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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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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시즌별 성적
2013 시즌 2014 시즌 2015 시즌
두산 베어스 2014년 페넌트레이스 월별 진행 결과
시범경기 3~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두산 베어스 2014 시즌 최종 성적
순위 승률 1위와의 승차
6 / 9 59 1 68 0.465 20.0
2014년도 팀 캐치프레이즈
2014 뒤흔들 Hustle Doo
파일:2014Doosanbearsc1ei1.jpg
2014년도 두산 베어스 홈경기 누적 관중 수
구장 경기 수 전체 관중 수 평균 관중 수 총 관중 순위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128경기 1,128,292명 17,630명 2위
관중수 확인하는 곳: KBO 리그 관중 현황
타율 출루율 장타율 평균자책점 득점 실점 홈런
0.293 (3위) 0.366 (4위) 0.431 (7위) 5.43 (6위) 687 (6위) 733 (6위) 108 (7위)
(출처 : 한국야구위원회)

1. 시즌 준비2. 시범경기3. 페넌트레이스4. 시즌 총평5. 시즌 후6. 둘러보기 틀

1. 시즌 준비

2013년 11월 17일 중견수이자 1번타자 이종욱과 유격수 손시헌이 각각 4년 50억, 4년 30억에 NC 다이노스와 계약하면서, 옛 스승인 김경문 감독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동시에 한화가 중견수 이용규, 2루수 정근우라는 대어를 영입하는 등 타팀들이 전력을 보강 혹은 유지하느라 바쁜 상황에서 준우승 이후 전력 약화를 우려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특히 1번타자인 이종욱의 부재는 종박베어스로 불리던 두산이 향후 정수빈, 민병헌과 같은 빠르고 젊은 유망주들을 든든한 테이블 세터진으로 성장시켜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게다가 NC는 당시 신생팀이었기 때문에, 규정상 보상선수를 얻을 수가 없었다.

(해외진출을 선언한 윤석민을 제외하고) 마지막으로 최준석이 남았었다. 본인은 주전보장이 되는 팀에 가고 싶다고 했으니 애초에 두산에 복귀할 확률은 매우 적었다[1]. 결국 그는 4년 35억에 롯데 자이언츠와 계약했다. 그래도 보상선수는 얻을 순 있다.

이후 이어진 2차 드래프트에서는 임재철을 LG에[2], 이혜천을 NC에, 서동환을 삼성에[3], 김태영[4]을 KIA에 빼앗기면서 유망주 납치라는 2차 드래프트의 단점을 보여주며 험난한(?) 출발을 기약하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프로야구 2차 드래프트 참조. 더군다나 그 동안 투수조의 조장 역할을 했던 노장 김선우는 두산 프런트와의 합의[5] 끝에 팀에서 방출되면서 베테랑과 유망주의 출혈이 컸다. 거기에다 윤석민넥센 히어로즈외야수 장민석[6]과의 맞트레이드는 가히 화룡점정. 넥센 측에서는 트레이드 일주일 전부터 현장에서 다들 알고 있었으나 두산에선 트레이드 된 본인인 윤석민조차도 트레이드 당일에 자기가 트레이드됐다는 사실을 몰랐다. 기사 이것도 막장인데 윤석민은 기자가 전화하고 나서야 자기가 트레이드 된 것을 알았다. 프런트가 아예 현장을 무시한 셈이다. 팬들에게 엄청난 욕을 얻어먹었던 이성열-오재일 트레이드는 사실 당시 시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많기는 하지만 장단점이 너무나 뚜렷한 선수와 아예 불확실한 유망주를 바꾼 것이므로 불리한 트레이드라고 해도 무조건 손해를 보았다고 단정할 수만은 없지만(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올해 임재철에 대한 대우와 윤석민-장민석 트레이드에서 두산은 볼넷 경시-도루 중시의 태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에서 후에 결과적으로 운이 좋을지라도 당장 충분히 비판의 대상이 될만하다.

