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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7 21:00:02

마재윤/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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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진행 과정
2.1. 데뷔 및 전성기 (2003년 ~ 2007년 2월)2.2. 3.3 혁명2.3. 쇠퇴 및 몰락 (2007년 3월 ~ 2010년 2월)
2.3.1. 2007년2.3.2. 2008년 이후
2.4. 로스터 말소, 이후 제명

1. 개요

마재윤의 데뷔부터 조작 직전까지의 선수 활동을 정리했다.

마재윤은 기량이 하락한 대략 2009년 말부터 승부조작을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2. 진행 과정

2.1. 데뷔 및 전성기 (2003년 ~ 2007년 2월)

저그의 3해처리 운영을 정립한 게이머. 원래는 유명한 아마고수 출신으로 아마추어 시절 사용하던 아이디는 ipxzerg였으며, 비슷한 시기 유명했전 저그맨과 함께 배틀넷 고수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존재였다.[1] 2003년 초 iTV 랭킹전의 코너인 고수를 이겨라[2]에 출연해 기욤 패트리를 상대했지만 패배했다. 하지만 실력을 인정받아 2003년 말, GO 팀의 일원으로 데뷔한 이후 반년만에 김성제, 변길섭, 박지호, 최우범을 이기고 Spris MSL 진출에 성공, 개막전에서도 당시 정상급 테란이던 이병민을 잡아내며 주목을 받았지만 8강에서 김정민에게 패배하고 패자전에서 이병민을 다시 만나 패배, 탈락하면서 반짝 스타로 남는 듯했다.

그러나 2004년 Tucson배 팀 리그에 첫 출전임에도 선봉으로 나와 KTF 매직엔스올킬(홍진호 - 김정민 - 변길섭 - 조용호)하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후 GO의 곰 시리즈 중 하나로 팬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차기 대회인 MBC MOVIES MBC게임 팀리그에서도 결승전에서 팬택앤큐리텔 큐리어스를 상대로 3킬을 기록해 팀의 우승에 기여했고, 탈락했던 MSL에서도 곧바로 차기 마이너리그에서 임요환, 장진수, 안기효를 연달아 격파하고 무난히 우주닷컴 MSL에 진출해 다시금 주목을 이어나가는데 성공한다.

이후 2005년 우주닷컴 MSL에서 개막전에서 당시 삼신의 일원이던 이윤열을 꺾었고, 이후 전태규, 박정석, 조용호를 모두 꺾고 승승장구하며 무난히 결승에 진출, 결국 결승에서 박정석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이후로 패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WEF 2005 결승에서 최연성을 2:0으로 이기며 우승을 하고 CYON MSL 개막전에서 강민을 이긴 뒤 승승장구하여 괴물 최연성에게 5:0 관광[3]을 선사하며 결승 진출 이후 조용호에게 일격을 당해 준우승[4]. 다음 시즌인 프링글스 MSL 시즌1 4강에서 전상욱과 역대급 다전제를 치르고 결승에 진출해 강민을 꺾고 우승한다. 2006년에는 MSL 3회 우승 1회 준우승[5]이라는 압도적인 성적과 동시에 2006 프로리그에서도 16승 5패라는 좋은 성적으로 전체 승률 70%를 넘겼으나, 2006년 하반기까지 스타리그는 본선 진출조차 못해 인정받지 못했다. 당시 온게임넷의 경기장이었던 메가 웹 스테이션에게 저주라도 받은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랬으나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에서 로얄로더 우승[6]을 달성, 제4대 본좌에 취임하기에 이르렀다.

프링글스 MSL 시즌2 우승 때에는 군대에서 경기중계 + 저저전 결승전[7]으로 흥행에 실패했기 때문에 마재윤도 흑역사 우승자 중 한 명으로 꼽히긴 하지만, 3.3 혁명 이전까지 무려 MSL 5회 연속 결승 진출, MSL 3회 우승과 그 이후의 압도적인 실력으로 그가 본좌에 등극했기 때문에 묻히지는 않았다.

사실 그전에는 우주배 MSL 결승전 3세트에서 박정석과 멋진 명승부를 만들어냈고, 프링글스 시즌 1 결승전에서 강민과의 성전이 재현되기도 했으며, 프링글스 시즌 2까지 접수해 MSL 금뱃지를 딴 뒤[8]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에서 우승자 징크스를 깬 이윤열을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우승했다.

특히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 3 당시 테란맵이었던 롱기누스2와 극상성맵이지만 테란과 저그의 양패구도에서 테란에게 손을 들어준 극상성맵인 리버스 템플을 주축으로 도배가 됐던 상황에서 온갖 테란들을 뚫고 올라가[9][10][11] 우승했던 그 포스는 정말 누구도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12]. 변형태와의 4강전 5세트 아카노이드 혈전과 이윤열과의 결승전 3세트에서 퀸으로 커맨드센터를 감염시키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등 압도적인 실력차로 우승을 차지한 기억은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는 명장면.

당시 마재윤에게 씌워진 스토리텔링은 온게임넷과 MBC GAME으로 인식된 공식전 역사에서 임요환이 최약체 종족이었던 테란의 상황을 딛고 당시 최강종족이었던 저그를 격파하며 최강자가 된 이후[13] 최연성에 이르기까지 상성상 불리한 것으로 인식되어 테란에게 번번히 고배를 마신 저그의 한을 풀어주며 최초로 단독 최강자가 되는 것부터 시작됐다.

이 인식에서 저그는 한빛소프트배 결승에서 장진남이 임요환에게 진 것을 시작으로 이후 당대 저그 최강자 중 한 명이었던 홍진호가 공식전에서 단 한번도 우승을 하지 못하고[14] 투신 박성준이 2004년 질레트배 4강에서 최연성을 이길 때까지는 저그가 당대 최강 테란을 5전제에서 만났을 때 단 한번이라도 이길 확률이 매우 낮았으며[15][16] 질레트배 결승에서 프로토스 프로게이머인 박정석을 상대로 우승하기 전까진 우승을 차지하지도 못했다.[17] 투신 박성준이 우승한 다음엔 당시의 테란의 최강자이자 종족 전체의 최강자인 최연성과 최연성 이전의 최강자이자 최연성 다음가는 강자인 이윤열[18]을 상대로 투신 박성준과 박태민이 이 둘을 완벽히 타도하지 못함과 동시에[19] 커리어에 흠결이 있어서[20] 테란을 완벽히 타도한 저그만의 세상을 만들진 못했다.[21] 게다가 IOPS 스타리그 04~05에서 4강에선 박태민이 테란맵으로 손꼽히는 발해의 꿈이 껴 있는 5전제에서 리버스 역스윕을 당했고 결승에선 투신 박성준이 셧아웃을 당해 한 대회에서 양박 두 명이 이윤열에게 당하며 이윤열과 테란 전체의 위신을 세워주기까지 했었다.

이때 후배 저그인 마재윤 단 한 명이 당대의 최강자 최연성, 테란천하의 시작이었던 임요환, 최연성과 임요환 시기 사이의 최강자이자 최연성 시기에도 두번째로 꼽히는 강자였고 2005년에 침체된 이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에서 우승을 차지해 다시 경쟁력을 갖춘 이윤열까지 모조리 격파하고, MSL에서 4회 연속 결승에 진출해 그 중 3번을 우승해 금뱃지를 받는 등 당시 스타판에서 제일 이목이 집중된 인물이었다. 하지만 낮은 프로리그 출전율, 온게임넷 스타리그 본선에도 진출하지 못하는 명실상부한 최강자로 인정받기엔 떨떠름한 차에 그동안 따로 진행된 양대리그가 4개의 대회맵 중 2개를 공유하기로 했는데 저그가 테란에게 매우 불리한 맵인 롱기누스+리버스 템플이 선정되며 양대리그가 저그를 동시에 압박하는 모양새가 되었고 여기서 저그 유저들의 저저전의 부진한 흥행력으로 인한 피해의식, 마재윤 이외에 저그를 상대로 손에 꼽힐 정도로 매우 뛰어난 성적을 낸 테란들을 상대할 저그가 없는 저그의 선수층[22]까지 있는 상황에서 양대리그 결승에 진출했고 먼저 치러진 온게임넷 결승에서 우승을 차지해 저그의 구세주로 신격화됨과 동시에 임요환과 맞먹는 아이콘으로까지 격상된다.

이미 결승전 이전부터 마재윤에 심취해 있던 엄재경 해설은 마재윤에게 경외감을 표했다.
앞으로 이런 선수는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23]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 후, 아무도 마재윤이 무적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24] 모두가 마재윤을 절대 본좌로 인정했고, 스타 커뮤니티는 정적에 휩싸인다.

이 시기에 마재윤 때문에 MBC GAME이 저그가 불리한 맵을 많이 배치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 이전에 당신은 골프왕-우주닷컴-싸이언-프링글스 시즌1-프링글스 시즌2 총 5개 대회에서 우승자는 모두 저그였고, 테란은 당신은 골프왕배 이후 4개 대회에서 결승에 진출하지도 못했던 데다가, 저저전 결승도 두 번이나 나왔다. 이 정도로 저그가 득세하는 상황이었으니 마재윤이 아니더라도 저그를 맵으로 견제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온게임넷은 MBC GAME의 맵들 중에 1개를 반드시 선택해야 했기 때문에 롱기누스리버스 템플(온게임넷 제작)이 온게임넷에서도 사용된 것이고, 다른 맵을 사용했더라도 마재윤 죽이기(저그 죽이기가 아니다)란 말은 나왔을 것이다. 게다가 3.3 혁명 이전까지 리버스 템플의 저그 대 프로토스는 5:2로 저그 압승.

하지만 온게임넷에선 신한은행 스폰 이전부터 꾸준히 테란이 강세여서 당시 스타리그 로열로더 후보인 마재윤뿐만이 아니라 저그 전체를 죽이는 명분이 부족했으며[25][26] 양대리그 공동맵으로 선택한 것 중 스타리그의 히치하이커, MSL의 블리츠 x와 최약체 종족인 프로토스가 유리한 데저트 폭스를 선택하지 않고 테란에게 가장 힘을 실어주는 롱기-리템이 선택되어 이스포츠판 특유의 맵 공정성 시비가 양대리그 공통맵 논란 때문에 더 증폭됐으며 마재윤 죽이기 논란도 일어났다.

