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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재명 정부의 국무총리인 더불어민주당 김민석의 대권주자로서의 장단점을 서술하는 문서이다.2. 장점
2.1. 다선 국회의원으로서의 입법 경험과 정책 역량
김민석은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의 후보로 서울 영등포구 을에 출마해 당선되며 30대 초반의 나이에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제16대, 제21대, 제22대 국회에서도 당선되어 4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제22대 국회에서는 복지·보건·법제 분야를 중심으로 다수의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2025년 들어 응급의료법·긴급복지지원법·결핵예방법·아동복지법 개정안 등# 사회적 약자 보호 관련 법안을 연달아 제출했으며, 정보통신망법과 가사소송법 개정안 등 법제·통신 영역까지 입법 활동을 확장했다.
2.2. 엘리트 학력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였으며, 하버드 대학교 행정학과 석사, 칭화대학 법학과 석사, 럿거스 대학교 로스쿨 전문석사를 취득하였다. 한국, 미국, 중국에서 1등으로 평가받는 대학교를 모두 거친 것이다. 단순히 한 학과만 판 것이 아니라 사회학, 행정학, 법학까지 여러 분야를 연구하였다. 현재 정치인들 중에 김민석 정도의 학력을 가진 인물은 유승민[1]과 안철수[2] 정도를 제외하면 전무하다.3. 복합적
3.1. 현직 국무총리라는 위치에서의 주목도
김민석은 2025년 7월 3일부터 현직 국무총리로 재직 중인 만큼, 대한민국 정치 구조상 행정부 2인자이자 실질적 내치 총괄자로서 높은 정치적 가시성과 언론 노출 빈도를 확보하고 있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국정 방향을 보좌하면서 각 부처를 조정하고, 국회 시정연설·대정부질문·재난 대응 등 다양한 공식 현안에 직접 등장한다. 이로 인해 김민석의 이름과 활동이 일반 유권자에게 자주 전달되는 구조적 위치에 있다.다만 국무총리라는 직책은 제6공화국 이후 단 한 번도 대통령을 배출해낸 적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대권후보들의 무덤이라고도 평가받는다. 국무총리 출신으로 대선 후보로까지 올라온 인물은 이회창 단 한 명뿐이었고, 그 이회창마저도 세 번이나 패배한 끝에 결국 대통령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국무총리 재직 시절 뛰어난 언변과 행정능력으로 많은 이들에게 대권주자라는 평가를 받다가 국무총리 퇴임 이후 실망스러운 정치적 선택을 거듭해 대권에서 멀어진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 고건: 사상 최초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상황에서 노련하게 권한대행 업무를 잘 수행했으며, 문민정부에서도 국무총리를 했다는 이유로 비정파적이라는 긍정적 이미지가 붙어 한때 대권주자 1위까지 달성해 선거캠프 조직까지 고려할 정도였으나, 국무총리에서 물러난 이후 인지도를 더 올리지 못하던 시점에서 청계천 복원 사업을 대성공시킨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과 4대 지선을 역대 최대 승리로 이끈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게 지지도를 추월당한 끝에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 황교안: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이자 고건에 이은 사상 두 번째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친박계의 강력한 지지를 얻으며 미래통합당 당대표 자리까지 올랐으나, 당대표로서 지휘한 첫 전국 단위 선거인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역대급 참패를 기록한 이후[3] 극우들에게도 외면받으며 대권 경쟁에서 쓸쓸하게 퇴장했다.
- 이낙연: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 재임하면서 깔끔하고 논리적인 언변으로 야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모습이 국민들의 큰 호응을 얻어 문재인 정부 내내 최유력 대권주자로 이름을 날렸다. 국무총리에서 물러나자마자 21대 총선의 대승을 이끌고[4][5] 뒤이어 당대표에도 당선되며 대권을 굳혔다고 평가받았으나, 그 이후 우유부단한 행보와 이명박과 박근혜의 사면을 건의하겠다는 역대급 무리수 및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의 참패로 완전히 민주당 지지층의 눈밖에 나 결국 이재명에게 대선후보 자리를 넘겨줬다.
이 외에도 국무총리 출신으로 경선에 출마했다가 떨어진 사례로 김종필, 이해찬, 정세균, 한덕수까지 국무총리로서 높은 인지도를 쌓고 대권에 도전하였지만 실패한 케이스는 생각보다 많다. 물론 이들 중 대부분은 국무총리직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국무총리 퇴임 이후 정치인으로서 잘못된 판단 끝에 경쟁력을 상실하고 대권에서 멀어진 것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국무총리직 자체가 문제가 아니긴 하지만, 김민석 역시 2024년 전당대회에서 수석최고위원을 맡은 경험을 제외하고는 당을 지휘한 적이 별로 없으며, 공당의 수장으로서 이룬 성과가 없기 때문에 국무총리직 이후 어떤 결정을 할 지는 미지수다.
4. 단점
4.1. 전과 경력
운동권 시절에도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을 배후조종했다는 의혹으로 징역 5년 6개월을 선고받았으며,[6] 정치인이 된 이후에도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했음이 두 번이나 적발되었다.이재명 대통령이 이미 전과 4범인 것과 별개로 대장동 개발 사업 논란의 중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유무죄가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20대 대선 당시 비리와 관련해 상당한 이미지 실추를 겪었던 것을 생각하면, 아예 집행유예까지 선고받은 김민석이 대권후보로 올라서게 되면 다시 의혹이 언급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