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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 김성수 金性洙 | Kim Sung-su | |
출생 | 1961년 7월 31일[1] ([age(1961-07-31)]세) |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1가 50번지[2]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75cm, B형 |
학력 | 서울한남국민학교 (졸업) 중앙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졸업) 세종대학교 어문학부[3] (영어영문학 81[4] / 학사) 동국대학교 대학원 (연극영화학[5] / 석사 과정 중퇴[6]) |
데뷔 | 1993년 단편 《비명 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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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영화감독.2. 생애
1961년 음력 6월 19일(양력 7월 31일)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1가 50번지에서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를 졸업 후 재수하여 세종대학교 어문학부 영어영문학과[7]를 졸업하고[8] 동국대학교 대학원 연극영화학과에 영화연출 전공 석사 과정에 입학했으나 1989년 <그대의 웃음>이라는 단편영화를 촬영해본 뒤 아카데미 교육의 한계를 절감하고는 중퇴했다.그 뒤 박광수 감독의 연출부로 영화 공부를 하며 1993년 단편 영화 《비명 도시》로 호평을 받았다.그러던 중 박광수 감독의 <베를린 리포트>, 그리고 박광수 감독 밑에서 함께 연출부로 일했었던 이현승, 여균동 감독의 <그대 안의 블루>, <네온 속으로 노을 지다>, <세상 밖으로>의 시나리오를 각색하기도 하였다.
첫 상업 영화 데뷔작은 1995년 12월에 개봉하고 이병헌, 이경영, 김은정이 주연을 맡은 런어웨이.
허영만의 동명 만화를 영화화한 비트(1997년작/서울관객 35만), 태양은 없다(1999년작/서울관객 33만) 두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알려진 감독이 되었다. 흥행과 평가는 물론 영상미도 큰 호평을 받아 90년대나 2000년대에는 지오다노와 BMW 등의 여러 CF와 뮤직비디오도 연출해보았다고 한다.
그 뒤 무사를 내놓았는데, 들인 돈에 비해 국내 흥행 성적(180만)은 나빴지만 프랑스에서의 성공(70만)과 유럽에서의 성공 등으로 나름대로 훌륭한 작품으로 불렸다. 하지만 후속작인 장혁, 이나영 주연의 영어완전정복(92만)의 흥행이 기대에 못 미치면서 10년 동안 활동이 없었다.[9]
그러다가 2013년 재난영화 감기로 10년 만에 차기작을 맡았으며, 전국 관객 311만을 기록하여 재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전작에 비해 영화의 완성도는 상당히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0년대 도시 젊은이들을 다룬 영화와 2000년대 무협 영화 모두에서 나쁘지 않은 평가를 들었지만, 여러 면에서 운과 완성도, 무엇보다 흥행이 따라 주지 않은 케이스. 무엇보다 후반 두 작품을 하도 크게 말아먹어서...
