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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이명박·박근혜 사면 발언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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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반응
2.1. 야권2.2. 여권2.3. 언론2.4.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2.5. 최종 결과2.6. 이후 흐름
3. 영향 및 여담

1. 개요

이낙연은 연합뉴스와의 2021년 신년맞이 인터뷰 등에서 "국민통합을 위한다면 연내 적절한 시기에 현재 수감 중인 이명박, 박근혜 두 대통령의 사면을 대통령께 건의해 보겠다"는 말을 꺼냈다. 특히 박근혜는 국정농단 재판의 최종심 선고예정일이 2021년 1월 14일로 형기가 확정되지도 않았지만 형집행정지라는 방법도 있다고 제시했다고 한다.

이에 청와대에서는 실제로 건의가 된 이후에나 논의될 수 있는 사항이며# 사법처리가 끝나야 사면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았고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많이 나왔지만 최고위원들 중에서는 의견이 갈렸다. 이낙연은 최고위원회를 소집하여 설득하는 등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당초 이낙연은 바로 전년도 21대 총선의 압승으로 대세론을 형성하고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등 최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당대표 취임 이후 지지층의 입맛에 맞지 않는 행보를 연이어 보이며 점차 불만이 터져나왔고, 그런 상황에서 이 발언과 이어진 논란으로 이낙연은 정치 커리어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본격적인 하락세로 접어들게 된다. 이후 이낙연은 2021년 재보궐선거의 참패로 불거진 책임론의 여파로 20대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패배하고, 일부 지지자들의 경선 불복과 대선 패배를 거치며 민주당에서의 정치 생명이 사실상 끝나게 된다. 미국 체류 후 돌아와 민주당을 탈당하고 새로운미래를 창당하여 22대 총선에 출마했으나, 선거비 전액 보전선인 15%조차 득표하지 못하며 낙선, 사실상 정치 인생에 종언을 고하게 된다.

2. 반응

2.1. 야권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사면 건의는 처음 듣는 이야기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밝히면서 말을 아꼈다. 김종인 위원장은 전에 이낙연을 만나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하기를 밝혔고 이낙연도 긍정적으로 생각한 바가 있었다. # 주호영 원내대표, 정진석 의원, 하태경 의원, 유승민 전 원내대표, 원희룡 제주도지사를 비롯하여 당 내부에서는 사면을 찬성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왔다. #

반면 국민의당안철수 대표가 나서서 "사면을 정치쟁점화 하지 말라, 국민 공감대를 얻고 나서 검토할 문제"라며 일축했다. #

정의당김종철 대표가 나서서 사면 논의가 부적절하며 이명박, 박근혜를 사면할 거면 최순실부터 사면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비판했다. 기사 열린민주당주진형 전 후보(당시 고문)가 나서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공개 비판했다. 주진형 고문은 이낙연 대표를 이낙연 로 부르면서 아예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안 본다는 제스처를 취하기까지 했다.

강경 친박 성향 원외정당인 우리공화당은 적극 환영 성명을 냈다. # 또 우리공화당은 박근혜의 불법 탄핵에 대해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민생당에서는 이낙연 대표의 사면 발언이 있기 하루 전 손학규 전 민생당 대표가 직접 국민통합을 위해 이명박, 박근혜를 사면하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민생당 공식 논평에서는 먼저 특별사면권 제도 폐지를 논할 때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 노승일 광주시당 위원장도 "사면 결정권은 국민에게 있다"며 부정적인 기류를 보였다. #

2.2. 여권

대표적인 친문 정치인 중 한 사람인 정청래 의원이 5가지 이유를 들어 사면을 반대한다는 반박 글을 올리고 전대 때 이낙연과 겨뤘던 박주민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반대 의사를 표하는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반발이 거셌다. #

이낙연 딴에는 야당의 분열을 의도하면서 중도층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려고 했던 이낙연의 작전이라는 의견도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수포로 돌아가면서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비판만 받았다. # 심지어 2021년 1월 4일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4층이 사면 발언으로 인한 불만으로 청년 당원들에 의해 점거당했다. # 물과 음식도 반입이 금지당하면서 농성하다가 당 대표실 비서실장인 오영훈 의원과 만나면서 이낙연 대표와고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 해산했다.

"정작 참여정부 시절에는 사면권 제한 법률안을 발의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1] 본인이 발의한 법안조차 기억하지 못하거나 가볍게 무시하는 정치인이었음을 인증한 셈이 되었다.

결정적으로 더불어민주당 지지층들의 반발만 산 채 당 내부와 자당 지지층에 상처만 남기고 말았다. 사면발의()라는 굴욕적인 멸칭이 생겼고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이 두 달 전과 비교해 반토막났다.

2.3. 언론

언론에서는 대체로 대권주자 지지율의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서 강경 일변도의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차별화되는 유화적인 리더십을 보여주기 위한 수라고 분석했다. 다만 이것이 이낙연 대표가 의도한 대로의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라는 추측이 많았다. 여론조사상 지속적으로 이낙연 대표가 이재명 지사보다 우위를 보여 온 계층은 중도층이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핵심 지지층(소위 '코어')이었고 이는 친문 성향 지지층에게 2017년 19대 대선 경선 이후 자리잡은 이재명 지사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 크게 작용했는데 친문의 강한 반발을 살 것이 뻔한 사면 카드를 이낙연 대표가 꺼내든 것은 오히려 자기 지지기반을 무너뜨리는 자충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적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나왔다.