그리고 11월 27일, 김진욱 감독이 전격 경질되었다. 새 감독은 송일수 2군 감독. 두산 프런트는 김 감독의 경질사유를 승부사 기질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정말 그랬다면 한국시리즈 직후에 경질했어야 하는 게 시기상으로 더 적절했을 거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부족하다. 오히려 시즌 내내 김 감독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두산 팬들이 '김 감독이 프런트의 시즌 후 막장 행보에 항명을 하지 않았나' 하는 의혹을 제기했는데 결국 사실이 되었다. 젊은 선수들도 기회가 왔다며 좋아하는 게 아니라 '믿고 따르던 좋은 선배들이 팀을 나가니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 '저렇게 나이먹고 버려지느니 기회가 되면(FA) 이 팀에서 나가는게 상책이 아닐까?'라는 말을 하면서 불안해 하고 있다. 팀 분위기는 완전 막장으로 떨어진 상황."우리는 두산 베이비?" 선수들은 멘붕중 "사람이 미래다"라는 모기업의 캐치프레이즈에 실시간으로 먹칠을 하기 시작한 셈이다.

준우승 시켜준 감독과 팀의 리더들이 되어 줄 베테랑들 내치면서 기나긴 암흑기에 빠진 맞은편 덕아웃 팀을 가장 가까이에서 10년 넘게 지켜봤으면서도 배운 게 없냐는 비판도 나왔고, 실제로 같은 감독을 쫓아내고 프런트가 팀 운영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 옆동네 비룡네와는 거의 똑같은 행보를 보여주는 상태다. 암흑기를 거친 LG나 몰락하기 시작한 SK나 모두 해당 문서에 서술되어 있다시피 프런트의 과도한 간섭이 독이 된 경우고, 지금도 두산의 현 상황 역시 프런트가 주도하는 만큼 팬들은 비슷한 형태의 암흑기를 맞이하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있다.

한편, 11월 28일 최준석의 보상선수로 김수완을 지명하였다. 그리고 김태룡 단장이 김수완 지명 후 한국일보와 한 변명성 인터뷰는 오히려 불 붙은 두산 팬들의 여론에 석유통을 던져버렸다. 특히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마이애미 말린스가 2003년 월드시리즈 우승 직후 리빌딩에 들어가는 걸 보고 많은 걸 느꼈다고 했는데, 당시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해외야구 팬들이라면 더더욱 뒷목을 잡을 인터뷰였다.[7] 그야말로 변명만을 위한 무리수라는 욕만 들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사실은 2013년 11월 26일자로 두산건설이 자본 감소를 단행하며 이번 스토브리그의 선수단 대규모 정리에 대해, 과거 해태나 쌍방울처럼 두산의 재정난 때문에 고액연봉자들을 쳐내는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점점 현실화되어갔다. 감자선언을 한 오전에 이어서 오후에는 유상증자까지 단행한다는 소식이 들리며 우려가 증폭되었다. 결국 연봉협상에서 선수들에게 파격적인 연봉 인상을 보여주며 저효율 고액 연봉자를 쳐내며 저액이지만 활약한 젊은 선수들에게 보상을 해주었다.

게다가 모기업에서 구단에 자생을 하라고 했다는 카더라도 떠돌았다. 이게 어느 정도 사실이라면 이전의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수 있다는 뜻. 이제는 한창 넥센이 막장 상황이었을 때 들고 나오던 원할머니 보쌈 스폰서로 원보 베어스가 되는거 아니냐는 자조적인 목소리마저 나오는 상황. 물론 미래를 속단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팬들은 잇따른 사태에 과거 현대 유니콘스의 사례를 떠올릴 정도로 불안에 떨고 있다. 그래도 두산 베어스롯데 자이언츠, 넥센 히어로즈와 한국 3대 흑자 구단이다. 그러니 큰 걱정은 하지 말자.

그리고 이러한 사태의 방점을 찍듯이, 김선우LG 트윈스와 연봉 1억 5천에 계약을 하였다. 이로서 두산 투수조와 타자조의 두 고참이 모두 서울 라이벌팀에 가버리는 두산팬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어서 정명원 투수코치가 구단에 사표를 제출했다는 카더라가 돌았는데, 결국 사실로 밝혀졌다. 구단 프런트는 두산 투수들 사이에서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의 위치에 있는 그를 잔류시키기 위해 사표를 반려하려 했으나 김진욱 감독 경질로 인해 거절했다고. 팬들은 김진욱 감독 재임 시기 동안 투수진 안정에 크게 기여한 코치가 허망하게 팀을 떠나는 것을 보면서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야기한 두산 프런트에 대해 이를 갈고 있는 중이다.