2016년 9월에 아수라로 컴백했다. 어느덧 미청년에서 미중년이 된 과거의 페르소나 정우성, 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황정민[10], 곡성으로 연기력은 물론 원톱 배우로서의 가능성도 증명한 곽도원 등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막상 개봉 후 관객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배우들은 대체로 호연을 펼쳤으나 주연인 정우성의 연기와 전체적인 각본이 별로라는 평. 사실 평론가들 평가는 호불호는 좀 갈려도 의외로 준수하다. 대체로 6~8점 정도를 줬다. 네이버 평점도 네티즌보다 평론가 점수가 더 높다(...). 사실 이 영화가 대한민국 대중들의 취향에 잘 맞지 않는 건 사실이다. 해외 평이 꽤 좋은 것이 그걸 증명하기도 하고, 영화 결말이 김성수 감독 특유의 테이스트가 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개봉 첫날에 47만 관객으로 역대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오프닝 최대 스코어를 기록했지만, 이후 입소문이 안 좋게 퍼져 관객수가 급감하면서 손익분기점으로 알려진 350만 관객을 돌파하지 못하고 최종 259만 명으로 흥행에 실패했다. 하지만 개봉 후 부가시장 VOD 판매량 덕분에 손익분기점은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 자체는 나름 준수해서 씨네필들 위주로는 오히려 역으로 입소문이 나서 개봉 후 OTT에 풀릴 때쯤 되니 SNS에는 자신을 안남시민[11]이라 칭하는 사람들이 한때 유행할 정도로 컬트적 인기를 누렸다. 현재도 아수라는 끊임없이 회자되는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아수라 개봉 이후 7년 만인 2023년,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황정민과 정우성을 주연으로 내세웠고 아수라 때보다도 더욱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하며 기대를 모았다. 시사회 단계부터 호평이 많아 많은 관객들의 기대를 사게 만들었는데, 개봉 이후에도 배우들의 연기는 물론 작품성에 대한 호평이 쏟아져 나왔다. 전반적으로 감독의 역작이라 불리는 중.[12] 관람객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흥행 1위를 달리며 전국 1300만 관객을 넘어 김성수 감독 기존 최고 흥행작인 감기의 관객 수를 4배나 넘어서 영화감독 경력 사상 최대의 흥행작으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이 작품의 흥행 덕분에 제60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 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
3. 연출 특징
1990년대에 청춘 영화계를 평정했던 감독이며, 2000년대 이후 10년 간의 공백기를 가지다가 다시 현대 상업 영화로 돌아온 감독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는 연출 스타일이 확고한 감독이었지만, 2010년대를 기준으로 연출 스타일이 다른 방식으로 전환된 감독이다.일단 1990년대에는 왕가위 감독과 이명세 감독처럼 아방가르드 성향이 있는 스타일리스트 감독이었으며, 화려하고 현란한 편집과 역동적인 촬영 기법, 푸르고 진한 색감, 고독한 느낌의 차가운 연출이 특징인 감독이었다. 당시 왕가위처럼 젊고 만화같은 영상미로 젊은 층에게 인기를 끌었는데, 비트와 태양은 없다는 30년이 가까이 되는 지금 봐도 화려하고 세련된 연출을 자랑한다. 2001년작인 무사는 사극 액션 영화로, 두 대표작과는 장르와 성향이 다르지만 마찬가지로 뛰어난 영상미와 훌륭한 액션, 배우의 화려한 비주얼을 잘 사용해 2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시각적으로 보기 좋은 영화다. 당시에는 젊은 미남 배우의 비주얼을 잘 잡기로 소문난 감독이었다. 이런 영상미를 뽑는 실력을 인정받아 태양은 없다 이후로는 뮤직비디오, CF 쪽에서도 불러줄 정도.[13]
10년의 공백기를 가진 후인 2010년대를 기반으로 스타일이 달라지긴 했으나 미장센과 이미지를 추구하는 기조는 같다. 과거에는 일본 또는 홍콩 영화 풍 비주얼과 연출을 추구했다면, 2010년대 이후는 리들리 스콧이나 데이비드 핀처 같은 현대적인 연출을 한다. 감기는 그냥 전형적인 스타일의 재난 상업영화지만, 감염자 매장 장면이나 지하주차장씬 등의 비주얼과 장면 연출은 장관이며[14] 아수라는 전작들과 조금 상반된 스타일을 지녔다. 밝고 화려한 전작과는 달리 절제된 조명 사용과 정적인 편집, 눅눅하고 칙칙한 화면 스타일, 가차없고 희망없는 스토리, 잔인한 폭력 묘사, 배우의 비주얼을 포기한 듯한 과감한 연기 등 비주얼과 스타일이 돋보인 전작들과는 대비된다는 평을 받았다. 사실 이 작품에서는 전작들보다 작품의 스타일에 맞게 영상미를 절제하고 리얼하게 연출해야겠다고 감독이 밝혔다. 그래도 훌륭한 미술과 촬영, 칙칙하지만 뚜렷한 색감, 최대 명장면인 자동차 추격신은 시각적으로 극찬을 받았으며, 다른 스타일로 나아가도 감독 역량은 어디 안 간다는 평을 받았다. 서울의 봄에서도 조명을 이용한 명암 대비, 1979년 시대상 묘사 등 비주얼과 영상미에서 다시 한 번 호평을 받았다.