결국 이러한 언론의 예상은 정확이 맞아떨어졌고 이 발언으로 이재명 지사에 대한 비토 심리가 매우 강한 일부 초강성 친문[2]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민주당 코어 지지층이 이낙연에서 이재명 지사나 추미애 장관, 정세균 총리[3]등으로 옮겨가고 말았다.

2.4.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정작 당사자들의 반응도 냉담했다.

이명박 측 강훈 변호사는 "여권에서 실제로 사면을 할 생각도 없으면서 국면 돌리기 용으로 정치적 사면을 들고나온 것 아니냐"며 "거기에 끌려갈 생각은 없다"고 밝혔고 다른 변호사도 "어르신(MB)이 측근들이 모인 자리에서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사과를 해서 사면을 받아야 하느냐, 사면은 입도 벙긋하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명박은 2022년 12월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사면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서신을 주고받던 측근 역시 "사면론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건 알고 계시지만 이에 대해 무슨 말씀을 하진 않으셨다"며 "여권에서 정치적으로 사면 이야기를 꺼냈을 뿐 거기 흔들릴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박근혜는 2021년 연말에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진짜로 사면되었다.

2.5. 최종 결과

1월 17일 오마이뉴스에서는 이낙연 대표 측 관계자로부터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이 대표를 만나 전직대통령 사면론을 먼저 제의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단독 기사를 냈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은 당 대변인을 통해 기사의 내용을 부인했다. #

게다가 청와대조차도 여론이 악화되는 상황이 이어지자 사면 발언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의향을 밝힌지라 이낙연 대표의 입지만 여러모로 난감해졌다. 신년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면서 그렇게 사면 발언은 이낙연 대표 본인에게만 크나큰 오점만 남긴 채 사실상 일단락되어 버렸다.

이 여파로 2021년 5월 7일 발표된 한국갤럽 차기 정치지도자 여론조사에 의하면 이재명 25%, 윤석열 22%에 비해서 한참 떨어지는 5%라는 말 그대로 처참한 지지율을 보였다. # 2020년 상반기에는 부동의 원탑을 달렸고 2020년 하반기에도 다소 하락하기는 했으나 이재명 지사와 엎치락뒤치락하던 지지율이 2021년 들어서 급격히 하락한 것이다. 심지어 2021년 후반에는 아예 홍준표 의원이 조국수홍이라는 희대의 실수를 저지르고도 이낙연 대표를 앞질렀다.

2021년 5월 16일 광주를 방문한 이낙연 전 대표는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에서 '광주 선언'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의 뜻과 촛불의 정신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며 사면을 거론했던 것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 이후에도 여러 매체를 통해 사면론에 대해 지속적으로 후회하는 순간이고 내가 왜 이랬나 싶다고 반성의 뜻을 보였다. 하지만 여론의 반응은 4개월 넘게 지나고 이제 와서 사과하는게 뭔 소용이냐며 대부분 싸늘했다.

2.6. 이후 흐름

7월 발매된 대담집에서는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

7월 당내경선 첫 토론회에서는 이명박, 박근혜 사면에 대해 중립적인 표현을 선택했다. #

이에 대한 이재명 캠프의 공격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입장은 사면 반대이며 사면이 대통령 고유권한이므로 함부로 말할 수 없었기에 중간적인 표현을 선택했다고 해명했다. #

9월, 매불쇼에 출연해서 사면 발언을 주워담고 싶은 발언이라고 하면서 잘못을 인정했다.

12월, 국민의당 소속의 대선후보인 안철수가 이명박, 박근혜의 사면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 전에는 국민의힘 대선 후보들뿐만 아니라 유력 정치인들이 먼저 사면을 주장했다.

2.6.1. 박근혜가 정말로 사면되다

그러나 2021년 12월 24일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면 및 복권 대상이 되었고 12월 31일 0시에 출소할 예정으로 전해졌다. 국민통합의 의미도 있지만 박근혜의 건강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았던 것이 결단의 이유가 됐는데 실제로 치아 건강이 상당히 나빠져 식사가 어려운 상황에 정신과 치료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단, 당시 사면 대상이 된 건 박근혜 1명 뿐이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사면 대상이 아니었다.

2022년 3월 9일 국민의힘 윤석열 당선인이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론 역시 다시 고개를 들었다. 실제로 윤석열 당선인이 문 대통령과의 회동을 앞두고 사면 건의를 공식화하면서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언론에서는 표창장 위조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정경심 동양대 교수 및 드루킹 특검의 결과로 실형을 선고받은 김경수 전 경상남도지사와의 '패키지 사면'을 언급했다. #

하지만 실제로는 세 명의 사면이 모두 거부되었다.

이후 2022년 12월 11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면이 발표되었고 실제로 2022년 12월 28일 사면되었다.

