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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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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목록
2.1. 대한민국 윙 스파이커 역대 최장신2.2. 역대 연봉2.3. 스타일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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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연경의 여담을 정리한 문서.

2.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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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열린 2012 런던 올림픽 예선전
리우 올림픽 이후 배구협회의 부실한 대표팀 지원이 속속이 까발려지면서 김치찌개 회식 건이 뒤늦게 논란이 됐는데 이에 대해 배구협회장 서병문 회장은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전했다. "배구 팬들의 엄청난 분노는 백 번 맞는 얘기다.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김치찌개 회식을 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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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배구 선수였던 ㉠언니를 따라 초등학교 때 배구를 시작하였고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프로 배구팀에 입단하였다. 이후 소속 팀의 우승을 이끌어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하였다. 갑은 해외 진출을 놓고 소속 팀과 ㉤갈등을 겪었으나 결국 해외 팀으로 이적하여 맹활약하였다.
1. ㉠은 성취 지위이다.
2. ㉡은 공식적 사회화 기관이다.
3. ㉢는 1차적 사회화 기관이다.
4. ㉣은 갑의 역할에 대한 보상이다.
5. ㉤은 갑의 역할 갈등이다.||

2.1. 대한민국 윙 스파이커 역대 최장신

파일:신체조건_2006.jpg
파일:신체조건_2008.jpg
신체 조건 변천사

선수 경력 문서에도 있듯이 안산서초 4학년 142cm → 원곡중 3학년 170cm 미만 → 전산여고 2학년 182cm로 유소년 시절 신장이 내내 작다가 고등학교 때 갑자기 20cm 가까이 폭풍 성장했다. 키가 갑자기 자란 이유에 대해서 김연경은 방송에서 콩나물을 비롯해서 많이 먹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175cm, 어머니가 171cm, 외할아버지가 185cm, 친할아버지가 180cm라고 한다. 콩나물보다는 유전적인 요인이 컸던 셈.

게다가 2006년 신인 드래프트 당시 188cm였던 키가 2008년 192cm가 되면서 프로에 입단한 뒤로도 매년 1~2cm가 꾸준히 커왔다. 한때 임계 신장이 195cm로도 추정될 정도. 다만 프로에 데뷔하자마자 과한 혹사로 인해 3년 연속으로 무릎 수술을 받았던 걸 생각하면, 성장기에 조금 더 선수 보호가 이루어졌으면 키가 더 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로써 김연경은 192cm로 2005년[45] 당시 대한민국 여자 배구 사상 역대 최장신이 되었다. 190대 신장의 선수로는 김세영(190), 양효진(190), 하준임(188) 등이 있으나[46] 모두 미들 블로커다. 따라서 국내 기준으로 192는 아웃사이더 히터로서 압도적인 신장이다.[47] 외국 기준으로도 장신인 축에 속한다. 2022년 염어르헝이 역대 최장신 선수 타이틀을 가져갔으나 역대 최장신 윙 스파이커라는 기록은 여전히 유효하다.

장신 거포의 상징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키가 큰 유망주는 으레 ‘제2의 김연경’이라고 불리곤 한다. 반대로 키가 작은 공격수들은 ‘제2의 장윤희’[48]가 된다.

장신답게 다리가 매우 긴데 어느 정도인가 하면 앉은 키가 키 167cm인 현무린과 비슷하다.

2.2. 역대 연봉

2005-06 시즌 1라운드 1순위로 천안 흥국생명에 입단한 이후 1년차 연봉은 5000만 원이었다.[49]

두 시즌 연속으로 소속 구단의 통합 우승에 기여하며 정규 리그와 챔피언 결정전 MVP를 싹쓸이 한 후 2007-08 시즌 연봉은 9400만 원이었다.[50][51] 2008-09 시즌 연봉은 1억 2천만 원이었으며 시즌 종료 후 해외 진출 구단을 물색할 당시 이보다 훨씬 높은 연봉이 구단이 내세운 우선조건이였다고 한다.