전성기 시절엔 초반부터 후반까지 튼튼하고 꼼꼼한 운영[27]으로 운영의 마술사 박태민에 이은 최고의 운영으로 전장을 지휘한다며 '마에스트로'라는 별명이 붙었다. 3해처리 운영이라는 기존의 2해처리 운영보다 유연하고 많은 물량을 선사하는 빌드를 정석화하여 테란의 더블커맨드를 빌드상 완전히 따라잡아[28] 최연성, 이윤열, 전상욱 등의 테란 강자들을 압도적인 물량과 난전으로 모조리 박살내고 신인 시절만 해도 평범했던 프로토스전조차 이미 구식이 돼버린 레어 삼지창소울류를 극에 가까운 정도로 활용해서 천적에 가까웠던 강민을 프링글스 시즌1 결승, 프링글스 시즌2 4강 등에서 박살냈고 다른 프로토스들은 분명히 전체 종족별 승률만 보면 저프전 5:5를 이루고 있었음에도 마재윤 하나만큼은 절대로 이기지 못했다.

이 시기에 강민과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면서 그와의 경기가 성전이라 불리며 임진록에 필적할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고 스갤이나 스동갤에서 주옥같은 동영상과 짤방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실 라이벌 구도긴 했어도 80%가 넘어가던 무시무시한 토스전 승률이 증명하듯 거의 마재윤의 승리였지만[29]. 아무튼 그 강력함에 힘입어 프로토스의 재앙이라 불리며 대체 어떤 프로토스가 마재윤을 이길 수 있을까 하며 수많은 토스빠들이 한탄을 했다.

2.2. 3.3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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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곰TV MSL 시즌1 결승전에서 김택용에게 '유일하게 양대 개인 리그 결승전에서 프로토스의 3:0 셧아웃'이라는 기록을 허용했다.

이후 5대 본좌 떡밥만 계속되는 춘추 전국 택뱅리쌍 시대가 개막하였고, 이 결승전은 김택용에게 기적의 혁명가라는 별명을 안겨준 자리가 되었다.

2.3. 쇠퇴 및 몰락 (2007년 3월 ~ 2010년 2월)

2.3.1. 2007년

김택용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기는 했지만, 이는 일시적인 이변이었으며 다시 본좌의 기운을 회복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3 결승이 끝난 지 불과 3주 후인 3월 17일에 벌어진 신한은행 마스터즈[30]에서부터 그 기대는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한동욱을 3:1로 가볍게 격파하고 결승에 오른 마재윤은 변형태를 격파한 이윤열과 리턴매치를 가지지만... 지난 결승에서 받은 굴욕 속에서 오매불망 마재윤을 타도하기 위해 복수의 칼을 갈아온 이윤열의 날카로운 빠른 타이밍의 급습에 그야말로 속수무책[31]으로 1:3으로 완패, 이 대결을 통해 마재윤의 테저전 취약점이 만천하에 공개된다. 그리고 이윤열은 "앞으로 믿어 주신다면... 반드시 복수하겠다"라던 지난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3 결승전 직후의 약속을 완벽하게 지킨다. 마재윤을 신이라며 찬양하던 엄전김은 불과 3주만에 스스로의 판단을 의심해야 할 처지에 놓이는데...

그리고 3월 31일 제5회 슈퍼파이트: 종족 최강전에 출전하였다.

앞서 2006년 10월부터 2007년 1월까지 펼쳐진 제1회 ~ 4회 슈퍼파이트에서는 마재윤이 큰 활약을 했는데, 입대하는 임요환을 위한 성대한 환송식으로 기획된 제1회 슈퍼파이트에서 당사자를 3:0으로 처참하게 발라버리고 임 가시는 길에 재를 왕창 뿌려버리며[32][33] 본좌로 유명한 임이최를 모두 이기는 위업을 쌓는데 큰 역할을 했고[34], 양대리그 챔피언[35]끼리의 진검승부 & 통합챔피언전이라는 컨셉으로 열린 제3회 슈퍼파이트에서 스타리그 우승자 이윤열을 3:1로 압살하였으며, 팀대결로 치러진 제4회 슈퍼파이트에서는 CJ를 대표하여 혼자만 나와서 모두[36] 쓸어버리고 우승을 차지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으니, 5차 대회에서 김택용을 다시 만나 여지없이 패배[37], 자신의 밥이었던 최연성을 만나 또 패배[38]. 이제동과 투신 박성준이 1승 1패를 할 때 혼자만 2패를 기록해 저그를 종족 최강전 밑바닥으로 밀어넣는다.

이와는 별개로 2007년 전기 프로리그였던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에서조차 마재윤은 미덥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한끼 식사 중 하나인 강민과의 성전[39]에서 패배, 군인이 된 임요환과의 대결에서 또 패배. 3.3 이후에도 마재윤 특유의 포커페이스는 여전히 날카롭게 살아 있었으며 웬만한 신인급 선수들은 마재윤과의 대결 그 자체만으로도 당황해하며 자멸하는 모습들이 아직 보이긴 했지만, 점점 몰락의 징조가 확인되기 시작한다. 이 무렵의 마재윤을 마본좌로 일컫는 사람들은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그는 어느 새인가 '마보통'으로 불리고 있었다. 이후 5월 5일 임요환과의 어린이날 이벤트 매치에서 2:0으로 승리를 거두고 프로리그 패배의 설욕을 하긴 했다.

이렇게 '본좌'로서의 입지가 급격하게 흔들리는 상황에서 맞이한 Daum 스타리그 2007에서 마재윤은 오프닝 영상 만큼이나 당당한 모습으로 조지명식을 맞이한다.[40] 그리고 개막전은 최근에 마재윤을 비공식전(슈퍼파이트)에서 물리친 전 본좌 최연성과의 대결. 개막전 경기에서 김태형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마재윤에게 '여전히 자신이 건재함을 보여줘야한다.'라고 언급하고, 최연성의 드랍쉽 기습작전과 벌어지는 난전 속에서 쉽지 않은 승리를 거둔다. 이것이 마재윤과 최연성이 대결한 공식전 마지막 경기로, 결국 최연성은 끝내 공식전에서 마재윤을 단 한 경기도 이기지 못하게 된다.[41]

다음 상대는 당시 중딩이자 최연소 스타리그 진출자였던 이영호. 그가 미숙한 모습을 보이며 당황하는 것을 놓치지 않은 마재윤의 저글링 본진 난입으로 손쉽게 승리하며 8강에 진출한다. 그러나...

지난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 결승 진출 좌절로 마재윤을 철천지 원수처럼 생각해 오던 변형태의 강력함은 생각 이상이었다. 8강전에서 1:1로 맞선 3세트 테란이 유리한 몬티홀에서 마재윤은 승기를 잡았다가 어설픈 플레이[42]로 변형태에게 무릎을 꿇으며 지난 시즌의 리벤지를 당하고 탈락한다.

또한 스타리그 시즌 중이었던 5월 20일에서는 블리자드 월드와이드 인비테이셔널(WWI)결승에서 김택용에게 1:2로 역전패당하고 만다.

한편 반대 쪽에서는 또 하나의 개인리그, 곰TV MSL 시즌2가 열리는데... 이 대회를 기점으로 마재윤은 본좌 자리에서 완전히 내려오게 된다. 마재윤은 비록 지난 시즌 김택용에게 괴멸적인 패배를 맛보았으나, 시즌2 조지명식에서 여전히 그 특유의 거만하고 당당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 조지명식에서 과거 슈마 GO의 선배였던 박태민과의 관계에 금이 가고 마는데...
저를 만만하게 보셨다면은, 태민이형 관광당할 준비 하셔야 될 것 같아요.
(조지명식 도중)

부종인 테란으로 박태민을 상대하겠다는 도발의 결과로, 박태민의 주체못할 분노를 감당하지 못하고 퀸에게 커멘드센터가 먹히며 도리어 자신이 관광당하고 만다. 하지만 패배했음에도, 여전히 히죽히죽 웃으며 이후 허영무, 안상원을 연파하고 무난하게 16강에 진출하여 절정의 기세를 달리던 송병구를 격파[43]하고 다시 8강에 진출. 그러나 이후 결과를 미리 알았다면 박태민에게 조 1위를 내어주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성은과의 8강전 1세트에서 1시간에 이르는 초장기전 끝에 그 유명한 우주방어 후 배틀크루저 역관광을 당한 후에도 그의 포커페이스는 여전한 듯 보였으나, 마지막 5세트에서 회심의 몰래배럭 불꽃러시에 무너지며 그의 6회 연속 결승 진출은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만다. 마재윤의 탈락이 확정되는 순간 이성은이 시전한 저질 세레모니는 이후 이성은의 상징이 되었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변형태 역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44] 이때부터 이성은과의 악연이 시작된다. 프로토스 천적 김택용에 이은 테란 천적이 등장한 셈.[45]

이후 8월, IEF 2007 결승에서 다시 김택용을 만나 이번에도 여지없이 0:2로 완패하며 도저히 김택용의 상대가 될 수 없음을 증명하고 만다.

Daum 스타리그 2007곰TV MSL 시즌2의 양대 8강이란 허망한 결과로 그는 본좌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으며, 굳건한 포커페이스 표정마저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2007년 1월에 케스파 공인랭킹 1위로 올라설 당시 어마어마했던 2위와의 랭킹포인트 격차도 점차 좁혀져 결국 9월 랭킹에서 김택용에게 1위 자리를 빼앗기고 2위로 추락하게 된다. 그리고 10월 랭킹[46]에서는 다시 3위로 추락.

다음 시즌인 곰TV MSL 시즌3. 더 이상 마재윤은 이전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하며 더 이상 예전처럼 적들을 압살하지 못한다. 마재윤의 승리는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닌 고통의 산물이었다. 경기 직전마다 중계 카메라에 잡힌 대기실의 그는 고뇌에 잠겨 괴로워하는 표정이었으며 승리가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참고로 이 사람, 반년 전만 해도 스타판 역대 최강의 선수이자 유일무이하게 무적이라고 평가받았던 선수이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서도 또다시 16강에서 송병구를 격파하고 8강에서는 윤용태마저 격파하며 아직은 김택용을 제외한 프로토스에게만큼은 여전히 강적임을 자랑한다. 그러나 당시 신예였던 박성균과의 4강전에서 많은 이들의 예상과 반대로 2:3으로 분패하며 김택용과의 결승전 리매치는 끝내 성사되지 못한다. 사실 이 시기에는 이미 마재윤의 대 테란전 실력은 크게 저하되어 있었으며, 후기 프로리그에서 (저그가 불리한 맵들 속에서) 염보성, 이영호[47] 등에게 박살나는 등, 더 이상 '롱기누스, 리버스 템플' 시절의 강력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 특히 백마고지에서 벌어진 이영호와의 프로리그에서 수많은 탱크가 진을 치고 있는 마인밭으로 저글링 - 울트라리스크 등 전 병력을 정면돌진시켜 다 꼬라박고 날려먹는 대장관을 연출하며 마자룡이라는 별명을 획득하고 '스갤 5대 장군'[48]에 포함되는 '영예'를 얻게 된다.