3. 영향 및 여담

이 사건을 계기로 차기 대통령이 거의 기정사실화되는 수준으로 평가되던 이낙연의 지지율은 급격히 폭락하고 이재명계더불어민주당 내 주류 세력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더불어민주당당대표가 된 이낙연은 외연 확장을 위해 국민의힘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등 온건한 중도 성향의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이런 행보는 총선 압승과 여당의 지위를 바탕으로 검찰개혁 등 진보 시민사회에서 요구하던 급진적 개혁 과제를 추진력 있게 진행할 것이라는 민주당 지지층의 기대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이낙연에게 답답함과 실망감을 느끼는 여론이 민주당 지지층 밑바닥에서 서서히 끓어오르고 있던 상황에서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지방자치단체장 재임 과정 '추진력'을 인정받으며 유권자들에게 '사이다' 이미지로 각인된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가 그 대체재로 부상하였다. 2020년 가을부터 이낙연의 대권 선호도는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고 연말에는 이재명에게 지지율 역전을 허용했다.

이낙연은 2024년 22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을 탈당해 새로운미래를 창당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당대표 시절 과오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위성정당 창당,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당헌 개정으로 후보를 내고 참패한 것 등을 꼽으며 이에 대해 반성한 바 있다. 하지만 범진보 진영 유권자들의 지지를 잃고 대권에서 멀어지게 된 결정적 요인은 앞서 말했듯 180석 여당의 대표라는 지위에 있었음에도 국민의힘에게 양보 내지는 후퇴하는 모습만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이낙연은 분명 한국 사회를 더욱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고, 또 그래야 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낙연이 당대표 시절 국민과 지지층에게 각인될 만한 개혁법안들을 통과시켰다면 사면 발언의 여파가 이 정도로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4]

이런 상황에서 이낙연은 이명박과 박근혜에 대한 사면을 언급했다. 우클릭 행보를 통해 지지율을 회복하려는 의도였겠지만 결국 자충수가 되면서 그렇지 않아도 서서히 떨어지던 이낙연의 지지율 하락을 가속화시켰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사면 발언이 이낙연의 몰락을 결정지은 분기점이라고 할 정도였다. 설상가상으로 이낙연이 직접 진두지휘했던 2021년 재보궐선거마저 참패로 끝나자 이낙연의 대권가도에 빨간불이 켜졌고 이는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경선에서 이재명에게 밀리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낙연의 사면 제안이 노무현 대통령의 2005년 대연정 파동과 비슷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여당의 핵심 정치인이 야권을 상대로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는 점, 중도층을 노리고 했지만 오히려 여당 지지층의 반발을 샀다는 점, 파격적인 제안을 통해 야권의 분쟁을 이끌어 정국을 주도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여당만 난리가 났다는 점이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여당과 지지층의 반발에 "왜 폭탄은 저쪽에 던졌는데 우리 쪽이 난리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후 '협치내각'이라는 타이틀로 야당 현역 국회의원의 장관 기용 등 사실상 대연정과 똑같은 제안을 내놓았다는 점이다. # 일각에서는 참여정부 시절에도 대연정 제안 당시 문재인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큰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명박, 박근혜 사면 발언도 문재인 대통령의 진심이 심복인 이낙연을 통해 대신 나온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사실 대통령의 사면 반대 의지가 확고하다면 이낙연 같은 수하 관료가 임명권자의 의지에 반하는 이야기를 밖으로 꺼낼 수조차 없다. 그럼에도 이낙연의 사면 발언에 대해 청와대의 공식 제지나 유감표명이 전혀 없었고 이미 더불어민주당 핵심을 중심으로 이명박, 박근혜 사면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던 중이었으며 실제로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구체화된 사면 제안 증언까지 한 상황을 보면# 반대로 문재인 대통령의 전직 대통령 사면이라는 대화합 치적 내지는 후임 대통령의 부담을 더는 행보를 퇴임전에 만들려는 의도로 시간 간격을 두고 다른 사람들의 입을 빌려 여론을 살피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때의 논란이 훗날 박근혜를 사면할 때 문재인 대통령에게 가해질 부담을 덜어주는 일이 되었다는 분석도 있는데 이에 따르면 이미 이낙연이 이 발언으로 모든 부담을 껴안고 희생했기 때문에 박근혜 사면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 여론을 덜 수 있었다고 해석된다.


[1] 본인이 발의한 법안에 따르면 이명박, 박근혜는 절대 사면을 받을 수 없다.[2] 이낙연 대표의 정치적 근거지인 호남에 주로 분포한다.[3] 정세균은 2021년 9월 13일에 본경선 후보에서 사퇴하였다.[4] 예를 하나 들자면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피해자 김용균 씨의 모친 김미숙 씨를 비롯한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21대 국회 초반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을 하루라도 조속히 제정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민주당은 협치라는 명분 하에 국민의힘에 끌려다니기만 하는 답답한 모습을 보였다. 이낙연 대표에게 김미숙 씨가 공수처법 패스트트랙을 언급하면서 '할 수 있으면서도 하지 않는 것 아닌가'라는 취지로 면전에서 비판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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