흥국생명 임대 신분으로 일본 JT 마블러스와 1년간 계약하게 된 2009-10 시즌에 구단의 요청에 따라 정확한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30만 달러(약 3억 7천만 원) 이상, 거의 4억 원가량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고 이 중 약 3만 달러 정도를 '김연경 장학금'에 쓰기도 했다. 참고로 4억 원의 연봉은 2009년 당시 V-리그 남자부와 여자부를 통틀어 최고 연봉이다.

2011년 페네르바흐체의 러브콜을 받고 유럽으로 건너가게 된 김연경은 세후 40만 유로(6억 2천만 원)에 각종 인센티브와 주택, 차량, 통역 등이 제공되고 첫 시즌 종료 후 계약을 연장할 수 있는 옵션도 포함된 파격적인 대우를 받게 되었다. 기사[52] 창단 이후 첫 CEV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뤄내고 본인은 MVP에 선정되며 세계 최고 선수의 반열에 올른 김연경은 페네르바흐체와의 재계약은 물론이고 전 시즌보다 대폭 상승한 연봉 15억 원에 기간 2년으로 계약했다.[53] 또한 런던 올림픽 도중 올라온 외국의 스포츠 일간지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김연경은 당시 세계 여자 배구 선수 연봉 중 최고 금액[54] 약 100만 달러(un millón de dolares)를 받는다고 적혔기 때문에 정확한 금액은 불확실하다.

계약 기간이 끝난 후 이적 파동 당시 적극적으로 도와준 페네르바흐체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2년 연장 계약을 하였다. 이때의 연봉은 불확실하다. 2016-17 시즌 1년을 추가로 재계약했고 이때의 연봉은 전 세계 남녀배구 선수 중 최고 금액인 120만 유로이다. 전보다 올라간 금액이긴 하나 그동안의 유로화 폭락으로 인해 연봉은 그대로인 듯한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이다... 또 다른 기사에 따르면 한화로 대략 16~17억 원이라는 말도 있다.

터키에서의 여섯 시즌 이후 상하이와 1년 계약했는데 2016-17 시즌 페네르바흐체와 계약한 수준보다 비슷하거나 약간 높은 수준이라고 전해졌다. 2020년 기사에 따르면 세전 20억 정도라고 한다.

상하이와 한 시즌이 끝난 후 2017년 터키의 엑자시바시 비트라와 2년 계약에 성공했는데 연봉은 여전히 세계 선수 중 최고 수준에 속하는 130만 유로(약 17억 원)으로 추정된다. 또한 구단 측에서 이스탄불 중심지에 위치한 고급 아파트를 제공하기도 했다. 직접 본인의 정보를 확인하던 김연경이 자신의 연봉 정보를 보고 "이것밖에 안 될까? 잘 생각해 봐"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보아 130만 유로는 실 연봉에 비해 매우 낮게 책정됐음을 알 수 있다. (영상)

2020-21 시즌에 친정 흥국생명으로 복귀하게 되었는데, 계약 규모는 3억 5천만 원으로 이전 구단 연봉에서 무려 80% 가까이 줄어들은 금액이다. 본인은 후배를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전했다. 자세한 건 김연경 흥국생명 복귀 논란 참조.

2021-22 시즌 상하이 유베스트로 가면서 받게 된 연봉은 15억 원 선으로 알려져 있다.

2022-23 시즌 흥국생명으로 다시 복귀하며 프로배구 여자부 최고 금액인 1년 총액 7억 원(연봉 4억 5천만 원, 옵션 2억 5천만 원)에 계약했다.