반대편의 EVER 스타리그 2007에서 이영호, 김동건과 재경기 끝에 둘을 격파하고 조 1위로 8강에 올라갔지만, 상대는 천적 김택용. 1차전[49]에서 김택용과 재격돌해 1승을 선취[50]하며 해설진과 경기장의 분위기를 크게 끌어올린다[51], 김택용에게 복수를 이루는가 했으나... 1주일 뒤 2차전 카트리나에서 승리를 목전에 두고 스타 역사상 길이길이 남을 대역전패를 당했고[52], 3차전 몽환에서는 김택용의 스톰쇼에 처절하게 무너지며 탈락했다. 그리고 이제동은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마재윤에게서 명실공히 저그 최강자 자리를 빼앗는다. 그리고 이것이 마재윤의 마지막 스타리그 토너먼트(8강 이상) 진출이었다.

이 패배의 결과로 유명한 코x히가 쓰러지지 않아 영상이 만들어진다. 3.3혁명부터 시작해서 2007년 한 해 김택용에게 당한 모든 패배 장면을 종합한 컴필레이션. 마재윤이 아무리 공격해도 쓰러지지 않는 김택용.

이 개인리그 기간 동안에 또 한번의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으니, 10월 WCG2007 그랜드 파이널 스타크래프트 8강전에서 중국 프로게이머 사쥔춘에게 1:2로 역전패당하는 굴욕을 맛본 것이다. 특히 3세트에서 사쥔춘의 캐리어에 신나게 얻어터지며 자존심이 크게 구겨진 마재윤에게 팬들이 붙여준 별명은 바로 마완용.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옛 절대본좌의 아우라는 모두 사라져 버리고, 일개 보통 저그의 길을 걷게 된다.

3.3 이후 단 한 번의 시즌을 거치며 마재윤은 본좌 자리에서 내쫓겼으며, 다시 한 번의 시즌을 거치면서는 더 이상 일반 강자의 자리도 건사할 수 없게 되었다. 김택용과의 8강전, 박성균과의 4강전이 사실상 마재윤의 마지막 강자 시절이었으며, 그 다음 시즌부터 마재윤은 예선 광탈이라는 치욕을 연거푸 들이키게 되며 본격적으로 마막장의 암흑기 속으로 돌입하게 된다. 신예들은 이제 마재윤이란 이름 앞에서 떨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불타오르는 자신감을 갖게 되는데... 이후 개인리그 조지명식 때마다 마재윤은 그를 선택하는 야심찬 신예 게이머들에게 '명분'이 아닌 실리로 인식되게 되고, 마민폐라는 치욕적인 별명과 함께 프로리그 팀플레이에만 간신히 등장할 만큼 웃음거리로 전락하게 된다. 일그러지는 표정을 감출 수가 없게 되었으며 과거의 멘탈을 완전히 상실하여 2007년 12월 30일,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에서 다시 붙은 대 이성은 전(블루스톰)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헤드셋을 벗어 던지고 한숨을 쉬며 나가버리는 등[53]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 3에서 절대본좌로 등극했던 2007년 그 해가 미처 다 지나기도 전에 그의 위상은 송두리째 박살나고 갈갈이 찢겨버리고 만다. 스타판이 택뱅리쌍의 시대로 점점 재편되어가고, 그동안 자신의 승리 제물이 되어주었던 올드 게이머들이 유래가 없는 집단몰락을 겪으며 퇴장하는 동시에, 무서울 정도의 피지컬과 전략적 능수 능란함을 갖춘 드래프트 세대[54]로의 완전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등, 스타 역사상 유래가 없던 대격변의 시대를 거치며 더 이상 마재윤이 설 수 있는 자리는 없게 되었다.

2.3.2. 2008년 이후

해가 바뀌자 케스파 랭킹에서의 마재윤의 하락세는 점점 가팔라지는데, 1월 랭킹에서 이제동에게 3위 자리마저 내주고 4위로 추락한다. 물론 이마저도 4위라는 당시의 랭킹이 몰락한 마재윤의 현주소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절대본좌 시절 쌓아놓은 랭킹 포인트로 근근히 버티고 있을 뿐이었던지라 이제 랭킹 급추락은 시간 문제.

2008년 1월 12일에 벌어진 프로리그 준플레이오프 에이스 결정전(vs 박명수)에서의 승리 직후 그가 보인 눈물은 당시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지만, 이 역시 올드들이 그동안 보여주던 덧없는 '희망고문'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2008년이라고 해서 사정은 도통 나아질 기미가 없었는데, 곰TV MSL 시즌4에서는 조별리그에서 민찬기김구현한테 연속으로 패하며 2연패로 광탈, 박카스 스타리그 2008에서는 3전 전패로 역시 광탈[55] 2월에 열린 <곰TV 스타 인비테이셔널> 16강에서 이영호와 오영종에게 밀려 여지없이 탈락했으며, 3월에 열린 <올스타 스킨스 매치>[56]에서 염보성에게 2:5로 대패, 특히 이영호에게 초반 3연승 뒤 4연패를 당하며 또 한 번 굴욕을 맛보며 알짜배기 상금을 모두 빼앗기고 만다. 이 시점에서 '마재윤은 이제 더 이상 안 된다.'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일치하는 견해가 되었으며, 이제 그를 마'본좌'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마재윤의 열성 팬들조차 '본좌'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며 주저한다.

그리고 케스파 3월 랭킹에서 다시 5위로 추락.

절대 본좌였던 그가 몰락한 이후에는 홍진호와 비슷한 포지션인 스타크래프트 갤러리의 떡밥본좌 포지션으로 자리매김했다. 홍진호와 같은 저그라는 것도 영향을 주지 않았나 여겨진다. 평소에는 엄청 까이다가 간혹 이기는 날에는 스갤이 들썩거릴 정도로 흥행하는 것이 마치 홍진호를 닮았다.

스타리그에서도 광탈하는 등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굴욕이 계속되던 2008년 4월 하순 경, 아레나 MSL 조지명식에 등장한 그의 풀죽은 모습에서는 자신감이라곤 1%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놓치지 않은 이성은은 먹이를 포착한 야수와 같은 모습으로 마재윤을 지명하는데...

결국 이성은전에서 히드라 럴커업이 아닌 발업(스피드업)을 누르는 큰 실수를 저지르며 당황한 모습을 보인 끝에, 이성은에게 또다시 패배한다. 패자전에서 당시 신예였던 정명훈을 만나 목동 저그 체제까지 가는 힘든 장기전 끝에 겨우 승리하고 최종전에 진출하지만, 당시 심한 독감고열 때문에 걸려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이재호에게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불꽃 - 베슬 조합에 그대로 박살나 결국 광탈하며 그 치욕의 끝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그런데 마재윤을 짓밟고 16강에 올라간 이성은은 CJ 엔투스 박영민에게 희대의 하트 세러모니 관광을 당하며 치욕적으로 짐을 싸야 했다. 당시 마재윤 - 이성은 간의 악연이 워낙 유명했던지라 팀 동료 박영민이 마재윤의 부탁으로 하트 세러모니를 한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있었다. 당시 박영민 본인의 인터뷰에서는 이성은의 과격 세러모니에 대한 스스로의 응징이자 마재윤을 위한 것이라 했으나, 이 일이 마재윤 본인과 연관되지 않은 순수한 박영민만의 행동이라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결국 마재윤에게 '마청부'라는 별명이 또 하나 추가된다. 하지만 이후 변형태의 방송에서 변형태는 팀 내에서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던 마재윤을 위하여 박영민이 그런 행동을 할 리가 없다고 이야기 하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그 당일날 경기를 보러왔던 자신의 예전 여자친구를 향한 세레머니 성격이 더 컸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다.

이 일을 계기로 마재윤에 대한 이성은의 집착은 이후 해를 넘겨 2009년 4월 19일, 희대의 저그맵 배틀로얄에서 마재윤이 이성은을 격파할 때까지 오랫동안 지속된다.[57]

아레나 MSL 광탈 후 출전한 TG-삼보 인텔 클래식에서도 16강전(6월 22일)에서, 이후 아레나 MSL을 정ㅋ벅ㅋ하게 되는 박지수를 만나 0:2로 박살나며 당연하다는 듯이 탈락하고 만다. 그의 팬들 역시 이제는 모든 기대를 내려놓고 포기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프로리그고 개인리그고 도무지 제정신이 아닌 모습들을 보이며 방황 중이던 마재윤을 보다 못한 CJ는 이를 마지막으로 마재윤이 더 이상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판단, '경기력 저하와 정신력 해이'의 이유를 들어 그를 2군으로 보내버리는 조치를 단행한다. 이렇게 해서 붙여진 별명이 바로 마2군. 이렇게 해서 마재윤은 방송무대에서 당분간 그 모습을 감춘다.[58]

그가 2군으로 추락한 이후의 모습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훗날 팀 관계자들의 발언으로 볼 때, 그는 꽤 성실한 2군 생활을 보냈던 것 같다. 그 결과 3주만인 7월 하순 경, 1군으로 복귀하게 된다.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그의 앞에 당장 펼쳐진 무대는 9월의 클럽데이 온라인 MSL. 조 예선에서 마주친 상대는 바로 이윤열. 스타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불사조처럼 올라오기를 이미 여러 차례. 이 시기의 이윤열은 그의 스타1 인생의 마지막 불꽃을 이제 막 태울 시기[59]였으며, 약체화된 마재윤으로서는 만만히 볼 수 없는 상대.

