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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4-27 20:27:00

김경수/대권주자로서의 장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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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장점
2.1. 다양한 행정 경험, 경상남도지사 시절 업적2.2. 영남 후보론
3. 복합적
3.1. 친노·친문 적자 이미지
4. 단점
4.1. 드루킹 게이트로 인한 반감 정서4.2. 이재명의 사법리스크 일부 해소에 따른 불리해진 입지4.3. 수차례의 국가보안법 위반 경력4.4. 낮은 지지율과 미약한 존재감

1. 개요

전 경상남도지사이자 제21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선언을 한 김경수의 대권주자로서의 장단점을 서술한 문서.

2. 장점

2.1. 다양한 행정 경험, 경상남도지사 시절 업적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 이후 5년간 참여정부에서 근무하면서 참여정부의 핵심 실무진으로 일했다. 또한 문재인 정부에서 정식으로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7대 지선에서 경상남도지사에 당선된 이후 문재인 전 대통령과 긴밀히 협력한 경력이 있다.

경상남도지사 시절 취임한지 1년만에 서부경남 KTX 착공에 성공하고 한국남부발전 등 17개 업체로부터 투자유치를 성공시키며 능력을 인정받았고, 민주당 정치인에 대한 비토 정서가 강한 경상남도에서 드루킹 게이트 1심 판결에 의해 구속되며 도정활동이 불가능하게 되기 전까지 긍정 49%, 부정 22%의 수치를 기록하였고 현재 지방행정에서 주요 논쟁점으로 떠오른 메가시티 역시 김경수 전 지사가 경상남도지사 시절 처음 주장한 방안이다.

참여정부의 핵심 인물로서 활동한 것도 차별점으로 둘 수 있는데, 현재 대권주자 중에서 현직 국무총리이자 정치에 발을 담가본 적이 없는 한덕수 직무대행과 마찬가지로 3년 전에야 정치에 입문한 김동연 도지사를 제외하면 청와대에서 긴 시간동안 활동해온 정치인이 없을 정도로 청와대 실무 경험은 매우 희귀한 커리어다.[1] 김경수 후보 역시 이를 의식하여 참여정부 시절 주요 정책중 하나인 세종특별자치시 수도 이전을 핵심 공약으로 언급하였고, 동시에 메가시티 공약도 언급하며 지방 결집과 수도권 일극체제 분산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2.2. 영남 후보론

경상남도 고성군 출신의 영남 출신이기 때문에 민주당에서 주로 주장하는 영남 후보론에 적합하다.

단순히 영남이 고향이기 때문에 주목받는것이 아니라, 김경수 후보는 정계 입문 이후 드루킹 게이트 이전까지 모든 정치활동을 경상남도에서만 진행했을만큼 영남 지방에 대한 진심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경상북도 안동군에서 태어났지만 주된 정치활동을 성남시에서 활동해왔고, 인천광역시 계양구 을에서 의원 활동을 하고 있는 이재명 후보와는 영남후보론의 수준이 다르다.[2] 19대 총선6대 지선에서 패배가 예상되는 상황 속에서도 영남권 후보로 출마하였고, 그렇게 정계 입문 이후 4년간 영남권에서 정치활동을 계속한 결과 20대 총선7대 지선에서 당선되기에 이르렀다. 삼수만에 당선된 20대 총선에서는 전국 민주당 당선자 가운데 득표율 1위를 기록하는 성과를 거뒀다. 애초에 인생의 모토가 지역주의 타파였고, '바보 노무현'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끊임없이 도전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19대 총선에서 영남 지역구에서 당선된 뒤 노무현 정신을 적극적으로 언급하며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영남에서의 대선전을 이끄는 데 성공한 문재인 전 대통령과 비견될만할 정도의 영남 후보론을 가졌다.