시즌 후 KOVO에서의 첫 FA가 되어 2023-24 시즌 원소속팀 흥국생명과 총 보수액 7억 7,500만 원(연봉 4억 7,500만 원, 옵션 3억 원)에 계약했다. KOVO의 연봉 공시 이 금액 역시 여자부 보수액 상한이다.[55]

2.3. 스타일 변천사

파일:김연경 프로필(2005-2006).jpg
파일:2006-2007시즌 김연경 1월 MVP.jpg
2005-06 데뷔 시즌 2006-07 시즌

유소년~데뷔 초창기에는 2000년대 이전 여자 스포츠 선수들 대다수가 그러했듯 스포츠 머리 내지 짧은 숏컷 스타일을 고수하였다.[56] 흥국생명에 입단하자마자 구단 관계자가 미용실에 데려가 부분 금발로 염색[57]하게 해 줬는데 난생 처음 염색해 본 거라 너무 좋았다고 한다. 그 시절 유행하던 사자펌을 하거나 머리 브릿지를 넣는등 헤어스타일에 꽤나 신경쓰던 모습. 신인 시절 인터뷰에 따르면 용돈 대부분을 화장품이나 머리 염색하는 데에 썼다고 한다.
파일:김연경 일본시절 헤어밴드.jpg
파일:페네르바체_2.jpg
2009-10 시즌 2016-17 시즌

일본에 진출한 이후에는 헤어밴드를 하는 등 바리에이션도 시도했다. 그 이후 머리를 계속 기르더니 2010년 들어서는 조금씩 길러서 묶는 모습이다. 예전에는 "머리 묶을 시간에 운동 준비나 더 하는 것이 낫겠다", "긴 머리보다는 짧은 머리가 좀 더 편해요", "내 얼굴에는 짧은 머리가 어울리는 것 같다"라고 인터뷰했지만 아무래도 유럽에서는 숏컷에 앞머리를 가진 선수가 거의 없기 때문에 스타일 변화를 감행한 듯하다. 그래도 2012년 말까지 단발과 앞머리를 고수하다가 그 이후에는 아예 앞머리를 없애고 머리를 더 길게 길러 포니테일로 묶고 다녔다.

헤어스타일은 유니폼과 더불어 팬들 사이에선 치열하게 갈리는 논쟁 거리다. 데뷔 초창기를 기억하는 팬들은 스포츠 청춘만화 주인공 같다며 숏컷/단발 시절을 그리워하고 런던 올림픽 이후 응원한 팬들은 높게 묶은 모습이 여전사 같은 포스가 있어 좋아하는 편이다. 단발을 한동안 볼 수 없다가 2020년에 짧게 잘라 7년 만의(!) 단발에 단발파는 환호하고 포니테일파는 좌절하였다.
파일:김연경 싸이월드.jpg
파일:default %281%29.jpg
2007-08 시즌