비주얼리스트 감독답게 각본에 있어서는 기복이 심한 편이다. 태양은 없다, 서울의 봄처럼 각본에서도 호평받은 작품이 있는 반면 감기나 영어완전정복 같이 각본 자체가 수준 이하라는 평을 받거나, 아예 비트나 아수라처럼 치밀한 각본보다는 장르와 이미지에 치중한 아방가르드가 나오기도 한다. 연출은 보장되어 있으나 각본에 따라 작품이 널뛰는 감독이라고 볼 수 있다. 구체적인 스토리 개연성은 종종 부족하다는 평을 받지만 그래도 설정과 스토리, 메세지 부분에서 감독만의 개성이 뚜렷한 편이며, 특히 대사의 말빨은 나름대로 최동훈 감독 부럽지 않은 실력을 보이기도 한다.[15] 비주얼리스트로 유명하지만 기복이 있더라도 꾸준히 개성 있는 각본을 직접 쓴다는 점에서는 가이 리치와 유사하다.
작품 세계는 주로 힘과 힘, 권력과 권력의 대결을 그려낸다. 코미디였던 영어완전정복을 제외하면 꾸준히 이런 힘에 대해서 다양한 인물상을 그려서 교차하고 대립하는 이야기를 만들어온 감독이다. 장르와 배경이 다르더라도 이 점만큼은 한결같은 모습을 보인다.
결말이 배드 엔딩이나 암울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다. 희망은 없지만 그래도 우정은 유지하면서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태양은 없다와[16] 완전히 코미디 영화인 영어완전정복, 재난 상업 영화인 감기를 제외하면 대부분 주인공이 사망하는 새드 엔딩 및 배드 엔딩이 다수다. 출세작인 비트만 봐도 그렇다. 이런 요소는 아수라에서 극에 달했는데, 주인공이 극에서 내내 악역들에게 휘둘리고 고생하고 상황도 암울한 상태인데 결말 및 최후까지 최악을 맞이하게 된다. 서울의 봄도 실제 역사 때문에 결말이 어둡다.
정리하자면 다사다난한 커리어 끝에 결국 늦둥이 천만 감독이 된, 영화 감독 중 손에 꼽히는 근성가이형의 대기만성형 노익장 감독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사생활에 관해 그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대략 커리어나 험난한 촬영 현장, 롤러코스터나 다름없는 울퉁불퉁한 흥행 실적 등을 보면 한국 영화계에서도 이만큼 다사다난한 경력과 행보를 보여주는 감독은 몇 없다. 사실 김성수 감독은 비주얼리스트 감독으로 초기에는 그럭저럭 히트작은 남기긴 했어도 동시대 감독들인 박찬욱, 김지운만큼 명감독 대접은 못 받아봤고, 2000년대에는 나쁜 흥행 실적에 10년의 공백기 때문에 그렇다 할 작품조차 못 남겨서 자신보다 젊은 봉준호, 최동훈한테 인지도와 실적을 다 뺏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2010년대에도 흥행과 비평에도 애매했던 편. 즉 서울의 봄 이전의 김성수 감독의 입지는 그리 대단치는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더 발전시킨 연출력과 더 다져진 스타일을 확고하게 유지하고 키우면서 강우석, 강제규, 유하처럼 경력이 시들해지거나 은퇴할 나이에 오히려 천만 감독 타이틀과 대종상까지 거머지면서 뒤늦게 진정한 전성기를 찾은 대기만성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는 감독이 될 수 있었다.