이런 흉흉한 분위기에서 외국인 타자 호르헤 칸투와 계약을 논의하고 있다고 소식이 흘러나왔다. 다만 KBO의 규약이 아직 개정되지 않은 관계로 공식적인 발표가 나올 때까지는 기다려야 할 듯. 결국 12월 9일 계약금 5만 달러, 연봉 25만 달러로 총액 30만 달러에 호르헤 칸투 영입에 성공했다. 최준석, 윤석민의 공백을 메워줄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한다.[8]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반론도 있다. 손시헌은 유격수로의 하드웨어적 한계가 노쇠화[9] 되면서 나타나고 있어 김재호라는 더 확실한 카드가 있는데 잡을 필요가 있나는 평이 대부분이다. 장민석은 이종욱이라는 외야의 한축이 떨어져 나간 상태에서 장민석의 보강으로 외야를 확보하는 것은 프런트의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이다. 최준석은 시즌 중에서는 삽만 푸다가 포스트 시즌에 잠깐 반짝한 것으로 과도한 금액을 요구해서 프런트가 잡지 못한(않은?) 것이다. 또한 거포라는 것이 2013년 부터 들어오게될 외국인 타자와 역할이 겹쳐 곧 김현수의 FA가 있는데 무리하지 않는 것이 현명했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체중 관리 실패로 고질적인 무릎 부상을 안고 있다는 점도 재계약을 망설인 이유 중 하나였다. 윤석민은 3루에 이원석이라는 대안(군 문제가 걸려 있지만)이 있을 뿐만이 아니라 그의 유리몸 때문에 두산 내야수들이 줄부상이 있었을 때도 1군 로스터에 올리지 못할만큼 사용도가 떨어지고 거포라는 존재가 외국인 타자의 도입으로 겹치는 역할이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빈약한 두산의 외야를 채워줄 트레이딩 카드로 적절했다는 평이다.
12월 8일 김민재, 조원우 코치가 사의를 표명했다.

12월 12일 더스틴 니퍼트와 재계약을 체결했다. 두산팬들은 유희관에게 285% 인상된 1억원을 제시한 것과 함께 모처럼 프런트가 일 잘했다며 칭찬을 하는중.

12월 28일 마지막 외국인 선수로 2013 시즌에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뛰다 웨이버로 풀린 크리스 볼스태드를 영입했다.[10] 플로리다 말린스 시절에 10승 이상을 한 번 했지만 AAA와 메이저를 왔다갔다 한 전형적인 AAAA 타입의 투수다. 그런데 볼스태드가 은근 이야깃거리가 많은데, 바로 박찬호의 통산 3번째 홈런을 허용했던 투수였다. 그리고 볼스태드의 키가 203cm로 니퍼트와 장민익과 합치면 잠실 트리플타워라는 드립도 벌써부터 나오는 중.

12월 30일 스포츠동아 보도로 인해 이혜천과의 다년계약 파문이 발생했다. 이혜천이 2011년 귀환한 시점에 이면 계약으로 4년 계약을 했는데 2차 드래프트로 NC 이적이 되었으니 1년 안 뛰게 되었고, 그에 따라 선입한 계약금에서 1년치인 2억을 환급하라고 선수에게 요구한 것. 선수는 자의로 의한 이적이 아니기 때문에 환급할 사유가 없다고 반박하는 중이다. 선수가 풀어달라고 발언을 했었기 때문에 이미 그 상황에서 계약이 끝났다는 두산측의 입장과, 자유계약신분이 아닌 40인 보호선수에 미포함돼서 옮긴 경우는 기존 소속팀이 두산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계약이 보존 되어야한다는 양측의 입장이 대립 중이다. # 이와는 별개로, 그 동안 스포츠계에서 관행처럼 여겨지던 이면계약의 실체가 드러나는 계기가 되어 더욱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월 9일 송일수 신임 감독이 '김현수만 주전, 나머지는 무한경쟁'이라고 언급함에 따라 선수들의 치열한 생존경쟁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1월 중순 새로운 코칭스태프의 인선작업이 끝났다. 정명원 코치가 떠난 1루 투수코치에는 권명철 2군 투수코치가 1군으로 승격되었으며, 작전 및 주루코치에는 유지훤 전 한화코치가, 조원우가 떠난 외야수비코치 자리에는 지난 시즌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친 강동우 코치가 선임되었으며, 권명철이 1군으로 승격하면서 2군 투수코치에는 이광우 전 KIA 코치, 2군 배터리코치에는 최해명 코치가 선임되면서 모든 인선작업을 끝냈다.

2월 4일 드디어 오종학 응원단장이 짤렸다!!!. 후임은 여자 프로농구 춘천 우리은행 한새의 응원단장인 한재권 단장. 1월 초부터 응원단 입찰 공고가 있었으며 오종학과 전 넥센 히어로즈 응원단장인 서한국, 다른 한 인물이 참여했는데, 그 중 다른 한 인물이었던 한재권이 된 것.