참고로 2005~2009년에 V-리그 흥국생명 소속으로 활동하던 당시, 싸이월드나 여초 등에서 잘생겼다고 사진들이 자주 떠돌아다녔다. 이때 김연경의 이름은 몰라도, 잘생긴 배구 선수는 제목으로 올라온 위 사진들은 본 적이 있다고 하는 사람이 꽤나 될 정도. 당시 김연경은 짧은 머리에 화장기가 없는 모습이 많았지만 외국 생활을 하고 난 이후 외모를 예전보다는 많이 가꾸는 모습이 보인다.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경기에 나설 때 민낯이 기본인 국내와 달리 외국에서는 대부분 선수가 화장을 하고 경기에 나선다고 한다.[58] 한유미도 한 방송에서 "연경이가 (유럽 진출 후) 유럽물을 먹고 와선 아이라인을 빡세게 그리더라"라고 인증한 적 있다.[59] 실제로 2019년에 올라온 유튜브 영상에서는 "아무리 바빠도 언더라인(눈 화장)은 무조건 그린다)며 "그냥 비비나 언더라인만 하고 나갈 때도 있는데 예의를 갖추기 위해 최대한 하려고 노력한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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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붙여진 순서대로 나열.[2] 연경+남자 → 연남 → 연냄. 숏컷의 흥국 시절 자주 쓰이던 별명이나 현재는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던 선배 선수들만 쓰는 추세.[3] 웃는 모습이 캐릭터 보거스와 닮아서.[4] '꼴통'을 줄인 말. 천안 흥국생명 시절 이상화 트레이너가 붙여준 별명. 주로 한송이가 애용했다.[5] 2005-06 데뷔 시즌에 언론에서 김연경을 소개할때 붙인 수식어.[6] 천안 흥국생명 시절 허주 캐스터가 붙인 별명. 정작 팬들 사이에선 쓰이지는 않았다.[7] 국제 대회에 나가면 전위 후위 가리지않고 공격몰빵당하고 수비랑 리시브 점유율도 높아 팬들이 안타까워하는 마음에서 해탈하면서 지어준 별명.[8] ヨン様. 일본에서 뛰던 당시 얻은 별명. 이름을 가타카나로 쓰면 ヨンギョン인데, 처음에는 욘(ヨン)으로 짧게 불리다가 점점 JT 마블러스의 압도적인 에이스 역할을 굳히자 선수들과 팬들을 중심으로 욘사마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또한 실력을 떠나서 일본에서 뛰던 당시 소녀 팬들을 몰고 다녀 한류스타와 다름없다는 의미로도 붙여졌다.[9] KIM.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워하는 해외 리그에서 뛸 때 불렸던 별명이다. 한국에선 김이 흔한 성이지만 해외에서 뛰는 한국인 선수들이 김연경을 제외하고는 없으니 킴이라 불러도 헷갈릴 일이 없다. 바리에이션으로는 연경킴, 연콩킴, 킴연콩 등이 존재.[10] 외국인들에겐 이름이 길고 어렵다 보니 알파벳을 하나씩 따서 KYK라고 줄였다. 해외배구포럼이나 커뮤니티에서 자주 쓰인다.[11] 이름 발음이 외국인들한텐 어려워서 외국 선수들이 처음에 연경이를 부를 때 썼던 이름.[12] 셔츠네임이 한때 Y.K.KIM이었는데 앞의 YK를 따서 야키라고 부른다고 한다. 터키에서의 별명.[13] 2012년 챔피언스 리그와 올림픽에서 MVP를 받은 이후 언론에서 쓰기 시작했다. 자매품으로는 배구황제.[14] 비슷한 의미로는 갓연경. 주로 올림픽 때 쓰이는 빈도수가 올라간다.[15] 2014년 월드 그랑프리 당시 지오반니 귀데티 감독이 "김연경은 메시보다 더 잘하는 것 같다"라는 발언을 한 이후 국내 언론을 중심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2016년에는 메시보다 호날두가 잘생겨서 좋다며 '배구계의 호날두'라고 불러달라 요청했으나 호날두의 내한 논란 이후 김연경 본인도 원래의 메시 별명이 더 좋다고 정정하였다.[16] 우리 형에서 따온 별명. 호날두 노쇼 사태 이후로는 쓰이지 않는다.[17] 2016 리우 올림픽 조별예선 한일전에서 본인의 범실 이후 식빵을 날린 것이 중계카메라에 잡혀 큰 화제가 되었다. 처음에는 이걸 별명으로 써도 되냐며 놀랐지만 현재는 본인도 받아들인 듯. 본인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의 이름 이 별명에서 따온 것. 자매품으로는 식빵요정.[18] 金哥(찐거) = 김형. 중국 선수들이 김연경의 성격 및 행동이 남자 같다는 의미에서 지어줬다. 여자 선수를 형이라고 부르는 게 이상할 수도 있지만 멋있다는 의미에서 쓰이는 긍정적인 별명이라고 한다. 