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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66> 작센마이닝겐 공작 베른하르트 3세 Bernhard III | |
<colcolor=#fff> 이름 | Bernhard Wilhelm Albrecht Georg Herzog von Sachsen-Meiningen 베른하르트 빌헬름 알브레히트 게오르크 폰 작센마이닝겐 공작[1] |
출생 | 1851년 4월 1일 |
작센마이닝겐 공국 마이닝겐 | |
사망 | 1928년 1월 16일 (향년 76세) |
독일국 | |
재위 | 작센마이닝겐 공국의 공작 |
1914년 6월 25일 ~ 1918년 11월 9일 | |
최종 계급 | 육군 상급대장이자 원수[2](Generaloberst mit dem Range als Generalfeldmarschall) |
주요 참전 |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
아버지 | 작센마이닝겐 공작 게오르크 2세 |
어머니 | 프로이센의 샤를로테 |
배우자 | 프로이센의 샤를로테 공주 (1878년 결혼 / 1919년 사망) |
자녀 | 페오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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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작센마이닝겐 공국의 마지막 공작으로 제1차 세계 대전 후 폐위당했다.2. 생애
1851년 4월 1일에 작센마이닝겐 공국의 공작 게오르크 2세와 그의 첫번째 부인 프로이센의 샤를로테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1869년에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수학했지만, 도중에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참여하며 2등급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이후 다시 대학교로 복학하여 공부했다. 이후 베를린에서 프리드리히 황태자의 딸 샤를로테 공주와 결혼했고 슬하에 외동딸 페오도라를 낳았다. 1873년부터 본격적으로 군경력을 쌓으며, 1905년에는 상급대장으로 제2 분견대의 사찰관이 되었다.아버지가 1914년 6월 25일에 사망하자 그의 뒤를 이어 작센마이닝겐의 공작이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서부전선에 가서 작센마이닝겐 공국 소속 군인들을 만났다. 하지만 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제국이 패전하기 2일 전에 작센마이닝겐 공작위에서 폐위당했다.
3. 기타
예술에 조예가 깊었으며 그리스어 전문가로 번역도 많이 했다고 한다.4. 가계
아내인 프로이센의 샤를로테 공주는 가문의 유전병으로 추정되는 포르피린증이 원인인 것으로 의심받는 신경쇠약증을 앓았기에 임신 기간 동안 일반 임산부들에 비해 더 많은 고통을 호소했고 이 때문에 외동딸 페오도라를 낳고 더 이상 자녀를 낳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외동딸 페오도라(1879~1945)는 1898년 로이스-쾨스트리츠의 하인리히 30세(1864~1939)와 결혼했다.[3] 그러나 불임으로 인해 아이를 볼 수 없었고 오랫동안 건강이 좋지 않아 말년에는 슐레지엔의 히르쉬베르크 부근에서 요양하다가 본인의 불임에 대한 스트레스+부모와 남편의 사별과 형제자매와 자녀가 없는 공허감+어머니와 마찬가지로 포르피린증으로 추정되는 신경증+2차대전에서 독일의 패망으로 폴란드 점령하에 놓여지면서 폴란드인 이웃들에 독일계라는 이유로 따가운 시선을 받아 자살했다. 살리카법으로 딸 페오도라는 공작위를 상속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작센마이닝겐 공가의 당주 자리는 이복동생 에른스트가 이었다. 공작위를 떠나서 페오도라는 자녀가 없기에 베른하르트 3세의 직계는 그대로 끊겼다.- 게오르크 2세 (1826 ~ 1914)
- 베른하르트 3세 (1851 ~ 1928)
- 에른스트 (1859 ~ 1941)[4]
- 프리드리히 요한 (1861 ~ 1914)
- 게오르크 (1892 ~ 1946)
- 안톤 울리히 (1919 ~ 1940) - 2차대전 초기에 전사
- 프리드리히 알프레트 (1921 ~ 1997) - 수도자가 되기 위해 계승권 포기
- 베른하르트 (1901 ~ 1984)
- 콘라트 (1952 ~ ) - 現 당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