그리고 제2경기와 최종전에서 2번 연속 이윤열을 상대해 모두 패하고 탈락하는 수모를 겪으며, 기대했던 팬들에게 다시 한 번 절망을 선사한다. 신한은행 시즌3 때의 기세는 찾아볼 수 없었으며, 조급한 모습을 계속 보이며 성급하게 이윤열의 강력한 벙커 방어진으로 무모한 돌격을 시도하다가 치명적인 손실을 입는 등, 실력적으로도 멘탈적으로도 한 수 위인 이윤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자신감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던 그의 표정에 다시금 비장함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건, 그리고 중흥기를 맞이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건 블리즈컨 2008부터였으며, 이 대회 결승에서 '숙적' 이윤열을 꺾고 전승으로 우승을 거머쥐며[60] 2만 5천 달러의 상금을 차지한다. 더욱이 당시의 달러 환율이 매우 높았으므로 그의 상금의 가치는 매우 컸으며 이로 인해 '마환율', '마애국' 등의 긍정적인 별명이 참으로 오랜만에 붙게 되었다. 이후 2009년 3월의 종족최강전[61]까지의 기간을 나름 '중흥기'라고 볼 수 있다면, 그 시작점이 바로 블리즈컨 2008 이라고 할 수 있다.

블리즈컨 2008에서 우승한 직후 영어로 멘트를 날리는데,
'I will destroy everyone in 2009'

이후로 한동안 자신감이 넘쳤던 그였기에, 그의 팬들은 이 멘트가 곧 실현될 것으로 굳게 믿었으나 결국 2009년이 끝나도록 끝내 실현되지 않았다.

그리고 블리즈컨 직후, 유명한 마라클사건[62]이 터지며 그의 중흥기를 당당하게 선포하게 된다. 물론 명예회복의 과정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는데, 특히 천적 이성은에게만큼은 여전히 역부족이었다. 12월 1일,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에서 이성은에게 또다시 패배하고 마는데, 계속되는 이성은전에서의 패배에 많이 시달렸던지 결국 이성은의 우위를 인정하고 만다.
지는 것을 인정하고 일단 피한 후에 나중에 때가 됐을 때 맞붙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오늘 경기로 확실한 차이를 느꼈다. 해당 기사

또한 12월 7일, IEF2008 4강전에서 천적 김택용에게 0:2로 또 패배하였고, 급기야 3위 결정전에서는 당시 아마추어였던 조기석에게 1:2로 패하는 대굴욕을 겪게 된다. 이렇게 해서 붙여진 별명이 마마추어.

아무튼 그가 모두를 무찌르겠다던 2009년이 다가온다. 팬들의 기대감은 상승곡선을 그리고, 새로운 개인리그 시즌인 로스트사가 MSL 2009를 맞이하게 되는데...

로스트사가 MSL의 조지명식에서 디펜딩 챔피언 김택용은 예전[63]에 자신에게 '우승 3번은 더 하고 오셔야'라고 일갈했던 사실을 언급하며 마재윤에게 '도전장'을 던진다. 이제 바야흐로 3번[64] 우승한 자신과 마재윤이 개막전에서 진정한 승부를 가리자는 것. 딱딱 맞아 떨어지는 스토리에 김택용과의 재대결은 최고의 흥행카드로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개막전 날인 1월 15일, 김택용의 압도적 승리를 점치는 시청자 설문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마재윤은 드디어 김택용을 엘리미네이션으로 완벽하게 제압하고 장내를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간다. 이 날을 일컬어, 과거의 3.3혁명에 대비하여 '1.15 진압'이라 부르기도 한다.

김택용을 격파하고 자신감을 완전히 회복한 그는 거침이 없었다. 조지명식의 '또다른 주인공'이었던 박문기를 제압하고 승자전에 올라온 김명운을 뮤탈-스커지 싸움에서 완벽하게 제압하고 2연승으로 16강에 진출한다. 4시즌만의 MSL 16강 진출. 이 열광적인 분위기에 해설진도 덩달아 편승한 건 두말할 것도 없다. 최종전에서 김명운이 김택용을 누르고 광탈의 치욕을 선사하자 해설진들은 디펜딩 챔피언의 광탈을 아쉬워하기는 커녕, 김명운의 승리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로써 마재윤은 이번 대회의 완벽한 흥행카드로 자리잡게 되고, 과연 어디까지 올라갈 것인가에 모두의 관심이 집중된다. 그리고 무언가 '우주의 기운'이 그에게로 몰려온 듯한 모습에 몇몇 팬들은 그의 우승을 조심스럽게 예상한다.

마재윤과 김택용의 상대전적은 당시 비공식전 포함 15전을 치른 상태에서 '마재윤 3 : 12 김택용'이었는데, 묘하게도 마재윤 기준으로 패패패패승이 정확히 3번 반복되었다. 실제로 로스트사가 MSL 조지명식 이후 스갤에서는 마재윤이 김택용에게 4연패중이므로 로스트사가 MSL 개막전은 반드시 마재윤이 승리한다라는 설레발이 있었고 결과는 다들 아시는 대로... 어째 스타판은 묘한 징크스가 잘 맞는다.

가벼운 16강 진출에 힘이라도 얻었는지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08-09가 개막한 이후였던 2월 2일, 하이트 스파키즈와의 경기에서 문성진을 시작으로 신상문박명수까지 관광시키며 3킬, 닷새 뒤인 2월 7일 eSTRO전에서 또다시 3킬을 기록하며 본좌가 재림하느냐는 기대를 불러일으키면서 스갤을 폭파시켰다. 스파키즈와의 경기를 해설하던 김정민 해설도 마재윤의 달라진 모습에 대한 감탄을 숨기지 않으며 그가 부활한 것이 확실하다는 뉘앙스의 멘트를 날린다.

2월 12일, 신희승과의 로스트사가 MSL 2009 16강 1경기에서 승리, 공식전 9연승을 찍으면서 큰 기대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연승 기록은 2월 17일, STX 소울김구현에게 선전 끝에 아쉽게 패함으로써 9연승으로 막을 내렸다. 더불어서, 그날 팀은 선봉 올킬패의 수모까지 당했다.

김구현전 패배 이후로는 다시금 좀씩 주춤하기 시작했는데, 2월 19일에 열린 로스트사가 MSL 2009 16강 2경기에서 신희승의 벌처에 완전한 농락을 당하며 패배를 당하고 자존심에 타격을 받은 마재윤은 일그러지는 분노의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절치부심하고 임한 마지막 3경기에서 날빌을 시전한 신희승노배럭 더블9오버풀로 응징하여 드디어 4시즌 만에 8강 진출에 성공, 다음 시즌 시드를 확보하며 MSL 12회 연속 진출을 달성했다. 2경기의 결과로 조마조마했던 해설진은, 신희승의 날빌이 마재윤에게 격파되는 순간 일제히 환호를 지르며 열광한다.
날빌로 흥한 자![65] 날빌로 망한다!!![66]

신희승을 처리하고 멋지게 돌아서 부스를 나가는 그의 모습을 본 팬들은, 이제 그의 우승과 완벽한 부활의 가능성을 당당히 수면 위로 드러내어 담론화하기 시작한다. 8강 상대는 한달 전 조별예선에서 물리친 적이 있는 김명운. 막강한 실력을 가졌으나 다전제는 난생 처음인 김명운에 비해[67], 다전제 경험이 풍부한 마재윤의 우세가 예상되었다. 그러나...

2월 26일에 벌어진 8강전에서, 그 누가 보더라도 현격한 압도적 수준차이를 드러내며 1:3으로 완패[68]하고 만다. 그가 마막장의 나락으로 빠졌을 때에도 저저전만큼은 건재했다고 평가되었지만, 김명운과의 뮤탈 싸움에서 완벽하게 압살당하며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 것. 이 모습들을 바라보던 팬들도 충격을 받았다. 소위 '우주의 기운'이 그에게로 쏠린 대회였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팬들도 해설진들도 그리고 마재윤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을 법했던 상황이었다.

탈락 이전까지 이 대회의 최고 흥행카드는 마재윤이었고 그의 부활 여부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었던지라 대회 차원에서도 많은 것을 잃어버린 순간이었다. 8강전에 앞서 마재윤은 4강 정도가 되면 부활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지만, 실상은 여기서 그의 여정이 보기 좋게 끝나버렸다.
이제 서서히 부활해서 지휘봉을 꺼냈는데 그것이 또 꺾인단 말입니까, 마재윤!?!?! (김철민 캐스터, 제4경기 막판)

마재윤 본인도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지, 4경기에서 모든 희망이 사라졌음에도 GG를 치지 않고 스포어 콜로니를 지으며 한참동안 현실에 맞서 저항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어렵게 회복한 그의 자신감에 치명타를 가한 이 허망한 패배를 끝으로, 블리즈컨 2008 이후 계속 상승곡선을 그리던 그의 기세가 꺾이고 이후 다시 내리막길을 걷는다. 참고로, 이 대회가 마재윤이 마지막으로 MSL 토너먼트에 진출한 대회다.

이로써 마재윤의 종족별 천적 3명이 모두 완성된다. 프로토스 천적 김택용, 테란 천적 이성은, 저그 천적 김명운.

마재윤의 부활을 저지하고 잔인하게 짓밟아버린 김명운은 이후 프로리그, 블리즈컨 2009 등, 마재윤을 만날 때마다 그에게 치욕을 선사하게 된다. 한편 3월 케스파 랭킹에서 마재윤은 24위까지 상승하게 되는데, 이것이 마제법시절의 랭킹 최고점이 된다. 프로리그 - 개인리그에서 어느 정도 가시적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끝내 강자의 위치로까지 복귀하는데는 실패한 것이다.

3월 23일, 온게임넷 올스타 종족최강전 Zerg vs Protoss에 나와 택뱅을 하룻밤에 다 잡아버렸다. 특히 송병구전에서는 한 번도 플레이한 적이 없는 맵인 왕의 귀환에서 송병구를 잡아내었고[69], 당시 조일장이 종종 사용해 재미를 보던 '오버로드 페이크 폭탄드랍'으로 김택용을 농락하며 승리한다. 이 당시 송병구전에서 보여준 뛰어난 소수 유닛 컨트롤과 견제, 김택용전에서 보여준 난전 능력이 이전까지의 마재윤에게 모자랐던 부분이었기 때문에 큰 기대를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설레발은 닷새 뒤인 3월 28일, 위너스 리그 결승전에서 장렬히 침몰하고 마는데... 안드로메다 맵에서 이제동에게 4분도 안 돼서 패배해 '안드로메다'로 관광당하고 만 것이다. 물론 이제동의 저저전이 당시 최강급이었다는 걸 고려해도 너무한 감이 있었다.[70]

프로리그 4라운드에서 초반이던 4월 13일부터 좋은 경기력으로 오영종을 꺾고 1승을 거둬서 출발은 좋았지만, 다음 삼성과의 경기 상대는 테란 천적 이성은. 하지만 4월 19일, 배틀로얄에서 이성은을 멀리 보내버리고 6연패를 끊었고, 팀도 4라운드 개막 이후 2전 전승 중. 헌데 이성은전의 경우에는 맵이 맵인데다 상대도 부진에 빠져 있는 상황인지라 인정을 못 받는 분위기.