심지어 중국 국가대표 감독 랑핑도 김연경을 이렇게 부른다고. 왜 자기가 형이냐며 화낸 김연경을 위해 金花(김꽃)을 쓰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전자가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는 편.[19] 김연경과 비슷한 사례로는 브라질의 골키퍼 알리송 베케르가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의 형은 축구를 그만두지 않았다는 것이다.[20] 2020년 6월 1일 식빵언니에 업로드 된 영상에서 부러움은 과거형임을 밝혔다.[21] 중간에 닉쿤이 이상형이라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본인은 당시 2PM이 인기가 많고 조인성이 질투(?)했으면 해서 한번 해본 말이며, 중간에 갈아탄 거처럼 보였을까봐 후회된다고 했다.[22] 후술하겠지만 박찬호에게 초청받아 등번호 61번 유니폼을 입고 시구했다.[23]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심판 욕설 사건으로 위계 질서가 엄격한 국내 체육계에서 1년차 신인이 불만 있다고 심판한테 욕을 박는 사례가 또 어디 있겠는가. 다만 이 일은 심판의 잘못 또한 인정되어 선수와 감독 그리고 심판 모두 징계 받는 걸로 일단락되었다. 나 혼자 산다에 출연했을 때 배구 선수 한유미와 밥 먹는 자리에서 한유미에게 "언니는 성격이 드세고 옆에 있는 사람이 힘들기 때문에 결혼하긴 힘들 거다." 라고 극딜을 해서 한유미, 양효진을 당황시켰다. 물론 이 말은 한유미와 매우 친밀한 사이라 가능한 일이고 뒤늦게 한유미가 이날 회차에는 악마의 편집이 많이 들어갔다고 해명했다. 아무튼 이렇듯 내면에 있는 생각과 느낌을 있는 그대로 다 표현하는 편이다.[24] 실제로 이것 때문에 한일전 후 어머니께 꾸중을 들었다는 일화가 있다고 한다.[25] 실제로 한국에서도 축제 현장에 가면 터키 상인이 고객에게 아이스크림을 줄듯 말듯 장난을 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26] 본인 말에 따르면 유니폼이 올라가면 살짝 보이는 위치라고 한다.
파일:1567307232.jpg
[27] 축구, 야구, 배구 등[28] 양효진이 유미 언니도 시집 가야지.라고 하자 한유미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29] 야구 선수들에게 물어보라는 김연경에게 바로 대답했다.[30] 한때 3대 종목을 싹쓸이하던 한유미가 현재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졌다는 이유로 극딜을 한 것. 사유가 다들 3대 종목의 선수들이 현재 결혼을 해서 아이가 있거나 결혼을 할 가능성이 있어서라고.[31] 2022년 식빵언니 유튜브 컨텐츠로 다시 진행한 MBTI 검사에선 ESTJ-A가 나왔다. 그러나 본인이 MBTI ENFJ에 애착을 보여 팬들은 그대로 엔프제로 인식해준다.[32] https://www.instagram.com/p/aCrfx9qxpr/?hl=ko&taken-by=kimyk10 또한 비록 스치듯이 나왔지만 나 혼자 산다 출연 당시 성경의 글귀가 새겨진 액자가 보이기도 했다.[33] 이때 여자부 경기는 남자부에 묻어가는 취급을 받았다.[34] 참고로 나머지 베스트 7은 다음과 같다.
수비형 레프트 - 최광희(전 KT&G), 라이트 - 황연주(현대건설), 센터 - 양효진(현대건설), 정대영(도로공사), 세터 - 김사니(前 기업은행, 現 SBS Sports 해설 위원), 리베로 - 김해란(흥국생명)
[35] 배구가 프로화되면서 흥국생명 구단에서 민 기믹이었다. 프로화 초창기의 주전인 구기란, 진혜지, 이영주, 윤수현, 전민정, 황연주, 김연경 이렇게 모아 '7공주' 로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에 FA로 풀린 황연주가 현대건설로 이적하고 말았으니... 그리고 요새는 미녀군단보다는 막장구단이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다. 미녀군단의 명성은 성적은 저조하나 얼짱이 많은 도공으로 옮겨 갔다.[36] 현재는 한화 이글스 소속이다.[37] 당시 박찬호의 등번호였다.[38] 그런데 사실 배구 선수는 평생 61번을 다는 일이 없다. 배구 선수는 규정상 1~20번까지만 달 수 있다. 