3. 복합적

3.1. 친노·친문 적자 이미지

노무현 전 대통령이 16대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로 활동할때부터 선거대책위원회 전략기획팀 부국장으로 활동하며 노무현을 지원해왔으며,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거쳐 청와대에서 5년간 참여정부의 인물로서 활동하였다.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할 때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전 대통령의 비서관으로서 끝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켜왔으며, 이후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1년 혁신과 통합을 창당하며 정계입문을 할때 시작부터 문재인을 보좌하며 친문 중에서도 제일 친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친문 출신 정치인 중 대권주자라고 언급할 수 있는 정치인은 없으며, 친노라고 할 수 있는 정치인들 중에서는 현역 정치인을 찾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다. 친문 주자 중 제일 대권에 가까웠던 이낙연 전 총리는 당대표 취임 후 온갖 실책을 저지르며 20대 대선에서 경선조차 통과하지 못했고, 이후 이재명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 이후 안그래도 떨어지고 있던 힘이 급속도로 떨어져 탈당하게 되었다. 다음 선거였던 22대 총선에서도 새미래민주당은 참혹한 성적을 거둔 뒤 김종민 의원이 탈당하며 원외정당으로 전락하였고, 이낙연의 지지층은 뮨파를 자처하는 등 더이상 친문이라고 볼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 지난 경선에 참여했던 추미애 전 장관은 대권주자 조사에서 안보인지 한참 됐으며, 본인 역시 대통령보다는 6선이라는 체급을 발판삼아 최초의 여성 국회의장을 노리고 있으며, 김경수와 함께 친문의 적자로 평가받는 조국은 실형 선고로 최소한 21대 대선까지는 출마가 불가능하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최대 세력은 비문재인 세력에서 커진 친명이고, 이재명 후보가 2번 연속 압도적인 득표율을 거두며 당대표에 당선될 만큼 친명의 세력이 매우 큰 상황이지만 친명의 대다수가 친문에서 이낙연에 대한 비토를 선언하고 이재명 당시 20대 대선 예비후보를 지지하면서 갈아탄 친문친명 정치인이고, 친명의 수장 이재명 역시 세간의 평가와는 별개로 19대 대선 경선 종료 이후 약 8년이라는 시간동안 쭉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해 우호적인 발언을 지속해서 하고있고 정기적으로 예방하며 좋은 사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등 아직 문재인 전 대통령의 영향이 민주당에 남아있고, 현재 민주당 정치인 중에서 그를 비판하는 인물이 아무도 없으며 현재까지 여론조사에서 가장 존경하고싶은 대통령으로 꼽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라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상황이다.[3]

다만 현재 민주당이 공고한 친명 체제를 갖춘 상황에서 20대 국회에서 2년간 활동한 것 이외에는 중앙정계에서 활동한 경력이 없고, 정치인생의 대부분을 영남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친문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제외하면 확실한 당내 기반이 없었다. 또한 실형 판결을 받은 뒤 피선거권을 회복하기 전까지 약 3년의 시간동안 아무런 정치활동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김경수 개인으로서는 현재 친노,친문이라는 유산만을 가지고 빈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형국이다.

친문의 적자라는 점을 내세워 친문계를 포섭할 수 있지만 현재 친문은 이미 친문친명으로 전향하며 이재명 후보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다수의 층과 비이재명을 자처하다가 22대 총선에서 공천탈락을 당한 비명계밖에 없기 때문에 이 지지층을 모두 모으기에도 어려움이 크다.

복권 이후에도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전까지 독일에서 유학을 하는 등 정치활동을 하지 않으며 당내 기반을 키우거나 정치적 인지도를 높이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고, 이때문에 여론조사 역시 하위권으로 나오고 있다.

현제 범 민주계 대권주자 여론조사 중 김동연 후보와 더불어 유이하게 이재명 후보에 대항하여 대권에 출마하였기 때문에 비이재명계로 분류되고 있다.