그러나 그것도 잠시, 4월 27일 MBC GAME HERO와의 경기에서 염보성에게 패배했다. 이후 계속 널뛰기를 하다가 5월에 들어서서는 꾸준하고 평탄하게 부진한 성적을 냈다. 저프전 기량은 여전히 괜찮은 것 같은데, 테저전저저전 막장화가 특히 두드러졌다. 특히 저저전에선 저글링 싸움은 잘 하는데 뮤탈 싸움만 하면 패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냥 저저전 하면 무조건 저글링 올인이나 하라는 얘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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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팀 조병세가 분전했으나, 스타판을 살릴 수 있던 마지막 기회는 날아갔다.

프로리그 벤치에도 보이지 않고, 숙소에서 집안일만 한다 하여 메이드 기믹을 얻었다. KT 가정부와 비교되기도...

6월 23일, 오영종을 상대로 출격하여 상당히 오랜만에 승리하였다. 그러나 7월 1일 오랜만에 출격하여 치른 종족전은 저저전, 상대는 김명운. (김명운은) 당시 프로리그 9연패 중이어서 분위기가 안 좋아서 이길 수도 있었지만, 실상은 당연하다는 듯이 패배하면서 그의 연패를 몸소 끊어 주었다.

한편, 새로운 개인리그 시즌인 아발론 MSL 2009가 열리게 되는데... 지난 시즌의 8강 진출 성과로 시드를 부여받은 마재윤은 일단 자신의 조에 프로토스 한 명을 데려온 뒤, 자신보다 상위 시드 선수들에게 '이번에 프로토스와 예선을 치렀으면 하는데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라는 희망사항을 표현한다. 그러나 모두에게 무시당하고 도리어 자신의 조에 테란 선수들인 김창희, 고인규가 배정되는 굴욕을 당하게 된다. 이것이 얼마나 굴욕인지는 그의 전성기 시절에 열렸던 프링글스 MSL 시즌2 조지명식을 떠올리면 대조가 될 것이다. 자신에게 도발했다는 것을 이유로 '응징'의 차원에서 당시 온게임넷 스파키즈 선수들 3명[71]을 자신의 조에 모조리 집어넣었던 때의 엄청났던 위세와 지금의 초라한 위상은 실로 엄청난 차이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첫 경기에서 고인규에게 패하고 패자전에서 김창희를 잡고 최종전에서 또다시 고인규를 만났지만, 10분 본좌(마효리)답게 초반엔 잘했으나 메카닉 상대로 온리 뮤탈리스크를 고집하다가 스무스하게 패배하고 탈락했다.

이 때 SK의 코치였던 전 본좌 최연성은 희대의 명언을 남기는데,
옛 영광에 취한 자는 죽은 자다.
죽은 마재윤을 박살내라.

그러나 최연성 본인이 마재윤과 공식전에서 6번 싸워 모두 패한 치욕적인 전적[72]이 있었기에, 이렇게 말로써라도 마재윤에게 복수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한편 팀은 5위로 시즌을 마친 상태여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5위였기에 6강 플레이오프부터 치르게 되었고, 상대는 4위 하이트 스파키즈. 일단 7월 18일 첫 경기부터 엔트리에는 올랐으나, 하필이면 또 저저전. 완전체를 꿈꾸는 문셀진에게 가볍게 흡수되면서 팀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같은 달에 열린 e - 스타즈 헤리티지 매치에서 전승으로 결승에 올라가 결승에서 만난 이윤열을 꺾고 우승. 현역의 자존심을 살리며 쏠쏠한 부수입을 챙기게 되었다. 이 당시, 자신을 죽은 마재윤이라 도발했던 최연성과의 대결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최연성의 개인 사정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이를 두고 최연성이 마재윤을 피해 달아났다고 비난하는 목소리들도 제법 있었다. 그리고 강민과의 최후의 성전이 열렸는데, 이미 성전의 의미가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인데다, 강민이 이제 현역 선수도 아니었기에 당연히 마재윤의 싱거운 승리로 끝.

비록 이제는 퇴물이 된 올드 게이머들을 초청해 열린 대회였지만, 지난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 이후 무려 2년 5개월만에 들어올리는 우승 트로피였고, 2년 5개월 전 절대본좌로 등극하던 그 순간을 추억하는 팬들이 많았다.

8월 20일, 원 소속팀 CJ 엔투스와의 재계약을 성사하였다. 한편 블리즈컨 2009에서 그의 3연패가 기대되기도 했지만, 김명운에게만 4패를 당하고 광탈한다.

8월 30일, 김윤환한상봉의 아발론 온라인 MSL 결승전에 참관하였는데, 그 곳에서 진행자가 관중석의 마재윤에게 인터뷰를 하였지만... 그의 시종일관 어두운 표정과 자신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대답으로 인해 팬도 팬이 아닌 사람도 모두 안타까워했다.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 결승전에서의 모습과 비교해보자.

9월 22일, 변형태의 뒤를 이어 CJ의 주장이 되었다.

9월 26일 열린 올스타전에서 이영호와 맞대결을 펄쳤다. 다들 이영호의 압승을 예상했으나, 각성한 뮤짤과 이영호의 삽질로 승리. 올스타전에서의 이 신들린 뮤탈을 확인한 엄재경 해설은, 마재윤이 그 동안 자신감이 없는 모습이어서 너무나 안타까웠는데, 이 모습을 보니 너무나 좋다라고 하면서 여전히 마음 속에 간직해 오던, 마재윤에 대한 애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영호는 팬들에 대한 서비스격으로, 자신의 본진에 핵을 떨어뜨려 자폭하면서 패배했다.

한상봉, 김정우 등 팀 내 신예 후배 저그들의 기량이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들어서 부쩍 급상승했고, 거기다가 팀 내에 2군 본좌 김민호가 저그인지라 미래가 깜깜했다. 하지만 또 다른 위험 요소로 꼽히던 공군의 이주영은 제대 후 은퇴를 결정하였고, 1군과 2군의 격차가 증명되고, 그리고 한상봉도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을 앞두고 웅진 스타즈로 이적해버렸고, 미래가 기대되던 김민호는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도중인지는 모르지만 이 무렵에 소리없이 은퇴하면서 09-10 시즌부터 갑자기 다시금 출전 비중이 늘어났다. 그나마 또다른 후배 신동원이 새로운 팀 내 라이벌로 떠오른다고 할 수도 있었으나, 100% 검증은 안 된 상태.

어쨌든 09-10 시즌이 시작되고 조금 지난 10월 19일, 09-10 프로리그에서 이스트로전에서 에결에 나와 신대근을 상대로 낮은 저저전 실력을 보여주며 패했다.

하지만 10월 29일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 시즌 2'[73]에서 김승현신조작 등을 연속으로 제압하면서 2승으로 깔끔하게 통과하며 13회 연속 본선 진출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10월 31일 프로리그에서 팀은 졌지만 신노열을 상대로 좀 제대로 하는 듯 한 저저전을 보이면서 1승을 챙겼다. 그리고 11월 7일, 박지호를 본좌 시절 그대로의 압도적인 토스전으로 철저하게 농락하며 승리했다. 4연승 찍고 경기 MVP까지 먹었다.

한편 MBC 게임이 정말 힘겹게 스폰서를 구해 겨우 열린 NATE MSL 조지명식이 2009년 11월 19일에 열렸는데, 거기서 그의 몰락한 모습은 당시 먹잇감을 노리던 당돌한 신예 이신형의 좋은 타겟이 된다. 마재윤 정도는 가볍게 눌러주겠다는 당당한 모습의 이신형, 그리고 영원한 천적 김택용 등과 같은 조에 속하게 된다.

그러나 11월 23일 대 웅진 스타즈와의 경기에서 또 자신의 천적 김명운을 상대하게 되었고, 패했다. 이로써 김명운에게만 8연패 중. 결국 시원하게 저글링 꼴아박으며 엘리당했다. 그나마 팀은 승리했지만... 설상가상으로 30일 경기에서는 저저전의 달인 이제동을 상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재윤은 에이스와 끌어안고 자폭한다며 마논개, 같이 죽지도 못하고 자폭만 한다고 마커지, 다른 에이스가 1승을 쌓기 위해 희생하는 역할인 러커가 지나가기 위해 인밭에 돌진하는 저글링 등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11월 30일 화승 OZ와의 경기에서는 뜻밖에도 이제동을 초반 저글링 싸움에서 누르고 꺾으면서 09-10 시즌 4승째를 찍었다.
오~ 마재유우운~[74]

그러나 팀은 에결까지 간 끝에 패했다. 참고로, 이 이제동전이 마재윤의 마지막 프로리그 승리이자 마지막 공식전 승리가 되었다.

한편 12월 3일, MSL 본선을 치르게 되었고, 예전 이성은에게 그랬듯 이신형에게 압살당한 마재윤은 패자전에서 김택용과 재회하게 되는데, 이 만남은 그가 원하지 않은 만남이었다. 과거 로스트사가 때나 종족 최강전 때와는 달리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모습이 역력했고, 결국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패하여 광탈의 치욕을 들이키게 되었다.[75] 또한 마지막 택마록이 되었고, 더불어서 이 NATE MSL이 마재윤의 마지막 MSL이 되었다.[76]

MSL에서의 광탈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12월 6일, 2라운드 첫째주에 CJ와 KT 간 프로리그 경기가 치러지게 되었다. 마재윤은 예상대로 이영호의 프로리그 100승 제물로 쓰러졌지만, CJ가 나머지 1, 3, 4경기를 모두 가져갔다. 100승 인터뷰를 기대하고 있던 KT 및 이영호 팬들은 또 마논개냐를 외치며 광분했다.

12월 21일에는 김윤환을 만났으나, 논개 작전은 조선회사에는 먹히지 않았다. 예상대로 김윤환이 이기고 2세트에서 김정우조일장을 꺾으면서 마논개 분위기로 흘러가는 듯 했지만, 오히려 3/4세트를 STX SouL이 가져가며 CJ를 압살했다.

