군 부재자투표 부정 폭로 사건의 이지문 등 군사정권의 내부고발자도 참고한 모양.[14] 작중에서 '무고한 사람들까지 마구 죽여가면서 정권 잡은 저 사람들'이라는 말은 당시의 5.18 민주화운동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15] 실제로도 6월 항쟁이 성공하며 제5공화국의 항복선언인 6.29 선언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19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어서 계엄령을 통한 무력유혈진압이 불가능했던 이유도 있지만, 3저 호황을 통해 두터워진 중산층이 적극적으로 항쟁에 동참하며 승부의 추가 확실히 기울어진 이유가 크다. '군사정권에겐 대학생들의 투석과 화염병보다, 소등시위에 참여하며 불꺼진 압구정동 아파트가 더 큰 공포로 다가왔다'라는 회고도 있으며, 소위 넥타이부대로 불리는 화이트 칼라의 항쟁 참여는 5공 정권의 사실상 패배를 의미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16] 작중 이창준 본인도 '부르주아 중산층'이란 표현을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