또한 랠리 때마다 매 선수의 위치가 중요하기 때문에 선수의 유니폼 번호를 심판과 기록석에서 끊임없이 챙겨야 하는 배구의 특성상 이러한 번호 규정이 바뀔 가능성은 없다. 즉 배구 선수에겐 영구결번 따위는 없다. 따지고 보면 평생 못 달 번호를 야구장에서라도 한 번 달아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39] 나중에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회식 분위기 자체는 금메달도 따고 해서 나쁘지 않았던 듯 싶다.[40] 우리나라랑은 다르게 구단주가 엄숙한 어른 느낌이 아니다. 김연경이 구단주에게 장난을 치는 모습이 보도될 정도다.[41] 물론 전혀 사실이 아니라며 당시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조준호가 해명했다.[42] 나 혼자 산다 방영 당시 박나래의 말에 의하면 투표소를 뚫었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43] 마윈원은 랑핑이 데려온 미국인 코치와 연애하여 결혼했고 2019년 출산했다.[44] 런닝맨은 오지영, 김희진, 안혜진, 이소영, 박은진, 염혜선이 출연하며, 라디오스타는 양효진, 김수지, 박정아, 표승주, 정지윤이 출연한다.[45] 2022-23 시즌 194.5cm의 염어르헝이 202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순위로 페퍼저축은행에 입단하면서 역대 최장신 타이틀이 깨졌다.[46] 다른 선수로는 김지애(192)(2009년 1라운드 4순위로 흥국생명에 입단했으나 2010-11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정호영(190), 문명화(189)가 있다.[47] 한송이(186), 김민지(188), 박정아(187) 등이 그 다음으로 신장이 큰 공격수이다.[48] 대표적인 선수가 이소영(175cm)이다.[49] 2019년 기준으로도 여자부에서 1라운드로 지명 받은 신인 선수의 연봉은 4000~5500만 원 사이이다. [50] 당시 여자부 최고 거포로 평가받는 김연경이었지만 샐러리캡 제한과 3년차라는 점 때문에 억대 연봉 대열에 합류는 못 하였다.기사[51] 구단과 매년 연봉 계약을 할 때마다 해외 진출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구단 및 황현주 감독은 이를 말렸는데... 4년 뒤 이 꿈을 이루게 된다. 또한 기사에서 예언한 대로 흥국생명과의 계약 문제 또한 큰 이슈가 되었다. [52] 또 다른 기사에 따르면 연봉 추정액은 약 60~80만 달러다. [53] 사실 페네르바체보다 더 높은 조건을 제시한 아제르바이잔과 러시아 구단이 있었으나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페네르바흐체에 잔류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아제르바이잔의 아제라일 바쿠는 2년에 연봉 120만 유로(18억 원)을 제시하였다고 한다. 김연경, 몸값 20억대로 껑충…“월드스타? 이제 시작이죠”[54] 원어: es la jugadora mejor pagada en voleibol feminino[55] 2023-24 시즌 여자부 팀 샐러리캡은 종전 23억(=연봉 18억+옵션 5억) 원에서 28억(=연봉 19억+옵션 6억+승리수당 3억) 원으로 인상되었는바, 선수 1인의 보수액 상한은 팀 연봉 캡의 25%, 옵션의 50%이므로(승리수당은 별도), 연봉 4억 7,500만 원, 옵션 3억 원이 상한액이 된다. 2023-24 시즌 이 금액으로 계약한 선수는 김연경과 박정아 2명 뿐이다.[56] 중학교 시절 김수지와 함께 길을 걷다가 양아치 무리에게 남자로 오해 받아 시비가 붙어 맞은 적도 있다고 한다. 한참 맞다가 여자라고 하니까 도망갔다고...[57] 참고로 당시에는 현재보다 구단 규율이 엄격해 머리를 기를 수 있는 연차는 3년 차고 염색은 2년 차부터 가능했으나 구기란이 최고참이 된 이후로는 머리 염색 같은 건 풀어줘서 당시 여자 배구단 중 유일하게 신인 선수가 염색을 할 수 있었다는 후문.[58] 물론 예나 지금이나 경기 때 외모를 꾸미는 선수들은 있지만 2015년 기사에서도 선수 중 90%는 민낯으로 경기에 나선다고 언급했다.[59] 정황상 2012년 국가대표 시절 런던 올림픽에 출전하던 시절을 회상한 듯한데 당시 유럽 선수 중 특히 이탈리아 선수들은 엄청난 눈 화장을 하고 경기를 나서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