2010년 1월 11일 프로리그 vs 하이트와의 경기에서 오랜만에 출전하였으나, EVER 스타리그 2009 준우승자이자 결승 진출자였던 선봉 진영화와 차봉 매정우가 나란히 진 0:2 상황에서 출전하여 마침표를 찍고 말았다. 유리한 빌드를 탔음에도 뮤탈 스컬지 한타를 망치면서 박명수에게 패배했다. 본인도 프로리그 3연패 포함 공식전 5연패에 빠져 버렸고, 팀도 4연패에 빠지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가오는 3라운드는 위너스 리그라는 것. 더군다나 마재윤은 지난 시즌 위너스 리그에서 2연속 3킬을 한 적도 있는지라...

이후 2010년 1월 24일,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09-10 첫날 eSTRO전에서 선봉으로 출전했는데, 3킬은 커녕 빌드와 병력 수에서 공히 신대근을 압도하며 패배, 과연 명불허전의 마막장임을 증명했다. 온게임넷 해설자들도 상당히 당황하며 그 상황에서 어떻게 질 수 있었는지를 놀라워했다. 이 유명했던 경기는 이후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이 전개되는 와중에서 최대의 논란거리로 떠오른다. 당시 많은 스타팬들은 이 경기를 조작이라 의심했으나, 마재윤 본인은 이후 방송이나 모든 공개석상에서 이 경기를 조작하지 않았다고 끝까지 주장하였다.[77]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시점에서 이 경기를 조작으로 많은 이들이 잠정적으로 확실시하는 이유는 디테일한 내용에 있다.

마주작은 대놓고 앞마당이 넓은 맵에서 12앞을 했는데, 그러고도 빌드 싸움을 이겼고 이후 신대근이 저글링 싸움을 패하며 본진 입구를 열어주는 치명적인 실수까지 해 줬다. 그렇게 상대 본진에서 저글링이 수적 우위를 점하며 경기를 끝낼 수도 있었으나, 마주작은 그 저글링을 빙빙 돌리기만 하다 신대근의 드론과 충원 저글링에 짤막당했다.[78] 심지어 이후 공중 싸움에서는 컨트롤이 프로라기엔 너무나도 저열하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뮤커지 싸움의 기본조차 지키려고 하지 않았다. 상대 스커지를 회피하려는 움직임이 거의 없었으며 신대근의 뮤탈리스크를 꼬리잡은 때마저 일점사를 안 했고, 상술했듯 싸움 당시 최소 8기는 더 많던 자기 스커지도 뮤탈과의 축차투입으로 낭비했다. 물론 미네랄 위 뮤탈 교전 때가 '자기 뮤탈을 때렸다', '스탑 명령으로 딜로스를 유발했다' 등 고의 패배 의혹이 많다.[79] 그렇지만 굳이 이것 때문이 아니어도 경기 전체적으로 신대근이 너무나도 못했기에 승리당할 상황이 여러 번 있었음에도, 거기서 승리를 피하는 유일한 선택지들만 몇 번씩 일부러 고른 듯한 마재윤의 행보가 너무 빼박이기 때문에 현재까지 스타 1에서 가장 유명한 조작 경기로 꼽히곤 한다.

엿새 뒤인 2010년 1월 30일에는 저막토스로 악명높은 도재욱을 만나게 되었는데[80] 도세어를 능가하는 마커지를 작렬하는 등 3.3 혁명에 버금가는 그의 인생 최악의 경기력을 선보이며 완패했다. 이 경기는 그 도세어가 오버로드를 대량 학살하고 본진에 4다크 드랍이 떨어지는 등 사람들에게 그 날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강 민: 아.. 마재유우운!![81]
박용욱: 야~ 이거, 마재윤 선수, 오늘 너무 심한데요?
전용준: 스커지가 그냥 알아서 죽어주는데요?
전용준: 숙소에서 잘 하면 뭐합니까! 여기서 잘 돼야죠.[82]
그리고 이 도재욱전이 마재윤의 영원한 마지막 공식전 경기가 되었다.[83] 게다가 팀도 또 패배. 이렇게 3킬은 커녕 위너스 리그 2전 전패에 프로리그 5연패 포함 공식전 7연패만 찍고 영구히 물러나게 되었다. 참고로 이 도재욱전도 지금도 조작이냐 아니냐를 놓고 신대근전처럼 논란이 많다.

그렇게 몰락하면서 주장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는 말이 나왔고 결국 2월 1일, 주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후임은 부주장 권수현. 그런데 주장이 바뀌자마자 위너스 리그를 3전 전패[84]하며 죽을 쑤던 팀이 2월 2일, 삼성전자를 잡으면서 마침내 위너스 리그 첫 승에 성공했다.

2010년 2월 4/5일 펼쳐진 양대 PSL에서 나란히 탈락하였는데, 공식전&비공식전 다 통틀어서 영원한 마지막 경기가 된 온게임넷 스타리그 예선 전태양과의 경기에서는, 이상하게도 레어를 일찍 올렸음에도 끝내 하이브로 가지 않고, 레어 단계에만 머물면서 레어유닛으로만 버티다가 결국 패배하는 모습은 시청자들 뿐만이 아니라 해설진들까지도 참 의아하게 만든 모습이었다.

이로써 2005년 중반, 우주닷컴 MSL부터 시작된 13시즌 연속 MSL 본선 진출이라는 대기록이 끊어졌다. 더불어서 데뷔 이후 유일무이하게 개인리그 일정이 없게 되었다.[85] 그가 숙소에서 사라질 무렵의 마지막 케스파 랭킹[86]66위.

2.4. 로스터 말소, 이후 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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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시즌 3월 로스터에서 갑자기 말소되었다.

팬들은 그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해했다. 거기다가 팀 분위기도 암울한 당시 시점에 유흥업소에서 목격됐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떠돌았다. 2010년 3월 28일, CJ 홈페이지의 로스터에는 마재윤이 저그라인 첫번째로 자리를 잡고 있어서 일부 팬들은 복귀를 예상하기도 했으나, 정황으로 보아 홈페이지에 정보가 잘못 기재되었던 것 같았다. 2010년 3월 29일에 열린 프로게이머 정기 소양교육에도 불참했다.

CJ 측에서는 선천적인 무릎 질환으로 인해 대구광역시에 내려가서 요양을 받고 있다는 발표를 냈으며, 건강으로 병역면제 이야기도 나오기도 했다.[87]