4. 필모그래피
김성수 감독 장편 연출 작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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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 제목 | 역할 | 비고 | 국내 관객수 |
1993 | 비명 도시 | 기획, 연출, 각본, 제작 | 단편 데뷔작 | |
1995 | 런어웨이 | 연출, 각본 | 장편 데뷔작 | 72,274명 |
1997 | 비트 | 연출 | 349,781명 | |
1998 | 태양은 없다 | 연출, 공동 각본 | 329,778명 | |
2001 | 무사 | 연출, 각본 | 857,148명[17] | |
2003 | 영어완전정복 | 연출, 공동 각본 | 917,782명 | |
2004 | 나와 통하는 다음검색: 빽 | 기획, 제작 | 단편 | |
2006 | 중천 | 기획, 공동 제작 | 감독 조동오 | |
2010 | 전처의 결혼식 | 기획 | 감독 이공락[18] | |
2013 | 감기 | 연출, 공동 각본 | 3,117,859명 | |
2016 | 아수라 | 연출, 각본 | 2,594,778명[19] | |
2023 | 서울의 봄 | 연출, 공동 각본 | 첫 천만 관객 돌파 | 13,127,990명 |
5. 수상 경력
연도 | 시상식 | 부문 | 작품 |
1999 | 제35회 백상예술대상 | 영화 부문 시나리오상 | 태양은 없다 |
2016 | 제36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 영평10선 | 아수라 |
2017 | 제26회 부일영화상 | 최우수 감독상 | |
2024 | 제22회 디렉터스컷 어워즈 | 영화 부문 올해의 감독상 | 서울의 봄 |
제60회 백상예술대상 | 영화 부문 대상 | ||
제33회 부일영화상 | 감독상 | ||
제44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 감독상 |
6. 여담
- 정우성과 인연이 매우 깊다. 거의 페르소나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필모 12개 중 정우성이 주연인 영화가 6개나 된다.
닮은꼴까지 포함하면 7개다감독 본인도 정우성에 대한 애정이 강해서, 정우성이 안 하면 엎겠다고 선언한 영화가 한 둘이 아니었다고 한다. 비트와 태양은 없다에서는 대박을 쳤으나 무사는 중박, 아수라는 2차 시장에서 성공. 근데 연출 말고 제작을 맡은 중천에서는 쪽박.[20] 서울의 봄에서도 또 다시 주역으로 정우성이 캐스팅되어 이번에는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초대박이 났다. - 또한 정우성의 경우 연기 스타일에 따라 연기력이 갈린다는 평을 받는데, 김성수 감독의 경우 정우성의 연기 스타일과 궁합이 좋아 김성수 감독의 영화에서는 정우성의 연기가 대부분 좋은 평을 받는 편이다.
- 특이하게 그의 영화들 중에는 개봉 당시에는 큰 호응을 얻지 못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는 재평가를 받은 작품들이 많다. 2001년에 개봉한 무사는 개봉시기 9.11 테러와 맞물려 조폭 마누라의 흥행 광풍 속에서 관객들에게 외면당했다. 다만 해외에서는 호평을 받았고 이후 '저주받은 걸작'으로 불리게 되었다. 2013년에 개봉한 감기는 이후 2015년 메르스 바이러스라는 국가적 재난이 일어나자 큰 관심을 받았고, 2020년에는 중국 우한시에서 벌어진 코로나 바이러스로 현실화되었기에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 2016년 복귀작인 아수라는 역시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이재명의 성남시장 재직 시절에 시작된 의혹과 관해 유사한 점이 많아 회자되며[21] 2차 시장에서 수익을 거둬서 손익을 넘겼고 성공을 했다. 서울의 봄은 개봉 당시에는 스코어가 약했지만, 다행히 입소문을 타서 감독 최고 흥행작이 되고, 무려 천만 관객을 찍는 등 대박을 쳐 징크스를 피해갔다. 오히려 비트 이후로 드디어 흥행 대박작이 나온 것이며, 그간 기록이 무색할 만큼 대박을 쳤다. 그리고 영화 개봉 1년 뒤 2024년 12월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또다시 재평가를 받고 있으며, 12월 6일 기어코 넷플릭스 주간 톱텐 1위에 오르고, 재개봉 요청이 강력하게 나오는 등 ‘미래에서 온 감독’ 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22]
- 씨네21에서 취재했던 이정재와 정우성의 ‘태양은 없다 10주년 인터뷰’에서, 험악한 외모에 걸맞게 성격이 상당히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군기도 굉장히 세게 잡고 지금 기준으로도 잔소리가 꽤 험악했다고. 단 이것은 스태프들에 한해서였고 배우들한텐 안 그랬다고 한다. 무사 촬영 당시에도 중국 올로케이션 때도 마찬가지라서 중국 제작진들이 지독하다고 치를 떨었다고 한다. 다만 이런 강한 성격 덕분에 순탄치 않은 인생사나 감독 경력에도 불구하고 감독 생활을 오래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18살 때 12.12 군사반란을 목격했다고 하는데, 당시 한남동에서 총성을 들었다고 한다. 이때로부터 10여 년이 지나 "어떻게 나라의 운명이 이렇게 쉽게 바뀌나"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이 경험이 훗날 영화 서울의 봄 제작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얄궂게도 이 영화의 개봉일은 해당 반란을 주동했던 전두환의 사망 2주기 하루 전날이었다.