3월 4일에는 모기업인 두산이 구단에 100억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이유는 아무래도 300억원이 들어간 2군 구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냥 2군 구장 관련해서 돈을 받은 거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기사 및 자세한 설명

2. 시범경기

두산 베어스/2014년/시범경기 문서 참조

3. 페넌트레이스

3.1. 3~4월

두산 베어스/2014년/3~4월 문서 참조.

3.2. 5월

두산 베어스/2014년/5월 문서 참조.

3.3. 6월

두산 베어스/2014년/6월 문서 참조.

3.4. 7월

두산 베어스/2014년/7월 문서 참조.

3.5. 8월

두산 베어스/2014년/8월 문서 참조.

3.6. 9월

두산 베어스/2014년/9월 문서 참조.

3.7. 10월

두산 베어스/2014년/10월 문서 참조.

4. 시즌 총평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악의 시즌 중 하나로 1990 시즌, 1996 시즌, 2003 시즌, 2022 시즌과 함께 꼽히며,[11] 2010년대 KBO 최악의 시즌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시범 경기와 시즌 초반 5월까지만 해도 막강한 타선의 힘을 앞세워 2위까지 치고 올라갔지만, 6월부터 선발이 무너져 버렸고, 불펜은 혹사를 당했다. 여기에 잦은 번트와 되도 않는 작전 야구 때문에 타격감까지 떨어지면서 2위 → 6위까지 떨어지며 최악의 한해를 보내고야 말았다. 특히 옆집 라이벌이 초반에 감독이 도망치면서 좌초 위기에 놓였으나, 후임자가 팀을 수습하여 플레이오프 진출까지 하는 기적을 지켜보며 두산의 실망스런 행보에 대한 두산빠들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11년만에 옆집보다 낮은 순위에 랭크되고 말았으니 이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가?

작년 준우승 팀이 6위까지 추락한 결과도 좋지 않았지만, 경기 내용을 면면히 살펴보면 내용도 매우 나빴다.(성적은 59승 69패로 망신당한 시즌을 보내게 되었다.)

노경은이 부진함에도 불구하고 2군으로 내리지 않고 혹사시킨 점, 부상 경력이 있는 니퍼트를 굴려먹은 점[12], 오현택윤명준의 혹사, 불안한 마무리 이용찬에 대한 믿음 등등, 투수 운용에서도 선수에 대한 비전이나 계획 따윈 없는 운영으로 욕을 먹었다.

뭐니뭐니해도 이번 시즌 두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두산만의 뚝심 있는 야구 색깔의 실종이라는 점이다. 두산은 타 팀에 비해 마운드가 강력하지 못하지만, 이를 타선의 힘과 집중력 있는 수비, 기동력 있는 발야구 등으로 커버해왔다. 하지만 이번 시즌 두산은 이런 장점들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무사에 주자가 나가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번트를 대버리거나 작전을 걸어버린다. 이런 스몰볼은 결국 타격 사이클을 엉망으로 만들었고, 기껏 점수를 얻어내도 선발이나 불펜은 더 많은 점수를 헌납하며 무너졌다. 그렇다고 투수들이 관리를 받아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배려한 것도 아니었으며, 시즌 후반이 되어 이광우가득염 코치가 올라오고 나서야 몇몇 신진 자원들이 가능성을 보여줬을 뿐이다.

한 마디로 투수는 갈아넣으면서 점수는 줄대로 주고 주야장천 번트질에 선수 기용도 엉망진창인, 야구라고 하기에 부끄러울 수준의 동네야구스런 참 한심한 경기력이었다.

결국 10월 21일, 단 1시즌만에 감독 경질이라는 한국 프로야구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일까지 발생하고야 말았다. 새로운 감독은 김태형SK 배터리 코치. 재밌는 점은, 김광수 감독 대행 이후 신임 감독을 뽑던 2011 시즌 말에도 김태형이 감독 후보로 언급된 적이 있는데, 그 때 당시 김태형 코치에 대한 여론은 굉장히 부정적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두산빠들이 하나같이 '두산독립만세'를 외치며 열렬히 환영하는 중이다. 송일수에 대한 평판이 얼마나 나빴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부임 후 팀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다[13].

감독 교체에 더해서 프런트는 김태형 감독 체제를 보조하기 위한 새로운 코치진 영입을 시사했다.