김경수 후보 역시 이재명 후보의 22대 총선 당시 경선 과정을 비판하며 '치욕스럽게 떠나신 분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라는 발언을 하며 이재명 체제에 대한 우려를 간혹 던졌고, 언론 역시 이른바 삼김이라는 프레임을 만들며 김부겸, 김동연와 묶어 이재명의 라이벌로 부상시키고 있다.

비이재명 이미지는 친명 체제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소수파의 지지를 받을 수 있고, 대선후보로 나갈 시 중도와 진보성향의 유권자를 넘어 보수 유권자들도 포섭할수 있는 확실한 강점일 수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의 권리당원들과 지지자들은 2002년 대선 때 후단협 사태를 시작으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열린우리당 - 81석 민주당 - 새정치민주연합 시절의 심각한 계파갈등, 2021년 이낙연의 경선 불복과 대장동 개발사업 논란을 사보타주한 것, 2023년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 22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더불어민주당 분당 과정과 이낙연계 의원들의 집단 탈당 사태 등 여러 분란을 겪으며 내부총질에 반감이 깊다. 더군다나 김경수 후보는 한때 이낙연계 인물들이 친문의 핵심이던 시절 같이 활동했던 경력이 있기 때문에 우려의 목소리 또한 크다.

그것 때문에 이재명에 대한 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 당원들과 지지자들사이에서 분탕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그런 특성상 만약 김경수가 반이재명이나 비이재명을 표방하거나 그런 이미지가 만들어 진다면 경선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은 물론, 대통령 욕심이 없다고 해도 차기 선거인 9대 지선이나 23대 총선에서도 불리한 점을 안을 수 있다. 대통령 경선에서 떨어진 뒤에는 짧게는 1년 뒤인 9대 지선이나 재보궐 선거를 통해 국회로 진입하여 다시 세를 불려야 하는데 이런 기회조차 없이 나가떨어질 수 있다. 실제로도 신당을 창당하면서까지 22대 총선 당시에 반이재명을 표방한 이낙연은 신당을 창당하고 광주 광산구 을에 출마했다가 민형배에게 박살나며 싸늘하게 식어버린 민심만 확인하는 결과를 받았다.[4].

김경수 역시 이런 상황을 의식하고 있기에 의도적으로 이재명 후보와 대놓고 척을 지는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고 있고, 본인과 함께 일을 했던 조국 전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 이재명 후보와 함께 식사를 하는 등 대화의 문을 열어놓았고, 이재명 후보도 김경수 후보와 2월 회동하거나 2025년 4월 출간한 자서전 '결국 국민이 합니다'에서 김경수 후보의 복당은 민주당을 강화시키는 콘크리트와 같다라 밝히며 김경수 후보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다는 취지의 내용을 작성하였다. 김경수 후보 역시 이재명 후보의 '민주당은 중도보수 정당' 발언에 대해서 다른 민주당 원로들이 발언에 대해 비판할 때 '제 말씀과 같은 취지이다. 국민의힘이 극우로 이동한 이상 중도보수층도 저희가 품어야 한다'라며 옹호하였다.

이재명 후보가 선거법 재판 1심 판결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직후에는 김동연 후보와 회동하는 등 비이재명계로서 훗날을 도모하는 듯 보였으나 이재명 후보의 당대표 시절 일극체제와 22대 총선 공천과정에서의 혼란을 비판한 것 이외에는 큰 발언을 이어나가진 않고 있으며 당대표 선거 당시 대놓고 반명을 자처하며 이재명 후보를 공격하다가 완전히 당심에서 외면받아버린 김두관 후보와 대비되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4. 단점