- 나무위키 프로필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파네라이를 찬다. 서울의 봄 인터뷰때도 항상 차고 나온 것을 보면 여전히 가지고 있다.
- 한때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교수로 재직을 했었다.
- CF 등의 광고를 연출한 이력이 있다. 대표적으로 고소영, 전지현이 출연했던 지오다노 CF. 다만 시기상 영화 감독 데뷔 이후지만 원래도 비주얼리스트 감독이라 잘 어울린다.[23] 뮤직비디오도 만들었다.
- 서울의 봄의 천만 소식에 비해 잘 안 알려진 사실인데, 서울의 봄을 개봉했을 때, 62세의 나이로 천만 감독 중 역대 최고령 감독이 되었다.[24] 그 이전에는 50세에 2번째로 천만을 찍은 봉준호를 제외하면 60대는 커녕 50대 이하이고,[25] 천만 감독 중 제일 나이가 많은 이준익 감독과도 나이차가 2살로 많이 안 날 정도로 천만 감독 중 고령인 편.[26] 그 이준익 감독도 왕의 남자 개봉 당시 나이가 46세였다. 특히 김성수 감독은 60대인 이제 천만 감독이 되었으니 늦깎이 천만 감독인 셈.
- 전성기이자 젊은 시절인 초기 시절에는 작품이 못해도 2~3년에 한번은 나오는 다작형에 속하는 감독이었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작품 주기가 7~10년은 걸리는 과작형에 속하게 됐는데 이렇게 된 이유는 연속된 흥행실패[27]와 더불어 지속적으로 기획중이던 작품들이 무산된 경우가 많아서 이렇게 된 것으로 성향 자체가 과작은 아니다. 당장 2000년대 이후 작품인 감기와 아수라 사이 공백은 고작 3년이다.