한편, 김진욱 전 감독에 대해서도 재평가가 이뤄지는 중. 물론 KBO 한국시리즈 우승에는 못 미쳤고, 투수 운용이나 초보 감독으로서의 부족한 면모를 보이긴 했지만, 노경은, 유희관 등을 발굴해 선발 야구를 정착시켰고, 개판이던 팀을 추스려서 팀 분위기를 수습해 준우승까지 이뤄낸 점이 송일수와 비교되며 재평가를 받고 있다. 과실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빛을 못 봤던 공적이 송일수의 병크 때문에 드러난 케이스다.

이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가 유명해지자 IS(Il-Su) 드립도 나올 정도. IS로부터 해방된 두산 베어스

두산베어스 2014년 전체 선수 활약도 버블차트(WAR를 중심으로)
2014년 두산베어스 vs 타팀 상대전적/상대스탯
2014년 두산베어스 상대 리그 타자들 성적.

5. 시즌 후

FA외부영입을 안하던 두산이지만, 2014 시즌 FA 최대어인 장원준과 4년 84억에 계약했다.

6. 둘러보기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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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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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후반기에는 김진욱감독이 전반기에 최준석을 기용하지 않았다는 주장들을 인식해서 그런지 주로 기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오재일에게 밀리기도 했다[2] 이쪽은 프런트가 코치직을 제안했으나 임재철이 현역에 대한 미련이있자 유망주 보호를 위해 보호명단에서 제외한 케이스.[3] 이로써 2005년 드래프트때 두산과 계약한 모든 선수들은 더 이상 두산 소속이 아니게 되었다.[4] 2013년 7월 김상현(金相賢)에서 김태영으로 개명했다. 다만 개명한 것이 시즌 중이라 공개를 미루었을 뿐.[5] 프런트에서 은퇴 후 코치직을 제안했으나 김선우가 거절.[6] 2013년 시즌 종료 후 장기영(張岐英)에서 개명했다.[7] 2003년 우승 이후 플로리다 말린스의 리빌딩은 서비스타임 종료로 인한 연봉 대폭발과 신축구장 재원 마련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지금 두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는 다르다.[8] 이 선수는 좋게 말하면 적극적인 타격을 하고 나쁘게 말하면 공갈포다. 이는 최준석과 상당히 비슷한 타입이다. 둘다 수비가 좋지 않다는 놀라운 공통점도 있다.[9] 2010년 플레이오프 5차전, 2013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의 실책 등. 이는 손시헌이 고교 졸업 당시는 물론 대학 졸업 때도 지명을 받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유지현의 예에서도 나타나듯이 체구가 작은 선수들은 대체로 기량이 빨리 쇠퇴하는 경향이 많다.(유지현은 여기에 2002년 연봉조정 신청에서 승리하면서 찍혔던 것도 있었지만.)[10] 현재 언론에서는 '볼스드'로 표기를 하지만, 스펠링이 Volstad이므로 '볼스드'가 맞다.[11] 1990년은 옆집 LG가 창단 첫 우승을 할 때 35승 5무 80패(승률 0.313)라는 처참한 승률을 기록하며 꼴찌로 마감하여 바보OB라는 멸칭을 들은 시즌이고, 1996년은 디펜딩 챔피언이 꼴찌로 추락한 최초의 팀이라는 불명예를 썼으며, 2003년은 11승 39패로 시즌을 시작해 7위로 마무리했고 시즌 끝에는 9년동안 팀을 두 번 우승으로 이끈 김인식이 자진사퇴했다. 2022년은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던 팀이 9위로 대몰락하고 그 과정에서 경기력도 형편없는 역대 최악의 시즌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2014년을 포함해서 해당 시즌들의 공통점은 라이벌 LG보다 순위가 높은 시즌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12] 특히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는 지겨울 정도로 표적 등판을 시켰는데, 이것 때문에 선발 로테이션이 꼬여서 이후에 와장창 깨지고 만다. 이는 삼성에게 1승을 따내기 위해 다른 팀들에게 연달아 깨지면서 4위 경쟁에서 탈락하는 원인이 된다. 두산의 상대전적이 삼성 빼고 거의 다 처참했다는 사실에서 잘 알 수 있다. 삼성빠들도 치사하게 우리랑 할 때 계속 니퍼트를 보내냐며 분노했다.[13] 2015년부터 단 한 시즌도 빠짐없이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까지 7연속 진출했으며, 부임 전까지 33년 동안 3회 우승이었는데, 5년만에 우승 3회 추가. 특히 2년차 시즌의 경우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