4.1. 드루킹 게이트로 인한 반감 정서

김경수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장기간에 걸쳐 국내 주요 포털사이트의 댓글 및 추천, 검색어 순위를 조작하고 타 후보 비방 게시물을 퍼뜨리는 등, 당대 초유의 여론조작 사건이었던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의 주범으로 검거되어 2021년 7월에 실형을 선고받았며, 윤석열 정부의 특별사면이 없었다면 2023년 출소한 뒤 아직 피선거권조차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문재인 정부 지지율 하락의 핵심 요인은 조국 사태LH 사태가 제일 크지만 그 이전에 드루킹 사건이 끊임없는 상승가도를 달리던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을 멈칫하는데 시발점이 되었기 때문에 아직도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은 이것에 대한 반감 정서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드루킹 특검법은 본회의를 통과하여 수사가 개시되는 시점에서 김경수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되었으며, 여야 합의로 통과된 특검은 민주당뿐만 아니라 김경수 본인이 수용하면서 자초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조국사태 등과 동일선상의 정치 충격을 주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국민의힘 정치인들 중 일부가 또다른 여론조작 사건인 명태균 게이트에 연루되었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이후 좌우를 막론하고 여론조사의 신뢰성에 대해 의심을 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여론조작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 커질수록 이미 여론조작 사건으로 실형을 살았던 김경수 후보에게 악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또 해당 사건으로 징역 2년이 확정돼 경남지사 직을 잃고 수형 생활을 하는 중에 보수정권에서 사면을 받은 것 역시 야권 지지층에서 오점으로 남을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친명계에서는 “김 전 지사는 드루킹 사건의 사면·복권을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점도 큰 약점”이라며 “그 주홍글씨가 계속 따라다닐 것”이라고 밝혔다. # 실제로 윤석열에 의해 사면을 받은 후로 유달리 윤석열 정부에 대한 반감을 줄이고 더불어민주당의 여론이 좋지 않게 보이는 행보를 하는 등 윤석열에게 사법 거래를 했다라는 꼬리표가 붙어버린 상황인지라 미움털을 크게 박힌 상황이다.

4.2. 이재명의 사법리스크 일부 해소에 따른 불리해진 입지

당내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이재명이 1심의 결과가 나온 위증교사 혐의, 2심의 결과가 나온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모두 현재까지 무죄가 선고되었기 때문에 사법리스크에 대한 걱정이 일부 해소된 상황에 따라 김동연,김경수의 입지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당장 이재명을 견제하는 동시에 야권 대안 주자가 되기 위해 존재감과 선명성을 부각하기 위한 묘책을 찾아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게 됐다. #

4.3. 수차례의 국가보안법 위반 경력

김경수는 과거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학술부장 시절,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을 찬양·홍보하는 책자인 '북한 바로알기 자료집'을 손수 제작했으며 이를 배포했다가 국가보안법 상의 이적표현물 제작 반포 혐의로 구속,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부터 1990년 3월 20일에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김경수가 대학을 다녔던 80년대 후반은 반독재 학생운동이 가장 극렬했던 시기로,[5] 통일의 꿈에 부푼 주사파 운동권이 총학생회를 빌어 북한 김씨 세습 정권을 위시한 지배층을 추종하고, 억압받는 인민들의 실상을 철저히 배제한 채 북한 체제를 과도하게 긍정하는 종북 사상을 전파하는 행위가 전국 주요 대학에서 공공연히 행해지던 시기였다. 이 때문에 학술부장의 자리에 있던 김경수는 자의던 타의던 북한 찬양 책자 제작에 가담하는 것을 피해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경수는 학술부장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주사파 운동을 이어나갔고, 실제로 사상에 심취해 이러한 활동을 벌였다는 것이 문제다.