[1] KMDb -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음력 6월 19일.[2] 그의 흥행작인 서울의 봄의 배경인 12.12 군사반란 당시에 수도방위사령부가 필동에 위치했었다. 실제로도 1962년에 용산구 후암동에서 필동으로 이전했으며, 1991년에 필동에서 남태령으로 이전해 지금에 이른다.[3] 현재는 세종대학교 인문과학대학 국제학부로 개편되었다.[4] 유하 영화감독과 동기동창이다.[5] 연극연출 전공[6] 1989년 단편 영화 '그대의 웃음'을 촬영해본 뒤 아카데미 교육의 한계를 절감하고 학교를 나왔다고 한다.[7] 現 세종대학교 인문과학대학 국제학부 영어영문학 전공[8] 말죽거리 잔혹사의 유하 감독과 하얀거탑의 안판석 PD와는 대학 시절부터 절친한 동기 사이였다고 한다. 유하는 1963년생으로 김성수와 2살 차이지만 유하가 빠른년생이고 김성수가 1년 재수하여 동기가 되었다.[9] 이 공백 기간 동안에 허영만의 각시탈 영화화와 장철의 독비도(외팔이 검객) 리메이크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무산되었다.[10] 아수라 이전 다섯 작품(국제시장 - 베테랑 - 히말라야 - 검사외전 - 곡성)의 총 관객수가 5,100만명이 넘는다. 한 편당 평균 관객이 천만이라는 소리.[11] 극중 등장하는 경기도의 가상 도시이다.[12] 실제로도 과거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13] 감독 데뷔 이전에는 각본가로 지내다가, 감독 데뷔 이후 자신의 연출작들이 영상미로 인정받아 온갖 CF와 뮤직비디오를 찍었다는 점에서 1990년대에 특유의 영상미가 매우 닮았다는 평을 받은 왕가위의 행보와 무척 비슷하기도 하다. 데이미언 셔젤도 원래는 각본가였지만 자신의 작품이 성공은 물론 영상미까지 호평받아 영화 외의 수많은 CF를 찍고 있기도 하다.[14] 이동진 평론가는 작품은 혹평하면서도 시체 매장씬만큼은 올해의 장면급의 무시무시한 연출이라고 평했다. 애초에 연출은 좋은데 각본이 너무 수준 이하인 작품이라는 평이었다.[15] 예로 서울의 봄과 태양은 없다, 날뛰는 스토리로 호불호가 짙은 아수라에서도 진한 명대사들이 많다. 사실 아수라는 장르적 특징에만 집중한 아방가르드라서 의도적으로 상세한 개연성이나 심리 묘사가 결여된 작품이다. 즉 애초에 막나가는 게 미학적으로 의도된 작품.[16] 심지어 이것도 방구석 1열에 출연한 정우성이 밝힌 바에 따르면 원래 김성수 감독은 도철이 링에서 죽거나, 홍기가 병국 일당에게 끔살당하는 엔딩을 구상했다가 본인과 이정재가 이구동성으로 강력히 거부 의사를 밝혀서 지금의 엔딩으로 수정됐다고 한다. 만약 그렇게 갔으면 아수라처럼 호불호는 물론 흥행과 비평에도 실패했을지 모를 일이다. 이정재와 정우성이 잘 말린 셈. 여기서 김성수 감독이 기본적으로 해피 엔딩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17] 전국 관객 수는 250만 명으로 추정[18] 중국, 홍콩 영화[19] 극장 관객 손익분기점(380만 명)은 넘진 못했지만, 이후 웹하드 다운로드 방식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겼다.[20] 연출은 김성수 감독의 연출부 출신이던 조동오 감독.[21] 다만 실존 모델은 이재명이 아닌 이대엽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22] 특히나 윤석열의 명분없는 계엄령을 비판할 때 ‘서울의 봄 보다가 계엄령 한거냐’라며 조롱하는 댓글이 유튜브,SNS, 커뮤니티에 우수수 달리기도 했다.[23] 참고로 자신의 작품 태양은 없다 여성 버전이다.[24] 사실 김성수 감독이 이렇게 된 데에는 연출 특징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유가 있다.[25] 이는 천만 감독들이 의외로 나이가 젊은 경우가 많아서인 것도 있다. 대체로 천만 감독들은 30대 중반부터 40대 중반들인 경우가 많은데, 이는 2000년대에 새로운 감독들이 생겨나고, 그 중 트렌디한 감각과 실력, 그리고 엄청난 행운을 가진 감독만이 천만 감독 자리에 앉는 것. 김성수 감독은 그런 천만 감독들 사이에 굉장히 늦게 떳고, 그런 만큼 경력이 험난하고 망한 작품이 많아서 대부분의 천만 감독들처럼 럭키 가이는 아니지만, 운빨 없이 근성과 끈기, 노력으로 힘을 잃지 않고 천만 감독에 올랐으니, 다른 천만 감독들보다 더 빛난다고 볼 수 있다.[26] 즉 김성수 감독은 한국의 모든 천만 감독 중에 2번째로 나이가 많다.[27] 무사, 영어완전정복, 감기, 아수라 모두 극장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28] 참고로 제작사의 이름은 도올 김용옥이 지어줬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