그러나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이 대두되면서 3월에 로스터에서 말소되었을 때 이미 팀과 연락을 끊고 도주했다진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다만, 이 당시 승부조작을 하지 않았다고 감독에게 변명했다는 본인의 증언으로 보아 이 무렵 CJ 측에서는 '마재윤이 돌아올 가능성'을 남겨두려 했던 결과 상기와 같은 혼선이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1] 당시 기준으로는 박성준 쪽이 더 인지도가 높았고 프로게이머 데뷔 시점도 더 빨랐다. 그럼에도 마모씨 쪽이 크게 인상적인 족적을 못남긴 박성준과 대비되는 커리어를 쌓은 것이 특이한 부분.[2] 이윤열의 방송경기 데뷔전으로 유명한 코너이다.[3] 승자조 4강에서 2:0, 패자조 결승에서 3:0으로 승리했다.[4] 조용호와 라이벌 관계였는데 이 리그에서 5전제에서 두번 다 지면서 준우승을 했다.[5] 당시 물이 오른 조용호와 두 번의 다전제에서 패하며 준우승.[6] 공교롭게도 예선과 본선을 메가웹에서 벗어나 치렀던 첫 번째 리그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이다. 결과적으론 메가웹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7] 상대는 심소명[8] 이때까지는 테란전에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 약점이었다. 테란에게 불리한 맵이 많았던 데다가 대진운도 아주 좋았다. 테란전을 단 1게임 치르고 우승한 게 두 차례나 된다. 우주닷컴 MSL(16강 이윤열), 프링글스 MSL 시즌2(16강 원종서)[9] 이 분야 역대 최고기록은 16강전 1경기를 제외한 15경기가 전부 테란전이었던 Daum 스타리그 2007의 김준영, 그리고 16강에서 박성준을 2:1로 잡은 후 테란과의 다전제를 5번 겪은 당신은 골프왕 MSL박태민이다. 마재윤 정도로 테란들을 뚫고 올라간 저그는 많다. 8강 변형태, 4강 서지훈, 결승 이병민을 만난 EVER 스타리그 2005에서 우승한 박성준, 테란이 9명으로 과반수를 넘은 상태에서 우승한 EVER 스타리그 2007의 이제동 등. 마빡이들에게 과대포장된 부분.[10] 참고로 마재윤이 우주 MSL 우승 후 3.3혁명 이전까지 5시즌 동안 테란과의 다전제를 MSL에서 총 6회를 (최연성-최연성-한승엽-전상욱-원종서-진영수) 치렀는데, 이 숫자는 박태민이 당신은 골프왕 MSL 2004에서 우승하면서 겪은 테란과의 다전제 회수(5회. 전상욱-서지훈-이윤열(패)-서지훈-이윤열)보다 1회 많은 거다. 박태민이 운이 지독하게 없었거나 마재윤의 운이 지독하게 좋았거나 둘 중 하나일 듯.[11] 박태민은 "포스"로 정리됐다. 당신은 골프왕배 결승전에서 최강의 테란으로 손꼽히던 이윤열과 7전 4선승제를 치러 4승 2패로 우승을 했던 건 박태민만의 것이었고 동시기에 그 이윤열에게 패배했지만 아이옵스배 4강에서의 막판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배한 것도 박태민의 포스에 영향을 줬다. 하지만 이것과 2차 프리미어리그에서 KT리그 우승, 통합결승전에서 박성준을 상대로 준우승을 한 것 이외엔 이윤열, 최연성, 박성준에게 커리어에서 밀렸으며 WCG의 전신이었던 WCGC 2000에서의 우승은 당대 최강자를 가려내는 경력으로는 들어가지 않았고 무엇보다 당시 "테란 최강자"이며 최강의 선수였던 최연성에게 열세인 게 컸다. 반대로 마재윤은 커리어에 결점이 없어서 뜬 게 아니라 저그 최초로 테란들을 모조리 꺾어내고 단독 최강자로 시험받는 분위기로 뜬 것이다.[12] 원래 마재윤의 운영은 레어 상태의 힘싸움에서 테란을 짓밟아버리는 형태의 운영이었으나 이런 테란맵들을 극복하기 위해 마재윤은 패스트 하이브 이후 디파일러 활용이라는 현대 대 테란전 하이브 운영의 정석을 확립했다[13] 엄재경이 최초로 주장한 것으로 추정되며 저 두 대회 이외의 대회에선 테란이 하위권에선 힘들어도 상위권에선 강자들이 있었다는 이야기와 상반된다. 정석테란, 귀족테란으로 불린 김정민이나 메카닉을 잘다룬 김대건과 대나무 테란 조정현 등.[14] 2002 KT배 온게임넷 왕중왕전에서 테란의 실력자인 조정현, 2002 KTEC배 KPGA 위너스 챔피업쉽에서 자신의 라이벌 임요환을 이겼을 당시엔 공식전으로 취급받았고 차기대회 시드까지 받았지만 나중에 인정받지 못한다.[15] 2004년 6월 30일에 방송된 7차 iTV 랭킹전의 1라운드 결승에서 이미 최연성을 관광보내며 이겼었다. 주관방송사 iTV와 여기서 방송된 랭킹전은 경인지역에선 자리를 꽤 잡았고 지방으로도 송출도 했을 정도로 유명했지만 2004년 12월 이후 iTV 방송송출이 중단되며 역사에서 사라진다.[16] 신인이던 조용호가 2002년에 열린 Stout/Baskin Robbins배 KPGA 투어 4차 리그 준플레이오프에서 목동 저그 전략으로 5전제에서 임요환에게 승리를 따냈는데 이게 지금까지 임요환이 공식적으로 치러진 5전제에서 유일하게 저그 상대로 진 경기였다. 하지만 이 기록은 gambc의 KPGA 리그가 MBC GAME의 MSL로 바뀐 이후엔 인정받지 못하다 마재윤이 3번 우승해 MSL측에서 금뱃지를 받은 이후에야 공식기록으로 편입된다.[17] 2차 GhemTV 스타리그에서 강도경이 박경락과의 동족전 결승을 치르며 우승을 했다. 이 리그는 이윤열의 그랜드슬램의 칭호를 얻는데 일조할 정도로 관계자들 사이에선 권위가 큰 대회로 인식됐다. 하지만 케이블보다 비주류였던 스카이라이프로 송출되던 방송이라 존재를 인식한 e스포츠 팬들이 적었고 GhemTV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며 이윤열의 그랜드슬램을 언급할 때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된다.[18] 머슴 최연성과 머신 이윤열을 묶어 머씨형제로 지칭했다.[19] 투신 박성준은 7차 iTV랭킹전과 질레트배에서 최연성에게 먼저 충격을 준 이후엔 서로 막상막하였으나 이윤열에게 너무 많이 졌고 박태민은 이윤열과 막상막하였으나 최연성에게 너무 많이 졌다.[20] 투신 박성준은 MSL 본선에서 4강 이상에 진출해본 적이 없었고 박태민은 동시기에 열린 당신은 골프왕 MSL과 IOPS 스타리그 04~05에서 우승과 4강을 달성한 이후 우주닷컴 MSL에서 우승자 최초로 16강에서 광탈한 뒤 괄목할만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21] 2차 KT-KTF 프리미어 리그에서 KT Megapass 프리미어 리그측의 우승자 박태민이 홍진호와의 결승에서 이겼고 KTF fimm 프리미어 리그 측의 우승자 박성준이 이윤열과의 결승에서 이기며 2005년 1월 23일에 양박 둘이서 통합결승전으로 저저전을 치렀지만 공식 양대리그가 아니라 취급이 미묘했다.[22] 이때 마재윤 다음으로 꼽히는 강자는 조용호였는데 CYON MSL에서 승자결승과 최종결승에서 마재윤을 두 번 연속으로 이기며 마재윤을 꺾고 우승했다. 데뷔 당시 임요환의 스파링 파트너로서 임요환에게 강한 저그로 평가를 받았고 목동저그로 임요환에게 저그전에서 유일한 5전제 패배를 안겼으며 Stout/Baskin Robbins배 KPGA 투어 4차리그의 결승에서 비록 날빌에 1,3,5경기를 져서 준우승을 했지만 2,4 경기에선 목동저그로 두번을 이기며 선전한 경력이 있는 저그의 터줏대감이었다. 그러나 KPGA 투어 4차리그 이후에 열린 2002 Panasonic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목동저그가 파훼된 아방가르드 경기를 포함해 3:0으로 셧아웃을 당하며 이윤열의 그랜드슬램 제물이 된 이후 최강 테란들과의 경쟁력은 많이 상실했고 2006년에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 결승에서 한동욱에게 세트스코어 1:3으로 패배했다.[23] 재밌는 것은, 이후 2008년 3월, 이영호박카스 스타리그 2008 결승에서 송병구를 3:0으로 압살하며 우승하자, '앞으로 이런 테란은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라며 이 멘트를 다시 한 번 써먹었다. 그런데 진짜로 나중에 이영호가 마재윤을 능가하는 성적을 낸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심오하다.[24] 최연성에 이어 스타 관련 커뮤니티의 영구불변 떡밥인 최강자론에 대한 모든 반대를 침묵시켜 버린 역사상 두번째 게이머. 고작 1주일이기는 했지만(...). 박성준에게 무너지기 전 최연성맡겨놓은 우승트로피 가져간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최연성을 이겨라 팀리그였던 LG IBM 팀리그는 말할 것도 없고. 세번째는 갓모드의 이영호.[25] 이 시기를 대표하는 선수로는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4위, 2006년 시즌 1 우승, 시즌 3 4위를 차지한 한동욱이 대표적이다.[26] 그나마 저그가 강세였던 건 8강 진출자 중 한동욱과 변형태를 제외한 6명이 전부 저그였던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 1밖에 없었다. 이마저도 대회 맵 자체는 테란맵이라고 욕을 먹었고, 한동욱에게 4강에서 홍진호가 감기에 걸린 상태로 1,5 경기맵인 개척시대에서 앞마당 뒷공간에 추가 해처리 두 개를 건설한 뒤 4해처리 저글링으로 몰아치는 필살기를 준비하며 1경기를 이겼으나 5경기에선 패배하며 안타깝게 탈락으며 결승에서 조용호가 일방적으로 압살당해 준우승했다.[27] 그래서 마재윤의 대처능력이 타고난 것으로 평가받았던 시절이 있었으나 나중에는 대처능력이 부족(손속도가 느려서)해서(...) 미리 병력을 뿌려놓은 것이었다는 것으로 판명된다.[28] 2해처리보다 많은 라바를 활용할 수 있어 그 라바가 때에 따라선 테란의 초반 압박을 응징하는 저글링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후반을 노리는 드론이 될 수도 있다.[29] 사실 이건 당시 모든 토스를 압살하던 마재윤을 잡을 사람으로 최상급 토스인 강민에게 희망을 걸었던 것[30] 2006 시즌에 온게임넷에서 열린 모든 온게임넷 스타리그를 후원한(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 ~ 시즌 3) 신한은행 측이 각 시즌의 우승자 3명과 별도의 '프리 마스터즈'(이름만 거창할 뿐, 실상은 신한은행 마스터즈 출전자 중 남은 한 명을 가리는 간단한 이벤트전) 우승자를 더해 총 4명을 모아 최후의 챔피언을 가리고자 기획한 이벤트전. 원래는 마스터즈 우승자에게 차기 스타리그(DAUM 스타리그 2007)의 톱시드를 부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윤열은 이후 톱시드를 부여받지 못하고, 마재윤이 톱시드를 차지한다.[31] 이 경기에서는 그동안 마재윤에게 웃어주던 정찰운까지 모두 빗나가며 그야말로 탈탈 털린다.[32] 당시 무지하게 욕을 먹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상대가 초보도 아니고 엄연한 현역 프로인데 의도적으로 봐주는 플레이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33] 대전 당시 애제자이자 마재윤 이전의 최강자였던 최연성이 WEF 2005년 결승에서 2:0으로 진 걸 시작으로 CYON MSL에서 승자 4강 3전제와 패자 결승 5전제에서 두번 셧아웃을 당한 뒤 IEF 2006에서 2:0으로 이기며 겨우 추스린 상황이었지만 CYON MSL의 여파를 수습하긴 부족했으며, 한때 IS에서 임요환과 함께 한솥밥을 먹었던 후배이자 최연성 이전의 최강자이며 그 최연성의 라이벌이었던 이윤열은 가벼운 이벤트매치로 인식된 ELITE 학생복 MSL 올스타리그 부산투어 결승의 3전제와 상금도 적고 단기대회였으며 한국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외국인 선수들도 출전해 격이 떨어지는 대회로 인식된 WEF 2006 결승에서 2번 연속으로 0:2로 지며 비록 두 대회가 온게임넷 정규 스타리그와 MSL, 그리고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로 이루어진 공식전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 비공식전으로 취급됐지만 어쨌던 실전에서 패배한 상황이었다. 