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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1913년의 독일 제국군의 장성급 장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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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원수 | 알프레트 폰 발더제 | 알프레트 폰 슐리펜 | 알베르트 | |
해군 원수 | - | |
상급대장 Generaloberst | ||
육군 상급대장 | - 명예원수루이트폴트 폰 바이에른 | |
병과대장 General der Waffengattung / Admiral | ||
육군 병과대장 | 게오르크 2세(작센마이닝겐)보병 | |
해군 대장 | - | |
중장 Generalleutnant / Vizeadmiral | ||
육군 중장 | - | |
해군 중장 | - | |
소장 Generalmajor / Konteradmiral | ||
육군 소장 | 베른하르트 폰 뷜로 | |
해군 소장 | - | |
※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독일 제국군의 상급대장과 대장, 중장, 소장은 각각 미군의 대장, 중장, 소장, 준장에 상응. ※ 윗 첨자 † : 전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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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66> 작센마이닝겐 공작 게오르크 2세 Georg II | |
이름 | Georg II 게오르크 2세 |
출생 | 1826년 4월 2일 |
작센마이닝겐 공국 | |
사망 | 1914년 6월 25일 (향년 88세) |
독일 제국 | |
복무 | 독일 제국군 |
최종계급 | 독일 제국군 보병대장 |
재위 | 작센마이닝겐 공국의 공작 |
1866년 9월 20일 ~ 1914년 6월 25일 | |
주요참전 |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
배우자 | 프로이센의 샤를로테 (1850년 결혼 / 1855년 사망) |
호엔로헤랑엔부르크의 페오도라 (1858년 결혼 / 1872년 사망) | |
엘렌 프란츠 (1873년 결혼) | |
자녀 | 베른하르트 3세, 게오르크 알브레히트, 마리 엘리자베트,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요한, 빅토어 |
아버지 | 베른하르트 2세 |
어머니 | 헤센-카셀의 마리 프리데리케 |
형제 | 아우구스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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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작센마이닝겐 공국의 공작이다.2. 생애
1826년에 작센마이닝겐 공국의 공작 베른하르트 2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동안 베르하르트 2세에게는 후계자가 될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게오르크의 출생은 아버지뿐만 아니라 작센마이닝겐 공국에게도 그야말로 경사였다. 이후 1843년 8월 6일에 유일한 여동생 아우구스타가 태어났다.[1]이후 1850년에 프로이센의 알브레히트 왕자의 딸 샤를로테와 결혼했지만, 샤를로테는 아들 베른하르트를 낳은 뒤 1855년에 사망하였다. 이후 작센마이닝겐 공국은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을 맞이했다.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작센마이닝겐 공국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편을 들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제국의 패배가 짙어지자 게오르크 2세는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작센마이닝겐 공국의 공작 자리를 요구했고 프로이센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였다. 게오르크 2세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프로이센의 편을 들며 2개의 연대를 지휘하였으며, 프리드리히 왕세자의 휘하에서 싸웠다. 게오르크 2세는 프랑스를 상대로 공을 세웠으며, 프리드리히 3세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다.
전쟁 이후 게오르크 2세는 배우였던 3번째 아내 덕분에 연극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자신의 아내와 함께 작센마이닝겐 극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후 1914년 6월 25일에 사망했으며 3번째 아내의 옆에 매장되었다.
[1] 이후 아우구스타는 작센알텐부르크의 모리츠 공자와 결혼하여 작센알텐부르크 공작 에른스트 2세, 옐리자베타 마브리키예브나 대공비를 포함한 1남 4녀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