1991년, 김경수는 또다시 구속되었다. 이번엔 북한의 지배 이념인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자민통 그룹과 민족해방활동가 그룹의 핵심 조직원으로 활동한 것이 이유였다. 88년 말을 기점으로 자민통이 반미청년회를 누르고 NL 운동권의 주류가 된 점을 고려했을 때 김경수는 주사파 운동권의 정점에 서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1992년 5월 29일, 김경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다시 한번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물론 김경수는 대학 시절에만 운동권 활동을 통해 북한을 찬양했으며, 이후 관련 사안으로 또 처벌 받은 전적은 없다. 또한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에겐 운동권 활동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하지, 단점으로 작용하진 않는다. 그러나 중도층, 그 중에서도 남성층의 표심을 끌어들이는 데엔 이것이 매우 큰 장애물로 작용하기에 전체적으로 본다면 단점인 셈. 보수진영이 이것을 문제삼아 종북몰이를 시전한다면 김경수는 TK 지역에서의 표를 대거 잃을 수도 있다.

참고로 같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은 "종북은 치료받아야 할 정신병"이라고 언급하거나, 공식 석상에서 북한의 무력 도발을 수차례 규탄하는 등 강경한 대북관을 지녀 외연 확장성에서 상당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김동연 역시 북한과 인접한 경기도의 수장을 맡으며 안보와 관련해 북한과 대립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 둘과 비교했을 때 북한 독재 정권을 찬양했다가 수감된 이력까지 있는 김경수는 중도층에서의 경쟁력이 심히 떨어지는 상황이다.

4.4. 낮은 지지율과 미약한 존재감

김경수는 현재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 3인 중 가장 낮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낮아도 그냥 낮은 정도가 아니라 심각하게 낮다는게 문제다.

사실 21대 대선이 확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김경수의 지지율은 김동연과 같거나 약간 모자란 수준에 그쳤다. 2025년 2월 17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둘 모두 1.2%를 기록했을 정도다.# 그러나 원래부터 지지율이 높았던 이재명과 계엄 이후 조금이나마 존재감을 키운 김동연에 비해 김경수는 대외 활동과 당내 세력 확장에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이러한 흐름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3명 중 출마 선언도 가장 늦게 했다.

안 그래도 드루킹 게이트로 오랫동안 정계를 떠나 있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에서야 급히 귀국을 한 터라 정치적 존재감이 그리 크지 못했는데, 윤석열 탄핵 이후 이슈 선점과 대외 홍보마저 실패하면서 김경수는 더불어민주당 후보 3인 중 가장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이게 됐다.

결국 4월 15일 김경수의 지지율이 김동연의 절반에 못 미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에 이어#, 4월 17일엔 김경수의 지지율이 김동연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오며 경쟁 후보와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확실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1] 이재명 후보와 홍준표 후보 역시 행정력에서 뛰어난 평가를 받지만 지방행정에 한해서지 중앙행정에 대해서 검증받은 적은 없다.[2] 실제로 20대 대선 시절 이재명 후보의 영남에서의 득표율은 유의미하게 선전하지 않았다.[3] 참여정부 시절 민주당 정치인들마저도 노무현에 대한 공격을 한것과 별개로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 이후 친노 진영에 대한 비판은 해도 노무현 개인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은 금기로 여겨져왔다. 심지어 반대편인 국민의힘 정치인이자 한나라당 시절 참여정부 저격수로 명성을 키운 홍준표 역시 인간 노무현에 대해서 존경한다며 큰 비판을 한적이 없고, 20대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도 봉하마을을 방문해 눈물을 흘리는 등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을 밝히는데, 민주당 내에서의 이미지는 더할나위 없다. 당장 2024년에도 김진 기자가 백분토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하자 엄청난 비판이 일었고, 더불어민주당 양문석 후보 역시 2008년 참여정부에 대한 신랄한 공격을 했던 것이 발굴되자 사퇴 직전까지 갈정도로 심한 후폭풍을 겪었다.[4] 첨언하자면, 이낙연제20대 대통령 선거 당시에 경선 결과에 불복해가면서까지 자기가 비명계인걸 굳이 티를 낸 바람에, 당원들의 분노를 사고 대차게 망했다.[5] 86년에 김세진과 이재호의 분신이 있었고, 87년 1월 박종철 사망을 계기로 87년 6월 전국적인 민주화 물결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