이때의 임요환은 세 종족을 아우르는 최강자에선 멀어졌고 대회 성적도 부진했으나, 저그전만큼은 여전히 저 둘에게 밀리지 않았으며, 스타성은 저 셋을 뛰어넘는 선수였기에 이 대진에 뜨거운 관심이 모아졌었다. 한마디로 머씨형제가 당했지만 임요환이라면 몰랐다.[34] 역대 최강게이머 논란과 저그 단독 최강자 논란, 낮은 프로리그 출전율, 소위 공식전 양대리그의 또 다른축으로 취급받던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본선에 올라본 적이 없던 커리어 등 여러 논란을 겪은 마재윤이 임요환과 경기를 했던 건 이때가 처음이었고 10일 뒤 훈련소에 들어간 뒤 민간팀보다 열악한 환경을 가진 공군 ACE에 배치될 예정이라 여기서 마재윤이 졌거나 슈퍼파이트가 없었다면 당시의 최강자는 여전히 마재윤으로 인정받겠으나 2007년 2월 24일에 열린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3 우승 이후부터 2007년 3월 3일 열린 곰TV MSL 시즌1 결승전 직전까지의 흠결없는 1주일 천하 분위기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고 본좌라는 단어의 아이콘이 되진 못했을 것이다.[35]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 우승자 이윤열, 프링글스 MSL 시즌2 우승자 마재윤.[36] 8강 박정석, 4강 서경종, 결승 김성제.[37] MSL 결승전에서 커세어에 호되게 당했기에 이번엔 커세어를 잡기 위해 발업 히드라로 열심히 커세어를 쫓아다녀봤지만,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하고 일방적 패배를 당한다.[38] IEF 2006에서 0:2로 패배할 당시 2차전과 거의 동일한 구도였다. 기존의 더블커맨드 전략이 마모씨에게 안된다는 것을 깨달은 최연성의 난전 유도 막싸움 플레이에 제대로 휘말려 패배.[39] 물론 프로토스의 헤게모니가 김택용에게로 완벽하게 넘어간 상황에서의 '성전'은 점점 실질적인 의의를 상실하고 단지 팬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오래된 '클래식'의 재현으로 전락하게 된다.[40] 앞서 신한은행 마스터즈 부분의 각주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마스터즈 우승자인 이윤열이 탑시드를 부여받아야 하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음에도 결국 탑시드는 마재윤에게 돌아갔다. 이전 대회 결승에서 '임요환 유니버스'를 깨부수고 이제 새로운 세계관을 써나갈 것으로 기대되던 마재윤에게 온게임넷에서 거는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신기루가 되어 사라지고 만다.[41] 공식전 0:6, 비공식 포함 전체 3:8[42] 뮤탈을 전부 가디언으로 변태시켜 본진까지 밀어붙이다가 다 잡히고 이후 가스 부족으로 인한 디파일러 충원 실패로 변형태의 엄청나게 쌓인 베슬들과 바이오닉 부대에 그야말로 농락당하며 패배.[43] 탈락한 송병구는 이후 8강에 진출한 이주영의 갑작스런 군입대로 생긴 공백를 메우기 위해 실시된 와일드카드전에서 승리하며 부활했고, 준우승까지 차지한다.[44] 변형태와 마재윤은 사적으로도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고 한다.[45] 마지막 천적은 2009년 2월, 로스트사가 MSL 8강전에서 마재윤의 부활을 저지하고 짓밟아버린 이후 악몽이 되어버린 저그 천적 김명운. 더군다나 김명운은 저그로써는 보기 드문 저막저그인데, 특이하게도 그런 김명운은 마재윤에게는 상당히 강했다.[46] 1위 송병구, 2위 김택용.[47] 그 유명한 백마고지 마인밭 폭사 자살 돌격이 나왔다.[48] 대괄량(임요환), 콩익덕(홍진호), 벼운달(이윤열), 핑계소문(송병구), 마자룡(마재윤).[49] 마재윤의 생일인 11월 23일에 열렸다.[50] 김택용의 커닥체제가 갖추어지기 직전, 땡히드라로 급습해 본진을 밀어버린다.[51] 이때 엄재경은 '스타리그는 다르거든요~'라고 하며 MSL의 결과가 스타리그에서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내비친다. 김태형 역시, 그 동안에 마재윤이 김택용에게 당한 수모를 언급하며, 오늘 드디어 승리했으니 앞으로는 확실히 일어설 것이다 라는 등, 마재윤에 대한 강한 애정을 표시한다.[52] 뒷마당 넥서스를 파괴하며 승기를 잡았으나, 이후 커세어 대부대의 종횡무진 활약에 3.3혁명의 패턴 그대로 오버로드가 몰살되며 결국 패배.[53] GG를 치기 전에 헤드셋을 벗는 것이 규정에 어긋나는 행동이었기에, 마재윤은 주의 조치를 받았다.[54] 주로 2005년부터 실시된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가 된 선수들로, 예전과 달리 각 구단들이 제대로 된 기업 스폰서와 안정되고 체계적인 연습환경, 육성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던 시기에 등장하여 급격히 성장하다가, 특히 4번의 곰TV MSL 시즌 기간(2006년 12월 ~ 2008년 3월)동안 결정적으로 그 이름을 떨치고 올드들을 완벽하게 몰아내게 된다. 그래서 드래프트 세대들 중 초기 세대였던 이들을 일컬어 '곰TV 세대'라고도 한다. 이 세대교체 기간 동안 MSL은 명실공히 스타판 에피소드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온게임넷 스타리그와 명실공히 어깨를 나란히 하는 등,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55] 전 대회 챔피언 이제동, 당시 괴물 신인으로 욱일승천의 기세를 보이던 도재욱, 테란의 신흥강자 염보성에게 3전 전패의 대수모를 당하고 광탈하고 만다. 이 대회는 16강 체제로 운영되던 스타리그에 마재윤이 등장한 마지막 대회로, 바로 다음 대회 EVER 스타리그 2008 1차 본선에 진출하기는 했으나, 듀얼 토너먼트가 본선 1차로 흡수된 이 대회에서 24강 탈락은 예전 대회로 따지면 듀얼에서 탈락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구색 자체는 엄연한 본선 진출이나, 그 무게감은 현저히 떨어진다. 사실상 본선 진출 실패라고 봐도 무방한 상황. 차기 대회 24강에서는 임원기이윤열에게 연패하며 PSL으로 추락하는 굴욕을 당하였으며, 이 스타리그를 끝으로 마재윤은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으로 영구제명될 때까지 다시는 스타리그 본선에 끝끝내 이름을 올리지 못한다.[56] 총 7번 대결을 하는 방식으로, 특이한 점은 세트를 거듭할수록 해당 세트에 걸린 상금이 점점 높아진다는 것이다. 1경기와 7경기의 상금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따라서 마재윤 대 이영호의 결과는 3:4였지만, 그 상금의 차이는 실로 컸던 것이다.[57] 사실 그 배틀로얄이란 맵 자체가 저그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극저그맵으로 악명높은 맵이었기 때문에 이 승리도 따지고 보면 빛이 바랜 승리였다. 이성은과의 공식전 전적은 3:8인데, 2승은 5전 3선승제에서 2:3으로 패배할 때 기록한 것이고, 1승은 배틀로얄에서 기록한 것이니 사실상 제명되는 그 날까지 이성은을 제대로 이긴 적이 없는 셈이다.[58] 사족으로, 당시에 김성기도 비슷한 무렵에 마재윤과 함께 2군으로 강등되었었으며, 당시 CJ는 주현준을 포함한 많은 주전급 선수들이 2군으로 강등된 적이 있었다.[59] 클럽데이 온라인 MSL과 바로 다음 대회인 로스트사가 MSL 2009에서 연속으로 8강에 진출하여 끝까지 투혼을 불사른다.[60] 2007년에 이은 2연패다.[61] 이날 하루 동안 택뱅을 모두 격파한다.[62]박성훈과의 경기에서의 극적인 엘리미네이션 역전승.[63] 곰TV MSL 시즌1 결승전 직전의 인터뷰에서...[64] 곰TV MSL 시즌1 ~ 2, 클럽데이 온라인 MSL.[65] 김철민 캐스터의 선창.[66] 나머지 일제합창.[67] 게다가 김명운은 당시만 해도 저막 기질이 많이 남아있었다. 실제로 이후 올라간 4강에서 박찬수에게 0:3으로 8시 뉴스 관광을 당했다.[68] 물론 마지막 제4경기에서는 초반 빌드가 갈리는 바람에 승부가 결정나서 아쉬운 패배이긴 했다.[69] 다만, 리그에 진출을 못해서 플레이 기록이 없다.[70] 거기다가 조병세역올킬을 해 버려서 마재윤은 깔끔하게 묻힌다.[71] 박정길, 원종서, 박명수. 그러고 보니 박정길을 제외하면 조의 3명이 모두...[72] 비공식전까지 포함해도 3:8로 크게 열세.[73] 당시 MBC GAME 측에서 차기 리그 스폰서를 구하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일단 스폰 무확정 상태에서 서바이버 토너먼트부터 진행하게 되었다. 이후 어렵게 어렵게 스폰을 구해서 열린 대회가 바로 NATE MSL(...).[74] 예상치 못한 마재윤의 승리에 대한 해설진들의 반응. 니가 왠일로?라는 비하적 뉘앙스가 있었다.[75] 김택용 또한 최종전에서 이신형에게 패해 광탈하였고, 결국 이신형은 마재윤 - 김택용 팬덤에게 공공의 적으로 찍히게 된다. 하지만 이후에 마재윤과 김택용이 나란히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아프리카TV 코인 게이트에 나란히 연루되면서 이후에 이신형은 참교육을 시켜줬다고 칭송을 받았다. 참고로 이 조에 속한 선수들이 김택용, 김승현, 이신형, 마재윤이었는데, 이신형을 제외하고 죄다 불미스런 일들에 연루되었다. 김택용과 김승현은 코인 게이트에, 마재윤은 승부조작 사건에 각각 연루된 것이다.[76] 설상가상으로 PSL 면제권조차 못 받는지라 예선을 직접 뚫어야 한다. 하지만 2개월 뒤에 예선도 못 뚫었다. 참고로, MSL에서 2연패로 광탈하면 바로 PSL로 가는 방식은 아발론 MSL에서 새로히 생겨난 방식으로, 이 방식은 이 NATE MSL에서도 유지되다가 하나대투증권 MSL부터는 폐지되었다. 다만, 2연패를 한다 해도 12개 각 팀 내 KeSPA 랭킹 1위 자는 서바이버 예선이 면제되었다.[77] 왜냐하면 이 경기가 공식적/법적으로 조작이 되면, 받은 수익금을 환수당할 수도 있기 때문.[78] 그 때 신대근의 저글링 1기가 상대 드론 3기를 끊어냈다.[79] 슬로우모션을 포함한 자료를 보면 저 둘 중 하나는 거의 무조건 한 것으로 보인다. 마재윤의 뮤탈에만 집중적으로 쐐기벌레 타점이 찍혔기 때문이다.[80] 그런데 상대전적은 이 경기 전까지 의외로 0대2로 마재윤이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었다. 그리고 당일 경기까지 패하면서 0대3이 되었고, 마재윤은 영구제명되는 그날까지 도재욱을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81] 마재윤의 스커지가 커세어 부대에게 전멸하는 황당한 모습을 보며 내뱉은 불만섞인 탄식.[82] 조규남 감독은 마재윤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항상 '연습실에서는 정말 잘한다.'라는 말을 하곤 했는데, 전용준은 이런 상황을 디스한 것이다.[83] 비공식전까지 포함하면 마지막 경기는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1 'PC방 예선'의 대 전태양전.[84] 심지어 1월 27일, 오메본좌에게 당한 올킬 포함.[85] 설령 서바이버 토너먼트를 통과했다 해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는 MSL 진출조차도 불가능했을 것이다.[86] 2010년 3월.[87] 실제로 마재윤은 무릎 질환을 겪어 군대가 면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